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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 믿음

2015 십자가마을 여름수련회 제1강 [수상한 통일성] 본문

십자가마을 수련회/15여름(사시기)

2015 십자가마을 여름수련회 제1강 [수상한 통일성]

정인순 2015. 8. 8. 13:05

 

 

음성1 

 

녹취:한윤범

 

2015 십자가마을 여름수련회 제1강 [수상한 통일성]

(강의:이근호 목사)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누가 시킨 것인지 모르지만 주의 손아귀에서 우리가 빠져나갈 수 없음을 도리어 우리의 행운으로 여기고 우리 마음대로 인생을 살지 못하는 것조차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축복이라고 믿게 하여 주시옵소서. 시작부터 끝까지 이 감당할 수 없는 축복이 저희들을 주관하시고 장악해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우리가 보려는 하나님의 계시는 사사기라는 겁니다. 사사기는 여호수아 그 다음에 사사기가 나옵니다. 사사기의 내용은 등장인물이 많다는 거예요. 옷니엘, 에훗, 삼갈, 드보라, 기드온, 들라, 야일, 입다, 입산, 엘론, 압돈, 삼손. 외우는 것도 힘드네요. 많은 등장인물들, 이들이 왜 등장했는가, 왜 등장해야 했는가?

 

그것은 구원자 없는 구원을 이루기 위해서 등장한 거예요. 구원자가 아니면서 구원을 발생시켜주는 그런 존재가 됐어요. 자기들은 구원자가 되고 싶지 않아요. 남을 구원한다는 것은 주제넘은 자기 분수에 넘치는 일이라고 생각한 겁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구원이 되었어요. 그러나 사사들은 압니다. 누가 나를 떠밀었어요. 누가 나를 떠밀었습니까? 제가 원치 않은 일에 왜 저를 집어넣어요.

 

그런데 막상 구원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뭐라고 잘못 해석하느냐 하면, 이렇게 해석하는 거예요. 이유 있는 구원. 분명히 구원할 때는 이유가 있다는 거예요. 이게 잘못된 거예요. 하나님의 구원은 이유가 없어요. 하나님이 날 사랑했기 때문에 구원했다. 그건 네 생각이고. 잘못된 생각이에요. 하나님이 우릴 구원한다는 것이 성경 전체에 그런 게 없어요.

 

하나님이 우릴 구원할 것 같으면 처음부터 에덴동산의 위험요소, 선악과를 삽으로 파내야 돼요. 파내든지 전기철망을 삼중으로 치든지 그렇게 해야 됩니다. 구원은 이유가 없어요. 자꾸 이유를 뒤에다 갖다 대지 마세요. 마치 하나님이 날 사랑해서 구원한 것처럼 오해하시면 안 되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왜 안 되느냐 하면, 내 힘으로 구원받지 못하는 걸 날 사랑해서 누군가 보내셨구나. 그분이 나의 구원자야. 그렇게 이야기하시는데 막상 구원자가 이야기합니다. “누구세요? 누구신데 함부로 구원받았다고 니 마음대로 생각하세요?” 이럴 때 우리는 답변할 수 없습니다. “제가 은근히 구원자를 기다렸습니다. 주님, 저 구원오기를 기다렸습니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멘트잖아요. “우리 민족을 구원하기 위해서 우리는 메시아를 기다렸습니다.” 이 이야기한 사람이 예수님을 살해했습니다. 똑같은 현상이 오늘날 일어나고 있어요.

 

하나님이 우릴 구원할 것 같으면 애초에 에덴동산부터 추방하지 말아야 돼요. 한 번 실수, 인간이니까 실수할 수 있다. 그래, 실수했어? 내가 관리를 잘못했으니까 에덴동산에 그냥 살아. 선악과는 또 만들면 되니까. 선악과, 그게 뭐라고 그것 따먹었다고 해서 영원히 추방시키고. 더더군다나 납득이 안 되는 것은 혹시나 에덴동산을 찾아올까봐 아예 에덴동산에 못 오도록 적극적으로 거부하십니다. 오지 말라고. 천사로 하여금 두루 도는 화염검으로 스물네 시간 보초서서 생명나무 근처도 못 오도록 에덴동산 바깥으로 차버렸습니다. 사사기는 바로 그 취지의 반복이라고 보시면 되는 겁니다.

 

계속 이야기해봐야 알아듣지도 못하는데 결론부터 말씀드릴게요. 사사기의 내용이 뭐냐고 물으시면, 이스라엘 자체를 反, anti지요. 안티이스라엘로 바꾸는 겁니다. 이스라엘이 스스로 이스라엘을 공격하는 이스라엘로 바꾸는 겁니다. 이스라엘이 스스로 공격하는 주체로 바꾸는 것이 사사기에요. 이걸 오늘날에는 이스라엘을 교회로 바꾸면 됩니다. 교회가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은 교회가 진짜 참된 교회를 부수는 안티 교회로 작용하라고 각처에 허락하신 거예요. 저와 여러분은 그 교회에 다니고 있고.

 

이스라엘이 스스로 이스라엘은 붕괴시키는 작업에 우리가 들어온 거예요. 이게 사사기입니다. 이걸 처음부터 모르면 사사기 전혀 이해되지 않습니다. 구원의 반대말이 구원 안 받는다는 말이 아니고 구원의 반대말은 구원이라는 것은 다 짓밟을 거야. 이게 구원의 반대말이 되는 거예요. 그런데 놀라운 것은 구원은 반드시 구원을 훼방하고 반대하는 세력이 있을 때만 구원이 자기 모습을 뾰족이 내밀게 된다는 사실이에요. 반드시 구원 자체를 훼손시키는 세력이 있을 때 구원이 성사되는 겁니다.

 

사사기 제일 마지막에 보면 뭐라고 돼있습니까? “그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각 그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사사기 끝나면 여러분이 그 내막을 구체적으로 알게 됩니다만 끝나기 전에 가시는 분들이 있어서 미리 말씀드리겠습니다.

 

인간은 개인은 왕이 왜 필요한지 알 수 없다는 뜻이에요. 모든 개인은 왜 우리에게 왕이 있어야 돼, 라는 생각으로 살아가는 게 개인이에요. 왕이 있을 이유가 없는데 왜 왕이 있어야 되지? 만약에 누가 왕을 주게 되면 그 왕을 준 것으로 인하여 그렇지, 나는 왕이 필요 없는 거야, 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말을 끝까지 들어야 됩니다. 나도 무슨 말인지 모릅니다.

 

나한테는 왕이 필요 없어. 그것을 어떻게 증명하느냐 하면, 누가 나에게 왕이라고 소개할 때 당신이 왕이라고 이야기함으로써 나는 왕이 필요 없다는 것을 더 확실하게 증명이 된단 말이죠. 다만 왕을 이용할 뿐이지. 내가 아쉬운 것, 못하는 걸 채워줄 수 있는 왕을 하나님이 고맙게도 보내주셨구나. 그럼 왕을 통해서 구원을 이뤄봐? 그리스도란 뜻이 왕이란 뜻이니까 예수 그리스도, 예수님이 왕이시니까 그 왕 덕으로 내가 천국 가서 구원받으면 되겠네, 라는 생각을 한다는 자체가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는 거예요. 자기 소견이에요.

 

사사기 마지막에 왕이 없으므로, 라고 했기 때문에 왕이 없다는 증거가 자기 소견대로 했거든요. 자기 소견과 왕이 있음이 상존할 수 없어요. 같이 있을 수가 없다고요. 그런데 내가 왕이 필요로 한다? 이건 상존하는 겁니다. 나를 위해서 왕이 있어야 되지. 내 힘으로 어떻게 구원을 받아. 나는 죄인인데. 죄인이기에 천국 못 가는데 내 죄를 위해서 대신 죽으신 그리스도가 왕이 되시면 나는 왕에게 복종하고 순종함으로 말미암아 나는 구원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본인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한 거예요. 그렇게 되면 안티 이스라엘이란 절차를 안 거친 것이 돼요.

 

IMF, 이 단체의 약자는 모르겠지만 이 단체가 영화에 나옵니다. [미션인파서블5]에 나오거든요. 이 단체가 스스로 이 단체를 함몰시키는, 스스로 뭉개지는 거예요. 이스라엘이 스스로 자기 구원을 포기하고 철회하도록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배후 조종하는 기록이 바로 사사기입니다. 교회가 스스로 교회의 구원이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을 교회가 느끼도록 그렇게 하는 조치, 그게 오늘날 성령께서 하시는 겁니다. 사사기에는 하나님의 신으로 나왔지만.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 이렇게 이야기하느냐 하면, 인간은 자기 소견이라는 항아리에서 그 우물에서 아무리 노력해서 벗어날 수 없어요. 아무리 자기를 부인하고 나는 자기 십자가 졌다는 것도 자기 생각이거든요. “주여, 저는 저를 부인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뭘 얻고자 하느냐?” “많은 걸 얻고자 하는 게 아니고 구원만 주시면 ....” 그게 바로 주께서 쫓아내신 취지에 안티, 반대로 작용하는 겁니다. 추방시킨 주님의 조치가 옳지 않았다는 거죠. 주님이 옳지 않으니까 나라도 옳아야 되죠. 구원받고자 하는 나는 옳고 그런 나를 구원하지 않는 주님은 무조건 옳지 않은 것이 되죠.

 

그런데 사람들은 하나님을 옳지 않다고 한다면 하나님께 노골적으로 대든 것이 될까 겁이 나서 어떻게 하느냐 하면, 하나님을 자기편으로 끌어당겨요. 하나님은 나의 왕이십니다. 그러면 또 묻지요. “네가 내가 왕인 줄 믿느냐? 그걸 믿어서 너한테 이익이 뭐냐?” 혹시 구원될까봐. 또 마찬가지야. 결국은 아무리 하나님을 끌어당기고 예수를 믿고 삼위일체를 논해도 나의 나됨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벗어날 수 없으면 어떻게 해야 되지요? 이때 누가 타이밍 맞춰서 해답주시면 좋은데? 제 강의 많이 듣는다고 소문난 장로님? 벗어날 수 없으면 어떻게 하면 되지요? 안 벗어나면 되지요. 이게 구원의 시작인 거예요. 성경은 우리 자신을 되비춰보는 거예요. 남 이야기하는 게 아닙니다. 개인적으로 보기에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했다. 딱 나네. 이러면 깨끗하게 문제가 끝나는 거예요.

 

그 다음 문제는 뭐냐 하면, 왜 그들은 자기 소견대로 했을까? 그들은 그들이 속해 있는 이스라엘이 구원되고 밥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 했다. 그것도 우리 이야기거든요. 따라서 그들은 잘 살기 위해서 온갖 노력을 다 했으면서 어려울 때 부르짖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자를 보내주시기를 간곡히 기도했다. 그것도 우리 이야기거든요.

 

그런데 그러한 시도와 그러한 노력을 다했는데 이스라엘은 안티이스라엘로 변하고 멸망하고 맙니다. 그것도 우리 이야기라고 그건 차마 말 못하지요. 결국 우리가 스스로 망하는 길 외에는 다른 길은 없다는 말을 우리가 수긍하기에는 아직도 우리 자신에게 애착과 미련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지금까지 이야기한 것은, 구원은 이유가 없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하기 때문에 이유를 달아요. 요한복음 3장 16절부터 해서 유명한 구절 다 동원해서 무조건 이유를 붙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이유를 붙였던 자들이 메시아를 죽였다는 사실. 유대인들이 그렇게 겸손한 사람 아닙니다. 다 합리적으로 따지고 다 알아보고 모든 걸 앞뒤로 견주어서 너는 아니라고 결론 내리고 그것도 투표해서 시나고게 72명의 국회의원들 모여서 투표해서 결정내린 겁니다. 누군가 아니라고 했으면 반대가 있었을 텐데 아무도 없었고 심지어 열두 제자가 그 현장에 있었다면 그들도 ‘예’라고 했을 거예요. 아무도 없어요. 왜냐하면 모든 인간은 자기 소견대로 행하는 것에서 벗어날 수 없는 강력한 힘의 단계에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강의할 것은 우리의 구원은 물 건너갔어요. 우리의 구원은 없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구원만 남아있어요. 그동안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이 마치 내 구원과 연결된다고 여겼던 겁니다. 그렇게 연결되는 가운데서 최고 중요한 것이 빠져버렸어요. 걸림돌이 빠져버린 거예요. 십자가 빠지고 그냥 우리가 아는 사랑 개념, 주님은 사랑의 하나님, 사랑이란 개념으로 마주쳐서 “하나님, 좋은 사랑 실현해보시지요. 값없이 주신다고요? 멋진 사랑이네. 저는 그런 사랑 원했습니다. 저는 긍휼을 원했습니다. 됐지요? 됐네. 거래 성사됐습니다.” 이러고 싶었던 거예요.

 

그렇데 되면 뭐가 빠졌습니까? 십자가의 걸림돌은 이미 사라졌어요. 십자가가 사라졌어요. 십자가를 치워버렸습니다. 십자가를 우회했습니다. 돌아갔습니다. 유대인들이 바보가 아니지요. 그들 나름대로 한 신앙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마음을 낮춰서 영광 돌리기 위해서 온갖 분에 넘치는 행동까지 다 한 사람들이에요. 우리보다 더 멍청해서 주를 죽게 한 것이 아닙니다. 현장에 우리가 있었다면 그들과 똑같이 표를 던졌을 겁니다. 그들의 결정에 우린 찬동했을 겁니다. 왜? 그들이나 우리나 개인의 소견대로 행할 수밖에 없는 그런 입장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렇게 일하시는, 버리려면 그냥 버리지 하나님께서는 구원자라는 표상으로 이스라엘을 찾아왔느냐? 이스라엘이 원래 없던 나라에요. 이스라엘 자체가 나라라는 게 없어요. 누가 만든 나라냐 하면, 임시방편으로 하나님이 자기 약속을 이루는 하나의 마당놀이로 사용하려고 의도적으로 이스라엘을 만든 겁니다.

 

이스라엘 나라 전에 뭐가 있었느냐 하면, 여러분 다 아시는 이야기지만 제가 죽 이어나가겠습니다. 애굽 나라뿐이었습니다. 애굽+이스라엘, 이런 혼용체가 아닙니다. 이스라엘은 없어요. 애굽에서 사건 하나가 터지면서 이스라엘이 거기서 분리되어 나온 겁니다. 이 사건이 밤에 이뤄진 사건이에요. 밤입니다. 인간이 관여할 수 없는 인간이 영향력을 줄 수 없는 모든 인간이 잠자던 그 밤, 새벽 2시 40분인지 그건 확실히 모르겠습니다만 어쨌든 그 밤, 인간의 활동성이 중지된 밤에 일어난 사건으로써 이스라엘이 나왔어요.

 

그러면 밤은 뭐냐 하면, 낮과 낮을 중간에 절단시키는 겁니다. 낮과 낮을 우리는 연속성으로 보거든요. 연속성의 중간을 끊음으로써 시간적인 단절성을 보여주는 겁니다. 그래서 애굽에서 이스라엘이 나오면서 달력이 바뀌어요. 그게 4월인데 1월로 바꿉니다. 그것도 밤부터 시작해서. 유월절이 원래 밤부터 시작해요. 해지고 난 뒤에 유월절 시작되거든요. 밤부터 시작된 나라는 밤으로 돌아가야 돼요. 밤은 사람들이 근접할 수 없고 거기에 들어설 수 없는 시간적인 낯선 영역이에요. 그게 바로 얍복 강에서 야곱이 하나님의 천사를 만났을 때 천사가 뭐라고 하느냐 하면, 놔라. 해가 뜨니 내가 사라져야 되겠다고 하죠.

 

이것을 무한한 유한성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무슨 말인지 모르지요. 그냥 넘어갑시다. 하늘나라는 경계는 있지만 한계는 없어요. 어떤 요리사가 요리하는데 보통 채소로 몇 가지 집 반찬을 만들었어요. 분명히 만들어진 요리와 다른 재료 사이에 경계가 생겼지요. 접시에 담긴 것은 요리고 다른 건 요리가 아니잖아요. 경계가 생겼는데 맛을 보니까 무한한 맛이라. 세상에 이런 맛이! 먹으면 먹을수록 무한적인 맛이 나와요. 이게 기드온 삼백 명이 담고 있는 의미입니다. 축소했는데 더 깊어진 것, 이만이천 명 왔다가 삼백 명 남았는데 더 깊어졌어. 그게 왜 그런가? 그건 사건을 구체화하기 위해서는 숫자를 최소로 압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최소한도로.

 

지금 표정들 보니까 니가 언제까지 모르는 소리 하는지 보자, 이런 식인데 계속해서 모른 소리할 테니까 알아서 하세요.

 

A에서 B로 변할 때 과학은 A 포착하고 끝나고 난 뒤에 B 포착합니다. 그래서 A가 원인이고 B를 결과라고 합니다. 이게 실증적 의미이론이라고 하는데 그건 몰라도 되고요. A에서 B로 변해서 결과를 낳습니다. 그런데 뭘 놓치느냐? A에서 B로 변하는 변화 자체를 언어로써 표현을 못해요. 나뭇잎이 노랗다. 노랗구나. 나뭇잎이 푸르다. 푸르구나. 가을 돼서 노랗다. 노랗구나. 가을이 되었네. 이건 되는데 언제부터 노랗게 달라지는 그것을 표현할 수 있는 의미체계는 언어체계로 합치되지 않아요.

 

그래서 언어는 뭐냐 하면, 지금까지 한 것 중에서 제일 어려운 말인데, 언어는 중지다. 언어를 따라붙다가 ‘푸르스름’은 안 돼. ‘푸릇푸릇’ 그것도 아니야. 합치되지 않아. 언어는 결국은 헉헉거리다가 정확하려 하다가 포기하고 중지될 때 그게 언어에요. 여러분, 교재 읽어봤습니다. 헉헉거리면서 여기까지 올라온다고 읽어볼 시간도 없었지요.

 

언어가 현 사실을 표현할 수 없어요. 한계가 있고 일치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더 인간들 소행이 나쁜 것은 합치되지 않는 언어가 부정확하고 옳지 않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일단 언어로 맞춰놓고 그 다음에 언어가 상당히 잘 먹혀들어 가거든요. 그걸 나라고 일방적으로 거기다 갖다 붙이는 반칙을 범하고 맙니다.

 

예를 들면, 예수 믿으면 신자가 된다. 예수 믿고 신자가 되는데 몇 분 걸렸습니까? 이걸 언어로 사용하지 못해요. 변화될 때 느낌이 어떻고 체온이 몇 도 올라갔으면 그걸 어떻게 압니까? 몰라요. 구원파 가니까 11월 3일 오전 7시에 했습니다. 정확히 7시입니까? 7시 7초였어요, 7시 6초였습니까? 7시 6초였나? 6점 몇 초였지요? 그게 안 돼요. 왜냐하면 시간언어가 동원된 이상은 이건 비겁하게 하다가 안 돼 안 돼 도저히 안 돼. 이미 자기 한계에 들어가서 포기했잖아요. 포기했으면 그 단어를 자기한테 적용시키면 안 되지요. 이미 실패한 걸 도로 자기한테 가져오는 그런 반칙이 어디 있어요.

 

그런데 성경에 보니까 예수 믿으면 성도라고 하니까 성도라는 그 단어가 마음에 들거든요.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됐다. 그건 마음에 더 드네. 귀신이 하늘에서 떨어진 걸 좋아하지 말고 네 이름이 생명책 기록된 걸 좋아하라. 저건 나 이어야 해. 그게 좀 바뀌면 저건 나야. 이게 바로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면 다 그렇게 나와요. 안티입니다. 주님에 대한 안티조직이에요. 이 소리 듣고, “목사님, 저는 아닙니다.” 하지 마시고 안티면 그냥 안티라고 받으면 그게 구원의 현장이에요.

 

사사기는 구원자를 보내셔서 그들로 저분이 구원자라고 오해케 해서 결국 이스라엘을 궁지에 몰아넣습니다. 열두 지파를 구성하는 띠라는 게 있는데 그 띠가 레위언약이라는 겁니다. 쉬운 말로 은혜입니다. 쉽게 은혜라고 하지 왜 레위언약이라고 하느냐. 은혜라는 게 일반사람들이 생각하는 은혜와 다르기 때문에 언약에서 나왔기 때문에 레위언약이라고 한 거예요. 그냥 괜히 이야기한 게 아니고 다 이유가 있어요. 좋은 게 좋다. 은혜다. 그런 은혜 아닙니다. 레위언약에서 나온 띠로, 레위언약은 모세언약에서 나왔거든요. 모세언약에서 나오는 그것이 이스라엘을 구성하게 했고 땅을 차지하게 한 거예요.

 

그러면 모세언약이 뭡니까? 간단하게 설명해주세요. 모세언약은 모세를 죽임으로써 구원자 없는, 이유 없는 구원을 모세언약이라고 합니다. 구원자 없는 모세가 죽고 난 뒤에 여호수아가 설쳐도 여호수아는 자기 뜻도 아니고 모세도 아니고 모세에게 언약을 주신 하나님 덕분에 우리가 이 땅을 차지한다는 내용을 담을 때 그게 언약에 의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따라서 이건 모세 때문이야. 우리 가운데서 모세 같은 사람 등장하게 되면 우리 조직은 유지 돼, 라는 생각을 한다면 그건 안티 이스라엘이에요. 그것은 이스라엘과 대립되는 거예요.

 

제 이야기는 의외로 쉬워요. 주는 대로 먹으면 돼요. 차린 밥상 떠먹으면 돼요. 그냥 곱게 먹으면 될 것을 엄마는 우리의 건강을 위해서 주셨다. 이렇게 꼭 뒤에 토를 다니까 그게 지금 문제가 된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우릴 사랑하셔서 천국에 넣어줬다. 우리를 사랑해서 천국 넣어준 게 아니거든요. 우릴 사랑했다면 애초부터 선악과를 뿌리 채 뽑아버린다니까요. 식목일 누가 만들었어요? 아예 선악과 빼버려야 돼. 그 위험한 나무를 왜 심어놨어요?

 

안 믿는 사람들은 맨날 신자에게 묻는 게 뭡니까? 선악과 처음부터 안 심으면 되지 왜 심어놨습니까? 교회 깨나 다니고 집사, 장로 됐다 하지만 그 말에 딱 막히네. 글쎄 말이야. 선악과 왜 심어놨을까? 기껏 배운 요령 중에 하나가 선악과 왜 심었냐고 묻는 자를 지옥 보내기 위해서, 라고 궁색한 비겁한 변명이십니다. 어디서 되도 않은 변명인데

 

이렇게 볼 때 사사기 전체 내용은 이것 하나로 정리될 수 있어요. 네가 인간인 것을 증명해보라. 인간 보고 인간인 것을 증명하라는 것은 말이 안 되잖아요. 이러한 태도는 네가 인간이라는 근거를 다시 한 번 조사해봐라. 너는 어떤 근거에 의해서 나는 인간이라고 그동안 우기면 살아왔는지 다시 말해서 내가 인간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을 태어나서 지금까지 해본 적 있느냐? 해보라는 거예요. 사사기에서.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합니까? 이렇게 증명해요. 내가 인간이니까 밥을 먹고 이렇게 살아있지. 이렇게 이야기하거든요. 그러면 하나님이 네가 살아있는 게 맞긴 맞아? 네가 살아있다는 걸 증명해보라고 나와요. 소크라테스 같아. 말꼬리 잡고 또 묻고, 또 묻는 거예요.

 

내가 여기에 살아있으니까 살아있는 것 맞잖아요. 내가 인간이니까 인간인데 그게 어찌 증명합니까, 라고 한다면, 방금 그 이야기는 당신이 세운 기준으로 그동안 당신을 속여 왔다는 거예요. 내가 만든 그러니까 일단 뭔가 태어나고 난 뒤에 남들 눈치 보니까 예쁜 아들이야, 예쁜 딸이라고 하니까 내가 사람이구나. 남들이 궁시렁거리면서 하는 이야기가 괜찮아 보이니까 그것이 나에 대한 주체의 정체성인 줄 알고 그걸 그냥 가져온 거예요. 가져와서 나는 인간이라고 한 겁니다. 왜냐하면 내 주변에 있는 어떤 누구도 돌멩이 아니고 인간이라고 누구나 이야기하기 때문에 자기는 인간이라고 우기는 겁니다.

 

그 증명이 왜 틀렸는지 그걸 사사기에서는 보여줍니다. 어떻게 보여주는가? 딱 두 자에요. 진멸한다. 흔히 우리가 아는 편한 말로 토벌한다. 너무 지리산 냄새나지요. 태백산맥 냄새 나지 않습니까. 또는 안 쓰는 용어라서 낯설어요. 이게 적당해요. 전멸시킨다. 왜 전멸해야 되는가? 너한테 나는 전멸되지 않을 근거가 찾을 수가 없기 때문에 전멸 당해야 돼요. 저는 죽으면 안 된다는 이유를 내가 댈 수 없어요. 그게 문제에요.

 

그동안 인간들은 자기가 인간이고 계속 살아야 된다는 것 때문에 그 이유를 댄다고 하나님, 예수를 동원시킨 겁니다. 이건 진멸용으로 했던 용어를 자기가 살려는 용어로 바꾼 거예요. 그 바꾼 것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구원자를 보낼 때 그들이 불쾌하게 만드는 구원자를 보낸 거예요. 좀 근사한 구원자 없나. 왼손잡이 말고.

 

왼손잡이는 통계상 10%에요. 에훗이 모압 왕을 죽일 때 왼손잡이라서 무기 수색에 유리했습니다. 보통은 오른손잡이기 때문에 무기가 이쪽에 차있거든요. 그런데 왼손잡이라서 쑤시기에 쉬웠던 거예요. 옛날에 왼손잡이는 장애자 취급했습니다. 베냐민이 오른손의 아들이잖아요. 정상적인 것은 오른손이지 왼손잡이는 제조날짜가 잘못됐는지 뭔가 제조공정에서 문제가 있어서 잘못된 거예요. 그 잘못된 자가 구원자입니다. 이스라엘을 구원했거든요.

 

에훗은 모압에게 18년 동안 통치 받고 80년 동안 태평했어요(3장30절). 삼손은 40년 동안 블레셋 통치 받고 20년 동안 독립했고, 입다라는 깡패는 18년 동안 암몬에게 압제 당하고 기껏 숨 좀 쉰 해는 6년밖에 안 됐어요. 입산는 7년이고, 둘라는 23년이고, 야엘은 22년이고, 엘론은 10년이고, 압돈은 8년이고.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사사들끼리 모르는 사이에요. 웃기지요.

 

그걸 저는 서울 마포구의 싱크홀이라고 합니다. 도로에 구멍이 생겼는데 서로 우리가 몇 년 몇 월 몇 시에 도로에 구멍을 내자고 한 게 아니에요. 무작위로 구멍이 뚫린 거예요. 구멍이 뚫리면서 그동안 있었던 은혜가 배수구로 물 빠지듯이 은혜가 빠지고 말았어요. 전에 섬이었는데 섬이 아니라 육지로 이어졌어요. 은혜가 빠지니까. 은혜가 쏙 빠지니까 등장한 것은 뭐냐? 그들은 왕이 필요치 않는 개인적인 존재자들이었다는 평가를 받는 겁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안 믿어요, 하나님을 거론 안 했습니까? 열심히 믿었습니다.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출처가 달라요. 출발점이 나만 잘 되면 된다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안티이스라엘이에요. 이스라엘을 파괴하는 요인이 되는 겁니다.

 

그렇다면 사사기가 무슨 내용입니까? 딴 소리 말고 짧게 이야기해 달라. 악의 배양지, 악의 비닐하우스, 악의 시설물. 온도가 4,50도나 올라가는. 제가 올 때 성주군 수륜면으로 왔거든요. 들에 보면 시설물, 비닐하우스 있지요. 갇혀 있으면 마음껏 악이 거기서 숙성하는 곳, 그게 사사기입니다.

 

그러면 구원자가 열두 명이나 되는데 구원자가 그들을 구원했잖아요. 구원 안 했습니다. 구원 안 했는데 그들을 10년 동안 해방시켰다는 그런 이야기는 왜 나왔느냐? 해결 되지 않는 구원자를 보낸 겁니다. 개인이 소견에 보기에 옳았다는 그 바탕이 있는 이상은 이건 사사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도 해결이 안 돼요. 누가 구원자가 되도 해결이 안 돼요. 이미 바탕은 나를 위한 구원이어야 참 착한 하나님이란 인식이 벌써 발생됐기 때문에 어떤 구원자를 보내도 그건 구원 안 됩니다.

 

그래서 첫째 시간 강의 제목을 [수상한 통일성]이라고 정했어요. 통일 됐는데 굉장히 수상해요.

 

이렇게 볼 때 하나님께서 이미 에덴동산에서 추방했으면 잘 먹고 잘 살아라 저주받으라고 끝내지 왜 이스라엘을 없는데서 따로 만들어냈는지 그 이야기를 계속 해봅니다. 이스라엘을 만든 목적이 뭐냐? 그것은 하나님께서, 창세기에 보면 혼돈에서 질서가 만들어지잖아요. 왜 만들었지요? 혼돈 그냥 두지 왜 질서를 만들지요?

 

혼돈에서 질서, 이 말은 내가 왜 있지, 이것과 똑같은 거예요. 여기 내가 왜 있지? 이 말은, 내가 없어도 되는데 내가 없다고 해서 태양이 주저앉습니까? 달빛을 잃어요? 그건 예수님한테나 해당되지 우리는 해당 안 되지요. 왜 나는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졌는데 햇빛은 빛나고 있습니까? 유명한 팝송 있잖아요(The End Of The World - Skeeter Davis). 왜 태양은 빛나고 파도는 치느냐 이 말이죠.

 

이별은 만남보다 훨씬 쉽지요. 윤도현 밴드의 [사랑했나봐] 이별은 만남보다 아주 쉽지요. 이게 왜 쉬우냐 하면, 사랑은 억지기 때문에 그래요. 좋은 말 할 때는 적으세요. 사랑은 억지에요. 혼돈이 자연스러운 겁니다. 내가 사는 것보다 우리가 사는 건 힘들어요. 그런데 뭐가 쉬우냐 하면, 내가 죽는 게 쉽다니까요. 나로서는 어렵지만 나한테 원한 가진 사람은, 저 인간 죽여 버릴까. 저쪽에선 쉬워요. 지금도 날 죽이려고 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니까. 뭔가 이유가 있을 거잖아요. 구원은 아닙니다. 구원 같으면 에덴동산에서 쫓아내지 않았기 때문에.

 

20년 믿고 30년 믿어봐야 한 순간에 나, 예수 안 믿는다. 그동안 사랑보다 이별이 훨씬 쉬워요. 한 순간에 삐끗하면, 목사님 안녕히 계십시오. 난 예수 안 믿습니다. 그동안 믿는다고 얼마나 용을 썼고 변비 걸릴 정도로 애를 썼지만 그냥 모든 걸 내려놓으니 그게 하나님 안 믿는 게 그렇게 편한 걸. 여러분 다들 그 기분 아시지요. 하나님 안 믿는 즐거움을 편함을 아시잖아요. 오늘 낮에도 그런 이야기했습니다만 하나님 믿지 마세요. 어색해요. 우리 본성에 안 맞아요. 그냥 본인만 믿으세요. 줄곧 본인만 쥐고 천상천하유아독존, 이 세상에 나보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없어요. 오직 나만 사랑하세요. 그게 우리를 편하게 만듭니다.

 

하나님께서 혼돈에서 질서를 만든 것은 악을 구체화하기 위해서 한 거예요. 악아, 기어 나와. 창조마저 창조 자체를 붕괴시킨 겁니다. 하나님의 자기 증명을 어떻게 하느냐? 하나님의 자기성을 파괴함으로써 자기를 증명하는 겁니다. 파괴당하는 하나님이 진짜 하나님이에요. 여러분 할 줄 모르지요.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에 못하잖아요. 남은 다 죽여도 난 안 죽잖아요.

 

[매드맥스] 영화 보세요. 핵전쟁으로 다 죽어도 호주의 사막에 누구 하나 이상한 마스크 쓰고 등장하잖아요. 그게 바로 우리가 그리던 진짜 모습이에요. 다 죽어라, 다 죽어. 신격호고 뭐고 롯데고 다 무너져, 다 무너져. 하지만 우리 집은 안 돼. 우리 집 보일러는 안 돼. 그러니까 누가 못 되고 망하고 이혼하면 신이 나. 그 재미로 살아가는 거예요. 남 망하는 재미로.

 

그래놓고 누굴 믿는단 말이에요. 우리는 누굴 믿은 적이 없어요. 나 외에 다른 사람을 믿은 적이 없습니다. 천국 준다고 하니까 그게 탐이 나서 믿는 척하고 있을 뿐이지 절대로 우리는 교회 나와도 절대로 나 외에 다른 신을 믿은 적이 없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십계명 만들어낼 수 있어요.

 

나는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않는다. 나는 나 외에 누구에게 절하지 않는다. 나는 나 외에 어떤 것도 형상을 만들지 않는다. 나만 섬긴다. 내가 쉬는 날이 안식일이다. 부모가 나한테 유산 줄 때만 부모님께 공경한다. 나한테 못 되게 하면 차에 깔려 죽어라.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무조건 좋아해. 그건 로맨스니까. 팔계명은 뭡니까? 도둑질. 내가 아쉬울 때 도둑질하면 하나님도 봐줄 거야. 그 다음에 뭡니까? 십계명도 못 외우겠다. 거짓증거하지 말라. 살기 위해서는 거짓말도 용납된다. 기생 라합을 봐라. 이런 식으로. 십계명이 뭡니까? 나는 탐심 어쩌란 말인가? 우리는 문자로 안 썼을 뿐이지 이미 우리 속에 그것이 잠재돼있어요.

 

하나님께서는 혼돈을 질서에게 악을 발췌해놓고 그 질서를 뭐로 바뀌느냐? 혼돈으로 바꾸면서 왕을 등장시킵니다. 누구냐? 진짜 이 세상을 만든 왕, 예수 그리스도를 만드는데 그 나타나는 방법은 모든 질서가 무너지는 것, 이게 하나님의 스스로 자기 파괴거든요. 자기가 만든 것을 스스로 파괴하면서 거기서 포장지 뜯듯이 거기에 진짜 우주의 주인공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끄집어내는 방식, 이 방식을 사사기에서 사용하십니다.

 

 

10분 쉽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