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과 믿음
미국맨해튼교회예배 본문
녹취:한윤범
20141005 미국맨해튼교회예배
(강의:이근호 목사)
통역되지요. 오늘 천천히 하기로 약속했습니다.
보통 사람들이 세상 속에 사람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반대로 이야기합니다. 사람 속에 세상이 있다. 여러분, 이런 발상, 생각해본 적 있습니다. 맨해튼 속에 사람 있다. 이건 오케이. 우린 보통 다 수용합니다. 사람 속에 맨해튼 있다. 사람 속에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있다. 성경은 바로 상상도 못한 이야기를 우리에게 제시합니다. 그 사람 속에 세상이 있다니? 어찌 그럴 수가. 그럼 사람밖에 있는 세상은 뭐란 말인가? 사람밖에 있는 세상은 사람 안에 있는 세상으로 교체돼야 될 임시적 세상인 겁니다. 여러분, 그 세상이 궁금하지 않습니까? 궁금하지요.
여러분, 예수님과 보통 인간이 차이점이 있어요. 그 차이점은 뭐냐? 예수님은 두 끼 먹고 우리는 세 끼 먹는 것 아닙니다. 예수님과 우리의 차이점은, 그분은 부활을 하셨고 우리는 부활을 못하는 존재라는 차이점이 있습니다. 사람이 부활했다는 것은 그냥 죽었다가 살아난 것으로 생각한다면, 너무 작게 생각한 것이고 약간 틀리게 생각한 거예요. 예수님이 죽었다가 부활하면 예수님 개인이 죽었다가 부활하신 것이 아니고 예수님 속에 잠재돼있던 세상이 지금 인간들이 살고 있는 이 세상과 바꿔치기한다는 뜻에서 예수님의 부활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엄청납니다. 엄청나요.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예수님이 다른 사람과의 차이점은 예수님이 부활했다는 것인데 우리는 단순히 예수님이 죽었다고 소생했겠지. 그 정도밖에 생각하지 않는데 그게 아닙니다. 예수님만의 어떤 세상을 잉태했고 그것은 예수님의 세상이 그동안 인간들을 품고 있던 세상을 엎어버리는 겁니다. 바꿔치기하는 겁니다. 이것을 성경 고린도전서 15장에서는 뭐라고 하느냐 하면, 부활의 세계가 사망의 세계를 삼켰다고 이야기해요. 삼키는 쪽은 큰 쪽이고 삼킴을 당하는 쪽은 작은 쪽입니다.
이런 엄청난 내용이 성경에 있어요. 그저 교회 와서 찬양하고 앞으로 행운 찾아오겠지. 그 정도 아닙니다. 그 행운 찾아온다는 세상, 주님 안의 세상으로 바꿔주시기 바랍니다. 주님 안에 있는 자체가 최고의 세상이에요. 베스트월드가 the best world, ‘the’가 들어가야 돼요. 오늘 배웠어요. 최고의 세상이에요. 감히 상상도 못한 세상입니다. 많은 성령 받은 초대교회 성도들은 이런 부활의영을 받아서 “뭐, 이런 세계가 다 있어?” 너무 놀라서 아낌없이 자기 것을 서로 소통하면서 세상에 들어온 것을 스스로 기념했습니다.
여러분, 그 세상에 들어가고 싶지 않습니까? 발 들여놓는 방법 알려드리겠습니다. 얘들은 오라. 다 와도 좋아요. 방법은 이것입니다. 한국어로 여섯 자입니다. 인간은 빠져라. 여러분들이 그동안 신앙생활 굉장히, 억수로(경상도 방언입니다) 힘들었습니다. 힘들어도 안 돼요. 힘들여서 될 일 같으면 힘쓰겠습니다. 아예 빠지세요. 빠지시고 맡기세요. 우리가 애쓴다고 속도 더 나는 것 아닙니다. 빠지시고 지켜보세요. 주님께서 세상 속의 인간이 어떻게 인간 속의 세상으로 바꿔지는지 여러분들은 감상하시고 박수치시고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세상에 이런 일이? 성스러운 착란입니다. 역전입니다. 성스러운 뒤바뀜이에요.
내 자리 키우려고 내 자리를 당당하게 하려고 그렇게 기도하는 것이 아니고 바뀐 세상의 깊이를 더 만끽하고 맛보고 볼 수 있도록 여러분의 기도 내용이 바뀌어야 합니다. 즉 내가 하지도 않은 내가 시도해서 얻은 것도 아닌데 그 영생의 세상이 우리를 삼켜버린 거예요. 왜냐하면 전에 우리는 세상 속의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주눅 든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는 맨해튼보고 쫄았던 사람입니다(통역 어렵다). 간이 콩알 만 한 채로 세상에 부들부들 떨었습니다.
창세기 4장에 보면, 지옥 갈 가인의 사람들이 만든 게 있어요. 그게 바로 기계였습니다. 그 기계가 사람이 만들었다고 생각했는데 현대인은 모두가 기계들이 되었습니다. 매트릭스에요. 기계가 기계를 낳고, 기계가 기계를 낳고.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기계가 기계를 낳고. 기계가 자식 키웠고 기계란 자식도 기계를 낳고.
이 기계라는 것은 탈출 불가합니다. 인간을 기계화시켰던 가인 세계 밖으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부속품입니다. 서로가 맞물려서 어떤 인간이란 상품을 계속 만들어내는 공장설비에 일부가 되고 말았습니다. 왜 사는지, 어디로 가는지 묻지를 말라고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걸 묻지 않기로 묵계로 약속된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기계는 재생산되고 재생산된 기계는 또 재생산되고. 어디까지? 몰라.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어요. 어디까지 기계가 확산되는지 전 세계가 매트릭스처럼 정보의 바다, 그것뿐이에요. 이유도 없고 너무 고달프니까 마약에다 술에다가 도박에다. 하지만 그건 일시적인 쾌락일 뿐이지 또다시 돌아서면 돈 버는 기계, 조직에 충성해야 될 기계, 파이팅을 외치지만 지 팔람 아프지요. 소용없는 겁니다. 교회도 마찬가지고 사회도, 모든 게 마찬가지에요. 잘나고 잘난 기계, 개기름 번지르르한 기계, 번듯번듯한 기계를 자랑하지만 어디까지나 세상 속에 인간입니다. 이것, 해결책 없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것은 그전부터 세상 속에 사람이 아니고 뭔가 사람 속에 새로운 세계가 있다는 것을 이미 구약 때부터 차근차근 뭔가 그런 조짐과 징후와 징조가 있었다는 것을 창세기 속에 이미 담겨서 그런 씨앗이 있었다는 것을 성경은 말해줍니다. 이 세상에 가인의 세계뿐만 아니고 아벨의 세계도 같이 병행해서 있어왔다는 겁니다.
그 하나의 예가 아담이 낳고 죽었더라, 죽었더라, 하는데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았더라. 보세요. 죽음을 이기잖아요. 생명을 죽음을 이긴다는 사례가 이미 창세기 5장에 있었습니다. 제가 이렇게 이야기하면, “목사님. 우리가 에녹처럼 살아서 이 기계 같은 죽음의 세계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까? 어떻게 살면 됩니까? 저도 에녹처럼 살아서 벗어나고 싶습니다.”라고 은근히 저한테 기대할 거예요. 제가 다시 이야기합니다. 손 떼세요. 에녹은 본인이 원해서 죽음을 보지 않고 영생에 간 게 아닙니다. 주님의 다른 작용이 에녹을 사용하신 겁니다.
제가 이렇게 하면 여러분도 만만치 않습니다. 물러서지 않습니다. “목사님. 어떻게 하면 에녹처럼 사용될 수 있습니까?” 물으신다면 저의 답변은 별로 신선하지 않습니다. 손 떼세요. 발 떼세요. 제가 그렇게 이야기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이 세상이란 나중에 알고 보니 세상이 있고 거기에 에서도 있고 야곱이 있는 것이 아니고 야곱과 에서가 먼저 있고 세상은 그로부터 성질이 다른 이질적인 두 세계가 엉키면서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고 발생시켜왔습니다.
그러니까 애초부터 세상이 있고 인간이 있는 게 아니라 처음부터 인간이 있었고 그 인간에 따라서 각각 분류되는 세상이 섞여서 투쟁하면서 이 세상은 진척돼왔던 겁니다. 제가 이렇게 하면, “그게 진짭니까? 그럴 수가 있습니까?”라고 생각할 거예요. 목사님이 쉽게 하라고 하는데 양보 못합니다. 쉽게 못합니다. 할 수 없습니다. 제가 쉽게 못하는 이유가, 우리 사고방식이 세상이 먼저 있고 그 안에, 큰 세상이 있고 거기에 작은 나, 따라서 세상이란 대자연에 맞춰나가면 그나마 숨 쉬고 살겠지. 이런 선입감이 굉장히 강렬해요. 이것은 우리뿐만 아니고 남들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성경에 보니까 그 생각은 잘못된 선입견이었습니다.
에서와 야곱이 자아내고 만들어내는 형성해낸 그 세상이 세상의 전부였습니다. 그게 로마서 9장에 나옵니다. 11절에 보면,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에게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이렇게 돼있어요.
아직 에서란 이름의 사람, 야곱이란 이름의 사람이 태어나지도 않았지만 그들의 태어나야 될 세상은 하나님에 의해서 각각 다른 분류된 곳에 할당하는 식으로 배당하는 식으로 세상이 그렇게 꾸려가게 돼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느냐 하면, 쉽게 이야기하면 이렇습니다. 꽃이 피기 전에 꽃봉오리는 작고 꽃잎은 큽니다. 큰 꽃이 속에서 나오니까 꽃잎이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꽃이 되기 위한 전제 환경, 배경에 불과했다는 겁니다.
아기가 태어나기 전에 먼저 엄마가 기저귀 준비하지요. 기저귀 맞춰서 아기 태어납니까? 기저귀 큰 것 만들면 거인 태어나고, 기저귀 작게 만들면 꼬마, 미숙아 태어납니까? 절대로 그럴 일 없을 거예요. 하나님께서 세상이란 걸 만든 것이 세상의 전부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예정된 대립된 인물이 등장하기 전에 먼저 꽃잎을 깔아놨어요. 한 쪽 꽃잎은 에서를 보여주기 위해서 세상을 만들어놓고 한 쪽은 야곱을 위해서 세상을 만든 그 두 가지 세상이 이 세상의 전부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장담합니까? 바로 에서는 미워하고 야곱은 사랑하고. 그것을 잘라보면 하나님의 사랑받는 세상 따로 있고 미움 받는 세상 따로 있고. 이것을 줄이면 천국 따로 있고 지옥 따로 있고. 제 말 맞잖아요? 천국 가는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 지옥 가는 사람은 미움 받는 사람. 우리는 관람만 하세요. 손 떼세요. 이미 에서와 야곱은 태어나기 전에 일방적으로 하나님께서 에서와 야곱을 천국과 지옥의 대표자로 이미 시나리오가 짜여있고 세상은 그 시나리오대로 전개되는 그런 입장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다음에 여러분이 궁금한 걸 제가 알아 맞춰보겠습니다. “목사님. 그러면 어떤 사람이 야곱 쪽이고 어떤 사람이 미움 받는 에서 쪽입니까?” 그래도 지옥 가기는 싫은 모양이죠. 그런 것을 지금 묻고 싶어 하지요. 성경에서 창세기 4장에서 그게 나옵니다. 또 두 사람 나와요. 참 세상은 해석하기 쉽습니다. 청군 아니면 백군, 양 아니면 염소, 요한복음 1장에 의하면 어두움 아니면 빛, 참 세상 해석하기 쉽습니다.
창세기 4장에서 가인과 아벨, 짝이 되는 대립된 질, 성질이 나오지요. 제가 질문을 다시 하겠습니다. “목사님. 어떤 사람이 지옥 가고 어떤 사람이 천국 갑니까?”라는 질문에 대해서 제가 자문자답하고 있습니다. 그것 지금 말씀드립니다.
가인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안 받았습니다. 거기서 멈춘다면 가인도 천국 갑니다. 그런데 지옥 갈 사람은 절대로 멈추지 않습니다. 제가 아까 강의하면서 뭐라고 하던가요? 손 떼라고 했지요. 가인은 절대로 손 떼지 않습니다. 자신의 자존심 있고 자신의 행함의 가치를 하나님 앞에서도 포기할 줄 모르는 사람은 지옥 갑니다. “나는 알아.” 그게 불교에요. 천상천하유아독존. 하늘과 땅 사이에 나밖에 없다. 현대기독교신학은 불교로 갑니다. 사람을 좋게 해요. 사람들이 나는 나라고 하니까 맞춰주려고 사람은 기쁘게 하려고 신학도 그렇게 가버렸어요.
여러분, 제가 물을 테니까 속으로 답변해보세요. 아벨이 하나님께 제사 드리면서 죽을 작정하고 제사 드렸겠어요, 그냥 제사 드렸겠어요? 성질 급하니까 제가 하겠습니다. 그냥 제사 드렸어요. 그런데 자기가 형한테 맞아죽는다는 것을 알았습니까, 몰랐습니까? 몰랐어요. 그냥 얻어맞았어요. 아벨은 자기 인생에서 손 뗐습니다. 한 쪽은 손 뗐는데 손 뗀 아벨을 자기 가치를 보상하라고 자기 가치를 되찾겠다고 한 가인의 방식은 바로 하나님만 믿는 사람을 때려죽여 버린 거예요. 그렇게 해서 손상된 자존심을 회복해서 나는 영원히 나는 나라고 주장하는 그게 바로 에서고 그게 바로 가인이고 그게 바로 지옥 가는 사람의 공통적인 특징입니다.
예수님을 어떻게 소유화시켜서 내 것 만들까? 그것 지옥행입니다. 그런 예수님 없습니다. 이유가 뭐냐 하면, 나는 기껏 보는 것이 세상 안의 나거든요. 그러면 소문난 예수님의 능력을 갖겠다는 것은 이 세상을 고집하고 이 세상을 포기 못하겠다는 겁니다. 해와 달, 이 세상을 포기 못하겠다는 겁니다.
그런데 아벨이 죽었던 그 피 안에 누가 들어 있느냐 하면, 바로 예수님의 영이 들어있어요. 모든 선지자에는 예수님의 영이 들어 있습니다. 결국 아벨 안에 있는 예수님의 세계가 가인이 고수하겠다는 가인이 보고 있는 자연세계를 부활이란 방식으로 삼켜버립니다. 따라서 아벨은 죽어서 새 세상 받습니다. 신세계. 아벨은 죽음으로써 승리한 겁니다.
요한계시록 12장 11절에 보면, “또 여러 형제가 어린 양의 피와 자기의 증거하는 말을 인하여 저를 이기었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얼마나 역설적입니까? 여러분, 좀 이상하지요. 주 안에 있기에 사나죽으나 주의 것이라는 겁니다. 아벨이 죽었으니까 아벨이 패배자입니까? 아닙니다. 아벨은 죽기까지 자기한테 손을 뗐어요. 주의 조치에 맡겼습니다. 이게 승리입니다. 이게 팩트에요. 이게 승리한 증거입니다.
그럼 목사님, 자살할까요? 요즘 허드슨 강에서 자살한다는 사람들 많다는데 한강에 비하면 그건 아무것도 아닙니다. 한강은 더 많습니다. 자살하지 마시고, 성악 하는 사람은 성악 열심히 하면서 죽으시고 공부하는 사람은 죽도록 공부해서 죽으시고 운동하는 사람은 운동 열심히 해서 죽으시고 기타 치는 사람은 기타 열심히 치고 죽으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내가 하고 싶은 기타가 아니라 주께서 맡기니까 주께서 시킨 기타기 때문에. 주께서 맡기신 영화감독이에요. 그게 바로 손 떼는 방법이에요.
백수가 무직자가 손 떼는 게 아니고 내 일은 가만있는데 주께서 맡기신 일이기에 그 맡기신 일 가지고 이미 천국의 부활의 세계, 예수님 안에 있는 세계에 들어가는 방식이 나에게는 이런 방식인 것을 주께서는 사명으로 부여하신 겁니다.
가인이 놀립니다. “너, 기타 쳐서 명인 되려고 하지? the best guitarist 되려고 하지?” “아니.” “왜 치는데?” “나는 즐긴다.” 즐겼더니만 베스트 됐다는 거예요. 그러면 나는 즐기는데 왜 베스트 안 돼? 그건 2등 하라고 주께서 주신 사명이죠. 그래서 2등하는 자체를 감사해야 됩니다. 물론 25명 중에 25등하는 사람 있는데 물론 감사해야 되겠지요. 주께서 맡긴.
그래서 젊은 분에게 부탁합니다. 놀지 마세요. 놀지 않는 방식으로 주께 맡기세요. “주여, 오늘은 뭐할까요? 오늘은 뭘 하면서 죽을까요?” 죽도록 마케팅 해야 돼. 그걸 즐겨야 됩니다. 왜? 내가 이걸 해서 세상 속에 나 안 되기 위해서 이미 나는 주님 속에 부활의 세계 속에 나기 때문에 우리는 마음 놓고 그것을 할 수 있습니다. Don't worry(영어 좀 되네. 며칠 살았다고)걱정하지 마세요. 여러분의 모든 걱정은 이 세상 속에 있기 때문에 하는 건데 세상이 나한테 있다면 이것은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겁니다.
예수님 부활 속에 맨해튼 있고 맨해튼 속에 내가 있다면 결국은 예수님 안에 내가 있는 겁니다. 고린도전서 3장 21절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사람을 부러워하지 마라. 사람은 너희 것이고 너희는 예수님 것이고 예수님은 하나님 것이다. 여러분, 러시아 인형 아십니까? 인형 속에 작은 것, 작은 것 속에 또 작은 것, 또 작은 속에 작은 것, 그것을 관계, 주님과의 관계로서 아무리 여러분이 낮은 자리에 갔더라도 부활 속에 예수 안에 있는 사람 이미 죽음을 삼킨 채 즐기듯이 뉴욕거리를 사는 사람입니다.
하도 젊은 분들이 성경을 잘 모르고 어렵다고 하기로 제거 서론을 많이 했습니다. 본론은 아주 짧습니다. 본론 약 5분하고 설교 마치겠습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 혹시 들어본 적 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올림픽하면 John3:16 들고 달리는 사람 있습니다. 전도한다고. 카메라에 잡혀요. 요한복음 3장 16절에 보면,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거기서 세상이 뭐냐는 거예요. 그것 알려드리겠습니다. 오늘 읽었던 본문입니다. 예수님 겟세마네 기도입니다. 궁금하지 않습니까? 오늘 궁금한 게 왜 그렇게 많은지 모르겠다. 예수님께서 땀을 피같이 흘리면서 하신 기도 내용이 뭐냐 하면, 바로 세상 속에 인간을 인간 속에 예수님 안의 세상으로 바꾸는 기도를 한 겁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9절에 보면, “내가 저희를 위하여 비옵나니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그 다음에 “아니요” 요한복음 3장 16절은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사,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니까 하나님이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우리가 주님한테 속임 당했어요? 둘 중에 어느 것이 맞아요? 둘 다 맞지는 알을 거고.
이 세상이 뭐냐? 그 뒤에 해답 나옵니다.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세상 속에, 바로 세상 속에 내게 주심입니다. 드디어 하나라고 여겼던 세상이 갈라지면서 한 쪽은 하늘로 뜰 준비를 하면서 겟세마네 기도합니다. 같이 있을 때는 같이 있다고 여겼는데 내가 세상을 위함이 아니고 세상 속에 내 자식을 따로 떼어놓기 위해서 지금 겟세마네에서 기도하고 죽으시고 부활한다는 겁니다.
따라서 3장 16절 이렇게 제대로 해석합시다. “하나님이 세상 속에 자기 자식을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렇게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에서와 야곱이 결합된 것이 세상이라면 이제 에서는 에서대로 야곱은 야곱대로 분리될 때가 온 겁니다. 예수님의 가치, 예수님은 세상 속에 예수님이 아니고 오히려 예수님 속에 새로운 세계, 신세계에 있다는 것이 믿어지고 그 신세계를 찬양하는 사람은 이제 그리스도와 함께 에녹처럼 부활에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세상 출세하려고 예수 믿고 성공하려고 예수 믿고 그게 다 내 가치 포기 못하겠다는 집념과 집착이었습니다. 주여, 맡기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께서 가는 대로 열심히 살아서 그것이 부활의 능력인 것을 세상에 꿀리지 않는다는 것을 세상에 죽음 능력도 능가한 그 힘에 의해서 작은 일을 한다는 것을 저희들이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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