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과 믿음
레 24:10-16 / 부모의 역할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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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부모의 역할 (레 24:10-16)
이 세상에는 두 종류의 신앙생활이 있는데, 처음 한 쪽은 하나님을 믿되, 자기 쪽에서 하나님께로 나아가려는 사람들이 있고, 다른 한 쪽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로 나아와야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렇게 자기가 열심히 믿어서 하나남께 나아가야만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자기의 열심과 정성을 다해서 하나님께 바치려고 합니다. "받아 주소서!" 라고 하면서 말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헌금을 해도 천 원보다는 만원으로 해야 하나님이 더 좋아한다고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많이 바칠수록 하나님이 좋아한다고 생각을 하니까 말입니다.
이렇게 자기 쪽에서 최선을 다해서 하나님께 나아가려고 하는 사람은, 매사에 다 열심이지만, 그러나 힘들어합니다. 의무적으로 그렇게 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강박관념에 시달리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은 뭔가를 하지 않으면 불안한 것입니다.
기도를 해도 10분보다는 한 시간을 해야 마음이 시원하고, 전도를 해도 한 사람 보다 열 사람에게 해야 기분이 뿌듯하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를 아니하면 자기 마음이 초조해 지는 것입니다. 자기가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반면에, 하늘에게 내려오는 신앙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이런 것에 연연해하지를 않습니다. 왜냐하면 자기에게는 뭔가 보여 줄만한 것이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기가 무엇을 할 것인가가 아니라, 주님께서 베풀어주시는 것에 항상 관심을 가진다는 것입니다.
자기에 대해서 기대를 하지 않습니다. 자기를 인도해 주고 이끌어 주시는 분이 따로 있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아는 것입니다. 자기를 창조하시고 인도하시는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두 손에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 온 몸을 다 맡기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은 때로는 보기에 너무나도 무책임해 보이고, 일관성도 없어 보이고, 자존심도 없어 보이는 것입니다. 자기가 열심히 일해서 먹고살려고 하지 않고, 자꾸만 뭔가 다른 곳에 기대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 쪽에서 뭔가 하려고 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뭔가 분명 있어 보이고, 열심히 하려는 의지가 대단해 보이지만, 그러나 결국에는 자포 자기하게 되고, 쓰러지고 만다는 것입니다. 기진맥진해서 주저앉는다는 것입니다.
이런 인간의 노력으로 신앙 생활을 하면, 조금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항상 초조하고 불안합니다. 살아가는 것이 두렵고, 겁이 난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런 신앙은 성경에서 말하는 그런 믿음이 아닌 것입니다. 그런 것은 바로 이 세상에서 인간들이 지옥에 가기 싫어서, 한 번 몸부림을 치는 것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러면 성경은 어떤 믿음을 제대로 된 믿음이라고 합니까? 어떻게 살아야만 제대로 신앙으로 산다고 할 수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것은 먼저 자기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만들어 졌음을 철저히 깨닫는 사람입니다. 즉, '내 주인이 누구인가?' 하는 것을 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살아가는고 하니, 자기를 만드신 그 분이 시키는 데로만 살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관심이 자기가 아니라, 자기를 만드신 그 분에게 두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남들이 볼 때는 평소에는 너무나 평범하고, 오히려 믿음이 없는 것처럼 보여도, 환난이 닥치거나 시련이 와도 흔들리지를 않고, 항상 자기가 걸어왔던 그 길을 꾸준하게 걸어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어떤 일을 당해도 두려워하지 않고 누구를 원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큰 일도 조그마하게 여기고 마치 아무 일이 없었던 것처럼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때는 미련해 보이기까지 하는 것입니다.
이런 믿음에 대해서, 로마서 8장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롬 8: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자, 그렇다면 여러분은 과연 어느 쪽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까? 우리들의 신앙생활이 나로부터 출발을 합니까? 아니면 하나님으로부터 시작을 하고 있습니까? 어떤 믿음 생활을 하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정말로 만물이 주로 나와서 주께로 돌아감을 고백하면서, 나의 모든 것을 다 주님께 맡기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아니면, 아직도 나의 그 어떤 것 때문에, 불안해하고, 염려하면서 살아가느냐는 것입니다. 성경은 여기에 대해 너무나 분명히 못 박고 있습니다.
(창 1:1)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다시 말해서, 모든 것이 하나님께 속해 있다고 성경이 시작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너무나도 확실합니다. 여러분들은 과연 이런 사실을 믿습니까? 성경을 그냥 말로만 믿는다고 하면 안 되고, 이러한 사실을 믿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담대하게 살아가야만, 그것이 바로 성경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다고 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고백이 날마다 우리에게서 터져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이러한 출발을 하나님이 아니라, 다른 무엇으로 한다고 한다면, 그것은 아무리 성경, 성경이라고 외쳐대도, 성경을 믿는 모습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경을 믿지 않는 사람은, 아무리 노력을 해도 성경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다시 말씀드려서, 성경을 하나님으로 출발해서 보지 않는 사람은 성경이 무엇을 말하는 가를 알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말씀을 보기 전에, 먼저 이 말씀이 진정으로 믿어지는 그러한 말씀이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인 레위기 24장 10절 이하의 말씀을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옵니다. 아이들끼리 놀다가 싸움이 붙었는데, 그만 한 쪽의 아이가 하나님의 이름을 저주했습니다. 어른들의 싸움도 아니고, 아이들끼리이니까 그럴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아이들이니까 말입니다. 아직 잘 모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른들이 이 아이를 붙잡아서 하나님께 여쭈어 봅니다. "하나님이여, 이 어린놈이 이렇게 하나님의 이름을 훼방했는데 어떻게 할까요?" 라고 말입니다. 그렇게 말하니까 하나님께서 뭐라고 하십니까? "돌로 쳐서 죽이라" 라는 것입니다.
아니, 하나님을 욕했다고 아이를 잡아서 물어보는 어른도 그렇고, 또 그 아이를 죽이라고 하시는 하나님도 너무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아이들끼리 싸우다가 철이 없어서 그렇게 한 것을 가지고, 벌이나 좀 세우고 종아리를 때린다고 한다면 몰라도, 죽이라고 하시니까 말입니다. 그것도 돌로 쳐죽이라고 하시니까 말입니다. 너무 심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어떻게 하나님께 영광이 되느냐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런 장면에서, 특히 그 아이의 부모의 입장에서 한 번 상상을 해 보십시오. 그 어린아이가 싸우다가 말 한마디를 잘못했다고, 부모가 보는 앞에서 그 아이가 돌에 맞아서 죽는다고 한다면, 그 부모는 도대체 이러한 하나님을 믿고 싶은 마음이 도무지 있겠습니까? 그리고 시키는 데로 하는 이웃사람들은 얼마나 밉겠습니까?
이러한 내용을 보면서도, 과연 우리는 하나님을, 인자하시고, 자비롭고, 사랑이 넘치는 하나님이라고 하면서, 하나님의 이러한 면을 상상이나 해보셨습니까? 아마, 오늘 이런 본문을 처음 보시는 분도 계시는 줄 압니다. "성경에 이런 내용도 있었나?" 하고 놀라 실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너무 잔인하고, 차갑고, 무섭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이런 본문을 그냥 지나치면 안 됩니다. 도대체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하시는가를 알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 믿는 하나님을 제대로 우리가 안다는 것입니다. 그 어린아이를 죽이라고 하신 하나님이, 바로 오늘 우리가 믿고 있는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과거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신 하나님은 그렇게 무섭고 냉정하신 하나님이시고, 오늘날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우리가 무엇을 잘못해도 무조건 용서해 주시고 봐 주는 하나님입니까? 과연 그렇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그렇게 우리 마음대로 생각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전도서에 보면, 세상은 헛되고 헛되다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러한 세상이 헛되다는 것을 평소에는 잘 모르고 있다가, 자기가 아주 심한 병에 걸렸다든지, 가까운 이웃이 죽었다든지, 사업에 망했다든지 하는, 그런 경험을 해야 비로소 깨닫는 것입니다.
불이 나서 평생 모은 재산이 하루아침에 와르르 무너졌을 때에, 그런 경험을 해봐야 비로소 인간은 세상이 헛되다고 하는 성경말씀을 떠올린다는 것입니다. 그런 일이 있기 전에는 사실 안 믿고 사는 것입니다. 겉으로는 믿는다고 하면서도 말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건성으로 대강 대강 듣는 경우가 너무나 많습니다. 아무리 설교를 해도 도무지 귀담아 들으려고 하지를 않는다는 것입니다. 듣는 척 하면서도, 자기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듣지 아니하는, 하나님 말씀이 달면 삼키고 쓰면 뱉어 버리는 못된 모습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정말 어떤 적에는 설교 준비를 하다가도 화가 나서 다 집어 던져 버리고 싶은 때도 있습니다. 듣지 좋은 말은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것이지만, 그러나 성경이 그러한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저는 성경을 아무리 살펴보아도, 우리 마음을 도닥거려주고, 칭찬해 주는 구절이 있음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다만, 그런 쪽으로 자꾸 하나님의 말씀을 오해해서, 잘못 생각하는 것입니다. 정말 이러한 성경에 대한 태도는 설교자에게나 듣는 자들에게나 모두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말씀이 조금 옆으로 나갔습니다만, 본론으로 돌아와서, 인생이 헛되다는 것을 그래도 사업이 망해서라도 깨닫는 다면, 그래도 다행이라는 것입니다. 깨닫지 못하는 사람도 얼마든지 있으니까 말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아야 하는 사람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아니하고, 전혀 의지하지 말아야 할 이 세상을 의지하고, 또 재물을 의지하면서 살다가 이러한 어려움을 당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안 믿는 사람이라면 몰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사람이라면 이런 정신상태로 살아가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일은 있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왜 예배당 꼭대기에 십자가 달려 있어야 합니까? 다른 사람들에게 여기가 예배당이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한 것입니까? 그렇다면 무슨 무슨 교회라고 크게 적어 놓으면 되지, 꼭 십자가는 왜 달아놓느냐는 것입니까?
그것은 바로 십자가가 달려 있는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은 날마다 십자가를 지고 사는 자들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입고 있는 이 양복과 옷은 다 눈에 보이기는 하지만, 헛것입니다. 이런 우리의 밖으로 드러난 모습이 문제가 아니고, 십자가를 지고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성도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실상 예배당 꼭대기에 달아놓은 십자가는, 단순히 여기가 교회라는 것을 표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십자가는 남들이 보고 보라고 달아놓은 것이 아니고, 우리들이 날마다 기억해야하는 십자가라는 것입니다. 남의 십자가가 아니고, 바로 자기가 지고 가야하는 십자가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만약 그런 마음가짐의 십자가가 아니라고 한다면, 우리는 십자가를 떼어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무슨 필요가 있습니까? 저 십자가를 보고 우리 교회로 사람들이 보다 많이 모이게 해달라는 마음으로 달아놓은 것입니까?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못난 허물을 이 주님의 십자가 앞에서, 하나님 앞에서 철저히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다. 나는 오직 십자가를 지신 주님의 은혜로 살아가는 것이지, 이 세상의 돈으로 명예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주님만을 바라보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십자가를 믿는 성도의 모습인 것입니다.
본문 말씀 10절, 11절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레 24:10) 이스라엘 여인의 아들이요 그 아비는 애굽 사람 된 자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 나가서 한 이스라엘 사람과 진 중에서 싸우다가 (레 24:11) 그 이스라엘 여인의 아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훼방하며 저주하므로 무리가 끌고 모세에게로 가니라 그 어미의 이름은 슬로밋이요 단 지파 디브리의 딸이었더라
지금 본문 말씀은 싸우고 있는 아이들이 누구인가가 하는 것이 아니고, 지금 누구의 아이들이 싸우는가, 그들의 부모가 누구인가 하는 것을 밝혀 놓고 있습니다. 한 아이는 애굽 남자와 이스라엘 여자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이고, 또 한 아이는 부모가 양쪽이 다 이스라엘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싸우는 아이들의 부모를 밝히고 있습니까? 사실 이러한 아이들이 싸워서 하나님의 이름을 저주해서 죽는 끔찍한 사건이 아이들의 잘못 뿐만 아니라, 사실은 그 잘못이 아이가 문제가 아니고, 그 아이의 부모에게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부모의 책임이라는 것입니다.
지금 싸우다가 여호와의 이름을 함부로 불러서 죽을 운명에 놓인 아이의 부모가 누구인고 하니, 그 아버지는 애굽 사람이고, 그 어미는 이스라엘의 단 지파 디브리의 딸인 슬로밋이라고 밝혀 놓고 있습니다.
이렇게 구체적으로 그 아이의 어미의 이름까지도 밝히는 무엇 때문에 그렇습니까? 이 아이가 이렇게 하나님의 이름을 저주하는 잘못된 행동을 보이는 것은 바로 부모의 책임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책임을 애굽인인 아버지보다 슬로밋이라는 이스라엘 여자인 어머니에게 더 많이 두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아버지보다 어미의 책임이 더 크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그 부모가 보는 앞에서 온 백성들이 돌을 던져서 이 아이를 죽이는 것은, 바로 부모를 죽이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부모가 이렇게 잘못되게 아이를 교육시켰기 때문에 자식이 대신 죽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부모의 역할이 무엇입니까? 자식들을 건강하게 잘 키우는 것입니까? 물론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욱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그래서 아이를 죽이는 것입니다. 그러니 사실은 부모의 잘못으로 아이가 죽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부모의 본질적인 책임은, 가정에서 아이를 사랑하고 몸 건강히 잘 키우는 것이 아니고, 물론 그런 책임도 중요합니다만, 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누구인가?" 라는 것을 제대로 가르칠 막중한 책임이 부모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에게 옷을 사서 입히고, 학교에 보내는 것이 전부가 아니고, 하나님을 제대로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주일학교 교사들에게만 맡기지를 말고 부모가 그 역할을 감당하라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부모의 자격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아니하면 하나님께서 그 자식을 부모로부터 도로 빼앗아 가시겠다는 것입니다. 이것만은 결코 하나님께서 양보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너무나도 확실한 태도를 보이시는 것입니다.
부모들이 자식을 키우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키우는 것이 아니고, 이 세상의 영광을 위해서, 세상에서 출세시키기 위해서 자식들을 키우면, 그러한 것은 하나님께서 결코 용납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렇게 하나님을 모르고 오직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살아가는 태도, 바로 그러한 것이 바로 오늘날 가장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하는, 저주하는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부모가 하나님의 영광을 모르고 이 세상만을 바라보고서 살아간다면, 자식도 그러한 길을 걸어갈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자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용서하지를 않겠다는, 도저히 그냥 넘길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택하신 것은, 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가 아니고, 그들을 통해서 영광을 받으시기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일을 감당해야 할 이스라엘 민중에서, 비록 어린아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이름을 저주했을 때에는 죽음을 당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죽입니까? 14절입니다.
(레 24:14) 저주한 사람을 진 밖에 끌어내어 그 말을 들은 모든 자로 그 머리에 안수하게 하고 온 회중이 돌로 그를 칠지니라
지금 성경이 뭐라고 말씀합니까? 그 아이를 통해서 하나님을 저주하는 소리를 들은 사람들이 그 아이의 머리에 손을 얹어서 안수하고 나서, 그리고 나서 돌로 쳐서 아이를 죽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왜 그 아이를 그냥 죽이지 그 머리에 안수를 합니까? 제가 레위기를 시작하면서, 제사를 설교할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제사를 드릴 때에 그 제물에 안수하고 죽인다고 말씀을 드린 적이 있었습니다. 기억이 나십니까? 제물에 안수하는 것은, 바로 내가 죽어야 하는데 제물이 대신 죽는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이 아이에게 안수하는 것은 왜 그렇습니까? 그것은 바로 "나도 바로 그러한 나쁜 놈인데, 그래서 나도 죽어야만 하는데, 안수하고 어린 너를 죽이는 구나!" 라는 마음으로 돌을 던져서 죽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실은 아이를 향해서 돌을 던지는 것이 아니고, 자기 자신을 향해서 돌을 던져서 죽인다는 것입니다. 자기를 죽인다는 것입니다. 그 아이의 부모는 두 말을 할 필요도 없고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갑니까?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자녀를 키우고 있고, 또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까? 정말 하나님의 이름만이 영화롭게 되는, 오직 그분에게만 영광을 돌리면서 살아가고 있습니까? 아니면, 아직도 이 세상에 대한 영광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신 이유는 바로 영광 받기 위해서입니다. 그분의 마음을 알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성도의 모습입니다.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는 주님의 백성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아 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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