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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 믿음

이사야 56:9-12 / 몰각한 목자 본문

구약 설교, 강의(이근호)/이사야

이사야 56:9-12 / 몰각한 목자

정인순 2013. 11. 6. 11:51

 

152강-사56장,9-12,(몰각한목자)-isa080806몰각한 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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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8월 6일

이근호

 

본문 말씀: 이사야 56:9-12

(사 56:9) 『들의 짐승들아 삼림 중의 짐승들아 다 와서 삼키라』

(사 56:10) 『그 파수꾼들은 소경이요 다 무지하며 벙어리 개라 능히 짖지 못하며 다 꿈꾸는 자요 누운 자요 잠자기를 좋아하는 자니』

(사 56:11) 『이 개들은 탐욕이 심하여 족한 줄을 알지 못하는 자요 그들은 몰각한 목자들이라 다 자기 길로 돌이키며 어디 있는 자이든지 자기 이만 도모하며』

(사 56:12) 『피차 이르기를 오라 내가 포도주를 가져오리라 우리가 독주를 잔뜩 먹자 내일도 오늘 같이 또 크게 넘치리라 하느니라』

 

하나님은 세상 사람들이 추측하는 것처럼 교회에게 관여하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교회 밖에도 관리하십니다. 구약의 여호와 하나님도 이스라엘에만 관리하시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이스라엘 밖에 관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오늘 본문의 경우만 봐도 그러합니다.

 

유다 나라 밖에 있는 개라고 취급받아야 마땅한 인간들을 동원시켜 이스라엘 안에 있는 소위 목자, 혹은 영적 지도자라고 하는 자들이라는 개들을 삼키도록 조치하신다고 했습니다. 종교계에서 볼 때는 영적 지도자라면 대단한 영적 권위를 지닌 자라고 보일런지는 모르겠지만 하나님께서는 목자 노릇 제대로 못하면 그냥 개에 해당될 뿐입니다. 마치 불신자들을 개라고 말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같은 부류에 불과하게 보십니다.

 

이들 목자라고 자칭하는 개들이 하나님 말씀을 거부하며 사는 것은 결코 그들의 형편이 어려워서가 아닙니다. 오늘 본문에 보니 이들 개 같은 목자들은 모든 면에 있어 풍족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다음과 같이 주장합니다. ‘환경만 좋으면 안정된 상황에서 마음껏 하나님을 섬기겠다고!’고 말입니다.

 

이것은 자신의 조상들이 어떻게 에덴동산에 추방되는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추방된 것은 결코 그들의 삶의 환경이 나빠서가 아닙니다. 에덴이라는 곳은 모든 행복의 극치를 이룬 세계입니다. 그 세계에서 그들이 강제로 추방된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위반한 인간이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즉 하나님께서 멋진 환경 세계를 만든 것은 실은, 하나님의 말씀을 위반하지 않는 인간이기를 원해서입니다. 무엇일 입을까 무엇읊 마실까는 실은 인간이 염려할 사항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공중을 나는 새를 보라”고 하십니다. 그 새는 새 자신이 자기를 기르고 있는 것입니다.

 

새를 기르시는 분은 따로 있습니다. 그 분에 의해서 새는 길러지고 있는 것입니다. 들풀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연히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기르시는 것을 통해서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들은 자신이 자기를 기르고 싶어합니다. 이것은 그 나라와 의를 구하는 태도가 아닙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독립한 채 자신이 기르는 자신이 되기를 원하는 이유는 바로 하나님께서 내세우기는 인간형과 자신이 내세운 인간형이 사뭇 다르기 때문입니다. 즉 내가 원하는 인간형을 인간은 포기 하지 않을 때, 인간들은 하나님이 주신 그 모든 환경조차 거절하는 것이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을 창설하신 정작 이유는, 하나님에 원하는 인간으로 하여금 그 안에서 지내는 것을 보시기에 심히 기뻐하셨기 때문입니다. 환경에 대해서는 인간들이 구태여 신경 쓸 필요가 없습니다. 오로지 하나님이 원하시는 인간이 뭔가를 알고 그 인간이기를 소원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환경이 나빠서 제대로 하나님을 섬기지 못한다’고 우깁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개들은 결코 생활 형편이 궁핍해서 개같이 사는 것이 아닙니다. 풍족한 가운데 개같이 삽니다. 사람이란 풍족하면 하나님을 버리게 되어 있습니다. 이 말은 곧 평소에 사람들이 하나님을 찾는 이유가 하나님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인간이 되기 위해서 신의 힘을 빌러보겠다는 심보에서 나왔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어떤 인간을 원하시는가요? 그것은 참새처럼 ‘기르시나니’를 인정하고 믿는 자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이 도와주지 못하는 도저히 살 수 없는 자들을 유발시켜 놓았습니다. 소위 ‘가난한 자’들입니다. 이들은 땅이 없는 자들입니다. 땅을 갖지 못한 자들입니다.

 

옛날 이스라엘에게 있어 땅이 없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하거나 아니면 가족 전체가 노예로 필려갈 처지에 놓여 있다는 말입니다. 땅이 없기에 생존을 위해서 달리 내놓을 것이 없어 자기 몸과 남은 인생을 통째로 내놓는 겁니다. 자신의 몸과 남은 시간을 돈으로 사 갈 사람을 찾는 겁니다.

 

그래서 옛날의 노예제도란 단순히 강제로 인격의 존엄성을 깨는 처사가 아니라 땅없는 자들이 나름대로 땅 있는 부자에게 얹혀사는 것이 용납이 되는 시대였습니다.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들입니다. 이들은 신속해서 노예 신분으로 전락할 조짐이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비해서 여전히 자기 땅이 없으면서도 큰 소리치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바로 레위지파의 제자장들이나 선지자들입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기도 능력에 의해서 땅이 열매를 맺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생산물의 얼마를 이들 레위지파의 사람이나 제사장이나 선지자들에게 돌아가게 됩니다. 그런데 이들은 자신의 직책 자체가 하나님의 계신 인줄 알고 남용하기 시작합니다. 모든 땅 가지고 경작하는 자들 위에 영적 권위로 군림해서, 말씀대로 살면 복받고, 말씀대로 못 살면 저주받는다고 엄포를 놓습니다. 특히 신명기 28장 같은 구절을 근거로 해서 말입니다.

 

어느 사람이 자기 땅이 저주받기를 원하겠습니까! 그들은 아낌없이 영적 지도자에게 갖다 바쳐서 자신의 땅 위에 신의 축복이 임하기를 기원하게 됩니다. 이렇게 해서 영적 지도자들은 다른 어떤 계급에 속한 자들보다 특혜와 풍요를 누렸던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이란 넉넉하면 하나님을 잊어버리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진짜 참새처럼 하나님만 쳐다보는 참 선지자들 보내었습니다. 참 선지자의 일은 ‘싸움’입니다. 이 세상에 전부 통째로 거짓 선지자들의 손 안에서 논다는 것을 일깨어주는 일을 하게 됩니다. 자, 일반 대중들은 돈만 밝히고 풍요를 즐기는 거짓 선지자들을 좋아하겠습니까 아니면 오로지 하나님만 쳐다보고 사는 참 선지자를 좋아하겠습니까?

 

거짓 선지자들 좋아합니다. 왜냐하면 거짓 선지자들의 사고방식이 자신의 사고방식과 일치되기 때문입니다. 즉 풍요가 하나님을 잘 섬기게 한다는 겁니다. 그러나 정작 하나님의 뜻은 그것이 아닙니다. 환경에 대해서 일체 하나님이 책임질 터이니 너희들은 심령이 가난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당부합니다. 마음만 하나님을 사모하는 가난한 마음이라면 그야말로 아이가 사자굴에 들어가도 다치지 않는 환경은 얼마든지 하나님이 만들어낼 수 있는 겁니다. 기도하시다.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의 뜻은 참 아들다운 아들을 원하오니, 저희들이 환경에 관심두지 않고 하나님의 덕분으로만 산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