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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 믿음

신약의 시작 210606 본문

주일학교 설교(이근호)/주일학교 설교

신약의 시작 210606

정인순 2021. 6. 6. 13:44

음성

신약의 시작 210606

 

설교:이근호

녹취:정인순

 

드디어 구약이 끝났습니다. 구약과 신약의 차이점은 구약은 이스라엘이라는 나라 범위 안에서 이루어지는 게 구약이에요. 하나님께서는 없는 나라 이스라엘을 만드시고, 하늘나라가 이스라엘이 없는 것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은 없는 것을 말하고, 이스라엘이 만들어진 것은 하나님이 실제로 살아 계시다는 것을, 그리고 이 세상에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 이스라엘 나라를 만든 거예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만듦으로서 실제로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천지를 창조하신 분이 계시고 이스라엘을 구원하고자 함으로서 하나님께서 구원하겠다는 의사가 있음을 분명히 이스라엘을 통해서 이야기했어요.

 

구원하는 방법은 뭐냐 하면 이스라엘 내부에 어린 양의 죽음을, 피 흘림을 반복시키는 거예요. 그게 바로 제사 중심의 나라입니다. 왕이 없어요. 왕이 필요치 않아요. 누구 인간이 인간을 다스리는 게 필요치 않습니다. 죽음이 인간을 다스리는 겁니다. 그 죽음이 속에 있기 때문에 그 죽음이 거룩한 하나님의 죽음이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들을 살려내는 동력이 돼요. 동력이.

 

그러니까 구약 이스라엘을 통해서 이것을 알아야 되는데 이방민족과 함께 있으면서 인간의 한계를 드러내가지고 죽고 난 뒤에 그 문제는 그 문제고 살아있을 동안에 저 민족처럼 잘 먹고 잘 살아야 되겠다는 그런 생각이 있어가지고 주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없애버렸어요.

 

자기가 자기 손으로 만든 이스라엘을 없애버렸습니다. 이스라엘을 없애버릴 때 이스라엘을 없앴을 때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없앤 그 현장에 진짜 이스라엘이 그동안 가짜 이스라엘에 가려버렸던 겁니다. 치워버린 거예요. 덮고 있는 이스라엘을 치워버리니까 진짜 이스라엘이 나오는 겁니다.

 

그 이스라엘이 나올 때 어떻게 나오느냐 하면 바로 처음에 이스라엘 할 때 하나님께서 야곱의 아들 열두 지파부터 시작했잖아요. 그래서 예수님은 열두 제자부터 시작하는 겁니다. 12라는 숫자가 의미가 있는 겁니다.

 

어떤 의미가 있느냐 하면, 12라는 숫자는 하나님께서 열둘이 하나로 묶이는 그것이 하나님의 언약의 원칙이 되는 겁니다. 하나의, 아브라함도 하나, 이삭도 하나, 야곱도 하나인데 그때부터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갑자기 열두 개가 확 생산되는 겁니다. 열두 개가 쫙 스파이더맨 거미줄 나오는 것처럼 쫙 퍼져 나오는 겁니다.

 

그 열두 지파가 있음으로서 하나님께서는 열둘 안에서 통합하는 일을 하시는 거예요. 그렇게 되면 열두 지파 어느 지파도 대장질 못하니까 대장을 없애는 방법이 열두 지파를 똑같이 대우하는 겁니다. 마찬가지로 열두 제자 두고서 자기는 떠나버리죠. 남아있는 열두 제자가 어느 누구가 대장질 못 하게 만들고 떠나 버려요.

 

오늘날 교회도 성도들이 있고 성도들 위에는 주님이 직접 통치하기 때문에 어느 인간이 어느 인간을 지배하거나 간섭하거나 관리하지 못 하는 체제가 되어야 돼요. 교회라는 게. 주의 사자 으르릉 나오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없애놨을 때에 인간들은 그 없어지는 것이 안타까워서 그 이스라엘을 붙잡는 거예요. 붙잡는데 다 못 붙잡고 모퉁이만 붙잡는데 그 모퉁이가 유다 지파고 그 유다 지파가 언젠가 이스라엘을 마저 채울 것이라 해서 그 이름을 유대 나라로 지은 겁니다. 유대 나라.

 

이스라엘에서 뭐라 바뀌었느냐? 유대 나라가 된 이유가 그나마도 모퉁이라도 있어야 나중에 모자이크 그림이 마저 형성되지 않겠느냐 해서 우리 지파를 쥐자 해서 쥔 겁니다. 그래서 그들은 유다 지파에서 메시아가 오게 되면 이스라엘은 다시 원상 본 그림이 나타난다, 그런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로마한테 압제를 받을 때에 압제 받으면서도 메시아가 온다는 희망 하나 가지고 우리 버티자 라고 했는데 버티는 방법이 순 엉터리로 버틴 거예요. 그렇게 버틸 필요도 없는데 그들은 버텼던 겁니다. 예수님이 죽었던 것은 바로 다른 일본 사람한테 죽었거나 북한 사람한테 죽은 게 아니고 중국 사람한테 죽은 게 아니고 바로 유대 사회한테 죽임을 당한 것을 생각해보세요.

 

유대 사회는 인간이 구원받기 위해서 버틴다는 것이 얼마나 마귀적인 노림수고 노력인가 하는 것을 유대 사회를 통해서 십자가와 대비적으로 보여준 겁니다.

 

신약에 오게 되면 기쁜 소식을, 먼저 누가 뜨느냐? 천사가 먼저 떠요. 천사는 국경 없는 의사예요. 인간이 어떤 구역이나 나라 인종이나 국경 그런 것을 그냥 개무시 하고 날아다닙니다. 천사를 말릴 수 있는 인물은 없어요. 천사는 누구의 지시를 받는가? 사람의 지시를 받지도 않고 나의 지시도 받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이 천사한테 절하니까 천사가 “왜 이러십니까? 저는 심부름꾼인데 내가 당신을 섬겨야 되는데 저한테 절하고 그런 거 하면 안 돼요. 그냥 저는 하나님의 우편 편지를 택배하는 택배기사에 불과합니다. 저보고 그러지 마세요.” 라고 했지요.

 

천사가 등장한 것은 성도가 나중에 천사만큼 그렇게 행동을 해야 된다는 뜻이에요. 가라 하면 가고 오라 하면 오고, 천사처럼 그렇게 되어야 해요.

 

그래서 천사가 기쁜 소식을 전하는데 먼저 메시아부터 먼저 기쁜 소식을 전하는 게 아니고 메시아가 왔다는, 메시아가 드디어 이 시대에 메시아가 왔다는 것을 알려줄 그 인물의 탄생에 대해서 가브리엘 천사 가브리엘이 소식을 전하는데 여기 사가랴라는 제사장과 그 부인이 엘리사벳이라는 부인이 있는데 둘 다 나이가 많아서 이미 애기는 끝났어요. 애기는 못 낳아요. 애기는 불가능함이죠. 불가능한 애기를 못 낳는 상태에서, 이 사람은 불가능함 자체를 몰라요.

 

왜냐하면 애기를 안 낳으면 되니까 애기를 안 낳으면 불가능함도 없어지지요. “애기 한번 낳아보자.” 그러면 그건 불가능에 속하지만 사실을 은근히 노리는 가능성이에요. 그런데 아예 애기를 생각하지 않으니까 이건 불가능도 없고 애기 없는 것이 마땅함인 줄 알고 살아왔지요. 나중에 애기를 낳으니까 자기가 애기 못 낳는 것이 어디에 해당된다? 불가능한 절차와 사건이 자기에게 주어진 것을 아는 겁니다.

 

그래서 항상 성도는 돌이켜보면서 불가능함을 날마다 새롭게 인식할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애기 없는데 애기 있다 하니까 둘이 싱긋이 웃지요. 농담입니까? 농담이 아니고 실제로 애기가 태어나요. 태어났는데. 임신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듣고는 그 동안에 사가랴는 아무소리 말을 못 해요. 이름을 짓는데 이름을 정통적인 이름 말고 요한이라는 이름을 글씨를 자기가 계시 받은 대로 썼습니다. 그래서 이름이 요한이 된 거예요. 아직까지 세례 주는지 그건 나중 문제고 지금 이름은 요한이라는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태어났는데 요한이라는 아이가 엄마 뱃속에서 태어나기 전부터 선지자의 기능을 합니다. 어떻게 하느냐 하면 6개월 후에 일가친척 가운데 엘리사벳 일가친척 가운데서 마리아라는 여자가 있는데요. 마리아는 결혼도 안 한 그냥 처녀예요. 처녀로 사는데 어느 날 배가 불러오면서 임신이 된 거예요. 임신이 되었고 엘리사벳도 6개월 먼저 임신이 되었으니까 엘리사벳이 임신 8개월 9개월 이쪽에 마리아 임신 6개월. 둘이 뚱뚱하게 되어가지고 둘이 만났어요.

 

둘이 만났는데 둘이 가만있는데 배가 뱃속에서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천재야. 태어나지도 않았는데 세례요한 아기가 저쪽이 메시아인 걸 알아봐요. 이게 말이 돼? 보통 말은 지금 어떤 애는 20개월 되도 말을 못해. 15개월 되도 말 못하는 애 있어요. 누구라고 말은 안 하는데. 응응 이런 것만 하지 말을 못해요.

 

태어나기 전부터 주고받고 난리도 아니에요. 메시지 보내고 sns 하고 메시지 보내고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진 거예요. 이건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운명입니다. 내가 존재하고 일을 하는 게 아니고 일이 먼저 있고 그 일을 위해서 내가 태어난 거예요.

 

그 사명, 맡겨진 임무, 이게 아까 천사와 같은 거예요. 성도는 천사와 같아야 돼요. 천사는 자기 고유의 자기 삶의 목표나 목적을 만들지를 않습니다. 왜냐하면 만들면 혼나요. 만들 필요없어요. 다 주께서 지시와 명령에 의해서 움직이면 되는 겁니다. 꼭 여러분 같아요. 내가 말을 잘못했나. 꼭 여러분도 그렇게 살지 않습니까? 누리 엄마 그렇지 않습니까? 여러분들도 자기 목적 없지요? 하루하루 주의 지시받고 살지요? 이름을 가브리엘로 지을까요?

 

그러니까 이 말은 뭐냐 하면 신약 시작부터 뭐냐 하면 이미 구약 이스라엘의 인간들 행세를 봤는데 인간한테는 아무것도 기대할 것이나 미련 둘 여지가 없이 그냥 죄인 중의 괴수들입니다. 인간이 뭘 노력해서 계획해서 하나님께 인정을 받는다? 여러분, 여러분 자신한테 그런 기대하지 마세요. 니 나중에 공부해서 신학교 가라. 어비야. 그런 거 없어요. 내 가능성 속에 그런 건 없습니다.

 

어떻게 좋은 것, 바르게 살고. 바르게 사는 것도 내 맘대로 안 돼요. 그러니까 천사로부터 시작된 세례 요한 그리고 아기 예수 이건 오늘날 새사람 된 오늘날 교회 성도들도 이것부터 새로 시작이 되어야 돼요. 천사 같이. 내 건 필요치 않을 정도고 세상을 기쁨으로 자유롭게 살아야 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세상 상상도 못한 새로운 종류의 인간이 출현했습니다. 천사의 지시를 받고 하나님의 성령에 의해서 이끌림을 받는 그런 모습, 남의 이야기로 생각하지 말고 우리 이야기인 것을 깨닫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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