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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 믿음

이사야 66:15-17 / 여호와의 심판 본문

구약 설교, 강의(이근호)/이사야

이사야 66:15-17 / 여호와의 심판

정인순 2013. 11. 6. 15:58

181강-사66장,15-17,(여호와의심판)-isa09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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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심판

2009년 2월 25일

이근호

 

본문 말씀: 이사야 66:15-17

 

(사 66:15, 개역) 『보라 여호와께서 불에 옹위되어 강림하시리니 그 수레들은 회리바람 같으리로다 그가 혁혁한 위세로 노를 베푸시며 맹렬한 화염으로 견책하실 것이라』

(사 66:16, 개역) 『여호와께서 불과 칼로 모든 혈육에게 심판을 베푸신즉 여호와께 살륙 당할 자가 많으리니』

(사 66:17, 개역) 『스스로 거룩히 구별하며 스스로 정결케 하고 동산에 들어가서 그 가운데 있는 자를 따라 돼지 고기와 가증한 물건과 쥐를 먹는 자가 다 함께 망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맹렬한 불로서 심판하시는 하나님상’은 사람들에게 인기가 없습니다. 사람들은 지옥 이야기든지, 저주와 심판 이야기를 비켜지나가서 여호와 하나님께 나아가려고 합니다. 하지만 그 여호와는 실제하시는 그 하나님은 아니라 상상이 만들어낸 모조물입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구원이란 심판 가운데서 솟아납니다. 그러니까 구원에 접근하는 것은 곧 심판에 접근해야만 가능합니다.

 

심판에 접근할 때는 그냥 무심코 심판과 저주에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왜 우리는 심판받고 저주받아야 하느냐?’를 알아야지만 진정 구원이 축복 중의 축복인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마치 시골에서 물을 찾으려면 먼저 우물을 발견하고 그 우물 깊숙한 곳에서 올라오는 물을 마시듯이 ‘심판이라는 우물’이 다가오면 우리가 기피하지 말고 복음이 다가온 것으로 여겨야 합니다.

 

심판 가운데 구원이 주어지는 첫 번째로 등장하는 대표적인 예가 노아 방주입니다. 노아의 식구들이 느끼는 구원이란 참으로 무서운 대홍수 가운데서의 구원입니다. 왜 자기들만 물에 빠지지 않고 구원이 되어야만 했는지를 명확하게 알아야 될 자들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심판 가운데 둘러싸이지 아니하면 구원의 기쁨이라는 것도 없습니다.

 

노아가 방주에서 나와서 정결한 짐승과 새를 잠아 몽땅 불에 태워서 하늘로 연기를 보내었습니다. 이것이 번제입니다. 요즈음 흔히들 이런 주장하는 사람들이 대세입니다. “이제 그만 십자가를 잊자. 이제부터는 부활의 영광성만 누리면 된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비록 방주에서 노아 식구를 빼내어주어도 ‘구원’에 대해서는 여전히 ‘심판’ 속에 둘러싸이는 방식으로 제공하십니다.

 

마치 옛날 조선 시대의 아낙네들이나 머슴들이 하루하루 그 집안에서 필요한 불씨를 꺼트리면 안되는 것처럼 하나님도 구원의 불씨를 후대로 계속 전달하시려고 하는데 이 불씨는 곧 ‘심판 속에의 구원’이라는 형식을 깨지 않고 전달됩니다. 노아 때의 불씨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창세기 8:21-22에 보면, “여호와께서 그 향기를 흠향하시고 그 중심에 이르시되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인하여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의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내가 전에 행한 것 같이 모든 생물을 멸하지 아니하리니 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모든 인간들은 태어나면서 생각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이 다 죄가 됩니다. 따라서 하나님편에서 마땅히 저주하고 심판하시게 됩니다. 그런데 그렇다면 은혜는 어디서 오는가? 바로 은혜의 출처가 바로 ‘구원의 불씨’입니다. 정결한 제물의 죽음입니다. 지정된 정결한 제물의 죽음 요소가 날 때부터 죄만 짓게 되는 인류에게 자연적인 혜택이 돌아가는 원천지가 되는 것입니다. 다른 원천지는 없습니다.

 

이것을 신약식으로 말하자면 이렇습니다. 고린도후서 5:21에 보면,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구원의 불씨를 위하여 하나님께서 특별히 노아 가정을 살려내신 것입니다. 결코 노아가 다른 사람보다 위대해서가 아닙니다. 다 ‘구원의 불씨’ 때문입니다. 이 ‘불씨’는 필히 ‘심판 속에만 들어있는 구원’입니다. 결코 심판을 벗겨낸 구원은 아닌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하늘의 맹렬한 저주의 심판은 돼지고기나 쥐고기를 먹는 자들에게 임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돼지고기 먹는 것이 왜 하나님으로부터 심판받을 일이 되는 겁니까? 여기서 우리는 다시 창세기 8장 이후로 돌아가 볼 필요가 있습니다. 창세기 9장에서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고기를 음식물로 삼아도 좋다고 하십니다.

 

하지만 피채로 먹지 말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결코 인간의 입맛을 돋우거나 인간의 부족한 식량 보충을 위하여 하신 말씀이 아니라 구원의 정보와 비밀이 음식물 위에 싣기 위해서입니다. 레위기 17장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굽은 있되 갈라지지 않는 돼지고기를 먹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것은 이미 돼지고기를 먹는 것이 모든 인간들에게 일반화된 상황에서 너희 여호와 믿는 백성들은 그들과는 뭔가 달라도 달아야 한다는 취지에서 내리신 말씀입니다.

 

이 ‘다름’이 곧 정결이요 거룩입니다. 구별됨과 차이남을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의 음식문화 속에다 새겨넣으신 것입니다. 마치 몸에 문신 새겨넣는 것과 같습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 6:17에서 자신은 ‘예수의 흔적’을 가졌노라‘고 했습니다. 흔히들 ’돼지고기 먹지 말라‘고 성경에 나오면 그 의미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자신이 자기 행위로 구원받고 싶어 “저, 돼지고리를 안먹을 각오로 구원받겠습니다”는 식으로 나옵니다.

 

이런 뜻으로 돼지고기 먹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보시기에 거룩한 자는 하나님께서 친히 그 사람 속에 새겨넣으신 것이 있습니다. 이것이 장차 메시야가 오셔서 행하신 그 구원의 비밀에 관한 내용입니다. 누가복음 11:10-13에 보면,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너희 중에 아비 된 자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면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알을 달라 하면 전갈을 주겠느냐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마지막 때에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에게 성령을 새겨넣어주시므로서 ‘거룩한 백성’ 노릇을 하게 하십니다. 즉 이 백성은 앞으로 정신이 몽롱하고 치매가 걸린다 할지라도 그 사람 속에 직접 새겨넣으신 성령님이 희석되거나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즉 성도가 젊은 시절에 믿었던 것도 자신의 결심이나 오기로 되어진 것이 아니라 그 때나 지금이나 오로지 성령님의 작용이었습니다. 이것이 신약 시대의 불씨입니다.

 

이 성령이라는 구원의 불씨로 인하여 성도는 자신이 원하는 자아상을 조립하지 못하고 구원의 비밀인 십자가를 드러내는 식으로 인생이 인도받게 됩니다. 예를 들면, 생명의 길은 좁은 길 가는 것도 자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성도 안에 있는 성령으로 인하여 성도의 길이 좁은길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 불씨가 들어오게 되면 성도는 늘 심판입니다. 심판이라면 말은 ‘항상 새로 시작해야 됨’을 말합니다. ‘늘 죽은 자임’이라는 뜻입니다. 노아의 방주 속처럼 마땅히 자신도 심판받아야 될 자임에 불구하고 성령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의인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따라서 이런 자에 있어서 모든 것이 은혜 덩어리며, 그 은혜에 감사하게 됩니다. 앞으로 이 성도가 자랑할 것은 자신의 행함이 아니라 오로지 예수님 십자가 공로 뿐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진작 죽어야 될 우리가 아직도 살아있는 것이 ‘구원의 불씨’로 살아있음을 고백케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