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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 믿음

사랑의 힘(아가 8:6) / 260611 본문

뒤에서 본 한국교회(안양24-26)

사랑의 힘(아가 8:6) / 260611

정인순 2026. 6. 12. 08:33

음성1
음성2
수요설교요약음성1
수요설교요약음성2
동영상1
동영상2

 

[아가 정리]
1. 구성

1: 2-4 신부
그의 입의 입맞춤으로 내게 입맞춰 주었으면,

임금님이 나를 내전으로 데려다 주셨네

1: 4 합창단
우리는 당신으로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1:5-7 신부
나 비록 가뭇하지만 어여쁘답니다. 예루살렘 딸들이여

당신은 어디에서 양을 치고 계시는지

1:8 합창단
여인들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이여

1: 9-10 신랑
나의 애인이여

그대의 목이 어여쁘구려

1:11 합창단
우리가 은구슬 박힌 금줄을 그대에게 만들어 주리라

1:2-2:7 신부+신랑
우리의 잠자리로 푸르답니다.

그이의 왼팔은 내 머리 밑에 있고, 그이의 오른팔은 나를 껴안는답니다.

우리 사랑을 방해하지도 깨우지도 말아 주오
그 사랑이 원할 때까지

2:8-3:4 신부
보셔요. 그이가 오잖아요.
내 연인이 나에게 말했지요. “나의 애인이여, 일어나오.”

나의 연인은 나의 것, 나는 그이의 것.

그이를 찾으려 하였건만 만나지 못하였다네
성읍을 돌아다니는 야경꾼들이 나를 만났네
“내 영혼이 사랑하는 이를 보셨나요?”

나 그이를 붙잡고 놓지 않았네
내 어머니 집으로.

3:5 신랑
예루살렘의 딸들이여

우리 사랑을 방해하지도 깨우지도 말아 줘요
그 사랑이 원할 때까지.

3:6-11 합창단
보라, 솔로몬의 가마를!

나와서 보아라, 시온의 딸들아,
솔로몬의 왕과 그 관을.…
혼인의 날에,
그의 마음이 기뻤던 날에.

4:1-15 신랑
그대의 두 젖가슴은
연꽃들 사이에서 풀을 뜯는
한 쌍의 젊은 사슴

나의 애인이여, 그대의 모든 것이 아름다울 뿐,
그대에게 흠이라고는 하나도 없구려.

그대는 나를 미치게 하오, 그대의 시선 하나만으로

신부여, 그대의 입술은 생청을 흘리고
그대의 혀 밑에는 꿀과 젖이 있다오

그대는 닫힌 정원, 나의 누이 신부여,
그대는 닫힌 우물, 봉해진 샘.

4:16 신부
오너라, 마파람!
나의 정원이 숨을 내쉬게

5:1 신랑
나의 누이 신부여, 나의 정원으로 내가 왔소.

5:2-8 신부
내 연인이 문을 두드려요.
“네게 문을 열어 주오, 나의 누이”

옷을 이미 벗었는데
어찌 다시 입으리까?

나의 연인에게 물을 열어 주려고 내가 일어났는데
내 손에서는 몰약이 뚝뚝 듣고
손가락에서 녹아 흐르는 몰약이
문빗장 손잡이 위로 번졌네

나는 연인에게 문을 열어 주었네
그러나 나의 연인은 몸을 돌려 가 버렸다네

나는 넋이 나갔네

내가 사랑 때문에 앓고 있다고요!

5:9 합창단
그대 연인이 지닌 것이 무엇인가
다른 여인보다 나은 것이?

5:10-16 신부
나의 연인은 분부시게 하얗고 붉으며
수천의 사람들 가운데서도 눈에 띄지요

머리는 순금
머리채는 까만 까마귀
눈은 우유로 목욕한 비둘기
뺨은 꽃밭
입술은 연꽃
손들은 금반지들
몸통은 상아 조각
다리는 하얀 대리석 기둥들
그의 입천장은 달콤하고

그이의 모든 것이 멋지답니다.
나의 연인은 이렇답니다.

6:1 합창단
왜 우리는 당신과 함께 그들 찾고 있는가?

6:2-3 신부
나는 내 연인의 것, 그리고 내 연인은 나의 것

6:4-12 신랑
나의 애인이여
예루살렘처럼 매력적이고
진을 친 대처럼 두렵고
그대의 머리채는 염소 떼 같고
그대의 이는 세척장에서 올라오는 어미 양 떼 같다오
그대의 볼 석류의 쪼개진 틈
나의 비둘기는 오직 하나뿐, 나의 티 없는 여인

6:13 합창단
새벽빛처럼 솟아오르고
달처럼 아름다우며
해처럼 빛나고
기를 든 군대처럼 두려움을 자아내는
저 여인은 누구인가?

6:14 신랑
나는 알지도 못했는데, 나의 갈망이
나를 나의 고귀한 민족의 병거들에 태워 갔네


7:1-4 합창단
돌아보세요, 우리가 그대를 바라볼 수 있도록!

7:5-9 신랑
그대의 두 젖가슴은
한 쌍의 젊은 사슴
그대의 목은 상아탑
그대의 두 눈은 성문 가에 있는 못
그대의 코는 살피는 보초와 같구려
그대의 머리는 갈멜 산 같고
그대의 머리채는 자홍포
그대의 키는 야자나무
그대의 젖가슴은 야자 송이
나 야자나무에 올라 그 송이를 붙잡으리라
그대 코의 향기는 사과 같았으면
당신의 입천장은 좋은 포도주 같았으면….

7:10-8:3 신부
그이의 갈망은 나를 향하네]

오셔요, 나의 연인이여,
우리 함께 들로 나가요.
마을 덩굴 사이에서 밤을 지내요.

거기에는 나의 사랑을 당신에게 바치겠어요.

아, 당신이 마치 오라버니 같다면
내 어머니의 젖을 함께 빨던!
누구의 경멸도 받지 않고
나 당신에게 입맞춤할 수 있으련만.

8:4 신랑
예루살렘의 딸들이여,
그대들을 맹세하게 하니
왜 사랑을 방해하려 하나요, 왜 뒤흔들려 하나요
그 사랑이 원하기도 전에?

8:5 합창단
광야에서 올라오는 이 연인은 누구인가
자기 연인에게 몸을 기댄 채?

8:6-7 신부
사과나무 아래에서 나는 당신을 깨웠지요,
거기에는 당신 어머니가 당신을 잉태하셨답니다.
거기에는 당신을 잉태하고 당신을 낳으셨답니다.
사랑은 죽음처럼 강하기에
질투는 저승처럼 집요하기에
큰 물도 사랑을
끌 수 없고
강들로 휩쓸어 가지 못한답니다.

8:8-9 합창단
우리에게는 누이가 하나 있네, 조그만 누이
아직 젖가슴도 없다네
누가 구혼이라도 하는 날이면
우리 누이를 어떻게 해야 하나?

8:10-12 신부
나는 성벽
내 가슴은 탑과 같아요
하지만 나는 그이의 눈에서
평화를 발견한 여자처럼 되었지요.

8:13 신랑
친구들이 그대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구려
나도 그 목소리를 듣게 해 주오

8:14 신부
나의 연인이여, 서두르세요
노루처럼
젊은 사슴처럼 되어
발산 산들을 넘어 서둘러 가셔요.


녹취:김혜근

수요설교(260610)요약 열왕기하 7장 16-20절(부활의 무대)

수요설교 요약해드리겠습니다. 수요 말씀의 전체적인 윤곽은 구약에도 부활이 있느냐 하는 겁니다. 구약에도 과연 부활이 있는가? 부활이 있으려면 누군가는 용감하게 죽음의 구역까지 나서야 된다는 겁니다. 사람들은 죽음의 구역에 안 나서요. 안 나서는 이유는 이 세상이 힘들지만 살만하니까 그래요. 힘들지만 버틸 때까지 버티지요.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의 땅은 약속의 땅이에요, 언약이 작용하는 땅이거든요. 거기에 북이스라엘도 살고 유다도 사는데, 그 이스라엘 땅에 살면서 그들은 자기가 사는 게 삶의 목적인줄 알았어요. 언약이 목적이 아니고, 하나님의 약속이 목적이 아니고 ‘나 살면 그만이지.’ 이겁니다.

그러니까 그들은 율법을 버리니까 바알 우상을 수입할 수밖에 없죠. 남들은 그러고도 잘 사니까. 산다는 게 목적이 되었을 때는 율법으로 살 것이냐, 아니면 자기 힘으로 살 것이냐 보니까 다른 민족들은 자기 힘으로 잘도 산단 말이죠. 율법이 그다지 내가 사는 데 기여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드니까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을 좋아할 수밖에 없어요.

특히 율법은 조항들이 너무 많잖아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하나님대로 고집이 있어가지고 ‘이 땅은 율법이 없는 자는 못 살아.’라고 계속 밀어붙여요. 밀어붙이니까 그게 압박이 되는 거예요. 압박을 할 때 이방민족을 통해서 압박을 했고, 사마리아 성을 완전히 포위했고, 그들이 어느 정도까지 나갔느냐 하면, 이제 하다하다 먹을 게 없어서 자기 아들까지 삶아먹는 지경까지 나간 거죠.

그러니 네 문둥병자는 믿음이 좋은 게 아니고, 이리 사나 저리 사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어가지고 ‘가면 죽는다.’는 그 구역에 갔어요.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니까. 그런데 가보니까, 물자만 남기고 아무도 없었어요. 이 점에 대해서 엘리사도 어떤 언질은 받았는데, 어떻게 내일, 24시간 후에는 양식이 많을 것이라는 건 엘리사가 알지만, 그 방법에 대해서는 엘리사도 모르지요.

다만 하나님의 뜻은 24시간 후에 엄청나게 많은 것 같다..는 데에서 엘리사도 몰라요. 다만 자기는 전달만 할 뿐이니까. 그런데 엘리사가 말했을 때, 툭 튀어나와가지고 인간이 생각하는 이성적인 답변을 대신한 자가 있었지요. 장관, 장관이 인간의 본심을 드러냈어요. “하나님이 창을 낸들 그런 일은 없다.”

다시 말해서 ‘이 일은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이 와도, 100명의 하나님이 와도 이 사정은 해소되지 않는다.’ 이게 무슨 뜻일까요? “우리 인간의 힘으로 우리 일은 우리가 알아서 끝까지 우리가 알아서 하겠다. 이게 우리의 존엄성을 유지하는 방법이니까.” 그렇게 되죠.

그때 엘리사가, 제가 설교하면서 유념했던 것은 엘리사가 이렇게 말했어요. “네가 보기는 보아도 먹지 못한다.” 했거든요. 먹지 못한다. 그런데 나중에 실제로 이루어진 일을 보니까 먹지 못한 게 아니고, 죽였어요. 그 장관을 죽여 버렸다고요. 죽이고 난 뒤에 그 남아있는 이스라엘 공동체는 배부르게 먹고 계속해서 하나님께서 약속의 땅에서 살게 했잖아요.

그러면 이거는 언약의 공동체가 주어진 언약으로 앞으로 계속 나가려면 중간에 누가 있어야 돼요? 까불다가 죽는 자가, 언약에 의한 죽음을 통해서 앞으로 새로운 공동체가 공짜로 혜택을 입는다는 언약적 원칙이 수립되는 거예요.

그런데 그 백성이 장관이 미워서 밟아 죽인 게 아니고, 양식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백화점 문 열면 오픈런 하듯이 정신없이 치고 들어간 거예요. 그냥 장관이고 뭐고 중요한 게 아니고, 양식이 있으니까 그동안 굶어서 얼마나 정신이 없겠어요? 그래서 문둥병자가 먼저 봤던 그 기쁜 소식대로 과연 그게 있더라 라고 왁 나가니까 얼결에 누가 죽었어요? 장관이 죽었다고요.

장관이 죽어버렸어요. 그렇다면, 백성들은 평소에 ‘가면 죽는다.’는 세계에 그들이 드디어 문둥병자들 말을 듣고 갔죠. 그렇다면 그게 무슨 공동체? 새로운 공동체죠. 그 공동체가 마태복음 9장에 보면,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지요. 옛 부대는 안 됩니다. 옛 부대는 안 돼요. 그러면 새 술은 예수님이고, 부대는 누가 만드는가? 예수님이 친히 새 부대를 만들어내야 돼요.

인간이 만든 것은 기껏해야 옛 부대이기 때문에. 그렇다면 새로운 공동체를 해서 이스라엘을 계속 끌고 가기 위해서는 주님께서는 엘리사에게 계시를 전했고, 그 계시대로 완성하니까 저희는 배불렀다 하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까 장관 하나가 죽어있단 말이죠.

죽음을 딛지 아니하면 그들은 하나님이 공짜로 주신 언약의 혜택을 입을 수가 없다, 달리 이야기해서 누가 인간적인 생각에서 죽게 된다면, 나머지 사람들은 ‘아, 인간적인 생각은 망해야 마땅하다.’라는 것을 아는 새로운 집단이 생겨나는 거죠.

그러면 이게 뭐가 부활이냐? 부활은 예수님께서 아무도 가지 못하는 새로운 세계, 저주의 세계로 갔습니다. 인간은 갈래야 갈 수 없는 세계, 아버지의 저주의 세계, 지옥같은 세계에 가셔가지고 사흘 만에 부활했잖아요. 그걸 수요설교에서는 ‘부활의 저력’이라 했어요.

저력이란 말은 힘이 죽지 않았단 뜻이죠. 주님의 그 힘, 부활의 저력을 가지고 사람들에게 전할 때, 어떤 사람만 새 포도주에 적합한 새 부대가 되느냐 하면, 예수님이 죽었다가 살아나서 외치는 그 말을 새로운 영의 양식으로서, 우리를 배불리는 양식으로 먹을 때, 그게 바로 신약의 새로운 공동체가 되는 겁니다. 새로운 공동체.

누군가 죽어서 갔다 오신 분 때문에, 전에는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된 자들의 새로운 모임, 새로운 주님의 백성이 탄생한 거예요. 그러면 그 백성은 자기는 공짜로 얻어먹었으니까 누구만 자랑할 거예요? 주님이 죽었다가 살아났기 때문에 몰랐던 내가 알게 되었다. 이걸 어떻게 한다? 네 명의 문둥병자들처럼 가만히 있을 수 없죠.

이 아름다운 소식을 우리만 알면 안 된다고 했잖아요. 전하지요. 전하는 게 뭡니까? 너희들끼리 있으면 죽는다. 이미 너희는 죽은 자리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외치는 것, 그게 바로 전도지요. 그게 전도예요. 믿을 사람은 믿고, 안 믿을 사람은 안 믿죠. 여기까지.
추가)

제 딸이 아주 어릴 때 가져온 동화책이 있었는데, 아주 어린아이들 동화책인데 그 동화책을 보면 너무 짧아요. 기린이 다른 동물들과 나란히 있고, 그 앞에는 아이들이 구경 가는 그림이 있었어요. 애가 묻는 거예요. “기린 아저씨, 나무 위에 올라가면 안 돼요.” 라고 했어요.

아이들 입장에서는 짐승의 높이가 고만고만하니까 저렇게 툭 튀어나온 것은 뭔가 딛고 올라섰기 때문에 그렇다는 거예요. 몸체 자체가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내려다보는 안목이 있다는 생각을 못하고, 분명히 나무 위에, 그 약한 나무 위에 ‘참, 나무가 불쌍하지. 왜 거길 타고 올라가서 긴 목을 내 놓나?’ 이렇게 생각한 거죠, 어린 아이 입장에서.

성도가 복음을 전하니까 공부 많이 하고 뭐 교회 다녀서 성경공부 많이 해서 그런 줄 알아요. 본체 자체가 ‘위’이거든요. 부활해서 위에 올라가신 예수님의 영을 받다 보니까 예수님의 안목으로, 마치 기린의 눈으로 죽음의 세상을 내려다보는, 이것은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연한 건데,

‘기린 아저씨, 나무 위에 올라가면 안 돼요.’이러니까, 기린이 하는 말이, ‘응? 나 나무 위에 올라가지 않았는데.’ 이게 끝이에요. 이게 동화책 내용의 전부예요. 세상이 이해를 못하는 거예요. 보기는 보아도 깨닫지 못해요, 이 사실을, 예수님의 영을 받았기 때문에 되는 겁니다. 끝.


녹취:공은주

안양20260611a아8장6절(사랑의 힘)-이 근호 목사

아가서에서 ‘사랑이 무엇이냐’, 이것보다도 ‘사랑은 어떻게 전달되느냐’ 요게 아가서에서 주가 됩니다. 왜냐하면 인간나라에서는 사랑이 없어요. 인간 나라에는 사랑이 없습니다. 인간나라에서 사랑 없는 이유가 있어요.

하나님의 언약은 복만 있는 게 아니고 그 뒤에 뭐가 있어요? 저주가 있잖아요. 사람들은 복을 따내려면 뭐도 같이 쥐어야 하느냐 하면 저주도 같이 쥐어야 돼요. 그러면 언약을 받았다는 말은 복만 받은 게 아니고 뭐도 부여받는다? 저주도 부여받는 거예요. 그게 율법을 받은 이스라엘 나라의 형편이었습니다.

그러면 사랑은 어디 있느냐, 사랑은 이미 알고 있는 저주에서 복으로 이전하면서 사랑이 발생이 돼요. 저주받아 마땅한데 “너는 내가 복을 줄게.” 그 과정. 그래서 사랑은 어떻게 전달되느냐, 이게 중요하다 이 말입니다. 적어볼게요. 저주에서 복으로 전달되면서 여기서 뭐가 주어진다? 여기서 사랑이 주어진다. 사랑이 나타난다. 저주에서 복으로 가면서 사랑이 나타나는 거죠.

출발점은 뭐였느냐, 항상 저주여야 합니다. 저주받아 마땅하다. 합당하다. 그렇게 되는 겁니다. 에덴동산 나갈 때부터 이미 저주가 땅에서 기다리고 있어요. “자, 오라, 너희들 마음껏 저주해 줄게.” 그게 땅의 생리에요. 하나님께서 의도적으로 땅에다가 저주를 확산시켜 버렸습니다. 저주에서 태어난 거예요. 저주에서 태어나서 저주로 가는 거예요. 흙에서 만들어서 흙으로 가는 거예요. 그냥.

인간은 그냥 폼이고, 잠시 인간 모습이다 싶지만 도로 흙으로 환원된다, 이야기하지요. 환원된다. 도로 돌아간다 이 말이에요. 그런데 그 가운데서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고 흙으로 돌아가야 될 인간이 하늘나라에 백성이 돼서 하나님과 영원히 산다. 이러면 경로가 이상히 됐지요. 왜? 흙으로서 흙으로 가야 될 경로에서 왜 갑자기 뭔가 탈피되는 이탈되는 현상이 일어났는가.

그 점에 대해서는 언약이 추가적으로 개입돼서 그래요. 언약 안에. 그럼 언약 안에는 뭐가 되느냐, 언약 안에는 저주와 복을 다 갖고 있지요. 아브라함에게 축복하는 자에게는 복을 내리고, 아브라함에게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내린다 할 때, 복과 저주가 다 있어요.

그리고 이삭이 야곱에게 복을 했잖아요. 우리 인간 같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복 준 아들을 복을 줬다면 원래 복 주기로 되어있는 아들은 복 안 주면 되지요. 복을 안주면 되는데 뭘 줍니까? 저주를 주지요. 저주. 그게 우리 인간들이 생각하는 복과 저주가 확연히 다른 겁니다.

누구한테 복이 주어졌다, 하는 것은 그 말은 다른 말로 하면 그 시간에 누구한테 저주가 주어졌다는 이야기에요. 누가 천국갔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천국에 가지 못하는 사람은 어디 간다? 지옥으로 간다는 뜻입니다. 지옥으로.

엘리베이터 원칙이지요. 한쪽이 타고 올라간다는 말은 나머지 쪽은 그 내려오기를 기다리죠. 못 올라가는 거죠. 엘리베이터만 두 대가 있다면 한쪽이 올라가면 한쪽은 내려가야 되잖아요.

그래서 자기가 나 구원받았다고 좋아해도 돼요. 좋아해도 되는데, 다른 사람을 생각해서 기분 좀 자제해야지. 내가 올라가는 것 때문에 다른 사람이 자리에서 밀려서 지옥 가는 겁니다. 마태복음8장에 나오는 백부장을 천국으로 보낼 때 그 천국 갈 수 없는 본 자손들은 어떻게 돼요? “비켜라. 자리 비켜라. 니 자리 아니야. 너가 앉아라.”

그래서 우리가 천국 가는 것이 아니고 믿음이 천국 간다고 했지요. 설교시간에. 믿음이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하는 것이지. 내가 천국 가는 게 아니에요. 행함 믿는 사람은 지옥 가고, 믿음 있는 사람은 천국 가고. 우리 속에 행함만 있었던 우리가 세상에 믿음이 들어오니까 원래 믿음을 주신 분이 계시는 쪽으로 만나러 가는 거죠. 상봉하는.

“우리 주님이 주셨지요? 그지요.” 이런 이야기를 고백을 하기 위해서 면류관도 반납하지요. “주님이 시작하셨지요? 그죠. 이제 눈치 깠습니다.” 구원은 내가 원한다고 주는 게 아니고 주께서 먼저 움직여야 우리가 주님에게 끌려가는 식으로 딸려가는 식으로 가는 겁니다. “맞지요?” 그 고백하러 우리는 천국에 가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믿음이 온 이상 우리는 믿음을 어떤 악한 짓도 믿음을 배반할 수 있는 능력이 없어요. 믿음을 떨쳐버릴 수 있는 재주가 우리한테는 없다 이 말이지요. 가짜 믿음은 얼마든지 믿습니다, 하다가 안 믿습니다, 하다가 지 맘대로 왔다 갔다하는 가짜 믿음이지만.

진짜 믿음은 우리가 떨쳐버릴 수가 없어요. 왜? 끌려 올려가기 때문에. 믿음부터 먼저 끌려가고 그 다음에는 주께서 우리를 공중에서 끌어당기고. 주님이 주신 믿음이 먼저 와서 데려가면서 그 주님께서 나중에 자기 영광된 몸으로 다시 믿음의 실체가 드러나게 되지요.

자, 사랑이란 뭐냐, 사랑은 어떻게 전달되는가, 무엇을? 저주에 있는 자를 어떻게 복으로 전달되는가. 그게 아가 8장에 나옵니다. 사실은 아가 8장의 이야기가 아가 전체의 주제라 할 수 있어요. 8장 6절, “너는 나를 인 같이 마음에 품고 도장같이 팔에 두라, (하나님의 솔로몬을 너한테 문신 새겨라. 이 말이지요.) 사랑은 죽음 같이 강하고 투기는 음부같이 잔혹하며 불같이 일어나니 그 기세가 여호와의 불과 같으니라”

원래 여호와의 불은 지옥에서 피어나는 불이지요. 저주의 불. 그런데 저주의 불보다 더 센 불이 사랑의 불. The fire of Love. 사랑의 불. 그런데 사랑의 불이 여호와의 불. 그 여호와의 불은 어디에 적용된다? 지옥에 사정없이 마귀와 그 추종자 인간들을 영원토록 저주하는 그 불길이 이제는 사랑으로 변해서 우리 마음에 확~ 타오르는 겁니다.

다니엘 세친구가 그 불속에 들어가는 것에 대해서 그다지 그들은 심각하게 고민거리가 되지를 않았어요. 왜냐하면 사랑의 불이 너무 강하기 때문에 실제적인 불에 대해서 그렇게 위협적으로 느끼지를 않았어요. “아이고! 어미야! 아이고! 뜨거워라. 살고 보자.” 이런 거 없었지요.

하나님은 그걸 아시고 일부러 다니엘 세친구를 불 속에 들어가게 하신 거예요. 내가 준 사랑의 불이 실제 인간들이 두려워하는 불보다 더 세다는 것을 다니엘 세친구를 통해서 증명하고 확인해 주는 겁니다. 우리는 그런 확인 대상이 안 되고 싶지요. “좀 조용히 살게 해주세요.” 이런 식으로요.

그런데 그 아가 전체가 이것처럼 하나님의 질투의 불이, 저주의 불이, 사랑으로 변해서 저주받은 자를 복된 자로 하는데. 저주받은 자를 복된 자로 할 때, 아브라함에게 축복하는 자에게는 복을 내리고, 아브라함에게 저주하는 자에게는 저주를 내리지요. 그걸 뭐라고 하느냐 하면, 그게 언약이고 언약의 내용이다, 이 말이지요.

언약의 내용인데 솔로몬은 어느 언약이냐, 다윗 언약에 속하지요. 다윗 언약. 솔로몬이 다윗 언약에 속한다는 말은 좀 풀이하게 되면, 다윗으로 하여금 주어진 임무가 있었어요. 솔로몬에게.

그 임무는 그 장소가 뭐냐 하면, 예루살렘과 관련된 임무였어요. 예루살렘에 뭘 지어라? 성전을 지어라. 예루살렘에 성전을 지어라 이게 결합이 되면 이게 뭐냐 하면 영원한 고정성. 확고성. 고정적이다. 모든 진리가 이제는 고정되었다. 확정되었다. 어떤 변화나 변동이 있을 수 없다. 그런 겁니다.

그 고정된 예루살렘에 성전 짓는 솔로몬이 다윗의 아들 솔로몬이 누구를 한다? 어떤 거무티티한 여인을 사랑을 할 때, 그 사랑은 어디서 나왔어요? 이 고정성에서 이 사랑이 나오지요.

고정적인 예루살렘에서 언약을 성취한 분이 내가 너희에게 사랑을 준다는 말은 그 사랑은 변화는 거다? 변화지 않는 거다? 변화지 않는 거예요. 어떠한 지옥이 오더라도 그 사랑은 지옥 속이라도 사랑은 사랑답게 그 가치가 빛나는 거죠. 여러분들이 신약에 보면 예루살렘이 나오지요. 예루살렘 성전이 그 뭐로 만들어졌다고 되어있어요? 요한계시록에 보면 보석으로 만들어졌지요.

자, 보석의 취지가 뭐냐, 보석을 나열한 취지가 뭐냐, 보석은 기존의 돌이나 금속하고 어떻게 돼요? 유난히도 돋보이는 정도로 아름답지요. 전체가 아름다운게 아니고 다른 것도 아름답지만 보석에 눈 꽂히면 다른 거 하고 비교가 안될 정도로 아름답지요.

그 아름다운 보석이 빛나지요. 아름다운 보석이 빛난다는 말은 예루살렘 성이 그렇게 보석으로 꾸며져 있다는 말은 역시 무엇을 보여준다? 고정적이고 고정성은 영원성으로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겁니다. 그게 우리에게 찾아올 때는 뭐로 찾아오는 거예요? 확정된 사랑으로 찾아오는 거예요. 사랑으로.

자, 여기서 우리가 느끼는 것은 그럼 그 귀한 사랑의 대상이 누구냐, 이게 확 땡기지요. 확정되어있고 영원한 사랑. 일방적인 사랑. 지옥에 가더라도 빼내 주는 “너는 내 사랑이다.” 하고 빼내 주는 그 사랑. 도대체 그 엄청난 사랑을 받는 그 대상자가 누구냐, 대상자가 누구냐.

교재 중에 ‘아가 정리’ 봅시다. 4페이지에 보면 1이 나와요. ‘아가 정리’라고 되어있지요. 아가 정리해가지고 마지막 6페이지까지 이어집니다. 요 아가정리 십자가마을에 올릴 거예요. 오늘 밤에.

여기에 보면 1장 2절에서 4절 신부나오지요. 그 다음에 1장 4절에 합창단 나오지요. 그 다음에 신부 나오고 합창단 나오고 9절에서 10절 누가 나옵니까? 신랑나오지요. 아가의 내용은 이렇게 신랑 나오고 합창단 나오고 신부 나오고. 끝. 이걸로 되어있어요. 이것이 계속해서 어떤 합창단이니까 노래하는 거잖아요. 가사, 노래, 노래의 내용, 그것이 주고 받고, 주고 받고, 주고 받고 하는 거예요.

노래를 부른다는 말은 안정권에 들어왔다는 뜻이거든요. 여러분들이 만일 집에 좋은 일이 생기면 저절로 입에서 뭐가 나와요? 입에서 말이 나옵니까? 노래가 나와요? 흥얼거리는 노래가 나오지요. 기분 좋게 노래가 나오지요. 저희 돌아가신 아버지가 식사를 마치고 나오면서 꼭 노래를 불렀어요. 오늘 식사 마음에 든다, 이 말이지요. 주로 옛날 뽕작 노래지만. 불렀어요.

신날 때는 몸의 흥분을 가라앉힐 수가 없어서 노래로 나오지요. 그만큼 노래로 나왔다는 것은 모든 것이 완료되어있다. 완성됐다. 쉽게 말해서 신난다. 그런데 신랑도 신나고, 신부도 신나는데 합창단이 이게 왜 또 신납니까. 합창단은.

여기서 합창단은 바로 천국에서의 죽음을 이기고 천국에 들어오는 신입이. 신입사원이지요. 합격된 신입사원. 지옥에 가야될 자가 지옥에서 빼내서 천국에 오니까 얼마나 천국에서 잔치를 하고 난리도 아니지요.

누가복음15장에 나옵니다. 99마리 양은 그거 별 필요없어요.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하고 그걸 목자의 어깨에 매고 올 때 잔치를 한바탕 벌이지요. 처녀가 동전 하나 잃어버리니까 그 하나 찾고 친구해가지고 잔치 벌였어요. 또 둘째 아들 잃어버리고 난 뒤에 돌아오니까 아버지가 또 동네방네 잔치벌리고 아들한테는 뭘 잘했다고 가락지를 끼우고 아들이 무슨 풍악소리냐, 왠 노래소리냐, 그거는 기쁨의 표현이잖아요. 음악이라는 게.

기뻐서 드디어 챙길 아들 다 챙겼다. 여기서 빠진 멤버가 없도록 하는 거예요. 요한복음6장39절에 보면,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아버지께서 나에게 주신 자는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고 그 생명책에 기록된 멤버를 다 찾는 이것이다. 그래 놓고는 주님께서는 다 이루었다. 담대하라. 내가 승리했느니라.

항상 주님의 말씀은 완료적인 것으로 선포하듯이 한 거예요. “게임 끝났잖아.” 이런 뜻이지요. “게임 끝났지. 나 기쁜데. 너도 기뻐?” 이걸 우리한테 묻는 거죠. 내 선에서는 이미 구원받을 사람은 다 구원받는데 있어서 전혀 하자가 오류가 없다는 거예요.

그럼 어떤 사람은 천국 갈지, 지옥 갈지 모호한 사람들을 그런 사람은 어떻게 하느냐, 주님께서 성령을 보낼 때는 아무나 찾아가는 게 아니에요. 성령께서는 예수님과 아버지의 이미 창세 전에 예정된 자를 향하여 미꾸라지가 그 수초 속을 꾸불꾸불 빠져나가면서 술래잡기 하듯이 “딱! 이제 잡았다!” 하는 식으로 그에게 성령세례를 주지요. 성령을 주지요.

그러면 그 인간은 성령오기 전까지는 행함에 미쳐가지고 난리도 아니더니만, 딱 붙잡히고 난 뒤에는 행함을 버리고 주께서 주신 믿음으로 게임오버! 끝났어요. 게임 끝났다고요.

그 다음부터는 “내가 뭘 합니까?”가 아니라 그 다음 이 문장이 중요하겠지요. 내가 야무지게 단단히 철두철미하게 무엇을 할 것이냐, 이게 행함입니다. 행함은 인간을 완전히 강철로 만들어요. 단단하게 만들지요. 심장을 심장 경색하게, 심줄을 단단하게 만들지요.

그런데 이렇게 하면, “어디서 왔지?” “누군가 주셨구나!” 라는 감탄사. 누가 주셨구나! 그럼 뭐가 폐기되어야 돼요? 야무지게, 단단히, 철저하게, 오류없이 이게 어떻게 돼요? 이 앞에서 폐기되어야 되지요. 이걸 폐기하면서 뭐도 폐기되느냐 하면, 앞에 붙는 거 이거. 내가! 내가 이걸 사정없이 싹싹 지워요.

왜 이게 내가 없어져야 하느냐 하면, 이 내 자리에 누군가 오시면서 나를 납치해가지고 나를 대체해버렸어요. 나를 대체한 그 분이 나를 대체하시면서 주님이 자신의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우리 속에 주셨지요. 믿음, 소망, 그 다음에 사랑을 주셨지요. 사랑이 오지 않으면 저주에서 복으로 못 옮깁니다.

‘내가’ 이게 잘 안 없어지지요. 잘 안 없어진다고요. 분명히 믿음으로 산다했는데 갑자기 카톡이 막 날라옵니다. 안 없어질 수도 있어요. 하지만, 이렇게 세상적인 게 왔을 때 다시 한 번 어디서 왔을까, 누군가 주셨을까.

예수님이 이 땅에서 친히 당했던 그 모든 경험을 우리도 예수님과 한 몸이기 때문에 예수님이 가졌던 그 몸을 지녔기 때문에 동일한 체험을 니가 누리라고 우리에게 이런 세상적인 연관성들이 사건들이 퍼지는 거예요.

그래서 믿음을 잘 붙들어야 된다. 이런 거 없어요. 믿음은 모든 걸 견디느니라. 믿음은 행함의 수작들을 행함의 압박을 견딜 수 있어요. 그래서 주를 사랑하지 않는 자는 저주를 받는다. 주를 사랑하지 않는 자는 저주를 받는 것이 아니라 원래 저주를 받아요.

그 말은 주를 사랑하는 자만이 이 세상 몽땅 저주 아래에 있다는 것을 날마다 확인하는 자만이 주를 사랑하는 자지요. 왜냐, 내가 저렇게 저주받는 자리에 있었는데, 주의 사랑이 옴으로서 비로소 우리는 그것을 바라볼 수 있는 위치에 있기 때문에 그래요.

어쨌든간에 이 합창단, 합창단은 일종의 하늘에 있는 신입사원을 반기는 환영하는 환영부대 천사들이에요. 뭐 이쁘다고 찬양하는 게 아니고 지옥에 간 백성을 건지시는 주님의 손길이 너무나 대단해서 천사들이 주님한테 반해가지고 찬양을 주님한테 할 수밖에 없어요.

그 주님에게 하는 찬양을 들어본 적 있습니까? 가사 내용을 보신 적 있어요? 누가복음 2장 14절, 들판에서 양치는 목자에게 천사가 노래하는데, 아이고~ 놀랍게도 가사가 적혀있네요.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라는 것을 천사가 노래합니다. 주님의 솜씨를 높이지요.

이 천사의 역할을 지금 다윗 완성의 언약을 미리 보여주는 솔로몬 때의 왕이 아니고 신랑이 되겠지요. 신랑이 신부를 맞이하지요. 신랑 그 다음에 합창단, 그 다음에 신부. 이것이 하늘나라를 구성하는 포지션(Position,위치).

신랑은 예수님, 신부는 교회. 그걸 옆에서 주변에서 들러리는 뭡니까? 천사. 하늘나라의 확정된 포지션을 다윗 언약을 통해서 지상에 내려올 때는 아가와 같은 신랑, 신부, 합창단의 모습으로 나타나게 되어있습니다.

그러면 아가서에서 신랑은 솔로몬입니다. 그리고 신부는 술람미 여인이지요. 술림미 여인. 술람미 여인이 자기 동네에서 솔로몬의 왕궁에 침소에 제일 은밀한 침소까지 오기까지 경로. 그 경로를 아가 전체의 줄거리가 돼요. 아가 전체의 줄거리. 그 줄거리를 경로를 계속 반복해 나갑니다.

반복하면서 검은티티한 너가 왕궁의 내 왕의 신부가 되기까지의 그 경로 속에서 얼마나 끈질기게 왕이 그 신부를 사모하고 또는 애틋하게 느끼고 사랑하고 있는지 그것을 계속 집중으로 그냥 미국이 이란에 폭격하듯이 계속 사랑의 폭격을 주고 처음에는 이 여자가 술람미 여자가 그 혈육의 관계를 못 떼었어요. 혈육의 관계를. 떨어질 수 없었어요.

그런데 사랑에 너무 강렬하니까 혈육과는 결별하고 드디어 솔로몬의 신부가 됩니다. 그 가운데서 그 혈육적인 오빠들, 그 오빠들이 제발 니 주제파악 좀 하라고 얼굴도 못 생기고 어딜 되느냐 하는 식으로 니는 어디까지나 우리 가족이야. 하고 붙잡아두는 그러한 끈질김이 또 있어요.

그런데 그 끈질김보다 뭐가 더 센 거예요? 솔로몬의 사랑의 더 세게 작용하지요. 아주 끈질기게. 여자가 몇 번 튕겨도. 그 튕겨도 구애받지 않고 끊임없이 찾아와서 기어이 자기의 사람을 건져내는 그런 식으로 육에서 영의 세계로 들어가는 그 경로를 사랑이라는 그 경로로 표현해주고 있습니다.

제가 이야기하면 여러분이 나도 그런 사랑 좀 받아봤으면 좋겠다 하는데. 그런 사랑 받고 있어요. 받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걸 말씀을 가지고 이미 이야기를 했어요.

처음에 1장에 보면, 신부될 술람미 여인이 뭐 했느냐 하면, 오빠가 운영하는 포도원의 일꾼으로 품꾼으로 일하고 있었어요. 바깥에서 일하니까 얼굴이 강력한 자외선에 얼굴이 다 타서 선크림 발라도 소용없어요. 다 탔지요.

거기 1장 5절을 한 번 보겠습니다. “예루살렘 여자들아 내가 비록 검으나 아름다우니 게달의 장막 같을찌라도 솔로몬의 휘장과도 같구나” 검다는 것을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키고 있어요. 하얀 것이 아름답다는 인간들의 생각을 엎어버리고 검은 것도 얼마든지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 그건 사랑하는 자가 보느냐, 사랑 없이 보느냐의 차이겠지요. 사랑하는 자가 보게 되면, 검으면 검은 대로 아름답고, 희면 흰 대로 아름답고. 이리봐도 내사랑, 저리봐도 내사랑. 앞퇴를 봐도 내사랑, 뒤퇴를 봐도 내사랑.

여기 아가1장 5절~7절에 보면 신부라고 되어있지요. 6절에, “내가 일광에 쬐어서 거무스름할찌라도 흘겨보지 말 것은 내 어미의 아들들이 나를 노하여 포도원지기를 삼았음이라 나의 포도원은 내가 지키지 못하였구나” 그렇게 자기 처지를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 1장 7절에서 여자가 계속 고백하기를 자기에게 다가오는 것이 왕궁에 사는 그런 남자인지 모르고 왕인줄 모르고 자기와 같이 양치는 사람인줄 오해했어요. 그러면 나를 사모하는 그 남자는 어디에서 양을 치고 있나, 어디에서 양을 치고 있나, 이렇게 했지요. 이렇게 이야기해요. 맞지요. 목자 맞지요. 왕이니까. 백성을 목자로 여기고 양치는 사람 맞잖아요.

그런데 아가 전체에서 특이한 게 있어요. 아가 전체에 여자 집에 남자가 없어요. 오빠가 어미의 아들들로 표현되어있어요. 아버지가 없어요. 아버지가. 사실은 아가서의 핵심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왜냐하면 창세기3장에서 구원자는 남자의 후손이 아니에요. 여자의 후손이에요. 여자의 후손이라 하는 것은 남자와 상관없는 존재자. 남자 없이 출생했다는 점. 남자와 상관없이. 그러면 이 세상이 남자의 세계지요. 남자의 세계.

그러면 남자의 세계에 속하지 않는 것은 어디에 속하느냐,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 자지요. 하늘에 속한 자지요. 여자의 후손입니다. 하늘에 있는 분이 이 땅에 왔다면 그건 여자의 후손으로 온 분이지 남자의 후손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남자라 하는 것은 이미 악마와 결탁되어있기 때문에. 구원할 수 있는 능력을 나올 수 없는 주체에요. 남자의 후손들은 구원을 받을 뿐이지, 누굴 구원할 수 없어요.

예를 들면 율법에 이웃을 사랑하라 했지요. 그 사랑의 주체는 하늘에서 와야 되지 같은 땅에 속한 인간이 인간끼리 사랑할 수 없어요. 다들 남자의 후손이기 때문에. 우리의 마음에 악마의 마음으로 포착되어있기 때문에 진정한 사랑은 성립이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가서에서는 여자 집에 남자가 없어요. 끝까지 아비 집이라는 말이 없어요. 어미 집. 그러면 이 여자에게 새로운 아버지가 생긴다면 그건 누구겠어요? 바로 신랑이에요. 신랑이 아버지로 그 빈자리를 마저 채우겠지요. 하늘에 계신 우리의 아버지. 우리의 신랑. 남성. 새로운 남성이 비어있는 남성의 자리를 하늘의 남성으로서 세우는 겁니다.

이렇게 보게 되면 이 아가에 나오는 솔로몬과 이 술람미 여인의 사랑 이야기는 창세기2장에 나오는 아담과 여자의 창조를 더 세밀하게 풀어주는 그런 뜻으로 아가가 기록됐다고 보시면 돼요.

창세기2장에 여러분들이 아시다시피 아담이 먼저 만들어지지요. 만들어지고 그 다음에 여자 만들 때 아담이 가담했습니까? 가담하지 않았습니까? 자기 의견을 피력했습니까? 피력 못했습니까? 피력 못 했지요.

왜 피력 못했습니까? 여자 만들 때 아담은 뭐하고 있었어요? 자고 있었잖아요. 자고 있었어요. 그러니까 남자가 여자를 만든 게 아니지요. 여자는 남자를 통해서 나타났지만, 남자가 여자를 만든 게 아니에요.

그럼 남자 옆에 있는 여자는 그럼 아담이 보기에 누가 만들었습니까? 자기를 만드신 하나님이 여호와 하나님이 자기 곁에 여자를 만들어준 거예요. 줬는데 먼저 만들었다는 이유 때문에 그 여자에 대해서 남자가 관여할 자격은 일체 없습니다. 자고 있었기 때문에.

그러한 나 말고 다른 인간이 만들어진다는 것은 상상도 못 할 때, 주께서 일방적으로 여자를 만들어서 남자에게 주니까 남자는 비로소 확~~ 남자의 단일 개체, 단일 신체에 있던 남자가 이게 단일 신체가 아니고 두 개의 신체로서 새로운 인간형을 그걸 종합해서 나타납니다. 내 살중의 살이요, 내 뼈중의 뼈라. 다시 말해서 너가 없는 한 나도 없고 내가 없는 한 너도 없었다. 가 돼요.

둘이 아니요. 2가 아니고 1이다. 1을 표상하기 위해서 우리 둘이는 항상 둘이 되어야 1이 나온다. 그런데 마귀는 그걸 알고 아담 없을 때, 하와만 있을 때 마귀가 여자한테 홀로 있을 때 따먹으라고 부추기지요. 둘이가 하나 되는 것에 대해서 악마가 그걸 훼방 놓는 거예요. 훼방놔 버려요.

그래서 아가에서는 분명히 왕이 솔로몬 왕이 술람미 여인을 먼저 사랑하는 거 같지만, 사랑하는데, 사랑하는 거 맞는데, 왜 사랑하느냐, 왜 솔로몬이 술람미 여인을 왜 사랑하느냐, ‘네가 거기에 있기에!’ 사랑하는 거예요.

사랑은 방향을 갖고 있고, 사랑은 목표가 있는데 그것은 뭐냐, 나보다 누가 먼저다? 너가 먼저다. 창조할 때는 아담을 먼저 만들었지만, 이미 범죄하고 난 뒤에는 희망은 남성한테 있는 게 아니고 여자의 후손이니까 여성한테 있는 거예요.

여자의 후손과 관련된 존재가 흙으로 돌아가는 남자를 살리는 거예요. 그래서 여자 이름이 뭐로 바뀝니까? 이름이 여자가 아니고 현재에 있는 남자와 관련된 존재가 아니라 생명과 관련된 존재로서 남자가 이해하게 되어서 이름이 하와에요. 생명이에요. 생명. 나의 생명아!

나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니고 나는 우리는 하나님 없이는 못 산다는 것. 그 하나님 없이는 못 산다. 하나님 있음을 지상적인 표현으로서 “너가 있잖아.” “너가 거기 있잖아.” 하나님께서 지상에 언약으로 나타났을 때, 여성의 모습으로서 나타나서 그 여성이 니가 있고, 나는 너로 인하여 만들어졌다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게 갈라디아서4장에 나옵니다. 4장 24절, “이 하가는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산으로 지금 있는 예루살렘과 같은 데니 저가 그 자녀들로 더불어 종노릇하고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우리 어머니라. 어머니가 하는 일이 뭐예요? 잉태하는 거죠. 땅에서는 하갈. 땅에서는 많은 육에 속한 땅에 있는 그러니까 하늘나라의 백성이 될 수 없는 자는 많은 잉태를 해요. 많은 잉태를 하는데 하늘에 있는 예루살렘은 땅에 있는 잉태와 동일한 잉태를 하지 못해서 잉태치 못한 자가 되어버립니다.

그런데 기록된 바 27절에, 기록된바 잉태치 못한 자여 즐거워하라. 이 내용은 이사야에 나오는 내용이에요. 이사야7장14절에 중요한 말씀 나오지요. 사람들이 많이 있으면 그 있는 사람을 구원하면 될텐데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아니하시고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다.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처녀가 무슨 잉태를 해요. 남자가 없는데. 남자 없이 하늘 천국백성을 만들겠다는 일관된 취지가 말씀을 통해서 마지막 때에 임마누엘로 나타나는 그 때가 될 것이다.

그로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잉태된 자가 있을 때 그들은 사랑으로 지옥갈 수밖에 없는 자에게 사랑으로 이 아가서, 이사야7장14절 그것을 성취하심으로서 하늘의 예루살렘. 지상의 예루살렘 말고 하늘의 예루살렘. 인간의 행함으로 다가설 수 있는 예루살렘 말고, 도저히 인간의 행함을 다 거부하고 오직 주님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도달할 수 있는 그 경로가 그렇게 잡힐 수 있는 그 예루살렘에 도착하게 만든다.

그때 하늘의 천사들은 “어서 오라! 예루살렘아! 신부야!” 신부라 해도 되고 예루살렘이라 해도 돼요. “이 예수님의 신부들이여!” 하고 환영하고 박수치지요. 주님의 공로의 놀라움을 보여줍니다. 이러니 아가서에서 아버지 없는 이유를 아시겠지요.

이게 언약적이에요. 다윗 언약. 예루살렘에 있는 남자가 이미 자기가 찾고자 하는 자기 사랑이지만, 찾고자 하는 그 여성이 어디엔가 있다는 그 여성과 더불어 본인에서 내뱉는 사랑 말고, 하늘이 준 사랑은 그 여성과 함께 있는 걸 알고, 그 여성을 자기 신부로 맞이함으로서 여호와의 사랑을 같이 받아들이는 그것이 다윗 언약. 다윗의 아들 솔로몬 언약. 다윗 언약이 갖고 있는 깊은 내용입니다. 본질입니다.

아가서를 이렇게 대충보니까 신약에서는 믿음 같은 것이 아가서에서는 믿음이라 하지 않고 뭐로 표현되지요? 사랑이에요. 사랑. 그리고 로마서에서는 행함이라는 이것이 아가서에서는 “니는 내 누이동생으로서 우리 포도원 지켜야 되잖아.” 육적인 혈육공동체. 혈육관계가 되지요.

그리고 솔로몬은 외지 사람이고, 어미의 오빠들은 그 형제들은 아들들은 자기 오빠들은 태어날 때부터 같이 있던 사람들. 하나의 공동체로서 벗어나면 큰 탈이나 나는 듯한 그런 식으로 살아야 인간다운 삶이라고 주장하는 그들이지요. 그게 행함이지요.

행함은 결과적으로 뭐를 자꾸 밀어내요? 사랑을 밀어내지요. 기존 가족이 구성되어있기 때문에 새로운 사랑의 가족을 기존의 혈육은 참지 못하고 계속 밀어내는 거예요. “니 주제에 무슨 시집을 가” 이런 이야기를 해요.

아가8장 8절에 보면, “우리에게 있는 작은 누이는 아직도 유방이 없구나 그가 청혼함을 받는 날에는 우리가 그를 위하여 무엇을 할꼬” 혈육적 공동체에 있어서 자식을 잘 낳아줘야 딸을 시집보내는 그 친정집이 가오가 사는데 유방이 적다는 말은 자식 키우는데 적절한 조건들이 갖추어지지 않아서 결국 니가 자식 낳는데 제한이 된다면 그 욕은 누구한테 돌아온다? 기존의 친정집에 돌아오니까 아직 때가 안됐다고 하는 거예요.

그런데 이 여인을 부를 때 칭호가 있지요. 왕이 솔로몬이 뭐라고 부릅니까? “나의 누이여” 새로운 가족으로 이미 확정되고 하는 거예요. 나의 누이여. 물론 여기에 대해서 오빠라고 부르지는 않아요. 오빠는 요즘 젊은 사람들이 하지만. 나의 누이여.

이미 기존 식구를 버리고 이미 너는 내 식구라. 사랑에 목적이 있는데 사랑의 목적은 뭐냐, “우리는 한 가족이다.” 라는 게 목적이에요. 헤어지거나 떨어질 수 없는 사이. 마치 기존 가족이 한 번 동생, 한 번 형, 한 번 삼촌, 조카 관계가 무슨 사고 친다고 가족이 해제되는 게 아니잖아요. 그것처럼 그렇게 확정되고 단단한 것처럼 새로운 가족도 마찬가지로 사랑이 있다면 기존에 어디서 무얼하던지 그게 문제 될 일이 전혀 없는 거예요.

처음에 누이라는 술람미 여인도 그 사랑하는 남자가 자기에게 찾아올 때 자꾸 거부했어요. 거부한 이유가 기존에 혈육공동체에 있었던 지적 받던 그것을 본인이 자각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내가 지금 콧물 난다. 병이 났다. 좀 당신을 만날 때, 멋있게 좀 만나고 싶은데 기침하고 코 골골하고 기본 화장도 안 되고 이리 있는데 어떻게 당신을 떳떳하게 만나겠느냐. 그러니까 지금 몸이 아프니까 그냥 돌아가 주세요. 이리 이야기해요. 자기가 멋있어야 자기가 사랑받을 사랑을 누릴 정도 자격을 갖춘다는 자기 의를 여전히 누이는 철딱서니없이 그걸 유지하고 있었던 거예요.

그러나 남자는 니가 아프던 뭐든 간에 일체 니가 화장이 됐든 안 됐든 무슨 허름한 옷을 입었든 말끔한 옷을 입었든 그런 걸 일체 문제 삼지를 않는 거예요.

그래서 남자가 어떻게 하느냐 하면, 그 여자에게 그렇다면 내가 문을 안 열어주니까 손이 끼인 거 같아요. 끼였는데 그 손에 뭐가 있느냐 하면 손에 몰약을 약을 주려고 온 모양이에요. 약을 줘요. 약이 있는데 약이 고체일까요? 액체일까요? 액체에요. 약이 액체가 남자의 손에서 여자의 손으로 적십니다. 적시고.

그 다음부터는 멀쩡히 나아가지고 남자를 만나러 오지요. 오는데 또 밤이라. 밤에 불량배를 만났네. 불량배는 바로 도시지요. 처음에 같이 연애할 때는 도시에서 연애한 게 아니고 들판에서 했어요. 노래와 마음껏 뛰고 놀자. 활기치자. 우리의 사랑을 방해할 자가 아무도 없다.

그런데 도시의 남자는 그렇지 않아요. 해꼬지 하지요. 위험하지요. 그리고 밤이지요. 이렇게 대비를 시키는 거예요. 도시라 하는 것은 창세기4장에 가인의 후예가 처음으로 만든 게 도시에요. 도시는 인공적인 거예요. 자연적이 아니고 인공적인 거.

우리 인간끼리 하나님 없이 인간끼리 잃어버린 낙원을 우리 도시 안에서 한 번 제대로 만들어 보자. 낙원으로 못 들어갈 거 같으면 우리가 낙원 만들면 되지. 그 낙원을 만드는데 누가 우두머리 대장질을 하고 있어야 되지를 않습니까. 그게 가인의 후예가 왕질 한 거예요. 대대로 가인의 후예가. 가인도 하나의 왕적인 자기의 족보를 형성하고 있었던 거예요.

그 도시. 그 도시인데 그 도시를 키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럼 다른 도시를 어떻게 해야 돼요? 싸워야 되겠지요. 싸우던지 아니면 투표용지를 반으로 감추던지. 우리끼리 낙원이니까. 우리끼리. 우리끼리 잘 살아야 되니까.

도시는 폭력이고 압력이고 위협이고 공포를 제공하지요. 그게 어두운 밤이에요. 어두운 밤에 이 여자가 아주 혼이 나지요. ‘아, 도시가 무섭구나!’

자, 이 도시에서 다시 들판으로 어떤 식으로 나가야 되는데..., 그건 10분 뒤에.


안양20260611b아8장6절(사랑의 힘)-이 근호 목사

두 번째 시간하겠습니다. 아가서에서 그렇게 솔로몬이 술람미 여인을 사랑하는 솔로몬이 사랑에 미쳤다고 보면 되는데 그렇게 아주 하루 하루 사는 게 신났던 이유가 내가 여기 있음에 신나는 게 아니고, 내가 어떻게 망가지고 하던 간에 내가 사랑하는 여자가 있다면 나는 나를 잃어도 그게 무슨 대수냐 하는 거예요.

여자의 후손이 살아 계시잖아요.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부활했잖아요. 그러면 이 세상에 남자의 지배를 받고 있는 모든 인간이 남자같이 양육받고 교육 받는 예속돼 있는 남성처럼 살기를 강요받고 있지요.

그야말로 남자의 후손의 지배를 받는 우리들이 자기 자신에 대해서 걱정할 게 없지요. 왜? 따로 여자의 후손이 계시니까. 여자의 후손이 그 안정성이 나의 모든 흔들림을 상관없이 만들어버리잖아요. 내 모든 불안을.

여자의 후손이 있는데. 왜 남자의 후손이 자기 미래에 대해서 걱정하고 자기 인생 수습한다고 허겁지겁 수습한다고 싸매고 고민하고 쓸데없는 일이 되겠지요. 쓸데없는 일.

그래서 아가에서 남녀가 만나면 들판에서 만날 때, 일을 합니까? 아니면 놉니까? 들판에서 뭐해요? 두릅 캐고 그럽니까. 일당으로 일합니까. 그런 것은 여자가 그 어미의 아들들. 오빠들하고 포도원에나 있을 때 그렇게 일했지요. 들판은 노는 겁니다. 사랑은 그냥 노는 거예요.

일은 업적에 따라서 잘했다, 못했다 평가가 주어지는 게 일이에요. 왜 예상 목표량을 채우지 못하느냐, 그건 일이에요. 히브리인들이 애굽에서 나올 때 숫자 목표량에 벽돌을 다 채우라고 할 때 그들이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노는 사람이 벽돌을 만들었어요? 짚을 주지 않고 숫자 다 채우라고 했잖아요. 그게 도시의 생리 아닙니까.

약속의 세계에서는, 약속의 땅에서는 일하지 않아요. 일은 하나님이 하시는 겁니다. 그들이 비록 농사를 지어도 농사는 그냥 농사라는 놀이에 열중한 거예요. 이삭이 나온다, 유월절. 그 이삭이 아물었다, 맥추절. 나중에 추수한다, 수장절.

일은 전부 다 하나님이 하시고 우리는 결과물을 얻는 놀이에 흠뻑 젖어있는 그 세계가 바로 약속의 땅에서의 젖과 꿀이 흐르는 세계에 정경이었습니다. 그 모습이었어요. 왜 우리는 사는 것을 놀이처럼 생각을 못합니까? 그건 같이 노는 분을 몰랐기 때문에 그래요. 갓난아이가 엄마 치마 붙들고 “엄마, 우리 일하자.” 이럽니까? 뭡니까. 시장 갔다 와서 “엄마, 같이 놀아.” 하잖아요. 혼자는 못 놀아요.

어떤 맛있는 맛집에 갔다. 맛이 있다. 객관화된 맛이 35년간 장인의 솜씨. 다 좋지요. 그런데 그것을 사랑하는 자와 같이 먹을 때는 진짜 맛있어요. 그런데 그 사랑하는 자하고 튕기고 난 뒤에 우리 갈라서자. 헤어지자. 해놓고 그 집에 맛집에 가보세요. 맛이 있나. 맛이 없지요. 그게 사랑이 떠났기 때문에 맛이 없는 거예요. 그 맛집을 보고 간 게 아니고 같이 음식을 먹는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먹었기 때문에 맛이 있는 거예요. 부부싸움 할 때도 놀 듯이 해야 돼요. 놀 듯이.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 땅에 자기 백성을 할 때, 그 백성의 짝을 넣어주신 거예요. 이 세상의 인간들은 여성이 범죄했기 때문에 그다음부터는 여성이 저주를 받아서 남성에게 복속되는 그런 서열을 만들었어요. 여자는 남자한테 지배를 받아야 된다. 그러니까 이건 남성의 세계에요. 남성의 세계인데, 짝이 없어요.

그 남성의 세계에서 남성우위가 되다 보니까 자기보다 앞선 어떤 다른 존재. 자기가 알고 있는 여성 말고 남성에게 이미 지배받는 그런 여성 말고 남성에게 지배받지 않는 그런 여성으로서 내가 잠잘 때 모르게 주께서 일방적으로 만들어줬기에 내가 환호성을 부르면서 노래 부르면서 내 살 중의 살이라고, 뼈 중의 뼈라고 불렀던 그 여성이 인간에게는 그리운 거예요. 그게 사랑의 관계거든요. 하나가 되는 것.

이것을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런데 이 땅이 무슨 세계냐, 힘의 세계에요. 힘은 누가 더 센가 맨날 티격태격 싸움으로서 어떤 서열이 정해지고, 질서가 잡히는 세계입니다. 도시의 세계도 그렇고. 그래서 오시는 분은 온전히 힘을 빼버려요. 모든 힘을 빼고 오신 분이에요. 힘을 빼니까 나 이만큼 가졌다. 나 잘났다가 같이 빠지지요.

그럼 힘을 뺀다는 것은 바로 ‘힘을 뺀다=자기를 뺀다.’ 나를 제거하고 찾아오신 거예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실 때 “나는 살았다. 너를 구원한다.” 이게 아니고 “나는 이미 죽기 위해서 왔다.” 이미 오실 때부터 아버지로부터 죽으라고 오신 거예요.

죽는다는 것은 뭡니까. 이 땅에서 힘을 빼는 거죠. 힘이 없어서 빼는 게 아니고, 있는 데도 불구하고 아버지의 지시가 그래요. 지금이라도 하늘 천사가 와서 나를 빼낼 수 있어요. 하지만, 그 힘을 사용하지 않아요. 언제까지? 완전히 힘을 다 뺄 때까지. 사랑이 사랑으로서 완성될 때까지. 그 사랑의 완성이 바로 죽을 때나 나올 수 있는 생산물이 있어요. 그게 뭐냐, 주님의 찢겨진 살이고, 흘리신 피. 주님이 죽었다는 뜻이에요.

그 살과 피. 누군가 힘을 다 빼고 내 대신 힘 빼고 그 분이 사랑하러 오셨구나! 그게 바로 십자가에서 유일하게 십자가에서만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할 수 있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힘을 다 빼는 거예요. 왕이다! 해가지고 힘을 꽤나 쓰는 게 아니고 다~~ 빼는 거예요.

오히려 누가 당당하느냐 하면, 여자 쪽에서 도리어 당당해요. 여당당이지요. 여자 쪽에서 당당하다는 것이 어디에 나오느냐 하면, 아가4장4절에 나옵니다. “네 목은 무기를 두려고 건축한 다윗의 망대 곧 방패 천 개, 용사의 모든 방패가 달린 망대 같고” 아주 의젓하고 군대의 기상을 한 곳에 응축한 거 같은 아주 기가 센 여자의 모습.

사랑 안 하려면 말고. 튕기는 100단. 싫으면 말고. 이런 여성의 당당함. 그걸 다윗의 망대라고 되어있지요. 다윗의 탑입니다. 다윗의 탑. 다윗의 망대. 그 의젓함과 당당함에 대해서 이건 이 세상에 힘을 능가하는 군대의 힘을 능가하는 응축된 힘이 당신의 외모에서 빛나고 있다. 발산되고 있다.

그러니까 그 목의 단단한 그 목의 모습이 그 기상이 그 용기가 전체의 아름다움으로 온몸에 다 퍼져있는 거예요. 그래서 4장 1절에 보면, “내 사랑 너는 어여쁘고도 어여쁘다 너울 속에 있는 네 눈이 비둘기 같고 네 머리털은 길르앗 산 기슭에 누운 염소 떼 같구나” 내 사랑 너는 어여쁘고도 어여쁘다. 어여쁘다 하는 것은 동양적인 미가 아니라 당당함에서 오는 미에요.

너울 속에 있는 네 눈은 비둘기 같고, 아주 총기 있지요. 네 머리털은 길르앗 산기슭에 누운 염소 떼 같구나! 그냥 염소만 있는 게 아니고 그 정경까지 같이 묘사하고 있어요. 활~~짝 펼쳐진 곳에. 펼쳐졌는데 매끈하게 펼쳐진 거. 구김살 없이 아름다움이 흘러내리고 있는 거예요.

2절에 이빨 나와요.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아가 보면서 남성이 여성에 대해서 물론 여성도 남성에 대해서 세세하게 신체에 대해서 묘사를 하고 있는데 그 묘사할 때 창세기2장을 생각하면 돼요. 아담이 하와를 보고 자기가 생각도 못한 인간 존재가 나오는데 그것이 내게 없는 누락된 아름다움이 발산하고 있으니까 내 살 중의 살이요, 뼈 중의 뼈요, 다른 말로 하면 이거에요.

내 살 중의 살이요, 뼈 중의 뼈다. 이 말은 “헤어지기 싫어요.” 다른 말로 하면 “당신 없으면 나도 죽을래” 그걸 세자로 하면 “반했다.” 반한 거예요. 그러니까 아가에서 나오는 남녀의 모든 묘사에서 나는 이렇다. 하는 대목이 없어요. 상대가 말을 나에 대한 모든 상황은 상대 쪽에서 그냥 넘겨주고, 내 쪽에서도 상대에 대해서 나는 이렇다, 가 아니라 당신이 이렇다고 넘겨주는 거예요.

그 넘겨줄 때 각자의 힘을 다 빼지요. 나는 이 정도라 하는 것이 일체 포함이 안 되어있어요. 조건부 결혼. “너 수입 얼마인데? 너희 아버지 뭐하시는데?” 그런 거 일체 묻지 않아요. 그냥 있음에 그걸로 끝났어요. 그대 있음에.

하나님의 사랑이 하나님의 자기의 피를 흘리고 살을 찢겼다면 그것이 바로 하늘에서 온 여성이라면 내가 이 세상에서 얼마나 굴곡이 심하고 얼마나 심하게 고생한다 할지라도 저는 상관없어요. 그것이 바로 지옥을 이기고 죽음을 이기는 사랑입니다.

내가 없더라도 그대 있음에 비로소 그대 안에 나는 영원히 살아있습니다. 그런 뜻이에요. 그걸 신약에서 그리스도 안. 그리스도 안이라 되어있고, 에베소서5장에서는 내가 신랑, 신부에 대해서 말하는 게 아니고 이건 교회와 그리스도에 대하여 말한 것이다.

이걸 공식화시키면 이렇습니다. 자연+언약=천국이지요. 마찬가지로 자연+언약=지옥이 되겠지요. 지옥 갈 이유도 없는데 지옥가 있어요. 왜? 이 언약 안에는 뭐가 있습니까? 복도 있지만, 저주도 있기 때문에.

따라서 이 언약에 여자의 후손이 개입해서 언약의 완성을 사랑으로 옮겨버리면, 자연+사랑=천국이 되고, 자연+미움=지옥이 되는 거예요. 하나님의 일은 간단해요. 지금도 이 일을 하나님께서는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안 멈추고 있어요.

창세기 2장에서 아담이 내 살 중의 살이요, 뼈 중의 뼈다. 이렇게 이야기한 그것이 아가서에서는 후각, 미각, 촉각, 청각, 시각, 모든 감각을 다 동원해서 상대한테 자기가 녹아들어간다. 또는 빠져들어간다. 그럼 자기 자신이 없어지겠지요. 보통 펀드에서 원금 까먹는 것을 녹아진다고 이야기해요. 냉장고의 얼음 가만히 있어도 없어지잖아요. 원금 까먹는 것이 바로 녹아진다 하는데.

그러니까 이게 자연 속에 있으니까 자연에서 뛰어노니까 당신은 어느 꽃보다도 더 향기롭고 아름답다고 표현합니다. 이게 자연의 아름다운 것과 귀한 것이 있어야 거기서 비교급으로 도약이 가능하거든요. 언어적 도약이. 당신은 그냥 좋아. 어느 것? 할 때, 자연에서 제일 최고로 향기롭고 아름다운 것을 끌어다가 그것과 비교하면서 그렇게 올라갑니다.

그래서 서로 취하하다가 나중에 더 취하할 게 없으면 어떻게 합니까. 말이 막히지요. 막힐 때 뭐로 막히느냐 하면, 키스로 막아버려요. 키스를 한다는 것은 상대 입을 막아버려요. 말하지 마! 말하지 마! 그냥 좋아. 말하지 마!

쓸데없이 인간의 언어적 구사를 키스가 그냥 마개 역할을 하지요. 그 다음에 키스 다음에 뭐냐 하면, 팔. 팔로 안아버려요. 숨막히듯이 안어버리지요. 안아버리면 이제는 둘이 아니고 하나가 되는 거예요. 하나가 될 때, 그 여성에 대한 표현이 뭐냐 하면, 여자가 아니에요. 비둘기. 사슴. 노루가 돼요.

특징이 뭐냐, 노루, 비둘기, 사슴은 마음껏 뛰노는 짐승이고요, 마음껏 뛰놀기 위해서 뭐가 필요하죠? 아무 장애물이 없는 가다가 엎어지고 자빠지고 코 삐고 후시딘 연고 바르고 이러면 안 되잖아요. 그냥 니 마음대로 날 듯이 뛰어노는 들판의 조건을 전제로 해서 같이 아울러서 니는 내 비둘기, 내 안의 사슴이고 노루다. 그냥 니 맘대로 사세요. 그냥 니 맘대로 사세요.

이렇게 함으로서 혼자 있는 공간은 비창조적 공간으로 낙인됩니다. 인간이 하나님과 더불어서 사랑을 나누어야 될 인간이 뱀한테 빠져가지고 그 다음부터는 인간은 뭐냐, 뱀하고 사귀는 게 아니고 뱀의 종속이 돼요. 뱀하고 사귀는 게 아닙니다. 지배를 받으면서 자기는 뭐가 되느냐 하면, “나는 신이다” 이리 돼요.

자꾸 독자적인 자기만의 세계를 그걸 시도하게 되는 겁니다. 따라서 이 땅에서 구원받을 만한 인간 같은 인간은 없지요. 다시 말해서 이 세상에 출생된 모든 인간들은 저주 아래에 있고 구원될 대상이 없다는 거예요.

그러면 구원될 대상은 새로운 여자가 나타나서 어떻게 아들을 새로운 아들을 같이 만들어야 되겠지요. 예레미야31장 32절,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열조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세운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내가 그들의 뭐가 된다? 그들의 남편이 되었다 하지요. 누가요? 여호와가 남편이 되었지요.

남편이 되었으면 그럼 이스라엘은 그 하나님과의 부부가 되었으면 자식을 낳아야 되겠지요. 그런데 하나님을 남편으로 삼고 하나님의 자식을 생산할 수 있는 그것은 여자의 후손이어야 가능한 거예요. 여자의 후손에서.

그래서 요한계시록12장 2절, “이 여자가 아이를 배어 해산하게 되매 아파서 애써 부르짖더라” 여자가 아파요. 어디에서? 이 땅에서. 메시아를 잉태하는 여성이 아프다. 곧 하나님이 아프다. 하나님이 천국의 백성들을 생산하는데 아프다는 겁니다.

그 아픈 것은 창세기3장에는 뱀의 미혹을 받아서 여자가 해산할 때 고통하는 벌을 받잖아요. 그 아픔이에요. 마귀의 존재 때문에 생긴 아픔이고. 이 세상은 이미 마귀의 손에 넘어갔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도 이 땅에 성도 만드는데 그냥 순풍 순풍 만드는 게 아니고 아픔을 가지고 한 백성, 한 백성을 해산해서 낳은 거예요.

그 아픔이 뭐냐, 십자가 아픔이지요. 십자가 아픔. 모든 말씀 해석에 하나님의 아픔, 예수님의 아픔을 뽑아낼 수 있어야 그게 해석이 성립됩니다. 십자가 나오면 해석이 끝나는 거예요. 십자가의 고통, 하나님의 아픔. 나오면 끝나는 겁니다.

제가 부산강의(현재 존재:시편70:3)에서 그런 강의했지요. 우리에게는 이미 할 일이 있다. 뭐냐, “인간들이 하나님을 죽였잖아.” 하는 그것을 그 구호를 외치는 일. 그게 맞고, 그게 사실이고, 그것만이 유일한 진실이고, 따라서 이미 진실된 해야 할 일이 성도에게 주어졌으면 성도는 시시한 자기일 때문에 고민하고 걱정할 어떠한 권한도 없습니다.

어제 수요일도 성도에게 할 일이 있다, 했지요. 뭐라 했습니까? 전도. 전도 어떻게 한다 했지요? 복음의 총을 들고 두두두두!! 가까운 식구부터 해가지고 아버지, 엄마부터 해가지고. 혈육 본거지부터. 죽었어! 죽었어! 다 죽었어! 총 쏘는 자가 누구다? 네명의 문둥병자(부활의 무대:열왕기하 7:16-20)에요. 감히 갈 수 없는 죽음의 세계를 다녀왔기 때문에 이걸 로마서8장에 9절11절. 그리스도의 영을 받았기 때문에 죽었다가 살지 않으면 이건 제대로 산 사람이 아니지요.

살려고 애쓰는 것은 이미 죽어있다는 뜻이거든요. “당신은 지금 죽어있어.” 외치는 거. 그것보다 더 큰 사랑이 어디 있어요. 이게 최고의 사랑이에요. 그 사랑에 대해서 아름답다고 표현한 구절이 있습니다. 로마서10장15절,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이게 아름답도다, 하니까 뭐가 떠올라요? 아가서가 확 떠오르지요. 아가. 그리고 열왕기하7장도 마찬가지.

아름다운 좋은 소식. 그 네 명의 문둥병자가 죽으면 죽으리라 갔다 온 그 진영. 가면 100% 죽는다고 이쪽 세계에서 다 이야기한 거. “저쪽의 죽음이라는 경계선을 절대로 넘어서는 안 돼. 따라서 산 만큼은 악착같이 살아야 돼.” 라고 외쳤던 그들의 견해와 어긋나서 차라리 죽자! 하고 가보니까 그게 사는 길이었어요. 거기에 복음이 있었어요.

예수님 이용해서 복이나 받고 잘되겠다는 그것은 복음 아니지요. ‘아! 죽어도 괜찮다.’ 는 소식이 복음이잖아요. “이 복음을 이 좋은 소식을 우리가 잠잠하면 되겠어. 전하자.” 그게 전도라는 거고. 전도는 뭐냐 하면 바로 만나는 사람마다 죽여버리는 거예요. 그게 미움이 아니고 사랑이거든요. 사랑은 그런 겁니다. 그 외의 다른 사랑은 없어요.

얼마나 사랑했으면 “니 죽었다.”고 제대로 이야기할 수 있겠어요. 사랑 안 하니까 빙빙 돌려서 “아이고, 참하다. 아이고, 잘됐다.” 이런 소리하지만, 제대로 사랑하면 “니, 죽었어.” 좀 고상하게 말해서 혼자 사는 공간은 비창조적 공간이다. 하나님이 인정하지 않는 공간은 니 잘났다 하는 공간이에요. 사랑이 없는 공간.

아가서 3장 11절에 보게 되면, 혼인 퍼레이드가 벌어집니다. 예루살렘 여자들이 총동원해가지고 “시온의 딸들아 나와서 솔로몬 왕을 보라 혼인날 마음이 기쁠 때에 그의 어머니가 씌운 왕관이 그 머리에 있구나” 여기 모친. 또 여자지요. 부친이 아니고 모친. 또 여자지요. 솔로몬에게도 마찬가지에요.

예루살렘의 백성들아, 부러워서 어쩔줄 몰라해요. 부러워서. 이것은 바로 여기서는 천사의 대리인들. 대리역할을 하는 배우들로 보면 돼요. 여러분이 천국 간다면 짝! 짝! 짝! 짝! 천사들이 날개치면서 박수치지요. 짝짝짝짝!!!

또 심술궂은 또 먼저 온 장로가 시비겁니다. “니가 여기 어디인 줄 알고 여기 들어왔느냐?” 알면서도. 그러니까 다른 장로가 “이 사람들 예수님 피로 씻음 받고 왔어.”이건 우리끼리만 아는 이야기에요. 우리끼리만. 일단 우리끼리만 알아요. 지금 세상은 투표 재투료하라는 그 이야기만 하고 있지. 이런 이야기는 없지요.

세상은 몰라도 사랑은 아니까 할 일이 생겼고. 이 할 일이 우리를 잡아주지요. 흔들림 없이. 아이~ 복음의 총 들고 사람 죽이는 게 얼마나 재미있어요. 그게 전혀 힘들지 않아요. 완전히 놀잇감이지요.

우순실이란 가수가 불렀던 가사가 이런 게 있어요.

<잊혀지지 않아요>

아무것도 모르던 내게
수줍음에 떨던 내게 (아주 수줍음이 많다 정도가 아니라 발발 떨었어요.)

사랑한단 그 말을 처음
속삭여 준 그 사람(그런데 지금 그 사람이 없어요.)

한 번쯤은 우연하게
마주칠 수도 있을텐데

애가 타게 기다렸건만
인연이 없나 봐

세월이 흘러 가 생각하니
그 순간이 너무 아쉬워

언젠가 그대를 만난다면
대답해야지
사랑한다고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얼굴 마저 잊어 버렸지만

날 사랑한단 그 말 한 마디
잊히질 않아요.

아무것도 모르는 내게 사랑한다는 그 말이 얼마나 충격으로 그 여자의 평생에 하나의 충격으로 쇼크로서 다가왔는지. 평생 그 사랑을 잊을 수가 없다는 그 표현이에요. 아무것도 모르던 내게~~, 나중에 시간 있을 때 들어보세요.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노래라고 하는 것은 아가 전체가 아가에요. 아가. 노래란 여유를 나타낸다. 여유가 없으면 맨날 내가. 내가. 내가가 되지요. 내가 손 댈 수 없는 나를 비켜가서 더 크게 있는 그 여유. 씨앗은 하나인데 삼십배, 육십배, 백배라는 여유. 밀가루는 요만큼인데 누룩 들어가니까 이 만큼 퍼지는 그 여유. 흙만 있다고 생각했는데 안에 보물이 담긴 그 여유. 겨자씨만 했는데 나무만큼 커지는 그 여유.

그 여유는 내 거라고 하면 안 돼요. 나 빼고 나머지는 다 사랑입니다. 그게 사랑지요. 그리고 그 사랑이 그리움으로 이렇게 나타나는데 그냥 그리움으로 머무는 게 아니고 그리움, 그리움, 그리움이 점점 더 거리가 좁혀지면서 결국에는 결혼식으로 이어지지요.

그래서 아까 그 혼인 장면이 3장이었지요. 세상에서는 보통 결혼했다. 끝났잖아요. 그런데 그 뒤에 계속 나오는 것은 이미 결혼에 이르기까지 어떤 절차가 있었는가, 그 절차를 통해서 저주에서 어떻게 복을 받는가, 그 가운데서 특히 중요한 것은 사랑받는 여인이 자기의 혈육공동체에 그 생리에 여전히 얽매여서 사랑함에도 불구하고 자꾸 나 같은 거 왜 사랑하고 빼는 거 있잖아요.

일부러 튕겨서 튕긴 게 아니고 가면서 점점 더 대담해 지는 거. 처음에는 뭔가 ‘어울리는 사람. 수준 맞는 사람과 혼인해야지’ 라는 그러한 극히 세상적인 사랑을 일방적인 사랑이 아니고 나도 얼추 나의 행함에 공로가 포함된 사랑으로 해야 나중에 나도 큰소리 칠 수 있지 않은가, 그런 노림수 있는 세상적인 사랑이 아직 여지가 남아있으니까 자꾸 중간에 사건이 일어나서 그걸 빼주는 거예요.

내가 사랑받을 자격이 있어서 사랑받는다. 이것도 힘입니다. 이 힘은 사랑에 대한 방해가 돼요. 훼방이 된다고요. 내가 이 정도 됐으니까 이 정도 대단하니까 나는 사랑한다. 그냥 그리움으로 좁아지면 되는데. 그리움이라 하는 것은 저쪽을 그리워하는 거예요. 그리워하는 나를 폼내는 게 그리워하는 게 아니고. 저쪽을 그냥 그리워하는 거예요.

그리움에 대해서 어떤 가사를 또 하나 적어왔어요. 가사를 보면 가락은 여러분이 알아서 떠오르니까 걱정 안 합니다. 그리워하면 언젠가 만나게 되는 어느 영화와 같은 일들이 이루어지기를 힘겨운 날에는 너를 지킬 수 없었던 아름다운 시절 속에 머문 그대. 옛날 아름다운 시절에 그때 참 좋았다. 그때 그 장면에 나에게는 너가 그대로 있어. 지금은 헤어진지 40년이 넘어서 늙어서 우리 그만 만나자. 할 수 있겠지만.

내 안에 있는 그대는 첫사랑 그대는 아름다운 시절. 그때 그대로 있었던 거예요. 지금은 후회가 되지. 왜 힘겨운 날에 힘겹다는 핑계 대고 너를 지킬 수 없던지. 그리워하면 언젠간 만나게 되는. 가사만 하면 떠오르는 가락. 부활의 .

이것처럼 자연도 세상이잖아요. 이런 사랑에 뭐가 빠졌어요? 중요한 언약이 빠진 거예요. 외부에서 우리에게 주어졌다는 그게 빠지고, 아가는 인간적인 세상도 다 흡수하면서 하나님의 일방적인 사랑을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아가 정리 1페이지에서 6페이지까지 후딱 한 번 봅시다. 주고받고 하나의 포지션이니까. 사랑으로 죽음을 이긴 포지션이니까. 돌아가면서 계속 노래를 부르는 거예요.

1: 2-4 신부
그의 입의 입맞춤으로 내게 입맞춰 주었으면,

임금님이 나를 내전으로 데려다 주셨네

1: 4 합창단
우리는 당신으로 기뻐하고 즐거워하며(천사라 했지요.)

1:5-7 신부
나 비록 가뭇하지만 어여쁘답니다. 예루살렘 딸들이여

당신은 어디에서 양을 치고 계시는지(왕인줄 몰랐어요. 상대방 직업을 몰랐다.)

1:8 합창단
여인들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이여

1: 9-10 신랑
나의 애인이여

그대의 목이 어여쁘구려(신랑이 여자 목부터 보네. 신랑이.)

1:11 합창단
우리가 은구슬 박힌 금줄을 그대에게 만들어 주리라(혼수 걱정하지 마세요. 둘이 사랑만 열심히 하세요. 혼수는 걱정하지 말고.)

그다음에 신랑, 신부같이 합니다.

1:2-2:7 신부+신랑
우리의 잠자리로 푸르답니다.

그이의 왼팔은 내 머리 밑에 있고, 그이의 오른팔은 나를 껴안는 답니다.(신부는 그의 오른팔이 구원의 힘이 되는 오른팔이지요. 출애굽기 15장. 주의 오른팔로 나를 구원했다. 그런데 아가서에서는 주의 오른팔이 나를 껴안았다. 더 노골적이지요.)

우리 사랑을 방해하지도 깨우지도 말아 주오
그 사랑이 원할 때까지(사랑이 마무리될 때까지. 사랑이 완성될 때까지.)

2:8-3:4 신부
보셔요. 그이가 오잖아요.
내 연인이 나에게 말했지요. “나의 애인이여, 일어나오.”

나의 연인은 나의 것, 나는 그이의 것.

그이를 찾으려 하였건만 만나지 못하였다네
성읍을 돌아다니는 야경꾼들이 나를 만났네
“내 영혼이 사랑하는 이를 보셨나요?”

나 그이를 붙잡고 놓지 않았네
내 어머니 집으로.(사실은 이게 야경꾼들의 관심은 그 여자가 누구를 사랑하는지 관심이 없어요. 이게 도시의 어두움의 광경이지요. 관심 없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는 거 우리 식구도 아무도 관심을 두지를 않아요. 그들은 도시의 사람들이니까. 힘 축적에 정신이 빠져있으니까. 사랑이란 들어보지도 못했어요. 들어도 거부해요. 도시의 사람들이지 들판의 낙원의 사람들이 아니에요.)

3:5 신랑
예루살렘의 딸들이여

우리 사랑을 방해하지도 깨우지도 말아 줘요
그 사랑이 원할 때까지. (창세기 2장의 둘이 하나가 되는 순간)

3:6-11 합창단
보라, 솔로몬의 가마를!

나와서 보아라, 시온의 딸들아,
솔로몬의 왕과 그 관을.… (퍼레이드 하는 거죠.)
혼인의 날에,
그의 마음이 기뻤던 날에.

4:1-15 신랑
그대의 두 젖가슴은
연꽃들 사이에서 풀을 뜯는
한 쌍의 젊은 사슴(그러니까 세상에서 평화롭고 순한 모습. 사랑을 묘사할 수 있는 모든 짐승을 압축해서 당신의 육체에 다 담겨있다고 보는 거예요.)

나의 애인이여, 그대의 모든 것이 아름다울 뿐,
그대에게 흠이라고는 하나도 없구려.(로마서 8장에 누가 너를 정죄하리요. 그 대목에 해당됩니다.)

그대는 나를 미치게 하오, 그대의 시선 하나만으로(우리가 주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고 주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했으니. 요한일서4장10절)

신부여, 그대의 입술은 생청을 흘리고
그대의 혀 밑에는 꿀과 젖이 있다오(육체 전체가 고체가 아니고 액체 덩어리로 묘사할 정도로. 액체가 되어야 하나가 되기가 쉬우니까.)

그대는 닫힌 정원, 나의 누이 신부여,
그대는 닫힌 우물, 봉해진 샘.(닫힌 샘. 계속해서 아름다움이 끊임없이 나온다.)

4:16 신부
오너라, 마파람!
나의 정원이 숨을 내쉬게(또 따뜻한 바람까지 불어 주네)

5:1 신랑
나의 누이 신부여, 나의 정원으로 내가 왔소.

5:2-8 신부
내 연인이 문을 두드려요.
“네게 문을 열어 주오, 나의 누이”

옷을 이미 벗었는데
어찌 다시 입으리까?(자기가 부끄러워서 못가는 거예요.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는데. 지가 자기를 부끄럽다고 하는 거예요.)

나의 연인에게 물을 열어 주려고 내가 일어났는데
내 손에서는 몰약이 뚝뚝 듣고
손가락에서 녹아 흐르는 몰약이
문빗장 손잡이 위로 번졌네

나는 연인에게 문을 열어 주었네
그러나 나의 연인은 몸을 돌려 가 버렸다네

나는 넋이 나갔네

내가 사랑 때문에 앓고 있다고요! (아픈 건 감기 때문에 아픈 건 아니고, 사랑 때문에 아파요.라고 가고 난 뒤에 외치고 있어요.)

5:9 합창단
그대 연인이 지닌 것이 무엇인가
다른 여인보다 나은 것이? (합창단 신이 나서 이야기하지요.)

그 다음 신부.

5:10-16 신부
나의 연인은 분부시게 하얗고 붉으며
수천의 사람들 가운데서도 눈에 띄지요(본인은 태양광에 시커먼데 이건 하얗게 띄인다는 거예요.)

머리는 순금
머리채는 까만 까마귀
눈은 우유로 목욕한 비둘기
뺨은 꽃밭
입술은 연꽃
손들은 금반지들
몸통은 상아 조각(하나님이 창조해서 아름답게 창조하신 아름다움을 모아 모아서 완전히 꽃다발처럼 여인에게 다 쏟아붓는 거예요. 그것은 뭐냐 하면 새로운 신부는 창조를 능가하는 아름다움으로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신부를 그렇게 창조하신다는 거예요. 예수님이 그렇게 만들어요.)
다리는 하얀 대리석 기둥들
그의 입천장은 달콤하고

그이의 모든 것이 멋지답니다.
나의 연인은 이렇답니다.

6:1 합창단
왜 우리는 당신과 함께 그들 찾고 있는가?

6:2-3 신부
나는 내 연인의 것, 그리고 내 연인은 나의 것(이제 같이 신랑과 같은 고백을 사랑 안에서 나누고 있습니다.)

6:4-12 신랑
나의 애인이여
예루살렘처럼 매력적이고
진을 친 대처럼 두렵고
그대의 머리채는 염소 떼 같고
그대의 이는 세척장에서 올라오는 어미 양 떼 같다오(흠이 없다. 티가 없는 여인)
그대의 볼 석류의 쪼개진 틈
나의 비둘기는 오직 하나뿐, 나의 티 없는 여인

6:13 합창단
새벽빛처럼 솟아오르고
달처럼 아름다우며
해처럼 빛나고
기를 든 군대처럼 두려움을 자아내는
저 여인은 누구인가?(어두움 속에서도 유난히 빛이 나는)

6:14 신랑
나는 알지도 못했는데, 나의 갈망이
나를 나의 고귀한 민족의 병거들에 태워 갔네


7:1-4 합창단
돌아보세요, 우리가 그대를 바라볼 수 있도록!

7:5-9 신랑
그대의 두 젖가슴은
한 쌍의 젊은 사슴
그대의 목은 상아탑
그대의 두 눈은 성문 가에 있는 못
그대의 코는 살피는 보초와 같구려
그대의 머리는 갈멜 산 같고
그대의 머리채는 자홍포
그대의 키는 야자나무
그대의 젖가슴은 야자 송이
나 야자나무에 올라 그 송이를 붙잡으리라
그대 코의 향기는 사과 같았으면
당신의 입천장은 좋은 포도주 같았으면….

7:10-8:3 신부
그이의 갈망은 나를 향하네

오셔요, 나의 연인이여,
우리 함께 들로 나가요.(들에 나가서 아무도 없는데서 들에서 한 몸이 되자)
마을 덩굴 사이에서 밤을 지내요.

거기에는 나의 사랑을 당신에게 바치겠어요.

아, 당신이 마치 오라버니 같다면
내 어머니의 젖을 함께 빨던!
누구의 경멸도 받지 않고
나 당신에게 입맞춤할 수 있으련만.

8:4 신랑
예루살렘의 딸들이여,
그대들을 맹세하게 하니
왜 사랑을 방해하려 하나요, 왜 뒤흔들려 하나요
그 사랑이 원하기도 전에?

8:5 합창단
광야에서 올라오는 이 연인은 누구인가
자기 연인에게 몸을 기댄 채?

8:6-7 신부
사과나무 아래에서 나는 당신을 깨웠지요,
거기에는 당신 어머니가 당신을 잉태하셨답니다.(아까 여자의 후손 이야기했지요.)
거기에는 당신을 잉태하고 당신을 낳으셨답니다.
사랑은 죽음처럼 강하기에
질투는 저승처럼 집요하기에
큰 물도 사랑을
끌 수 없고
강들로 휩쓸어 가지 못한답니다.

8:8-9 합창단
우리에게는 누이가 하나 있네, 조그만 누이
아직 젖가슴도 없다네
누가 구혼이라도 하는 날이면
우리 누이를 어떻게 해야 하나?

8:10-12 신부
나는 성벽
내 가슴은 탑과 같아요(당당하다)
하지만 나는 그이의 눈에서
평화를 발견한 여자처럼 되었지요.

8:13 신랑
친구들이 그대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구려
나도 그 목소리를 듣게 해 주오

8:14 신부
나의 연인이여, 서두르세요
노루처럼
젊은 사슴처럼 되어
발산(발산이란 향기를 말해요.) 산들을 넘어 서둘러 가셔요.(향기가 넘치는 산으로 가서 서둘러 그냥 우리 달려요.)

이제 남은 시간을 교재에 있는 하는 노래 가사가 나오는데 노래 들으면서 가사를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Celine Dion(셀린 디온)

The whispers in the morning of lovers sleeping tight
Are rolling like thunder now
As I look in your eyes

아침의 속삭임이 이제곤한 잠을 자고 난 연인들의
천둥처럼 울려 퍼져요
당신의 눈을 바라 보며

I hold on to your body
And feel each move you make
Your voice is warm and tender
A love that I could not forsake

난 당신께 꼬옥 붙어서
당신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느끼죠
따스하고 부드러운 당신의 목소리
당신은 저 버릴 수 없는 사랑이에요

'Cause I am your lady
And you are my man
Whenever you reach for me
I'll do all that I can

난 당신의 여인이고
당신은 나의 남자이니까요
당신이 나에게 올 때마다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해드릴께요

Lost is how I'm feeling lying in your arms
When the world outside's too
Much to take
That all ends when I'm with you

당신 품에 안긴 내가 느끼는
감정은 주체할 수가 없어요
바깥 세상이 감당하기에
너무 어려울지라도 당신과 함께라면
모든 어려움도 끝나 버려요

Even though there may be times it seems I'm far away
Never wonder where I am
'Cause I am always by your side

내가 멀리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더라도
내가 어디있는지 궁금해하지 말아요
난 항상 당신 곁에 있으니까요

'Cause I am your lady
And you are my man
Whenever you reach for me
I'll do all that I can

난 당신의 여인이고
당신은 나의 남자이니까요
당신이 나에게 올 때마다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해드릴께요

We're heading for something
somewhere I've never been
Sometimes I am frightened
But I'm ready to learn of the power of love

우린 제가 가보지 못한
그 어떤 곳을 향해 가고 있어요
때로는 두렵기도 하지만
난 사랑의 힘을 배울 준비가 되어 있어요

The sound of your heart beating made it clear
Suddenly the feeling that
I can't go on is light years away

당신 가슴에서 울리는 고동을 듣고 문득 확신이 섰어요
(당신과의) 사랑을 그만 둘 자리에
내가 있지 않습니다.

'Cause I am your lady
And you are my man
Whenever you reach for me
I'm gonna do all that I can

난 당신의 여인이고
당신은 나의 남자이니까요
당신이 나에게 올 때마다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해드릴께요

We're heading for something
somewhere I've never been
Sometimes I am frightened
But I'm ready to learn of the power of love

우린 제가 가보지 못한
그 어떤 곳을 향해 가고 있어요
때로는 두렵기도 하지만
난 사랑의 힘을 배울 준비가 되어 있어요.

사랑의 힘을.
사랑의 힘을.
때로는 두렵기도 하지만.

1993년도 셀린디온이 불렀던 노래에요. <사랑의 힘>. 이 대목에서 우리 같이 지금껏 몰랐던 곳에 같이 가지요. 바로 이 세상과 신나게 격리되시기 바랍니다. 헤어지시기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행함으로 버티던 저희들, 왠 사랑이 와서 그것도 말로만이 아니라 십자가의 피와 찢어진 살로 오셨기에 이제는 여자의 후손이 살아있는 한, 우리의 존재의 흔들림으로 우리가 두려워하지 말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