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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 믿음

하나님의 선택 (4) - 다윗언약 3 본문

저서 & 기타(이근호)/하나님의 선택

하나님의 선택 (4) - 다윗언약 3

정인순 2011. 1. 4. 10:29

97,4,14  이근호 (구득영 정리)


◈ 왕을 구하는 문제

* 이스라엘 백성들이 전쟁에서 승리한 기드온에게 왕이 되어 달라고 요구한다.

(삿 8:22) 때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기드온에게 이르되 당신이 우리를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셨으니 당신과 당신의 아들과 당신의 손자가 우리를 다스리소서
(삿 8:23) 기드온이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너희를 다스리지 아니하겠고 나의 아들도 너희를 다스리지 아니할 것이요 여호와께서 너희를 다스리시리라

* 신약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예수님을 자기들을 배불리 먹여줄 왕으로 삼으려고 한다.  

(요 6:14) 그 사람들이 예수의 행하신 이 표적을 보고 말하되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더라
(요 6:15) 그러므로 예수께서 저희가 와서 자기를 억지로 잡아 임금 삼으려는 줄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가시니라

* 모세가 응식(應食)을 이야기하고 나서 자기 뒤에 자기 같은 선지지가 올 것이라고 하자, 이것을 그대로 기억하고 있다가, 예수님이 떡을 베풀자 모세가 말한 선지자로 알고 왕으로 삼으려고 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말씀에 대한 태도는 너무나 문자적이고, 선악관점으로 본 것이다.

(신 18:15)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의 중 네 형제 중에서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너를 위하여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를 들을지니라

* 마귀는 바로 이러한 말씀을 생명나무의 원리가 아니라, 선악과적으로 생각한 바리새인들 자신들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자들이 구약을 달달 외워본들 무슨 소용이 있는가?

◈ 하나님은 노시는 분이 아니다. 자기 스스로도 약속을 얼마든지 이루어 가시는 분이시다. 오히려 인간들이 방해가 된다. 구원이란 전적으로 하나님의 소관이다.

* 자기가 스스로 노력해서 거듭났다고 말을 한다면, 그 인간은 목사가 되어서도 자기같이 남들을 훈련시킬 것이다. 그러나 성령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다고 인정을 하면, 그런 사람은 목사가 되어서도 오직 주님만을 소개하는 것이다. 나는 아무 것도 한 것이 없음을 고백하게 되는 것이다.  훈련이 아니라는 것이다.

* 왜 목사가 되려고 하는가? - 3D 현상을 피해서, 하루 일하고 6일 노는, 그러면서도 중류이상의 생활을 하면서, 인정받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목사가 되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는 것이다.

* 소위 개혁을 원하는 젊은 목사들의 사고방식이, 기존의 한국교회를 본 받지 말고, 돈을 사랑하지 말고, 섬김을 받으려고만 하지 말고 먼저 섬김의 자세로, 서로 서로 힘을 합하여, 기도 열심히 하면서, 주기철 목사님처럼 섬김의 모범을 보여야 한다고 하는 것이다.  

* 이러한 사고방식의 문제점은, 잘못된 것은 뜯어고치고, 잘된 것은 장려하는, 즉 선악의 사고방식에 여전히 젖어있는 것이다. 아직도 자기 힘으로 멋진 교회를 한 번 해보겠다는 것이다. 이것도 역시 자기 애착에 사로잡혀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 다윗과 골리앗

◈ 선택이라고 하는 것은 공짜로 주신다는 것이다. 이는 자기 혈통을 의지하는, 자기 이름을 나타내려고 하는 그런 것들을 버리라는 것이다.

* 그래서 소년 다윗은 골리앗과의 전쟁에서, 자기 이름이 아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나간다. 이름이 다르다는 것은 행위의 주체가 자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 골리앗의 약점은 무엇인가?  ① 이마가 약하다.
                             ② 할례를 받지 아니했다.

(삼상 17:26) 다윗이 곁에 섰는 사람들에게 말하여 가로되 이 블레셋 사람을 죽여 이스라엘의 치욕을 제하는 사람에게는 어떠한 대우를 하겠느냐 이 할례 없는 블레셋 사람이 누구관대 사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겠느냐
(삼상 17:45)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 하나님 전쟁의 특징 - 죄(罪)와 의(義)의 싸움이다. 아무리 숫자가 많아도 죄가 있으면 물이고, 아무리 숫자가 적어도 의만 있으면 이기는 것이다. 골리앗이 아무리 장대해도 그가 할례 받지 못한 자기에 다윗은 담대하게 나아갔던 것이다.        

◈ 참된 설교 - 인간의 자기 이름을 깨고, 행위 주체를 주의 이름으로 출발하는 痼?생명나무에 기초한 교회의 참된 설교가 되는 것이다. 오직 자기이름의 부정이고, 주님이름의 긍정이다.  

* 교육 - 교육이라고 하는 것은, 인간의 타고난 본성을 펼치도록 하는 것인데, 장점은 살리고 단점은 보완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고방식은 선악의 구조에서 나온 것이다. 그래서 교육은 진화를 추구한다. 항상 발전을 해야 하는 것이다.  

* 이것이 교회에 도입되면서, 성숙이라는 말이 등장하는데, 그러나 믿음의 세계에서는 성숙이라는 말이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미완성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 만약에 아직 모자람이 있다면, 그러면 지금 죽으면 지옥 가는가? 구원은 이미 받을 때부터 완성된 것이다. 하나님의 의는, 십자가의 피는 완전한 것이다. - [죽은 세상, 산 성도] (이근호 저) 참고

* 로마서 8장을 보자.

(롬 8: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롬 8:10)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은 의를 인하여 산 것이니라
(롬 8:11)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라는, 이 말을 제대로 이해를 못하기에, 그 뒤에 부활을 언급한다. 예수님이 죽었다가 부활한 것은 하나님의 영이 그 속에 있었기 때문인데, 그렇다면, 예수님이 우리 몸 속에 거하면 죽을 우리 몸도 살리신다는 것이다.

* 생명나무의 성령론 - 부활의 근거가 우리 이름이 아니라, 오직 주의 이름이다. 이것을 생명나무에 근거한 성령론이라고 한다. 선악과에 근거하면, 성숙, 성장을 부르짖는 미완성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 이근호를 따르면 무엇입니까? - 이단이다. 이근호가 십자가를 진 적이 없기 때문이다. 교회를 염두에 두고 있다면 이단이다. 항상 교회의 성장과 발전을 생각하는 것이다. 무엇을 해도 교회가 우선이다. 바로 우리가 교회이고, 교회끼리 모여서 교회가 되어서 예배를 드리는 것이지, 교회에 가는 것이 아닌 것이다. 눈에 보이는 교회는 부동산이고, 구약의 성소개념이다.

◈ 성경을 해석할 때 염두에 두어야 할 점 - 생명나무를 근거로 해석을 해야 한다. '나도 다윗처럼'이 아니고, 다윗이 무엇을 보여주는가를 살펴야 하는 것이다. 다윗언약에서는 다윗을 믿고, 지금은 예수님을 믿는 것이다. 본 받으라고 준 것이 아니고, 믿으라고 준 것이다. 그러니 다윗은 깨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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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의 선택, 128 페이지

⊙ 따라서 백성들은 다윗언약 속에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 (책)

* 사무엘상은 엘리 제사장의 계열이 깨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자식들도 개판이다. 이들에게 한 하나님의 사람이 나타나서 다음과 같이 말을 한다.

(삼상 2:35) 내가 나를 위하여 충실한 제사장을 일으키리니 그 사람은 내 마음 내 뜻대로 행할 것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견고한 집을 세우리니 그가 나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 앞에서 영구히 행하리라

* 다윗언약 - 여기서 충실한 제사장은 다윗이다. 우리는 다윗을 왕으로 알고 있지만, 그는 왕이 아니라, 왕 같은 제사장이고, 이스라엘의 왕은 여호와 하나님밖에 안 계시는 것이다. 이것을 새로운 언약으로 고정시키는데, 이것을 다윗언약이라고 한다.

* 그래서 제사장이 연결고리를 감당하던 모세언약은 이 다윗언약 속으로 흡수되는 것이다.

◈ 제사장을 믿어라! → 왕 같은 제사장, 다윗을 믿어라!

* 이 다윗언약 속에는 제사장은 깨어졌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 즉, 인간이 드리는 제사 제도는 이제 의미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 예배, 찬양, 기도가  문제가 아니라, 누구를 믿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 그 당시에 다윗이 나타났을 때,  베냐민과 유다지파를 제외하고 나머지 열 지파는 반란을 일으켰다. 그래서 북쪽나라를 만들었다. 이스라엘 나라가 둘로 쪼개어 졌는데, 그래서 하나님은 남쪽을 택하시고, 이 북쪽나라를  버리신다.

* 그러면 하나님이 왜 이런 일을 벌이시는가? 왜 특별히 유다지파를, 다윗을 선택하셔서 이란 분란을 일으키시는가? 다윗이 그만한 인물이 되는가? - 이유는 하나밖에 없다. 하나님의 일방적인 선택이다.

(시 78:67) 또 요셉의 장막을 싫어 버리시며 에브라임 지파를 택하지 아니하시고
(시 78:68) 오직 유다 지파와 그 사랑하시는 시온산을 택하시고
(시 78:69) 그 성소를 산의 높음 같이, 영원히 두신 땅 같이 지으셨으며
(시 78:70) 또 그 종 다윗을 택하시되 양의 우리에서 취하시며
(시 78:71) 젖 양을 지키는 중에서 저희를 이끄사 그 백성인 야곱 그 기업인 이스라엘을 기르게 하셨더니
(시 78:72) 이에 저가 그 마음의 성실함으로 기르고 그 손의 공교함으로 지도하였도다

* 선택하셨다 - 인간의 노력으로는, 제사로서는 안되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택한 다윗을 통해서, 그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새로운 제도를 만드시는 것을 의미한다.

* 여기에 대해서 열 지파가 반기를 든 것이다. 다 같은 인간이데, 누가 누구를 믿는다는 말인가, 너무하다는 것이다. 우리도 열심히 하나님을 섬기면 되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래서 다윗으로부터 떨어져 나왔던 것이다. 이러한 그들의 심정을 이해를 못할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이는 한 나라에 대한 단순한 반역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반역이었다.  

* 이러한 태도는 오늘 우리들도 마찬가지이다. 우리에게는 이러한 마음이 없는가? 없다면 오직 하나님의 은혜이다.

* 다윗의 자손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 소경의 이러한 외침은 기존의 유대인들이 드리던 제사와 예배 등의 모든 것을 포기하겠다는 것이다. 물론 그에게는 그럴 능력도 없지만 말이다. 그러니 은혜이다.

* 이러한 자기가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를 의지하고 믿겠다는 것은 선악과에 근거한 생각이 아니고, 생명나무에 근거한 것이기에, 구원을 받는 것이다. - 구원은 공짜!!

* 로마서, 갈라디아서를 이러한 생명나무에 근거해서 해석해 보라. 되는가, 안 되는가?

* 성경을 선악과에 기초한 사고방식으로, 교회(부동산)를 염두에 두고 해석을 해 보라. 유대인들처럼 해석이 안 되는 것이다. 아무리 많이 알아도 말이다.

* 예수 믿고, 바르게 살자! - 이 말이 강조하는 것은 사실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니고, 바르게 사는 것이다. 바르게 살지 아니하면 지옥에 가는가?  불교이다.

◈ 종교인들이 만든 19가지 신종 율법 상품들 - [죽은 세상, 산 성도] (P,151-153)

1. 믿음의 단계에서는 율법이 필요 없으나 성화의 단계에서는 율법이 필요하다는 주장.
2. 구약의 율법 중 도덕법에 해당되는 십계명은 아직도 유효하다는 주장.
3. 어떤 식으로도 산상보훈은 믿음으로 흡수되거나 무효화되어서는 안 되고 실제로 실천에 옮겨야 한     다는 주장.
4. 열매를 원하는 주님의 뜻에 따라 열매 맺게 위한 율법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주장.
5.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는 야고보서의 취지에 따라 율법이 필요하다는 주장.
6. 바울서신에 나오는 직설법과 명령법 중 명령법은 실제로 행해야 하는 것들이라는 주장.
7. 성도는 이 세상 어둠의 자식들과는 어떤 식으로도 분리되는 삶의 모습을 보여야 하기에, 이런 범     주를 설정하기 위해 율법적 요소들이 동원될 수밖에 없다는 주장.
8. 사랑이라는 계명은 새 계명으로서 주님께서 친히 도입하신 계명이기에, 이 계명만큼은 누락되어서     는 안 된다는 주장.
9. 성령의 8가지 열매를 도출해 내기 위해서라도 율법이 필요하다는 주장.
10. 구속사적으로 하나님 나라는 '이미'와 '아직'이라는 시간적 긴장 관계 속에 있다. 따라서 성도의      개인적인 신앙 관계도 이런 구속사의 배경에서 '이미'와 '아직'으로 검토되어야 한다는 주장. 즉, 이미 예수 그리스도로 구원받았지만 아직도 율법이 필요한 미구원 부분도 그대로 남아있다는 주장.
11. 갈라디아서에서 사도 바울이 반대하는 율법의 내용은, 할례나 형식적인 제사법 같은 것이지 율법의 도덕적 속성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라는 주장.
12. 이상론과 현실론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를 반영하기 위해서라도 율법이 필요하다는 주장.
13. 현 교회 조직체의 권위와 질서 유지 차원에서 어느 정도의 법과 율법은 필수적이라는 주장.
14. 예수님은 단지 하나님이시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도 되시기 때문에, 예수님을 머리로 하는       교회에서나 성도에게 있어서도 너무 신적인 요소만 강변하면 한쪽으로 치우치게 된다는 주장. 따라서 인간적인 요소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성령에 의해서 거듭난 성도에게는 하나님이 새롭게 맡기시는 일이 있다는 것이다.  이 지상에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고 정의사회 구현이나 선한 문화를 이루어 낼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일들은 인간들이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이다. 그 책임을 위하여 법은 반드시 필수적이라는 주장.
15. 율법이 아직도 필요하다는 구절이 성겨(딤전 1:8-11; 약 1:25)에 엄연히 있다는 주장.
16. 계속해서 믿음에 화합치 아니하면 안식에 참여하지 못하니까 믿음을 독려하는 법이 늘 마련되어      야 한다는 주장.
17. 하나님이 성도를 연단하는 차원에서 율법이 있어야 된다는 주장.
18. 무율법주의자들은 방탕과 무질서만 야기하기 때문에 복음을 빙자한 이단이라는 주장.
19. 국가를 너무 부정적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는 주장. 선과 악을 평정하기 위해 하나님으로부터 직      접 권세를 받은 하늘의 경찰 역할을 무시해서는 안 되며 따라서 높은 지위에 있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은 신앙인의 미덕이며 의무라는(롬 13:1-7; 딤전 2:2)주장.

◈ 선악과에 기초한 교회 - 장점은 살리고, 단점은 보완하자! 날이면 날마다 향상되는 교회!

* 그러나 이러한 교회는 언제나 미완성임을 알아야 한다. 주님의 교회는 그 자체로서 완전해야 하고, 천국은 완전하지 못하면 들어가지 못하는 것이다.

* 생명나무에 기초한 교회 - 내가 교회이다! - 그 자체가 완성이다. 주님의 몸으로 언제나 완전하며, 성전인 것이다. 물론 혼자 되는 것은 아니고, 모여서 그리스도의 몸으로 자라는 것이다. 이 자람은 부족한 것을 채우는 차원이 아니다. 몸으로 자라는 것이다. 아이가 어른으로 자라도 그 아이는 완전한 하나의 인간이듯이 말이다. 교회가 몸이라는 것은, 유기체라는 표현보다는, 하나됨의 모습이다.

☞ 하나님의 선택, 128 페이지

◈ 하나님의 성전은 어떻게 세워지는가?

(출 20:24) 내게 토단을 쌓고 그 위에 너의 양과 소로 너의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라 내가 무릇 내 이름을 기념하게 하는 곳에서 네게 강림하여 복을 주리라
(출 20:25) 네가 내게 돌로 단을 쌓거든 다듬은 돌로 쌓지 말라 네가 정으로 그것을 쪼면 부정하게 함이니라
(출 20:26) 너는 층계로 내 단에 오르지 말라 네 하체가 그 위에서 드러날까 함이니라

◈ 이름에 대하여

* 하나님의 이름과 인간의 이름 싸움이다. 이름이라고 하는 것은 능력의 출처를 의미한다. 하나님은 약속이라는 프로젝트에 의해서 그대로 밀어 부치시는 것이다. - 주님의 이름 앞에 인간의 모든 이름은 깨어지는 것이다.

*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은 나의 뜻을 포기하는 것이다. 주의 일을 하는 것이다. 기도할 제목이 성경에 좍 깔려 있다. 예수의 공로를 의지해서 자기의 뜻을 펼치고자하는 것은 기도가 아닌 것이다.

* 선교를 위해서 기도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선교의 주체자는 주님이신데, 성령이 하고 계신데, 우리가 어디에 끼어 들어서 기도를 한단 말인가! 선교는 어린양의 보좌에서 이곳에 우리를 파송해서 주님이 하고 계시는 것이다. 우리는 대한민국에 파송 된 선교사이다. 우리의 본향은 하늘이고, 이 땅에서는 나그네인 것이다. - 타향살이 몇 해 런가 손꼽아 헤어보니...

☞ 하나님의 선택, 129 페이지

⊙ 피조 세계는 이름의 세계이다. 왜냐하면  피조 세계는 하나 하나 창조함을 받았기 때문이다. (책)

* 이름을 붙이는 쪽은 이름을 받는 쪽을 지배하도록 되어 있다. 창세기 2장에서 아담이 피조물들에게 이름을 붙인 것은, 다 아담의 지배아래에 있다는 것이다.

(창 2:19)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어떻게 이름을 짓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이르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일컫는 바가 곧 그 이름이라
(창 2:20) 아담이 모든 육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 ...

* 그렇다면 아담의 이름은 누가? -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다. 그래서 아담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서 존재해야 하는 것이다.

* 여자 이름은 누가? - 아담이다. 그래서 여자는 오직 남자의 이름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다. 여자는 남자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남자로부터 나왔기 때문이다.

* 하와의 뜻이 생명인데, 그것은 여자의 후손으로 예수님이 오셔서 남자에게 생명을 준다는 의미가 담겨있는 것이다. 이 틀을 거부해서는 안 된다.

* 이근호가 아닌, 이문열의 [ 선택 ] - 여자는 밥하고 빨래하면 된다. 그러나 이러한 저자의 주장에 대해서 여성 학계에서는 그것은 선택이 아니라, 강요였다고 반발한다.

* 잠언에 보면, 여자는 남자를 위해서 살되, 오직 그 남자가 여호와를 경외해야 하는 것이다. 이 틀을 깨고 자가를 사랑한다면 결혼을 하겠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타락을 하고 나서 남자가 여자를 보살펴주지 않고 하나의 상품으로 전락시키고 말았다는 것이다. - 미스 코리아 선발대회

* 피조 세계는 이름을 통하여 서로 연결고리를 가지는데, 이 고리를 무시하면 안 되는 것이다.  

* 여인의 정결 규례 - 레위기에 여자가 남자아이를 낳으면 일 주일, 여자아이를 낳으면 이 주일동안 불결하기에 정결의 기간을 가져야 하는데, 이것은 여자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동등하게 하기 위해서 두 배나 더 속죄의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것이다.

◈ 정결 규례가 보여주는 것 - 남자와 여자의 틀을 통해 창세기 3장의 사건을 늘 기억하라!

(레 12: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레 12:2)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여인이 잉태하여 남자를 낳으면 그는 칠일 동안 부정하리니 곧 경도할 때와 같이 부정할 것이며
(레 12:3) 제 팔일에는 그 아이의 양피를 벨 것이요
(레 12:4) 그 여인은 오히려 삼십 삼일을 지나야 산혈이 깨끗하리니 정결케 되는 기한이 차기 전에는 성물을 만지지도 말며 성소에 들어가지도 말 것이며
(레 12:5) 여자를 낳으면 그는 이 칠일 동안 부정하리니 경도할 때와 같을 것이며 산혈이 깨끗하게 됨은 육십육일을 지나야 하리라
(레 12:6) 자녀간 정결케 되는 기한이 차거든 그 여인은 번제를 위하여 일년된 어린 양을 취하고 속죄제를 위하여 집비둘기 새끼나 산비둘기를 취하여 회막문 제사장에게로 가져 갈 것이요
(레 12:7) 제사장은 그것을 여호와 앞에 드려서 여인을 위하여 속죄할지니 그리하면 산혈이 깨끗하리라 이는 자녀간 생산한 여인에게 대한 규례니라

* 십자가 사건 - 이와 마찬가지로 십자가 사건은 그리스도가 교회를 위해 몸을 내어 준 것이 된다. 여자가 남자에게 따먹히는 것이 아니라, 남자가 여자에게 몸을 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여자는 자가에게 몸을 준 남자에게만 복종하는 것이다. 주님의 피가 있기에 복종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복종은 주님께 하는 것이 된다. 우리를 위해 자기 몸을 내어놓으신 그 분에게 말이다.

* 여자나 남자에게 있어서 이 땅에서 행복은 의미가 없으며, 오직 천국에서 주님과 함께 살 때 진정한 행복을 누리는 것이다. - 웬 가정사역?

◈ 피조 세계는 이름을 통해서 서열관계가 성립한다.

* 여자의 머리 : 남자,  남자의 머리 : 그리스도,  그리스도의 머리 : 하나님  → 그래서 하나님이 예수님에게 이름을 주시고, 예수님은 아담에게, 아담은 여자에게 이름을 주는 것이다.

* 복은 자기 이름이 아니라, 자기의 머리되는 이름으로부터 쏟아진다. 그래서 여자는 남자로부터 구원을 받는 것이다.

(벧전 3:6)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여 복종한 것같이 너희가 선을 행하고 아무 두려운 일에도 놀라지 아니함으로 그의 딸이 되었느니라

* 사라가 자식을 낳는 것은 자기의 힘이 아니라, 아브라함 때문이다. 그 언약을 이루기 위해서 자녀가 태어나는 것이다.  이 아브라함의 언약을 이루기 위해 다윗언약도 존재하는 것이다.

* 우리의 태도 - 우리 자신이 사라임을 알아야 한다. 우리 행함으로 구원을 받지 못하고 오직 언약을 믿어야 하는 것이다. - 다윗의 자손이여 불쌍히 여기서서!

⊙ 이름이 붙여진 것들은 다 피조된 것이고, 창조주에게 합당한 영광을 돌리고, 각자의 기능을 수행해야 하는 것이다. (책)

* 이름이 언제 붙여지는가?  - 세례 받을 때이다.

* 세례 - 세례를 주는 자의 세계에 세례를 받는 자의 세계가 합일(合一)되는 것이다. 점령을 하는 것이다. 받는 자의 이름이 주는 자에 의해 죽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는 것은, 그 분의 이름에 의해 내가 죽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믿어 의인이 된다는 것은, 내 이름은 완전히 사라지고 내가 아니라, 그분의 이름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 " IN CHRIST "  

* 의(義)의 종 - 그래서 내가 행동해도 그분이 하는 것이고, 온전히 그분에게 지배를 받는 것이다. 과거에 우리는 나쁜 일도 하고 선한 일도 한 것이 아니라, 죄의 종이었고, 그래서 죄밖에는 나오는 것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의의 종이 되어서 예수님이 성령을 통해서 하시는 의가 나온다는 것이다. 환란과 고통도 그분이 주신 줄 알고, '내가 무엇을 잘못했습니까?' 가 아니라, 감사해 하는 것이다. 자신의 환경을 탓하지 않는다. - 전도도, 설교도, 고난도 주님이 하셨다!!

(엡 2:1)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엡 2:2)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엡 2: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엡 2:4)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엡 2: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 그러므로 교회의 성도가 많고 적음을 가지고 기도하는 것은, 주님께서 하시는 일에 항의하는 것밖에 되지를 않는다. - 주여! 두 명이군요. 감사합니다.

⊙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기 때문에 그 분의 소유가 된다.(책)

(출 19:5) 세계?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행 15:17) 이는 그 남은 사람들과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모든 이방인들로 주를 찾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

* 욥 - 욥의 고난을 생각해 보자. 그래도 우리는 욥보다 낫지 틈逑璣? -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욥은 자기에게 고난이 온다고 생각한 것이다. 욥은 이러한 자신의 정당성을 근거로 친구들의 죄를 위해 제사를 드린다. 그래서 친구들도 벌을 받지 않는다. 욥의 친구들은 자기들의 생각을 포기하고 욥의 생명나무에 근거한 생각으로 바꾸어야 하는 것이다.

* 예수님 - 예수님의 생각과 우리의 생각은 다른데, 예수님의 십자가 지심이 그분의 은혜로 우리에게 전가되어서 우리가 영생을 얻는 것이다. 이것이 기독교이고, 생명나무에 근거한 모습이다.

* 그래서 교회는 경쟁이 있으면 안 된다.

(고전 1:26)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고전 1:27)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고전 1:28)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고전 1:29)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 지혜 없고, 문벌 없고, 미련하고, 약하고, 멸시받는 것이, 그렇지 않은 자들보다 괜찮다는 것이 아니고, 역시 하나의 도구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거지 나사로를 본 받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 간증집회 - 주님이 아니라, 자기를 높인다. 도구임을 모르는 것이다. 안다면 아멘으로 끝!

◈ 선택받은 자의 모습

* '농댕이를 쳐도 선택되었다'고 주교 교사가 농댕이를 치는데 어떻게 해야 됩니까? - 우리가 보기에는 나태해 보여도, 그 사람은 나름대로 감사하는 것이다. 그러나 '선택을 받았기에 열심히 해야 한다'고 설쳐되면, 그 사람은 뭔가 다른 속셈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놀아도 구원받았다'고 하는 사람은 구원받은 자가 아니다.

* 사람은 놀지를 않는다. 잠을 자도, 당구를 쳐도 일인 것이다. 당구치는 것을 노는 것으로 보는 것은 그 사람에 대한 침해이다. 전도를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서는 안 된다. 성령 받은 사람에 있어서 살아가는 모습이 전도가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성령 받은 사람은 주님만을 증거하는 삶을 살도록 성령이 인도하시는 것이다. 누구를 기준으로 삶아서는 안 된다. 설쳐되는 것은 이단이다.

* 침례교 - 구원의 다양성을 주장한다. 선택받은 것도 한 개인의 생각으로 간주하고, 즉 선택도 다양성 중의 하나로 여기고, 선택되어 구원받은 것이 아니라고 해도 용납을 해 주자는 것이다.

* 언약 - 요즘 신학자들은 다양성을 강조한다. 그래서 언약도 그 중의 하나로 보는 것이다. 그러나 언약은 그 자체가 이러한 것을 거부한다. 언약을 살펴보면, 언약은 어느 한 지점으로 계속 모이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모세 때는 모세언약으로, 다윗 때는 다윗언약으로 말이다. 모여서 진행되는 것이다.

* 노아시대에 사람들이 방주를 믿지 않고 다양성을 주장하다가, 나름대로 구원이 있다고 주장을 하다가 다 죽고 말았든 것이다. 언약을 매듭으로 단일성에 모여서, 말씀을 이루는 차원에서 [ 노아언약 → 아브라함언약 → 모세언약 → 다윗언약 → 새언약 ] 그렇게 진행되는 것이다.  항상 언약 중심이다.

☞ 하나님의 선택, 130 페이지

⊙ 기존의 모든 이름들은 스스로 자기 이름들에게 영광과 찬양을 드린다. (책)

(창 4:23) 라멕이 아내들에게 이르되 아다와 씰라여 내 소리를 들으라 라멕의 아내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나의 창상을 인하여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을 인하여 소년을 죽였도다
(창 4:24) 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 배일진대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 칠 배이리로다 하였더라
(창 4:25) 아담이 다시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아들을 낳아 그 이름을 셋 이라 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내게 가인의 죽인 아벨 대신에 다른 씨를 주셨다 함이며
(창 4:26) 셋도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 여기서는 가인, 라멕 등은 자기 이름만 부른다. 자기들이 잘 되는 것이 진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에 반해서 셋의 후손들은 자기 이름이 아니라,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던 것이다. 다른 것이다.

* 이름을 부른다는 것 - 나는 당신의 종입니다. 똘마니입니다. 그래서 기도도 주의 이름으로 하는 것이다. 도와달라는 차원이 아니고, 주의 이름에 나를 던지는 것이다. 오직, 주님의 뜻이다.

* 전도 - 주께서 원하는 복음을 전하는데 내가 도구로 사용되는 것이다. 십자가의 도를 전하는데 도구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말은 류광수처럼 전도를 하자는 것이 아니다. 전도가 되어버리면 그것이 또 하나의 선악과가 되어버리고 만다. 전도는 자기가 설치는 것이 아니다. 죽어야 전도가 된다.

(롬 10:14)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롬 10:15)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롬 10:16) 그러나 저희가 다 복음을 순종치 아니하였도다 이사야가 가로되 주여 우리의 전하는 바를 누가 믿었나이까 하였으니
(롬 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롬 10:18) 그러나 내가 말하노니 저희가 듣지 아니하였느뇨 그렇지 아니하다 그 소리가 온 땅에 퍼졌고 그 말씀이 땅 끝까지 이르렀도다 하였느니라

* 노아언약에 의한 전도개념 - 그 말씀이 땅 끝까지 이르렀도다 -  즉 이 세상에는 이미 다 전파되어서 예수를 알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아니더라도 하나님은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 사실의 증인들이다. 이렇게 주님의 일하심을 전하는 것이 전도이다. 도(道)를 전(傳)하는 것이다. 구원에 집착해서는 가짜 예수를 전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 류광수의 이단성 - 도를 전하는 것이 아니고, 전도를 전하는 것이다. 성령을 받은 사람은 누구나 다 도를 전하고 있는데, 그는 도와 전도를 구별하여 설치는 것이다. 그는 끝이 다른 사람인 것이다. 하나님께서 믿음이 없는 사람을 다 그쪽으로 모아서, 한국교회가 얼마나 믿음이 없는가를 고발하고 계시는 것이다.

▣  정 리  ▣

◈ 열 지파들이 왜 다윗을 미워했는가? - 하나님의 선택을 거부한 것이다.

* 하나님께서 다윗을 선택하셨다는 것은, 다윗 외에는 구원받을 이름을 주지 아니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열 지파가 이에 반기를 들어서 나라를 세우자, 하나님은 그들을 멸망시킨 것이다. 반면에 다윗을 믿는 나라는 등불이 꺼지지 아니하고,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을 때에도, 그곳에서도 하나님의 성소가 된 것이다.

(겔 11:16) 그런즉 너는 말하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비록 그들을 멀리 이방인 가운데로 쫓고 열방에 흩었으나 그들이 이른 열방에서 내가 잠간 그들에게 성소가 되리라 하셨다 하고
(겔 11:17) 너는 또 말하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너희를 만민 가운데 모으며 너희를 흩은 열방 가운데서 모아 내고 이스라엘 땅으로 너희에게 주리라 하셨다 하라
(겔 37:25) 내가 내 종 야곱에게 준 땅 곧 그 열조가 거하던 땅에 그들이 거하되 그들과 그 자자손손이 영원히 거기 거할 것이요 내 종 다윗이 영원히 그 왕이 되리라
(겔 37:26) 내가 그들과 화평의 언약을 세워서 영원한 언약이 되게 하고 또 그들을 견고하고 번성케 하며 내 성소를 그 가운데 세워서 영원히 이르게 하리니
(겔 37:27) 내 처소가 그들의 가운데 있을 것이며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
(겔 37:28) 내 성소가 영원토록 그들의 가운데 있으리니 열국이 나를 이스라엘을 거룩케 하는 여호와인줄 알리라 하셨다 하라

◈ 하나님께서는 다윗언약을 포기하지 아니하시고, 바벨론까지 좇아가셔서 그들에게 잠간의 성소가 되시고, 다윗언약에 의해서 다시 제대로 된 왕을 세워서, 영원히 그들과 함께 하시겠다는 것이다.  사마리아 여인은, 바로 이 에스겔의 예언을 제대로 알고 있었기에,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려고 하면, 그 장소가 영원한 성소이기 때문에, 메시야(왕)가 와야 된다고 했던 것이다.

◈ 예수님은 요한복음에서 기존의 성전을 치워라고 하시면서, 자기가 사흘만에 짓는 성전이라고 하신 것이다. - 에스겔의 완성


♣ 기도 -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은 생명나무 공짜로 받아놓고, 남들에게는 훈련시켜야 받는 것처럼 하자는 아니했습니까? 용서해 주십시오. 다만, 저희들, 이 생명나무의 증인으로만 만족케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