Notice
Recent Posts
Recent Comments
Link
«   2025/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Tags
more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복음과 믿음

마가복음 1:9-13 / 성령의 활동 본문

신약 설교, 강의(이근호)/마가복음

마가복음 1:9-13 / 성령의 활동

정인순 2011. 1. 7. 09:53

본문 : 마가복음 1장 9-13절
제목 : 성령의 활동
듣기 : 음성 , 보기 : 동영상

 

 

이근호
2008년 3월 9일                             

 

성령의 활동

본문 말씀: 마가복음 1:9-13


(막 1:9) 『그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 나사렛으로부터 와서 요단 강에서 요한에게 침례를 받으시고』

(막 1:10) 『곧 물에서 올라 오실새 하늘이 갈라짐과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자기에게 내려오심을 보시더니』

(막 1:11) 『하늘로서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막 1:12) 『성령이 곧 예수를 광야로 몰아내신지라』

(막 1:13) 『광야에서 사십 일을 계셔서 사단에게 시험을 받으시며 들짐승과 함께 계시니 천사들이 수종들더라』

예수님에게 와서 비로소 하늘과 땅은 소통됩니다. 하지만 그 통로는 오직 예수님 뿐입니다. 예수님 위로 하늘이 열리고 그 하늘에게 성령님이 예수님에게 임했다는 말은 다른 통로로서는 하나님과 통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사실에 대해서 우리 인간들은 전혀 답답하지를 않습니다.

“하나님 없으면, 그리고 하나님을 몰라도 사는 데 전혀 지장 없으니 아쉬울 것이 없다”는 식으로 나옵니다. 하지만 그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너희들이 사는 것은 생명도 아니요 사는 것도 아니다. 그저 달랑달랑 붙어있는 파리 목숨에 불과하다”는 겁니다. 즉 이미 인간들은 죽어있는 존재들이었습니다.

마치 정육점의 소고기들을 상인들이 마음놓고 설어서 팔기도 하고, 주부들은 그 고기를 사서 부엌에서 마음놓고 다지기 해도 몸통되는 원래 소가 괴로워하거나 울부짖지를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죽어 관계가 끊어진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살아있는 개의 개 꼬리를 밟으면 개가 아프다고 울부짓습니다.

바로 예수님과 우리들과의 차이입니다. 예수님은 하늘의 생명과 연결되어 있기에 지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하나님을 대신해서 펼치십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예수님이 하시는 일을 기이히 여깁니다. 무슨 뜻인 줄을 모릅니다. 그 이유에 대해서 성령님의 활동을 통해서 알려집니다.

즉 인간들은 본인들이 의식하지는 못하지만 악령의 지배를 받고 있었던 것입니다. 마치 어항 물 속에 사람들이 손을 담그면 어항 속의 금붕어는 사람들이 자기에게 손 대는 줄로 압니다. 실은 금붕어에게 손 대는 것이 아니라 금붕어를 둘러싸고 있는 물에다 손을 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성령께서는 예수님을 악령과 만나게 하십니다. 비록 인간들은 악령이 자신들을 둘러싸고 있다는 것은 인정하지 않지만 하나님 보시기에 인간은 악령 속에 푹 파묻혀 살고 있는 겁니다. 따라서 그들은 생명은 없고 그저 목숨만 달랑달랑 붙어사는 겁니다.

우리 자신과 예수님과 한 번 비교해 보세요.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펼치시는 분입니다. 하지만 예수님 말고 나머지 모든 자들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 삽니다. 그것은 이 땅에서 하늘과 통하고 있는 분은 오직 예수님 밖에 없기에 당연한 결과입니다. 이미 하늘의 뜻이 끊어진 상태에 놓여 있는 인간들은 사나 죽으나 오직 자기 자신만 최종적으로 챙깁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자꾸만 기이한 말씀만을 가지고 우리 곁에 찾아오십니다. “처나 자식이나 부모나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 나라에 합당치 않다”고 하십니다. 또한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오른눈이 범죄케 하거든 빼버려라 다른 지체를 가지고 지옥가지 않는 것이 더 낫다”고 하십니다.

즉 하나님은 지옥 가는 문제에 대해서 인간과 타협하거나 흥정해서 조건을 완화시킬 그 어떤 의사도 없다는 겁니다. 인간이 지옥에 들어가야 한다는 이 엄연한 현실과 심각성에 대해서 우리 인간들은 별 느낌을 안 갖고 있습니다. 그것은 현재 자기 자신만 손이 만져지면 만사 오케이다고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또 다시 기이한 말씀을 하십니다. “믿음이 겨사씨 만큼만 있어도 산 더러 바다에 빠져라 했으면 빠졌을 것이다”고 말입니다. 이것은 산을 옮기도록 노력하라는 말씀이 아니라 너희들에게 전혀 믿음이 없다는 것입니다. 왜 이처럼 인간들은 자기 자신에게만 몰두하게 되었을까요?

그것은 창세기 3장부터 이미 악마의 지배 아래에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12:28-29에 보면,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 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야 어떻게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그 세간을 늑탈하겠느냐 결박한 후에야 그 집을 늑탈하리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인간은 강한 악령 아래서 철저하게 약한 자로 눌려 살고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성령이 와서 건져내지 아니하면 그 어떤 인간도 평생 악마의 종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악마는 인간들로 하여금 하나님으로부터 독립해서 살려고 부추겨왔습니다. 그래서 인간들은 항상 자아 중심으로 생각하고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외부에서 들어오는 것은 뭐든지 자신의 동질성에 부합되는 것만 골라서 챙기고 자기 안에 저장합니다. 그리고 그 저장된 기억을 가지고 외부에 자아를 더욱 키워내는 식으로 행동에 나섭니다. 예를 들면, 내 안에 예수님을 중심에 모시겠다고 마음 먹게 되면, 그런 마음을 먹는 주인공이 누구입니까? 바로 본인입니다.

그러니 아무리 본인 속에 예수님을 중앙에 모셨다고 우겨도 그것을 보고 흐뭇해하고 즐거하고 하고 만족하는 자는 그런 것을 기획하고 계획하고 그 계획한 자기 자신이 대단한 존재가 되고 마는 겁니다. 즉 예수님을 중앙에 모셨다고 자부하는 그 본인이 사실 예수님보다 더 진정한 중앙에 놓인 인물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말씀은 계속 불가능한 쪽으로 몰아넣습니다. 니고데모라는 자가 예수님에게 몰래 와서 진리에 대해 한 수 배우겠다고 했을 때, 오히려 그는 예수님에게부터 꾸중만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거듭 태어나지 아니하면 천국에 못간다”고 하니 니고데모가 기어이 자기 힘으로 거듭 태어날 방도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성인이 다시 모태에 들어갔다가 다니 날 수 있느냐”고 했습니다.

그 때, 예수님 말씀하시기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다”라고 하시면서 예수님 자신을 영의 세계를 새롭게 몰고 온 분으로 소개했습니다. 즉 인간이 못하는 것은 예수님 본인이 하신다는 겁니다. 믿음이란 이처럼 인간이 자기 자신의 가능성과 능력을 일체 믿지 않는 것을 뜻합니다.

아담은 장차 오실 그리스도의 표상이라고 했습니다. 인간은 예수님의 표상입니다. 자신이 모든 것을 결정하고 결행에 옮기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되면 인간은 자신의 위대함과 자신의 잘남과 자존심을 증거하는 자가 됩니다. ‘~의 표상’이 되는 것을 인간들은 죽기보다 싫어합니다. “나는 나다. 오직 나 뿐이다”만 외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악마의 목소리입니다.

어찌할꼬? 베드로는 말했습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러면 구원받을 것이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죽을 때까지 생명이 아닌 목숨 부지하려고 사는 우리에게 성령이 오셔서 우리가 악마에 붙잡혀 있음을 알게 하시고 ‘어찌할꼬?’라고 외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