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과 믿음
레 19:17-18 / 이웃 사랑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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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이웃 사랑 (레 19:17-18)
기독교라고 하는 것은 하늘에서 일방적으로 베풀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무엇을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땅에서 위로 올라가는 이 세상의 종교와는 전혀 다르다는 것입니다.
오늘본문은 이웃 사랑에 관한 것인데, "내가 이웃을 이 만큼 사랑하면, 이웃도 나에게 이 정도로 해 주지 않겠느냐" 라고 하는 것이 일반적인 이웃사랑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가는 정이 있어야 오는 정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이웃 사랑이라는 것은 뭔가를 바라는 것이 아니고, 그냥 베풀어주는 것입니다. 그러니 입이 툭 튀어나올 이유도 없고, 섭섭한 것도 없는 것입니다. 왜 섭섭하다고 생각을 합니까? 나는 이 만큼 해주었는데, 왜 당신은 그렇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그 만한 대가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우리가 그러한 대가를 바라지 않는다면, 이런 문제로 말미암아 이웃과 다투지를 않을 것입니다. 대부분의 다툼들이 바로 이런 생각 때문에, 자기가 그 정도 해주었으니, 어느 정도는 대가를 바라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이런 대표적인 것이 바로 결혼식 때의 축의금입니다. 그것을 기록했다가 받은 만큼 되돌려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5만원을 했으면, 아무리 못해도 그 정도는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사실 이런 것이야말로 우리 교회 내에서는 반드시 없애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웃 사랑을 완전히 모욕하는 것입니다.
사실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내가 교회에 이 정도로 충성했으니, 어느 정도의 보상을 받아야 되겠다고 하는, 그렇게 해서 교회에서 자기 위치를 견고히 하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바람직한 것이 아닌 것입니다. 왜냐하면 교회라는 것 차체가 이러한 인간의 자기 공로를 완전히 거부하기 때문입니다.
교회라고 하는 것은 주님의 일방적인 사랑에 의해 세워진 것입니다. 주님의 그러한 희생 앞에 우리는 누구나 다 빚진 자이고, 할말이 없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자기를 자랑하는 것이 아니고, 언제나 예수님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한 마디로, 하나님께서 자기 마음대로 다 알아서 하시는 것입니다. 구원이라고 하는 것도 하나님께서 다 알아서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구원을 시켜달라고 해도, 그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일방적인 선택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기독교라는 입니다.
마치 미역을 가지고 음식을 만들 때, 미역을 물에 담구었다가 물기가 흘러내리는 것을 죽죽 훑어서 필요에 따라서 요리를 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건져서 죄가 뚝뚝 떨어지는 우리를 빨아서 깨끗하게 하셔서 사용하신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우리들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우리를 들어 사용하시는 하나님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즉, 성경의 핵심은 우리의 구원이 아니고, 우리를 구원하시고, 자신의 뜻대로 행하시는 하나님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묻어있는 이러한 세상의 물기를, 탐욕과 교만과 자기밖에 모르는 자기 사랑 등으로 뭉쳐져 있는 죄를 다 털어 버리시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런 것이 묻어 있고서는 도무지 하나님 마음에 합당하지가 않다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에 맞게 만들어서 우리를 어딘가 데리고 가시는데, 그곳이 바로 천국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천국에는 이러한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오직 예수님만을 사랑하고 자랑하고 해야 하는 것이지,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자기를 내세우는 일은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천국을 "하나님 나라", "예수님 나라", 그리고 "아들의 나라" 라고 하는 것입니다. 결코 인간의 나라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만약에 남들에게 착한 일을 해서 칭찬하는 소리를 들을 때도, 내가 칭찬을 듣는 것이 아니고, 내가 믿는 하나님이 그렇게 하셨구나 하는 소리를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이웃사랑에 대한 본문이 있는 레위기 19장을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는, 거룩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거룩이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어떻게 하는 것이 거룩하게 하느냐는 것입니다. 그것은 9절에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레 19:9) 너희 땅의 곡물을 벨 때에 너는 밭 모퉁이까지 다 거두지 말고 너의 떨어진 이삭도 줍지 말며
추수를 할 때 조금 남겨 두라는 것입니다. 땅이 있다고 그 밭은 곡식을 다 가져가면 땅이 없는 사람은 어떻게 하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니 자기 것이라고 다 가지지 말고 조금 남겨두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거룩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평소에 보통 생각하는 거룩과는 그 얼마나 다릅니까? 점잖은 것하고, 거룩한 것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거룩이라는 것은, 추수를 하면서 조금 남겨두는, 이웃을 생각하는 그런 모습이 거룩이라는 것입니다. 자기보다는 남을 생각하는 마음, 그것을 하나님께서는 거룩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돈이 있다고 해서 다 자기 것이 아니고,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돈 있는 자가 모든 힘과 권력을 가지고 남을 괴롭히는 그런 자본주의는 거룩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음을 우리는 알아야만 하겠습니다. 자본주의는 하나님께서 만드신 제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선악과를 먹고 타락한 인간의 작품인 것입니다.
거룩이라고 하는 것은, 내 마음대로 사는 것이 아니고, 비록 내가 땀을 흘려서 씨를 뿌리고 열매를 맺게 했기 때문에, 내가 다 가져가도 아무도 말할 사람이 없지만, 그래도 하나님께서 그렇게 해주신 줄 알고, 하나님을 의식하면서, 하나님께서 시키는 데로 남에게 조금이라도 나누어줄 수 있는 그러한 마음을 거룩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어떤 것을 거룩하다고 말하고, 혹은 더럽다고 합니까? 예를 들어서, 시장에서 고기 장사를 하는 아주머니들의 비린내나는 돈을 더럽다고 생각하고, 은행에서 금방 찾아온 깨끗한 돈을 깨끗하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헌금을 할 때도 가능한 깨끗한 새 돈으로 하는 것입니다. 심지어 새 돈이 없을 때는 구겨진 돈을 다리미로 다리기도 하고 말입니다. 저도 과거에 그렇게 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처럼 사람을 그렇게 외모로, 밖으로 드러난 것으로 평가하지를 않는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우리 마음속에 하나님의 은혜가 출렁이고 있는가? 얼마나 하나님 은혜에 감사하면서 살아가고 있는가? 정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는가? 그것을 가지고서 하나님은 거룩하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의 마음을 담고 살아가는가 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11절에는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레 19:11) 너희는 도적질하지 말며 속이지 말며 서로 거짓말하지 말며
무엇입니까? 말씀대로 도적질 안하고, 속이지 말고, 거짓말 안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리 복잡한 것이 아닙니다. 핑계를 대지말고, 변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도적질하는데 무슨 기준이 필요합니까? 남의 돈을 100원이든, 100만원이든 훔치면 그것들이 모두 다 도적질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뜻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은 복잡한 것이 아닙니다. 조용히 살아가면서 순종하면 되는 것입니다. 북 치고, 꽹과리 치면서, 두 손을 들고, "할렐루야" 하면서 고함을 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그렇게 요란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조용하게 신앙 생활을 하는 것을 가지고, 믿음이 식었다든지, 능력이 없다든지, 성령을 받지 못했다고 하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이는 것은 있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야말로 성령을 받지 못하고, 바로 마귀에 사로잡힌 자임을 알아야하는 것입니다.
신앙 생활은 그야말로 조용한 것입니다. 그리고 너무 평범합니다. 시끄럽게 떠들고 소리치고 외치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조용한 가운데서 주님만 생각하며, 시키는 데로 "예", "예" 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남을 속이지 말고, 거짓말하지 말고, 부모 공경하며, 이웃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무엇이 시끄러운 것이고 그렇게 어렵습니까? 자꾸만 자기의 자존심을 꾸역꾸역 밀어 넣다보니, 하나님의 뜻과 자기의 뜻이 충돌을 하게되고, 그래서 하나님께서 변명을 하고, 또한 그러한 것을 감추기 위해서 요란한 신앙생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신앙은 분명히 정상적이 아님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뭔가 자기에게 문제가 있을 때 사람은 분주해지고 시끄러워지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신앙생활을 하면서, 소나무 뿌리를 뽑았다느니, 40일 동안 금식기도를 했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를 하는데, 자기는 나무 가지 하나도 못 꺾고, 40일은커녕 단 하루만 굶어도 정신이 하나도 없는데, 그러면 내가 하는 신앙생활은 아무 것도 아니란 말인가 하는, 이런 생각이 가끔 들지는 않습니까? 13절을 보겠습니다.
(레 19:13) 너는 네 이웃을 압제하지 말며 늑탈하지 말며 품군의 삯을 아침까지 밤새도록 네게 두지 말며
이웃을 압제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돈이 있다고 이웃을 기죽이지 말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돈이 많이 있어도 몇 천만 원짜리 그런 옷을 사 입는 것은 기독교인으로서 할 짓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으로 말미암아서 자기의 이웃이 고통을 당한다는 사실을 알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품삯을 가지고서 장난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요즘 말로 하면 6개월 짜리 어음 같은 것은 발행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임금을 가지고 미루어서도 안 되고 말입니다. 우리 교회에는 사업하는 사람이 없어서 그렇지, 사업가들이 많은 교회에서는, 이 레위기 19장은 봉독하기조차 어렵지 않을까 생각을 해봅니다.
사업을 하면서 임금을 착취하지 않고, 하청업체를 괴롭히지 않는다고 하면, 정말 그런 사람이 신앙이 제일 좋다는 것입니다. 매일 철야기도를 하고, "할렐루야" 하면서 소리를 지르는 사람보다도 말입니다. 참 신앙생활은 정말 교회당 밖에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이러한 정신으로 살면 하늘의 복이 정말 여러분 것이 될 것입니다. 목사가 복을 빈다고 복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제대로 하나님의 말씀에 조용하게 순종하는 삶을 살면,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모든 복이 정말 여러분의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런 복을 누리고서 살아야만 제대로 사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을 의식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사도바울은 사람들을 두려워하면 자기는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모두가 다 그리스도의 종으로 주님만 생각하며, 그 분의 뜻을 기리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14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뭐라고 하시는고 하니, "귀 먹은 자를 저주하지 말고, 소경 앞에 장애물을 두지 말라" 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떻습니까? 너무 무리한 요구가 아니자 않습니까? 오히려 너무나 당연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15절을 보면, 재판을 할 때, 남을 판단해야 할 때 가난한 자라고 무조건 보아주는 것도 안 되고, 또한 돈이 있다고 편을 들어서도 안 되고, 공평하게 행하라는 것입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을 의식하고 살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인 17, 18절을 다시 한 번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레 19:17) 너는 네 형제를 마음으로 미워하지 말며 이웃을 인하여 죄를 당치 않도록 그를 반드시 책선하라 (레 19:18)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나는 여호와니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바로 이러한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답까지 다 가르쳐주고, 이렇게, 이렇게 하면 된다고 하니 얼마나 쉽습니까? 그냥 무엇을 만들어서 하라는 것도 아니고, 하나님께서 시키는 데로만 하면 되니까 말입니다.
자, 그런데 중요한 것은 지금부터입니다. "하나님이여, 우리가 이것을 다 지켜야 되는 줄 아는데, 만약에 이 중에서 하나라도 빠뜨리면, 못 지키게 되면 어떻게 됩니까?" 라는 생각이 든다는 것입니다.
"다른 것은 다 지키고도 혹시 실수라도 해도, 몇 개를 못 지킨다면, 그렇다면 우리는 천당에 못 가는 것입니까? 사람이 어떻게 다 할 수가 있습니까? 아무리 마음은 그렇다고 할지라도 이 몸이 따라 주지 않아서 못하게 되면 어떻게 됩니까?" 라는 고민들이 분명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율법을 주시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사랑을 한 번 내어놓으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사랑을 내어놓으려고 해도 그 사랑만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욕심도, 죄도 동시에 튀어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말씀을 못 지키는 것이 되고, 천국에는 못 가는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조금 어렵습니다만, 잘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율법을 주신 것은 지키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지금 말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설교하면서 분명히 지키라고 해 놓고, 이제는 그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늘본문의 이웃사랑에 대한 율법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우리가 이웃을 그러한 마음으로 대할 때도 있고, 그렇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쉽게 말씀드려서, 거지가 들고 있는 깡통을 보고, 천 원짜리를 넣어줄 때도 있지만, 그러나 어떤 때에는 그 속의 돈도 다 빼앗아 버리고, 그 깡통조차도 들고 차 버리고 싶을 때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러한 행동을 숨기지 말고, 안 그런척하고 외식된 행동을 하지말고 하나님 앞에 솔직히 고백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와서 솔직히 그러한 자기의 못난 모습을 내어놓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런 문제를 가지고 오면, 하나님께서 제대로 인도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미역을 물에서 건져서 죽 죽 훑어내듯이 하나님께서 그렇게 우리를 제대로 만들어 가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까지 자기를 숨겨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게는 부끄러워서 숨겨도 하나님께는 그렇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다 알고 계신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이웃을 사랑하지 못하고, 부모를 공경하지 못하고, 내 만 생각하는 그런 탐심이 마음속에 가득 차 있으면, 그것을 가지고 이리 뒹굴고 저리 뒹굴고 하면서 끙끙거리지 말고, 고민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 나와서 내어놓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알아서 다 해결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완전하지 못하고, 죄인이라는 것을 잘 알고 계십니다. 우리가 미쳐 모르는 은밀한 죄까지도 하나님은 모두 알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런 하나님께 무엇을 자랑하고 말고 할 것이 있습니까? 부끄럽더라도 다 내어놓으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죄인인 우리가 하나님의 완전함으로 말미암아서, 하나님께서 그야말로 완전한 은혜를 베풀어주심으로 말미암아서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해주신다는 것입니다. 0점은 0점대로, 30점은 30점으로, 60점은 60점으로, 그대로 나오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100점으로 만들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말입니다.
사실 우리가 이웃을 사랑해야 하는 줄은 너무나도 잘 압니다만, 현실적으로 미워하는 이웃도 우리에게는 분명히 있습니다. 정말 얼굴도 보기 싫고, 그 집 문에는 발로 대기 싫은 이웃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이여, 이웃을 사랑하게 하옵소서" 라고 말입니다. 그렇게 해서 사랑해지면 다행인데, 기도하면 할수록 더욱 미워진다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입니까?
"하나님이여, 왜 그러한 사람이 있는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왜 그런 사람을 내 눈앞에서 사라지게 하지를 않습니까? 이사라도 좀 보내어 주시면 얼마나 좋습니까?" 라고 하나님께 따져 보기도 하는 것입니다.
왜 그러한 사람이, 눈에 가시 같은 사람이 자기 앞에 있어야 그런 사람이 있어야, 그 사람을 통해서 자기 자신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아, 나는 바로 이런 놈이구나!" 라고 하면서 자신의 연약함을 깨닫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바로 자기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그런 사람을 거부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을 통해 자신의 죄인임을 깨닫고, 그래서 하나님의 용서함을 받아서 가는 나라가 천국이라는 것입니다. 그냥은 못 가고 반드시 용서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죄에서 건져서, 죄가 뚝뚝 흘러나오는 우리 몸뚱아리를 그야말로 쥐어짜야 하기 때문에, 비록 우리들에게는 그것이 아픔이 되고, 고통이 되고, 피눈물이 되어도,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어려운 말로, "율법의 고발 기능"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죄에 속하여져 있음을 고발해서, 그래서 우리를 제대로 바로 잡아서 천국으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바로 이러한 우리의 모습으로 말미암아,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자기 몸을 매달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는, 우리의 모습을 우리의 이웃이 아니라, 십자가 앞에서 살펴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살아가는 것이 힘이 들고 어렵습니까? 주님께 나와서 모든 것을 다 맡기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그 십자가의 피 묻은 손으로 우리를 어루만져 주시고 제대로 인도해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의지해야 하는 것은 오직 주님의 은혜와 자비입니다. 정말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우리 힘으로 살라고 우리가 지금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세상 사람들이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자기 힘으로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오직 주님의 은혜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날마다 주님의 십자가의 은혜에 감사하면서, 모든 것을 다 주님께 다 맡기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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