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과 믿음
심판과 지옥 본문
심판과 지옥 / 이근호 목사
마지막 때에 지옥이 있고 심판이 있다는 성경 귀절을 대하게 되면, 평소에 하나님에게 좋은 감정을 가진 사람들도 어리둥절하게 된다. '자비로운 하나님' 이미지와 잘 안 맞는 듯한 인상이다. 유황 불 못 속에서(요한계시록 20:10,14) 구더기도 죽지 않고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길 속에서 어려움을 당하는 지옥, 왜 하나님은 이런 잔혹한 장소를 마련했는지 얼른 납득하기 힘들 것이다.
누가 이런 곳을 차지할까? 성경은 죄인들이 이곳에 간다고 했다. 거룩하지 못하고 속된 사람은 이 지옥에서 영원히 살게 된다. 모든 인생은, 죽음으로 하나님과의 계약 관계가 끝내는 게 아니다. 한쪽은 심판의 부활로, 다른 한 쪽은 생명의 부활로 나온다. 그래서 심판에 해당되는 자들은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 서게 된다. 예외 없다.
지옥이란, 하나님의 저주의 표현이다. 누가 저주받는가? 누구든지 주 예수를 사랑하지 않는 자는 저주를 받는다고 되어 있다(고린도전서 16:22). 죄라는 것은 딴 게 아니라 주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 주님에 대한 사랑은, 주님이 지신 십자가의 고통에 참여해 보면 알 수 있다.
인간의 죄의 깊이 때문에 예수님은 애매하게 죽임을 당한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당하는 무시무시한 하나님의 형벌은 인간은 상상력을 벗어난다. 왜 그 분은 유독 고생을 해야 하는가? 왜 그 분은 의인이면서도 죄인처럼 형벌을 받는가? 그 고통 속에서 들어선 자만이 인간의 죄를 알게 된다.
예수님을 죽게 한 것은 인간들의 죄였다. 따라서 죄의 본질은 그 분이 당하신 저주의 눌림 아래서 분명해 진다. 거기에는 분노가 있었다. 하늘의 분통이다. 그 분통을 자신의 분통으로 이전해야만 죄를 안다. 그렇지 않고 그 저주의 고통 밖에서 구경만 하고 있다면 사람들은 죄를 모른다. 죄를 모르니 하나님의 분통 터뜨리심에 대해서 어리둥절하게 되는 것이다."우리가 뭐 어쨌는데 하나님은 자기 아들에게 그토록 화를 내시는가?" 하면서 낯설어 한다.
하나님의 연속적인 저주가 지옥을 만들게 한다. 죄에 대해서 무감각한 자들을 위해 지옥을 만들었다. 가공할 만한 하나님의 저주의 깊이를 맛보라는 것이다. 예수님의 죽으심에서 죄와 저주를 맛보지 못한다면 지옥에나 가서 그 저주의 맛을 보게 될 것이다.
참으로 구원받는 자는,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저주의 대상물이 된 자이다(갈라디아서 2:20).저주의 정도를 아는 자이다. 만약 하나님의 저주를 미리 맛본 자라면 결코 세상을 편들려 하지 않을 것이다. 오직 예수님의 편만 들려고 한다. 결코 세상을 옹호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세상을 절단 내는 하나님의 결심에 대해서 찬사와 영광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결코 구원받지 못하는 자의 변명에 동조하지 않을 것이다.
죄지은 자에게 무슨 변명할 권리가 있단 말인가! 특히 저주의 깊이를 맛 본 사람은, 주 예수님 용서의 피와 살점 이외에 그 어떤 것도 가치 있게 생각하지 않는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나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요한복음 6:53-55).
철저하게 예수님 편에 서서 살게 된다. 지옥과 천국의 기준은 바로 이것뿐이다. 결코 윤리가 아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저주받은 세상을 다시 회생시키려고 해서는 안된다. 만약 회생의 대상이라면 예수님의 죽으심은 단순히 겁주기 위한 시위에 불과하다. 아마 어설픈 연기술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에 있어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은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포기를 뜻한다. 따라서 십자가 위에서 보여진 하나님의 결정 사항에 대해서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죄의 깊이에 동의하지 않는 자이다. 이런 자는 절대로 주님 편을 들지 않는다. 주님을 전적으로 신뢰하지 않고 여전히 세상 환상에 그냥 살려는 자이다.
주님에 대한 사랑이란, 주님의 모든 뜻에 전적으로 호응하고 동조하고 깃발 드는 자이다. 주를 사랑하지 않는 자는 저주를 받는다는 하나님의 말씀은,십자가 사건을 통해서 볼 때 그냥 농담으로 처리될 말씀이 아니다. 심판과 지옥의 기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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