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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 믿음

요한계시록 57강 / 계13장 1-4 (짐승의 위용) 본문

신약 설교, 강의(이근호)/요한계시록

요한계시록 57강 / 계13장 1-4 (짐승의 위용)

정인순 2010. 12. 30.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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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짐승의 위용

 

2007년 4월 8일

본문 말씀: 요한계시록 13:1-4

 

(계 13:1) 『내가 보니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오는데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이라 그 뿔에는 열 면류관이 있고 그 머리들에는 참람한 이름들이 있더라』

 

(계 13:2) 『내가 본 짐승은 표범과 비슷하고 그 발은 곰의 발 같고 그 입은 사자의 입 같은데 용이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그에게 주었더라』

 

(계 13:3) 『그의 머리 하나가 상하여 죽게된 것 같더니 그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으매 온 땅이 이상히 여겨 짐승을 따르고』

 

(계 13:4) 『용이 짐승에게 권세를 주므로 용에게 경배하며 짐승에게 경배하여 가로되 누가 이 짐승과 같으뇨 누가 능히 이로 더불어 싸우리요 하더라』

 

우리는 생각하기를, 하나님만 생각하면 됐지 악마까지 구태여 알려고 할 필요는 없지 아니한다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악마를 노리고 일을 하십니다. 악마의 정체나 그 할 일을 모르게 되면 사실상 하나님의 뜻과 위배되는 뜻을 갖고 있는 셈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진정한 상태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한국 축구팀이 이겼다’라고 했을 때, 반드시 ‘누구에게 이겼는데?’라는 물음에 답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 승리했다’ 했을 때, 누구에게 ‘승리했느냐’도 알아야 제대로 예수님을 알 수 있습니다. 적을 통해서 아군이 구분되는 겁니다. 그래서 성경에 이처럼 짐승과 악마에 대해서 거침없이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하나님에 대해서는 약간의 관심을 나타내어도 악마에 대해서는 몰라도 된다는 의식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악마의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고 여기고 있는 모양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들의 허점은 즉 자신이 이미 악마와 한통속이라는 사실을 까먹고 있다는 점에 있습니다.

 

예수님의 적은 악마이기에 악마도 이점을 압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적으로 간주합니다. 그러다보니 악마는 사람들에게 예수님과 친하게 지내지 않기를 원합니다. 할 수만 있다면 예수라는 분과의 관계를 청산하기를 원합니다. 예수님과 멀어지면 자동적으로 악마와 한 통속이 되는 겁니다.

 

악마의 무기는 죽음으로 인간을 겁주는데 있습니다. “너 나에게 반발하면 죽어!”입니다. 악마의 세계는 나름대로 시간대를 갖고 있습니다. 출생해서 죽을 때까지가 악마의 시간대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에 속한 사람들도 나름대로의 시간대를 갖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죽음 너머까지 영원히 이어집니다. 즉 죽음이 끝이 아니라 본격적으로 행복한 삶이 기다리는 문턱이 되는 것이 죽음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이처럼 전체를 보는 시선의 범위가 다릅니다.

 

거지 나사로의 죽음을 놓고 예수님은 다음과 같은 취지로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성경에서 자기 자신이 거지 나사로와 같은 입장임을 찾아내지 못하면 성경 헛보고 있다”는 겁니다. 거지 나사로에게 있어 거지라는 직업은 죽음 이후까지 따라가지 못했습니다. 실은 그에게 거지라는 직업은 자신이 본질을 가리는 역할을 톡톡히 한 것입니다. 그는 악마가 지배하는 이 세상과는 달리 다른 시간관을 갖고 있었습니다.

 

도대체 이 세상은 왜 거지 나사로의 본질을 이해 못하게 된 것일까요? 예수님의 제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예수님의 12제자들 가운데 제대로 예수님을 알아본 자는 가룟 유다 뿐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자기 힘으로 자기를 살리려 하는데 열중하는 중이었습니다. ‘자기 힘으로 자기를 살리겠다’는 의식은 악마가 아주 좋아하는 사고방식입니다.

 

마태복음 8장에 보면, 양돈업자들이 많이 사는 동리에 예수님이 나타났습니다. 양돈업자들은 예수님을 불필요한 인물로 간주했습니다. 오히려 자기네들의 재산을 손해나게 하는 자로 규정지었습니다. 하지만 귀신들린 청년만큼은 예수님을 제대로 알아보았습니다. “예수여, 아직 때가 되지도 않았는데 우리를 멸망시키려고 왔습니까?”라고 했습니다.

 

그 청년에게 들어있던 귀신들은 돼지를 타고 미쳐서 바닷물 속으로 자결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돼지를 치던 마을 사람에게 있어 예수님은 악마와 상대한 자로 비쳐지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자신들의 돼지를 몰살시킨 재수없는 인물일 뿐입니다. 오늘날도 이처럼 사람들은 예수님은 그런 경제적 안목을 염두에 두고 예수님을 계산합니다.

 

왜 예수님은 귀산과 악마를 상대하시는 겁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인간들은 창세기 3장에서 한 발치로 벗어나지 않았음을 말씀하시기 위함입니다. 인간들이 선악과를 따먹었다는 말은, 실은 그 마음 속에 악마가 원하는 마음씨가 들어왔다는 말이 됩니다. 그것이 곧 스스로 힘으로 신이 되고픈 마음입니다.

 

이 마음을 가지고서 아무리 그 이후에 하나님께서 무슨 법을 주어도 소용없습니다. 다 죄가 발생되는 도구나 될 뿐입니다. 창세기 3장에서 여자는 짐승인 뱀에게 유혹당했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인간은 오직 한 종류의 인간 뿐입니다. 천지 창조 때, 인간을 마지막으로 내세운 하나님의 작품이었습니다. 그에게만 하나님의 형상이 있습니다. 결코 짐승에게 굴복하는 인간을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일하시는 확정 진리는, 바로 여자의 후손인 예수님께서 뱀의 후손을 쳐부수는 일입니다.

 

따라서 하나님 보시기에 악마나 그 하수인들은 기껏 ‘짐승 형상’이 전부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인간을 창세기 3장으로 되돌리려는 것은, 인간을 덮치고 있는 세력이 지금도 변함이 없음을 알려주기 위함입니다. 그 세력은 곧 죄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죽음으로 이끌림 받고 있습니다.

 

그 원인은 죄에 있습니다. 죄가 이미 인간에게 들어왔다는 증거가 죽음이라는 어찌 할 수 없는 세력으로 주어진 겁니다. 즉 사망을 인간이 이기지 못한다는 말은 곧 사람은 죄를 이길 수 없다는 말입니다. 본인이 악이면서도 어떻게 악을 이길 수 있단 말입니까.

 

주기도문에 보면, “우리를 악에서 구하옵소서”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우리에게는 악을 이길 힘이 전혀 없다는 고백입니다. 그러면서도 죽음을 향하여 질질 끌려가고 있습니다. 죄의 노예가 되어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의 신체성이 그것을 나타냅니다. 아무리 우아하고 살고 싶어도 몸이 불편하면 윤리니 도덕이니 하는 것도 잠시 다 접어두어야 합니다. 악지로 티를 낸다면 위선밖에 안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짐승의 모습은 흉측합니다. 온갖 짐승의 특징이 다 섞여있습니다. 뭔가 섞여있다는 것은 추하다는 뜻입니다. 다니엘서 7장에 보면 네 마리의 짐승이 연이어 나옵니다. 그 짐승의 실체는, 바벨론 제국, 메데- 파사 제국, 헬라 마케도니아 제국, 마지막으로 로마 제국이 나옵니다. 각각 사자와 곰과 표범과 알 수 없이 뿔이 10 개 달린 괴물로 나옵니다.

 

그들이 이들이 집중 노리는 집단이 있으니 이들이 바로, ‘인자의 나라’입니다. 이 인자의 나라 사람들은 인자 되시는 예수님을 졸졸 좋다고 따라 다니는 자들입니다. 이들이 짐승의 표적이 됩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을 이 땅에서 굴욕적인 삶을 살게 합니다. 그 이유는 더 이상 자기 자신의 이로움과 가능성에 기대를 걸지 말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즉 심령을 가난하게 만드는 거지요. 거지 나사로처럼 말입니다.

 

이들만큼은 압니다. 자신의 죄는 예수님의 피와 살로 씻음받았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죄가 없어졌다고 주어지는 영역은 영생의 영역 뿐입니다. 영생이란 이렇게 주어지는 겁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악마의 목표를 알았으니 예수님의 십자가 피만을 자랑케 하옵소서. 예수님이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