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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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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7:20-24 종과 자유자
종과 자유자 이야기는 실은 죽음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인간이 인간으로서 산다는 것은 죽음 바탕 위에서는 사는 겁니다. 그래서 늘 자신의 바닥에 깔려있는 죽음에 대해서 곁눈질 해야 합니다. 그게 바로 자유의 삶입니다. 흔히 자유란 정치적이고 경제적이고 문화적이고 관습적인 상황에서 유행되는 말입니다.
가정적으로 고된 시집살이나 혹은 수입이 너무 박해서 생존하기에 버겁거나 혹은 사상적으로 권력자의 억압이 너무 심하거나 아니면 종교가 달라서 주변에서 왕따 당해 도무지 그 동네나 공동체 내에서 살 수가 없거나 하는 경우에 ‘자유’를 언급합니다. 하지만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자유란, 최종적인 상태에서 비로소 나타나는 자유를 말합니다. 곧 하나님의 심판으로부터의 자유입니다.
예를 들면,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고 싶은데 집안의 반대로 부부가 될 수가 없을 때 탈출구로서 동반 죽음을 선택하는 경우를 말합니다. 이를 경우에 결코 자유를 얻은 게 아니라 도리어 죽음에 더 얽매인 상태가 됩니다. 따라서 심판으로부터의 자유를 획득하기 위해서는 성경에서는 필히 ‘자기 부인’, ‘자기 부정’의 상태에 돌입해야 합니다. 이는 자기 자존심과 명예와 자기 가치와 자아 실현으로부터의 탈출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빌립보서 2:5-8에서 다음과 같은 자유로움으로 이 인간 세계에 삽입되어 들어오셨습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성도의 갈 길에 홈을 파두신 겁니다. 이처럼 사는 길이 곧 자유의 길이라는 겁니다. 다른 대안이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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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과 자유자
2015년 5월 24일
본문 말씀: 고린도전서 7:20-24
(7:20) 각 사람이 부르심을 받은 그 부르심 그대로 지내라
(7:21) 네가 종으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았느냐 염려하지 말라 그러나 자유할 수 있거든 차라리 사용하라
(7:22) 주 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자는 종이라도 주께 속한 자유자요 또 이와 같이 자유자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은 자는 그리스도의 종이니라
(7:23) 너희는 값으로 사신 것이니 사람들의 종이 되지 말라
(7:24) 형제들아 각각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하나님과 함께 거하라
성경은 해답을 주는 책이 아니라 먼저 우리 자신들이 왜 문제덩어리 인가를 재구성토록 촉구하는 책입니다. 이 세상을 자연스럽게 산다는 것은 처음부터 하나님이 원한 삶이 아닙니다. 에덴동산 속에 이미 죽음의 힘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에덴동산이 결코 인간을 행복하게 하는 동산이 아닙니다.
저주가 저주답게 드러내기 위해 준비된 환경으로 마련된 것입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과실을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에 근거해서 하나님께서 저주하시는 속성을 발진하시려는 것입니다. 과연 아담은 선악과 과실을 먹었습니다. 저주의 징후가 단순히 아담이 속해있는 자연 환경에서 나타난 것이 아닙니다.
아담의 마음에서도 엉겅퀴가 피어납니다. 자식 이름을 허무(아벨)로 지을 정도입니다. 허무란 곧 무가치를 의미합니다. 오늘 본문 23절에서 “너희는 값으로 사신 것이니 사람들의 종이 되지 말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값’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값’이란 곧 ‘가치’, 혹은 ‘가격’을 의미합니다.
즉 “너희들은 사람들이 기대하는 그런 가치에 놀아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의 일상이 삶이란 타인으로부터 인정받을 때만 생존에 유리합니다. 물론 깊은 산중에 들어가 홀로 산나물 깨먹고 개울가의 물 마시면서 몇 달은 버틸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이 그립고 특히 가족이 그립습니다.
기존의 인간 세상에서 통용되는 그 가치들의 연결망에서 벗어나고 싶은 생각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인간들의 가치에 준한 의미망에서 자신들이 출생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출생 자체가 실패입니다. 무가치합니다. 기껏 주변의 시선과 평가가 자기 존재 이유의 전부입니다.
그것이 자신의 가치가 됩니다. 하지만 이미 인간들이 이런 외부에서 만들어진 가치에 따르고 굴복하므로서 정작 본래의 가치를 알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창세기 4장에서의 아벨은 이름 그대로, ‘허무하게’ 생을 마감하므로서 기존의 가치체계말고 다른 가치와 연결된 자라는 사실을 보여주게 됩니다.
이게 바로 자유입니다. 곧 기존의 인간들 세계의 가치체계와 무관하게 벗어난 상태가 자유입니다. 이런 자유를 예수님께서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시고 보여주신 모든 행위와 말씀을 통해서 주변에 영적 구조를 들추어주십니다. 즉 기존의 인간 세상에서 통용되는 그런 가치말고, 하나님께서 염두에 두고 계신 진짜 가치성을 보여주십니다.
그 가치는 둘로 나뉘어집니다. 하나는 저주받기 위한 자들이 있어야 하는 반면에 다른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하기 위한 자들도 있어야 합니다. 창세기 25:23에 보면,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는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더라”고 되어 있습니다.
모든 인류를 두 부분으로 나누겠다는 겁니다. 이 두 부류는 하나님의 두 가지 속성을 담게 됩니다. 하나는 자비요 다른 한쪽은 진노입니다. 이삭 가정에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이 이삭의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만 아시는 축복과 저주를 내막을 펼쳐시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즉 이 세상은 인간들의 세상이나 세계가 아니라 하나님의 두 가지의 속성이 펼쳐지는 세상입니다. 그러면 누가 저주받을 자입니까? 마가복음 5:7에 보면, “큰 소리로 부르짖어 가로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나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원컨대 하나님 앞에 맹세하고 나를 괴롭게 마옵소서 하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미 인간 세계는 악마가 장악한 이상, 각 사람마다 “예수여, 나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라는 발언을 매일같이 쏟아내면서 살아가는 지경입니다. 즉 이미 기존에 자기를 자기 답게 하는 가치를 주변 인간 세계에서 조달해오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식의 삶은 야곱과 에서를 통해를 통해서 보여준 참 현실과 맞지 않습니다.
성경 말씀은 이 인간 세계에 ‘끝’을 앞당겨 보여주는 식으로 계시를 내려주셨습니다. 사람마다 자신을 가치있는 존재로 간주하는 시도들은 창조 때의 본래의 자리를 잊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겁니다. 하지만 로마서 3:24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즉 인간이 스스로 자기 가치를 지탱하기 위해 끌어모으는 그런 가치가 아니라 하나님만이 따로 갖고 계시는 가치가 이 땅에서 자기 백성에게는 ‘인간적인 가치를 요청하지 않아도 되는 가치’로 제공된다는 겁니다. 따라서 인간들이 나름대로 신들에게 최선을 다한다고 하지만, 거기서 보여주는 가치는 몽땅 다 인간 세계에서 이미 가치 있는 것으로 통용되는 가치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자신의 행함으로 자기 운명이 바뀌어지지 않는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상대하시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과 상대해서 이 지상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가치를 양산하셨습니다. 따라서 이 가치 외에 다른 가치를 보이는 것은 하나님의 하신 모든 일을 정면으로 대드는 짓이 됩니다.
이미 예수님의 가치를 부여받은 자들은 더 이상 자기를 위한 가치는 자랑거리가 아님을 압니다. 인간의 자기 자랑은 그동안 인간을 억누르고 있는 힘을 이겨낼 수도 없고 뚫고 탈출에 성공하지도 못합니다. 인간이 자기 내부를 보는 식으로 하나님께서 구출 작업을 벌리십니다.
성도의 마음 내부는 2개의 층으로 되어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께 극렬하게 대들고 원망하고 반항하는 귀신의 활동을 보게 됩니다. 이미 그것을 파악했다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피의 가치가 그 사람 내부에 작용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이런 성도는 자신이 자유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자신의 무능력을 가지고 하나님의 자유하심에 일임하고 맡깁니다.
아무리 이 세상 나락으로 떨어진다 할지라도 그곳은 바로 십자가 피가 있는 곳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악마의 힘에 눌려 살고 있음을 솔직하게 하나님에게 털어놓을 정도로 악마의 힘에서 자유로운 자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