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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 믿음

죽음을 앞 둔 어느 교인의 한계 본문

저서 & 기타(이근호)/기독교의 허상 1,2

죽음을 앞 둔 어느 교인의 한계

정인순 2011. 1. 4. 22:14

 

죽음을 앞 둔 어느 교인의 한계 / 이근호 목사

 

 

 

 

60대 부부가 교회 문을 열고 들어온다. 조용히 빈 자리를 찾아 앉는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설교에 열중하는 목사를 쳐다본다. 그때부터 이들의 교인 생활은 시작되었다. 웃을 때 같이 웃어주고, '아멘' 해야 하는 대목에 제대로 '아멘'으로 끼여 들 수 있었던 경우도 차츰 늘기 시작했다. 누가 옆에서 일일이 가르쳐 주지 않더라도 민감한 눈치가 모든 것을 해결해 준다. 왜 이들과 유사하게 행동해야 되는지 이유도 모르면서 계속 흉내를 낸다. 찬송가 부를 때도 상체를 흔들면서 부른다. 기도할 때도 상투적인 문구들로 채워본다. "전능하시고,자비로우시고,생사 화복을 주관하시고… …, 주의 사자에게 능력의 두루마기를 입혀 주시고 … …,당회로부터 유년 주일학교에 이르기까지 하나가 되게 하시고 빈자리가 차고 넘치게 하시고 … …,미참한 발걸음을 재촉해 주시고… …,남 북 통일이 앞당겨 이루어져서 이북에 있는 불쌍한 동포에게도 복음을 전하게 하시고 … …,이 제단이 전 세계의 복음을 전하는 선교의 중심이 되게 하시고 … …,예수 이름 받들어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모방과 모방으로 일관하면서 끈끈하게 교회와 관계를 맺던 이 노 부부 중에서 여자 분이 죽음의 그림자가 덮쳐왔다. 여자 분이나 남편 된 분이 드디어 다급하게 되었다. 살 수 있는 방도는 다 취해본다. 우선 담임 목사가 되는 내가 찾아갔다. "그냥 죽으세요! 그 동안 산 것과 죄인인 입장에서 오래 버틴 것입니다. 공짜로 살려준 은혜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당사자인 여자 분이 마지못해 동의한다. "저는 더 살 생각 안합니다. 그저 살아온 것도 축복이지요 뭐". 그러나 그것은 찾아준 목사에 대한 일종의 신학적 예의였다. 죽어가면서도 남의 신앙을 흉내내고 있다.

 

그러나 속일래야 속일 수 없는 것은, 죽음의 사자가 자기의 계속 지옥으로 끌어당기고 있다는데 있다. 입술에서 기계적으로 튀어나오는 신앙 문구가 결코 자신을 천국으로 데려가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지옥으로 끌려가고 싶지 않더라도 운명은 이미 자기 것이 아니었다. 남편은 차후의 자기 신세가 염려되어 어쨌든 아내를 살려보고자 하나, 문제의 심각성은 병으로부터의 회생이 아니라 그 동안 다닌 교회 공적이 지옥으로 끌려 들어가는 자기를 전혀 살릴 수 없다는 진실성에 있다. 집사라는 직분, 아니 본인이 목사라는 직분을 입고 있다 한들 무슨 도움이 되나!

 

원인은 단하나, 자기를 위하여 교회를 다녔다는데 있었다. 그 동안 설교 시간을 통해서, 하나님은 결코 대한민국 편도 아니오 교회 편도 아니오 인간 편도 아님을 누누이 천명해 왔다. 참 하나님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편이다. 그리고 천국도 "아들의 나라"이다(골로새서 1:13). 이 설교 내용에 온 교우들이 동의,동의 한다고 해서 그들이 그 진리를 위해서 목숨까지 바쳤다고 간주해서는 안된다. 교회를 다니면서 목숨까지 결어놓고 다니는 것은 초대 교회에서나 있었다고 전해 내려오는 전설 같은 이야기이다. 환난과 고난이 뒤범벅된 초대 교회의 신앙풍토가 요즈음 와서 그냥 관람 거리로만 남는 것은, 다같이 서로 서로 흉내내기로 교회 생활을 하기 때문이다. 만약 조금이라도 성경을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고 나서기만 하면 얼마든지 교회 내에서 앉아서도 환난을 맛보게 될 것을 모르고 … …. 추상적인 고난이 아니라 실제로 당하는 십자가의 고난은 바로 성도 바로 곁에 늘 붙어 다닌다.

 

교인 되는 것은 모방과 흉내로 가능하지만 성도가 되는 것은 모방과 흉내 내기를 그만두게 하는 성령의 초능력이다. 즉 예수님을 자유케 하는 능력이 어떤 인간에게 덮쳐오면 그 사람은 드디어 성도가 된다. 예수님과 같이 자유인이 된다. 종교와 신앙의 차이점을 비로소 알게 된다. 종교사업과 하나님의 일이 전혀 딴 것임을 발견하게 된다. 비록 그동안 교인이었지만 이때부터는 성도가 된다. 교인은 자기를 위하여 교회 다니는 사람이요, 성도는 예수님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은 사람이다. 따라서 성도 앞에서는 교회의 직분이 아무런 위엄을 주지 못한다. 단지 자기를 포기한 사람만이 존경의 대상이 될 뿐이다. 자유는 모방될 수 없다. 단지 지금도 살아 계신 예수님의 선물로 주어질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