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ice
Recent Posts
Recent Comments
Link
«   2025/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Tags
more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복음과 믿음

레 27:1-8 / 서원 본문

구약 설교, 강의(이근호)/레위기

레 27:1-8 / 서원

정인순 2011. 1. 13. 13:08

http://media.woorich.net/~woorich/성경강해/레위기-1990/(26)서원(레27,1-8).MP3

  http://media.woorich.net/~woorich/성경강해/레위기-1990/(26)서원(레27,1-8).hwp

 

 

26. 서원 (레 27:1-8)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자기도 모르게 전쟁을 합니다. 그래서 남들보다 돈도 더 많이 벌어야 하고, 집도 더 큰집에 살아야 하고, 차도 더 좋은 차를 타려고 합니다. 그것은 누가 시켜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고, 너무나도 당연하게 그렇게 되고, 그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를 않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욕심이라고 분명하게 말할 수가 있는데, 문제는 이러한 욕심은 아무리 채워도 채워도 배부르지가 않다는 것입니다. 인간보다 훨씬 더 못한 짐승들도 자기가 필요한 만큼만 사냥을 하면, 제아무리 좋은 먹을 사냥감들이 옆에 있어도 거들떠보지도 않는다고 하는데, 그런데 사람들은 마치 위가 빵구가 난 것처럼 끝없이 먹어 치우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마치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과 같다고나 할까요?


 

문제는 이러한 인생을 살면, 인생이란 항상 허전하고 배가 고프고 외롭고 쓸쓸하다는 것입니다. 채우고 또 채워도 여전히 속이 비어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가난한 사람은 가난한 대로 뭔가 어렵고 부족하고, 부자는 부자인대로 항상 너무 아쉽게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사는 인생의 비극적인 모습입니다. 이러한 삶을 산다면, 인생은 언제나 고달프고 힘이 듭니다. 마치 오르고 올라가도 끝이 없는 그러한 산을 등산하는 것과도 같다는 것입니다.


 

마치 집안에 식구는 많은데, 자식도 있고 아내도 있고 부모도 계시는데, 왠지 마음은 허전하고, 꼭 홀로 무인도에 와 있는 듯한 그런 느낌도 받는 것입니다. 이것을 40대에 갱년기라고 하는데, 그러나 사실은 이러한 모습은 20대고 50대고, 우리가 살아있는 한 항상 찾아오는 것입니다. 인생 자체가 그런 허무함과 외로움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왜 이러한 인생을 살아갑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살기 때문입니다. 분명한 사실입니다. 우리들의 삶 가운데 깊숙이 스며져 있는 하나님의 은혜를 자꾸만 잊어버리고, 자기가 주인이 되어서 살아가려고 하니, 이런 인생에 대한 허무함이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인생의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 하나님을 믿는 것은 분명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러한 문제점도 해결해 주시는데,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고 하니, 이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문제가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어서, 하나님을 떠남으로 말미암아서 계속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머리카락 하나도 하나님의 세신 바 되었는데,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를 왕창 뒤집어 씌어서 살아가고 있는데, 그러한 은혜를 받고서도 모르고 살아가는 인생, 그래서 인생이 불행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날마다 감사하면서 살아간다면, 자식이 없어도, 좋은 집이 없어도, 돈이 없어도 복 받은 삶이라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은혜 자체가 복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 앞에 하나님의 은혜가 놓여 있고, 여러분이 그것을 깨닫는다고 한다면, 이 하나님의 은혜보다, 이것보다 더 큰복이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이 땅에서는 우리가 상상도 못할 복임을 아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은 어떻게 살아갑니까? 보다 더 많이, 보다 더 높이, 보다 더 멀리 날아가려고 밤잠도 설쳐가면서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소위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살아간다고 하면서 말입니다.


 

그러다 보니, 자기가 남들보다 앞서려고 하다가 보니, 문제는 다치는 사람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더 많이 가지기 위해서는 남이 갖는 것을 먼저 가지고 와야만 되고, 더 높이 올라가기 위해서는 남을 누르고 올라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냥 자기 혼자서, 공짜로 그렇게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내가 월급을 100만원을 받다가 200만원을 받으면, 누군지 몰라도 다른 쪽에서 월급을 100만원이 깎이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좋은 집을 산다면, 다른 한 쪽에서는 그 집을 팔고 쓸쓸히 떠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밥을 한 그릇 더 먹으면 나 때문에 굶어야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남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 되는 사회, 그것이 바로 현대사회인데, 우리가 어떻게 이런 사회를 좋다고 말할 수가 있겠습니까? 돈 있는 사람들이야 인사를 받고, 대우를 받으면서 떵떵거리면서 살 수가 있을지 몰라도,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그야말로 비참한 것이 오늘날의 사회이고, 현실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소위 잘사는 나라일수록 자살하는 사람이 늘어납니다. 왜냐하면 돈이 골고루 분배되는 것이 아니고, 자꾸만 가진 자로 모이게 되기 때문에 사람들이 절망하고 낙심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다른 사람의 호주머니만 채워주지 정작 자기에는 그런 노력의 대가가 돌아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물론 말로는 그렇지 않다고들 합니다만,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것입니다. 얼마나 비정하고 냉정한 현실인지 모릅니다.


 

이러한 세상에서, 온갖 힘과 정성을 다해도, 그렇게 노력을 해도 남들만큼 사는 것이 힘이 드는데, 예수님께 정신이 팔리고, 하늘나라에 관심을 두고 살아가는 자들이 과연 잘 살 수가 있습니까? 어떻게 잘 살 수가 있습니까?


 

여러분, 가게에 장사를 해도, 주일 매상이 다른 날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주일에 문을 닫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다른 가게와 경쟁에서 이길 수 있습니까? 없습니다. 아마 자기 집이 아니고 집세를 주고 장사를 해야 한다면, 본전도 건지기 어려울 것입니다.


 

여러분, "주일에 내가 장사를 안 하면 하나님께서 다른 날에 더 채워 주시겠지!" 라고 순진하게만 생각을 해서는 안됩니다. 물론 그럴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믿음이 있어 보이지만, 그것은 바람직한 태도가 아닙니다.


 

"내가 주일에 장사를 하지 않아서 좀 손해를 보아도 괜찮아! 좀 못 벌어도 감사하면서 살아가면 되지!" 라고 하는 마음가짐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채워주시면 고맙겠지만, 그렇게 아니하실 찌라도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신앙 생활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물질에 하나님의 복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인생의 참 행복은 어디서 찾을 수 있습니까? 이 세상에서, 많은 돈 가운데서, 좋은 직장에서, 멋있는 집에서, 과연 우리가 그런 것에서 행복을 찾을 수가 있습니까?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런 사람은 바보 중에 바보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부자를 이야기할 때, 어리석은 부자라고 하는 것입니다. 부자라고 해서 다 그런 것이 아니고, 다른 것보다 돈을 더 사랑하기 때문이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돈이 10만원만 가지고 있는 부자도 있겠지요. 10억이 있는 가난한 사람도 있고 말입니다.


 

그러면 참 행복을 자식이나 남편에게서, 가정에서 행복을 찾을 수가 있습니까? 세상에서는 그렇게 들 말을 합니다. 돈이 없어도 행복한 가정이 있으면 그것이 참된 행복이라고 말입니다. 물론 그 말은 어느 정도 맞는 것처럼 보입니다. 돈보다 가정에서 어떤 정신적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훨씬 더 지혜로워 보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것도 역시 잘못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참 행복은 어디서 찾을 수 있습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에게서만 우리 인간이 참 평안을 얻을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분이 우리에게 돈을 많이 벌게 해주고, 가정을 행복하게 해 주어서 행복을 그분에게서 찾는 것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 자체가 우리 행복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서 헛된 것을 쫓아 그것을 행복이라고 착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행복은 바로 우리 곁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속에, 바로 여기에 행복이 있고, 이런 하나님의 말씀을 간직하고 살아가는 우리의 삶 하나 하나의 행복의 연속인 것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귀가 우리는 믿는 자들을 유혹하기 위해서 보여주는, 그러한 헛된 것에서 행복을 찾아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그야 말로 마귀가 우리를 지옥으로 데려가기 위해서 길동무하기 위해서 만들어낸, 우리의 삶을 망치는 또 하나의 선악과임을 명심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더불어 사는, 그리고 이렇게 주일에 교회에 나와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이러한 삶 가운데서 행복을 찾으시고, 그것이 참 행복임을 다시 한번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산과 바다로 놀러 다니고 즐기는 것이 아니고 말입니다.


 

이제 오늘 본문말씀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마 여러분들이 보시면서 좀 복잡하다는 것을 느꼈을 줄 압니다. 그래서 이런 복잡한 것을 다 생략하고 간단히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자들입니다. 머리카락부터 시작해서 발끝까지, 어디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않은 구석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서, "하나님 이제까지는 우리가 말할 수 없이 큰 은혜를 받았는데, 이제 우리도 뭔가 좀 성의를 표시하겠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겠습니까?" 라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아니다. 너희들이 무엇을 할 필요가 없다. 따로 뽑은 제사장들이 모든 일을 다 할 것이다. 그러니 너희들은 무엇 일을 하기보다는 제사장들이 하나님의 일을 잘 하도록 너희들은 너희들이 해야할 일을 돈으로 계산해서 바쳐라!" 라는 것입니다.


 

3절에서 7절까지 보면, 그런 내용들이 계속해서 나와 있습니다. 노동력의 대가로서 얼마를 바치라고 하면서, 힘이 센 남자부터 제일 많이 내서 일을 하기에 약한 순서대로, 50세겔, 30세겔, 20세겔, 10세겔, 이런 식으로 그 값을 정해 주시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무엇을 생각해야 합니까? 이것이 일종의 감사헌금인데, 신약시대와는 의미가 좀 다릅니다만, 하나님께 바치는 것도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의 연속선에서 생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무엇을 받은 것만 은혜만 아니고, 우리가 하나님께 도로 바치는 것도 역시 은혜라는 것입니다. 너무나 큰 은혜를 받았기에 주어도 역시 아깝지 않다는 것입니다. 감사해서 드리지 않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아까운 마음으로 바치다가는 축복이 아니라 저주를 받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제아무리 주어도 아깝지가 않을 것입니다. 마치 할머니가 손자에게 있는 것 없는 것 다 털어서 주듯이 말입니다. 오히려 너무 지나쳐서 문제가 되지 않습니까?


 

그러면 마음은 바치고 싶은데 형편이 안 되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돈이 없으면 몸으로도 해야 하는데, 그런데 몸으로 봉사하는 사람들은 따로 정해져 있으니까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그것이 오늘 본문 8절에 나와 있습니다. 제가 읽도록 하겠습니다.

(레 27:8) 그러나 서원자가 가난하여 너의 정가를 감당치 못하겠으면 그를 제사장의 앞으로 데리고 갈 것이요 제사장은 그 값을 정하되 그 서원자의 형세대로 값을 정할지니라


 

이 구절이 오늘 말씀에 있어서 제일 중요한 것인데, 무슨 말인고 하니,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은혜에는 감사하고 싶고, 그런데 아무 것도 바칠 것이 없는 가난한 사람들을 제사장에게로 데리고 오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사장은 그 사람을 보고 은 몇 세겔로 그렇게 값을 정하지 말고, 단돈 시백원이라도(우리 집 막내가 10원을 이렇게 부릅니다), 단 돈 시백원이라도 하나님께 바치고 하나님께 감사해라는 것입니다. 그것도 하나님께서 너무 너무 기쁘게 받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미리 정해진 값에 아무런 구애를 받지 말고 말입니다.


 

원래는 남자는 얼마, 여자는 얼마, 어린아이는 얼마, 나이든 사람은 얼마, 이렇게 미리 헌금 액수가 정해져 있는데, 그런데 형편이 어렵거든 그런 것에 구애받지 말고, 단 돈 10원 짜리 하나라도 하나님께 감사하게 바치라는 것입니다.


 

돈이 아까워서 십원, 백원을 헌금하는 그런 구두쇠말고, 정말 하나님 은혜에 감사해서 아무리 적은 것이라도 해도, 당당하게 넣을 수 있는 믿음,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헌금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동일한 사랑을 베풀어 주셨기 때문에, 받는 마음도 크고 작은 것이 있는 것이 아니고, 헌금하는 액수가 적든지 크든지 하나님께서 동일하게 받고 기뻐하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진 것이 없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렇게 헌금을 하라고 합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그렇게 보시겠다는 것입니다. 차별이 있는 것이 아니고 동일한 사랑으로 여기시고 다같이 기뻐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을 축복하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이러한 물질로 감사하는 모습은, 오늘날처럼 물질에 찌들고 돈에 놀아나는 한국교회에 그야말로 따끔하게 일침을 가하는 말씀인 것입니다. 가진 자가 대우를 받고, 장로 되고 권사 되는, 그야 말로 하나님의 사랑의 정신을 모독하는 교회, 그런 것은 교회가 아닙니다. 그냥 세상의 친목 단체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십자가가 달려있다고 해서 교회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 앞에서, 예수님의 십자가 피 앞에서, 자기가 가진 것을 자랑할 수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는 모습말고 다른 것은 튀어나와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참 행복은 어디에 있습니까? 아둥바둥 서로 먼저 출세하려고 싸우는 이 세상 속에 있을까요? 그러한 곳에는 불행만이 가득 차 있습니다.


 

다시 한번 물어보겠습니다. 참 행복은 어디에 있습니까? 참 행복은 바로 여기에,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바로 우리에게 참 행복이 있음을 아시기 바랍니다.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 몸, 이 머리카락, 손가락, 발가락, 아니 우리가 더럽다고 생각하는 몸의 때라고 할지라도, 그 하나 하나에도 하나님의 사랑이 스며있음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이러한 하나님 사랑의 결정체로서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만 바라보고 살아가는 인생이 참으로 복 받은 인생입니다. 날마다 그 크신 은혜에 감사하면서 믿음으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아 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