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과 믿음
약속의 시작 200920 본문
약속의 시작 200920
설교:이근호
녹취:정인순
오늘부터는 ‘동글동글 성경 이야기’ 하겠습니다. 점점 더 지금 난해, 설교가 어려워질 거예요. 에덴동산이 여기 그려져 있는데 이런 동산은 지금은 없어요. 지금은 에덴동산이라는 게 없습니다. 서로 해하지 아니하고 서로 달려들지 않고 서로에게 분노하지 아니하고 화내지 아니하고 그렇게 살았어요.
왜 그러냐 하면 에덴동산 전체가 하나로 통합되어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로 딱 만들어졌어요. 에덴동산이. 그래서 너 나가 필요치 않아요. 나는 너에게 너고, 너는 나에게 나다, 이런 게 필요치 않아요. 그런 거 생각하지 않고 그냥 누리기만 하면 돼요. 마음껏 먹고 마음껏 움직이고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살면 되지요. 그래서 이 에덴동산은 은혜의 동산입니다.
은혜라는 게 이런 것이에요. 은혜라는 것이 니의 행동의 잘 잘못 일체 묻지 않고 그저 주시고 뿌리고 제공 되는 것만 하는 것, 그게 은혜예요. 만약에 예를 들면 대구가 폭격을 맞았다, 그러면 대구는 폐허가 되겠지요. 폐허가 된다면 거기에 온통 인민군이 와가지고 대구를 완전히 박살냈을 때 어른들은 얼마나 살길이 막막해서 폐허에 탄식하면서 울게 되겠지요.
그런데 이 폐허 가운데서 웃는 웃음소리가 나온다면 그들은 누구겠습니까? 애들은 술래잡기 한다고 좋다고 신이 나. 그래서 어린아이 같이 되지 아니하면 천국에 못 갑니다. 완전히 박살났는데 곧 굶어죽게 되었는데 애들은 같은 또래끼리 만나가지고 까르르 웃고 난리도 아니에요. 그게 뭐냐 하면 애들한테는 뭐냐 하면 그냥 누리는 것, 즐기는 것밖에 없어요.
에덴동산이 그런 거예요. 그냥 즐기면 돼요. 나라는 것을 내가 뭐 할까가 따로 필요치 않습니다. 그런데 에덴동산이 이미 없지요. 에덴동산은 없고 우리는 쫓겨난 세계에서는 모든 사람들은 환자입니다. 정신병 환자예요. 자기에 미쳐있는 정신병 환자. 애들처럼, 애들은 철이 없는데 애들도 좀 지나 철이 나서 어른이 되면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무엇이 이익이냐 손해냐 그것만 따지는 서로가 서로에게 불편한 관계, 그러니까 내가 없어지지 않는 한 에덴동산은 아무리 좋은 환경을 줘도 그 안에서 우리는 행복이라는 것은 없는 겁니다. 이 땅에 비극밖에 없어요.
에덴동산에 선악과가 하나 심어져 있지요. 선악과 심어져 있는데 여기서 아담과 하와가 남자 여자가 있는데 여기 대사에 보면 이렇게 나와 있어요. “어서 맛보세요.”라고 하는 거예요. 딴 거는 다 건드려도 선악과는 따먹지 말라고 분명히 당부했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이 과실이 전체가 통합 된 것을 모르고 이 과실만 따먹으면 과실 하나만 없어지는 줄 알았지요.
다른 나무 있으니까 따먹으면 될 것 아닌가, 이게 아담의 생각이었어요. 선악과 없으면 그 다음에 생명나무 따먹으면 되니까. 그런데 선악과나무와 나무 사이에 하나로 연결되어있다는 사실을 몰랐다는 겁니다.
그뿐만 아니고 모든 나무와 모든 피조물들이 하나로 연결되어있어요. 하나로. 오직 하나님의 명령과 지시에 하나로 연결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여기서 하나를 어기면 선악과 하나를 어기면 모든 것을 다 어긴 거예요. 모든 것을. 하나를 어기면 여기 주어진 모든 혜택이 일거에 전부 다 일거에 싹 사라지는 겁니다. 뿐만 아니고 인간은 이 땅에서 다시 흙이 되는 거예요. 사람으로서의 자기가 없고 흙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 다음에 에덴동산 끝나고 난 뒤에 사람들은 땅에서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고생을 하고 인간만 고생하는 것이 아니에요. 여기 있는 많은 피조물들도 고생하고 하늘의 새들도 고생하고 다 고생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에덴동산을 파괴하면서 이걸로 세상을 끝내는 것이 아니고 마지막 때에 에덴동산보다 더 좋은 세상 천국을 준비해놓으시고, 천국을 준비할 때는 에덴동산을 하나로 묶은 것처럼 천국을 한 분이 책임져가지고 만들어내는 그 세계를 하나님께서 준비해주셨는데 전체를 하나로 통합하는 그것을 가지고 뭐라 하느냐 하면 약속이라 해요. 하나의 약속이 모든 것을 보장해 줍니다.
약속이 형식으로 나타난 것이 뭐냐 하면 방주라는 것, 희한한 방주예요. 방주. 잠수함도 아니고 배도 아니고. 그런데 배인데 지붕이 있어요. 비 들어오지 말라고. 그래서 잠수함, 물에 가라앉는 것도 아니고 배로 떠있으면서 지붕이 있는 이러한 배를 만들라고 했어요.
그 배는 사람만 들어가는 것이 아니고 새로운 세상에 필요한 것들을 하나님께서 노아보고 들어오라고 하지 않았고요. 노아만 들어가면 나머지는 알아서 주께서 동물들의 마음을 움직여서 자기가 알아서 오게 되어있어요. 그것도 짝을 지어서 오게 되어있어요. 노아가 별로 동물들을 관리하는 데 있어서는 별로 큰 수고 한 것이 없어요. 자기들이 알아서 “혹시 여기 노아 씨 맞습니까? 주소가 맞습니까?” 알아서 다 들어갔어요.
그리고 문을 닫고, 문을 닫는 것도 노아가 들어가고 난 뒤에 문을 바깥에서 문을 닫아버렸어요. 이 말은 이 세상은 버리기로 포기 한 거예요. 그러면 이 세상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느냐? 방주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몰랐어요. 약속을 모르고 에덴동산을 모르고 그저 자기 시대에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사고팔고 하면 그게 다인 줄 알았어요. 인생사는 게 그게 전부인 줄 알았어요. 약속이라는 게 하나님께로 따로 주어져서 에덴동산보다 더 좋은 세계를 만든다는 것을 사람들한테는 “그런 게 있을까? 없을 거야.” 그렇게 생각한 거예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방주를 통해서 분명히 있다는 것을 알려줬습니다. 방주를 줘가지고 방주 타고 했는데 얼마나 냄새가 지독했겠습니다마는 노아는 그런 거 냄새 그런 것도 개의치 않고 이렇게 구원받은 것에 대해서 감사했습니다.
그러고 난 뒤에 여기에 이 이야기는 갑자기 방주에서 나와서 땅에 있는데 방주에서는 배가 사람을 구원하잖아요. 배가 구원하는 시대는 지나갔어요. 배가 구원하는 것이 아니고 특정 사람을 복의 사람으로 인정하게 되면 구원을 받는 그런 약속을 준 거예요.
이쪽에 방주에서는 올라타면 이 장소에서 이 장소로 올라타면 구원을 받는 그런 방식인데 배 안에서 노아 식구 가운데 다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고 여기 저주 받는 자식들이 생겨났어요. 따라서 배가 해결할 문제가 아니고 특정 장소가 지역이 문제가 아니라, 아예 인간 자체가 인간성 자체가 달라져야된다. 그것에 주안점을 두고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 자손에게, 어느 날 아브람에게 말씀하셨어요.
말씀하셔가지고 아브라함을 복, 마치 사람인데 방주 같은 사람으로 아브라함을 꽂아준 거예요. 방주에 들어가서 사는 것처럼 아브라함을 믿게 되면 복을 받고 아브라함의 존재가 하늘과 연결되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저주를 받는 하나의 기준점으로 세운 거예요. 기준점.
여러분들이 군에 가게 되면 맨 날 하는 소리가 훈련소에게 “기준!” 하거든요. 키 큰 사람은 주의해야 돼요. 뽑힐 가능성이 많아요. “기준!” 한다고요. 딴 데 모이지 말고 그 한 명이 있는 곳에 모이라는 거예요. 기준점. 그 기준점으로 준 게 뭐냐? 아브라함이에요. 아브라함을 믿으면 복을 받고 아브라함을 안 믿으면 복을 안 받는다, 이렇게 한 겁니다. 참 쉽지요. 천당 가기 참 쉽지요. 구원 받기 참 쉽지요.
우리 같으면 아브라함 믿지 뭐. 아브라함 믿어서 구원 받는데 그 좋은 걸 왜 안 해? 이렇게 하지만 사람들에게는 고집이라는 게 있어가지고 최종적으로 믿는 사람이 정해져있어요. 누굴 믿느냐 하면 나를 믿어요. 모든 인간들은 다 나를 믿어요. 나를 믿기 때문에 나보다 먼저 우선적으로 아브라함을 믿는다든지 예수 믿는다는 것은 인간의 능력으로서는 불가능한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께서 나를 버렸다고 자꾸 지적하는 이유가 니가 니 믿는 짓은 이제 그만 두라는 거예요. 너는 믿을 수가 없다. 주님이 너를 믿는다는 그 믿음이 니 속에 있으면, 이제부터는 너보다 더 우선적으로 “예수님 은혜로 예수님 때문에 이렇게 구원받았습니다.” 하는 희한한 이야기가 입에서 나오게 되어있다는 겁니다. 입에서 나오게 되어있어요.
그 시작을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부터 시작한 거예요. 그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기를 “너를 믿는 많은 사람들이 일어날 것이고 그들만 모아서 내가 약속의 자녀, 천국을 만들겠다.”라고 아브라함에게 이야기했습니다. 나머지 그림은 다음 시간에 합시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에덴동산을 만드신 하나님, 하나가 되었는데 지금은 다 사람들이 뿔뿔이 자기밖에 모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예수님 보내셔서 한 마음으로 예수님 쳐다보게 해주시니 이것이 바로 이미 시작된 천국인 것을 받아들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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