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히브리서 (4)] - 9,10장
1998,6 강의(이근호) 정리(구득영)
* 드디어 히브리서 9장에 들어오면, 이제 본격적으로 '성전 부수기'가 시작된다는 것이다.
(히 9:1) 첫 언약에도 섬기는 예법과 세상에 속한 성소가 있더라 (히 9:2) 예비한 첫 장막이 있고 그 안에 등대와 상과 진설병이 있으니 이는 성소라 일컫고 (히 9:3) 또 둘째 휘장 뒤에 있는 장막을 지성소라 일컫나니 (히 9:4) 금향로와 사면을 금으로 싼 언약궤가 있고 그 안에 만나를 담은 금항아리와 아론의 싹 난 지팡이와 언약의 비석들이 있고 (히 9:5) 그 위에 속죄소를 덮는 영광의 그룹들이 있으니 이것들에 관하여는 이제 낱낱이 말할 수 없노라
* 여기에 나오는 것들은 그야말로 이스라엘만이 자랑하는 이방 민족들에게는 없는, 하나님께서 직접 주신 것들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받은 계명들과 성소가 있다는 것이다. 그 장막 안에는 등대와 상과 진설병, 그리고 지성소에는 금향로와 언약궤와 그 안에는 만나를 담은 금항아리, 아론의 싹 난 지팡이와 언약의 비석들이 있다는 것이다.
* 여기서는 만나를 담은 금항아리가 언약궤 안에 들어있는데, 그런데 출애굽기에 보면 밖에 있다는 것이다. 물론 별로 중요한 것은 아니고 말이다.
(히 9:6) 이 모든 것을 이같이 예비하였으니 제사장들이 항상 첫 장막에 들어가 섬기는 예를 행하고 (히 9:7) 오직 둘째 장막은 대제사장이 홀로 일년 일차씩 들어가되 피 없이는 아니하나니 이 피는 자기와 백성의 허물을 위하여 드리는 것이라
* 그런데 문제는 그러한 것들이 있으면 뭐 하느냐는 것이다. 지성소에 들어가지를 못하는데 말이다. 누구만 들어갈 수 있는가? 대제사장만이 들어갈 수 있는데, 그것도 피를 들고서만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히브리서에서는 바로 이것을 두고서 모형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들어왔던 대제사장도 자기의 죄 때문에 또 제사를 드려야 하고 말이다.
(히 9:8) 성령이 이로써 보이신 것은 첫 장막이 서 있을 동안에 성소에 들어가는 길이 아직 나타나지 아니한 것이라 (히 9:9) 이 장막은 현재까지의 비유니 이에 의지하여 드리는 예물과 제사가 섬기는 자로 그 양심상으로 온전케 할 수 없나니 (히 9:10) 이런 것은 먹고 마시는 것과 여러 가지 씻는 것과 함께 육체의 예법만 되어 개혁할 때까지 맡겨 둔 것이니라
* 여기서 비유라고 하는 것은, 실체가 아닌 허구라는 것인데, 피를 들고 들어갔던 그 인간 대제사장도 자기도 여전히 죄가 있다는 것이다. 자기는 대제사장의 그런 역할만 감당 할뿐이라는 것이다. 피만을 들고 들어갔다가 나왔다는 것이다. 그는 모형이라는 것이다.
* '세상 끝까지' 라는 드라마에서, 여주인공 김희선을 죽이지 마라고 인터넷에 올라오고 난리라는데, 사랑에 배신당하고 목숨까지 잃으면 너무 슬프다는 것이다. 그런데 김희선이 죽었다는 것이다. 그녀는 그냥 역할만 그렇게 했는데, 사람들은 실제로 김희선이 그런 줄로 착각한다는 것이다.
(히 9:11) 그리스도께서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 여기서 손으로 지은 것은, 과거에 있었던 성전을 말하는데, 그것은 모형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 창조에 속하지 않았다는 것은, 히브리서 1장 11, 12절에 나와있는 말씀을 연상시킨다는 것이다.
(히 1:11) 그것들은 멸망할 것이나 오직 주는 영존할 것이요 그것들은 다 옷과 같이 낡아지리니 (히 1:12) 의복처럼 갈아입을 것이요 그것들이 옷과 같이 변할 것이나 주는 여전하여 연대가 다함이 없으리라 하였으나
* 사실 성전뿐만 아니라,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이 다 없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오직 주님만이 연대가 다함이 없이 영원하다는 것이다.
(히 9:12)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히 9:13)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로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케 하여 거룩케 하거든 (히 9:14)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지 못하겠느뇨
* 그러니 여기서 우리가 곰곰이 생각해볼 것은, 히브리서 6장에서 말하는 초보적인 신앙이라는 것은, 지기가 받은 은혜를 자랑하고 돌아다니는 것인데, 이것은 하나님의 아들을 현저히 욕보인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 당시 인간들이 예수님께서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셔서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다는 것을 싫어하고, 뭔가 자기가 계속해서 하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 분명하게 14절에서,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지 못하겠느뇨' 라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십일조나 주일성수를 통해서 복을 받으려고 한다는 것이다. 교회에 땅을 바치고 말이다.
(히 9:15) 이를 인하여 그는 새 언약의 중보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를 속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히 9:16) 유언은 유언한 자가 죽어야 되나니 (히 9:17) 유언은 그 사람이 죽은 후에야 견고한즉 유언한 자가 살았을 때에는 언제든지 효력이 없느니라 (히 9:18) 이러므로 첫 언약도 피 없이 세운 것이 아니니
* 여기서 유언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사실 여기 유언이라는 단어가 나올 때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언약을 두고서 말한다는 것이다. 성경 아래에 보면, 그것에 '헬, 언약' 이라고 되어있는데, 여기 '헬'은 '헬나이트'의 헬이 아니고, '헬라어로는 언약이다' 라는 뜻이다.
* 그러므로 16절의 '언약은 언약한 자가 죽어야 되나니' 라는 의미가 되고, 17절의 '언약은 그 사람이 죽은 후에야 견고한즉 언약한 자가 살았을 때에는 언제든지 효력이 없다' 라는 것은, 속죄의 언약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히 9:19) 모세가 율법대로 모든 계명을 온 백성에게 말한 후에 송아지와 염소의 피와 및 물과 붉은 양털과 우슬초를 취하여 그 책과 온 백성에게 뿌려 (히 9:20) 이르되 이는 하나님이 너희에게 명하신 언약의 피라 하고 (히 9:21) 또한 이와 같이 피로써 장막과 섬기는 일에 쓰는 모든 그릇에 뿌렸느니라 (히 9:22)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 모세의 법대로 하면, 송아지와 염소의 피와 및 물과 붉은 양털과 우슬초를 취하여 그 책과 온 백성에게 뿌리는데, 이것은 모형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언약의 피' 라는 것이다.
(히 9:23) 그러므로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은 이런 것들로써 정결케 할 필요가 있었으나 하늘에 있는 그것들은 이런 것들보다 더 좋은 제물로 할지니라 (히 9:24) 그리스도께서는 참 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오직 참 하늘에 들어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고 (히 9:25) 대제사장이 해마다 다른 것의 피로써 성소에 들어가는 것같이 자주 자기를 드리려고 아니하실지니 (히 9:26) 그리하면 그가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자주 고난을 받았어야 할 것이로되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사로 드려 죄를 없게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
* 여기 세상 끝이라는 것은, 지금까지의 세상은 '예수님이 어떤 분인가?' 라는 것을 보여주는 하나의 모형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도 그렇고 말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오셨으니까 이제 세상은 끝났다는 것이다.
◈ 오직 예수님을 증거할 때만 유일한 의미이다 !!
* 그래서 지금부터는 이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예배당을 짓든지 그 무엇을 하든지 간에 말이다. 그래서 인간들의 예배와 기도와 찬송과 전도와 봉사도 이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인간들의 취미생활이고 오락이라는 것이다. 오직 예수님을 증거할 때만 의미가 있다는 말이다.
(히 9: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히 9:28)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 여기에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없이' 라고 했는데, 그러니 예수님을 믿으면 자기의 죄에 대해서는 제발 연연하지 말라는 것이다. 죄를 안 짓는다는 것이 아니고 말이다. '죄와 상관없이' 라는 것이다. 우리가 이미 죄에 대해서 인식하고 있지만, 그러나 예수님의 대제사장 직분을 다 크게 본다는 것이다. 그분이 우리의 소망이니까 말이다.
* 이제 히브리서 10장을 보자.
(히 10:1)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 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든지 온전케 할 수 없느니라
* 분명히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요 참 형상이 아니라고 했는데, 왜 십일조가 등장하고 주일성수를 끄집어내느냐는 것이다. 아니 정말 미친놈들이 아닌가? 그런 것들은 아무리 해도 온전케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히 10:2) 그렇지 아니하면 섬기는 자들이 단번에 정결케 되어 다시 죄를 깨닫는 일이 없으리니 어찌 드리는 일을 그치지 아니하였으리요
* 그렇게 자꾸만 끄집어내면 '단번' 이라는 것이 깨어진다는 것이다. 어떤 분이 질문하기를, '목사님, 일년에 몇 번 예배에 참석해야 합니까?' 라고 해서, '예, 단번입니다' 라고 했다는 것이다. 정말 '단번' 이라는 것이다. 왜 몇 번이라는 말이 나와야 하는가? 교회에 나오려고 하지 말고 주님께 나와야 하지 않겠는가? 주님을 생각하고 주님의 형제를 만나려고 해야 한다는 것이다.
* 그래서 24, 25절에 보면,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라고 말한다는 것이다. 교회에 열심히 다니라는 것이 아니고 말이다.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서로 돌아보자는 것이다.
(히 10:3) 그러나 이 제사들은 해마다 죄를 생각하게 하는 것이 있나니 (히 10:4) 이는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함이라
* 구약시대에 해마다 제사를 드린 것은 여전히 자기의 죄가 남아있다는 것이고, 다시 말해서, 기존의 제사를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것이다.
(히 10:12)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히 10:13) 그 후에 자기 원수들로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시나니 (히 10:14)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
* 예수님께서 괜히(?) 자기 몸을 바친 것이 아니고, 바로 우리의 죄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우리의 죄 때문에 전전긍긍한다면 그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를 모독하는 행위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뭔가 주특기를 가질 아무런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병 고침이나 방언을 해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히 10:16) 주께서 가라사대 그 날 후로는 저희와 세울 언약이 이것이라 하시고 내 법을 저희 마음에 두고 저희 생각에 기록하리라 하신 후에 (히 10:17) 또 저희 죄와 저희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히 10:18) 이것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 드릴 것이 없느니라
* 여기 18절에 분명히 기록되어있지 않는가? '다시는 죄를 위하여 제사를 드릴 것이 없느니라' 라고 말이다. 그런데 이것을 믿는 사람들이 없다는 것이다. 뭔가 자기가 자기 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행한 것이 있어야 정화가 된다는 것이다. 부정부패를 많이 저질렀다면, 그래도 교회에 나와서 헌금을 좀 많이 한다든지, 아니면 찬송이라도 크게 불러야 속이 시원하다는 것이다.
(히 10:19)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히 10:20)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
* 분명히 새롭고 산 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데 문제는 이것에 눈에 보이지를 않는다는 것이다. 오직 자기 마음속에 예수님이 들어 있는 자만이 그 길로 갈 수가 있다는 것이다. 바꾸어서 말하자면, 예수님께서 자기 마음에 계시지 않으면, 전세계를 돌아다녀도 이 길은 절대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이다.
(히 10:26)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 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히 10:27)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소멸할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
* 예수님을 믿으면 다시 죄를 짓는지 안 짓는지를 궁금해하는 분들이 많은데, 여기 나온다는 것이다.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 즉' 이라고 말이다. 그러니 '워치만 니'를 따르는 자들이 주장하는, 예수님을 믿으면 이제 죄를 짓지 않는다는 것이 순 거짓말이라는 것이다.
* 그런데 여기서 '죄를 범한 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라는 것은, 죄를 짓고 다시 뭔가 속제할 거리를 찾는, 즉 구약의 그런 제사를 생각하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아들을 욕보이는 짓이라는 것이다. 죄를 안 짓는 것이 아니고 말이다. 우리의 죄 때문에 엄청난 분(?)이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모독하지 말라는 것이다. 죄를 짓지 말라는 것이 아니고 말이다.
(히 10:28) 모세의 법을 폐한 자도 두 세 증인을 인하여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었거든 (히 10:29) 하물며 하나님 아들을 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의 당연히 받을 형벌이 얼마나 더 중하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 (히 10:30)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 하시고 또 다시 주께서 그의 백성을 심판하리라 말씀하신 것을 우리가 아노니 (히 10:31) 살아계신 하나님의 손에 빠져 들어가는 것이 무서울진저
* 여기서 '언약의 피' 라고 할 때에, 우리는 구약의 제사제도만 피상적으로 생각하고 죄를 짓고 나서 제사를 다시 드리면 안 되겠느냐고 생각했지만, 그러나 그 단번의 피가 보통 피가 아니라는 것이다. 다시 제사를 드리면 안 되겠느냐는 사고방식이, 바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보는 행위인 것이다.
(히 10:32) 전날에 너희가 빛을 받은 후에 고난의 큰 싸움에 참은 것을 생각하라 (히 10:33) 혹 비방과 환난으로써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고 혹 이런 형편에 있는 자들로 사귀는 자 되었으니
* 왜 구경거리가 되는고 하니, 오직 예수만을 믿기에 그렇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수모가 그리 오래 가지를 않는다는 것이다. 잠깐 후에 그분이 오시니까 말이다.
(히 10:37) 잠시 잠간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히 10:38)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 여기서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라는 것은, 로마서에서 말하는 것과는 또 다른 의미인데, 오직 예수님 때문에 산다는 것이다.
(히 10:39) 우리는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질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
* 여기서 말하는 믿음은 무엇인가? 예수님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주님의 법이 우리의 마음속에 있으니까 말이다. 내가 알아서 하는 것이 아니고, 내 마음속의 법이 그렇게 한다는 것이다.
* 다시 정리하면, 예레미야에 의하면 법이 직접 우리 속에 들어오는데, 이 법은 날마다 제사를 드리는 과거의 법을 일소에 부치는 단번에 드리는 거룩한 법이라는 것이다. 이 법이 우리의 마음속에 들어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가 이것을 부정할 수가, 거부할 수 있는가? 안 된다는 것이다. 마음속에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마음속에 있는 법을 유지하고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물론 우리의 능력이 아니고 말이다.
* 여기서 다시 히브리서 1장으로 한번 돌아가 보자.
(히 1:3)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케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위엄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나서 완전해진다는 것이 아니고, 우리는 죄투성이라도 그분이 정결케 하는 것은 끝내준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그것을 부정하느냐는 것이다. 그러한 자에게는 심판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 그렇다면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분을 기다리면 된다는 것이다. 서로 서로 모이기를 힘쓰며 인내하며 말이다. 환경 같은 것은 신경 쓰지 말고 말이다. 만약에 환경이 좋아져서 죄를 안 짓는다면, 그렇다면 환경이 나빠지면 죄를 더 짓는가?
♨ 기도 -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을 정결케 하기 위해서 귀한 보혈의 피를, 언약의 피를 흘려주시고, 모든 것이 약속대로 이루어짐을 감사드립니다. 과거의 구약 때에는 십일조도 드리고 제사도 드렸지만, 그러나 그것은 모형에 불과한 것이고, 이제는 멜기세덱과 같은 분이 복을 빌어주심으로, 그분이 자기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우리가 죄를 용서받음을 감사드립니다. 이제는 오직 그분만을 증거하며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니다. 아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