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ice
Recent Posts
Recent Comments
Link
«   2025/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Tags
more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복음과 믿음

스가랴 1:7-11 / 침몰하는 세상 본문

구약 설교, 강의(이근호)/스가랴

스가랴 1:7-11 / 침몰하는 세상

정인순 2023. 10. 4. 17:05

음성 동영상 Youtube

침몰하는 세상 

 

이근호
2023년 8월 2일             

 

본문 말씀: 스가랴 1:7-11

(1:7) 다리오 왕 이년 십일월 곧 스밧월 이십사일에 잇도의 손자 베레갸의 아들 선지자 스가랴에게 여호와의 말씀이 임하여 이르시니라


(1:8) 내가 밤에 보니 사람이 홍마를 타고 골짜기 속 화석류나무 사이에 섰고 그 뒤에는 홍마와 자마와 백마가 있기로

(1:9) 내가 가로되 내 주여 이들이 무엇이니이까 내게 말하는 천사가 내게 이르되 이들이 무엇인지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매

(1:10) 화석류나무 사이에 선 자가 대답하여 가로되 이는 여호와께서 땅에 두루 다니라고 보내신 자들이니라

(1:11) 그들이 화석류나무 사이에 선 여호와의 사자에게 고하되 우리가 땅에 두루 다녀보니 온 땅이 평안하여 정온하더이다

공간적으로 천사가 사는 세상과 이 세상과 차이나지만 시간적으로도 차이납니다. 시간상으로도 이 세상은 더는 인간들에 의해서 꾸려갈 수 없는 형편입니다. 즉 이 자연세상은 인간의 의도대로 움직여지는 현실이 아니라 천사가 하나님의 지시에 의해서 다루어지는 대상으로서의 자연입니다.

곧 자연은 이제 다 무너질 날만이 찾아옵니다. 하나님께서 이 대자연을 뭉개기 위해 천사를 이 땅의 세계에 파견시켰습니다. 선지자는 하늘의 말씀만을 듣고 전하는 자가 아니라 실제로 천사와 대화하는 그런 공간에 놓여진 존재입니다. 천사들은 세상 구석구석 다니면서 모든 것을 파괴할 기능을 행사하는 피조물입니다.

마치 히브리인들이 애굽에서 나올 때에 일어난 일, 곧 애굽나라의 모든 장자를 다 죽이던 그 냉혹함을 적용시키는 그 기능을 실시하던 자들도 천사입니다. 이는 곧 이 인간 세상이 의지하는 이 땅의 세계에서 대해서 하나님께서 애초부터 기대를 갖고 계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땅에서 풀풀 일어나는 그 저주를 인간은 감당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이 땅 위에서 사는 인간이 이 대자연 외에는 달리 의지할 곳이 없습니다. 대자연이 원리에 준해서 목숨을 버티듯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 이 대자연을 하나님께서 뭉개버리려고 하십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및 이방민족의 범죄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떠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떠난 이 세상에 대한 남은 조치는 다 불에 태어버리는 것 외에 없습니다. 이러한 천사 활동의 배후에는 예수님이 계십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의 왕이십니다. 비록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왕되심을 버렸지만 ‘하나님의 백성’을 만들어 내셔야 되는 왕으로 업무는 중단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천사를 보내어 땅의 형편을 살피려 보내신 겁니다.

‘성전을 지어라’는 지시를 여호수아와 스룹바벨을 통해서 전달했는데 과연 그 지시한 대로 이 땅에 성전을 짓고 있는지를 보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대자연이나 인간보다 성전이 우선입니다. 성전은 하나님 자신이 사람과 만나는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스가랴 선지자는, 일반인들이 알고 있는 현실과 더 초과는 현실을 보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선지자가 본 것을 ‘환상’이라고 묘사합니다. 하지만 ‘환상’이 아닙니다. 도리어 참된 현실이 그곳 뿐입니다. 인간들은 자연 전체를 가지고 현실이라는 것이 환상입니다. 거기에는 ‘천사와 및 활동’이 빠져 있기 때문입니다. 선지자는 하늘에서 보는 땅의 형편과 땅에서 보는 하늘의 형편, 둘 다를 알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차가운 거울, 두꺼운 얼음으로 꽁꽁 덮혀 있는 호수에는 거울 낚시하다가 얼음이 깨어져 빠졌다고 칩시다. 밖에서는 물에 빠진 자를 찾고자 하지만 두꺼운 얼음판 때문에 정확하게 소재를 파아되지 못합니다. 반면에 물에 빠진 당사자는 얼음장 위에서 자신을 찾고 있음을 알아도 자신이 다시 얼음 위에 올라설 수 있는 구멍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이 역사 속에 ‘천사’가 내려옴으로서 이 대자연은 자체적으로 하늘나라와 막혀있고 땅의 세계에 갇혀 있는 형편임이 들통나게 된 겁니다. 대자연 안에서 파악되는 이 현실 세계에서 아무리 몸부림치고 온갖 경건한 구색을 갖추어도 인간은 이 대자연 세계에서 빠져 나갈 구멍은 없습니다.

그저 천사의 기능을 따라 대자연과 더불어 망해야 합니다. 인간이 바르게 사는 것과 선하게 산다고 해서 이 세상 밖에 있는 천국 현실로 들어설 수 없습니다. 인격이나 인품이나 재산과 지식이나 그 어떤 조건도 통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신자나 불신자 가리지 않고 대자연과 더불어 무너져야 합니다.

인간이 운이 없어 죽는 게 아닙니다. 인간에게는 운 자체가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한 천사와 말은 화석류, 즉 척박한 환경을 뜻합니다. 바위산에 간신히 피어나는 꽃과 같이 이 세상은 하늘나라에서 볼 때에 이미 황량해야만 하는 공간입니다. 마땅히 침몰하는 거대한 여객선 같은 운명입니다.

이런 세상에서 일을 해야 하는 기능적 천사는 말을 탑니다. 이는 인간 세계와 천사의 세계 사이에 격차를 드러냅니다. 간격이 유지되어야 합니다. 친히 불태우고 기근이 있게 하고 전쟁이 있게 하고 오염으로 세계가 무너지는 그 일을 있게 하는 천사는 땅의 존재가 아니라는 점을 말 타는 천사로 묘사됩니다.

그렇다면 성도가 알아야 할 것인, 이 대자연 세계가 마땅히 무너지고 망하고 불태워져야 하는 정당성이 무엇인가입니다. 마태복음 5:17-18에 보면,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율법과 선지자의 말씀대로 예수님께서는 온전하게 인간들을 죽이십니다. 인간들이 온전히 지켜서 하늘나라로 빠져 나갈 수 있는게 아닙니다. 이미 종말에 들어섰기에 인간은 자체 노력으로 대자연으로 살릴 방안이 없습니다. 땅과 그리고 땅의 저주와 더불어 모든 인간이 다 같이 무너져야 합니다.

그렇다면 누가 주의 백성이 되는겁니까? 마태복음 8장에 보면 저주받은 문둥병자가 등장합니다. 이 자는 율법이나 선지자나 산상설교를 다 지켜서 깨끗함을 받은 자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의 그의 죄를 대신 담당하시므로서 문둥병자는 온전하게 되었습니다. 곧 예수님의 피입니다.

구약 때, 이스라엘 민족에 있어 약속의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었습니다. 그 땅에 하나님의 성전이 세워졌습니다. 하지만 신약에서의 생명을 주는 젖은 예수님의 피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상하신 성전은 예수님의 피를 수유하는 수유실 건립입니다. 얼음 밑의 공간에서 천사가 사는 공간으로 나오는 유일한 통로는 예수님 피 뿐입니다.

피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습니다. 이 피 제공에서 인간의 공로, 즉 땅의 일이 개입하는 것을 차단해서 오로지 하늘의 일로만 성사됨을 알리는 식으로 주님께서 성도를 다루십니다. 세상의 침몰성이 다급하지만 귀하디 귀한 예수님의 피를 개나 돼지 같은 인간에게는 줄 수가 없습니다(마 7:6). 따라서 성도는 복음을 전하는 자신보다 예수님의 피가 우선이고 핵심이고 소중함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기묘하기 짝이 없는 현실 앞에서 우리의 현실관을 늘 무너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구약 설교, 강의(이근호) > 스가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가랴 1:18-21 / 뿔  (0) 2023.10.05
스가랴 1:12-17 / 70년  (0) 2023.10.05
스가랴 1:4-6 / 열조  (0) 2023.10.04
스가랴 1:1-3 / 자아 주(酒)  (0) 2023.10.03
스가랴 14:20 / 죽음의 노예 / 221013  (0) 2022.1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