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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 믿음

죄란? 본문

저서 & 기타(이근호)/기독교의 허상 1,2

죄란?

정인순 2011. 1. 4. 21:41

죄란? / 이근호 목사

 

 

 

 

성경에서는 인간을 죄인으로 간주한다. 하지만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이 주장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특별히 죄 지은 일이 없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죄란, 교도소에 갇혀야 될 그런 사항에만 해당된다고 여긴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떳떳한 얼굴로 낮시간에 대로를 누빈다. 그리고 퇴근 시간에도 씩씩하게 가정에 들어선다. 자기 자신을 보고 죄인이라고 생각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전설 속의 인물로만 취급하기 때문이다. 전설이란 어디까지나 지나간 날의 이야기이다. 따라서 하나님도 이미 지나간 그 무심한 어느 날에나 해당되는 분이다. 전에는 곧잘 죄인이라고 꾸중하시던 하나님도 이제 현대인들에게 뒷방 차지하고 쉰 기침이나 쏟아놓는 무기력한 존재로 인식된다. 그분의 꾸중에 대오 각성하고 참회할 만큼 현대인들은 한가하지 않다. 다들 살기에 바쁘고 경쟁하기에 바쁘다.

 

경쟁 사회가 만들어 놓은 체제에서 우대 받는 품행은 오직 '행함의 능력'뿐이다. 행함의 양과 질에 따라 성패가 갈라진다. 양질의 행함이 성공을 이끌어 내는 추진력이다. 행함에 능수능란하면 보다 나은 보수와 함께 높은 직위가 주어진다. 따라서 수입이 많고 직위가 높으면 현대 사회에서는 의인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그리고 영웅 대접받는다. 영웅은 행함에 있어 특출하다. 실천력이 장기이다. 사람들은 그 폭발하는 실천력을 돈을 주고 사고 싶어한다. 그래서 그 사람을 대우하면서 서로 초청하려고 하는 것이다. 현대 사회는 영웅과 영웅들의 군집으로 형성되어 있다. 큰 영웅 휘하에 작은 영웅들이 매달려 살아간다. 어쨌던 그래도 영웅이니 이들은 낮시간에도 떳떳하고 밤시간에도 가정에서 당당하다. 영웅들은, 행함의 질과 양을 높이는데 주력한다. 이것은 현대 사회 속에서 살아갈 때에 무기가 된다. 유일한 무기이다. 그 무기로 자신을 가리는 것이다. 보다 강력한 힘을 소지하게 되면 자신의 원초적인 죄악들은 충분히 안보이게 감출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창세기 3장에서, 인간이 죄짓고 제일 먼저 한 행동은 자신을 가리는 것이다. 가리는 행위는 뭔가 수치스러운 것이 있음을 느끼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그래서 고대로부터 고위직에 있는 자들은 뭔가 자꾸 치장을 하고 다닌다. 속옷도 여러 겹으로 입는다. 대중들 앞에서 속의 것이 드러나기에 힘들게 만든다. 그런 반면에 천한 자들의 옷은 가볍다. 옷은 고대에 있어 재산의 큰 몫이 된다. 하지만 현대인들은 다른 귀한 것으로 자기를 가리면서 살아간다. 예를 들면, 목사라는 직위는 그 자체로서 그 사람을 의인으로 만들어준다. 늘 당당한 그 모습과 직위가 주는 선입감으로 인해 모든 것이 선으로 비춰진다. 하지만 교회 관리원 부부는 그 직위 자체로서 교회에서 죄인의 모습에 근접한 인상을 심어준다. 작은 죄까지 속속들이 발각되기 쉽다. 자신들을 가리기에 교회 관리직이 너무 얇은 옷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영웅들에게 있어 자기 죄를 안다는 것은 너무나 힘든 일이다. 이들도 인간인 이상 신에 대해서 알고 있다. 신은 항상 위대하다는 것도 알고 있다. 너무 위대하기에 신을 비현실적 대상으로만 여기고 싶은 것이다. 경쟁의 상대로서 별 의미가 없기 때문에 차라리 이 인간세계에서 있으나마나 하는 존재로 간주한다. 결코 신을 미워하는 것이 아니다. 아예 무관심한 것이다. 그래서 신 쪽에서 무어라 하든 개의치 않는다. 그저 보다 큰 영웅 만나서 미흡한 힘을 보충하기에 급급하다. 이 힘들이 모여서 점차 자신을 죄인의 부류에서 멀리 떨어지게 해줄 것이라고 계산하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전히 인간들을 보고 죄인이라고 하신다. 하나님은 일체 인간들이 걸치고 다니는 위장품을 인정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이 택한 자에게 다가올 때는 그 사람이 걸치고 있는 모든 것을 다 빼앗아 버리신다. 그리고 예수님 자신이 십자가에 달린 그 최후의 모습을 가지고 그 사람의 위선과 가장술을 나무라는 것이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이 최후의 모습이 바로 너의 최후의 모습일 뿐임을 통보해 준다. 무엇이 죄인가? 자기의 행함에 어떤 의미를 두는 자세가 죄이다. 인간들의 행함의 체제로 인해 하나님의 은총의 체제가 모독을 당하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