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과 믿음
(442강/443강) 230905 본문
녹취:이하림
442강-YouTube강의(잠 창세기 2:21)20230905-이 근호 목사
제442강, ‘잠’. 잠은 인간의 모든 솜씨와 자기 잠재력, 자기 의지, 자기 주특기 모든 걸 하나님께서 단절시키는 겁니다. 하나님이 하는 일에 침범되지 못하도록 조치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잠을 주시는 겁니다.
잠을 안 잘 때는 펄펄 살아있어요. 펄펄 살았다는 말은 나름대로 자기의 포부 있고 계획이 있고 기대 있고 뭐 할 일들이 많이 있죠. 그런데 그런 가운데도 스르르 잠이 온다. 잠이 오면 자신이 하고자하는 일이 중지될 수밖에 없어요. 진척이 안되죠. 잠자고 있으니까.
그래서 하나님께서 인간하고 협의해서 일하시는 것이 아니고, 인간을 잠재우고 그렇게 해서 인간이 그다음 일에 대해서 관여 못하도록 강제로 끊어버리는 작용이 잠입니다. 낮잠도 자지만 보통 잠을 밤에 자죠. 밤에 자고 나면 새날이 옵니다. 새로운 날을 하나님께서 준비해주셨습니다.
그날 염려는 그날 하고 내일 염려는 내일 가서 하라. 이게 단절이잖아요. 지금 잠이라는 그러한 절차를 네가 일방적으로 점프하지 말라 이 말이죠. 하나님이 잠을 준다는 것은 네 일에 대해서 네가 관여할 자격이 없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잠을 주시는 것은 사랑의 표시입니다. 사랑하는 자에게 잠을 주신다는 시편 127편 2절의 말씀처럼 이 세상 되어가는 일에 대해서 네가 주인공으로 설쳐댈 입장이 못 된다는 겁니다.
그런데 내일 일을 오늘 미리 걱정하게 되면 잠이 옵니까, 안 옵니까? 잠이 안 오죠. 잠이 안 온다는 것은 인간에게 고통이에요. 쓸데없이 걱정하고 쓸데없이 고통하는 거예요. 잠을 잔다는 것은 하나님께 본인이 맡기든 안 맡기든 하나님이 인간에게 계속해서 작용하고 있다는 뜻이거든요, 잠을 준다는 것은.
나 잠자고 나서 내일 열심히 일해야지, 이건 자기 계획이라도 하나님이 잠을 주지 아니하면 내일 일하는데 힘들게 되겠죠. 그래서 잠이라 하는 것은 인간의 행동을 단절시키는 거예요. 끊어내는 겁니다. 그리고 끊어내고 난 뒤에 인간으로 하여금 내가 열심히 해서 이만한 성과 얻었다는 이야기를 하지 못하게 만들어요.
창세기 28장 11절에 보면 야곱이 잠을 잡니다. 야곱이 잠을 자는데 잠잘 때 하나님께서 꿈에 사다리가 나타나게 하고 천사가 거길 오르락내리락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야곱이 잠들기 전에 ‘아, 사다리 꿈꿔야 되겠다. 사다리가 심심하면 안되니까 천사를 오르락내리락하게 해야 되겠다.’ 그런 것을 미리 예상했습니까? 예상 안했죠.
인간이 예상 못한 일이 벌어졌다는 말은, ‘그것뿐만 아니고 모든 일어나는 일에 인간의 예상이 섞이지 않았다. 인간의 의도가 섞이지 않는 일을 주께서 일방적으로 하셨다.’ 라고 이야기할 수가 있습니다.
쉽게 말해서 인간에게 잠이 있다는 말은 이 현실에서 되어지는 모든 일은 인간하고 상관없이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주신 것이라는 뜻입니다. 아담이 자기 아내를 만들려고 생각한 적이 없어요. 아담은 아담으로서 끝이에요. 인간으로서는 끝이란 말이죠.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담을 잠들게 했죠. 잠들게 해놓고 그다음에 아담의 갈비뼈를 가지고 하와, 여자를 만들었습니다.
그 여자를 보는 순간, 아담이 자기 권리를 내세울 수가 없죠. 하나님 앞에 아담이 범죄하기 전에 세상에 대한 아담의 태도가 바로 이러해야 돼요.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창 2:23) 막 좋아가지고 노래를 안 부를 수가 없어요. 좋아서. 왜 좋으냐? 내가 예상 안했거든요. 그냥 선물이에요. 그냥 주신 거예요.
아담과 하와 사이에 뭐가 있다? 잠이 있는 겁니다. 단절이 있었던 겁니다. 이것은 아담이 ‘잠 자야지’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잠들게 하신 거예요. 하나님의 개입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모든 개입은 “너 그만 살아라. 네가 나설 일이 아니야!” 라는 것을 강하게 언질 주실 때 인간에게 잠을 주시죠.
인간에게 매일같이 잠을 주신다는 말은 이 세상 되어지는 모든 절차가 인간의 관여 없이 하나님의 일방적인 개입으로 진행된다고 보시면 돼요. 하나님이 주신 잠의 취지도 모르고 인간은 잠들면서까지 내일 걱정하고 자기 과거에 연연하고 그렇게 살죠.
그러니까 인간이 범죄하고 난 뒤에는 얼마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못미더워하는지, 마음에 안 들어 하는지, 잠을 못 이루면서까지 자기 계획한 것만 우기며 억지 부리고 있는 거예요. 산다는 게 참 억지에요. 잠 못 이루는 밤, 맨날 이러고 있죠.
창세기 41장 5절에 보면 바로 왕이 있는데 잠을 못 잤어요. 잠을 못 잤는데 거기서 꿈에 나타나죠. “다시 잠이 들어 꿈을 꾸니 한 줄기에 무성하고 충실한 일곱 이삭이 나오고”
그러니까 바로 왕까지 하나님께서 깊숙하게 개입해서 바로 왕 잘 되라 한 것이 아니고 미리 어린 요셉에게 꿈을 줬잖아요. 그 꿈이 곧 현실입니다. 요셉에게 주어진 그 꿈이 그냥 현실로 실현되는 거예요. 구체화되는 겁니다, 현실이. 요셉에게 준 꿈이 하나님 약속이라면 이 세상은 하나님의 약속대로만 움직이게 되는 겁니다.
이 비슷한 예가 바로 에스더 6장 1절에 보면 에스더가 위기에 봉착했을 때 하나님께서 아하수에로 왕에게 잠을 자게 합니다. 그리고 거기서 갑자기 잠을 자게 했는데 잠이 안 왔죠. 뒤적뒤적 옛날 궁정 일기장을 보는데 거기에 모르드개가 자기한테 공을 세운 게 나타나죠.
그러니까 이것은 뭐냐 하면 잠들 시간에 하나님께서 유다나라, 유다나라는 언약입니다, 언약의 백성을 하나님께서 기어이 유지하기 위해서 통치자 왕의 잠까지 하나님께서는 관여하시고 조정하시는 거예요.
그렇게 보게 되면 잠자는 시간이 그냥 휴식시간이 아니에요. 하나님의 강제조치 속에 우리가 놓여있다는 즐거운 시간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표현하면 좋아요. 잠자는 시간이 오늘로 내 수명은 끝나는 순간이다. 잠이 깰지 내일 다시 살아있는지 그 몫은 우리 인간이 거기까지 관여할 필요가 없는 겁니다.
잠을 주셨다는 것을, 그냥 ‘모든 동물은 뭐 잠을 자는데’ 하고 당연시여기지 말고 잠이라는 것, 오늘로서는 오늘로 끝내고 내일 하나님께서 따로 준비한 게 있다면 내일도 주님께서 개입하시겠죠.
그럼 끝으로 잠만 개입했을까요, 잠자고 난 뒤 그 다음날도 개입하시겠습니까? 역시 그 다음날도죠. 밤에도 개입했지만, 낮에도 하나님께서 개입하지 않으신 적이 없다는 것을 잠 푹 주무시고 주님의 손길을 느끼시고 하루 종일 주님의 손길 속에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443강-YouTube강의(여행 사도행전 16:6)20230905-이 근호 목사
제443강, ‘여행’. 사람들에게 있어 여행이란 자기의 견문을 넓히기 위한 어떤 희망사항 같은 겁니다. 사람이 한 자리에서 또는 한 집에서 한 직장에서 오랫동안 근무하게 되면 답답함을 느끼게 돼요. 왜냐하면 만나는 사람, 보는 풍경, 오가는 길의 모든 모습들이 식상하게 됩니다. 지루해져요. 참신함이 없고. 안일에 빠질 것 같은 느낌이 들죠.
그래서 인간들은 근본적으로 변화를 원하는데 나쁘게 되는 변화 말고 좋게 되고 새롭게 되는 변화를 인간은 찾게 됩니다. 인간의 기본 욕망이 그래요. 뭔가 새로운 것에 대해서 매료되고 싶은 겁니다.
그러니까 어릴 때부터 인간은 그렇지만 이 세상 전체가 매혹덩어리에요. 나의 욕망, 나의 욕구를 자극해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의 속마음은 이래요. 소원이 뭐냐? 옛날에는 대통령, 국회의원, 의사, 판사 이렇게 이야기하지만 좀 세련된 애들은 ‘소원이 뭐냐?’ 하면 ‘원 없이 세계 여행을 다니는 것이다. 뭐 마음먹으면 달까지 여행하고 화성까지라도 여행하고 싶다.’ 라고 자기 포부를 이야기해요.
그러면 자기 인생의 목적이 얼추 성립됐죠. 목표가 설정되게 되면 그다음부터는 자기 하는 일에 의미가 주어집니다. ‘내가 이 일을 하는 이유는’ 이렇게 나오는 거예요. 내가 이 일을 힘들어도 하는 이유는 돈 많이 벌어서 세계 여행을 하고 싶어서라는 거예요.
그런 생각을 왜 하느냐 하면 어릴 때 책들을 많이 보잖아요. 그런 책들 보면 신기한 나라, 온갖 나라들이 많이 나오잖아요. 갑자기 신밧드 모험가가 되고 싶은 겁니다. 그게 어린아이한테는 새로운 매료덩어리, 매혹덩어리에요. 매혹.
연세가 많은 사람들에게 ‘어머니, 이번에 구순이니까, 넉넉하게 잡읍시다, 구순이니까 비행기 타고 제주도 여행 한번 시켜드릴게요.’ 하면 좋아합니까, 아니면 말립니까? 말리죠. 안 가려하죠. 왜냐하면 여행의 필수조건이 자기 몸 하나는 자기가 건사해야 된다는 조건인데 연세 많은 사람은 자기 몸이 건사가 안돼요.
그러니까 어린아이들이 이다음에 돈을 많이 벌어서 해외여행 간다는 것은 무엇을 감안하지 않았어요? 자기 몸이 튼튼하다는 바탕을 당연한 걸로 깔고 여행 간다 하죠. 자, 그러면 해외여행을 많이 다녔다 합시다. 다니게 되게 되면 영화로 보든지 동영상 보는 것 말고 실감나겠죠. 그 현지에서 생활하니까.
그렇게 되면 새로움이 있어요. 그 새로움의 좋은 점이 뭐냐 하면 시간가는 줄 몰라요. ‘어? 시간이 벌써 이만큼 됐어?’ 후딱 가버리죠. 그걸 ‘보람 있는 시간을 보냈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겁니다. 그런데 그런 여행 말고 늘 왔다갔다 하는 출퇴근 시간이라면 시간 가는 줄 모르는 거예요, 지겨운 거예요? 지겹죠. 왜 지겹냐 하면 예상이 되기 때문에. 가게 되면 또 버스 타면 누구 만나야 될 거고 직장 가면 누구 만날 거고… 아 지겹네. 지겨우면 탈출하고 싶어요, 우리 몸이.
한번 정리해봅시다. 인간은 어릴 때부터 새로움이 있어야 기쁘다. 그 새로움은 어디서 얻는다? 전에 봐놨던 세계 여행, 세계 곳곳을 여행 다니면서 자기 활기, 자기 활력소를 얻으려 하는 겁니다. 사는데 신나게 살고 싶은 거예요. 그러려면 뭐가 필요합니까? 돈이 필요하겠죠. 돈도 필요하지만 기본적으로 안 아파야 되겠죠. 그럼 돈 없는 사람은 해외여행 접어야 되겠죠.
그러면 성령 받은 사도들은 여행을 그런 식으로 했습니까? 자기의 꿈을 펼치기 위해서 어릴 때 신비로움과 신선함, 인생을 즐겁게 사는 그것 때문에 여행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사도행전 16장 6절,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그들이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지 아니하시는지라 무시아를 지나 드로아로 내려갔는데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가로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바울이 이 환상을 본 후에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이렇게 되어 있죠.
사도 바울은 어디로 여행하는가? 천국으로 여행합니다. 천국으로. 천국은 죽어서 가는 데가 아니냐? 아닙니다. 천국은 죽어서도 못가요. 이걸 분명히 아셔야 됩니다. 예수 믿었다. 죽으면 믿었으니까 하나님께서 천국 넣어주겠지? 아닙니다. 천국은 내가 예수 믿는다고 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에요. 천국은 살아있을 동안에 죽기 전에 성령께서 인도를 해줘야 돼요. 성령께서. 성령은 나 말고 다른 분이에요.
아까 제가 길게 이야기한 여행의 즐거움, 뭡니까? 누가 결정한 거예요? 누가 계획한 거예요? 누가 준비한 겁니까? 누구 포부에요? 나죠. 그래서 돈 없으면 여행 접죠. 몸 약하면, 몸 약한 노인네들 제주도 여행가도 접죠. 왜? 뭐를 고려하기 때문에? 젊어서는 다니겠지만 늙어서는 여행 못가겠죠. 어쨌든 여행을 가나 못 가나 모든 조건은 어디에 있습니까? 나한테 조건이 있어야 되죠.
그러나 천국은 그렇게 가는 게 아니에요. 성령께서 인도합니다. 사도 바울로 하여금 지금 죽어서 천국가기 전에 성령께서 먼저 들를 곳이 있는데 그게 바로 마게도냐라는 거예요. 그 전까지는 지금의 터키, 아시아라 했거든요, 지금 같으면 터키, 튀르키예라 하죠, 그 동네를 다니다가 이제는 마게도냐 다니고 로마 가서 그다음은 드디어 영원한 예수님의 품, 천국에 가는 거예요.
사전에 사도 바울이 천국 가기위해 준비할 필요가 없어요. 천국 가는 준비를 내가 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무리 준비해도 안 넣어줍니다. 갈 수가 없어요. 왜냐하면 천국을 만드신 분이 예수님이에요. 그러면 천국 가려면 그 예수님의 영이 임해야 천국에 갑니다. 성령이 임한 결과가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에요. 그걸 은사, 영원한 은사라 하는 겁니다.
그럼 정말 구원받은 사람은 자기 계획, 자기 포부를 내놓겠습니까, 아니면 성령의 계획을 내놓겠습니까? 성령의 계획이겠죠. 그럼 성령의 계획은 우리하고 사전에 의논한 적이 있다, 없다? 없죠.
그렇다면 지금껏 주께서 주의 뜻대로 인도했던 것처럼 오늘도 내일도 주의 뜻대로 인도하게 되면, 그것이 내 뜻대로 안된다고 짜증을 낼 일이 아니고 ‘아, 이 골목 가서 이 코스로 가서 이렇게 해서 주께서는 천국으로 데려가려고 성령께서 매일같이 인도하시는구나.’ 그게 매일 삶의 고백으로서 나오면 그게 바로 성도의 삶입니다.
그냥 천국 가려고 했는데 한 달 전에 우리 어머니 돌아가셔서 장례 치르고. 그럼 내가 장례 치르고 하는 것도 천국 가는 코스에요. 하늘에서 주께서 성령께서 그렇게 그 사태를 사건을 유발했으니까요.
그냥 다 놔두고 천국가고 싶은데 둘째 또 아프네. 애들이 또 백두산 수학여행 간다하네. 그럼 또 돈 벌어야죠. 돈 버는 코스는 누가 정한 거예요? 성령께서 하신 거예요. 그게 고백이에요. 나 뭐했어? 성령께서 돈 벌라 했어. 왜? 뭐 지금껏 성령께서 인도했는데 앞으로도 그렇게 인도해.
가기 전에 이것저것 구경하고. 그게 바로 주님의 계획 안에 있는 오늘날 성도의 여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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