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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 믿음

스가랴 2:1-5 / 혜택 본문

구약 설교, 강의(이근호)/스가랴

스가랴 2:1-5 / 혜택

정인순 2023. 10. 5. 17:52

음성 동영상 Youtube

혜택 

 

이근호
2023년 8월 23일                       

 

본문 말씀 : 스가랴 2:1-5

(2:1) 내가 또 눈을 들어 본즉 한 사람이 척량줄을 그 손에 잡았기로

(2:2) 네가 어디로 가느냐 물은즉 내게 대답하되 예루살렘을 척량하여 그 장광을 보고자 하노라 할 때에

(2:3) 내게 말하는 천사가 나가매 다른 천사가 나와서 그를 맞으며

(2:4) 이르되 너는 달려가서 그 소년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예루살렘에 사람이 거하리니 그 가운데 사람과 육축이 많으므로 그것이 성곽없는 촌락과 같으리라

(2:5)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그 사면에서 불 성곽이 되며 그 가운데서 영광이 되리라

인간이 거주하는 마을 성곽은 외부 공격에 방어시설입니다. 이는 지킬만한 내부를 지키기 위해 외부에 대해 방비해야 하는 취지입니다. 하지만 천사에 의해서 새로 지어지는 예루살렘은 외부 성곽이 없습니다. 도리어 내부가 불덩어리가 되어 외부에서 그 어떤 적이 온다할지라도 충분히 마음을 방어할 수 있는 도시가 된다는 겁니다.

이것은 그동안 이스라엘에서 성전이 불탄 이유가 외부의 적이 강해서가 아니라 이스라엘 내부에 문제가 있었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이스라엘 내부을 바꾸는데 있어 더는 인간이 나서지 못합니다. 인간 손에 맡기지 않습니다. 즉 인간의 구원을 인간들의 자생력으로 성사되도록 하지 않으신다는 말입니다.

새로운 성전의 척량은 천사에게 맡겨져 있습니다. 심지어 선지자 스가랴가 나서서 성전을 만들 수도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하나님께서는 다시 예루살렘에 돌아온 사람들에게 성전을 개축하라고 지시를 내리는 이유는 뭘까요? 즉 사람들 보기에 실제로 인간들의 손과 노력에 의해서 성전이 개축되면서도 천사에 의해서 만들어진다는 것이 무슨 뜻일까요?

여기서 우리는 성전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해 봐야 합니다. 성전은 유일하게 이스라엘 민족에게만 주어진 겁니다. 이스라엘에게 특별한 외부의 세계가 찾아든 겁니다. 모세 때는 시내산을 통해서 율법이 주어졌습니다. 그 전에 야곱의 경우에는 외부의 세계가 어떻게 찾아들었을까요?

창세기 28:12-13에 보면,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섰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가 그 위에서 오르락 내리락하고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가라사대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윗 세계와 아랫 세계, 두 개의 세계가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 세계를 왕래하는 것은 오직 천사들 뿐입니다. 그리고 그 천사가 오가는 사다리 위에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이 천사들은 내려오기만 하는 게 아닙니다. ‘오르락 내리락’ 합니다. 곧 야곱에게 내려진 언약을 구체적으로 실현시키는 담당자들입니다.

이렇게 되면 최종 상태의 세계에서는 두 개의 육신과 두 개의 자아와 두 개의 세계가 형성되었다는 말입니다. 이스라엘에게는 이 외부 세계가 유일하게 일찍 온 나라입니다. 야곱 이전에는 노아가 있었습니다. 노아 당시의 사람들은 그저 단일 세계 주민으로 사는데 충실했습니다.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사고 팔고, 이것이 그들 일상의 전부였습니다.

그런 세계가 홍수 심판으로 모조리 물이 다 잠겨서 몰살하고 말았습니다. 노아 가족도 망망대해 안에서 벗어날 수 없기에 심판 속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창세기 8:11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저녁때에 비둘기가 그에게로 돌아왔는데 그 입에 감람 새 잎사귀가 있는지라 이에 노아가 땅에 물이 감한 줄 알았으며”

사방에 둘러봐도 망망대해 뿐이기에 그 어디에 감람나무가 자라고 있는 그런 세계가 있음을 노아라 할지라도 감히 상상도 못했습니다. 비둘기가 입에 새 감람나무 잎사귀를 물고 오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이제 노아는 기존 세계말고 새로운 세상에 적합한 육신과 자아를 갖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천사가 활동을 하는 이유는, 인간의 내부는 인간의 손에 의해서 개선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심판받고 있는 내부로서는 거기에 새로움이 등장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내부에 새로운 인종을 생산코자 하는 겁니다. 새로운 외부가 이 내부를 찾아들어야 합니다.

이사야 7:14에 보면,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고 되어 있습니다. 아에 출생부터 새로 시작하시려는 겁니다. 그래야지만 진정한 ‘임마누엘’ 즉 하나님과 참 백성이 함께 할 수가 있습니다.

이 새로움으로 인해 기존의 자아나 육신이나 세계는 마땅히 철거되어야 합니다. 새로운 내부가 불덩어리로 작용하여 기존의 모든 것들을 불사르게 됩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내부를 직접 공략하시는 겁니까? 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고, 열심히 하라고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천사에게 그 일을 맡기는 겁니까?

그것은 기존의 모든 인간들이 이마 보이지 않는 악마에게 마음 내부가 점령당했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모르고 사람들은 그저 인간들의 역량으로 역사가 굴러간다고 여깁니다. 이사야 14:12-14에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별 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좌정하리라 )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 하도다”

분명히 이 말씀은 그당시 최고 제국인 바벨론보고 하는 이야기하고 합니다. 하지만 인간은 껍질에 불과합니다. 이 껍질이 외부 형상으로 나타나지만 속은 악한 천사가 들어있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 말씀으로 압력을 가해 내부의 본질을 밝혀주시는 겁니다. 에스겔 28:14-17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너는 기름 부음을 받은 덮는 그룹임이여 내가 너를 세우매 네가 하나님의 성산에 있어서 화광석 사이에 왕래하였었도다 네가 지음을 받던 날로부터 네 모든 길에 완전하더니 마침내 불의가 드러났도다 네 무역이 풍성하므로 네 가운데 강포가 가득하여 네가 범죄하였도다 너 덮는 그룹아 그러므로 내가 너를 더럽게 여겨 하나님의 산에서 쫓아 내었고 화광석 사이에서 멸하였도다 네가 아름다우므로 마음이 교만하였으며 네가 영화로우므로 네 지혜를 더럽혔음이여 내가 너를 땅에 던져 열왕 앞에 두어 그들의 구경거리가 되게 하였도다”

이 말씀은 역사적으로 두로 왕에게 한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그 속에는 악마의 속성이 담겨 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새로움을 인간 마음 속으로 찾아듭니다. 누가복음 11:40에, “어리석은 자들아 밖을 만드신 이가 속도 만들지 아니하셨느냐”라고 되어 있습니다. 새로움을 만드시는 방식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다가 천국의 나라, 곧 부활의 세계를 만드시는 그 경로를 따릅니다.

따라서 성령께서 이 예수님의 경로를 따라 매일같이 들락달락하십니다. 날마다 최후의 날이 되게 하시고 나라다 새로운 날이 되게 하십니다. 천국과 지옥에 합당한 자아와 육신을 친히 만들어내십니다. 이것이 바로 성전, 곧 그 속에 거룩한 제물이 죽으시는 그 혜택으로 인하여 새로운 예루살렘을 친히 만들어내십니다.

악마는 모든 것을 자기 소유로 삼습니다. 하지만 성령께서는 주님의 혜택으로 삼습니다. 따라서 성도는 더는 기존의 자기의 모든 것이 죽음 형식으로 회수당하고 새로움으로 교체됩니다. “겉 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고후 4:16)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혜택의 결과물로 살기에 더는 마치 우리 자신이 우리 것인양 여겨 하게 되는 그 걱정이나 근심에서 벗어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