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과 믿음
[뒤에서 본 한국교회] 로마서 5 본문
로마서 5강
05칠곡강의 [뒤에서 본 한국교회] 39 - 로마서5
05,06,11 강의 이근호, 정리 구득영
◈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 !!
오늘은 로마서 8장을 시작하겠는데, 여기서 사도바울은 인간을 무엇으로 보는고 하니, 아예 죄가 지배하는 '죄 덩어리'로 여긴다는 것이다. 이미 7장에서 그렇게, 죄가 지배하는 죄 덩어리로 결정을 지어놓았다는 말이다. 즉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 라고 하면서 말이다.
이것을 그림으로 그리면, 여기에 '나' 라는 것이 있는데, 이 '나' 속에는 죄가 지배하기 때문에, 여기서 무엇만 튀어나오는고 하니까, 오직 죄만 나온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나'는 멍청하게(?) 그냥 죄를 짓는 도구, 혹은 병기에 지나지 않게 된다는 말이다. 그래서 '나'는 움직일 때마다 언제나 항상 죄를 짓는다는 것이다.
◈ 성경이 인간의 행동을 가르친다 ??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성경이 인간의 행동을 가르친다고 하는데, 여러분도 과연 그렇게 생각하나요? 성경 그 어디에라도 아이를 낳으라고 명령을 한 구절이 있던가요? 물론 낳아서 잘 키우라고는 하지만 말이다. 그리고 하루에 3끼를 먹으라고 성경에서 이야기하던가요? 4끼를 먹으면 돼지가 될 것 같고, 또한 2끼를 먹으면 너무 배가고파서, 그래서 우리가 알아서 3끼를 먹는 것이지 말이다.
다시 말해서, 성경은 무엇을 하라고 일부러 로봇에게 시키듯이 그렇게 마구 시키는 것이 아니라, 어떤 행동을 하나 하더라도, "너는 너의 그 행동의 과연 올바르다고 생각하는가?" 라고, 그 행동의 가치를 따지는 책이 바로 성경이라는 말이다.
지금 우리가 수박을 맛있게 먹고 있는데, 그런데 성경 그 어디에라도 이렇게 수박을 먹으라고 하는 구절이 있느냐는 말이다. 물론 수박이란 단어는 나올지 모르겠지만, 그러나 그렇게 수박을 먹으라고 명령을 하는 성경구절은 전혀 없다는 것이다.
◈ 로마서 7장까지의 결론 - 인간에는 죄만 !!
그러므로 우리가 수박을 먹든지, 호박을 먹든지, 무엇을 먹든지 간에, 심지어 오줌을 누더라도 우리 인간에게서 나오는 것은, 오로지 죄만 나온다고 하는 것이 로마서 7장까지의 결론이라는 말이다. 아이를 낳던지, 아니면 도로 밀어 넣던지 간에 말이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고 하니, 쓸데없이 자기 인생을 가꾸려고 애를 쓰지 말라는 것이다. 안 되는데, 그런데 왜 자꾸만 가꾸려고 하느냐는 말이다. 그것이 심히 수상하다는 것이다. 아무리 해도 안 되는데, 그런데 어떤 기대감을 가지고 쓸데없는 짓을 하느냐는 말이다.
◈ 로빈슨 - 신에게 솔직히 ??
그런데도 만약 자기가 바르게 살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은, 그것은 자기 자신을 속이는 짓이란 말이다. 그래서 '로빈슨' 이란 신학자는 "신 앞에서 솔직하라" 라고 했는데, 그렇게 하나님께 솔직하면 자기의 의로움은 일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모든 수고하고 무거운 짐들을 다 풀어놓게 되는 귀한 말씀이 된다는 말이다. (로빈슨은 그런 의도가 아니었지 싶은데??)
◈ '쉬게 하리라' 라는 의미는?
예수님은 마태복음 11장 28절에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라고 했는데, 그런데 사람들은 이런 예수님의 말씀을 자기 선입관으로 인해서 오해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좋고 멋지고 풍족한 환경을 인해서 마음의 안식을 얻을 것을 편히 쉬는 것이라고 말이다. 물론 예수님의 취지는 전혀 그것이 아닌데 말이다.
(마 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그 말씀은 바로 아예 우리 자신을 제대로 바로 알아서, 우리 자신에 대해서 전혀 기대를 하지 않으면, 그것이 바로 편히 쉬는 모습이란 것이다. 자기 자신이 새로운 사람이 된다든지,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을 완전히 포기한 상태, 그것처럼 쉬운 인생이 또 있겠느냐는 것이다.
◈ 자식을 방목(放牧)하라 ??
예를 들어서, 자기 자식을 자기가 제대로 한번 키워보려고 한다면 그것 자체가 짐이 되는데, 하지만 그 인간이 죄인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알아서 하시도록 놓아버리라는 말이다. 그것으로 인해 자식에 대한 부담감이 없어진다는 것이다. (??)
설령 그 아이가 공부를 엄청 잘해서 서울의대를 들어가서 의사가 되어서 그렇게 기쁜 일이 아니라는 말이다. 왜냐하면, 의사가 되어도 죄만 나오는데 말이다. 의사가 되던 판사가 되던 거기서 선한 것이 아니지 않고 구원받는 것이 전혀 아니라는 것이다.
만약에 그렇지 않다고 하면, 우리는 지금 이런 성경공부를 접고 의학공부를 해야 되고 법전을 들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 무엇을 하든지 간에 우리 스스로는 구원이 처음부터 불가능했다는 것이다.
◈ 안 되고, 안 되고, 안 되고, 안 되도다 !!
그렇게 처음부터 안 된다는 것을 미리 눈치를 채야지, 그런데 그것을 미련하게 자꾸만 꾸역꾸역 하려고 한다면, 그것처럼 힘들고 버거운 인생이 어디 있느냐는 것이다. 그렇게 A도 안 되고, B도 안 되고, C도 안 되고, 그리고 D도 역시 안 되는데, 그렇게 안 되니 주께서 되도록 하신다는 말이다. 그것이 곧 로마서 8장의 내용이고 말이다.
* 질문 - 인간이 그렇게 하는 것과 하나님이 하는 것은 차이가 있지 않습니까?
물론 그러한데, 그렇게 인간이 자기가 알아서 무엇을 하려고 하는 것이 그 얼마나 부질없는 짓인가를 성도라면 안 된다는 것이다. 굳이 인간이 신과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 인간들끼리 비교를 해봐도 안 되는 것을 뻔히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로마서 8장에서 하는 말씀이, 그렇게 안 되니 예수님께서는 인간과 같이 죄 있는 육신의 모습으로 나타나셔서, 모든 것을 이미 다 처리했다는 것이다.
* 질문 - 그러니 여기서 '된다' 라고 하는 것은?
이미 모든 것이 다 끝이 났는데, 그래서 우리는 그런 생각조차도 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말이다. 사실 우리는 '된다' 라고 할 자격조차도 없는데, 아무리 자꾸만 무엇을 하려고 시도를 해봐도, 그것은 역시 죄라는 말이다. 그렇게 '된다' 라고 하면서 인간들이 시도한 것이 바로 '종교' 인데, 그러니 종교가 곧 죄라는 말인데, 그런 가능성을 시도하는 것 자체가 말이다.
◈ 그것이 곧 유대교 !!
그 대표적인 것이 유대교인데, 그러니 유대교는 예수님을 인정하지 않고, 자기들에게는 법이 있으니, 그 법을 가지고 제대로 지키면 된다는 것이다. 즉 율법을 지킴으로서 죄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여긴다는 말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와도 필요 없다고 보내버리고, 계속해서 그 법을 쥐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오늘날 교인들도 역시 마찬가지인데, 그냥 예수님을 믿으면 되는데, 그런데 예수님을 믿지는 않고 예수님의 법을(?) 따로 챙긴다는 것이다. 즉 "예수님, 뭐라고 하셨지요? 예, 알겠습니다. 시키는 데로 하겠습니다" 라고 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여전히 수고하고 무거운 짐이 되는데, 왜냐하면 10가지 가운데 9가지를 지키고 한 가지를 놓치게 되면, 그것이 바로 수고하고 무거운 짐이 된다는 것이다. 물론 인간은 한 가지라도 제대로 못 지키지만 말이다.
◈ 로마서 8장 - 너 말고 다른 분 !!
그래서 로마서 8장은, 이미 7장에서 인간은 법으로 안 된다고 하는 것을 다 마감시켜놓고는, 그런데 "너 말고 다른 분" 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분이 바로 육신을 입고 오신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이다. 그것이 8장 3절에 나온다는 말이다.
(롬 8:3)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여기에 보면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이라고 하는데, 우리는 바로 이렇게 '할 수 없는' 이라는 부분을 믿어야 하는데, 즉 우리가 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을 말이다. 그렇게 우리 인간은 신구약 성경말씀을 지키지 못한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예수님께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라고 해도 인간들은 오지 않는데, 물론 "예수님을 믿어라" 라고 해도 믿지를 않고 말이다. 즉 인간들은 예수를 믿는 그 믿음을 믿으려고 하지, 예수님은 믿지 않는다는 것이다.
◈ 나는 정 집사님을 믿습니다 ??
예를 들어서, "나는 정 집사님을 믿습니다" 라고 하면, 정 집사님을 믿는 자기의 믿음을 믿는 것이지, 결코 정 집사님을 믿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런 믿음은 소주 한 잔을 먹고 나면 다 날아가 버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술이 깨고 나면 "내가 언제 저 인간을 믿었지. 내가 참 바보였어" 라고 한다는 것이다.
* 질문 - 그러니 인간은 믿음이 있다고 해도, 결국 자기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고 한 것이네요?
물론 그러한데, 그것이 바로 종교이고 말이다. 그러니 "나는 정 집사님을 믿습니다" 라고 하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따지고 보면 정 집사님이 자기에게 무엇을 해줄 것을 믿는다는 말인데, 그러니 그런 것은 전혀 정 집사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 질문 - 그런데 우리 인간들은 항상 그런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지 않습니까?
그러니 그것이 죄라는 말이다. 우리 힘으로 벗어날 수 있다면 죄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아무리 믿어도 그 대상이 결국은 자기일 수밖에 없는데, 그래서 종교가 만들어진 것이고, 그런 교회에는 아무리 예수님을 이야기해도 믿는 것이 아니라, 그냥 가지고 노는 것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결국은 불교나 기독교나 다 그놈이 그놈인데, 부처도 모델케이스이고 예수도 역시 모델케이스라는 말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부처가 착한지, 예수가 착한지, 시합을 한번 해보자" 라고 하기도 하는데, 그런 인간들이 바로 이문열, 김동리, 그리고 김용옥과 같은 놈들이란 것이다. 누가 뭐라고 해도 자기 자신을 포기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 질문 - 목사님은 성경에 자녀를 낳으라고 한 적이 없다고 하셨는데, 그런데 창세기 1장에서 "생육하고 번성하라" 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 생육하고 번성하라 ??
하나님께서는 "생육하고 번성하라" 라고 누구에게 이야기를 했는고 하니, 그런데 막상 아무런 대상이 없다는 것이다. 아담에게만 한 말도 아니고 말이다. 그 말은 모든 짐승들에게도 모두 해당이 되는데, 과연 물고기가 그 말을 알아들었겠는가?
예를 들어서, 아이들이 인형을 가지고 놀면서 뭐라고 이야기하는가? "인형아, 지금부터는 내 말을 잘 들어야 해" 라고 하는데, 인형이 과연 알아듣겠는가? "인형아, 너는 지금 목욕을 해야 돼" 라고 하면, 인형이 "예, 알겠습니다. 목욕을 하겠습니다" 라고 하는가? 그냥 그 아이가 목욕을 시켜준다는 것이다.
◈ 성경은, 하나님끼리 하신 말씀 !!
그러니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께서 "생육하고 번성하라" 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이 하나님에게 하신 말씀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참으로 중요한 질문인데, "생육하고 번성하라" 라는 것이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준 명령이 아니냐고 말이다. 하나님이 자기 자신에게 말씀하신 것이니, 우리 인간은 빠져야 한다는 것이다. 다르게 표현하면, 하나님이 예수님에게 하신 말씀이고 말이다.
하나님이 자기들끼리 이야기한 것인데, 우리가 이것을 눈치채야 한다는 것이다. 놀랍게도 성경의 모든 말씀이 다 그렇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뭐라고 하셨는가? 요한복음 5장에서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라고 하셨다는 것이다.
(요 5:3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그런데 이것을 아는 교인들이 거의 없는데, 물론 목사도 없고 말이다. 우리 인간들을 보고 이야기한 것이 아니니, 우리가 괜히 중간에서 골치 아플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자기가 한번 지켜보려고 노력한 경우가 아니라면 말이다.
다시 말씀을 드리면, "생육하고 번성하라" 라는 것이 사람에게만 한 이야기가 아니라, 물고기나 개나 코끼리에도 다 이야기한 내용인데, 그렇다고 코끼리가 '우우우' 라고 대답을 했는가? 물론 영화 '타잔'에는 그런 장면이 있지만 말이다. 인간에게는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 라는 것이 최초라는 것이다.
그러니 결국 "생육하고 번성하라" 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하나님 자신에게 숙제를 낸 것인데, 그렇다면 "생육하고 번성하라" 라는 것의 책임자는 누구인가? 바로 예수님이라는 말이다. 즉 성부가 성자에게 하신 말씀이라는 것이다.
* 질문 - 그런데 신약에서 사도들은 인간에게 바로 대놓고(?) 이야기하지 않습니까?
◈ 성도와 비성도의 차이점은?
당연한데, 그러게 해야만 성도와 성도가 아닌 자들이 구분이 되니 말이다. 성도와 비성도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비성도는 자기 혼자 있지만, 그래서 성경말씀을 자기에게 한 것이라고 착각하지만, 그러나 성도는 자기 안에 그리스도가 있기 때문에, 바로 그분을 증거하기 위해서 말씀하심을 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분을 품되, 해가 지도록 품지 말라" 라고 했을 때, 그것을 성도가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분을 내지 않아도 죄고, 또 분을 내도 죄이니 말이다. 그런데 성도에게는 성을 내지 않도록 하는 분이 따로 있는데, 예수님의 영인 성령께서 말이다. 그것이 8장 9절에 나오고 말이다.
(롬 8: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 그리스도가 소유한 사람의 특징은?
여기에 보면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라고 하는데, 여기에서 '그리스도의 사람' 이라는 것이 무슨 의미인가? 그리스도께서 사람을 가지고 있다는 말인가? 아니면 사람이 그리스도를 가지고 있다는 말인가? 그리스도가 그 사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것으로 말이다.
그러니 그런 사람은 자기 인생은 없고, 오직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만 남아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그리스도의 소유가 되지 않은 사람은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니 성도는 그리스도의 영으로 자기가 그리스도의 소유됨을 당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그리스도가 소유하게 되면 어떤 특징이 있는고 하니까, "아하, 내가 지킬 수 있는 성경말씀은 하나도 없구나" 라는 것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복음을 전해라" 라고 했을 때에, 얼른 보면 목회자에게 해당되는 것인데, 하지만 복음을 아는 목회자는 아는데, 도대체 목회자가 무슨 수로 복음을 전할 수가 있느냐는 것이다.
◈ 앞이 캄캄하면 후레쉬를 ??
강의나 설교를 하다가 보면 앞이 캄캄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는데, 도대체 무슨 말씀을 어떻게 전해야 할지 말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입만 벌리면(?) 나오게 되어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마태복음 10장 20절에도 나오는데,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성령이다" 라고 말이다.
(마 10:19) 너희를 넘겨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치 말라 그 때에 무슨 말할 것을 주시리니
(마 10:20)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자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
그러니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이 말씀을 전혀 지킬 수 없다는 것이고, 사실 그것도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니지만 말이다. 말씀이 그렇게 조치를 해버린다는 것이다. 즉 우리를 완전히 무장해체를 시켜버린다는 말이다.
◈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는 이유는, 단 하나 !!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는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말씀에 순종해서가 전혀 아니라, 그냥(?)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계시기 때문에,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무엇을 행하든지 말든지, 깨닫든지 말든지, 그런 것에 전혀 상관이 없이 말이다. 자꾸 '우리' 라고 좀 쑥스러운데 말이다.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가 안에 있으면 누가 뭐라고 해도 그리스도의 사람인데, 그러니 그러한 사람은 앞으로 그리스도의 것이 되어서, 계속해서 그리스도가 인도할 것이고 말이다. 그렇게 그리스도가 안에 박혀있다는 증거는 "내 안에 그리스도가 있습니다" 라는 것이 아니라, "저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라고 하는 사람이고 말이다.
* 질문 - 그리스도가 박혀있는 사람은 그리스도에 의해서 움직인다는 말씀이죠?
당연히 그렇게 움직이는데, 그렇게 움직이는 것이 곧 언약이고 말이다. 이 언약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사랑으로 움직이고, 다른 하나는 저주로 움직인다는 것이다. 이것을 구약을 강의하면서 많이 했는데, 구약은 그렇게 항상 양발차기라는 것이다.
◈ 언약으로 푹 찌르면, 양쪽에서 '으악' !!
구약성경은 그야말로 날이 양쪽에 다 서있는데, 인간을 찌르면 복을 받을 놈은 영생으로 찔리고, 저주를 받을 놈은 사망으로 찔린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언약이 지나간 자리에는 복을 받은 놈과 저주를 받은 놈이 있다고 보면 된다는 말이다. 이것을 로마서 9장 13절에서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라고 하는데, 그것은 야곱에서 언약을 주니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말이다.
(롬 9:13) 기록된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
* 질문 - 그러면 성도가 아닌 사람은 그리스도의 영이 없기 때문에 그런가요?
그래서 성도가 아닌 사람은 악령의 지배를 받는데, 그런데 그 악령은 또 예수님이 조종하고 말이다. 왜 그렇게 하시는가? 언약을 성취하기 위해서 말이다. 즉 "이런 자는 저주를 받도록 작정이 되어있다" 라는 것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 질문 - 목사님은 설교를 할 때도 앞이 캄캄해져도 아무런 염려도 하지 않는다고 하셨는데, 그런데 어떤 목사에게는 성령으로 복음이 전파되지만, 하지만 또 어떤 목사에게는 악령으로 사이비 복음이 전파되지 않습니까?
그것이 아니라, 악령으로도 복음이 전파되는데, 그렇게 해서라도 복음을 들은 사람은 천국에 간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악령도 주님이 부리시니 말이다. 그러나 그 목사는 그냥 지옥행인데, 즉 자기는 복음을 전하고도 지옥에 간다는 말이다.
* 질문 - 그런데 그런 악령을 받은 목사도, 이 목사님처럼 입만 벌리면 다 설교가 되는가요? (ㅋㅋ)
악령을 받은 사람도 자기 마음대로 안 되는데, 마귀가 노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마귀도 다 뒤에서 조종을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마귀가 한 예수님의 광야에서 3가지 시험을 통해서 드러났는데, 인간은 누구나 다 마귀에게 속아넘어갈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 아, 그놈의 3가지 시험 !!
다시 말해서, 인간은 말씀보다도 자기 생계가 우선이고, 그리고 하늘나라를 가도 말씀을 통해서 가고, 또한 인간이 바라는 것이 이 세상의 부귀영화이고 말이다. 과연 여기에서 빠져 나올 수 있는 인간이 있는가?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성도든, 성도가 아니든 간에 말이다.
전혀 그렇게는 안 되는데, 그런데 자기 안에 그리스도가 있다면, 그 그리스도 때문에 빠져 나온다는 것이다. 그런 사람이 바로 성도이고 말이다. 그러니 성도가 불신자와는 달리 착한 행동을 해서 빠져 나온 것이 아니라 말이다.
다시 한번 더 강조하지만, 그리스도가 안에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이것이 얼마나 간단한가? 자꾸만 자기가 무엇을 해야 한다고 여기니 복잡해진다는 말이다. 그냥 그분이 계시면 그분의 사람이라는 것이다.
◈ 아이스케키, 사려 ??
왜 옛날에 여름에 즐겨먹든 작대기가 있는 아이스케키를 알지요? 아저씨들이 아이스박스에 넣어서 "아이스케키, 사려" 라고 하면서 팔러 다니곤 했는데 말이다. 작대기를 꼽으면 아이스케키이고, 없으면 그냥 설탕이 들어있는 얼음 덩어리이고 말이다.
* 질문 - 사람이 태생적으로 그렇게 되나요? 시기적으로 어떻게 되는 것이 있느냐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그런 시간에는 구애받지 않는데, 물론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것은 시간을 초월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주님은 오늘 이 시간 이 순간에 믿음을 줄 수도 있고, 10년 전에 주었을 수도 있고, 또한 10년 뒤에 줄 수도 있고 말이다.
* 질문 - 그러면 한번 꽂힌 막대기는 계속해서 그렇게 있나요?
계속해서 있는데, 즉 한번 임재한 성령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 질문 - 그러니 그런 시간적인 것은 우리가 신경 쓸 필요가 없네요?
물론 그러한데, 그리고 다른 것도 신경을 쓴다고 되는 것은 하나도 없지만 말이다. 즉 예수님은 언제든지 성령을 주실 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게 성령이 오게 되면 특징이 무엇인고 하니, 자기가 죄인임을 알게 되는데, 과거에 자기가 바람을 피우고 사기를 쳐서 죄인이 아니고 말이다. 원래가 죄인임을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 질문 - 그렇게 인간은 그리스도가 꽂혀있는 상태에서도 악령의 조종을 받고 살지 않습니까?
물론 그러한데, 그렇게 되어야 하나님의 은혜를 아니 말이다. 아무튼 인간은 성령이든지 악령이든지, 둘 중에 하나인데, 중립지대는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악령에 의해서도 복음이 증거되는데, 언약을 이루기 위해서 말이다. 물론 악령에 사로잡힌 사람은 지옥으로 가지만 말이다.
그러므로 성경말씀은 우리 인간들 중에서 누가 천국으로 가는지, 또 누가 지옥으로 가는지, 그런 것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언약을 이루는데 초점이 있다는 것이다. 예수님도 바로 그 언약을 이루기 위해서, 약속대로 오셨고 말이다.
◈ 언약이란, 띵호와 ??
그렇다면 언약은 무엇인가? "어떤 사람은 복을 받고, 또한 어떤 사람은 저주를 받는다" 라는 것인데, 하지만 그런 복을 받았다는 것이 착하게 산다는 것도 아니고, 또한 잘 산다는 것도 아니고, 그야말로 "땡 잡았다" 라는 것이다. 즉 "나와 같은 인간이 구원을 다 받나니, 그야말로 나는 땡 잡았다. 띵호와" 라는 의미라는 말이다.
* 질문 - 그러니 저주를 받은 사람들은 정작 자기가 저주를 받았음을 모른다는 말씀이죠?
물론 전혀 모르는데, 그러한 사람에 있어서 신이고 악마고 간에, 그것은 자기들이 만들어낸 추상적인 개념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런 사람은 전혀 자기가 지옥에 갈 놈인 것을 모르고 있다는 말이다. 물론 겉으로 말은 그렇게 자기가 지옥에 간다고 할 수 있을지 몰라도 말이다. 왜 가끔 중들이 죽을 때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는가?
만약 저에게 불신자의 입장에서 기독교를 비판하라고 하면 두 시간 정도는 느끈히 할 수가 있는데, 모든 십자가의 복음을 가지고 비아냥거리면서 얼마든지 비판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 뒤에 목숨이 붙어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 질문 - 특정 날짜에 대해서 다시 한번 설명을 좀 해주세요.
어떤 특정한 날짜부터 믿음이 시작되었다고 한다면, 오늘같이 "2005년 5월 11일부터" 라고, 그렇게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우리가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말이다. 자기는 5월 11일이라고 해도, 나중에 천국에 가서 보니 이미 3월 11일이라는 것이다.
* 질문 - 어떤 특정 날짜가 문제가 아니라, 이미 우리가 태어나기 이전부터 정해진 것이 아닌가요?
물론 이미 정해져있는데, 제가 지금 이야기하는 것은 역사적으로 발현되는 시기라는 말이다. 그것이 로마서에 나오는데, 8장 29절과 30절을 한번 보자.
(롬 8: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롬 8:30)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 성경은, 하나님이 자신에게 하시는 말씀 !!
여기 29절에 보면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라고 하는데, 이것은 도대체 누가 누구에게 하는 이야기인가? 아까 말했는데, 하나님이 하나님에게 하시는 말씀이라는 것이다. 즉 하나님께서 피조물인 우리 인간들에게 하는 이야기가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하나님 자신에게 하시는 말씀이라는 말이다. 즉 하나님끼리의 대화라는 것이다.
그리고 30절에 보면,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라고 하는데, 그러니 부르신 시점이 있다는 것이다. 이 '부르심'을 또한 '소명(召命)' 이라고 하는데, 월요일 서울에 가서 강의를 할 것인데 말이다. 이 소명이 깊이 들어가면 참 어려운 내용이라는 것이다.
◈ 엄마, 가임신(假姙娠)이 뭐야?
그런데 개뿔도 부름도 받지 않고는 부름을 받고 싶어서 환장을 해서 자꾸만 되풀이하면, 마치 부름을 받은 것처럼 착각을 하고 싶은 생각이 드는데, 인간에게 있어서 말이다. 그래서 "나, 소명을 받았어" 라고 하면서 돌아다닌다는 것이다. 터미널 등에 가면 있는데, 물론 교회에도 많고 말이다.
그것을 저는 '가임신(假姙娠)' 이라고 부르고 싶은데, 아이를 갖지 못하는 여자가 너무 아이를 가지고 싶어하다 보니까 그만 실제로 배가 불러온다는 것이다. 이런 소명을 이야기하다보면 그런 것도 모두 분석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 질문 - 그런데 실제로 구분한다는 것이 힘들지 않나요?
물론 구별이 안 되는데, 그래서 항상 결과적으로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결과적으로 이야기한다는 것은, 성경말씀이 다른 사람에게 해당이 되는 것이 아니라, 마구 자기 눈을 찌르는데, 즉 말씀 하나 하나가 자기 눈을 콕콕 찌른다는 것이다.
* 말씀 : 너를 위해서 죄 있는 인간의 모습으로 오셨다.
* 인간 : 누가요?
* 말씀 : 예수님이 말이다.
* 인간 : 아이쿠, 죄송스러워라.
* 말씀 : 너는 이제 그리스도의 사람이다.
* 인간 : 아이쿠, 고마워라.
그러므로 이 말씀이 다른 사람이 아니라, 즉 김 집사도 아니고, 최 집사도 아니고, 박 집사도 아니고, 전부가 다 자기에게 해당되는 이야기라는 것이다. 그러니 목사가 설교를 해도 교인들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 아까는 성경말씀이 하나님과 예수님 사이의 대화라고 했는데, ㅋㅋ)
◈ 성경말씀은 언제나 '나'를 겨냥해서 !!
예를 들어서 로마서 8장 14절에 보면,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라고 하는데, 그러면 "감사합니다. 바로 제게 하신 말씀이네요. 고맙습니다" 라고 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자기에게 짝짝 달라붙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거, 저기 김 집사가 들어야 하는데" 라고 하는 것이 아니고 말이다.
(롬 8:14)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 성경이 뚜벅뚜벅 걸어나오는데 !!
그리고 16절에 보면,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한다" 라고 하는데, 그러면 "정말이지 고맙습니다" 라고 하면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닌데, 그래서 저는 이것을 어떻게 표현하는고 하니까, "성경이 책 속에 있다가 뚜벅뚜벅 걸어나온다" 라고 하는데, 어떻게 표현이 좀 괜찮나요?
(롬 8:16)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그래서 여기 15절에 있는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라는 말씀을 종이를 뚫고서 걸어나온다는 것이다. 그래서 손가락으로 우리 자신을 가리키면서, "바로 너 말이야. 너에게 하는 이야기이야" 라고 한다는 말이다. 그러면 우리는 "아이쿠, 감사합니다" 라고 하면 되고 말이다.
(롬 8: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다시 말해서, 예수님은 이 성경책을 가지고서 우리와 대화를 하시는데, 그래서 우리는 이 성경말씀을 보면서 마치 미친놈처럼 혼자서(?) 중얼중얼거린다는 것이다.
* 예수님 : 너는 이제부터 하나님의 영을 받았어.
* 이근호 : 예. 또 그 다음은요? 진도를 나가지요?
* 예수님 :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해.
* 이근호 : 감사합니다. 또 진도를 나가지요?
* 예수님 : 자녀이면 하나님의 후사이니, 영광을 받기 위해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야.
* 이근호 : 예. 알겠습니다.
* 질문 - 16절에 나오는 '우리 영'은 누구를 의미하나요?
그것은 예수님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성도의 마음' 이라고 보면 되는데, 그 앞에도 '우리' 라는 표현이 종종 나왔는데, 사도바울은 이렇게 성도를 두고서 '우리' 라고 표현을 한다는 것이다. 즉 "너희들과 사도는 다같이 한 형제이다" 라는 것이다.
◈ 오직 '말씀의 사람'으로서 !!
아무튼 17절에서 사도바울은 그렇게 "하나님의 자녀이면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말씀이 그렇게 뚜벅뚜벅 걸어나온다면 우리는 어떤 반응을 일으켜야 하는가? "아니, 저보고 고난을 받으라고요? 그런 싫은데요. 저는 안 돼요" 라는 것이 아니라, "예, 알겠습니다. 주님을 위해서 고난을 받으라고 하니까, 제가 기꺼이 얼마든지(?) 받겠습니다" 라고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성경책이 그냥 소설책이 아니라, 거기에서 말씀이 걸어나오면 그렇게 되는데, 그때 바로 그 사람은 두고서 '말씀의 사람' 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즉 말씀이 생생하게 살아있다는 말이다. 물론 그렇게 하다가도 아이가 '잉' 하고 짜면 모두 잊어버리고, 즉 "방금 내가 무슨 말씀을 들었지?" 라고 한다는 것이다.
다시 정리하면, 성령께서는 이 성경말씀을, 우리 속의 말씀으로, 즉 '나의 말씀'으로 깨우치게 하는데, 그것을 '환기시킨다' 라고 하는데, 즉 다시 한번 인식시킨다는 말이다. 그렇게 재인식시키는 것을 되풀이하시는데, 그런 쪽으로 분위기를 몰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즉 "너에게 주는 말씀이야" 라고 말이다.
◈ 말씀이 사라지면, 자기 정당성이 !!
그러므로 우리가 살아가면서 아무리 바빠도 항상 말씀을 듣는 것을 게을리 하면 안 되는데, 그렇지 않으면 자기가 제대로 살아있다고 있다고 착각을 하니 말이다. 즉 말씀이 없으면 엉뚱한 것이 자꾸 끼어 든다는 것이다. 아마 다들 경험을 해봤지 싶은데 말이다.
이 부분은 이 정도로 하고, 일단 8장 10절을 누가 한번 읽어보세요.
(롬 8:10)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은 의를 인하여 산 것이니라
여러분은 이 말씀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하지 못했어요? 제가 이 말씀을 지킨다고(?) 욕을 많이 들어먹는데 말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까, 지금 동일한 실체를 두고서, 하나님께서는 하나는 죽었다고 보고, 또 하나는 살았다고 보고 있다는 것이다.
◈ 내가, 살았는지 죽었는지 둘 중에 하나만 !!
사람들이 저를 보고 비난하는 이유가, "살았는지 죽었는지 둘 중에 하나만 이야기하라" 라고 하는데, 얼마나 기가 차는지 말이다. 즉 "죄인이지, 의인인지, 둘 중에 하나만 이야기하라" 라는 것인데, 하지만 성경이 그렇게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제가 무슨 수로 그런 이야기를 하느냐는 말이다. 성경이 그렇게 이야기하지 않는데, 그런 억지가 어디 있느냐는 것이다. 이렇게 보니 성경자체가 참으로 어려운데, 그러니 성경을 해석한다는 것이 보통 힘든 일이 아니라는 말이다. 성경은 이렇게 동일한 인물을 두고서, 살았다고도 보고 죽었다고도 본다는 것이다.
* 질문 - 그런데 그들이 묻는 것은 영과 육을 모두 말하는 것이 아니라, 육신에 대해서 이야기해달라는 것이 아닌가요?
그런 차원이 아니고, 그들이 그런 질문을 하는 이유는, 성경에는 관심이 없고 자기에 관심이 있기에 그러한데, 즉 "나는 살아있는 자인가? 죽은 자인가?" 라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자기가 구원을 받았는지, 받지 않았는지, 그것만 이야기해달라는 것이다.
◈ 하나님께서, 인간을 바라보는 두 개의 시선 !!
하지만 이 본문말씀은 "하나님께서는 한 인간을 두고 이렇게도 보고 저렇게도 본다" 라고 하는데, 즉 하나님은 두 개의 시선을 가지고 인간을 본다는 것이 로마서 8장 10절의 내용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은 그것이 아니라, "그러니까 내가 살았다는 말입니까? 죽었다는 말입니까?"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자기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그것만 이야기해달라는 것인데, 왜냐하면 인간에게는 죽고 산 것이 같이 있을 수 없기에 말이다. 즉 어느 한 쪽이 다른 쪽을 차버린다는 것이다. 그것은 관심사가 자기 구원에 있기 때문인데, 그러나 그것은 말씀자체가 배척해버린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살았는지 죽었는지, 그런 것에 너무 연연해하지 말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미 자기 몸이 자기 몸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기에, 즉 그리스도가 박혀있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라고 하면 무엇만 생각하면 되는가? 그렇다면 이제부터는 도대체 자기 몸을 어디에 써먹을 것인지, 그 활용도만 염두에 두면 되는데, 그런데 아직 그리스도가 없으니 자꾸만 자기 구원만을 생각한다는 것이다.
◈ 그리스도의 사람의 두 가지 활용도는?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사람은 그 활용도가 두 가지인데, 하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산 사람이 되었다는 것인데, 그래서 "만약에 니가 육신에 대해서 산다고 하면 죽은 자이다" 라고 한다는 것이다. 바로 이 두 가지를 가지고 우리를 똥개처럼(?) 부린다는 말이다. 그러니 구원이 문제가 아니라, 활용도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즉 그리스도의 사람은 이제 그리스도의 소유로 넘어왔기에, 그리스도께서 원하는 대로 쓰임을 받는다는 말이다.
TV 드라마에 '신입사원' 이라는 것이 있었는데, 젊은 아들에게 인기가 제법 있었는데 말이다. 주인공역할을 '에릭'이 맡았는데, 그 이름이 '강토' 라는 것이다. 그가 LK그룹에 취직을 하는데, 그런데 일단 그렇게 취직만 하면 월급을 다 주는가? 그 다음부터는 그 회사가 그 사람을 어떻게 활용을 하는지, 그렇게 제대로 사용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 야, 나는 합격이다 ??
이와 마찬가지인데,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었다면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활용을 하는지, 그것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그런데 "야, 나는 합격이다" 라고 한다면, 그것이 어떻게 말이 되느냐는 것이다. 그것은 그야말로 육적인 사고방식이고, 그런 사람이 합격이 될 리도 없겠지만 말이다.
그런 사람에게는 그리스도는 이제 '안녕' 인데, 즉 그동안 십자가에 달려서 죽고 부활하고, 그렇게 한다고 수고를 많이 했다는 것이다. 자기는 이제부터는 무엇을 해도 다 용서를 받으니, 지금부터는 자기 마음대로 살겠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활용한다는 생각은 하지를 않고, 이제부터는 그리스도는 그만 떼 내어버리고, 자기 마음대로 살려고 한다는 것이다. 즉 그리스도가 심겨진 사람이 아니라는 말이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사람은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활용하는고 하니까, "이런 것이 육신이다" 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사용하고, 또 "이런 것이 구원을 받은 사람이다" 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동일한 사람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동일한 사람을 말이다.
그러므로 그 사람이 구원을 받은 것은 그리스도의 은혜로 받은 것이고, 또한 그 사람은 늙어죽는데, 그것은 바로 자기 육신의 죄 때문에 죽는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니, 더 이상 모호한 것이 하나도 없다는 말이다. 얼마나 선명한지 모른다는 것이다.
◈ 마치 신입사원 '강토'처럼 !!
하나님께서는 신입사원 강토처럼 그렇게 부리는데, "봐라. 구원을 받았다고 하면서 저 따구로 살잖아. 그러니 죄의 값이 사망이 맞지" 라고 하는 역할이 있고, "그런데 저런 인간도 예수님의 공로로 구원을 받아" 라고 하는 역할도 있다는 것이다. 세리와 창기들이 그런 자들이고, 또한 예수님의 십자가 옆에 달린 강도도 역시 그렇고 말이다.
그 놈의 강도는 마지막 때까지 강도짓을 했는데, 그 얼마나 끔찍한 흉악범이었으면 십자가에 달려서 죽어야 하는 형벌을 받느냐는 것이다. 예수님처럼 모함을 받은 것도 아닐텐데 말이다. 하지만 강도는 그날 밤에 어디로 직행했는가? 천국으로 갔는데, 그것은 바로 옆에 계신 예수님께서 그 강도를 활용한 것인데,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말이다.
그러므로 일반적인 종교의 개념과는 완전히 다르다는 것이다. 종교는 이런 것이 전혀 아닌데, 오히려 정반대라고 보면 되는데, 종교는 결국 "열심히 착하게 살아서 구원받자" 라는 것이니 말이다. 그러니 노는 동네가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한쪽은 마귀동네이고, 다른 쪽은 예수님 동네이니 말이다.
◈ 인간은 왜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인가?
아무튼 그리스도께서 '나'를 사용하시는데, "나는 왜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인가?" 라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서 말이다. 이렇게 이야기하니 사람들이 저에게 항상 시비를 걸고 말이다. 왜 입만 벌리면 죄를 이야기하느냐는 것이다.
* 저근호 : 당신은 죄를 용서받았다고 하면서 맨 날 죄만 이야기하는가?
* 이근호 : 용서를 받았으니 그렇지.
* 저근호 : 그러면 목가가 설교하는 것도 죄인가?
* 이근호 : 당연히 죄이지.
* 저근호 : 세상에 설교하는 것이 죄라고?
* 이근호 : 당연하지.
* 저근호 : 그러면 찬양하고 기도하는 것도 죄인가?
* 이근호 : 물론 죄이지.
* 저근호 : 웃기는 놈이네. 설교하고 찬양하고 기도하는 것이 죄라고?
* 이근호 : 당연히 죄이지.
◈ 우리는 왜 욕을 듣는가?
물론 여러분도 이런 욕을 함께 듣고 있지만, 왜 우리는 이런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는고 하니, 이미 살았기 때문에 말이다. 그것을 육신으로는 죽었고, 영으로는 살았다고 한다는 것이다. 오직 그리스도 때문에 말이다. 그것이 로마서 8장 10절의 말씀이라는 것이다.
이것을 너무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는데, 사도바울이 그동안 얼마나 못된 짓을 많이 했는가? 사도바울이 예수를 믿는 사람을 잡아죽였다면, 물론 그때는 사도가 아니니 그냥 사울이라고 하면, 아무튼 그런 사울 때문에 억울하게 아버지를 잃고 남편을 잃은 사람에게 대해서 나름대로 책임을 지는 것이 도리가 아니냐는 것이다. 하지만 사울이 책임을 졌는가? 결코 지지 않았다는 말이다.
◈ 다윗의 경우에 !!
더 쉬운 예를 들면, 다윗이 누구를 범했는가? 우리야의 아내를 겁탈했고, 그 우리야도 그냥 죽였는데, 다윗이 나중에 그 문제를 회개하고 하서 거기에 대한 책임을 졌는가? 그렇지 않는데, 무슨 그런 놈이 다 있느냐는 것이다. 남의 집안을 박살내놓고 말이다. 그러면서 뭐라고 하는가? 자기는 사람에게 죄를 지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지었다는 것이다.
쉬운 예를 든다고 해놓고 사실은 엄청 어려운 이야기를 하고 말았는데, 그러니 그것을 로마서의 표현을 빌리자면 자기 속에 들어있는 죄가 그 짓을 했다는 것이다. 얼른 들으면 굉장히 무책임하고 자기 정당화를 하기에 무지무지 좋은 빌미를 제공할 수도 있는 방편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당신은 왜 그런 짓을 했지?" 라고 하면, "제가 한 것이 아니라, 제 속에 있는 죄가 저질렀습니다" 라고 말이다.
어떤 사람은 다윗이 우리야의 아내를 자기가 거두었으니 책임을 졌다고도 주장하는데, 그것이 과연 책임을 진 것인가? 그런 책임 같으면 우리도 얼마든지 질 수 있다는 것이다. 예쁜 마누라도 하나 더 생기고 말이다. 오늘은 여기서 하룻밤을, 내일은 저기서 하룻밤을, 얼마나 좋으냐는 것이다. 물론 돈과 체력이 좀 문제가 되겠지만 말이다.
◈ 구약에서 왕은 구원통로 !!
그러나 그것은 바로 다윗으로 하여금, 원래 이스라엘이란 나라의 왕의 자리는 하나님의 구원통로인데, 즉 구약에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서의 구원의 자리라는 것이다. 그것을 '기름 부었다' 라고 하는데, 그것을 히브리어로 '메시야' 라고 하고, 헬라어로는 '그리스도' 라고 한다는 말이다. 그리니 그리스도는 '기름 부름을 받은 자' 라는 의미인데, 즉 기름이 발렸다는 것이다.
이렇게 "기름을 발랐다" 라는 것은, 석유를 발라서 불을 낸다는 의미가 아니고, 거룩한 기름을 부어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매자 역할, 즉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간통로를 의미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중간통로에 대해서, 다윗은 자기가 그런 역할을 하니 자기가 거룩한 사람인 줄로만 알았는데, 그런데 하나님은 그 중간통로를 그만 가장 극악 무도한 범죄자로 만들어버렸다는 것이다. 강간범에다 살인범에, 또한 가정파괴범으로 말이다.
◈ 그런데 그 왕이 트리플 범 ??
그러므로 "왕=죄인"이 되는데, 이렇게 인간들의 왕이 죄인이라면 인간들은 죄인임이 두말할 필요도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러한 다윗과 같은 죄인의 모습으로 예수님이 오셨는데, 그래서 예수님은 죄인들을 대표해서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저주를 받는다는 말이다.
그러니 성경말씀이 그 얼마나 오묘하냐는 것이다. 그렇지 않는가? 예수님은 다윗의 자손으로 오셨기 때문에, 그런 다윗의 운명이 예수님에게 그대로 전가가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예수님은 다윗과 같은 길을 가게 되고 말이다. 다윗의 자손이니 말이다.
◈ 다윗도 예수님 때문에 구원을 !!
이 다윗이 무슨 짓을 했는가? 우리야를 죽이고 그 아내를 취하게 되는데, 바로 그 형벌을 예수님이 고스란히 다 받는다는 것이다. 또한 바로 그 예수님 때문에 다윗이 살고 말이다. 다윗이 이런 사실을 알았는데, 즉 자기는 예수님 때문에 구원을 받은 것이지, 이스라엘의 왕이기 때문에 구원을 받지 않았다는 것을 말이다.
그렇다면 예수님 이후에는 누가 있는가? 바로 우리들인데, 아까 말한 그 '우리 영'인 우리들이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까지 다윗과 같은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는데, 그런데 예수님은 바로 그 죄를 우리에게 집어넣어 버린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간음을 하든지 말든지 간에 십자가 앞에서 동일한 죄인이 되고, 그것을 아는 자가 바로 구원받은 사람이라는 말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가 심겨져 있는 사람이기에 말이다.
그러니 우리가 인생의 모든 무거운 짐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제부터는 인생자체가 우리의 것이 아기에 말이다. 사람이 사기를 치고 사람을 죽인다고 해고 지옥에 가는 것도 아니고, 또한 그것을 하지 않고 착하게만 산다고 해서 천국에 가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모든 것이 이렇게 그리스도에 의해서 다 결정이 되었는데, 우리가 더 이상 무슨 고민과 걱정을 그리 할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다. 우리가 그런 근심걱정을 한다고 전혀 해결될 것이 하나도 없는데 말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이 다 내게로 오라" 라고 하셨는데, 그것은 편하게(?) 해주겠다는 것이 아니라, 아예 죽어버리겠다는 것이다.
* 질문 - 그러니 아담의 원죄뿐만 아니라, 구약의 그런 사람들의 죄도 우리에게 있다는 말씀이지요?
◈ 인간들이 짓는 다양한 모든 죄가 원죄 안에 !!
물론 그러한데, 거기에 '원죄뿐만 아니라' 라는 말보다는, 모든 죄가 그 원죄(?) 안에 다 들어있다는 것이다. 저는 '원죄' 라는 표현이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아무튼 기존의 단어를 사용해서 표현하자면 말이다. 그 원죄 안에 다윗의 죄도 포함이 되어있다는 것이다. 원죄가 있기에 그런 죄들이 드러나는 것이니 말이다.
우리 인생이 강건하면 80세인데, 그 80년을 살아도 그 원죄를 다 짓지 못한다는 것이다. 뷔페식당에 반찬이 천 가지가 있다고 하면 다 먹을 수 있겠는가? 만약에 그 원죄가 20,000 가지가 있다고 하면, 우리는 기껏해야 10%정도라도 짓겠는가?
◈ 다윗은 다윗대로, 이근호는 이근호대로 !!
그런데 그것을 사람들이 골고루 나누어서 짓는데, 다윗은 다윗대로, 또 이근호는 이근호대로 말이다. 설교하면서 죄를 짓고 말이다. 또한 박주영은 박주영대로 죄를 짓는데, 한 골 넣고서 기도하는 죄를 말이다. 그러니 남의 죄를 너무 탐내어서도 안 되는데, 역시 그것도 죄이니 말이다.
* 질문 - 그런데 죄를 짓는 재미도 무시하지 못하지 않습니까?
그것도 하나님이 기회를 주셔야 짓는 것이지, 인물도 되고 돈도 좀 되고 해야 짓지, 아무나 짓겠는가? 그리고 다윗은 그렇게 우리야의 아내를 범하기는 했지만, 그러나 자기 아내를 팬다든지, 못살게 굴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얼마나 점잖은 남편이었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아닌가? 그렇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이 짓는 죄를 부러워하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이제 로마서 7장과 8장이 이해가 되지 싶은데, 자기 자신을 더 이상 계속해서 가꾸려고 하지 말고 좀 놓아두라는 것이다. 굳이 가꾸려고 하면 난초나 가꾸든지 하고 말이다. 우리를 가꾸시는 우리 인생의 주인공은 따로 계시니 말이다.
◈ '고난'에 대해서 !!
이제 로마서 8장 17절에 나오는 '고난'에 대해서 살펴보겠는데, 이 고난은 고생과는 좀 다른데, 물론 사람들은 고생을 고난으로 착각하고 살아가지만 말이다.
(롬 8:17)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여기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다' 라고 하는데, 여기서 말하는 고난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면서 그 어떤 것도 그 앞에서 다 시시하게 여기는 마음상태를 두고서 '고난' 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고난은 물질의 유무 등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물론 고생은 돈이 없으면 생기는 것이고 말이다.
◈ 오늘 제천에서 있었던 일 !!
오늘 제가 제천에 갔다왔는데, 이제 신학교 과정을 다 마치고 곧 목사님이 될 분인데, '백흥진' 전도사님이라고, 그분이 그곳에 교회를 개척했다는 것이다. 혹시 그 근처에 복음을 그리워하는 분이 있으면 그분에게 소개를 시켜주면 되고 말이다. 아무튼 개척예배를 드리는데, 전도사님의 부모님도 서울에서 다 오셨고 말이다. 특정한 홀도 없이 그냥 자기 집에서 그렇게 개척을 했다는 것이다.
보통 그런 외딴 곳에 교회를 개척하면 부모들의 심정은 대부분이 다 똑같은데, "이이쿠, 이놈아! 니가 뭐가 그리 잘났다고 이런 곳에다 개척교회를 하노? 그냥 남들처럼 큰 교회에 부교역자로 있다가 좋은 곳이 생기면 그곳에서 개척교회를 하면 되지. 무슨 기존 교회가 썩었다고 하면서 이런 곳에서 이렇게 사서 생고생을 하노?" 라고 가슴을 치는데, 물론 마음속으로 말이다.
저도 백 전도사님의 부모님이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줄 알았는데, 그런데 다같이 식사를 하면서 전도사님의 아버님이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장로님인데, 다른 사람들이 '원장님' 이라고 부르는 것을 보니, 그래도 하는 일이 개인병원의 원장정도는 되지 싶은데 말이다.
그런데 이 분이 오히려 전도사님보다 더 흥분해서(?) 자기 아들을 격려하고, 또 기존교회에 안주하지 않고 이런 곳에 교회를 개척한 것을 위로하고 좋아하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저는 참으로 의아했는데, 그런데 나중에 그 이유를 알아보니까, 이 분이 과거 자기가 교회에 다닌지 거의 초창기에 그야말로 엄청난 체험을 했다는 것이다.
◈ 나는 빛을 보았다 ??
자기가 어느 날 말씀을 보면서 기도를 하는데, 그만 빛과 같은 것이 자기를 비추면서 그 빛이 얼마나 강렬하든지 자기를 왕창 다 녹여버리더라는 것이다. 그냥 온 몸이 마치 용광로의 쇳물이 녹아 내리는 그런 느낌이었는데, 아무튼 자기 몸의 윤곽만이 남아있고 그냥 다 녹아내려 버리는데, 그 다음부터는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도 하나도 부럽지가 않더라는 것이다. 이 세상이 그 얼마나 시시하게 보이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고난인데, 사도바울의 체험을 연상케 하는데 말이다.
여기서 장로님이 고생한 적이 있는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고난을 받았다는 말이다. 즉 하나님의 영광 앞에서 이 세상은 개 코도 아님을 알게 되었는데, 자기가 사라지고 녹아질 정도로 말이다. 자기 자신이 그렇게 다 녹아 내리고 없어져버려도, 그래도 그 빛만 있다고 하면 되지 않느냐는 것이다.
사실 이런 경험들은 종교를 초월해서 많이 있는데, 아무튼 그분이 빛을 받고 난 뒤에 그렇게 교회에 나온지 2개월만에 장로가 되었다고 하는데, 20년도 아니고, 2년도 아니고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자기가 그렇게 초고속(?) 장로가 되었다고 해서 전혀 폼을 잡는 것이 아닌데, 왜냐하면 이미 자기는 빛을 보았기 때문에 말이다.
그러니 자기에는 목사든지 장로든지 그것이 문제가 아니라,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시시하게 여기게 되었다는 것이다. 비록 자기가 병원의 원장이라도, 그것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말이다. 바로 이것을 사도바울은 '배설물' 이라고 했는데, 그냥 자기의 모든 것이 다 똥이고 오줌이라는 것이다. 그때부터는 한국교회가 교회가 아닌 독사의 새끼들이 우글거리는 악마의 집단으로 보였다는 말이다.
그래서 그분이 기도하기를 "하나님, 저에게 아들이 두 명이 있는데, 한 놈은 하나님께 바치겠습니다" 라고 말이다. 물론 표현에 좀 어폐가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물론 그것을 아들에게 말한 적이 없는데, 그런데 백 전도사님이 먼저 이야기를 하니, 그때 "내가 이미 하나님께 약속을 했다. 한국교회가 이렇게 엉터리인데, 니가 제대로 빛을 증거하는 목회자가 되어라" 라고 하더라는 말이다.
물론 장로님의 그러한 이야기는 자기의 느낌인 것이지, 실제로 하나님께서 그렇게 빛으로 역사했다고 볼 수가 없다는 것이다. 성경에는 물론 사도바울의 경우에 빛으로 나타나신 것은 있지만, 백 장로님에 관한 내용이 없으니, 하나님께서 그런 시나리오를 준 것을 우리가 확인할 수는 없으니 말이다. 그런 빛을 본 사람이 어디 한 두 명이겠는가?
다만 여기서 제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그 장로님의 그런 고백에 대한 옳고 그름이 문제가 아니라, 중요한 것은 다만 자기는 하나님의 영광 앞에서 그야말로 자기는 아무 것도 아님을 알았다는 것이다. 자기가 아무리 명성이 있는 의사이든, 병원의 원장이든, 아니면 장로이든 간에 말이다. 그런 빛과의 조우(?)를 통해서 말이다.
◈ 자기에게 의미를 두지 않는 것이, 곧 고난 !!
사실은 그것이 십자가의 피 앞에서 그렇게 되어야 하는데, 자기가 얼마나 무익한지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튼 구원을 받은 사람의 특징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 의미를 두지 않는다는 말이다. 물론 그 시간은 차이가 있겠지만, 2초 정도가 적합하지 싶은데 말이다. 그렇게 자기에게 의미를 두지 않는 것이 '고난' 인데, 그러니 전혀 고생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 질문 - 그러니 오히려 그런 고난은 영광이 아닙니까?
그래서 성경에서는 무엇이라고 하는가? "고난 중에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라고 한다는 말이다. 그러니 그 얼마나 기분이 좋으냐는 것이다.
(벧전 4:13)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 질문 - 그러니 인간적인 생각을 초월한 것이 아닙니까?
물론 그러한데, 초월이라는 표현은 좀 어폐가 있고, 그것은 밑에서 위로 올라서 극복하는 의미이지만, 이것은 그냥 위에 주어졌다는 것이다. 자기가 초월하려고 노력한 것이 아니라, 그냥 위에서 일방적으로 내려왔다는 말이다. 아무튼 노파심에서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우리는 육신이고, 또한 그리스도의 사람임을 잊지 말라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살게 하시는 말이다.
여기서 고린도후서 12장 1절에서 4절을 한번 보자.
(고후 12:1) 무익하나마 내가 부득불 자랑하노니 주의 환상과 계시를 말하리라
(고후 12:2)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십 사년 전에 그가 세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고후 12:3) 내가 이런 사람을 아노니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고후 12:4)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가서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
사도바울은 1절에서 자기가 주의 환상과 계시를 말한다고 하면서, 2절에 보면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라고 하는데, 그런데 그 사람이 자기임에 분명한데, 왜 꼭 다른 사람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그냥 '한 사람' 이라고 하느냐는 것이다.
또한 계속해서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라고 하면서, 왜 '나는' 이라고 하지 않고, '그가' 라고 하느냐는 것이다. 분명히 자기 본인의 일인데, 자기가 삼층천에, 즉 하늘나라에 올라갔는데 말이다. 그 당시 유대인들에게 1층 하늘은 지금 보이는 하늘이고, 2층 하늘은 1층 하늘과 하늘나라의 중간이고(대기권?), 그래서 3층 하늘이 바로 하늘나라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삼층천에서는 '나' 라는 존재가 전혀 의미가 없는데, 그래서 사람을 한 사람 소개하는데, 그래서 '그가' 라고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삼층천에 들어가면, '너와 나'가 전혀 의미가 없는데, 오직 빛을 주신 그리스도만이 전부이지 말이다.
◈ 사도바울의 자유함을 오늘 우리가 !!
이것을 한 마디로 '자유' 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데, 그러니 사도바울은 그 얼마나 자유로운 사람이었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왜 그런가? 그가 싱글이라서 그런가? 그것이 아니라 자기는 육신이기 때문에, 즉 자기는 죄인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말이다.
그러니 그것보다도 더 큰 자유가 어디 있느냐는 것이다. "착해야 돼, 훌륭해야 돼, 절제해야 돼, 겸손해야 돼, 인내심이 있어야 돼, 또 성숙해야 돼" 라는 것이 없고, 자기는 그냥 죄인일 뿐이라는 말이다. 아니, 그런 죄인 중에서도 괴수라는 말이다.
이렇게 사도바울은 자기가 그야말로 밑바닥 인생에 있기 때문에, 살아가면서 부담이 되는 것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바로 그러한 자유가 오늘날 우리에게 있어야 하고 말이다. 그래서 8장 18절에 보면,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라고 한다는 것이다.
(롬 8:18)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 고난을 받아도, 소망 중에 기다리는 것이 !!
오늘은 로마서 8장까지만 하겠는데, 19절 이하에 계속해서 나오는 내용이 무엇인고 하니까, 피조물이 그렇게 고난을 받아도 괜찮다는 것이다. 왜 그런가? 소망 중에 기다리는 것이 있기에 말이다. 그것이 24절과 25절의 말씀인데, 그런데 그 소망이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소망이라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소망은 소망이 아니고 말이다.
(롬 8:24)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롬 8:25)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찌니라
◈ 과연 기도는 누가 하는가?
그렇다면 도대체 누가 그렇게 해주시는가? 여기에 대해서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는데, 우리가 기도를 하면 되는가? 그런데 그러한 우리의 기도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그것이 26절에 나오는데, 그러면 기도는 누가 제대로 하는가? 오직 성령만이 하실 수 있는데, 즉 인간의 기도는 하나님이 받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것이 26절과 27절의 말씀이고 말이다.
(롬 8: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롬 8:27)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그러니 이것도 얼마나 속이 시원한 이야기인가? 아무튼 이런 말씀 하나 하나가 뚜벅뚜벅 걸어나와서 우리를 그 얼마나 기분 좋고 편안하게 해주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기도는 오직 성령께서 하시는데, 왜 그런가? 우리 인간은 무엇을 마땅히 빌어야 하는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인간은 무엇을 조금 아는 것 같지만, 사실은 아는 것도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자기의 마음도 전혀 모르고 말이다.
◈ 주여, 제발 한 골을 ??
이번에 우즈베키스탄과 축구를 했는데, 후반 43분까지 골도 하나 넣지를 못하고, 그래서 우리는 이제 독일 월드컵은 거의 포기를 했는데, "이제 축구도 못보고 무슨 재미로 사는가?" 라고 아쉬워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44분을 지나면서 박주영이 그만 한 골을 넣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동안 열심히 기도했던 사람들이 얼마나 좋아했겠는가? 그야말로 "할렐루야, 만세" 라는 것이다.
이것이 웃을 일이 아니라, 우리의 빌 바가 곧 이렇다는 말이다. 그렇게 박주영이 한 골을 넣음으로서 우리는 보이는 소망에 매여있음을 드러났다는 것이다. 물론 골을 넣지 않았으면 자포자기하고 다른 방식으로 또 눈에 보이는 것에 소망을 두는데, "다음에 넣으면 되겠지" 라고 말이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마음이 편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건 그것이고, 아무튼 지금 한 골을 넣게 해달라고 기도한다는 말이다. 그것이 인간이라는 것이다.
* 질문 - 그러니 우리가 아무리 기도를 해도, 하나님은 우리 인간의 기도가 아닌, 성령님의 기도만을 들어주신다는 말씀인가요?
물론 그러한데, 그것이 27절에 나오는데, 즉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라고 말이다. 아무튼 성령께서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해서 기도하신다는 것이다. 성령님은 우리 인간의 마음도 알고 하나님의 마음도 아니 말이다.
그러니 우리들이 아무리 엉터리로 기도해도, 그런 기도는 다 쓰레기통으로 들어가고, 당연히 쓰레기통으로 들어가야만 하고 말이다. 성령님께서 모두 다 알아서 제대로 기도하는데, 바로 그 기도을 하나님께서 들어주신다는 것이다. 성령님의 기도를 말이다.
◈ 오잉, 예수님까지도 !!
그런데 36절에 보면, 누가 또 성도를 위해서 기도해주는고 하니, 예수님께서도 기도해주신다는 말이다. 그래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자기 택한 자들을 위해서 기도해주시는 분이 바로 예수님이라는 말이다.
(롬 8:34)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이렇게 성령님도 기도를 해주고, 또한 예수님도 그렇게 기도를 해주는데, 그렇다면 그런 기도의 놀라운 효과가 있어야만 하지 않겠는가? 그 효과가 바로 30절에 나오는데,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라고 하신다는 말이다.
◈ 영화롭게 된 것은 누구의 기도덕분인가?
그렇다면 이렇게 영화롭게까지 되는 그 놀라운 효과가 누구의 기도덕분인가? 성령님의 기도덕분이고, 또한 예수님의 기도덕분이라는 것이다. 전혀 우리들의 기도 때문이 아니고 말이다. 우리가 기도해서, 과연 그렇게 되겠는가? 의롭고, 영화롭게 되겠느냐는 말이다.
(롬 8:30)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 질문 - 그러니 기도는 우리의 어떤 희망사항이 전혀 아니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란 말이죠? 그분이 우리의 마음을 감찰해도, 우리의 그런 요구사항은 전혀 해당사항이 없고 말입니다.
물론 당연히 그러한데, 그래서 28절 말씀에 보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라고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데, 그런데 사실 여기에 대해서 우리는 좀 답답하다는 말이다. 우리의 모든 사정이 무시되니 말이다.
(롬 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이게 무슨 말인고 하니, 하나님께서는 왜 진작 한 골을 미리 넣어서 마음 편안하게 축구게임을 시청하도록 하지 않고, 왜 그렇게 후반전 마지막 44분에 골을 넣어서, 그렇게 90분 동안을 마음 졸이도록 하셨느냐는 것이다. 90분 동안을 말이다.
하지만 그것도 역시나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모습인데, 물론 우리의 생각과는 달리 말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우리를 활용했다는 것이다. 즉 하나님께서는 일방적으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데리고 놀았다는 말이다. 우리는 염두에 두지도 않고 자기 마음대로 말이다.
◈ 지금 여러분에게 !!
지금 우리가 로마서 8장을 공부하면서, 제가 무엇을 여러분에게 당부하고 싶은고 하니, 우리에게 그 어떤 고민이 있더라도 세월이 흘러가면 모두 잊혀진다는 것이다. 아무리 부부사이가 나빴다고 해도, 남편이 죽으면 여자는 허전함을 느끼고, 또 우울증에 걸린다고 해도, 그러나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다 해결이 된다는 것이다.
또한 자식은 죽으면 부모의 가슴에다 묻는다고 하는데, 자기 마음속에 매장지를 만들어서 계속해서 품으면서 살아간다고 하는데, 하지만 그것도 거짓말인데, 시간이 지나면 잊혀진다는 것이다. 그렇게 남편도 잊고 자식도 다 잊는데, 물론 가끔은 생각이 나겠지만 말이다.
이처럼 인간은 두 가지를 다 하지를 못하는데, 즉 한 쪽에 집중하면 다른 쪽은 잊어버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이 세상을 헤아리지는 못하는데, 즉 인간은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해야지" 라고 하면서, 두 가지를 다 하려고 하지만, 그러나 어느 한 쪽은 반드시 놓치게 된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인간은 기억력에도 한계가 있고, 사랑에도 한계가 있고, 또 성깔을 부려도 한계가 있고 말이다. 그러니 일을 하려고 하면 하나님이 하셔야지, 우리 인간이 해서는 제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것은, 하나님께서 모두 다 알아서 하신다는 의미이지, "이것은 하나님이 하시고, 저것은 우리 인간이 한다" 라는 의미가 아니라는 것이다.
◈ 인간은 형사 가제트 !!
우리 인간들은 자기 혼자서 분주하고 혼자서 걱정하고, 매일같이 그렇게 하면서 살아가는데, 그런데 일이 되도록 하는 것이 주님이 그렇게 하신다는 말이다. 마치 가제트 형사처럼 말이다. '가제트' 라는 만화영화를 알지요? 가제트 형사는 매일 사고만 치는데, 그런데 일이 제대로 진행이 된다는 것이다. 꼬마소녀와 개 때문에 말이다. 그런데 나중에 폼은 '디리릭 닥딕' 하면서 자기가 다 잡고 말이다.
예를 들고 보니 참 적절하다 싶은데, 이 가제트 형사가 제 아무리 분주하게 호들갑을 떨면서 설쳐도 일이 되는 것이 아니라 말이다. 즉 우리 인간이 제 아무리 호들갑을 떨어도, 결국 천국에 가는 것은 다 주님이 그렇게 해놓으셨다는 것이다.
◈ 항공모함을 타고 노를 젓은 인간 !!
마치 천국에 가는 거대한 항공모함을 타고서는, 그 배의 갑판 위에서 자기 혼자서 생쇼를 하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천국에 가려고 그 항공모함 위에서 노를 젓고 있다는 말이다. 그러니 얼마나 웃기는 이야기인가? 그런데 인간은 그런 짓을 한다는 말이다.
그렇게 갑판 위에서 "하나님, 지금 제가 열심히 노를 젓고 있습니다. 아시지요?" 라고 하는데, 하나님께서 그것을 보고 뭐라고 하겠는가? "참 잘했어요" 라고 하겠는가? 오히려 "니가 노를 젓는다고 해서 방향이 바뀌지 않는 것을 천만다행으로 알아라" 라고 하지 않겠느냐는 말이다.
그 거대한 터빈엔진이 움직여서 항공모함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지, 자기가 갑판에서 폼을 잡는다고 가고 말고 하는 것이 전혀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예수님 엔진이 자기 안에 들어있다고 할 수 있는데, 그래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면서 진행되어 나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단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약속된 항로대로 말이다.
◈ 한 마디로, 인간은 철이 없어 !!
그런데 그것을 믿지 못하고 너무 답답해하면서, 혼자 성경공부를 했다가, 혼자 기도를 했다가, 혼자 찬송을 했다가, 또한 병이 나았다고 까불다가, 또 아이가 아프다고 핑계를 대면서 교회에 나오지 않고 버티다가, 그렇게 갑판 위에서 혼자서 울고불고 난리를 친다는 것이다.
지금 자기가 타고 있는 항공모함은 아무런 문제도 없이 계획된 항로를 따라서 유유히 바다를 항해하고 있는데 말이다. 왜 그런 현상들이 일어나는가? 인간은 한 가지를 생각하면 다른 것을 곧 잊어버린다는 말이다. 한 마디로 말해서, 인간은 철이 없다는 것이다.
◈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
이제 한 가지만 더 하고 마치겠는데, 31절을 보자. 이 구절은 '몰트만' 이란 신학자가 아주 좋아하는데, 물론 저도 좋아하고 말이다. 여기에 보면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라고 하고 있는데, '이 일 '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롬 8:31)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그것이 앞서 살펴본 30절에 있는,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라는 것인데, 거기에 대해서 우리 인간들은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라고 한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 인간들은 입이 백 개라고 해도 이렇게 주님께서 하신 일에 대해서 할 말이 전혀 없고, 또한 끼여들 여지도 전혀 없다는 것이다. 사도바울이 지금 그것이 너무나 좋아서 외치고 있는데, 자기가 할 일이 없다고 해서 기가 팍 죽어서 억지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고 말이다. 그 일이 얼마나 대단하고 완벽하고 제대로 된 일인지 아니까 말이다.
◈ 아니, 그렇게 된다는 보장을 어떻게?
그런데 여기에 대해서 "아니, 그렇게 된다는 보장이 꼭 어디에 있습니까?" 라고 한다면, 그래서 사도바울이 32절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롬 8: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
여기서 '은사'는 선물을 의미하는데, 도대체 무슨 은사인가?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라는 것인데, 그 모든 은사를 도대체 어떤 근거에서 우리에게 주신다는 말인가?
그것은 병이 낫고, 빛을 보는 차원이 전혀 아닌데, 그러면 그 증거가 도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자기의 모든 택함을 받은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셨다는 것이다. 즉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는 것을 봐서, 그들이 구원을 받았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 수가 있다는 말이다.
그러니 누가 뭐라고 해도 성경말씀은 십자가 중심이라는 것이다. 예수라는 분이 이 땅에 와서 십자가에서 죽는 것을 봐서, 즉 그분이 뚜벅뚜벅 걸어가서 "너를 위해서 내가 죽었다"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자기 아들까지 다 내어주어서 자기 택한 자들을 부르고, 의롭다 하고, 영화롭게 했다는 말인데, 그것이 그렇게 서로 연결이 된다는 말이다.
◈ 하나님의 아들이 친히 자기 목숨을 바쳤기에 !!
그러므로 인간들이 여기에 끼여들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데, 심지어 사단도 방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의롭다 하시고, 영화롭게 하신", 바로 그 놀라운 일에는, 그 누구도 간섭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아들이 친히 이 일을 위해서 자기 목숨을 바쳤기에 말이다.
그러니 이러한 일에 대해서, 즉 하나님의 아들이 직접 목숨을 바쳐서 부르고, 의롭게 하고, 영화롭게 한 그들을, 감히 누가 송사하고 정죄하겠느냐는 것이다. 그러니 "너를 위해서 대신 십자가에서 죽은 분이 계시는데, 니가 뭐가 그리 답답해서 걱정을 하고 근심을 하느냐?" 라는 것이다. 그러한 자들을 영원히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어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예수님의 가치를 인정한 자는 말이다. 그것이 로마서 8장의 내용이라는 것이다.
(롬 8:33)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롬 8:34)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롬 8: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롬 8:36) 기록된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롬 8: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롬 8: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롬 8: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 걱정 근심은 이제 그만 !!
우리가 이 로마서 8장을 보기 전까지는, 사도바울이 그냥 대충하고(?) 넘어간 줄로 알았는데, 그런데 실제로 살펴보니 어떠한가? 이 로마서 8장에서 사도바울은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 라고 하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이야기하는데, 그런 사랑의 유일하게 십자가를 통해서 드러내셨다는 것이다.
바로 이 십자가의 배후에 그러한 연결고리가, 즉 그런 엄청난 일들이 있었다고 하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에게 있는 그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당연히 모두 주님께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오직 그분만이 그럴 자격이 있으니 말이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태어나기 이전에 이미 하나님끼리의 의논과 계획이 다 있은 줄로 압니다. 이미 정해놓은 자들이기에, 차후에 십자가를 지도록 하시고 대신 죽게 하심으로서, 그 귀한 생명으로 인한 영생이 저희들에게 전달되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죄인이고 육이기에 예수님이 동원되었다는 사실에 언제나 감격해하면서, 이제는 오직 예수님만을 증거하면서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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