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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 믿음

나귀 타신 예수님 200628 본문

주일학교 설교(이근호)/주일학교 설교

나귀 타신 예수님 200628

정인순 2020. 6. 28. 13:37

나귀 타신 예수님 200628

 

음성

 

설교:이근호

녹취:정인순

 

지난 시간에는 어떤 아들이 아버지 재산을 가지고 밖에 나가서 다 팔아먹고 들어왔지요. 다 팔아먹고 들어와서 지가 망해가지고 부끄러워가지고 “아버지, 저는 아버지라고 할 말 없지만 저는 못난 아들 이제 여기 왔습니다.” 이렇게 하니까 아버지께서 “걱정하지 마라. 내가 니한테 소고기 한우 사주고 가락지 끼우고 그냥 돌아오면 돼. 그냥 돌아오면 돼. 니가 나가도 내 아들이고 들어와도 내 아들이고, 니가 어떤 짓을 해도 내 아들이고 니가 무슨 착한 일 해도 내 아들이고, 니는 내 아들이라는 관계는 니는 끊었지만 나는 끊은 적이 없어. 니는 언제까지나 내 아들이야.” 라고 받아주는 그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진짜 아들은 이렇게 한 번 잃어봐야 아버지 귀한 걸 아는데 옆에 있는 늘 아버지 떠나본 적 없는 아들은 늘 아버지께 충성한다 하면서도 동생한테 아버지의 이름으로 못돼먹은 아들한테 잘해주니까 아버지 이름으로 했는데도 지가 성질이 막 나는 거예요. “나한테는 해준 것도 없이.”

 

아버지가 “니가 나한테 지금 개기는 기야? 대드는 거야? 내가 내 것 주겠다는데 니가 왜 성질부려?” “아버지, 저한테는 소고기도 안 사주고 돼지고기도 돈가스도 안 해주고...” “그거 내 마음대로다. 왜 니가 내 것 가지고 내 맘대로 하는데 니가 왜 거기에 대해서 항의하느냐? 가만 보니까 니 속의 성질이 더럽구나. 내가 그런 줄 몰랐지. 동생 들어오니 니가 그렇게 시기나데? 성질 니데?" 이런 식으로 따지는 거예요.

 

그래서 주님의, 아버지의 사랑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능가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보다 하나님이 우리를 더 사랑한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이야기해줬습니다.

 

어떤 사람도 주님을 사랑해도 자기 목숨 내놓을 정도는 안 되지요. 그러나 주님은 목숨을 내 놓고 우릴 사랑함으로서 최종적으로 마지막 사랑은 이 모습이야, 라고 죽는 모습으로 사랑의 끝을 보여주었어요. 끝을, 사랑의 끝을 보여주었어요. 그것이 십자가 피라는 겁니다.

 

그게 지난 시간의 이야기이고, 오늘 이야기는 예수님께서 그 이야기 하시고 나귀 타고 갑니다. 가는데 사람들 보기에 대단히 환영받고 칭송받는 그런 이야기로 보이지만 사실은 이 길이 예수님의 마지막 길이에요. 처참하게 사형당하는 길입니다. 그런데 제자들 눈에도 안 보이고 사람들도 예수님의 속마음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요. 왜냐하면 예수님 인기는 짱이었거든. 인기가 대단한 인기였어요.

 

이 정도로 사람들이, 마태복음 21장에 보면 나귀 타고 가는데 사람들이 예수님 부르면서 “호산나! 다윗의 자손!” 이렇게 불렀단 말이에요. 요새 말로 하면 뭐냐 하면 대통령! 대통령! 그런 식으로 예수님을 우리의 왕이시다, 왕이시다 부른 거예요.

 

앞으로 대선에 있어서 예수님께서 나서면 왕 되실 분이에요. 대선에 윤석열? 아니에요. 임영웅? 아니에요. 예수, 예수가 왕으로 대통령으로서 온 거예요. 그래서 사람들이 자진해서 옷을 벗어가지고 예수님 나귀 타고 가는데 앞에 길에다가 깔고 환영하고 그랬어요. 많은 사람들이 대환영을 한 거예요.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나귀라는 아주 보잘 것 없는 짐승을 타시고, “내가 왕 같으면 이런 짐승을 타겠느냐? 타기는 타지만 왕이긴 왕 맞지만 그러나 나는 이렇게 장차 내가 어떻게 사람들에게 미움 받을 낮아질 왕이라는 걸 너희들은 모르지?” 나귀를 타면서 주님께서 겸손한 모습으로 오신 거예요.

 

사람들은 그것도 모르고 곧 하늘나라가 오는 줄 알았습니다. 이 장면이에요. 드디어 사람들이 옛날 임금님이 올 때 환영을 할 때 종려나무를 꺾어가지고 이렇게 깔아놓고 예수님께서 대환영을 받으면서 이렇게 나타나시는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렇게 나타나셔도 나중에 어떻게 되느냐 하면 그 다음부터는 사람들에게 분명히 환영받지만 사람들에게 인기가 높으면 높을수록 누구한테 밉상받느냐 하면 그 당시에 나라의 높은 사람들이 있었어요. 그 높은 사람들이 예수님에 대해서 저렇게 인기가 높고 유명한 인사니까 도저히 살려두면 안 되겠구나, 죽여야 되겠구나, 라고 그렇게 생각을 하기 시작했어요. 없애자. 죽여 버리자.

 

예수님께서 그 생각을 이미 알았어요. 이미 아시고 자기를 죽이려고 하는 사람들 앞에 내가 이 정도로 유명세가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티를 내기위해서 주님께서는 마치 사람들이 기다리는 왕인 것처럼 이벤트를 시작한 겁니다.

 

예수님께서 나귀에 탈 생각도 없었지만 의도적으로 나귀를 타겠다는 생각을 가지시고 제자들에게 “어느 마을에 가면 어떤 사람이 나귀가 있을 거다. 그 나귀를 니가 그냥 돈도 안 주고 끌고 오너라.” 그렇게 할 때 “주인이 하는 말이 그 나귀 주인이 안 주면 어떻게 됩니까?” “주께서 쓰시겠다고 하면 줄 거다.” 제자들이 “이상하다. 주께서 쓰시겠다고 하면 줄 거라고?”

 

나귀를 구하러 갔어요. 제자들이 와가지고 자기들도 미안하지. 그냥 달라고 하니까. “여기 주인 계십니까?” “네” “혹시 나귀가 있습니까?” “나귀 있습니다.” “나귀 주세요.” 그러니까 주인이 어처구니 없어가지고 “당신들 뭐야? 누가 보냈어? 누가 보냈는데 돈도 안 주고 나귀 달라고 해?” “주께서 쓰시겠답니다.” “고뤠?” 하면서 “드려야지.” 하고 얼른 갖다 낸 거예요.

 

예수님께서 그 나귀 주인한테 선불 돈을 먼저 준 게 아니에요. 주님께서 사람의 마음을 아시기 때문에 딱 주께서 그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기 때문에 주께서 쓰시겠다는 말을 하게 되면 후딱 내어주도록 주께서 그렇게 마음을 잡은 거예요.

그러니까 이게 뭐냐 하면 사람이 자기 마음을 내 마음을 내 결심이 너무 강해, 내 의지대로 움직일 거야, 아무리 장담을 하고 아무리 우겨도 하나님이 마음을, 예수님께서 마음을 딱 잡아버리면 여러분들은 어쩔 수 없이 예수님을 믿게 되어있어요.

 

너 이거 근지럽지? 안 긁고 싶지? 그런데 가만있어도 자꾸 긁게 된다고. 이처럼 우리 마음속에는 내 마음대로 안 되는 마음이에요. 우리는 그걸 자꾸 몰라서 내 마음대로 했다고 우기는데 절대로 내 마음은 지금까지 우리 마음대로 살아온 적이 없습니다. 다 주께서 “이리 와. 이리 와.” 다 주께서 이끄시는 거예요. 주님은 파킹하는 데 전문가예요. “오라이. 오라이. 백. 뒤로.” 해가지고 몰고 해가지고 기어이 천국 오도록 우리를 이끄시는 거예요.

 

그러면 가려면 예수님부터 먼저 가시는 길을 시범을 보이는데 그 길이 사람들에게 환영 받다가 나중에 꼴아 박습니다. 환영 받다가 나중에 사람들한테 미움 받아요. 그처럼 이 말은 뭐냐 하면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도 남들한테 환영 받는 것 같지만 그것 믿지 마세요. 나중에는 주님처럼 미움 받을 때가 올 거예요.

 

그렇더라도 오히려 그것을 제대로 길을 가고 있다고 생각해야 되지, “내가 잘못 됐나? 내가 지금 엉뚱한 지옥으로 가고 있나?” 그렇게 흔들리면 안 됩니다. 여러분의 마음을 주께서 아시기 때문에 십자가 보이는 쪽으로만 계속해서 이끄시는 거예요. 십자가만 보이는 곳, 주께서 흘리신 사랑이 보이는 쪽으로 인도하시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십자가가 보인다면 여러분 인생길 제대로 가고 있는 겁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주께서 십자가 지시기 전에 잠시 잠깐 사람들에게 큰 인기 얻었어요. 세상사람 같으면 넘어질 수도 있는데 주께서는 그 인기 얻던 사람들에 의해서 도리어 배신을 당하는 경우가 있더라도 주께서는 아버지 뜻을 이룬 것처럼 저희들도 그렇게 주께서 이끌어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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