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5광주강의(실로암교회) 08 - 고린도전서 3-3
http://media.woorich.net/~woorich/study/gwangju/gwangju050310c.mp3
05,03,10
강의: 이근호 목사
강의를 시작하겠습니다. 마지막 시간이니 정신을 집중하시고, 먼저 고린도전서 1장 18절 보겠습니다. 거기에 뭐라고 되어있지요?
(고전 1: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무슨 말인고 하니, '멸망하는 자들'로 하여금 자기들이 멸망하는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서라도 십자가의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기들이 왜 망해야 하는지 말입니다. 그것이 바로 성령을 받은 사도 바울의 뜻이라는 말입니다.
◈ 사도 바울 - 내가 복음을 전하는 이유는, 이 세상을 둘로 나누기 위해서 !!
다시 이야기하겠습니다.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하는 이유는, 이 세상 전부를 둘로 확연하게 나누는 그런 일을 자신이 담당했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개혁하는 것도 아니고, 세상을 개선하는 것도 아니고, 세상을 발전시키기 위함이 아니라, 이 세상의 실체를 둘로 확실하게 나누기 위해서 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는 반드시 멸망해야 될 사람이 있다는 것이고, 그리고 반대로 반드시 구원되어야할 사람이 있다는 말입니다.
제가 두 번째 시간에 뭐라고 했습니까? 인간은 누구나 늙고 연약하게 되면 죽어서 좋은 나라 가기를 소원한다고 했지요. 그런데 이런 사고가 악마에 메여있기 때문에 생긴, 당연한 악마의 본성이라고 했습니다. 그것이 종교본성이고 말입니다. "내가 지금은 이런 초라한 모습이지만, 죽어서는 좋은 나라에 갈 거야" 라는 심리는 모든 인간이 가지고 있으며, 그것은 바로 악마가 심어준 품성인 것입니다. 이런 심성이 거룩한 교회를 만들고 조직을 만들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네가 죽어서 좋은데 가야해' 라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너는 구원되어야해. 그리고 그 나머지 사람들은 반드시 멸망해야 돼" 라고 말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더 극단적으로 말하면 이렇습니다.
성도 : 저는 천국 가기 싫은데요. 바울 : 안 되. 너는 천국 가야해. 성도 : 저는 지옥이 궁금한데요. 바울 : 그래도 안 되. 너는 천국 백성이야.
이런 식으로 구원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나는 죽어서 좋은 나라 가고 싶어" 라는, 이런 사고가 전혀 용납이 안 됩니다. 인간들의 요구사항이 전혀 반영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이 바로 마지막 때에 생기는 독특한 현상이라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모든 인간은 죽어서 천국에 가고 싶은 것이 본성인데, 그 본성에 대해 조금도 참작하지 아니하시고 "너는 반드시 구원되어야 될 사람이었어" 라고 지목하는 식으로 구원이 이뤄진다는 것입니다. 이 점에 대해서 좀 더 설명해봅시다.
여러분들이 아브라함이란 사람에 대해서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제가 여러분을 너무 무시하지요. 이 아브라함의 아내 이름은 '사라' 입니다. 아브라함과 사라 사이에서 이삭이 태어날 것을 이들 부부가 예상했습니까, 예상 못했습니까?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사라의 태가 이미 닫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사라 대신에 하갈이란 여종을 통해서 이스마엘을 낳았다는 것입니다.
그 후에 하나님의 약속에 의해 아브라함과 사라 사이에서 이삭이 태어났습니다. 그러면 이삭은 누구의 소산입니까? 약속의 소산입니까, 아니면 아브라함과 사라의 육적인 능력의 소산입니까? 약속의 소산이지요. 이런 식으로만 반드시 구원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천국에 가는 사람 가운데 이런 식이 아닌, 자기의 혈육이나 뜻이라든지, 자기 요구사항이나 열정적인 노력으로 천국 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입니다. 기도해도 안 되고, 충성해도 안 되고, 인간의 그 어떤 노력으로도 불가능하기에 지옥에 갈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오직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해서 태어날 자가 태어나는 방식으로만 구원이 이뤄진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구원된 사람에게 마이크를 대고 "당신, 어떻게 구원받았습니까?" 라고 물으면, 뭐라고 하겠습니까? "예,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았습니다" 라는 말이 나오게 되지요.
◈ 멸망해야 될 사람을 멸망시키기 위해서 !!
그렇다면 왜 하나님은 굳이 이런 방식으로 구원을 하십니까? 이 부분이 오늘 강의의 핵심입니다. 왜 인간의 가능성과 기대를 다 무너뜨리고, 오직 하나님의 자기 언약대로 모든 것을 이루는가 하면, 그것은 바로 멸망해야 될 사람을 멸망시키기 위해서 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자기가 구원받았으면, 자기만 챙기면 일 끝난 것으로 알아요. 그런데 하나님의 일은 자기 구원만이 하나님의 일이 아니라, 멸망할 자를 발생시키는 것도 같이 병행해서 이뤄져야 하나님의 일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만드신 지옥이 텅텅 비어서는 안 되기 때문에 말입니다.
◈ 지옥을 만드신 하나님 - 천국과 지옥 외 제 3 지대는 없다 !!
하나님께서 지옥을 만드실 때는 지옥에 갈 자가 있기에 만들었고, 천국을 만드실 때는 천국 갈 자가 있기에 천국을 만드신 것입니다. 그리고 천국과 지옥 외의 제3 지대는 없습니다. 천국이 아니라면 지옥 가야하고, 지옥이 아니라면 반드시 천국에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전부 연기자라면, 천국 가는 사람은 흰옷, 지옥 가는 사람은 붉은 옷을 입는다면, 이 세상은 두 종류의 사람이 살고있다는 것입니다. 흰옷을 입은 사람과 붉은 옷 입은 사람, 그런데 이게 사도 바울의 눈에는 잘 보이는데 대부분 사람에게는 안 보이는 것이 문제라는 말입니다.
그러니 사도 바울이 십자가 복음을 전할 때 멸망할 자에게는 반드시 미련하게 들려야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구원될 사람에게는 구원받는 능력으로 전해지는 것입니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제3의 지대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천국과 지옥 외의 다른 장소는 없기 때문에 말입니다.
◈ 인간이란, 천국 가는 인형과 지옥 가는 인형들 !!
하나님께서 인간을 왜 만드셨느냐 하면, 천국 가는 인형과 지옥 가는 인형이 되기 위해서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너무 심한 것 아닌가 생각할 자가 있겠지만, 원래 피조물은 그런 존재들입니다. 피조물은 창조주의 솜씨를 보여서 그분께 영광 돌리게 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바로 이 창조주가 천당과 지옥을 만들었어요. 그러면 천당과 지옥에 합당하게 이곳 저곳에 갈 사람을 만드신 것이지요. 이것이 인간의 의지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태어나기 전부터 이미 결정되어서 이 땅에 출몰되는 것입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문제를 내겠습니다. 답변해보세요. L.G화학에 근무하는 신앙이 좋은 한 집사님이 오랫동안 연구를 해서 미국 F.D.A가 인정하는 간암을 치료하는 신제품을 개발했다고 합시다. 과연 이것이 하나님의 일입니까?
어떤 교회 장로님이 고속전철을 제작하는 회사의 직원입니다. 그분이 다른 것은 다 해결했는데 발동기하나가 제작이 안 되어서 고민하는 중에, 꿈에 하나님이 아이디어를 주셔서 문제를 해결해서 우리나라 최초로 고속전철을 제작했다고 합시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까?
어떤 학교에 정말 말썽꾸러기인 일진회에 속해 있는 학생이 있었는데, 여러 선생님이 꾸중하고 달래고 해도 말을 듣지 않던 녀석이, 어떤 기도하는 교사 선생님이 그 아이를 위해 기도해서 그 학생이 성실한 모범생으로 변했다고 합시다. 이게 하나님의 뜻입니까?
◈ 멸망과 구원의 기준이 되는 것은, 인간 아닌 예수님의 피 밖에 없다 !!
정답은 모두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멸망될 자와 천국 갈 자를 구분하는 기준이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멸망과 구원의 기준이 되는 것은 인간이 뭔가를 발명하고,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켜서 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아닌 예수님의 피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의 피만이 멸망될 자와 구원될 자를 구분시킨다는 것입니다.
제가 지금 오늘 강의의 하이라이트를 지금 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아무런 반응이 없네요. 정말 큰일 났네요. 강의를 처음부터 새로 시작해야겠습니다. - 아멘 !!
하나님께 기도해서 고속전철 제작을 성공했다면, 불교 신자가 부처에게 빌어서 그보다 더 좋은 전철을 만들어 낼 수도 있습니다. 또 어떤 교사가 기도해서 나쁜 서클에 빠져있던 아이를 착한 아이로 선도했다면, 불교를 믿는 어떤 보살이 더 큰사랑을 베풀어서 한 명이 아니라 10명씩 집단적으로 변화시킬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이럴 경우 사람들은 어떤 기준으로 평가하겠습니까? "종교와 관계없이 사랑을 많이 베풀면 인간은 감동을 받아 변한다. 이것이 진짜 교육이다" 라는, 이런 식으로 생각해서해, "누가 구원받느냐?" 라는 문제에서, 사랑을 많이 베푼 사람이 천국 가고, 반대로 사랑을 베풀지 못한 사람이 지옥 가는 것으로 분별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되면 이것은 사도 바울이 전하는 구원의 능력과는 전혀 상관없는 거지요. 예수님의 피의 능력을 믿지 아니하면, 그 사람이 어떤 위대한 발명을 해서 인류사회에 공헌했다고 해도,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고 세상을 주관하는 악마의 뜻이란 말입니다. 제가 방금 '악마의 뜻' 이라고 하니, 충격을 받아서 "그런 일은 안 해야겠다" 라고 생각하는데, 그러나 이것 역시 악마의 뜻인 것입니다.
◈ 우리는 죽을 때까지 악마의 뜻을 못 벗어난다 !!
오늘 강의를 다시 정리합니다. 우리는 죽을 때까지 악마의 뜻을 못 벗어난다는 걸 제발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밤에 집으로 돌아갈 때, 어떤 경우라도 악마의 유혹에서 자유로울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가 구원되는 것은 "이렇게 예수 믿으면 구원되겠지' 라고 해서 구원되는 것이 아니고, "십자가를 믿을 수밖에 없는 것이 바로 너야" 라고 하면서, 우리를 지목해서 구원이 성사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십자가의 용서의 능력이 다른 사람들처럼 미련하게 들려야 마땅한데, 이상하게 우리에게는 미련하게 들리는 것이 아니고, "그래, 맞아. 그것만이 나의 죄를 씻는 하나님의 능력이야" 라고 믿어진다는 것입니다. 이런 믿음은 우리의 노력이라 의지가 아니라, 하나님이 성령으로 우리에게 찾아오셨기에 일어나는 현상이고 말입니다.
◈ 복음 - 가슴이 시려와요 !!
착한 우리 딸, 선한 우리 엄마에게 아무리 십자가 얘기를 해도 안 믿을 때에는 "반드시 멸망되기로 작정된 자" 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말입니다. 가슴이 시려와도 말입니다. 오늘 좋은 강의를 했는데, 마지막에 이런 말해서 분위기가 침울하게 바뀌고 말았는데, 어쩔 수가 없지요.
다시 이야기합니다. 아브라함과 사라 사이에 자식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자식이 없지요. 여기에서 남자 분들은 아빠가 되어 아브라함이고, 여자 분들은 엄마가 되어 사라가 되었다고 합시다. 여기에서 자식이 태어났는데, 딸이 태어났다고 합시다. 너무나 귀한 딸이지요.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삭을 모리아 산에 바치라고 하셨지요.
우리는 교회 다니면서 들은 풍월이 있기 때문에 "이 자식은 하나님의 은혜로 주신 것이지, 내 자식이 아니다" 라고 하지요. 하지만 그러면서 은연중에 이 딸이라는 존재에게 아빠, 엄마가 얽매이게 되어 있고 말입니다.
그런데 방금 제가 강의를 이렇게 했습니다. 심지어 자기가 나은 딸이라 할지라도 "예수님의 십자가 피를 거부하면 그 사람은 반드시 멸망 받기로 작정된 사람입니다" 라고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의 십자가 피를 미련하게 보는 사람은 반드시 멸망 받을 사람이라는 것이지요.
그런데 놀랍게도 다 성장한 내 딸이 십자가를 거부하고, "아빠, 아빠는 다 좋은데 항상 예수 십자가만 믿습니까? 세상에 종교도 많고 진리도 많은데 하나 자꾸 주장하면 세상에서 못 살아요. 제발 더 이상 십자가만을 고집하지 마세요" 라는 식으로 나온다면, 이런 경우 우리의 반응이 어떻습니까?
분명히 하나님이 주신 딸이라고 했고, 자기가 낳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우리 가정에 태어나게 해 주셨다고 해놓고, 막상 딸이 이런 식으로 나오면 "하나님이 주신 딸이 이런 딸이었구나" 라고 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주여! 하필이면 왜 내 딸이 이렇습니까?" 라고 나온단 말이지요. 그러면 남의 딸은 지옥가도 괜찮고 자기 딸은 안 된다는 말입니까?
아니 유치원 운동회에서, 여러 아이가 달리는데 남의 아이는 넘어지고 자기 아이가 1등으로 들어와야 합니까? 말은 '하나님이 주신 딸' 이라고 해놓고, 막상 집안에서 보면, '내 딸', '내 것', '내 소유' 라는, 이것이 입에 붙었어요.
따라서 자기 딸이 그런 소리를 함으로 말미암아 정말 자기의 신앙을 점검하는 계기를 마련하는 것이란 말입니다. 그 순간만은 말입니다. 그런 딸이 내일 "아빠! 나 십자가를 믿게 되었어" 라고 할지 누가 압니까? 어제까지도 십자가를 미련하게 여기던 얘가 갑자기 여군에 입대를 하더니만, "아버지, 이제야 내가 주님의 십자가 은혜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라고 나올지 아무도 몰라요. 그것은 주님의 소관이지 자기가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딸의 믿음 없음을 알고 마귀자식이라고 그를 몽둥이질을 할 수 있습니까? 자기 딸이 아니라 하나님의 딸이에요. 억압하면 억지로 하는 척 하지 그렇게 한다고 믿음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런 식으로 하는 것은 강도이지, 그게 어떻게 십자가의 능력입니까?
◈ 개개인의 믿음에 대해서 미리 장담하지 말라 !!
그러니까 어떤 인간 개개인에 대해서 미리 장담하지 말란 말입니다. 그런 장담은 은연중에 뭐가 포함되어 있다구요? "다른 딸은 다 지옥 가도, 주여 제 딸만은 손대지 마세요. 어떤 일이 있어도 나는 딸과 함께 천국 가겠습니다" 라는 미신적인 생각이라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자기가 낳은 딸도 자기 것이 아니고, 자기 몸도 자기 것이 아니라, 구원받기로 작정된 자만이 주께서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제가 왜 이런 말씀을 드리는가 하면, 어떤 사람이 신학을 공부해서 "십자가는 멸망하는 자에게는 미련한 것이고, 구원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라는 것을 배워서, 막상 이것 가지고 처음에는 철없이 강단에서 배운 대로 외치지요. 그런데 청중들의 반응이 너무 조용해요. 그들은 그런 소리 처음 들었거든요. 늘 헌금하면 물질의 복 받는다는 말만 들어왔기에 말입니다.
그럴 때 장로들이 수군거리면서, "저 목사가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저 목사 오고 난 후에는 헌금도 제대로 안 나오고 교인들이 줄 가능성이 많으니까 빨리 조치해서 쫓아내자' 라고 나왔을 경우, 그 목사가 "제가 신학교 때는 그렇게 배웠습니다만, 그런 것은 높은 수준의 신앙인들이 하고, 그런 수준에 못 미친 사람들에게는 그것을 목표로는 삼지만 일단 이렇게 하면 복 받습니다' 라고 가르치겠다고 나온다는 것이지요. 왜냐하면, 그 교회가 그 목사의 월급을 주는 곳이기에 말입니다.
이런 경우에도 다른 교회 목사가 그렇게 나오면 나쁜 목사라고 욕하겠지만, 그러나 막상 자기 생활 터전에서 일어나는 경우에는 달라요. 사람이란 원래 그런 겁니다. 사람과 의사소통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많이 양보해서 그런 식으로 설교를 하지요.
◈ 믿음 없는 딸 - 아버지의 믿음 없음을 고발 !!
그런데 자기 딸이 말하기를 "아빠 지난주에 보니까 십자가를 안 믿으면 지옥 간다고 하셨는데, 나는 그런 하나님은 안 믿어요. 다른 사람은 다 지옥 보내고 십자가 믿는 사람만 천국 간다는 그런 독선적인 신은 싫어요" 라고 나올 때, 아버지가 하는 말이 "그게 아니고, 그것은 수준 높은 신앙인에게 그렇고, 말이 그렇다는 것이지 내가 설마 네가 지옥 간다고 할 수 있냐?" 라고, 이렇게 말을 바꾸는 거짓됨을 고발하기 위해서 주께서 그런 딸을 아빠에게 붙여준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머리로는 그렇게 배웠지만 실생활에서 본인이 전혀 비현실적이고 추상적인 것으로 여기고, 십자가를 미련하게 취급하고 떠밀고 있는 자임을 고발하기 위해서, 그런 사람을 주위에 붙여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도 역시 그렇고 말입니다.
사도 바울이 복음 전하면서 고생하며 죽을 고비를 엄청 만이 넘겼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자기가 죽을 고비를 맞이했다고 해서 복음을 그만 전하라는 신호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반대가 되어야 해요. 자기가 믿는 복음은 죽음조차도 이기는 것이란 사실을 보여주는 절호의 기회가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나는 어떤 형편에 처하든지 내 할 일을 다 할 수가 있다. 왜 나는 이미 구원되기로 작정된 자이기에, 내 안에는 생명이 있기에 그 생명은 죽는 순간에도 빛이 난다. 내가 날마다 죽을 때 내 안에서 그리스도의 생명이 피어난다" 라고 하는, 이것을 가지고 십자가의 능력이라고 하고, 이것이 바로 우리를 구원하는 능력이라는 말입니다.
십자가의 능력은 우리에게 어떻게 다가오는가 하면, 다른 사람 같으면 살기 위해서 복음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 속에서도, 진짜 복음을 아는 사람은 "마귀야, 네가 나를 현혹하는 것이 겨우 이 정도냐? 예수님의 죽으심이 이런 것으로 무효화될 수 있다고 여기느냐?" 라고 하는 식으로 십자가의 피를 의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복음을 안다는 사람이 십자가의 피를 의지하지 않고, 거듭난 새로운 삶, 생명 속의 삶, 이런 것을 가지고 증거하려는 사람이 많아요. 이럴 때 마귀는 좋다고 박수를 쳐요. 왜냐하면, "네가 그런 짓을 하고도 복음 전하냐?" 라고, 그렇게 나와요. "너는 그렇게 나쁜 짓을 하면서도 남에게 복음을 전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 라는 식으로 마귀는 복음 전하는 것을 방해한다는 것입니다.
◈ 마귀의 최후 유혹 - 네가 복음을 전할 자격이나 있는가?
다시 말해서, 마귀의 최후 유혹이 바로 이것입니다. "네가 복음 전할 자격이나 있냐? 네가 술을 그렇게 처먹고도 복음을 전하냐? 네가 양심에 손을 얹고 생각해 봐라" 라고 말입니다. 그렇게 우리에게 시비를 건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복음이란 자기 자신의 훌륭함이 전혀 아닙니다. 자기의 잘남이 아니고, 자기가 아닌 제 3자가 십자가를 지셨다는 것이에요. 그러므로 피는 자기 피가 아니고, 예수님의 피 때문에 구원받는 것이지, 자기 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귀가 노리는 것은, "네가 그렇게 저질이고 세상 사람들보다 더 악한 놈이 어찌 감히 거룩한 복음을 네 입에서 토해 낸단 말인가? 어느 정도 네가 인간이 되고 난 뒤에 전해야지" 라는, 이것이 마귀의 고단수 전략이란 것입니다. "네가 몸이 아픈데 기도하고 건강을 회복한 후에 전도해야 먹혀들지, 네 몸도 시원찮은 주제에 복음 전한다고" 라고, 이런 소리로 악마가 우리를 약하게 만들어요.
정대철 의원이 지금 교도소에서 사도 바울의 인간성에 대해 글을 써요. 사람들이 비웃지요. 뇌물을 먹고 교도소에 있는 주제에 무슨 바울의 인격에 대해 논하는가 하고 말입니다. 물론 저도 왜 그가 그런 작업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자신의 무죄를 항변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런 작업을 통해서 구원받고자 하는 것인지 말입니다.
우리가 그 같은 입장이라도 구원받고 싶어서 그런 일을 하면 안 되지만, 이미 구원 된 자라면 남의 돈을 갈취했든 뇌물을 받아먹었든 상관없이 십자가는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이겨낼 수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네가 성경 안 읽은 것이 몇 달인데, 그래도 네가 복음을 이야기해. 네가 기도하지 않은 것이 몇 년인데 그래도 복음을 전해. 네가 교회에 출석 안 한지 여러 날인데 그래도 아직 복음을 운운하나" 라는, 이런 유혹을 이길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 너는 못났지만, 그런 너를 내 피가 용서했다 !!
저는 이런 것을 이기는 자는 신자라고 간주하고 싶어요. 왜냐하면, 자기가 구원되는 것은 자기 잘남이 아니라, 자기가 아닌 예수님의 십자가 능력이 죽음을 뚫고 자기에게 직접 다가와서 "너는 못났지만 그런 너를 내 피가 용서했다" 라는 놀라운 사실은 믿기에, 이것은 반드시 천국 가야 될 사람이기에 그런 일이 벌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보다 공부도 많이 했고, 신학도 많이 알고, 열심히 전도하고, 기도를 제 아무리 많이 해도, 십자가의 피만으로 구원된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는 사람은 누가 뭐라고 해도 지옥으로 곧장 갈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기도하기 위해 고개를 숙이기 전부터 이미 십자가는 엄연히 주님이 올라가셔서 피를 흘리시며 다 이루셨다고 말씀하셨고, 그 피가 우리 죄를 깨끗이 씻는 용서의 피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만든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로서 우리에게 다가왔으니, 우리가 우리 속에 있는 하나님 일을 거부하지 않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
2005년 4월 28일 12시 35분 서경수 녹취 마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