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과 믿음
십자가와 음란 죄 본문
십자가와 음란 죄 / 이근호 목사
예수님의 산상설교에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온다. "또 간음치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마 5:27-28) 그 당시 유대인들은 간통죄에 대해서 추상같은 형벌을 적용시켰다. 돌로 쳐죽인다 해도 누구도 이의를 달 수가 없었다. 간음한 자와 안 한 자가 뚜렷이 구분 지울 수 있다고 여기는 사회적 통념이 이런 형벌을 가능하게 한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음란을 마음의 범주까지 증폭시켜셨다.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인간의 마음이란 사람마다 다 다른 것이 아니라 보편적인 악의 흐름 밑에 이미 지배를 받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예수님의 이 말씀은 바람기 넘치는 특정 죄인을 두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특정인을 지칭한다면 기껏 해야 유대교의 입장을 옹호해 주는 발언에 지나지 않는다.
예수님은 처음부터 십자가 지려고 이 세상에 나타나셨다. 무엇 때문에, 왜 자신이 온 몸으로 희생 제물이 되어야 하는 가를 보여주기 위해서는 모든 인간의 현 상태를 지적해야만 하셨다. 유대인의 법 인식으로 대변되는 인간들의 악에 대한 이해는, 예수님의 말씀 앞에서 그 한계점을 여지없이 드러내었다. 문제는 이것이었다. 과연 인간이 악을 통제하느냐 아니면 악이 인간을 통제하는 위치에 있느냐 하는 것이다.
그 당시 유대교는 인간이 해낼 수 있는 최고치의 저항으로 악과 대치하고 있다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허약성을 놓치지 않고 허물어 버리셨다. 즉 그들은 그저 법률 조항에만 매달려 있었다. 그 법으로 이성적인 종교조직체와 종교 사회를 이울 수 있다고 믿었다. 악마의 능력을 얕잡아 보았다. 자신들의 의로움과 선행으로 악마를 각자의 마음속부터 퇴치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간주했다.
그들은 생각하기를, 악과 선은 같은 것도 각자의 행동 여하에 따라 조금씩 조금씩 비축할 수도 있고 소진해 버릴 수도 있는 그런 정량적 개념으로 여겼다. 예를 들면, 만약 지금 음란성이 들어 있지 않는 맑은 심성이라면 계속해서 음란죄하고는 상관없는 자가 되리라 여겼던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 예수님은 악의 위치와 인간의 위치를 제대로 설정해 주셨다. 이 음란에 관한 말씀에 곧 이어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을 하신다. "만일 네 오른눈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또한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마 5:29-30) 즉 인간은 자기 신체를 천 조각, 만 조각을 낸 후라도 여전히 악마의 노리개가 되어 버린다는 것이다. 악마는 인간에 의해서 처리되거나 굴복 당한 세력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미 악마는 인간의 마음과 전 인격을 장악하고 있음을 밝히신 것이다. 설사 과거에 음란적인 사상을 갖지 않고 경험이 없을지라도 악마는 새삼스럽게 얼마든지 그 사람을 음란의 도구가 되는 것이다.
이 점을 유대인들은 알지 못했다. 인간은 그 어느 한 부분, 그 어느 한 순간도 악의 지배를 못 벗어나 있는 실존이라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인간의 본질에서 바라볼 때, 십자가의 의의가 밝혀진다. 예수님은 그저 설교만 하신 것이 아니라 온 몸을 던지신 것이다. 대속물로서 신체 일부를 제공하신 것이 아니라 몸 전체를 제공하신 것이다. 악의 제물이 되어 버린 인간과 대비시키기 위해서 온 몸을 의에 제물에 되셨다.
십자가 이후의 사도나 주님의 모든 말씀은 (명령이든 서술이든) 인간의 형편을 분명히 노출시키기 위한 말씀이요 그리고 그 맞은 편에서 계신 주님의 십자가만을 믿기를 요구이시기 말씀이기 때문이다. "음행을 피하라"라는 명령조의 말씀이나(고전 6:18) "죄를 지은 눈을 빼고 죄를 지은 손을 찍어버리라"는 명령조의 말씀이나 "이미 간음하였느니라"라는 설명조의 말씀이나 모두 다 '이상적(理想的)인 교회 만들기와 갖기'와 관련된 말씀이 아니라 오직 참된 그리스도와 그 몸을 증거 하기 위한 계시적 차원의 선포이다. 결코 '인간 긍정'에 관한 사상은 그 어디에서 허용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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