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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 믿음

레 18:24-28 / 이방 풍습 본문

구약 설교, 강의(이근호)/레위기

레 18:24-28 / 이방 풍습

정인순 2011. 1. 13. 11:45

http://media.woorich.net/~woorich/성경강해/레위기-1990/(16)이방풍습(레18,24-28).MP3

  http://media.woorich.net/~woorich/성경강해/레위기-1990/(16)이방풍습(레18,24-28).hwp

 

 

 

16. 이방 풍습 (레 18:24-28)


 

우리는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인도로 애굽에서 탈출해서 가나안 땅으로 가고 있는 그 여정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즉, 광야 생활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들어가는 그 가나안 땅이 우리는 일반적으로 젖과 꿀이 흐르는 아주 비옥한 하나님의 약속의 땅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물론 그렇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그 땅은 "토하는 땅" 이라는 것입니다. 멀미를 해서 음식을 올리듯이 그렇게 토해버린다는 것입니다. 소위 "오바히트" 라는 것 말입니다. 그런데 땅이 그렇게 한다는 말입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사람이 아니라 땅이 그렇게 하니 말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하나님께서 약속한 가나안 땅은 하나님의 마음에 맞지 아니하면 토해 버리는 땅이라는 것입니다. 들어 갔다가도 하나님의 마음에 맞지 아니하면 도로 튀어나올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 가나안 땅이 보여주는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천국입니다. 그러므로 천국도 토해내는 그러한 특징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자기에게 맞지 않으면 거부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몸처럼 말입니다. 몸이 토하는 것이 나쁜 것이 아닙니다. 자기 몸에 맞지 않으면 토해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도저히 몸이 견뎌나지를 못한다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교회에서 목사님들이 설교를 하면서,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여러분들은 괜찮습니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미 구원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안심하라는 것입니다. 아마, 저도 그런 목사중의 한 사람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고, 구원받았다고 마음을 놓으라는 것도 큰 문제인데,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어떤 죄를 지어도 하나님이 용서해 주시니 너무 그렇게 개의치 말라는 것입니다. 즉, 죄의 문제를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버린다는 것입니다. 죄를 용서해 주시는 분이 항상 기다리고 있으니, 괜찮다는 것입니다. 죄를 짓더라도 너무 염려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아주 극단적인 경우가 과거에 있었습니다. 지금부터 약 300년 이전에 교회가 제일 많은 유럽에서 일어난 일들인데, 그때는 종교개혁이 일어나기 전이기에 개신교가 따로 없고 다 로마 카톨릭이 하나의 교회를 이루고 있던 시기입니다. 천주교 말입니다.


 

그때 교회에 무엇이 있었는고 하니까, "면죄부" 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죄를 지은 사람이 죄를 지은 만큼 돈을 교회에 바치면 그 죄가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얼핏 들으면 구약의 "속죄의 제사" 같은 느낌을 주지만, 그러나 이 면죄부는 그리스도의 피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인간이 만들어낸 것입니다.


 

물건을 훔쳤을 때는 얼마, 사기를 쳤을 때로 얼마, 거짓말을 했을 때는 얼마, 이렇게 금액이 정해져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돈 많은 사람은 자기 마음대로 온갖 더러운 짓을 다 하면서도, 주일날 교회에 와서 헌금만 많이 하면 그 순간 모든 죄가 깡그리 모두 다 날아가 버린다는 것입니다.


 

사실 처음에는 이것이 그리 나쁜 의도로 만들어진 제도는 아니었습니다. 교회에 와서 회개를 하되, 말로만 그렇게 하지를 말고, 정말로 통회하는 심정으로 자기의 귀한 물질들을 회개의 모습으로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 자체가 그렇게 나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시간이 지나가면서 습관화되어 버린 것입니다. 습관이 된다는 것은 참 무서운 것인데, 그 애통해하는 심정은 사라져 버리고 돈만 남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어떻게 변질이 되는고 하니, 무슨 안 좋은 일을 하려고 하면 먼저 교회에다 돈을 내어놓고 사고를 치는 것입니다. 마음 푹 놓고 떳떳하게 말입니다. 그야말로 완전히 헌금을 가지고 장난을 치게 되었던 것입니다.


 

아마도 여러분들은, "목사님, 설마 어떻게 그런 일이!" 라고 하시겠지만, 그러나 분명하게 실제로 있었던 일입니다. 그리고 더 무서운 것은 지금도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하다는 것입니다. 소위 그런 카톨릭에서 개혁했다고 하는 한국의 개혁교회, 개신교에서도 말입니다. 그러니 지금 카톨릭 교회가 웃고 있지 않습니까?


 

교회는 그러한 것이 잘못인 줄 뻔히 알면서도, 돈이 되니까 눈을 감고 만 것입니다. 항상 돈이 교회든지 어디든 가서 문제를 일으키는 것입니다. 심지어 죽은 자기 부모도 자식이 대신해서 돈을 바치면 그 부모의 죄도 사라져서 지옥에서 천국으로 들어간다고 하는 그런 사기를 교회가 앞장서서 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돈으로 지금 그렇게 웅장해 보이고 멋있어 보이는 유럽의 천주교의 교회 건물들이 들어선 것입니다. 아무리 멋있고 아름다워도 그것이 교회입니까? 그러한 더러운 돈으로 지어진 화려한 교회에서 하나님께서 아무리 예배를 드린들, 하나님께서 대꾸나 하시겠습니까? 이것 때문에 종교개혁이 일어나기도 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주님이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는 분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이 말은 교회에 무엇을 바치라고 하는 것이 아니고, 자기의 죄가 무엇인지를 알라는 것입니다. 그 죄가 얼마나 지독했으면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에서 온 몸에 피를 다 흘리고서 죽어야만 했는지를 똑똑히 알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십자가의 피가 보여주는 것이, 바로 앞으로 그런 죄를 더 이상 짓지 말라고 하는 주님의 음성을 알아듣고, 회개하고 애통해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를 믿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자꾸만 이러한 소리를 들으면, 그것을 비판하면서도 어떻게 됩니까? 면죄부가 그렇게 변질된 것처럼, "예수님, 제가 십자가의 피를 믿을 테니까, 제가 나쁜 일을 조금 해도 용서해 주십시오" 라는 쪽으로 갈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그렇습니다. 나쁘다고 하면서 보고 듣고 배운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정말 무서운 이야기가 아닙니까? 인간이 이렇게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마져도 이렇게 이용을 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현상들이 우리 교회에서 일어나고 있지 않다고 누가 장담을 하겠습니까? 항상 자기 자신을 살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말씀인 28절을 보겠습니다.

(레 18:28) 너희도 더럽히면 그 땅이 너희 있기 전 거민을 토함같이 너희를 토할까 하노라


 

자, 지금 하나님은 누구 편입니까? 이스라엘 편입니까? 땅 편입니까? 땅 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의 땅에 관심을 두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범죄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땅에 오면 땅이 더럽혀지고 토해내어야 하니까,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깨끗이 하셔서 데리고 오시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려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중심이 아니고, 자기가 그들에게 약속한 땅 중심이라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은 하나님 중심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자신이 하신 약속 밖에 모르시는 것입니다. 그 약속 말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약속에 관심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옷을 깨끗이 세탁해서 입는데, 왜 옷을 깨끗이 합니까? 옷 때문입니까? 아니지 않습니까? 옷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그 옷을 입는 사람을 위해서 옷이 세탁기에 들어가서 뒤틀려야 하고, 사람 손에 비벼져서 깨끗하게 되어서 자기를 빛나게 하는 것이 아니고, 그 옷을 입는 사람을 보기 좋게 해준다는 것입니다.


 

무슨 뜻인지 아시겠습니까?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입는 옷과 같은 것입니다. 광야라고 하는 커다란 세탁기 속에 들어가서 40년 동안을 마구 세탁을 당해서, 가나안 땅에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누구를 위해서 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니고, 하나님 자신을 위해서 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얼마나 철저하게 자기 영광만을 고집하시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제가 하나님은 하나님 편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러한 이야기를 들으면 섭섭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너무 하신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사람은, 자기 영광이 아니라, 오직 주의 이름이 영화롭게 되는 것을,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을 기뻐한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이상하지만 말입니다. 도저히 이해하기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저는 지금 하나님의 말씀을 여러분들에게 이해시키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제가 어떻게 그렇게 하겠습니까? 다만, 저는 "하나님은 이러한 분이십니다" 라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를 구원시켜 주셔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그것이 무작정 좋은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렇게 자기의 이름이 아니라, 자기의 구원이 아니고, 하나님께 관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자가 구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항상 착각하는 것이 무엇인고 하니, "하나님은 내편이다" 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기도를 해도, 내 가족, 내 교회, 내 나라밖에 모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연히 그런 기도를 들어주신다는 것입니다. 내편이니까 말입니다.


 

다시 한번 더 묻겠습니다. 하나님은 누구 편입니까? 하나님은 오직 하나님 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내편도 되고 하나님 편도 되는 것이 아니고, 내편은 아니고, 오직 하나님은 하나님 자기편이라는 것입니다. 다만,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는 것은, 그것은 하나님의 약속에 의해서 우리를 사랑하는 것이지, 무턱대고 우리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마저 거부한다면, 우리는 갈 곳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이 넘쳐흐를 때 신앙 생활을 제대로 해야 할 줄 압니다. 기회가 항상 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설교를 시작하면서, 하나님께서 약속한 가나안 땅이 토해내는 성질이 있다고 했는데, 그러면 어떻게 하면 토해냄을 당하지 않고 살아갈 수가 있겠습니까? 한 마디로 말하면, 희생의 대가를 늘 생각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누군가 나를 대신해서 희생되었다고 하는 사실을 항상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약속의 땅에서, 천국에서 토해냄을 당하지 않고 영원히 살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면, 또 그 십자가 희생의 피를 믿는 자기 자신을 생각하는데, 그것이 아니고, 내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십자가에서 희생당하신 분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그분만을 자랑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람을 구원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약속대로 일을 이루어 가시는 과정에서, 하나님의 사랑으로 우리가 구원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 구원이 목적이 아니고, 하나님의 영광, 자신의 영광이 목적이라는 것입니다. 이제 무슨 뜻인 줄 아실 줄 압니다.


 

목사의 임무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들을 잘 도닥거려서, 마음을 맞추고 화목하게 해서 하나님의 구원에 이르게 하는 것이, 천국에 들어가게 해주는 것이 목사의 역할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목사가 무슨 능력이 있다고 그런 일을 합니까?


 

여러분, 목사는 여러분의 입장을 옹호해 주고, 비위를 맞추어주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런 바램은 아예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저는 그러한 마음이 정말 추호도 없습니다. 다만,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목회자는 오히려, 평소에 사람들이 자기 밖에 모르고, 하나님께서 선택 하셨다고 해도 자기를 구원하기 위해서 선택했다고 생각을 하고,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을 자기가 구원받는데 이용하려고 하는, 그런 마음이 하나님께서 얼마나 싫어하시며, 인간의 욕심인가 하는 것을 전달하는 사람입니다. 비록 여러분들이 싫어해도 말입니다.


 

여러부느 하나님께서 약속한 땅은, 천국은 어떤 곳입니까? 예수님말고 자기 이름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토해내어 버리는 곳, 그 곳이 바로 천국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예수님만을 자랑하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예수님만을 이야기하면서 살아갈 것 아닙니까? 자기 이야기를 하면, 또 서로 자기자랑 하다가 열 받고 싸움 밖에 더 하겠습니까?


 

천국에 들어 갈자는, 요한 계시록에 보면 세마포 흰옷을 입는데, 무엇을 의미합니까? 깨끗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는 그러한 죄가 말끔히 다 씻겨지고, 오직 예수님만으로 가득 차 있는 사람만이 들어 갈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마음이라면, 토하는 땅에 가서라도 토해냄을 당하지 안고 영원히 살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가득 차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분명합니다. 너무나 확실합니다.


 

자, 이제 좀 고민되는 시간이 왔습니다. 설교시간에 과연 이런 이야기를 해도 되는가 할 정도로 민망한 이야기가 이 레위기 18장에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6절부터 23절까지 계속 기록되어 있는데, 자세한 것은 집에 가셔서 한번 읽어보시고, 그 내용인 즉, 근친상간(近親相姦)에 관한 것입니다. 자기 형제들과 친척들과 성 관계를 하는 그런 추악한 일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남자가 남자끼리, 여자가 여자끼리 관계를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런 말씀을 하십니까? 그런 일이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으니까 하시는 말씀입니다. 짐승이라면 몰라도 사람이 어떻게 그런 일을, 이라고 생각을 하지만, 인간의 죄가 이만큼 더럽고 무섭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일들이 지금도 이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엄연한 사실인 것입니다. 사랑에는 국경도 없다고 하면서, 같은 남자들끼리 결혼을 해서 엄연히 부부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정말로 자기 멋대로 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러한 내용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무슨 주간지나 스포츠 신문이 아니고,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에 기록되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의미합니까? 왜 하나님께서는 이런 부끄러운 것을 읽으라고 하십니까?


 

아마 이 성경구절들을 오늘 처음 보시는 분도 분명히 계실 것입니다. 왜 이러한 부끄러운 내용들이 기록되어 있어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근친상간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스스로 행한 것이 아니고, 이미 이방나라인 애굽에 있을 때에 보고 배운 것이라는 것입니다.


 

3절, 4절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레 18:3) 너희는 그 거하던 애굽 땅의 풍속을 좇지 말며 내가 너희를 인도할 가나안 땅의 풍속과 규례도 행하지 말고

(레 18:4) 너희는 나의 법도를 좇으며 나의 규례를 지켜 그대로 행하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니라


 

애굽에 있었던 이방 풍속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이런 것말고도 여러 가지 풍속들이 있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애굽의 이방 풍속을 언급하시면서, 바로 가장 대표적으로 근친상간을 말씀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방 풍습의 대표적인 모습인 이러한 근친상간이 무엇을 보여줍니까? 바로 인간의 죄라는 것입니다. 인간의 죄의 모습을 이렇게 적나라하게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행하는 다른 것들도 물론 다 죄가 되고 말입니다.


 

조금 어렵습니다만, 이 죄(罪)라고 하는 것은 하나의 권력이고 폭력이라는 것입니다. 자기가 그만한 힘을 가졌기에 마구 자기의 힘을 휘두르는 것입니다. 이런 폭력의 가장 극단적인 경우가 이렇게 근친상간이라는 성폭력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 당시 애굽의 모습이고, 오늘날 이 세상이라는 것입니다. 대한민국도 예외가 아닙니다. "동방예의지국" 이라고 말들을 하지만, 그러나 그런 것은 희망사항에 불과할 뿐, 지금 우리나라가 이런 인간이 지은 죄로 말미암아 얼마나 병들어 가고 있는지를 분명히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 마음에 하나님이 없기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기에 인간들은 이렇게 자기 마음대로, 이웃의 입장은 전혀 생각도 하지 아니하고, 그렇게, 그렇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것이 다 파괴되는 것입니다. 우리 보기에는 다 멀쩡한 것 같지만 모조리 부수어지고 박살이 나고 만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심판이 이미 시작된 것입니다. 그 심판을 보여주는 분이 예수님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방 나라는 죄로 똘똘 뭉쳐져 있다는 것입니다. 도무지 본 받을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약속의 땅 가나안의 풍속도 본 받지 말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역시 이방 풍속이기 때문입니다. 가나안 땅은 지금 현재로 아무 것도 없는 것이 아니라, 이방 족속이 그 땅을 차지하고 있는데, 그들을 확실하고 철저하게 쫓아내어야만 제대로 된 약속의 땅이 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러한 이방풍속은 도무지 하나님께서 약속한 땅에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것이 있으면, 추악하고 더러운 이방 풍속이 남아 있으면 하나님께서 토해낼 수밖에 없으니, 모두 다 없애버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보고 배웠던 이방 풍속도 버려야 하고, 같은 차원에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그곳에서 자기잡고 있는 이방 나라들도 다 박살을 내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도저히 인정사정을 봐 줄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깨끗하게 쓸어 버려야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거역할 수 없는 명령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우리가 살고 이 땅은 어떠한 곳입니까? 과연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입니까? 그 어떤 짓을 해도, 아무리 무서운 죄를 지어도 전혀 토해낼 생각은 하지 않고서, 그냥 꾸물 꾸물거리며 모든 것을 다 삼켜 버리는 무서운 곳입니다.


 

쉽게 말씀드려서, 죄악 된 세상이라는 것입니다. 죄가 여기저기 군데군데 있는 것이 아니고, 아예 죄로 물들어버린 세상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로마서에서는 사망 권세가 이 세상을 덮쳤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세상과 같이 손잡고 함께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죄라는 죄는 다 모아놓은 이곳에서 우리가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없지 않습니까?


 

요즘,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좀 배운 젊은 학생들을 중심으로 "선한 문화를 만들자" 라고 하는데, 아니 도대체 이 세상에 선한 구석이 어디 있느냐는 것입니다. 어디 선한 곳이 있어야, 선한 문화를 만들든지, 못 만들든지 할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인간들이 아무리 만들어보았자 선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거기에 제 아무리 예수라는 이름을 갖다 부쳐도, 그것은 하나님의 약속이 아니기에, 모두 다 악한 문화밖에는, 우리가 버려야 하는 쓰레기들 밖에 안 나온다는 사실입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우리는 이 세상을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이 세상이 제법 괜찮고, 아직 쓸만한 구석이 있다면, 왜 하나님께서 새 하늘과 새 땅을 다시금 창조하십니까? 있는 것 고쳐서 쓰면 되지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짐을 싸들고 떠날 준비를 다 한 나그네들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나그네는 지금 자기가 있는 곳에 미련을 두지 않습니다. 아무리 튼튼한 집을 짓더라도 천막으로 여기고 살아갑니다. 천막으로 말입니다.


 

제 아무리 형제가 많아도, 부모와 처자식이 있어도, 집이 스무 채가 있어도, 그러한 이 세상의 것에는 그렇게 연연해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직 주님 한 분만으로, 그분만으로 만족해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자기 자신 밖에는 모르고, 알아도 자기 가족, 식구 밖에는 모르는 것이 사랑이 아니라, 자기가 죄인 줄을 알고 나 자신까지도 버리고 살아가는 것이 성도라는 것입니다. 그런 곳에 참 사랑이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우리가 왜 성도입니까? 어떻게 이 죄악 된 세상에서 살고 있는 우리가 거룩합니까? 그것은 바로 하늘에 속한 자이기 때문에 말입니다. 이 세상이 아니라 하늘에 속한 자 말입니다. 하늘 말입니다.


 

우리는 정말 토해냄을 당할 수밖에 없는 죄인들이지만, 오직 주님의 은혜로 토해냄을 당하지 않고, 영원히 그 나라에서 살아가는 주님의 백성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 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