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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 믿음

히브리서 (8) - 12,13장 본문

신약 설교, 강의(이근호)/히브리서

히브리서 (8) - 12,13장

정인순 2011. 1. 4. 15:25

 

[ 히브리서 (8)] - 12,13장 
                                                             

1998,6 강의(이근호) 정리(구득영)

* 이제 히브리서 12장을 살펴보자.

(히 12:1)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히 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예수님을 인해서 발생된 증거인데, 오직 예수를 바라보자는 것이다. 그 다음에 드디어 십자가가 나온다는 것이다. 그런데 안양대학교 김영규 교수의 글에는 십자가가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얼마나 부끄러움을 당했는가? 그런데 개의치 않고 결국은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도 그러한 증거를 가질 때 예수님처럼 그렇게 된다는 것이다.

(히 12:3)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
(히 12:4)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 흘리기까지는 대항치 아니하고
(히 12:5)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히 12:6)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하였으니

* 이제 징계를 하는 이유가 보다 분명해졌는데, 증거하는 자가 보다 증거하는 자 답도록 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예수님의 모습대로 증거하는 자의 모습을 제대로 세우기 위해서 말이다.

* 이것이 바로 '아들 됨' 이라는 것이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인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아들이 되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당했던 그 기준에 맞추어서 우리들도 그렇게 교정된다는 것이다. 그런 자가 하나님의 백성이고 믿은 자 라는 것이다. - 10분 휴식 !

* 바울서신의 구조는, '너희들은 이런 사람이니 이렇게 살아라' 라는 것인데, 그런데 히브리서는 총괄적으로 '하나님께서 너희들을 이렇게 다루신다' 라는 것이다.

(히 12:11)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달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나니
(히 12:12) 그러므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히 12:13)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 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

* 이것이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에게 행하시는 일인데,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곧은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를 고침을 받게 하고 말이다. 그런데 그렇게 하는 기준이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아들' 이라는 것이다.

(히 12:6)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하였으니
(히 12:7)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 하시나니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 그러므로 이 아들은 일차적으로는 분명히 예수님이지만, 한 걸음 더 나아가서 하나님의 백성들도 똑같이 그러한 위치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 다시 말해서, 전체적으로 보면, 하나님께서 일괄적으로 자기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밀어 부치는데, 그것은 '예수님처럼 살기!' 라는 것이다. 그러니 사도바울과는 조금 다르다는 것이다. 바울은 '이렇게 했으니, 이렇게 하라' 라고 나왔는데 말이다. 물론 성령께서 그렇게 인도를 하시지만 말이다. 그러나 히브리서는 하나님께서 직접 그렇게 하신다는 것이다.  

(히 12:14)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좆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 이 말씀도 역시 아들다움의 기준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이런 기준으로 주께서 계속해서 징계를 해 가신다는 것이다. 그러니 '왜 때립니까?' 라고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이 기준을 가지고 자기 백성과 남의 백성을 구별한다는 것이다.

(히 12:16) 음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식물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있을까 두려워하라

* 그러니 '내가 어떻게 구원받을까?' 라는 생각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에서와도 같다는 것이다. '아버지의 뜻이 무엇인가?' 라는 것을 먼저 생각하라는 것이다. 그래야 아들이 아니겠는가? 아버지의 마음을 제대로 알아야 '아들다움' 이라는 것이다.

(히 12:22) 그러나 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산과 살아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천만 천사와
(히 12:23) 하늘에 기록한 장자들의 총회와 교회와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및 온전케 된 의인의 영들과
(히 12:24) 새 언약의 중보이신 예수와 및 아벨의 피보다 더 낫게 말하는 뿌린 피니라

* 지금 히브리서가 말하고 있는 것은, 다른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다른 세상으로 두들겨보내기 위해서 징계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는데 그 핵심은 '언약의 피' 라는 것이다. 수많은 천군 천사와 장자들의 총회와 교회와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온전케 된 의인의 영들이 있는데, 그 가운데 언약의 피가 들어있다는 것이다.

* 이러한 언약의 피가 이 지상에서 흘려졌는데, 그것이 바로 십자가의 피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십자가의 피와 하늘의 언약의 피 사이를 통과해야 하는 것이 하나님의 아들들인 성도들이라는 것이다.

* 그러니 히브리서에서는 결코 이 언약의 피를 양보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예수님으로부터 시작된 것을 결국 예수님이 계신 곳까지 이끌어내는데 전력을 다하는 것이 히브리서에 나오는 '하나님의 일' 이라는 것이다.  

(히 12:25) 너희는 삼가 말하신 자를 거역하지 말라 땅에서 경고하신 자를 거역한 저희가 피하지 못하였거든 하물며 하늘로 좇아 경고하신 자를 배반하는 우리일까 보냐
(히 12:26) 그 때에는 그 소리가 땅을 진동하였거니와 이제는 약속하여 가라사대 내가 또 한번 땅만 아니라 하늘도 진동하리라 하셨느니라
(히 12:27) 이 또 한번이라 하심은 진동치 아니하는 것을 영존케 하기 위하여 진동할 것들 곧 만든 것들과 변동될 것을 나타내심이니라
(히 12:28) 그러므로 우리가 진동치 못할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
(히 12:29)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니라

* 여기 12절에서, '내가 또 한번 땅만 아니라 하늘도 진동하리라' 라고 했는데, 이것이 무슨 뜻인가? 땅을 진동한 것은 구약의 모세 때 일인데, 그러나 지금은 하늘을 흔든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진동치 아니한 것을 영존케 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리고 이렇게 땅과 하늘을 흔든 것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영원한 곳이 따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땅이 흔들리는 그런 것에 신경 쓰지 말고, 영원한 것을 바라보라는 것이다.

* 이런 자세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13장에 나오는 여러 가지 현상들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즉, '형제 사랑하기를 계속하고',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고',  '혼인을 귀히 여기고', '돈을 사랑치 말고' 라는 것들 말이다. 즉, 흔들리지 않는 영원한 세계가 있으니 흔들리는 세계에 관심을 두지 말라는 것이다.

* 그래서 우리가 히브리서에 있는 대로 제대로 설교를 한다면, 사람들로 하여금 눈에 보이고 나타난 것에 몰두하는 것을 저지하게 된다는 것이다. 흔들리는 이 세계에 마음을 두는 사람들 말이다. 그렇게 못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 그러므로 '기도하면 교회가 성장하고, 가정이 잘 되고, 회사가 부흥하고' 라고 하는 것은 그야말로 흔들리지 않는 세계에 속한 자의 모습이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지상에 있는 교회나 단체들이 아무리 잘 되어도, 과연 그것이 영원히 계속되는가? 아니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영원한 것은 따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히 4:1)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 혹 미치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

* 무슨 뜻인고 하니까, 지금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안식의 때에 가지 못할까 노심초사(勞心焦思)하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들어갑니까, 못 갑니까?' 라는 것을 물으라는 것이 아니고 말이다. 우리가 이런 안식의 때를 고대하지 못한다면 결국 흔들리는 이 세상에서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 그러므로 성경해석은 '내가 구원을 받습니까?' 라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마음이 무엇인가?' 라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여러분,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 무엇인지를 아십니까? 흔들리는 이 세상에 마음을 빼앗기지 마시고 영원한 세상만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라고 해야 한다는 것이다.  

◈ 이 세상을 떠나서 새로운 세상으로 갑시다 !!

* 우리가 말씀을 전하면서, '이것이 정답이다' 라는 것이 항상 정립되어 있어야 하는데, 사실 그것이 매우 간단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곳을 떠나서 저리로 갑시다' 라는 것이다. 떠나는 이 세상에 미련 두지 말고, 헤어진 첫사랑에 마음쓰지 말자는 것이다. 만나봐야 요동하는 이 세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아무리 보고 싶어도 말이다. - 은정아 !

* 사람이 이 세상만 집착하다보면, 여러 가지 무리수를 두게 되는데, 차라리 이 세상을 떠난다고 보면 그냥 덤덤해진다는 것이다. 그러니 자기의 구원이 문제가 아니라, '내가 누구의 증인인가?' 라는 것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 이제 히브리서 13장을 보자.

(히 13:1) 형제 사랑하기를 계속하고
(히 13:2)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
(히 13:3) 자기도 함께 갇힌 것같이 갇힌 자를 생각하고 자기도 몸을 가졌은즉 학대받는 자를 생각하라
(히 13:4) 모든 사람은 혼인을 귀히 여기고 침소를 더럽히지 않게 하라 음행하는 자들과 간음하는 자들을 하나님이 심판하시리라
(히 13:5) 돈을 사랑치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 3절에서, 학대받는 것은 예수님 때문에 그렇게 당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4절의 '혼인을 귀히 여기고' 라는 것은, 쓸데없는 정욕에 사로잡히지 마라는 것이다. 물론 바람도 피우지 말라는 것이다. 인간의 이 세상에 대한 욕망은 무한대니까 말이다.

(히 13:6)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가로되 주는 나를 돕는 자시니 내가 무서워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하노라

* 여기서 말하는 주께서 우리는 돕는 차원이란, 나에게 용돈을 많이 주시는 것이 아니고, '어느 놈이 와도 무섭지를 않다' 라는 것이다. 모세의 부모가 바로 왕을 두려워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무서워해야 할 대상은 이 세상이 아니라, 하늘과 땅을 뒤흔드시는 하나님을 무서워해야 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왜 시시한 같이 흔들리는 인간을 무서워하느냐는 것이다.

* 이런 이야기들이 한국교회에서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거부당한다는 것이 얼마나 가슴이 아픈지 말이다. '가자. 하늘로!' 얼마나 간단한가? 그런데 지금 한국교회는 '선교하자. 땅 끝까지!'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땅도 역시 흔들리는 땅인데, 그런데도 선교사는 떠날 줄을 모른다는 것이다.

(히 13:7) 하나님의 말씀을 너희에게 이르고 너희를 인도하던 자들을 생각하며 저희 행실의 종말을 주의하여 보고 저희 믿음을 본 받으라
(히 13:8)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은 언제나 동일하게 작용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동일한 인간을, 오직 예수님만을 증거하는 인간을 원하신다는 것이다.

(히 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 어떤가? 말씀이 살아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말씀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말씀이 우리를 인도하신다는 것이다. 말씀이 주체라는 것이다. 우리가 아무 것도 안 하는 것이 아니고 말이다. 말씀이 우리를 움직이게 한다는 것이다. 말씀을 깨닫는 것도 내가 믿음이 좋아서 그런 것이 아니고, 말씀이 깨닫게 해주신다는 것이다. 그러니 모든 공로를 말씀에 돌려야 한다는 것이다.

* 참된 성도라면 항상 이렇게 말씀에 관심을 가지는데, 그렇지 않으면 그냥 교회에 나와서 장난이나 치고 논다는 것이다. '주보의 글자가 어떻고', '목사님 복장이 어떻고' 라고 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참된 성도는 말씀이 다가오면 '흔들리는 이 세상을 떠나자' 라고 한다는 것이다. 세상이 자기를 속이든지 말든지 말이다. 그래서 5절에 있는 말씀처럼, 돈을 사랑치 않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아는 삶을 살게 된다는 것이다.  

* 그런데 이것을 지키는 계명으로 생각해서, '여러분, 돈을 사랑치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아세요' 라고 한다면, 아마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억지로 나름대로 법(기준)을 하나 만들어서, '목사님, 앞으로 제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십일조를 두 배로 더 바치겠습니다' 라고 한다는 것이다.

* 그러나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만약에 자기가 그렇게 하지 못하면 제대로 다 할 때까지는 마음에 두려움이 생긴다는 것이다. 사실 그렇게 모두 한다는 것도 불가능하고 말이다. 이렇게 무엇을 만들려고 하지 말고, 그냥 '떠나자' 라고 하면 다 된다는 것이다. - GO, GO, GO !!

(히 13:13) 그런즉 우리는 그 능욕을 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
(히 13:14) 우리가 여기는 영구한 도성이 없고 오직 장차 올 것을 찾나니

* 여기에서 '그에게 나아가자' 라는 것은 무엇인가? 이 세상을 떠나자는 것이다. 그를 위해서 무엇을 하자는 것이 아니고 말이다. 그분이 당하신 그 능욕을 지고서 말이다. 그렇게 살자는 것이다. 이 세상에는 영구한 도성이 없다는 것이다.

◈ 자, 떠나자. 동해바다로 !!

(히 13:20) 양의 큰 목자이신 우리 주 예수를 영원한 언약의 피로 죽은 자 가운데서 이끌어 내신 평강의 하나님이
(히 13:21) 모든 선한 일에 너희를 온전케 하사 자기 뜻을 행하게 하시고 그 앞에 즐거운 것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 속에 이루시기를 원하노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 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 우리도 우리의 주님을 따라 이 세상을 은퇴하는데, 우리의 힘으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고, 평강의 하나님께서 그렇게 인도해주신다는 것이다.

(히 13:22)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권면의 말을 용납하라 내가 간단히 너희에게 썼느니라

* 여기 '형제들아' 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 형제에 포함된 사람은 그야말로 땡잡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런 사람은 참으로 드물고 그야말로 기적에 속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아니, 사람이 그래도 이 세상에 태어나서 한번 잘살아보려고 몸부림치지 죽으려고 사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여러분인가?

* 여기 '형제들아' 라는 말을 가지고 강해 설교를 할 수 있어야 하는데, [ ① 형제는 없다. ② 형제는 될 수도 없다. ③ 형제는 오직 예수님만이 만들 수 있다 ] 라고 하면서 말이다. 예수님과 같은 판박이 인생을 사는 것은 자기가 그렇게 살고 싶어서 되는 것이 아니고, 주님께서 언약의 피로 해야 된다는 것이다. 그런 자들이 바로 '형제' 라는 것이다. - 여러분은 과연 형제인가? 아니면, 무늬만 형제인가?  

* 이렇게 설교하는데 어떻게 잠이 오겠는가? 형제가 아니라고 하는데 말이다. 지금 교인들은 보다 더 이 세상에서 잘 살아보려고 예배당에 앉아있다는 것이다. 떠나려고 하는 것이 아니고 말이다. 이렇게 말하면 다 들통이 난다는 것이다. 교인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염려와 걱정은 바로 이 '형제답지 않음' 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왜 걱정하는가?

* 히브리서를 수요일마다 설교하면서 느낀 것은, 과연 이 편지를 제대로 받아드리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느냐는 것이다. 읽을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히 13:23) 우리형제 디모데가 놓인 것을 너희가 알라 그가 속히 오면 내가 저와 함께 가서 너희를 보리라
(히 13:24) 너희를 인도하는 자와 및 모든 성도에게 문안하라 이달리야에서 온 자들도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히 13:25) 은혜가 너희 모든 사람에게 있을지어다

* 여기 형제가 한 사람이 있는데, '디모데' 라는 것이다. 이렇게 디모데를 형제라고 부른 것을 두고서 히브리서의 저자가 사도바울이라는 사람도 있는데, 그것은 분명치 않고, 어쨌던 바울이나 디모데나 다 '돌아이' 라는 것이다. 예수님 자기만 그러면 되는데, 따라 다니는 사람들까지도 다 그렇게 만들어놓았다는 것이다. 그러니 오늘 한국교회와 예수님이 말하는 형제는 정말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 히브리서의 주제 - 자, 떠나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