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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 믿음

요한계시록 88강 / 계20장 11-15 (최후의 심판) 본문

신약 설교, 강의(이근호)/요한계시록

요한계시록 88강 / 계20장 11-15 (최후의 심판)

정인순 2010. 12. 30.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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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최후의 심판

 

2007년 11월 25일

 

본문 말씀: 요한계시록 20:11-15

 

(계 20:11)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자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 데 없더라』

(계 20:12)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계 20:13)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계 20:14)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계 20: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

 

하늘과 땅이 사라진다는 것은 그 안에 담겨 있는 인간의 모든 수고와 업적도 함께 사라지는 것을 뜻합니다. 인간들의 자신들의 업적에 대해서 대단한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이는 곧 자신의 행함 없이는 가치있는 것이 나올 수 없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인간들의 이런 수고와 노력도 모두 땅 위에서 건설되는 것이고 하늘이 지켜보는 데서 만들어진 것들입니다.

 

그런데 최후의 심판 날에는 더 이상 그 땅도 하늘도 어디로 갔는지 사라져버립니다. 이는 곧 땅 위에 건설된 인간들의 모든 성과들도 다같이 없어진다는 말입니다. 세계 제일의 고층건물을 바라보면서 인간의 기술력과 자금력과 수고가 다 한 눈에 들어옵니다. 그러한 거대한 업적은 아니더라도 늦가을 농촌에 나가보면 농부들이 추수한다고 애쓰는 모습도 보입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도 땅이 있고 하늘이 있을 때는 그럴사 해보이지만 땅과 하늘이 사라진 입장에서는 그런 인간의 수고다 다 헛수고로 돌아가버리고 맙니다. 휑한 그 현장에서 달랑 두 권의 책만 남아 있습니다. 하나는 행위책이요 다른 하나는 생명책입니다. 인간의 모든 운명은 이 두 권의 책으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그 두 권의 책은 명단이 적혀있는 책입니다. 행위책에 명단이 있는 자는 생명책에는 명단이 없는 사람이요, 생명책에 명단이 있는 사람은 행위책에는 명단이 없는 사람입니다. 이 두 권의 책이 순전히 예수님에 의해서 작성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관점에서 세상을 보는 사람은 이 두 권의 책 입장에서 세상을 본다는 말이요, 예수님의 관점에서 세상을 보지 않는 사람은 땅과 하늘 사이에는 애쓰는 남긴 자신의 행함입장에서 세상을 보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누구든지 생명책에 명단이 없는 사람은 지옥불못에 던져진다고 되어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행함책에 자신이 이름이 기록된 사람은 자신의 행함만을 증거하는 식으로 인생을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자기 행함으로 인해 자신을 구축하려고 했던 사람입니다. 즉 자신의 운명을 자기 행함에 의존해서 이룰려고 한 사람입니다.

 

반면에 생명책에 명단이 있는 사람은, 생명의 위력을 배 밑에 깔고 살아온 사람이라서 자신의 행함을 인정치 않고 오직 하나님의 생명의 능력만을 증거하면서 살아온 사람입니다. 이처럼 인간의 행함과 하나님이 생명은 서로 섞일수 없는 각기 다른 세계를 채우는 형성해오고 있습니다.

 

행함책에 명단이 있는 사람은 인간의 자기 행함에 의미를 두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즉 “나는 이러이러한 일을 하고 있으니 이 일로 통해서 현재의 나의 운명과 일생을 이루어내었다”라는 식입니다. 그래서 현재 자신이 가치있다고 여기는 것은 자기가 행한 일이 다른 사람보다 더 가치있는 행동을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며 삽니다.

 

과연 인생이라 이렇듯 자기 행함으로 성공적인 인생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시간이 흐리고, 세월이 인간을 이끕니다. 그렇게 되면 자기가 마치 ‘있는 존재’처럼 느껴지겠지만 얼마 안 가서 나라는 존재는 아예 없는 존재로 드러나버립니다. 사라져 버리는 것입니다. 무대의 한 쪽에서 등장했다싶지만 자꾸만 그 자리에 멈추지 못하고 무대 반대편으로 이동하면서 곧 무대 밖으로 사라져버립니다. 결국에는 잊혀진 존재가 되는 겁니다. 아무리 자기 행함을 외쳐봤자 그 외침의 음성도 갈수록 희미해져 미약해집니다.

 

결국 모든 것이 사라져버린 그 현장에 남은 것은 행위책과 생명책 뿐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사라지게 하시는 이유는, 인간의 운명확정에서 “인간, 너는 빠져라”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확정하지 않으신 운명이란 없습니다. 생명책이 성경에서 처음 등장하는 것은 출애굽기 32:32입니다. 거기서 모세는, 자신과 백성들의 명단이 이미 생명책에 기록되었다는 알려줍니다.

 

이 세상의 모든 나라는 인간들의 자연적인 혈통으로 구성된 나라들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다릅니다. 이스라엘은 친히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나라입니다. “나는 여호와 너희의 거룩한 자요 이스라엘의 창조자요 너희 왕이니라”(이사야 43;15) 이 이스라엘은 죽음이 이기는 나라입니다.

 

이방 나라들은 죽음을 이기지 못하고 자신의 행함으로 죽음을 이겨내겠다고 온갖 노력을 다 쏟는 나라입니다. 이 두 나라가 맞붙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누가 이기겠습니까? 당연히 죽음마저 이긴 나라가 이방 나라를 이기게 됩니다.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은 야곱에서 나왔습니다.

 

야곱은 자신의 행함은 자기를 지키려고 애써온 자입니다. 어느날 그는 천사를 만나고 난 뒤에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죽어야 될 자인 것을 발견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야곱을 용서하시고 생명을 주십니다. 이로부터 야곱은 자신의 행함으로 획득한 재물보다, 하나님 앞에서 당연히 죽어야 될 자가 생명을 얻는다는 사실을 더 중요시합니다.

 

바로 이러한 야곱의 경험이 전체 집단의 경험으로 확장된 나라가 바로 이스라엘입니다. 이 이스라엘은 인간의 행함에 의존해서 생존의 전쟁을 버리는 나라가 아닙니다. 전쟁을 해도 이상스럽게 전쟁을 합니다. 인간의 힘을 의존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주는 그런 전쟁을 합니다. 이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올 때, 하나님께서 모의고사를 치르게 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모든 애굽에 있는 가정마다 맏아들을 죽이는 시험을 쳤습니다.

 

그런데 유독 이스라엘 집안만큼은 하나님의 저주에서 살아남았습니다. 그 증거는 바로 이스라엘 집 입구에 발려있는 ‘어린양의 피’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 이후에 이스라엘은 그 ‘어린양의 피’를 내부적으로 되풀이하면서 죽음을 이겨내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일에 종사하는 자들인 제사장들이 계속 죽어나갑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생명을 공급해주는 그 일의 종사자마저 결코 영원히 생명에 합당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겁니다.

 

세례요한은 예수님을 가리켜 말하기를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했습니다. 어린양 되시는 예수님은 하나님과 새로운 약속을 체결했습니다. 그 어느 누구도 이 체결에 관여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태어나기를 자기 행함을 자랑하는 죄속에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저주와 심판을 이기고 생명의 나라로 가는 것이 이 생명되시는 예수님의 대신 죽으심 때문입니다. 따라서 성도는 자기를 포기해야 합니다. 자기에 대해서는 이미 죽은 자로 간주하고 하나님에 대해서는 이미 산 자로 간주하며 살아야 합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어차피 사라질 자신이 행함으로 자신의 운명을 채울 생각을 하지 않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