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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 믿음

사도와 제자 221218 본문

주일학교 설교(이근호)/주일학교 설교

사도와 제자 221218

정인순 2022. 12. 18. 16:02

음성

사도와 제자 221218

 

설교:이근호

녹취:정인순

 

우리 아기 첫 성경 이야기 이제 끝이 다 돼갑니다. 근데 성경에서는 이 끝이 다 되었지만 실제에서는 이 처음과 끝이 늘 반복돼요. 계속해서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인간 세계에서는 처음이 있고 끝이 있지만 하나님 나라에서는 늘 처음이고 늘 끝이에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고 천지 창조를 했고 예수님께서 마지막에 재림하시는 이 이야기가 계속해서 반복해서 되풀이해서 주기적으로 우리에게 주어지는 겁니다. 이 성경 이야기가 아침에 일어났을 때는 아침에 일어나셔서 매일같이 생각해야 돼요. 그거 뭐 아는 거다 이렇게 생각하면 됩니다.

 

지난 시간에 한 것이 뭐냐? 빈무덤, 예수님의 빈 무덤에 대해서 언급을 했어요. 인간들과 예수님의 차이점이 뭐냐? 인간들이 죽으면 자기 무덤이 있다는 게 무덤이 있다는 것이 인간들이라면 예수님의 무덤의 특징은 뭐냐? 무덤이 비어있는 거예요. 일부러 의도적으로 예수님께서는 의도적으로 죽었고요 그 죽고 난 뒤에 무덤을 의도적으로 가보게 하셨고 그 안에 예수님의 시체가 없습니다. 그러면 시체가 남기는 시체를 남기는 인간 세계는 시체 없는 하늘나라 보기에는 가짜가 되는 거예요. 꿈 같은 거예요. 그동안 인간들은 헛 살은 겁니다.

 

처음부터 시체가 있다는 것은 처음부터 인간이 죽어 있다는 뜻이에요. ? 자기의 본래의 자기로 돌아간 거 그게 인간의 시체 된 겁니다. 하나님이 이야기합니다. 처음부터 이야기했잖아. 니가 정녕 죽으리라. 하나님께서의 뜻은 뭐냐? 제가 이거 이렇게 했습니다. 저렇게 했습니다. 백날 이야기해 봐요. 하나님 이야기는 딱 한 가지예요. 니가 정녕 죽으리라. 제가 이번 세 명이나 전도했습니다. 정녕 죽으리라. 제가 십일조 했습니다. 정녕 죽으리라. 뭘 칭찬을 기대해요. 칭찬할 게 있어야지.

 

정녕 죽는 건데 죽는 방법에 사다리 타기예요. 사다리 타기에 내려오는데 이렇게 왼쪽으로 꼬부라져서 꼬부락꼬부락해서 내려오든 오른쪽으로 네 바퀴 돌아서 오든 간에 시작부터 끝까지는 뭐냐? 결국 사다리타기의 끝은 뭐냐? 정녕 죽으리라. 그러니까 우리가 정녕 죽는다는 것이 매일 일상처럼 되풀이 되는 것이 이게 옳다는 것을 이해하는 자는 이미 부활의 세계에 소속되기 때문에 가능한 거예요. 부활의 세계에 소속되었기 때문에.

 

그러니까 이게 그러면 내가 죽으면 무덤이 있잖아요. 하나님이 아무리 예수 믿어도 우리가 죽으면 내 무덤이 있지 시체가 있지 않습니까? 주께서 이야기합니다. 그 시체 잊어버려라. 그건 원래 버릴 카드였다. 그 대신 새로운 몸을 내가 마련했다. 자 아기야 아가야 새 옷 입자. 나 옛날 옷 입을래. 그만 때지. 옛날 옷. 때지. 새 옷 입자. 새 옷이 뭐냐? 부활의 옷이 새 옷이에요.

 

주님께서는 다 계획이 있었습니다. 다 준비한 게 있어요. 그래서 그 예수님의 그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 무덤에 찾아가서 봤을 때 막달라 마리아가 증언한 건 이거예요. 눈으로 본 건 뭐냐? 예수님의 무덤에 예수님은 없었다. 예수님은 죽음에서 살아나셨다. 이것을 막달라 마리아와 거기에 참견했던 그 여자들 그리고 제자들이 그걸 이제부터 증거하기 시작합니다.

 

예수님이 부활했으면 예수님 부활해가지고 어디 뭐 사우나 하고 계실까요, 어디 자고 계실까요? 어떻게 됩니까? 본격적으로 활동하시는 거예요. 예수님 부활하신 주님은 쉬지 않고 본격적으로 활동하십니다. 하셔가지고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서 알려진 것은 뭐냐? 인간은 자기 구원의 능력 없다. 무능력하다는 사실이었어요. 인간은 자기 구원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이 확실하게 밝혀졌습니다. 따라서 인간이 자기한테 행한 것에 대해서 하나님께서는 부정시키고 스스로 네가 한 것에 니가 어떤 효과가 없음을 깨우치고 오직 예수님이 하시는 그것만 너로 하여금 효과 있게 작동한다 작용한다 그것을 주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치죠.

 

그러면 주님께서 도와주신다는 알려면 우리가 어떻게 하면 되겠어요? 열심히 자기 일에 열심히 매진해야 되죠. 학생은 공부해야 되고 학생은 공부해야 되고 군대 가면 군대 가야 되고 직장생활 열심히 하세요. ? 왜 이게 무의미한가를 몸소 그걸 체험을 해야 되기 때문에 그래요. 몸소. 이론상 내가 하는 일은 의미가 없고 이러지 말고 직접 왜 의미가 없는지 그 일에 열심내대해서 전력을 다하여 매진하게 만들어요. 나중에 돈 벌어서 장가가니 뭐 하겠노? 장가갔다고 좋다고 소고기 사 먹겠지. 그러지 말고 장가가세요. 아무나 오라. 아무나 오면 안 되지만 하여튼 장가가세요. 시집가세요. 내가 복음 모르는 남자하고는 결혼 안한다 그런 거하지 말고 아무나, 아무나 주의해야 돼. 결혼해보세요. 복음 아는 남자도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아실 거예요. 그런 의미에서 또 복음 아는 남자하고 또 결혼해야 되겠네요.

 

이 땅에 일단 죽을 때까지 열심을 다하여 돈도 벌고 열심히 해서 한번 살아보세요. 이게 왜 의미가 없는지 왜 허무한지. 허무한지를 말로 알지 말고 실제로 체험을 해보셔야 돼요. 그러면 그 순간순간 아 예수님은 빈무덤이구나. 우리의 무덤은 결국 내 무덤이 있구나. 나는 아니구나. 나 말고 달리 있는 나, 나 말고 또 있는 나 준비된 나가 주께서 나를 건지시는구나. 내 속에 죽은 나에서 건진다는 사실을 발견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이제 부활하고 난 뒤에 여기서 인간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 실존하지 않는 여기 하얀 옷 입은 사람 나오죠. 실제로 성경에서는 하얀 옷을 입었대요. 하얀 옷을 입은 두 사람이 등장했습니다. 두 사람이 등장해서 제자들에게 말을 해요. 예수님은 여기에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여기서 중요한 것은 보세요. 여기서 막달라 마리아나 다른 제자 여자들이 예수님의 무덤에 예수님이 없다고 탄식할 때에 위로를 이웃 사람이 위로 한 게 아니고 여기 천사가 위로했다는 거예요. 천사가. 그러니까 이 말은 뭐냐 하면 인간 사는 세계에 우리하고 예수님만 계신 게 아니고 누구도 있다? 천사도 같이 있는 거예요.

 

그러면 예수님과 천사는 보이는 쪽입니까, 보이지 않는 쪽입니까? 보이지 않는 쪽이에요. 인간 세계에서 보이지 않는 것은 과학의 대상이 아닙니다. 현미경이나 망원경으로 보이지 않으면 없는 존재예요. 없는 거거든요. 근데 그 없는 존재가 같이 인간 세계와 같이 있는 거 이게 닫힌 세계가 아니고 개방된 세계거든요.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분들이 활발하게 더 열심히 활동하는 세계, 이 세계에 이런 세계에 대해서 이야기하면 우리는 이제 미쳤다 하는 소리를 듣지요.

 

그리고 난 뒤에 오늘 이야기, 이게 있어야 오늘 이야기가 돼요. 그리고 난 뒤에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제자들의 소원은 뭐냐 하면 우리와 함께 있는 거예요. 제자들을 주님은 제자들을 버리면 안 된다. 스승이 됐으면 제자를 버리는 것은 그건 스승의 도리가 아니지 라고 생각해서 제자들이 주님께서 부활하신 후 제자들과 함께 있을 때 제자들은 기뻤어요. ? 자기를 떠나지 않기 때문에.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보는 앞에서 구름을 타고 와서 하늘로 떠났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자기를 떠났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예수님과 천사들은 떠났다는 생각이 아니고 제대로 함께 더 함께 있는 방식이 그 방식이라는 겁니다.

 

왜냐하면 보이지 않는 분이 떠났다고 생각해버리면 그거는 제자들이 불신자하고 구분이 안 돼요. 그거는 불신자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눈에 띄지 않으면 없는 걸로 여기는 거 그건 불신자들의 주장이거든요. 그럼 제자들하고 불신자하고 구분이 안 돼요. 그런데 나중에 떠날 때에 왜 떠나십니까 하고 쳐다보니까 천사들이 와서 고개 수구리!” 했거든요. 뭘 쳐다봐. 약속대로 되는데 뭘 쳐다봐. 주께서 다시 오신다는데 쳐다보지 마세요. 이렇게 된 거예요.

 

그리고 난 뒤에 제자들이 기도를 하고 난 뒤에 성령이 왔거든요. 성령이 오니까 제자들이 뭘 알았냐 하면 내가 보는 세계가, 보는 세계가 주님의 세계를 방해하고 있다는 생각이 그때부터는 생겨나기 시작한 거예요. 우리 인간의 한계 인간의 문제점은 보는 것이 전부라고 여기는 여기에 있었구나 .그리고 성령이 와가지고 오히려 보는 세계보다 보이지 않는 세계를 위해서 그들이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보이는 세계 말고 보이지 않는 세계에서 이야기했는데 그들을 제자라 하지 않아요. 그들은 뭐냐? 사도라고 이야기하는 겁니다. 성령을 받아야 사도, 성령 받기 전에는 제자. 수능 나옵니다. 꼭 기억해놔야 돼요.

 

성령받고 난 뒤에는 이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세계, 보이는 세계는 보이지 않는 세계에 일부요 하나의 징표요 그거 사인이고 징후라는 사실을 발견하는 거예요. 전부가 아닌 거예요. 부분인 거예요. 그래서 이 제자들에게 나중에 로마 군인들이 니 죽인다 하니까 싱긋이 웃지요. “죽음 알아?” “몰라. 나 죽음이 뭔지, 죽음이 뭔데? 죽음이 뭐예요?” 도리어 묻듯이 죽음이 뭐예요? 사자를 물어라. 물어라!” “이 짐승을 왜 데리고 왔어요?” 사도 바울이 말하기를 이미 우리는 죽었고 이미 죽었다가 돼버려요. 우리는 죽게 될 것이다가 아니라 사도에게 사도는 성령 받은 사도들에게는 우리는 죽게 될 것이다가 아니라 이미 죽은 자가 흔적이 사람들에게 보이는 그 모습이 죽은 시체의 모습을 보이는 거예요. 스데반 집사 같은 경우에는.

 

? 우리의 생명은 따로 뽑아서 따로 보관해 놨기 때문에. 남들이 우리를 밟는 것은 내가 벗어놓은 옷을 밟는 것과 똑같은 거예요. 내 그림자를 밟는 거랑 똑같아요. 여러분들이 여러분들을 공격하는 것은 욕하는 것은 막 여러분들이 군에 가서 막 공격할 때 여러분들의 그림자를 공격하는 거예요. 그럼 여러분은 어떻게 하는가? 일부러 아픈 척을 하세요. 무서워요, 이런 식으로. 죽어야 살지요. 그러니까 죽는데 그냥 죽이지 말고 하나님께서 죽을 때를 위하여 세상으로 하여금 우리를 죽인다고 협박을 하는 그런 경우들이 사도들에게 계속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주의 약속은 그때마다 빛이 나죠. 그때그때마다 빛나는 거예요. 다시 한 번 주의 말씀이 약속대로 생각이 나는 겁니다.

 

성령 받은 사람, 이 세상사람 아니고 죽음 이후에 천사 같은 존재로서 아직도 우리는 육체가 있으니까 천사 내부에는 천사고 바깥에는 죄된 인간이고 이렇게 이중적인 이중생활 그거 성도의 모습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약속대로 믿고 알게 하옵소서. 우리의 버릴 몸이지만 살게 하시는 것은 주께서 가신 고초와 주님의 공로와 은혜를 더욱 더 깊이 알기 위해서 허락한 시간인 것을 깨닫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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