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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 믿음

마가복음 1:7-8 / 복음의 능력 본문

신약 설교, 강의(이근호)/마가복음

마가복음 1:7-8 / 복음의 능력

정인순 2011. 1. 7. 09:52

본문 : 마가복음 1장 7- 8절
제목 : 복음의 능력
듣기 : 음성 , 보기 : 동영상

 

 

 

복음의 능력
2008년 3월 2일                         

 

이근호

본문 말씀: 마가복음 1:7-8 

(막 1:7) 『그가 전파하여 가로되 나보다 능력 많으신 이가 내 뒤에 오시나니 나는 그의 신들메를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막 1:8) 『나는 너희에게 물로 침례를 주었거니와 그는 성령으로 너희에게 침례를 주시리라』

우리가 펼쳐 보는 이 성경은 하나님의 뜻이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이 제시한 이 기준은 비록 우리가 세상 일에 분주하다고 해서 기준의 내용이 바뀌어지거나 달라지지 않습니다. 즉 우리가 살기 힘들다고 해서 하나님의 세상을 보시는 기준을 완화해 주시는 법은 없습니다. 성경에 나와 있는 그냥 이대로 밀어붙이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이 하나님의 뜻을 듬뿍 짊어지시고 나타나신 분이 두 분 계십니다. 한 사람은 세례 요한이요 다른 한 분은 메시야이십니다. 이 두 분은 사람들을 의식하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을 어떻게 하면 기쁘게 해드리냐 하는 것만이 관심사입니다. 거기에 비해서 일반 사람들의 모든 행동들은 순전히 ‘자신의 소유될 수 있는 것’을 더 원합니다.

‘내 것이 될 수 있는 것을 더 주옵소서. 그래서 나의 미흡한 것을 보충할 수 있게 해주옵소서’ 이것이 인간들의 행동 방향입니다. 어떻게 하면 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겠느냐 하고는 아무런 상관도 없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기준으로 봤을 때, 천국이 없어서 사람들이 천국에 못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천국에 들어갈 자들이 없는 겁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어떻게 하면 더 기쁘시게 해드리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내 것으로 전환되는 것을 더 확보할 것이냐’라는 입장에서 살아가기에 도저히 천국에 못 들어갈 위인들입니다. 세례 요한은 선지자입니다. 선지자란 자기 주장 외에 다른 주장을 옹호해 주는 자가 아닙니다.

자신이 전한 뜻 외에는 다 악마적이라고 쏘아붙이면서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자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세례 요한이 참 선지자인 것을 믿으신다면 우리는 세례 요한 외에 다른 하나님의 뜻을 기대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만을 소개받을 것이 아니라 예수님보다 앞선 오신 세례 요한이 무슨 일을 하셨는가도 알아야 합니다.

세례 요한을 모르고 예수님이 하신 일을 담박 이해하려고 하면 당연히 오해하게 됩니다. 세례 요한의 일은 ‘물 세례?都求? 모든 인류를 전부 물 속에 집어넣어 사장시켜버리는 일입니다. 세례 요한의 복장은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직전까지의 광야 생활을 재현한 것입니다. 돌 꿀과 메뚜기를 먹으면서 광야를 돌아다닌 것은 가진 재산이 전무한 것을 의미합니다.

즉 하나님께서 그날그날 치를 주시지 아니하면 도저히 살 수 없었던 옛날 광야 때의 이스라엘을 대변합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위해 살지 아니하면 약속의 땅, 즉 천국에 못들어간다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인 것입니다. 그것을 세례 요한이 다시 일러줍니다. 하지만 자기를 위해 사는 자는 반드시 죽어야 합니다.

세례 요한의 물 세례는, 이 세상에 있는 각가지 차이성과 다양성이 하늘 위에서 보면 모두 수면 아래로 사라져버린 자들의 차이에 불과함을 보여줍니다. 즉 모든 인간들은 각지 자신이 가진 능력과 수완을 자랑하지만 하나님 기준으로봐서는 물에 빠져 죽을 자들에 해당된다는 겁니다.

옛날 실제로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빼버리면 남는 것은 인간들 뿐입니다. 따라서 인간들은 서로 격려하며 살기 위해서 지혜를 짜내고 눈물 겨운 노고를 생존에 다 쏟아붙습니다. 거기서 나름대로의 ‘진리관’을 세워집니다. 예를 들면, ‘2+3=5’가 진리라는 겁니다.

‘해가 동쪽에서 뜨고, 서쪽으로 진다’는 것도 진리라는 겁니다. 물은 100도에서 끓는다는 것도 진리라는 겁니다. 다리미는 밑바닥이 뜨겁게 달구어져야 그 때에 옷을 다려야 한다는 것도 진리라는 겁니다. 하지만 이 모든 진리관들은 기껏 사람들로 하여금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사고 팔고에 동원되게 합니다.

합리성과 정확한 논리성으로 인류의 거대한 문명을 일구어내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진리가 아니었습니다. 노아 홍수가 덮치니 그 모든 진리라고 우기던 것들이 비진리로 발각되고 말았습니다. 장차 인자가 올 때도 마찬가지 현상이 일어난다고 했습니다. 두 사람이 밭을 갈다가 한 사람은 데려감을 당하고 한 사람은 그냥 버려지게 된 다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진리입니다.

세례 요한의 물 세례는 하나님의 기준에 맞게 세상을 제대로 본 처사입니다. 그 누구도 하나님의 천국에 들어갈 없습니다. 다 죽어여 합니다. 여기서 다음과 같은 트릭은 쓰지 마세요. “나는 내가 죽어 마땅함을 아니까 나는 구원될거야”라는 트릭말입니다. 저주받으면 그냥 저주받는 겁니다. 저주받을 것을 안다는 조건으로 구원되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천국은 그 누구로 인하여 채워집니까? 여기 두 번째 분이 등장합니다. 그 분은 죽은 자를 살리시는 능력으로 성령의 세례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물 세례라는 것이 물로 덮쳐지는 것을 의미하듯이, 성령 세례란 성령의 덮침을 의미합니다. 성령의 덮침은 단순히 생명을 나누어주는 식이 아니라 죄문제에 대해서 하나님쪽에서 뭔가 조치를 취하셨다는 증거로 덮쳐집니다.

즉 세례요한의 물 세례는 사람이 죽어야 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했다면, 예수님의 성령 세례는 죽어 마땅한 인간이 죄 문제가 해결되니 영생을 얻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맨처럼 성령 세례를 받으신 분은 예수님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하나님으로부터 어떻게 구원받았을까요?

히브리서 13:20에 보면, “양의 큰 목자이신 우리 주 예수를 영원한 언약의 피로 죽은 자 가운데서 이끌어 내신 평강의 하나님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언약의 피’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과 약속하신 바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의로운 피’가 죄인마저 의롭게 해주시겠다고 창세 전부터 이미 사전에 약속된 바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창세 전에 예정된 자에 한해서 그 ‘언약의 피’를 자기 백성에게 실어부어주시므로서 죄인이 졸지에 의인이 되게 하시는 겁니다. 교회란 바로 반딧불을 모아놓은 통처럼, 오직 예수님의 이러한 십자가 피만을 영화롭게 하는 자들의 모임입니다. 이런 자만이 하나님의 뜻이 합당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들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길을 아는 것과 길을 실제로 걷는 것과 확연히 차이나듯이 저희들로 하여금 길을 아는 것에 그치지 말고 실제 천국의 길을 걷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