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과 믿음
교회와 동우회 본문
교회와 동우회 / 이근호 목사
클럽, 혹은 동우회가 확산되는 것은 사회가 여유 있게 돌아갈 때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인간에게 있어 정신적 육체적 휴식은 자기만의 세계 속에 타인을 받아 드리면서 더욱 풍요로워진다. 뜻이 맞고 마음 맞는 사람끼리 함께 있다는 것은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사랑과 정이란 주고받는 교류 안에서 실제화 된다. 낚시 동우회, 등산 동우회, 바둑 동우회, 민속 음악 동우회, 탈춤 동우회, 종이 접기 동우회, 배드민턴 동우회 등 등 모두가 나름대로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여긴다.
따라서 동우회는 자신의 주체성을 수시로 외부에 알리고 전도한다. 필요하다면 뭉칫돈을 내어 회관을 장만하기도 한다. 부담이 가지 않는 범위 내에서 회칙도 마련한다. 동우회란 삶이 찌긴 현대인들에게 상큼한 야채 샐러드와 같은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동우회와 일반 직장과의 차이는 무엇일까? 둘 다 현대인들에게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직장을 잃었을 때는 자살까지 고려하지만 동우회가 없어졌다고 죽음까지 생각하지는 않는다. 바로 이점이 차이점이다.
인간에게 있어 가정이나 직장은 목숨을 유지하고 지탱해 주는 곳이다. 그러나 동우회는 여가를 즐기는 곳이고 목숨 바쳐 사수해야 되는 곳은 못된다. 자기가 소속되어 있는 동우회 운영이 어려워지더라도 직장과 가정을 팽개치면서까지 매달릴 필요는 없는 일이다. 어디까지나 클럽의 일은 부수적이어야 한다.
그렇다면 오늘날 현대인에 있어 교회는 무엇인가? 초대 교회 성도들은 결코 교회라는 이름의 동우회를 결성한 적이 없다. 더구나 그들은 자신들의 여가 활동을 위해 교회를 세운 적도 없다.
"그리고 너희의 참는 모든 핍박과 환난 중에서 너희 인내와 믿음을 인하여 하나님의 여러 교회에서 우리가 친히 자랑함이라"(살후 1:4) 여기서 말하는 환란이란 기껏 예배 시간에 참석하기 위해 자투리 시간 내기가 힘들어서 어려워하는 환란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전 생활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된 상태에서 당하는 환란이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빌 1:29) 초대 교회부터 참 성도들은 모든 것을 예수 그리스도 고난 안에서 재해석했다.
예를 들면 예수님은 새로운 하나님의 가족을 제시하신 적이 있다. "손을 내밀어 제자들을 가리켜 가라사대 나의 모친과 나의 동생들을 보라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 하시더라"(마 12:39) 이러한 주장 자체가 이 땅에서 환란을 조성하는 계기가 된다.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뜻으로 지상에 가정에 대해서 언급했다.
"형제들아 내가 이 말을 하노니 때가 단축하여진 고로 이 후부터 아내 있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우는 자들은 울지 않는 자 같이 하며 기쁜 자들은 기쁘지 않은 자 같이 하며 매매하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세상 물건을 쓰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하는 자 같이 하라 이 세상의 형적은 지나감이니라 너희가 염려 없기를 원하노라 장가 가지 않은 자는 주의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주를 기쁘시게 할꼬 하되 장가 간 자는 세상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아내를 기쁘게 할꼬하여 마음이 나누이며 시집 가지 않은 자와 처녀는 주의 일을 염려하여 몸과 영을 다 거룩하게 하려 하되 시집 간 자는 세상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남편을 기쁘게 할꼬 하느니라 내가 이것을 말함은 너희의 유익을 위함이요 너희에게 올무를 놓으려 함이 아니니 오직 너희로 하여금 이치에 합하게 하여 분노함이 없이 주를 섬기게 하려 함이라"(고전 7:29-35)
현대인들에게 목숨같이 간주되는 직장과 가정이 그리스도 앞에서는 그 가치가 절대적이지 않은 것으로 폭로되어 버렸다. 성도들은 이런 사실에 대해서 서슴없이 다가서는 것이다. 왜냐하면 교회란 인간의 손으로 영글어내는 동우회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자기 피로 값주고 산 자신의 몸이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빠져 있고 인간들의 흥겨움만 가득찬 교회는 가짜이다. 참된 교회는 실제로 그리스도가 존재하는 곳이다. 그것만이 교회이다. 따라서 이런 교회에 들어오고 나가고 하는 문제는 전적으로 성령의 소관이지 사람의 취향과 각오와 판단력과는 무관하다.
'저서 & 기타(이근호) > 기독교의 허상 1,2'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목사의 임무 (0) | 2011.01.05 |
---|---|
학문이란 노리개 (0) | 2011.01.05 |
지면서 살아야 한다 (0) | 2011.01.05 |
십자가와 음란 죄 (0) | 2011.01.05 |
신학교 교수들의 '십자가 믿기' (0) | 2011.01.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