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과 믿음
여자 제자 / 211212 본문
여자 제자 211212
설교:이근호
녹취:정인순
여자이기 때문에 아마 제자들에게서 허드레한 일만 하고 여자들이 별 큰일은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을 하는데 그러나 남자들이 앞장서서 일한다고 해서 일을 많이 했다고 생각해서는 안 돼요.
일을 하는 것은 사람들로 실적과 성과 위주로 일 잘했다 못했다를 판정 내리는 세상이 뭐냐? 이 세상이에요. 그런데 주님께서는 이 세상이 지옥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지옥이라는 걸 보여주려면 이 세상 사람들이 어떤 관점에서 인간들을 평가하는지를 그것도 아울러 주님께서 알려주시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여성들에 대해서 주목하시고 그들의 이름까지 성경에서 다 기록하시고 제자들로 활동하신 것은 사람들이 남성 위주의 세계에서 주님께서는 은밀하게 일하시는 사람들을 주목하신 거예요. 그것은 남성을, 남성에 대해서 주님께서는 믿지를 않습니다. 남자에 대해서. 그러면 여자는 믿는가? 여자도 물론 안 믿지만 여자에서 어떤 점이 있느냐 하면 남성들이 나대고 설치는 그것이 여성들에 의해서 피해를 보고 있다는 점이 예수님 자신이 하는 일과 관련성이 있기 때문에 그래요.
힘을 위주로 살아가는 이 세상에서 힘이 상대적으로 약한 여성들은 무시당하기 쉽습니다. 왜냐하면 그때는 농사에서 나오는 생산물로 모든 게 통용되는 시대이기 때문에 농사짓는데 누가 농사의 생산물을 남자가 많이 지을까요, 여성이 많이 지을까요? 여성이 지을 일도 없을뿐더러 또 남성이 또 힘을 쓸 수밖에 없었는데 그 이유는 그 소유권이 여자한테는 소유권이 넘어가지 않습니다. 모든 토지는 남자 소유권이 돼 있고 여자는 남자한테 얻어먹어라, 얻어먹어라. 그래 니가 토지 가진 남자하고 결혼해가지고 아내로서 그 남자한테 얻어먹어라 이래 되는 거예요.
그러면 남편이 죽으면 어떻게 되느냐? 죽으면 그럼 니 팔자다 하고 뭐 살아야지 어쩌겠어.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남편이 죽었다든지 아버지가 죽었을 때에 그 고아와 과부, 남편이 죽으면 과부라고 하는데 고아와 과부 그리고 다른 나라한테 이렇게 쫓겨 온 사람들 나그네, 고아와 나의 나그네에 대해서는 남성들이 남성들 세계, 남성들이 그들에게는 특별히 많이 자비와 은혜를 베풀어서 밭을 하더라도 이삭 못 본 척 하고 이렇게 이삭을 남겨줘서 밥 먹도록 그렇게 해라, 그렇게 하나님 법이 그렇게 돼 있어요.
하나님 법이 그렇게 되어있다는 이 말은 여자가 단독적으로 자기 소유권을 가지는 것은 허용되지 않되, 얻어먹으라. 구차하게 빌어먹어라. 그게 여성의 몫이라는 거예요. 듣는 여성 기분 나쁘겠죠? 왜 여성은 이렇게 남성하고 차별화 시킵니까, 이렇게 대들 수 있잖아요. 거기에 대해서 하나님께서는 뭐냐? 처음에 선악과 따먹을 때에 하나님께서 의도적으로 남성하고 여성하고 동시에 선악과를 따먹지 않게 만들었어요. 하와가 아내가 남편 아담 불러가지고 우리 선악과 따먹자. 우린 공범이야. 자 사진 찍는다. 웃으면서 하나 둘 셋 따먹자. 이러지 않았다니깐요. 여자가 먼저 선악과를 따먹고 난 뒤에 그 다음에 안 죽거든요. 어 숨이 막힌다. 뭐 이런 것도 없다 이 말이죠. 숨이 막힐 줄 알았지? 뭐 이런 식이다 말이죠.
그리고 인간은 선악과를 따먹고 난 뒤에 생긴 것은 뭐냐 하면 내가 하는 일은 내가 했다는 그 이유 때문에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아야 그게 옳다. 그 시대에 접어들게 되었습니다. 단지 내가 했다는 이유 때문에. 남이 하면 용서가 안 되지만 내가 했다는 이유 때문에 나는 어떤 것도 허용이 돼야 돼. 왜? 내가 그게 기분이 좋으니까. 그런 인간으로 달라졌어요.
저쪽 뱀은 막 기분 좋아서 막 히죽거리고 날랐어요. 독립한 거예요. 하나님을 피해서 독립한 거예요. 그래서 인간은 모두 태어나면서 전부 다 이미 태어날 때부터 그런 마귀의 속성을 지니고 태어났기 때문에 전부 다 독립한 겁니다. 독자적 자기밖에 몰라요. 하나님 믿는 것도 하나님이 이용하는 것이지 하나님 앞에 붙으려고 하나님 앞에 들어가려고 믿는 게 아닙니다. 그냥 이용하고 나만 좋으면 그만이라는 거예요. 나만 좋으면 그만이라는 근거가 뭐냐 하면 내가 하는 일은 묻지도 따지지 않고 무조건 나는 옳다는 겁니다. 나는 대장이니까. 그게 무슨 그게 뭐냐 하면 바로 남성의 세계예요.
남성의 세계, 남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계라니까, 이게. 남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계. 그런데 이 여자들이 오늘 여자들이 뭐라고 오해하냐 하면 남성만 기억하니까 더럽다고 나도 기억해달라고 여자도 알아 달라고 이렇게 평등을 주장한다고. 그게 뭐냐 하면 여성의 세계가 아니에요. 여성의 시간도 있고 그건 뭐냐 하면 그게 남성이에요. 또 남성화된 여성일 뿐이에요. 주님께서는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가짜고. 남자가 하는 것이 너무 좋아 보이니까 여성이 거기에도 같이 기어들겠다는 겁니다.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실 때 이게 지금 하나님 보시기에 이게 지옥이다. 지옥은 뭐냐 하면은 원래 있던 뭐든지 주께서 하셨습니다가 되지 않고 뭐든지 내가 했습니다. 내가 한 것이 옳습니다. 이렇게 바뀌었으니까 이걸 바꾸는 방법을 주님께서 채택을 하신 거예요. 바꾸는 방법이 뭐냐 하면은 내가 한 것은 무조건 옳다고 여기는 그 남성의 세계에서 심하게 학대받고 무시당하는 쪽을 쳐다본 거예요. 그게 뭐냐 하면 바로 여성이고 그게 뭐냐면 죄인들이었던 거예요.
예수님 당시의 죄인은 뭐냐 하면 장애자를 말합니다. 날 때부터 소경 된 자나 절뚝발이 된 사람 귀머거리 된 사람, 누가 봐도 건강하고 멀쩡한 사람만 대우받는 이 세대에서 인간 취급 못 받는 사람 그런 사람들에게 주님께서 주목을 하신 거예요. 그 사람이 옳다는 말이 아니고 그런 캐릭터가 필요하다 이 말이에요. 사람들에게 저주를 홀라당 다 받는 그 캐릭터 있잖아요. 그 역할, 그 역할이 예수님한테 필요했던 거예요.
나는 너희들 잘난 자의 메시아가 아니라 바로 저런 무시당하는 저들의 메시아다. 거기에 대해서 여성들이 그 쪽에서 여성들을 주께서는 그렇게 주께서 활용하시고 사용하신 거예요. 그래서 이 여성들의 예수님을 만나고 나왔는데 이 여성들의 특징은 뭐냐 하면 더 이상 남성에 대해서 시시해져. 재미가 하나도 없어. 이 세상에 권력이라든지 돈이라든지. 너도 그렇지? 출세라든지. 재미가 없는 거예요.
왜냐하면 내가 남성들 세계, 내가 나는 우수하다 이게 아니고요, 나는 남성들보다 힘도 약해. 가진 것도 없어. 무시당해. 어쩔 수 없지. 어쩔 수 없는데 무시당할 수밖에 없는데, 장애자도 마찬가지야. 나는 저주받은 너 집에 너 아버지 술 먹다가 니는 눈 장님 됐다. 뭐 그럴 수밖에 없지요. 했는데 나는 안 그래가 아니라 예 그렇습니다. 그렇다고 할 때 주님께서 찾아오게 되면 너가 어떻게 너가 혐오스럽고 니가 보기에 사람 같지 않더라도 너를 너가 필요한 자가, 내가 너희를 필요하면 그걸로 너는 천국의 백성 된 거다. 이것이 바로 주의 뜻입니다.
여성들이 연약하고 여성들이 약하다고 해서 주께서 힘 줘가지고 니가 나한테 힘 길러가지고 니가 막 빰빠밤빠 빰 여성들이 나와가지고 남성들이 하는 걸 모두 차지하라, 그걸 하는 것이 아니고 평생토록 무시당하고 얕잡아 보는 그런 대우를 받는 얕잡아보는 그런 일을 당하고 어떤 일이 있더라도 그런 일을 당하면 당할수록 이 세상에 대해서 아무런, 그래 너희들끼리 잘 먹고 잘 살아라, 인간들아. 여성들이 아주 그런 점에서 남성들 이상으로 용감해 진 겁니다. 용감하게 된 거예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십자가 달리고 무덤에서 있을 때에 그 무서운 것도 모르고 남들의 눈총도 그런 것도 고려하지 않고 3명의 여인이 이 사람 말고 다른 마리아 3명이 가가지고 막달라 마리아는 포함돼. 야고보 마리아 그리고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가가지고 십자가에 달렸던 죽었던 그 예수님의 시신에 있는 그 무덤에서 무덤이 잘 있는가, 그 시체가 잘 있는가, 그거 볼려고 찾아간 사람도 여성입니다. 세상에 대해서 아무 기대할 게 없으니까, 하늘나라한테는 용감한 거예요. 믿을 것은 그거밖에 없기 때문에.
따라서 이 여성을 보게 되면 우리는 이 땅에서 실패한 그것이 이게 성공이에요. 사람들은 말하잖아요. 사람들이 나에게 자비를 베풀지 않아요. 너무 서럽다 하는데 자비를 베풀지 않는 것이 자비예요. 만약에 자비를 베풀게 되면 그 사람은 거지근성이 있어가지고 그거는 오히려 위험한 존재가 돼요. 자비가 없는 이 세상이 훨씬 더 성도한테는 좋습니다.
맞을 때 자비 없이 맞아야 돼요. 이 땅에서 어떤 남들이 나한테 자비가 없을 때 세상에서 그런 기대를 안 하잖아요. 아무것도 세상이라는 평가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고 나는 망해도 마땅합니다라는 자기 망하는 것을 당연한 걸로 여길 수 있는 것은 그 당시에 바로 여성들 무리밖에 없다. 그럼 모든 여성들이 그런 게 아니고 다른 여성들은 출세하려고 애를 썼겠죠. 그러나 막달라 마리아하고 이 수산나 하고 또 요한나라는 이 세 명의 여인은 이름이 있는 여인은 오직 주님만 쳐다봤습니다. 이제부터 말씀 마치겠는데 이 사람들의 이야기가 이게 누가복음이라는 성경에 다 남성들 제치고 이름이 다 기록된 거, 그것은 하나님께서 지금도 이 땅에서 자기 자신이 이 땅에 어떤 대우를 받지 않아도 상관없습니다라는 것을 인정하는 사람을 주께서 찾으십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아버지. 남들 성공한다고 같이 성공 노리지 말고 남들 그쪽으로 간다고 따라가지 말고 우리 주님은 어떤 안목을 가지고 우리를 보고 있는지를 우리가 스스로 아는 저희들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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