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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 믿음

예레미야 35:1-11 / 레갑 족속 본문

구약 설교, 강의(이근호)/예레미야

예레미야 35:1-11 / 레갑 족속

정인순 2025. 4. 6. 16:26

음성 동영상 Youtube

레갑 족속

 

이근호
2025년 4월 6일               

 

본문 말씀: 예레미야 35:1-11

(35:1) 유다 왕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 때에 여호와께로서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니라 가라사대

(35:2) 너는 레갑 족속에게 가서 그들에게 말하고 그들을 여호와의 집 한 방으로 데려다가 포도주를 마시우라

(35:3) 이에 내가 하바시냐의 손자요 예레미야의 아들인 야아사냐와 그 형제와 그 모든 아들과 레갑 온 족속을 데리고

(35:4) 여호와의 집에 이르러 익다랴의 아들 하나님의 사람 하난의 아들들의 방에 들였는데 그 방은 방백들의 방 곁이요 문을 지키는 살룸의 아들 마아세야의 방 위더라

(35:5) 내가 레갑 족속 사람들 앞에 포도주가 가득한 사발과 잔을 놓고 마시라 권하매

(35:6) 그들이 가로되 우리는 포도주를 마시지 아니하겠노라 레갑의 아들 우리 선조 요나답이 우리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너희와 너희 자손은 영영히 포도주를 마시지 말며

(35:7) 집도 짓지 말며 파종도 하지 말며 포도원도 재배치 말며 두지도 말고 너희 평생에 장막에 거처하라 그리하면 너희의 우거하는 땅에서 너희 생명이 길리라 하였으므로

(35:8) 우리가 레갑의 아들 우리 선조 요나답의 우리에게 명한 모든 말을 순종하여 우리와 우리 아내와 자녀가 평생에 포도주를 마시지 아니하며

(35:9) 거처할 집도 짓지 아니하며 포도원이나 밭이나 종자도 두지 아니하고

(35:10) 장막에 거처하여 우리 선조 요나답의 우리에게 명한 대로 다 준행하였노라

(35:11) 그러나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이 땅에 올라왔을 때에 우리가 말하기를 갈대아인의 군대와 수리아인의 군대가 두려운즉 예루살렘으로 가자 하고 우리가 예루살렘에 거하였노라

하나님 계시 내용에 이스라엘 족속이 아닌 다른 민족들이 들어간다는 점이 특이합니다. 그들은 이방족속인 레갑족속입니다. 이 이방족속은 가나안 족속에 속합니다. 이들은 정복 대상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로부터 정복당한다는 생각보다는 합병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즉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에 의해서 정복당하는 것을 무한한 영광으로 여깁니다. 이는 곧 여호와 하나님이 벌리시는 모든 일에 대해서 충분히 동감하고 감격하고 있습니다. 비록 이방민족이지만 자기 민족의 정체성이나 존재성을 고집하지 않고 하나님의 불러주심을 맡깁니다. 즉 ‘나의 나됨’을 지키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오직 하나님께서 자기 민족에게 당부하신 바로 그것입니다. 왜 예레미야의 계시 전달 현상에서 그들이 거론되는 겁니까? 그것은 현 이스라엘의 상황과 비교해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그 당시 나라의 본 자손이라 자처하는 이스라엘은 여호와 하나님을 자신의 하나님이라고 독점하고 있었습니다.

그당시 유다 민족은 그 어떤 경우라도 하나님께서 자신의 민족을 지켜주시기를 굳게 믿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버릴 리가 없다고 여깁니다. 그런데 이점에 대해서 예레미야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이라고 버리신다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참으로 건질 자들이 따로 존재하는데 그들이 바로 레갑 족속이라는 겁니다.

레갑족속의 특징은 자신들의 존재보다 자신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법을 우선한 민족입니다. 쉽게 말해서 자신에게 유리하고,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식으로 말씀을 해석하거나 이해하는 자들이 아니었던 겁니다. 그들은 자기 주변에 일어나는 그 어떠한 정치적 상황에서 본인들이 흔들릴 이유가 없던 이유는, 자신들이 무엇을 해야 할 자인지를 본인들이 결정하는 게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레갑족속은 하나님으로부터 다음 네 가지를 당부받았습니다. 1. 포도주를 마시지 말 것. 2. 농사 짓지 말 것. 3. 포도원을 재배하지 말 것. 4. 집 짓지 말고 천막 생활 할 것. 도대체 이러한 지시가 무엇을 의미하는 겁니까? 이것은 인간에게 있어 ‘가짐’, 그리고 ‘소유’라는 것이 결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의 목적이 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아무 것도 없이 그냥 벌거벗은 상태에서 비로소 하나님의 말씀은 제대로 우리 자신에게 다가온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인간에게 있어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은 우리에게 있는 목숨을 우리가 부지할 수 있는 권한이 없음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목숨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늘 피어나는 나의 가치와 자존심과 잘남 같은 것도 우리가 가질 이유가 없습니다.

이스라엘의 문제점은 하나님을 빙자해서 자신의 이득을 얻을 생각을 한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이득이 없으면 자신의 가치를 구현할 수가 없고 남들에게 내세울 수도 없습니다. 즉 이스라엘은 하나님 만으로 고맙고 감사하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가치를 포기할 만큼 하나님만을 사랑하고 싶지 않은 겁니다.

그들은 유월절 밤의 심판과 그 피로 구원을 잊었습니다. 하나님쪽에서 뭘 하든지 상관없이 이들은 자신의 존재 가치가 커지고 높아지기를 바랄 뿐입니다. 즉 자신들의 것들이 잃어버리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거기에 비해서 레갑 족속은 비로소 이방인의 입장에서 여호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알게 된 것을 최대의 자랑으로 여겼는데 이는 이 세상에 그 어떤 변화가 일어나도 하나님께서 개입하신 일로 여긴 겁니다.

즉 레갑족속은 자기 주도적인 입장에서 세상을 살아가는 자들이 아니었습니다. 성경에서는 이것을 ‘먼저 된 자가 나중된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막 10:31) 그런데 이러한 역전이 전반적인 하나님의 일이 됩니다.

그것이 로마서 11장에 나옵니다. “제사하는 처음 익은 곡식 가루가 거룩한즉 떡덩이도 그러하고 뿌리가 거룩한즉 가지도 그러하니라 또한 가지 얼마가 꺾여졌는데 돌감람나무인 네가 그들 중에 접붙임이 되어 참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 되었은즉 그 가지들을 향하여 자긍하지 말라 자긍할지라도 네가 뿌리를 보전하는 것이 아니요 뿌리가 너를 보전하는 것이니라
그러면 네 말이 가지들이 꺾이운 것은 나로 접붙임을 받게 하려함이라 하리니”(롬 11:16-19)

즉 뿌리가 두 개인데 어느새 지표면 위에서 두 나라가 마치 하나의 나무처럼 엉켜 있게 됩니다. 연리지 같아요. 그렇게 해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뭡니까? 로마서 11:26-28에 보면,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으리라 기록된 바 구원자가 시온에서 오사 야곱에게서 경건치 않은 것을 돌이키시겠고 내가 저희 죄를 없이 할 때에 저희에게 이루어질 내 언약이 이것이라 함과 같으니라 복음으로 하면 저희가 너희를 인하여 원수 된 자요 택하심으로 하면 조상들을 인하여 사랑을 입은 자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이스라엘 본 자손들은 율법에 의해서 작살나고 멸망당하게 됩니다. 따라서 그들의 역사는 하나님에 의해서 거부당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들 역사를 통해서 후대로 전달되는 내용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택하심’입니다. 즉 ‘하나님의 택하심’의 윤곽은 인간 자체의 역사가 결코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함을 전제해서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구원되는 나의 역사도 나에게 가치 있다’가 아니라 나와 결부된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택하심 앞에서 ‘가치 없음’으로 드러나는 겁니다. 쉽게 말해서 이스라엘 역사의 반복으로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택하심받음을 드러나는 겁니다. 그 이유는 인간들은 자꾸 어떤 원칙이나 법을 동원해서 자기 가치에 놀아나는 존재이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특히 로마서 11:28에서 ‘복음으로 하면 저희가 너희로 인하여 원수된 자요’라는 대목이 나옵니다. 복음의 입장에서 보면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메시아를 살해하므로서 그들의 속 마음을 유감없이 폭로했습니다. 다시는 구원될지 못할 자의 면면을 유대인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노골적으로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평가는 유대인 뿐만 아니라 이방인 자신도 받아야 마땅합니다. 하지만 택하심을 따라 차별없이 유대인이나 이방인들도 구원을 받는 겁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 자신의 구원을 결코 우리 자신에게 찾지 말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