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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 믿음

이사야 58:1-3 / 죄를 고하라 본문

구약 설교, 강의(이근호)/이사야

이사야 58:1-3 / 죄를 고하라

정인순 2013. 11. 6. 12:01

 

155강-사58장,1,(죄를고하라)-isa08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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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를 고하라

2008년 8월 27일

이근호

 

본문 말씀: 이사야 58:1-3

(사 58:1) 『크게 외치라 아끼지 말라 네 목소리를 나팔 같이 날려 내 백성에게 허물을, 야곱 집에 그 죄를 고하라』

(사 58:2) 『그들이 날마다 나를 찾아 나의 길 알기를 즐거워함이 마치 의를 행하여 그 하나님의 규례를 폐하지 아니하는 나라 같아서 의로운 판단을 내게 구하며 하나님과 가까이 하기를 즐겨하며』

(사 58:3) 『이르기를 우리가 금식하되 주께서 보지 아니하심은 어찜이오며 우리가 마음을 괴롭게 하되 주께서 알아주지 아니하심은 어찜이니이까 하느니라 보라 너희가 금식하는 날에 오락을 찾아 얻으며 온갖 일을 시키는도다』

 

하나님께서 좋게 이야기를 해도 될 일을 오늘 본문에서는 ‘죄를 고하라’고 선지자에게 지시합니다. 그것도 나즉하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나팔을 불듯이, 목청이 쉬듯이 하면서 주저없이 외치라고 하십니다. 이것이 선지자들의 특징입니다. 백성들과 타협조로 나오는 법이 없습니다. 세례요한과 예수님도 이러했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고 외쳤습니다.

 

즉 회개없이는 천국도 없다는 겁니다. 그런데 도대체 뭘 회개하란 말입니까? 사람들은 나름대로 죄에 대해서 알고 있고 완전하게 행동하지 못함에 대해서 반성할 용의도 있습니다. 하지만 세례요한이나 예수님이 외친 “회개하라”라는 것은 그런 죄 정도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야고보서 1:16-17에 보면,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속지 말라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속지 말라”고 당부하는 것을 보아서 인간의 죄라는 것이 단순히 몇몇 계명을 위반하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근원적으로 죄가 나올 수밖에 없는 입장에 있음을 말해줍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각양 좋은 것은 지상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위에서 내려오니 기도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똑바로 살아!”라고 하면 실수를 줄이고 정신 차리고 바른 생활하려고 하는 가능성이 비치겠지만 “너는 완전히 속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도리어 그 사람으로부터 분개만 받을 뿐입니다. 요한복음 9:39-41에서도,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소경 되게 하려 함이라 하시니 바리새인 중에 예수와 함께 있던 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가로되 우리도 소경인가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소경 되었더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저 있느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왜 인간은 회개할 가능성마저 자체적으로 닫혀버렸을까요? 마귀는 인간이 이렇게 될 줄을 미리 알았습니다. 즉 인간으로 하여금 아무리 최선의 노력을 다하면 결국에는 무너져버릴 그런 상태를 악마는 알고 있습니다. 악마는 인간에게 생명나무의 존재보다 선악과 나무의 존재를 더 부각시켰습니다.

 

자, 여기에 생명의 나무가 있다고 합시다. 이 생명나무의 과실을 따먹으면 영원히 죽지 않는 그런 나무가 있다고 합시다. 많은 사람들은 이 신기하고 고마운 나무에 매료되어 아무 것도 생각나지 않을 것입니다. 일상에서 일어나는 각종 일이나 중차대한 문제도 생명나무의 존재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닌 것입니다.

 

하지만 악마는 인간의 시선을 생명나무가 아니라 선악과 나무 위주로 집중시켜버리고 말았습니다. 고린도후서 4:3-4에도 같은 맥락의 말씀이 나옵니다. “만일 우리 복음이 가리웠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운 것이라 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이처럼 죄라는 것은 잘못을 저지르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눈이 감겨서 복음의 광채와 생명나무의 존재를 주목하지 못하는 것을 뜻합니다. 사람들은 이런 생명나무에 주목 못하게 되면 자연적으로 관심사가 자기 쪽으로 쏠리게 마련입니다. 즉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면 죄를 적게 지내는 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의 죄가 뭔지를 몰라서 그러합니다. 인간의 죄관은 하나님으로부터 계시가 주어지면 주어질수록 더욱 더 풍성하게 드러납니다. 출애굽기 4장에 보면, 세 가지 기적이 나옵니다. 그 중에 두 번째 기적은, 모세의 손에 관한 겁니다. 그는 자신의 손을 품속에 넣어보니 졸지에 문둥병이 발해져있었습니다. 그 뒤 다시 품속에 넣었다고 빼보니 멀쩡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바로 이 기적은 현재 애굽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하나님 보시기에 저주받을 문둥병 환자들이지만 모세가 가서 그들을 구원해내면 하나님 안에서 거룩한 백성으로 달라진다는 사실을 미리 알려주는 기적이었습니다. 이처럼 인간은 원래 하나님으로부터 저주받아도 마땅한 존재입니다.

 

레위기 14장-15장에 보면, 문둥병과 유출병자에 관한 율법들이 나옵니다. 몸에서 피가 나오는 자가 무엇을 만지든지 하면 그 만져진 그 모든 것이 다 더러운 것이 됩니다. 이처럼 몸에서 피나 고름이나 혹은 여성의 월경을 통해서 나오는 모든 것이 주변을 온통 더럽게 만든다는 말은 곧 인간은 그 자체가 죄덩어리인 채로 살아간다는 말입니다.

 

예수님 시대로 넘어오게 되면 예수님은 자신의 십자가로 인간의 죄를 지적하십니다. 마태복음 21:44에 보면,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어지겠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저를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 하시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십자가는 돌입니다. 이 돌에 돌진하는 자도 깨어지고 이 돌이 들려서 사람 머리 위에 내리치면 가루가 되어버립니다.

 

즉 하나님의 생명나무가 이 지상에 와서는 사람들을 치는 돌이 되는 겁니다. 깨어지지 않고서는 ‘속음’에서 벗어날 길이 없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이해 못했습니다. 말씀대로 살려고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자신들을 향하여 하나님께서 왜 돌로 치게 되는지를 알 수 없습니다.

 

죄와 죽음이란 인간과 하나님 관계가 끊어진 상태를 말합니다. 관계가 끊어진 상황에서 인간들은 나름대로 풍성한 종교적 모양새를 가지고 최선을 노력을 경주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이 그러합니다. 자기네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려고 애쓸 쓰고 있는데 왜 하나님은 자신들의 종교적 행위에 확실한 열매를 주시지 않느냐고 짜증내고 있습니다.

 

그동안 그들은 꿈을 꾸고 있었습니다. 인간들은 한시로 쉬지 않고 새로운 꿈을 만들어냅니다. 하지만 그 허망하고 헛된 개꿈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것입니다. 십자가상에 아들마저 버리는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아들을 버림으로서 인간과 하나님 관계가 끊어져 있음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끊어진 것을 잇는 것은 피로서 주어지는 생명나무 과실 뿐입니다. 예수님의 피로 인하여 자신이 박살나게 된 것이 곧 생명을 얻은 순간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이 세상 신에게 속지 않고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라는 하늘의 은사를 받을 수 있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