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ice
Recent Posts
Recent Comments
Link
«   2025/11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Tags
more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복음과 믿음

요한계시록 70강 / 계16장 12-16 (영적 전쟁) 본문

신약 설교, 강의(이근호)/요한계시록

요한계시록 70강 / 계16장 12-16 (영적 전쟁)

정인순 2010. 12. 30. 15:14

http://media.woorich.net/성경강해/요한계시록-2006/070강-계16장,12-16,(영적전쟁)-rev070715.mp3
http://media.woorich.net/성경강해/요한계시록-2006/070강-계16장,12-16,(영적전쟁)-rev070715.wmv
http://media.woorich.net/성경강해/요한계시록-2006/070강-계16장,12-16,(영적전쟁)-rev070715.hwp

 

 

이근호

 

영적 전쟁

 

2007년 7월 15일

 

본문 말씀: 요한계시록 16:12-16

 

( 계 16:12) 『또 여섯째 천사가 그 대접을 큰 강 유브라데에 쏟으매 강물이 말라서 동방에서 오는 왕들의 길이 예비되었더라』

(계 16:13) 『또 내가 보매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이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나오니』

(계 16:14) 『그들은 귀신의 영이라 이적을 행하여 온 천하 왕들에게 가서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있을 전쟁을 위하여 그들을 모으더라』

(계 16:15) 『보라 내가 도둑 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계 16:16) 『세 영이 히브리어로 아마겟돈이라 하는 곳으로 왕들을 모으더라』

 

영적인 허리케인이 이 땅을 뒤덮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 세계를 깜깜한 상태에 있다고 보십니다. 그래서 말씀하십니다. “깨어있으라 내가 도적같이 오리라”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 말씀은 거부합니다. 왜냐하면 멍〜 한 상태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먹고 사는데 있어 그 어떤 의도나 방향성이 없다고 여기며 삽니다. 그냥 깊이 생각 없이 사는 것을 너무 탓하지 말라고 합니다.

 

하늘의 날씨가 우리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우리 위에 찾아와 깔리듯이 영적인 기운의 우리의 의도와 상관없이 우리를 덮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은 아십니다. 이 세상에서 인간 위에 군림하는 인간의 신(神)이 누구인지를 말합니다. 그들은 세 영이었습니다. 용과 짐승과 거짓 선지자입니다.

 

이들의 입에서 내뿜은 거짓말들이 유일하게 이 세상에서 의사소통에 활용되는 대화 내용입니다. 이들이 제공한 거짓말의 주제는 ‘세상 영광과 부귀’입니다. 이것을 미끼로 하여 마귀들은 사람들의 가슴을 멍〜하게 혹은 몽〜 하게 만들고 말았습니다. 이들 마귀 집단들의 다 의도가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을 총동원하여 하나님을 대적하고 최후의 전쟁을 감행하기 위함입니다. 아마겟돈이란 최후의 승리를 결판내는 전쟁 장소입니다. 이 아마겟돈을 겨냥하여 어두운 영의 실체를 드러내게 하시겠다는 것이 여섯 대접을 하늘에서 이 땅을 향하여 붓는 의의입니다.

 

이렇듯 이 세상의 실체를 드러내는데 있어 하늘을 무슨 기준을 사용하시는 겁니까? 예수님의 ‘빈 무덤’입니다. 예수님의 무덤이 비워있다는 말은 얼마 전만 해도 실제로 시체가 그 무덤 안에 있었다는 말이요, 시신이 있었다는 말은 누군가 실제로 죽었다는 말입니다. 즉 예수님의 ‘빈 무덤’이란 예수님께서 실제로 죽었었고, 이제는 실제로 살아나셔서 이 세상 안으로 다시 활동 개시하고 계신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깨어라. 내가 도적같이 다시 온다“는 말씀을 강하게 하시는 겁니다. 사도 바울은 성경에 있는 모든 말씀은 복음이라는 이름으로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을 한데 묶어서 전파했습니다. 왜냐하면 이래야지만 몽환의 상태에서 세상 신의 회유와 독촉에 의해 세상 부귀 영화의 길로 접어든 사람의 깊은 최면을 깨울 수 있는 기준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들 세상 사람들은 집단적으로 하나님께 대적하기 위해 집결장소로 자신도 모르고 끌려다고 있는 중입니다. 본인들은 한결 같이 주장하기를, “나는 그저 밥먹고 살겠다는 자연스러운 본능만 발휘하고 있었어”라고 말들을 하지만 말입니다.

이 복음에 충실한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6:22에서 이렇게 호소합니다.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않거든 저주를 받을 지어다” 그리고 고린도후서 15:10에서는, “그리스도 심판대 앞에 다 서리니”라고 했습니다. 즉 예수님에 대해서 평소에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그 사람을 결정짓는 기준으로 이미 하늘 나라에서 결정 봤다는 겁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빈 무덤’으로 가지고 전 세계민을 정죄하며 심판하겠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렇게 정죄함을 받아야 될 이유는, 이 세상 전체가 거짓말을 전문으로 하는 개구리 영을 가진 용과 짐승과 거짓 선지자들의 주장에 놀아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들 악귀들은 세상의 부귀 영광을 목표로 사람들을 유인했습니다.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이 입이 달려서 문제가 아니라 모든 것을 다 먹어야겠다는 탐욕이 문제가 되는 겁니다. 그러다보니 하나님께서 따먹지 말라는 계명 같은 것도 자신의 욕망에 끝까지 방해요소가 될 리가 없습니다. 보암직도 하고 탐스럽기만 한 욕망에 대한 긍정, 이것이 이 세상 사람들을 지배하는 악마의 유혹책이었습니다.

 

이러한 유혹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에게 예외가 될 수 없었습니다. 마태복음 4장에서 악마는 예수님에게 세상 부귀 영광을 넘겨주겠노라고 제안합니다. 이 제안은 그동안 악마가 인간들을 상대로 재미를 본 유혹임에 틀림없고, 이 제안에 자신의 능력으로 극복할 위인도 없었음을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삶의 목표가 몽환 가운데서 인간들에게 주어졌기에 인간들은 소위 ‘기적’을 요청하게 됩니다. 이 요청에 대해서 악마와 짐승들과 땅의 거짓 선지자들은 언제든지 부응할 만반의 준비를 하게 됩니다. 기적으로 사람들에게 제공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본인들도 인식 못한채 어느새 하나님께 대적하는 편에 가담하고 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즉 평소에, 예수님의 십자가와 빈 무덤에 대해서 시큰둥한 반응을 나타내면서 그것이 일단 나에게 있어 시급하고 다급한 문제점이 아니라고 우겨오고 나중 일에 쭉 밀어두었건만 그런 행위들은 실은 방향성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 방향성이란 바로 예수님의 빈 무덤을 세상의 부귀 영화 앞에서 고물로 헐값아 팔아버린 겁니다.

 

예를 들면, 예수님께서 어떤 문둥병 10명을 고쳐주신 적이 있는데 실은 문둥병자들이 고대했던 기적이었습니다. 그런데 고침을 받은 기적을 안고서 9명은 두 번 다시 예수님에게 오지 않았습니다. 올 필요가 없었던 겁니다. 평소에 자신이 원했던 바를 달성했기에 더 이상 예수님을 찾을 필요가 없었던 게지요.

 

자신의 욕망을 당장 달성되는 것이 시급하지 예수님의 ‘빈 무덤’의 의미는 그 사람에게는 나중 문제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중의 한 사람은 다시 예수님에게 왔습니다. 즉 “왜 용서받지 못할 저는 무슨 연유를 나를 그저 용서해 주시는 겁니까?”라고 말입니다.

 

오늘날도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마치 교회를 학원처럼 여기요 자기 챙길 것만 챙기고 입씻고 두 번 다시 복음으로 오지 않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문동병자 아홉은 병고침 받고 지옥간 자들입니다. 병고침, 즉 자신의 욕망 만족이 기적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구원될 수 없는 죄인임을 아는 것이 진정 주님이 주신 기적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진정으로 ‘주를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이렇게 주를 사랑하지 않는 그 어떤 사람에 대해서도 우리는 두려워하거나 부러워해서는 아니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저주받을 자들이요 결국 하나님에 대들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주를 사랑하는 길로 가도록 우리의 발길을 돌려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