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과 믿음
말라기 2:13-14 / 하나님의 가족 본문
하나님의 가족
이근호
2024년 7월 31일
본문 말씀: 말라기 2:13-14
(2:13) 너희가 이런 일도 행하나니 곧 눈물과 울음과 탄식으로 여호와의 단을 가리우게 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다시는 너희의 헌물을 돌아보지도 아니하시며 그것을 너희 손에서 기꺼이 받지도 아니하시거늘
(2:14) 너희는 이르기를 어찜이니까 하는도다 이는 너와 너의 어려서 취한 아내 사이에 여호와께서 일찍이 증거하셨음을 인함이니라 그는 네 짝이요 너와 맹약한 아내로되 네가 그에게 궤사를 행하도다
이스라엘 아내와 혼인한 자가 그 여자를 버리고 이방 여인과 혼인한 일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지적하시는 대목입니다. 이스라엘의 혼인은 사적인 인생의 행복을 얻고자 해서는 아니된다는 겁니다. 개인적으로 행복한 가정생활이 우선이 되면 안되고 하나님의 언약이 작렬하는 그 현실성을 드러내는 것이 우선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방인 여자는 언약이 없습니다. 언약이 없다는 말은 개인적인 행복 추구보다 앞서서 존재하는 그 어떤 가치도 없다는 말이 됩니다. 언약이 있다는 말은 개인의 인생이 개인의 의사 결정으로 결정되지 않다는 선언입니다. 하지만 언약이 없는 혼인을 하게되면 그 자체로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노골적인 거부 의사를 표출한 바가 됩니다.
말라기 2:10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우리는 한 아버지를 가지지 아니하였느냐 한 하나님의 지으신 바가 아니냐” ‘한 아버지’라는 표현은 하나님께서 하늘나라를 ‘가정 형식’으로 기획하셨다는 말입니다. 즉 기존의 인간들의 가정을 하늘나라에서는 그 자체로 받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세상 가정을 버리고 가족 형식으로 구성된 그 가족의 일원이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혼인에 대한 의지는 인간 육신의 본능에서 출발하는 겁니다. 즉 혈육적 근성이 가족을 낳는 겁니다. 인간 본성은 감히 인간의 의지로 멈출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육신이 품고 있는 성적인 요구는 자아가 조절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천국 구성 요건은 단호합니다. 마태복음 19:12에 다음과 같은 말씀이 나옵니다. “어미의 태로부터 된 고자도 있고 사람이 만든 고자도 있고 천국을 위하여 스스로 된 고자도 있도다 이 말을 받을 만한 자는 받을지어다” 여기서 ‘천국을 위하여 고자된 자’가 있다는 말은 천국은 ‘고자들만 받는 세계다’라는 뜻입니다.
예수님 당시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이런 말씀의 취지를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에게 있어 혼인은 참으로 인간들의 마땅한 권리처럼 여겼습니다. 그러나 결혼은 ‘권리’가 아니라 ‘악을 품은 본성’입니다. 마태복음 12:46-50에 보면, 제자들의 견해와 예수님의 견해가 평소에 얼마나 차이나는 지를 드러냅니다.
“예수께서 무리에게 말씀하실 때에 그 모친과 동생들이 예수께 말하려고 밖에 섰더니 한 사람이 예수께 여짜오되 보소서 당신의 모친과 동생들이 당신께 말하려고 밖에 섰나이다 하니 말하던 사람에게 대답하여 가라사대 누가 내 모친이며 내 동생들이냐 하시고 손을 내밀어 제자들을 가리켜 가라사대 나의 모친과 나의 동생들을 보라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 하시더라”
예수님께서 노골적으로 ‘천국 가족의 구성원의 본질’을 알려주셨습니다.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예수님의 가족이 된다고 하십니다. 이러한 하늘나라의 요구에 충족시킬 자들이 있을까요? 기존 가정을 파탄낼까요? 아닙니다. 인간이 아무리 ‘완전한 가정’을 갖추려고 해도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이유는 인간 내면에 인간이 어찌 할 수 없는 음행에 대한 충동이 누구나 다 지니고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혼인은 바로 인간 내면의 실체를 사회적으로 드러낸 제도입니다. “너희의 쓴 말에 대하여는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아니함이 좋으나 음행의 연고로 남자마다 자기 아내를 두고 여자마다 자기 남편을 두라 남편은 그 아내에게 대한 의무를 다하고 아내도 그 남편에게 그렇게 할지라”(고전 7:1-3)
말라기에서 이미 유대민족은 하나님으로부터 언약의 대상체들입니다. 이들에게 있어 내면적 음행은 다름이 아니라 언약의 중요성보다 자기 육신의 본능에 충실하는 그 자체입니다. 즉 언약의 가치를 최우선적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육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사적 행복에 대한 추구가 최우선적이었던 겁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언약을 본질을 드러내기 위해서 하나님의 언약은 유대민족의 혼인 문제를 선지자를 통해서 지적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레위언약이란 레위지파에 속한 제사장들이 하는 일을 통해서 그 실내용을 드러냅니다. 그것은 바로 제사입니다. 제사란 쉬지 않고 희생제물의 죽음을 토대로 해서 하나님의 살려주심과 용서하심이 주어지는 제도입니다.
이 일을 직접 관여해서 담당해야 하는 레위지파나 제사장들은 그 제물의 죽음 속으로 합류하기에 자신들은 이미 죽은 자로 여겨서 그 제사 일에 종사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봉사’입니다. 봉사는 더는 자신의 사적인 기대나 욕망을 위하여 일을 하는 자가 아니라 타인들에게 하나님의 본 뜻을 전하는 자들입니다.
따라서 이들의 생계를 위해서는 다른 지파 사람들이 십일조를 레위지파에게 주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도 레위언약 안의 내용입니다. 사람의 근본 마음가짐은, 자기를 죽이려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살려내려고 합니다. 존재하는 것은 기본에요 자신의 존재의 가치를 덧붙이기 위해서 타인으로부터 보호와 관심과 인정받기를 원합니다.
이점이 레위지파가 갖추어 될 마음 가짐과 대치됩니다. 전도서 7:1-2에 보면, “아름다운 이름이 보배로운 기름보다 낫고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나으며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치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결국이 이와 같이 됨이라 산 자가 이것에 유심하리로다 슬픔이 웃음보다 나음은 얼굴에 근심함으로 마음이 좋게 됨이니라 지혜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으되 우매자의 마음은 연락하는 집에 있느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언약의 권능이 천국 갈 사람들의 마음을 고자로 만들어 버립니다. 즉 인간들이 시도하는 모든 일이 언약의 지적을 통해서 ‘나의 본심은 하나님을 가리는 짓을 하게 되는구나’를 알게 만드시는 겁니다. 혼인도 그 중의 하나입니다. 고린도전서 7:25, 26에 보면, “처녀는 … 임박한 환난을 인하여 사람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입니다.
그리고 고린도전서 7:38-40에 보면, “그러므로 처녀 딸을 시집 보내는 자도 잘 하거니와 시집 보내지 아니하는 자가 더 잘 하는 것이니라 아내가 그 남편이 살 동안에 매여 있다가 남편이 죽으면 자유하여 자기 뜻대로 시집 갈 것이나 주 안에서만 할 것이니라 그러나 내 뜻에는 그냥 지내는 것이 더욱 복이 있으리로다 나도 또한 하나님의 영을 받은 줄로 생각하노라”고 되어 있습니다.
결혼을 하나 하지 않으나 상관없이 사적인 행복 추구보다 언약의 지적이 우선이 되어서 모든 성도는 ‘천국을 위한 고자’인 겁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인생 성공보다 언약 작용이 진정한 성공인 것을 알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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