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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 믿음

히브리서 9:18-22 / 오직 하나님의 피 본문

신약 설교, 강의(이근호)/히브리서

히브리서 9:18-22 / 오직 하나님의 피

정인순 2025. 1. 5. 16:35

음성 동영상 Youtube

 

오직 하나님의 피

 

이근호
2025년 1월 5일                   

 

본문 말씀: 히브리서 9:18-22

(9:18) 이러므로 첫 언약도 피 없이 세운 것이 아니니

(9:19) 모세가 율법대로 모든 계명을 온 백성에게 말한 후에 송아지와 염소의 피와 및 물과 붉은 양털과 우슬초를 취하여 그 책과 온 백성에게 뿌려

(9:20) 이르되 이는 하나님이 너희에게 명하신 언약의 피라 하고

(9:21) 또한 이와 같이 피로써 장막과 섬기는 일에 쓰는 모든 그릇에 뿌렸느니라

(9:22)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예수님의 죽음과 인간의 죽음은 경쟁관계에 있습니다. 인간은 오실 예수님의 비유입니다. 즉 인간은 예수님의 모형입니다. 모형은 실체가 아니라는 겁니다. 그런데도 인간들은 모든 의미의 최종성을 자기에게 둡니다. 모든 가치는 자기에게 와서 마감을 짓습니다. 그리고서는 자기 죽음에 애도합니다.

하지만 인간은 자기 죽음에 애도할 가치도 없습니다. 인간의 죽음은 예수님 죽음의 한시적 모형에 불과합니다. 인간의 죽음이 사실적이고 실제적이 아니라 예수님의 죽음이 사실적이고 실제적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죽음에 의해서만 인간이 왜 꼭 죽어야 하는 그 이유가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피로서 모든 것을 덮혀버렸습니다. 모든 인간들은 결국에는 ‘하나님의 피흘리심’의 의의만 드러내기 위해 움직일 뿐입니다. 인간들은 지금도 부지런히 생각하고 행동을 합니다. 그들은 주장하기를, 이러한 자신의 생각과 움직임은 자신의 양심에 입각해서 나온 것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양심이란 자기로부터 출발하기에 옳고 그름의 판정을 본인이 내리게 마련입니다. 즉 ‘양심에 비추어볼 때, 내가 옳다면 옳은 것이고 내가 그르다면 그른 것이다’는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특별히 이스라엘에게 율법을 주시므로서 이스라엘 외의 사람들이 자신들의 행동 규범으로 삼는 그 토대 자체를 율법으로 바꿔야 함을 지적하십니다.

율법은 하늘에서 오셨습니다. 따라서 율법의 준수 여부나 율법에 의해서 바르고, 그리다하는 것은 율법을 지킨 그 당사자가 마감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서 마감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에 율법을 온전하게 지키지 못할 경우에 어떻게 될까요? 그 내용을 마태복음 5장에 나옵니다.

거기에 예수님께서 율법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운을 떼십니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마 5:17-18)

그리고 이 율법 체계의 결과를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예시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너를 송사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화하라 그 송사하는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내어주고 재판관이 관예에게 내어주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호리라도 남김이 없이 다 갚기 전에는 결단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마 5:23-26)

즉 지옥의 실제성은 율법의 실제성으로만 설명이 된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처럼 온전하고 완벽하게 율법을 다 지키지 아니하면 가차없이 지옥행입니다. 그것은 율법의 온전한 의미 달성을 위해 필연적 조치인 것습니다. 그냥 인간 사정 봐달라고 하면서 대충 넘어가는 일은 없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조치는 이미 하나님편에서 일방적으로 확정난 사실입니다. 율법이 제공할 때부터 이 내용이 율법 안에 들어 있습니다. 출애굽기 24장에서 모든 율법을 온 백성들에게 들려주고 제단에서 번제와 화목제를 드립니다. 백성들은 그냥 관람객이요 구경꾼에 해당됩니다. 그들은 장단 맞춰주는 식으로 ‘율법을 준행하겠나이’라고 합창할 뿐입니다.

그런데 그 현장에서 모세는 사람들이 예상 못한 일을 추가적 행위를 벌립니다. 그것이 발고 백성들 머리 위에서 제물의 피를 뿌리시는 겁니다. “모세가 피를 취하여 반은 양푼에 담고 반은 단에 뿌리고 언약서를 가져 백성에게 낭독하여 들리매 그들이 가로되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 모세가 그 피를 취하여 백성에게 뿌려 가로되 이는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에 대하여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피니라”(출 24:6-8)

당연히 피 범벅이 됩니다. 이 하나님 이벤트의 취지는 이러합니다. 인간들이 아무리 큰 소리쳐도 결국 인간은 율법을 위반하게 되는 족속에 불과하다는 겁니다. 희생물의 죽음처럼 너희들이 이 죽음 속으로 들어와야만 언약 속으로 들어올 수 있다는 겁니다. 이로서 하나님 보시기에 전 인류는 ‘피 속에 있는 인간’과 ‘피 밖의 인간’ 둘로 나뉘어지는 겁니다.

인간들의 자기 양심으로 버티는 자들은, 자신의 모든 의미를 무효화하고 일괄적으로 무의미로 바꾸게 하는 피에 대해서 강하게 반발합니다. 평생에 걸쳐 지겹도록 공격해 댑니다. 피 밖에 있어야 여전히 자기 존재의 의미가 자기쪽에서 유지된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 입장에서 인간은 아담과 같이 예수님의 모형이기에 결코 그 자체로 가치를 지닌 실체가 될 수 없다는 겁니다.

모든 인간의 죽음은 예수님의 죽음과 대비되어 그동안 육신으로 살아온 것의 종말입니다. 인간이 산다는 것은 ‘육신’으로 살아온 겁니다. 결코 영적으로 살아온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쫓는 것은 예수님을 이용하기 위해서입니다.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으로 사람들은 예수님을 요청했습니다.(요 6:26)

주님은 다음과 같이 그들을 지적했습니다.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치신 자니라”(요 6:27) 사람들은 모세처럼 하늘의 만나가 오기를 원했지만 조상들이 만나 먹고도 죽은 것을 거론하시면서 예수님 자신이 ‘하늘에서 오신 생명의 떡’이라고 하십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떠났습니다. 마태복음 12:31-32에 다음과 같은 말씀이 나옵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훼방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훼방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

인간은 아담의 본성상 예수님을 거역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 절차를 빼버리고 예수님을 믿는 것이 거짓된 믿음입니다. 육신의 어쩔 수 없는 무가치함을 충분히 감사하고 고마워하는 것이 바로 ‘오직 하나님의 피’만을 반영하는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참으로 값이 주는 것이 영생이면 성도는 강제로 이 영생 안으로 들어가게끔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12제자의 복된 운명이었습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그동안 몰랐던 우리 모습을 알게 하시고 나의 죽음마저 하나님이 행하신 아름다운 일에 해당됨을 알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