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과 믿음
[뒤에서 본 한국교회] 아모스서 2, 오바댜서 본문
아모스서 2, 오바댜서
05,02,05 강의 이근호, 정리 구득영
◈ 뽕나무를 키우는 농부의 등장 !!
오늘은 아모스서, 오바댜서, 요나서 등을 한꺼번에 다 하려고 하는데, 먼저 아모스서를 한번 살펴보자는 것이다. 먼저 5장 21절에서 25절을 보겠는데, 지난 시간에도 살펴본 부분이지만 말이다.
(암 5:21) 내가 너희 절기를 미워하여 멸시하며 너희 성회들을 기뻐하지 아니하나니
(암 5:22) 너희가 내게 번제나 소제를 드릴지라도 내가 받지 아니할 것이요 너희 살진 희생의 화목제도 내가 돌아보지 아니하리라
(암 5:23) 네 노래 소리를 내 앞에서 그칠지어다 네 비파 소리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
(암 5:24) 오직 공법을 물 같이 정의를 하수 같이 흘릴지로다
이렇게 이스라엘은 노래를 해도 제일 좋은 노래가 하나님께 바치는 노래, 즉 하나님을 찬양을 하는 것인데, 그런데 문제가 그렇게 찬양만 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그것이 곧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처럼 오해를 했는데, 그것은 물론 그 당시 성직자들이 백성들에게 교육을 시킨 것이고 말이다.
그런데 지금 겁도 없이 이런 말을 함부로 외치고 있는 아모스는 과연 선지자인가? 아닌가? 그게 7장 14절에 나오지만, 그는 선지자가 아니라 뽕나무를 키우는 농부라는 것이다. 그러니 아모스는 농부이지 선지자가 아니라는 말이다.
(암 7:14) 아모스가 아마샤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선지자가 아니며 선지자의 아들도 아니요 나는 목자요 뽕나무를 배양하는 자로서
그러니 이것이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닌데, 세례요한의 경우에는 제사장들이 그에게 뭐라고 했는고 하니, "당신이 선지자야? 제사장이야? 그것이 아니라면, 당신은 뭐야?" 라고 했다는 말이다. 그때 세례요한은 뭐라고 했는가? 자기는 그냥 외치는 '소리' 라는 것이다.
(요 1:21) 또 묻되 그러면 무엇, 네가 엘리야냐 가로되 나는 아니라 또 묻되 네가 그 선지자냐 대답하되 아니라
(요 1:22) 또 말하되 누구냐 우리를 보낸 이들에게 대답하게 하라 너는 네게 대하여 무엇이라 하느냐
(요 1:23) 가로되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라 하니라
그렇게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은 이 세상의 직분을 초월하게 되는데, 즉 목사든지, 장로든지, 그런 것이 문제가 아니라는 말이다. 왜 그런고 하니, 그것이 곧 '새로움' 때문인데, 바로 이것이 구약에서 성경을 해석할 때 제일 어렵다는 것이다.
◈ 새로운 죄는 새로운 선지자가 !!
지금 이 아모스서의 경우에 일단 없는 죄가 나왔는데(?), 무슨 말인고 하니까, 시편에는 찬양을 하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데, 그런데 그렇게 찬양을 해도 영광이 아니라 죄가 되는 것이 이 아모스서에서 처음 생긴다는 것이다. 물론 그 전에도 있었지만, 이 아모스서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난다는 말이다.
그렇게 해서 새로운 죄가 생겨났는데, 이 새로운 죄는 누가 지적을 하지 못하는가? 기존의 성직자나 선지자들은 이야기를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모두가 다 한 통속이기 때문에 말이다. 백성들의 찬양에 대해서 기존의 성직자나 선지자들은 오히려 옹호를 해주는데, 그렇게 해주면서 자기들은 밥벌이를 하고 말이다. "참 잘하네요. 4부로 하니 더 좋아요" 라고 하면서 말이다.
아무튼 그렇게 기존의 익숙한 것에 대해서 성직자들이 호응을 해주면, 자기들의 생계가 보장된다는 것이다. 왕이 또 그것을 장려하고 말이다. 그러니 자기들에게는 그것이 죄라고 생각할 수 있는 여지가 전혀 없는데, 오히려 자연스러운 것인데 말이다. 지금 교회에서도 역시 그렇지 않는가?
◈ 돌발 영상, 돌발 선지자 ??
그런데 그것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새로운 죄라고 한다면, 그런 새로운 죄에 대해서 새롭게 지적하고 공격할 수 있는 선지자는 기존의 모든 성직계열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다른 계열에서 와서, "그것이 곧 죄입니다" 라고 지적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새로운 선지자가 돌발하는데, 즉 갑자기 출현해서 갑자가 사라진다는 것이다. 반짝 나타나서 외치고 사라진다는 것이다.
이렇게 구약의 선지서를 공부해보면, 어떤 경우에는 나무나 안타까워서 눈물이 나기도 하는데, 여기서 성경을 한 구절 찾겠는데, 역대하 24장을 17절 이하를 살펴보자.
(대하 24:17) 여호야다가 죽은 후에 유다 방백들이 와서 왕에게 절하매 왕이 그의 말을 듣고
(대하 24:18) 그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을 버리고 아세라 목상과 우상을 섬긴 고로 이 죄로 인하여 진노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임하니라
(대하 24:19) 그러나 여호와께서 선지자를 저에게 보내사 다시 자기에게로 돌아오게 하려 하시매 선지자들이 저에게 경계하나 듣지 아니하니라
◈ 죄와 선지자는 한 세트 !!
이렇게 죄가 발생하면 하나님께서는 한 세트로 묶어서 반드시 선지자를 보내는데, 구약이 이런 점이 어렵다는 것이다. 제가 다시 묻겠는데, 새로운 죄가 드러나면 하나님께서는 무슨 조치를 하는가? 누가 답변을 해보라는 말이다. 그것은 바로 선지자를 보낸다는 것이다.
이러한 법칙을 놓치면 구약이 제대로 해석되지 않는데, 즉 "하나님께서 살아계신다면 죄를 짓지 못하도록 하면 되는데" 라고 하지만, 그러나 그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죄는 죄대로 짓게 하는데, 그런데 그런 죄를 지적하는 선지자를 하나님께서 따로 차후에 붙여서 보내어준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선지자를 보내는데, 그런데 19절에 보면 왕이 선지자의 말을 듣는가? 들을 턱이 없는데, 그래서 죄가 죄답다는 말이다. 만약에 그런 선지자의 말을 듣고 회개한다면 죄가 아닌데, 즉 "하나님, 당신이 와도 우리가 회개하지 않는다" 라고 해야, 그야말로 죄가 죄다운 것이라는 말이다.
◈ 죄는 말씀을 가진 자를 만나면 그 본색이 !!
다시 말해서, 정작 본인은 그 죄에 대해서 모르는데, 그런데 선지자가 와서 그만 마주치니 회개는커녕 오히려 그 선지자를 죽이고 싶은 마음이 용솟음친다는 것이다. 그것이 20절 이하에 나오고 말이다.
(대하 24:20) 이에 하나님의 신이 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를 감동시키시매 저가 백성 앞에 높이 서서 저희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여 스스로 형통치 못하게 하느냐 하셨나니 너희가 여호와를 버린 고로 여호 와께서도 너희를 버리셨느니라 하나
(대하 24:21) 무리가 함께 꾀하고 왕의 명을 좇아 여호와의 전 뜰안에서 돌로 쳐 죽였더라
(대하 24:22) 요아스 왕이 이와 같이 스가랴의 아비 여호야다의 베푼 은혜를 생각지 아니하고 그 아들을 죽이니 저가 죽을 때에 이르되 여호와는 감찰하시고 신원하여 주옵소서 하니라
이런 성경말씀을 읽다가 보면 성경공부를 한다는 것 자체가 두려울 때가 있는데, 만약에 우리가 이런 말씀을 보지 않았다면, "하나님을 찬양하면 복을 주겠지" 라고 하는데, 그런데 막상 구약성경을 보니, 하나님께서 성도를 어디로 보내는고 하니, 죄가 눈에 띄는 곳에 보낸다는 것이다.
왜 그런가?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으로 선택한 것은 그들을 구원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에 군사로서 활용하기 위해서 그렇다는 말이다. 즉 하나님께서 자기 일을 시키기 위해서 말이다. 그래서 믿음을 주었다는 것이다.
복음을 알기 전에는 목사를 보면, "목사님, 오셨습니까?" 라고 했는데, 그런데 복음을 알고 난 뒤부터는 "저거, 사기꾼 아니야?" 라는 소리가 자기도 모르게 입에서 튀어나온다는 것이다. 즉 갑자기 눈에 띄는 것이 있다는 말이다. 일부러 무엇을 뒷조사를 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냥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성령이 임한 사람에게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말이다.
◈ 기독교 방송을 보느니 차라리 야동을 ??
이것을 좀 쉽게 말하면, 복음을 알고 나 뒤의 특징이 무엇인고 하니, 100%가 이것이라고 제가 장담을 하는데, 전에는 그래도 그냥 들을만했던 기독교 방송의 설교가 너무나도 역겨워서 도저히 들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설교를 엉터리로 해도 "나이든 양반들을 위해서 듣기 좋으라고 하는 소리겠지" 라고 넘어가기도 했는데, 그런데 복음을 알고 난 뒤에는 용납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채널을 돌려서 다음 채널인 불교방송이나 보고 마는데, 물론 가끔은 잘못(?) 틀어서 애로물을 보는 수도 있지만, 차라리 그것이 더 낫다는 것이다. 그런 설교가 포르노보다 훨씬 더 역겹지 않는가? 그들은 자기 몸뚱아리를 팔지만, 그러나 목사들을 말씀을 팔아먹는데, 즉 거룩을 빙자한다는 것이다.
아무튼 기존 선지자들이 아모스에게 뭐라고 하는고 하니, 다음 대화를 한번 들어보자.
* 선지자 : 니, 어느 신학교 출신이야?
* 아모스 : 신학교는 안 나왔는데.
* 선지자 : 그러면 누구에게 라이센스를 받았어?
* 아모스 : 하나님이 하라고 했는데.
* 선지자 : 하나님이?
* 아모스 : 나는 농부인데, 하나님이 하라고 해서 하는 거야.
* 선지자 : 그러면 하나님이 뭐라고 했는데?
* 아모스 : 지금 제사하고 찬양하는 모든 것이 다 엉터리라고 하던데.
* 선지자 : 뭐라고?
* 아모스 : 그런 것은 일체 받지 않겠다고 했어.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아모스가 뭐라고 하는가? 지난 시간에도 살펴보았지만, 사자가 공격을 하기 전에는 무엇을 하는고 하니, 사자의 울부짖음이 있고, 그리고 적들이 쳐들어오면 반드시 지키는 파수꾼이 나팔을 불어서, 그렇게 소식을 알린다는 것이다.
◈ 하나님께서 어떻게 사용하시는가?
우리가 지금 이렇게 구약성경을 보면서 "내가 어떻게 하면 구원을 받을까?" 라는 식으로 보면 해석이 안 되는데, 구약은 우리 자신의 구원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이 어떻게 나를 사용하시는가?" 라는 문제라는 것이다. 우리는 아무리 노력해도 구원을 받지 못하고 말이다. 오직 하나님의 영이 임해야 구원을 받는 것이지, 구원을 그렇게 우리가 챙기고 말고 할 성질의 것이 전혀 아니라는 말이다.
여기서 에스겔 3장을 한번 보겠는데, 17절부터 살펴보자.
(겔 3:17)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숫군으로 세웠으니 너는 내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을 깨우치라
(겔 3:18) 가령 내가 악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꼭 죽으리라 할 때에 네가 깨우치지 아니하거나 말로 악인에게 일러서 그 악한 길을 떠나 생명을 구원케 하지 아니하면 그 악인은 그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내가 그 피 값을 네 손에서 찾을 것이고
(겔 3:19) 네가 악인을 깨우치되 그가 그 악한 마음과 악한 행위에서 돌이키지 아니하면 그는 그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너는 네 생명을 보존하리라
◈ 파수꾼은 우편 배달부 !!
여기 17절에도 파숫군(파수꾼?)이 나오는데, 여호와의 증인들이 전도용으로 사용하는 책자도, 그것은 '파수대' 인가? 아무튼 이 파수꾼의 역할이 무엇인고 하니, 철저하게 자기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에 완전히 종속이 되어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완벽하게 말이다. 즉 말씀은 받아놓고 다른 길로 새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이 파수꾼은 구원을 의미하는가? 아니면 멸망을 의미하는가? 사실은 두 가지를 다 가지고 있는데, 즉 파수꾼이 하는 말을 듣지 않으면 멸망이고, 들으면 구원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파수꾼은 우편 배달부라고 할 수가 있는데, 그러므로 파수꾼이 되어서 누구를 구원하겠다고 하는 것은 잘못된 일종의 월권행위이고 말이다.
그러므로 파수꾼은 그냥 배달만 제대로 하면 된다는 말이다. 물론 배달을 제대로 했는지 안 했는지, 거기에 대한 책임은 하나님께서 묻지만, 그러니 상대방이 죽고 사는 구원의 문제에 대해서는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렇게 열심히 전했는데, 왜 다들 안 믿지?" 라고 하는 심적인 부담은 파수꾼에게는 없는데, 우리도 역시 마찬가지이고 말이다.
◈ 요나서 - 니나 잘하세요 ??
그런데 여기에 대해서 "내가 그렇게 한 소리를 한다고 사람들이 믿을 것도 아니고, 나는 그냥 옆으로 빠질 거야" 라고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다음 시간에 공부할 요나 선지자의 모습인데, 즉 "이미 멸망한 니느웨 도성인데, 내가 뭐 전할 필요가 있는가?" 라고 하면 옆으로 샐 때, 하나님께서는 기어이 요나를 사용하는데, 물론 다른 사람을 사용해도 되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 요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끝까지 일을 시킨다는 말이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께서는 요난 자신의 잘못된 생각을 고쳐주시는, 그런 내용이 바로 '요나서' 라는 것이다. 즉 하나님께서 이방민족들이 사는 니느웨 도성을 구원하는 문제를 가지고, 오히려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요나의 회심, 혹은 회개를 유발해내는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이 요나서에 펼쳐진다는 말이다.
◈ '바알 신'에 대해서 !!
이 요나서는 다음에 하기로 하고, 계속해서 아모스서를 살펴보겠는데, 그렇다면 아모스서에서 말하는 이스라엘의 죄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바알' 이라는 것이다. 이 부분은 신학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조금은 어려울 수도 있는데, 지금 아모스 선지자는 이스라엘이 바알 신을 섬겼기 때문에 망한다고 외치는 것이다.
그냥 들어보면 별로 어렵지 않고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 같은데, 하지만 이것이 왜 어려운고 하니, 이 바알 신을 공부해부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아마 여러분이 이 바알 신에 대해서 들어보면, "어, 한국교회가 예수님을 믿는 것과 똑같네" 라고 하지 싶은데, 정말이지 그런 소리가 나올 만 하다는 것이다.
◈ 바알 신은 오늘 한국교회가 믿는 예수 !!
한국교회 교인들은 이 바알 신을 마치 절에 있는 부처처럼 여기는데, 그래서 자기들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 오늘날 한국교회가 예수님을 믿는 것과 똑같다는 말이다. 그러니 우상이라는 것이,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으면 우상을 믿지 않는 줄 알지만, 그러나 놀랍게도 지금 한국교회는 '예수' 라는 우상을 믿고 있다는 것이다.
◈ 바알은 땅을 축복해주는 신 !!
사실은 부르는 이름이 문제가 아니라 안에 무슨 내용을 담고 있느냐는 것인데, 거기에 대해서 성경을 구약에 바알이라는 신을 미리 두어서, 어쩌면 사람들이 하는 짓이 그렇게 바알을 믿는 것과 그렇게 똑같은지, 그야말로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런 것을 신학교에서는 상세하게 가르쳐주기는 하는데, 한 마디로 말해서, 이 바알은 땅을 축복하는 신이라는 것이다.
* 질문 - 실제로 바알 신을 믿는 자들이 잘 살지 않았나요?
물론 실제로 잘 살았는데, 그런데 그것이 바로 문제였다는 것이다. 하박국 선지자는 여기에 대해서, 자기는 외양간에 소가 없어도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겠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그 당시 백성들은 그렇게 외양간에 소가 있을 때, 그것을 여호와 하나님의 축복으로 보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하박국 선지자는 그렇게 외양간에 소가 있는 것을 축복으로 보는 사고방식이, 바로 이 땅을 축복하는 바알 신을 섬기는 모습이라는 것이다. 즉 바알종교가 연결된 것으로, 즉 껍데기는 여호와를 믿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그 알맹이는 바알 신을 섬기고 있다는 것이다.
◈ 그들은, 복을 받기 위해서 말씀을 !!
신명기 28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면 복을 받게 되어있는데, 즉 말씀에 순종하면 따라오는 것이 복인데, 그런데 사람들은 그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와 반대로 생각하는데, 즉 복을 받기 위해서 말씀을 지키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말씀이 그만 수단이 되어서, 그만 말씀자체에 대한 기쁨이 없다는 말이다.
그렇게 복을 얻어 챙기는 것이 기쁨인데, 그래서 백성들은 그것을 노리고는 아까 아모스서에도 나왔지만, "우리가 제사도 드리고, 절기도 지키고, 그리고 찬양도 하자" 라고 했는데, 그러나 그런 것들이 다 무엇을 획득하기 위함인고 하니, 그런 것들은 모두 일종의 수단이고 방법인데, 즉 이 땅의 축복을 따내기 위한 말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아모스를 보내서 뭐라고 하시는가? "이제 그런 짓을 좀 하지 말라" 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 당시 성직자들은 무엇을 했는가? 그런 땅의 축복이 있으면 그 떡고물이 성직자들에게 떨어지는데, 그러니 성직자들은 당연히 민중들이 원하는 것을 들어주면서, 그렇게 서로가 상부상조하면서 살았다는 것이다.
◈ 땅의 축복과 예수님이 점점 더 !!
그러니 정말로 예수님을 만난 사람의 특징이 무엇인고 하니, 땅의 축복과 예수님이 점점 더 멀어지고, 분리되고 있음을 느낀다는 것이다. 하지만 복음을 모르는 자들은 어떻게 되는가? 즉 목사가 시키는 데로 교회에 충성하고 봉사하는 사람들은, 날이 가면 갈수록 땅의 축복과 예수님이 점점 더 밀착이 된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서, "오늘 교회청소를 이렇게 열심히 했는데 복을 받겠지. 가만있자. 다음 주에 우리 아이가 임용고사를 치는데, 교회에 뭐 필요한 것 없나? 참, 피아노가 별로였지. 내 형편에는 좀 무리이지만, 그래도 하나님께는 가만히 있지는 않을 거야" 라고 하면서, 하나님께 무언의 압력을 가한다는 말이다. 이러한 것들이 시간이 가면 갈수록 결탁이 되는데, 점점 더 달라붙어서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 공법을 물 같이 정의를 하수 같이 !!
그런데 이것이 아모스서에서는 어떻게 되는고 하니, 처음에 살펴본 구절인데, 5장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번제나 소제나 화목제 등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공법을 물 같이 정의를 하수 같이 흘릴지로다" 라고 한다는 것이다.
(암 5:24) 오직 공법을 물 같이 정의를 하수 같이 흘릴지로다
소위 사회정의를 부르짖는 자들이 즐겨 사용하는 성경구절인데, 물론 엉터리 인용이지만 말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공법이 무엇인고 하니, '출애굽법(?)' 이라고 할 수 있는데, 공법과 정의는 서로가 같은 말이고 말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 '출애굽법'은 무엇인가?
◈ 공법이 바로 출애굽법인데 !!
이스라엘 민족은 처음부터 자기 땅이 없는데, 그러면 약속의 땅은 무엇인가? 그 땅은 자기들의 땅이 아니고, 그들은 인도자가 계약한 땅이고 자기들은 품꾼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은 주인이 따로 있는데, 그분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고,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그분의 노예라는 것이다. 바로 그때 맺은 주인과 노예간의 법이 바로 '공법' 이라는 말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을 하면서 어린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르고 나올 때, 그때 이스라엘은 몽땅 누구의 소유가 되었는고 하니, '여호와' 라는 분의 소유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것이 출애굽기 19장에 나오는데, 아무튼 그런 내용이 있다는 말이다.
(출 19:5)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출 19:6)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할지니라
◈ 이제 저희들은 주님의 소유입니다 !!
다시 말해서, 이스라엘은 전혀 자기들의 소유가 아니라, 애굽에서 강하게 끄집어낸 하나님의 소유라는 것이다. 그러니 그들은 자기 소유라는 것이 없는데, 땅도 역시 마찬가지이고 말이다. 그리고 약속의 땅은 임대차 계약을 한 땅인데, 이것을 두 글자로 '기업' 이라고 하는데, 혹은 '상속분' 이라고 하고 말이다. 바로 그때 한 계약법이 여기 아모서 5장에 나오는 바로 그 '공법' 이고, 그것은 성격상 '정의법' 이라는 말이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물에서, 즉 애굽에서 건져주셨는데, 그러면 물에서 나와서 "내 보따리를 내놔라" 라는 식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 저는 사나 죽으나 주님의 것입니다" 라고 했을 때, 바로 그때 맺어진 법이 공법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공법이 유지되는 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땅에서 복을 받는다는 것이다. 약속의 땅에서 말이다.
◈ 그런데, 공법이 깨어지게 되면 !!
그런데 이러한 공법이 깨어지게 되면 복을 받지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저주를 받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제대로 공법이 시행되는지, 안 되는지 어떻게 아는가? 그것은 중간 중간에 측정하는 방법이 있는데, 그것을 지금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데, 물론 이런 것도 어려워도 좀 알아놓아야 다른 선지서들도 해석이 되니, 한번 해보자는 것이다.
여기서 출애굽기 22장 21절을 보겠는데, 지금 강의가 조금 어려워도 다시 간추려서 설명해드릴 테니, 일단 지금은 한번 들어보라는 것이다.
(출 22:21) 너는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며 그들을 학대하지 말라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이었었음이니라
◈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라 !!
여기서 하나님께서 뭐라고 하는가?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라. 왜냐하면, 너희들도 애굽에서 같은 나그네였다" 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그네가 왔다고 해서 결코 함부로 대하지 말라는 것이다. 전혀 의지할 곳 없는 힘 없는 나그네라고 해서, 마구 두드려 팬다든지, 또한 종으로 삼으려고 하는, 그런 짓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렇게 나그네를 학대하고 괴롭히면 무엇이 깨어지는가? 자기들도 애굽에서 나그네였을 때에 하나님께서 구원한 공법이 깨어지는데, 그렇게 되면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나그네를 학대한 것을 두고 벌을 내리겠다는 것이다. 공법을 유지하기 위해서 말이다.
계속해서 출애굽기 22장 22절 이하를 보면 공법이 나오는데, 누가 한번 읽어보세요.
(출 22:22) 너는 과부나 고아를 해롭게 하지 말라
(출 22:23) 네가 만일 그들을 해롭게 하므로 그들이 내게 부르짖으면 내가 반드시 그 부르짖음을 들을지라
(출 22:24) 나의 노가 맹렬하므로 내가 칼로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 아내는 과부가 되고 너희 자녀는 고아가 되리라
(출 22:25) 네가 만일 너와 함께한 나의 백성 중 가난한 자에게 돈을 꾸이거든 너는 그에게 채주같이 하지 말며 변리를 받지 말 것이며
(출 22:26) 네가 만일 이웃의 옷을 전당잡거든 해가 지기 전에 그에게 돌려 보내라
(출 22:27) 그 몸을 가릴 것이 이뿐이라 이는 그 살의 옷인즉 그가 무엇을 입고 자겠느냐 그가 내게 부르짖으면 내가 들으리니 나는 자비한 자임이니라
이것이 바로 이스라엘과 맺은 하나님의 공법인데, 27절에 보면 "나는 자비한 자임이니라" 라고 하고 말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 있을 때 그들은 고아였고, 과부였고, 또한 나그네였는데, 바로 그런 자들을 하나님께서 구원해주셨다는 것이다.
◈ 공법의 정신이 없으면 이방민족에 불과 !!
그러한 하나님의 정신이 백성들 사이에 계속해서 살아있으면, 그들은 하나님과 계약을 한 이스라엘 민족이고, 그렇지 않으면 이방민족이라는 것이다. 혈육과는 아무 상관이 없이, 비록 혈육은 아브라함 족속이라고 해도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이방민족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여러분, 어때요? 이런 설명을 들으니 좀 불안합니까? 한번 구원을 받았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만약에 "하나님, 감사합니다" 라고 하면서 까불다가, 하나님께서 "니가 이제 먹고 살만하다고 어려운 사람을 압제했지?" 라고 나온다면, 즉 하나님께서는 그런 자를 고와와 과부로 만들어버린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얼마나 조마조마하겠는가?
* 질문 - 그렇게 되면 인간의 행위가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까?
물론 그럴 가능성이 있는데, 자기가 지키기 위해서 말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러한 말씀을 하시는 취지가 무엇인고 하니, 그렇게 백성들을 겁주기 위한 것이 아니고, 나그네를 해치면 안 된다고 하는 이런 공법조차도 백성들이 그만 잊어버렸다는 것이다. 그런 법이 있다는 것조차도 사람들은 관심이 없다는 말이다.
◈ 하지만, 그 공법조차도 잊어버린 이스라엘 !!
만약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정말로 이런 하나님의 공법이 있음을 안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사람이란 완전하지 못하기에 나그네나 고아를 학대할 수도 있는데, 그러면 그 다음에 회개가 나온다는 것이다. 자기가 잘못했음을 깨닫고는 말이다. 그렇게 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즉 하나님과의 공법에 저촉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아이쿠, 또 실수를 했네. 나그네를 그만 무시했구만. 내가 왜 이렇지? 우리도 애굽에서 나그네였는데, 그만 그 당시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잊어버리고 까불었네. 하나님, 잘못했습니다" 라고 하면서 제사를 드리면 효과가 있는데, 그런데 아모스 당시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런 마음조차도 없다는 것이다.
◈ 약속의 땅에 바알종교가 침범 !!
그렇다면 제사는 왜 드리는가? 오로지 하나님의 축복만을 바라고 제사를 지낸다는 것이다. 즉 제사를 잘 드리면 복을 받는다고, 즉 교회에 충성하면 복을 받는다고 여기니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축복을 바라고 제사를 드리는 것은, 현재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고 있는 그 약속의 땅에 바알종교가 침범한 것과 전혀 다름이 없다는 말이다. 아니, 이미 침범한 것이란 말이다.
◈ 바알종교는. 오로지 땅의 축복을 !!
이런 바알종교를 믿던 자들이 하는 행세가 무엇인고 하니, 땅의 축복을 따내기 위해서 무슨 짓이든 다 한다는 것이다. 엘리야와 갈멜산에서 바알 선지자 450명, 아세라 선지자 400명이 맞붙었는데, 그때 그들이 무슨 짓을 했는가? 복을 따내기 위해서 자기 몸을 찌르고 학대하고 난리를 피웠다는 것이다.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고 하니, 자기가 그 어떤 종교적인 행위를 동원해서라도 신의 마음을 움직이게 해서, 그러한 전능하신 신으로부터 복을 따내고야 말겠다는 것이다. 그러한 믿음이 아닌 집념 같은 것이 약속에 땅에 팽배했는데, 그것이 곧 '바알종교' 라는 말이다. 외국에서 수입된 말이다.
◈ 왕들이 왜 바알종교를 선호했는가?
바로 여기에 누가 동조했는고 하니, 제일 먼저 동조한 것이 왕인데, 제가 이야기하고 싶은 점이 바로 이 부분인데, 이스라엘의 왕과 유다 왕이 제일 먼저 나서서 설쳤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이 왕이라는 작자들이 왜 바알종교를 선호했겠는가?
◈ 이스라엘은 과연 누구 소유인가?
아까 제가 이스라엘은 누구의 소유라고 했는가? 당연히 여호와 하나님의 소유인데, 그런데 막상 왕의 입장에서 보면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소유가 아니라 자기 소유라는 말이다. 이것을 한국교회에 적용하면 그대로 맞는데, 물론 말로는 교회의 머리는 주님이라고 하지만, 그러나 실질적으로 교회는 누구의 소유인가? 바로 당회장 자신이라는 것이다. 물론 장로인 경우도 있겠지만 말이다.
그래서 똑똑한(?) 부교역자가 오면 마구 짓밟아버리는데, 자기 밥그릇을 빼앗는다고 말이다. 꼭 자기보다 못한 닮은 띵한 놈들만 골라서 데리고 있다는 것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죄를 뒤집어 씌어서 쫓아내 버리는데, 즉 말로는 주님의 소유라고 해놓고는, 온갖 추잡한 짓은 다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도 역시 마찬가지인데, 예를 들어서, 어떤 교인이 식당을 운영하는데, 평소에는 그 식당을 주님의 것이라고 해놓고는, 그런데 누군가가 모함을 해서 그 식당을 빼앗으려고 한다면 그냥 가만히 있겠는가? 자기 것을 빼앗아 간다고 난리를 친다는 것이다.
◈ 강대국의 공통점은, 바알종교 !!
왕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인데, 나라가 자기 것이기 때문에 제대로 관리를 하고 지켜야 하는데, 그런데 이스라엘 주위에 어떤 나라들이 있는가? 왜 그렇게 잘사는 강대국들이 많은지 말이다. 그런데 자기보다 강한 이방나라들이 한결같이 공통점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바알종교를 믿는다는 것이다.
이것이 성경에 다 나오는 내용인데, 그래서 왕이 그들이 왜 바알종교를 믿는지 조사를 해보니, 이들이 바알 신으로부터 축복을 따내기 위해서, 시키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맹신을 하더라는 것이다. 그러니 그 맹신의 마지막 끈을 왕이 꽉 잡고 있으면, 백성들은 자기 마음대로 조종할 수가 있고 말이다.
◈ 교회부흥의 비결은, 바알종교 따라하기 !!
이것을 더 쉽게 이야기하면, 아줌마들이 다라이(?)를 들고 왜 새벽기도회에 나오겠는가? 그날 장사가 잘 되게 해달라고 빌기 위해서 오는데, 그렇다면 그러한 요구와 희망사항의 끝을 누가 쥐고 있으면 되는가? 그것을 당회장 목사가 쥐고 있으면, 교인들이 목사가 시키는 데로 맹종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교회는 날로 부흥이 되고, 평안해지고 말이다.
왜냐하면, 그렇게 자기가 신에게 비는 것을 누가 정당화시켜주는고 하니, 자기 교회의 목사가 설교를 통해서 그렇게 정당화시켜준다는 말이다. 목사가 말이다. 즉 "여러분, 저렇게 새벽마다 열심히 기도하는데, 하나님께서 어떻게 복을 주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목사인 저도 엄청나게 감명을 받았습니다" 라고 하면서 말이다.
그렇게 되면, 그런 아줌마들이 점점 더 늘어나게 될 것이고, 그러면 그런 교회는 평안하고 번창하게 되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구약의 이스라엘 주위의 나라들처럼, 그렇게 '강대국'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 하지만,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자꾸 브레이크를 !!
그런데 이스라엘이란 나라는 여호와 하나님이 쥐고 있기 때문에, 강대국이 되는 것이 아니라 나라가 점점 더 쪼그라든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왕이 조금 무엇을 하려고만 하면, 어디선가 선지자가 불쑥 나타나서 내정간섭을 하는데, "왕이시여,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라고 말이다.
그렇게 이스라엘은 자꾸만 여호와 쪽에서 브레이크를 건다는 말이다. 그렇게 되니 나라꼴이 어떻게 되겠는가? 주위에 있는 강대국보다 나라가 힘도 없지만, 전혀 평안하지도 않고, 오히려 분잡스럽다는 것이다. 또 잘난(?) 선지자들은 왜 그리 많은지, 수시로 튀어나온다는 말이다.
◈ 언약의 나라 특징은?
이방나라는 어차피 저주받은 나라이니 하나님께서 그냥 두시는데, 그러나 이스라엘은 왕이 제 아무리 자기 나라라고 해도 이 이스라엘은 언약의 나라인데, 즉 여호와 하나님이 친히 관리를 하시기 때문에, 죄가 등장할 때마다 선지자를 보내서 먼저 선지자를 죽게 하고, 그 다음에는 강대국들이 쳐들어와서 이스라엘에게 말할 수 없는 수모와 핍박과 고난을 받게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나라가 쪼그라들면 다시 그들이 회개를 하는데, 그러면 좀 봐주었다가, 또 다시 죄가 등장하면 선지자를 보내고, 그렇게 해서 또 주위 나라들로부터 핍박을 받도록 하고 말이다. 그것이 바로 지금 우리가 공부하고 있는 구약 선지서의 내용인데, 이런 패턴이 계속해서 반복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무식한(?) 민중들은 신학이 무엇인지, 말씀이 무엇인지에는 관심이 없는데, 만약에 집안에 우환이 있으면 새벽기도회에 나가지 말라고 말려도 나간다는 것이다. 또 기도는 얼마나 간절히 하는지 말이다. 그러다가 집안에 문제가 사라지면 손을 털어 버리고 말이다.
◈ 왕이시여, 그리하면 안 돼 !!
그것이 바로 이스라엘의 민중들인데, 그러니 선지자가 민중들에게도 이야기를 하지만, 주로 누구에게 하는가? 왕을 찾아가서 말하게 되는데, 즉 "왕이시여, 왕은 그렇게 하시면 안 됩니다. 어리석은 백성들을 바른 길로 이끌어주어야 할 왕께서 마음을 바로 잡으소서" 라고 하니, 그런 충고를 왕이 받아들이는가? "우씨, 이게 어디서 까부노?" 라고 하면서 작살을 낸다는 것이다.
선지자들 중에서 제일 마지막 선지자가 누구인고 하니까, 신약의 세례요한인데, 세례요한에 누구에게 죽었는가? 가만히 있다가 재수가 없어서 교통사고로 죽었는가? 바로 그 당시 왕에게 그만 목이 잘려 죽었다는 것이다. 그러면 왕이 왜 그렇게 했는가? 그것은 왕에 대들었기 때문인데, 그것이 바로 선지자의 길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민중들은 모르는데, 누가 하나 죽어야 겨우 눈치를 채고 말이다.
* 질문 - 그런데 세례요한은 다른 선지자들과는 달리 일종의 스캔들(?)로 죽은 것이 아닌가요?
그건 스캔들은 아니고, 신약시대이지만 예수님께서 다 이루시기 전인 십자가 사건 이전이기 때문에 세례요한이 그렇게 했는데, 즉 계속해서 구약적인 바탕을 이어나간다는 것이다. 그래서 세례요한이 "이 땅은 하나님 땅인데, 왜 헤롯대왕 당신은 하나님의 어긋나게 하는가?" 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죽임을 당한 것이지, 스캔들로 죽은 아니고 말이다.
하지만 그것을 민중들은 모르는데, 구약에서 다윗이 골리앗을 죽였을 때 민중들이 뭐라고 했는가? "사울은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다" 라고 했는데, 그러면 민중들은 다윗을 따랐는가? 전혀 아니라는 것이다. 다윗 쪽에는 겨우 500명 정도만 있었다는 말이다. 오히려 다윗을 보면 사울에게 고자질해서 신고했다는 것이다. 물론 포상금이 두둑해서 그런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 사시기에 나오는 장로들의 특징은?
그리고 사사기에 보면 민중들을 대표해서 누가 또 그렇게 골통 짓을 했는고 하니, 바로 '장로'들인데, 그래서 사사기를 설교하기가 참 힘든다는 것이다. 저도 이 사사기를 설교하기가 얼마나 힘이 들었는지 모르는데, 계속해서 장로들이 헛된 짓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계속해서 말이다.
그러므로 그 당시의 장로나 오늘날 한국교회의 장로나 그야말로 서로가 판박이인데, 그들의 공통된 특징은 무엇인고 하니까, "이것은 누가 뭐라고 해도 내 나라, 내 교회이다" 라는 것인데, 즉 하나님의 소유가 아니라 자기 것이라는 말이다. '나의 것' 말이다.
◈ 아모스서를 다시 정리하면 !!
다시 말씀드리지만, 아모스 5장에서의 공법은 출애굽 당시의 정신인데, 그러니 "오직 공법을 물 같이 정의를 하수 같이" 라는 것은, 다른 말로 표현하면, "니가 왜 출애굽의 정신을 잊어버렸는가?" 라는 것이다. 그러면 출애굽의 정신이 무엇인가? 이스라엘이란 나라는 하나님이 다스리는 나라이지, 인간이 자기 몫의 축복을 챙기는, 그런 나라는 아니라는 말이다.
◈ 바알종교에 대해서 !!
그렇다면 하나님께 제사를 드려서 복을 받겠다는 것은 어디에서 배운 것인가? 그것은 바로 바알종교에서 배운 것인데, 그러면 바알종교는 도대체 어떤 종교인가? 아까 제가 바알종교를 '땅의 종교' 라고 했는데, 그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인가?
어떤 종교이든지 다 나름대로 교리가 있는데, 그런데 이 바알종교는 놀랍게도 그 교리가 '부활의 종교' 라는 것이다. 우리는 예수님만이 부활을 하셨으니, 기독교만을 부활의 종교라고 생각하지만, 그러나 그것이 아니라 말이다.
◈ 바알종교는 부활의 종교 ??
그렇다면 이 바알종교가 어떻게 해서 부활종교인가? 그것은 '땅의 자생력' 때문이라는 말이다. 이게 무슨 말인고 하니, 즉 땅에서 태어나서, 땅에서 올라와서, 땅에서 살다가, 땅으로 돌아가는데, 그렇게 해서 땅에서 다시 태어나고 말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일종의 윤회인데, 그런 의미에서의 부활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그 땅은 죽은 땅이 아니라, 생생하게 살아있는 땅이라는 말이다.
이 바알종교의 교리는 어떤고 하니까, 바알 신은 땅의 생산물을 관장하는 신이라는 말이다. 즉 땅은 땅의 생산물을 부활시키는데, 바로 바알 신이 이 땅을 관장하는 신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땅이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되었다가, 또 다시 봄이 돌아오는 것은, 그냥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라 땅속에 뭔가가 있기 때문에 그렇다는 말이다.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땅속에 그런 신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나느냐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봄이 오면 그냥 꽃이 피는 것이 아니라, "야, 봄이다. 빨리 꽃들은 피어나라" 라고 하는 신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들이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땅에다 생명의 기운을 북돋아 넣어주게 되면, 그것이 바로 종교의식인데, 그렇게 하면 바알 신이 힘을 내어서 이 땅을 더욱 더 풍요롭게 해준다는 것이다.
◈ 바알은 삼신할매 ??
그런데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 땅 위에 사람이 사는데, 곡식이 풍성하다는 것은 열매를 많이 맺는 것인데, 그러면 가정이 잘 되는 것은 무엇인가? 물론 자식을 많이 낳는 것인데, 그러니 이것은 다산(多産)의 신인데, 그런데 죽은 여자의 몸이 임신이 되려면, 죽은 데서 살리는 힘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은 바알 신이 관장하는 자기 전문분야라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삼신할매' 라고나 할까? 아무튼 그렇다는 말이다.
사람들이 이 땅에서 왜 고통을 받고 몸이 아픈가? 그것은 생명의 기운이 엷어져서 그러한데, 그래서 그 생명을 기운을 회복하기 위해서 아이들을 이용하는데, 왜냐하면, 아이들은 죽음의 기운이 아니라 생명의 기운이 펄펄 넘치니 말이다. 그래서 갓난아이의 배냇저고리를 시험을 칠 때에 가지고 가기도 한다는 것이다. 모르던 문제까지도 새로운 생명의 기운을 받아서 잘 풀라고 말이다.
지금 이런 이야기가 참으로 유치하고 우습기까지 한데, 특히 요즘 같은 과학시대에 그런 것이 어떻게 말이 되느냐고 할지 몰라도, 그러나 그렇지 않다는 말이다. 사람은 자기가 초조하고 불안할 때, 그런 위기를 탈출할 수 있는 새생명을 얻고자 한다는 것이다.
* 질문 - 그러면 이 바알 신이 파생되어서 잡신 속에 들어간 것인가요?
파생되어서 잡신 속에 들어간 것이 아니라, 여러 잡신들이 하나로 뭉쳐서 바알 신이 되고, 바알종교가 되었다는 말이다. 지금 현재 이 시대에는 인간의 기본본성이 그런 것이고 말이다. 구약의 전체사상이 제대로 파악이 되지 않아서 그런 질문이 나오는데 말이다.
◈ 여호와가 아니면, 바알 !!
다시 말해서, 바알종교에 대해서 "나는 그런 바알종교를 믿지 않습니다" 라고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하나님께서 이렇게 바알종교를 등장시킨 것은, "여호와인가? 바알인가?" 라고 하는, 그렇게 둘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지, 여호와도 아니고 바알도 아닌, 즉 제3의 중립지대는 없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구약을 보면서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하는 것은, 언약적인 백성이 있으면, 그 외에는 모두가 언약밖에 있는 백성이라는 것이다. 즉 저주도 받지 않고 복도 받지 않는 것은 없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서, 노아방주 안에 들어가면 살고, 들어가지 않으면 죽는 것과 같다는 말이다. 그렇게 언제나 둘 중에서 하나이지, 다른 지대가 없다는 말이다.
* 질문 - 그러니 여호와가 아니면 다 바알이라는 말이지요?
당연히 그러한데, 물론 여호와 하나님 말고 다른 신의 이름은 바알로 하든지 아세라로 하든지, 그것은 얼마든지 다를 수가 있지만 말이다. 아무튼 여러 민족이 섞이게 되면, 그 중에서 제일 잘되는 민족의 신을 따르게 된다는 것이다.
◈ 미국만 가면 왜 예수쟁이가 ??
우리나라 사람들이 한국에서는 교회에 나가지 않았어도 미국에 이민을 가면 다들 교회에 다니는데, 왜냐하면 미국이라는 나라가 한국보다 잘살기 때문에 자연히 그들이 믿는 종교를 따른다는 것이다. 물론 교회에 가서 정보를 얻고 어울리는 재미도 있지만 말이다.
또한 우리나라 사람이 아프리카에 가서 사업을 해서 잘살게 되었다면, 거기에 일하던 노동자들은 그 사장의 믿는 외래종교를 따르게 되는데, 사장이 교회에 다닌다면 같이 나오고 말이다. 그 이유가 바로 사장이 자기들보다 잘살기 때문에 그렇다는 말이다.
그것이 이미 구약에 다 나오는데, 룻기도 그렇고, 기생 라합도 그렇고, 심지어 모세도 역시 그렇다는 말이다. 사람들은 누군가가 힘을 가지고 있으면, 그 사람의 종교에서 그런 힘이 나온다고 보고, 그런 사람의 종교를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 구약은 심리학 교과서 ??
구약을 공부를 해보면, 사람의 심리를 얼마나 잘 지적해주고 있는지 모르는데, 예레미야 선지자 같은 경우에는, 그가 여호와를 믿으라고 하니 백성들이 뭐라고 하는고 하니, "우리가 여호와를 믿을 때는 하는 일마다 꼬이고 했는데, 그런데 바알 신을 믿으니 그렇게 잘될 수가 없다. 그러니 왜 우리가 다시 여호와를 믿는가?" 라고 한다는 것이다.
흔히들 "절에 다니다가 교회에 나가면 집안에 우환이 생긴다" 라고 하는데, 그것이 바로 우리 인간의 본성이라는 말이다. 즉 인간본성은 힘을 따라가게 되어있는데, 그러니 백성들이 하는 말이, "자꾸 우리에게 여호와를 믿으라고 하지 말고, 우리도 저기 강대국처럼 바알 신을 믿으면 되지 않는가?" 라고 한다는 것이다.
이런 신이 구약에 바알 신 외에도 바벨론의 마르둑 신이 있고, 또 앗수르의 신도 역시 그렇고 말이다. 그러니 그런 것을 보고는, "아하, 우리가 저런 강대국의 신을 믿으면, 우리도 강대국이 될 수 있구나" 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아무튼 인간은 그런 희망을 가진다는 말이다.
◈ 인간의 마음은 복을 따라가는 복바라기 ??
그러니 인간은 신을 선택할 때 그 기준은, 그 신이 얼마나 자기에게 복을 주느냐에 달렸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호와를 믿으면 하는 일마다 다 꼬이는데 어떻게 믿느냐는 말이다. 그렇지 않는가? 어떻게 여호와를 믿고 따르느냐는 것이다. 그러므로 믿으라고 말로만 하지 말고 일단 복을 달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민중들의 모습은 어떠한고 하니, 여호와가 복을 주면 여호와를 믿다가, 또 부처가 복을 더 많이 주면 부처에게로 간다는 말이다. 그것이 바로 인간의 본성인데, 그 어떤 종교를 보아도 다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복을 주는 쪽으로 몸과 마음이 따라간다는 말이다.
◈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알 식의 여호와를 !!
우리가 보기에는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알종교를 믿어서 벌을 받는 줄 알지만, 그런데 그들은 바알종교가 아니라 자기들은 여호와를 믿었는데, 하지만 문제는 그 알맹이가 곧 바알종교라는 것이다. 즉 그들은 바알 식의 여호와를 믿었다는 말이다. 껍데기는 여호와인데 알맹이는 바알이라는 말이다.
다시 말하지만, 이 바알은 '자생력' 인데, 즉 자기에게 생명을 부여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철학에서는 '토지기계' 라고 하는데, 그 당시는 그렇게 땅이 중심이었는데, 물론 지금은 자본이 중심이지만 말이다. 즉 비가 오지 않아서 흉년이 들면 나라가 망하고, 풍년이 들면 나라가 잘살게 되고 말이다. 왜냐하면, 그 당시에는 상공인들이 없어서 전적으로 토지에 목숨을 걸고 의존해서 살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토지를 지배하는 신이야말로 절대적인 신이었는데, 그런데 이런 토지의 신이 작물을 키워주니, 아들이 없는 집에서는 어떻게 하겠는가? 아들이 없으면 제사를 드리지 못하는 것이고, 그렇게 되면 그냥 집안이 몰락하고 마는데 말이다.
◈ 조상제사는 인류의 보편적 현상 !!
여기에서 제사는 조상의 은덕을 바라는 것인데, 바알종교에서 조상은 땅 밑에 있는데, 그것을 '음부'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은 죽으면 조상이 되고, 이 조상이 땅 밑에서 복을 빌어주는데, 단 조건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제사를 드릴 경우에만 그렇다는 말이다. 그래서 이 조상제사는 모든 인류의 보편적인 현상인데,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말이다.
그러니 그 자체가 바로 바알종교인데, 어차피 땅에서 나왔으니 땅의 말을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하나님을 원망한 것이, 왜 우리가 지금 땅에 속해있는데 땅의 작물을 주지 않느냐는 것이다. 죽으라고 광야만 돌아다니게 하고 말이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만나를 주셨는데, 그러나 그들은 그런 만나보다는 자기들이 땅에서 키운 음식을 원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만나는 하늘에 속한 음식이 아닌 말씀인데, 즉 말씀으로 살라는 것이다. 그러니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원망할 수밖에 없는데, 눈에 보이고 잡히는 것이 없다는 말이다.
◈ 당신들은 무슨 재미로 예수를 믿나?
복음을 아는 자들에게 기존 교인들이 제일 비난하는 것이 무엇인고 하니까, "니 복음을 알고 얼마나 벌었나?" 라는 것인데, 자기들은 교회에 열심히 다니면 돈도 잘 벌고, 병도 낫고, 자식이 공부도 제법 잘하는, 그런 실적이 있는데, 그런 재미로 교회에 다닌다는 것이다.
* 교인 : 당신은 복음을 알고 무슨 변화가 있어요?
* 성도 : 그냥 그렇지요.
* 교인 : 돈이 좀 벌리고, 자식이 공부를 잘하던가요?
* 성도 : 그런 것 같지는 않은데, 워낙 경기가 안 좋아서 말이죠.
* 교인 : 그러면 무슨 재미로 교회에 다녀요?
* 성도 : 하나님의 십자가 약속을 믿는 재미이지요.
* 교인 : 그런 십자가의 약속을 믿으면 수입이 더 보장이 되어야 하지 않나요?
* 성도 : 약속과 수입은 아무런 상관이 없고, 하늘의 시민권만 있으면 돼요.
* 교인 : 시민권 같은 소리하네.
* 성도 : 그게 중요한데.
아무튼 그렇게 대화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기존교회에서 뭐라고 전도하는가? "우리 교회에 와서 기도를 해보세요. 아픈 몸도 다 낫습니다"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건 미신인데" 라고 하면서 돌아서는데, 그런데 몇 달 뒤에 자기 아이가 아파서 사경을 헤맨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별 수 없다는 것이다. 용한(?) 교회에 가서 빌어야지 말이다.
그러니 현대과학보다 더 센 것이 땅의 힘인데, 즉 바알종교라는 것이다. 의사들도 역시 빌고 하는데, 수술을 하기 전에 환자가 잘 낫게 해달라고 말이다. 우주선을 쏘아 올리면서도 돼지머리를 모셔놓고 고사도 지내고 말이다. 그것이 바로 인간의 한계라는 것이다.
◈ 바알종교는 과연 음란한가?
그리고 흔히 이 바알종교를 두고서 음란하다고 하는데, 그것은 바알종교의 성직자들이 남자와 여자로 구별되는데, 왜냐하면 남자 사제들은 여자 신도들을 상대하고, 여자 사제들은 남자 신도들을 상대한다는 것이다. 물론 선지자들은 이런 자들을 두고 '창기' 라고 했는데, 거기에는 '거룩한 자' 라는 의미가 포함되어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바알의 성직자들은 자기들의 어떤 육체적인 쾌락을 위해서 그런 짓을 한 것이 전혀 아니고, 그것이 곧 자기들의 교리인데, 왜냐하면 바알을 찾아온 자들은 다 뭔가 땅의 생산물을 원해서 온 것인데, 그런데 어떻게 해야 생산물이 생기는가?
이 세상에서는 남자와 여자가 서로 엉겨 붙어야(?) 자식이 생기듯이, 그러한 방식으로 바알 신을 자극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 바알 신이 자극을 받아서 보다 많은 생산물을 땅에 베풀어준다는 것이다. 바로 그것을 얻기 위해서 남자와 여자 성직자들이 신도들과 함께 어울려서 거룩한(?) 행위를 한다는 것이다. 성적으로 음란한 것이 아니고 말이다. 물론 그런 것을 이용해서 엉뚱한 것에다 마음이 있는 놈들도 있겠지만 말이다.
◈ 바알종교는 인간의 본능 !!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렇다면 왜 이스라엘 백성들의 대부분이 다 이 바알종교를 따라가게 되었는가? 아무리 믿으라고 해도 사람은 눈에 보여야 믿는데, 복음을 전하는 목사들이 제일 답답해하는 부분이 이것인데, 복음을 전하면 교인들은 뭔가를 보여주면 믿겠다고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인간은 보이면 믿고, 보이지 않으면 믿지 않는다는 말이다. "주님의 십자가를 생각하세요" 라고 해도,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게 인간은 뭔가를 체험하고 느껴야 하는데, 그런 체험을 부흥회 등에 가서 박수를 치고 뜨겁게 되려고 하는데, 물론 찬양집회도 그렇고 말이다. 그것은 초대교회인 고린도 교회도 역시 그러했는데, 꽹과리를 치면 음파가 정기적 리듬을 만드는데, 그것이 물로 가득한 세포를 요동치게 만드는데, 그렇게 해서 세포가 흥분하면 활성화가 되고, 세포가 그렇게 활성화가 되면 고통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 순간만큼은 과거의 모든 걱정근심이 다 보류가 되면서 황홀경에 빠진다는 것이다. 그것은 느낌이 그런 것이 아니라, 실제 물리적으로 그렇다는 말이다. 박수를 쳐도 손바닥에 열이 나고, 그러면 혈액순환이 잘 되고 전에 없던 도파민이 형성되면서, 평소에 아픈 곳도 그만 낫게 된다는 것이다. 박수를 쳐서 세포가 활성화되도록 해주면 말이다.
◈ 그것이 성령이 역사 ??
그렇게 세포가 활성화가 되면서 아픈 허리도 낫고, 제대로 걷지도 못한 사람이 일어나서 걷게 되는데, 그런데 사람들은 그것을 두고서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믿음으로, 병자가 나았다" 라고 한다는 것이다. 물론 목사가 그렇게 뻥을 치는 것이지만 말이다.
그런데 그런 것보다도 더 확실한 것이 바로 '성(性) 관계' 인데, 이것은 이 땅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엑스타시한 것이니 말이다. 성직자들은 한 사람만 좋아하면 안 되고, 모든 백성들이 다 좋아할 수 있어야 하는 요소를 찾아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목회자들도 마찬가지인데, 기존의 교인들뿐만 아니라 처음 온 사람들이라도, 즉 누구든지 다 좋아할 수 있는 교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성경에서 말씀하기를(어디?), 사람들은 보는 것을 원하고, 또한 느끼는 것을 원하는데, 그런데 만약에 그렇게 되었다면, 인간은 그것을 신의 이름과 결부시키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인간들에게는 그런 본성이 있다는 말이다.
◈ 이제 가까운 '산당'을 방문하시면 됩니다 !!
그렇다면 이스라엘의 선지자들은 무엇을 했는가?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은 백성들이 여호와를 이러한 방식으로 믿는 것을 인정하고 허용을 해줌으로 말미암아서, 그런 장소를 두고 '산당(山堂)' 이라고 하는데, 그것이 산마다 있기에 산당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요즘 개척교회가 많은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 당시에도 그런 곳이 산마다 있었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왜 산당으로 갈 수밖에 없는가? 어떤 가정에 만약에 아이가 없으면 부부는 당연히 아이를 낳고 싶은데, 물론 그것을 욕심이라고 하기는 좀 그렇지만, 그러나 막상 아이가 태어나게 되면 이제 또 다른 것에 욕심이 생긴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노점상을 하는 자들의 소원이 무엇인고 하니, 그냥 조그마한 장소에서 마음놓고 장사를 하는 것인데, 하지만 막상 그런 가게에서 장사를 한번 해보라는 것이다. 과연 그것으로 만족이 되는지 말이다. 더 크고 장사가 잘되는 가게를 갖고 싶지 말이다.
◈ 산당은 불경기가 없어 !!
아무튼 산당이 그렇게 많았는데, 그렇게 산당에 자기 소원을 빌려고 사람들이 모여들어서 장사가 잘 되었는데, 물론 그것을 최종적으로 관리하는 것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관장하지만 말이다. 그런 수입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이다. 즉 본점은 예루살렘에 있고, 각 지역에 가맹점들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교회도 물론 그렇겠지만, 아마 절에서 그러한 수입들이 더 많았지 싶은데 말이다. 그렇게 되면 왕이 기분이 좋은 것이, 그런 것을 통해서 백성들의 마음이 하나가 된다는 것이다. 마치 월드컵 4강에서 그러했던 것처럼 말이다.
◈ 우리는 끈끈이 가족 ??
지금 복음을 아는 사람들이 한국교회를 그렇게 비판을 하고, 그것은 교회가 아니라고 목이 터지라고 외치고 해도 그들이 듣지 않는 이유가, 이미 그들은 대대로 그런 바알종교를 통해서 자기들의 생계를 유지하고, 교회 안에서도 연결이 되어서 사돈의 팔촌으로 그렇게 되어있고, 또 장사를 하면 서로 팔아주고 하니, 그래서 식당이나 장사를 하는 사람은 제일 큰 교회를 찾아서 등록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만약에 그렇게 지적을 하는 것을 받아들이면, 그것은 자기 손가락으로 자기 눈을 찌르는 것이 되고 만다는 말이다. 살아가면서 만나는 사람들이 다 그렇게 연결이 되어있는데, 학원을 하더라도 다 오는 학생들이 집사 딸이고 장로 딸이라는 말이다. 그렇게 서로가 아주 친밀하고 끈끈하게 맺어져있다는 것이다.
◈ 지금부터 만 12세 이하는 金 !!
사람이 성(性) 관계를 맺으면 왜 기분이 좋은고 하니, 그것은 육체가 접촉이 되기 때문인데, 사람은 그렇게 서로 친밀하게 관계를 맺으면서, 즉 서로 서로 밀어주고 당겨주면서, 그런 육체적인 접촉 가운데서 살아가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런 육체적 접촉의 가장 적나라한 모습이 부부이고, 그래서 그들은 남들과 달리 뜨거운(?) 생활을 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교회에서 가장 신체적 접촉이 되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이 곧 안수인데, 그러니 안수를 받더라도 남자들은 남자목사가 해주는 것보다는 여자목사가 해주는 것을 은근히(?) 바란다는 것이다. 물론 거의 여자목사가 없으니 잘 드러나지 않지만 말이다. 혹시 여러분 중에서 여자목사에게서 부흥회 때 안수를 받은 경험이 있는 분이 있어요?
* 질문 - 그러면 지금은 남자목사들이 많아서 교회에 여자들이 많은가요?
오랜만에 좋은 질문을 했는데(ㅋㅋ), 교회의 남녀구성비를 보면, 여자목사가 왜 거의 없는고 하니까, 물론 겉으로는 교리적으로 어떻고 하지만, 그러나 실제 교회에서 여자 숫자가 엄청 많으니 상대적으로는 남자목사가 효율적이라는 것이다. 여자가 목회를 하면 여자 교인들이 별로 오지 않으니 말이다. 물론 남자들은 나오고 싶어도 마누라 눈치가 보여서 못 나오는데, 그래서 교회에서 목사를 뽑을 때는 인물을 본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남자는 여자를 땡기고 여자는 남자를 땡기는, 그러한 짝짓기 본능은 종교라는 형태에서 조금 다르게 나타나는 것뿐이지, 인간의 그런 욕망은 여전히 우글거린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인간은 땡기는 대로 산다", 혹은 "기분 따라 산다" 라는 것인데, 즉 하나님께서 주신 진리를 따라 살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 죄란, 서로 사이좋게 사는 것 !!
그러한 상태가 보편화된 것이 바로 이스라엘을 제외한 주위에 있는 이방나라의 특징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스라엘 나라조차도 이방민족들과 서로 교류가 되면서 엉망진창이 되었는데, 그것을 두고서 한 글자로 '죄'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니 하나님께서 가만히 있겠는가? 이방민족들이야 어차피 지옥에 갈 놈들이니 그냥 둘 수도 있지만, 그러나 이스라엘의 주인은 여호와 하나님이니 전혀 입장이 다르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보내는데, 그러면 그 죄가 가만히 있겠는가? 회개는 고사하고 하나님께서 보낸 선지자마저도 죽인다는 것이다.
◈ 십자가 사건이란?
그렇게 해서 하나님께서 보낸 자마다 모두 다 죽여버리는데, 그것이 마태복음 21장에 나오는 포도원 농부의 비유인데, 결국은 하나님께서 직접 육신을 입고 오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지상에서 발생한 것이 바로 십자가 사건인데, 그러므로 성도는 이 땅에서 그 십자가만을 증거하면 된다는 말이다.
여기에서 십자가를 증거한다는 것은, 자기 행동을 똑바로 하라는 말이 아니라, "이렇게 사나 저렇게 사나 우리는 죄인입니다" 라는 것을 증거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런 십자가가 우리를 직접 인도하지 않으면 우리는 전혀 희망이 없는데, 과거가 문제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 성령께서 날마다 우리를 그렇게 인도하신다는 것이다.
우리는 사실상 날마다 바울이 아닌 바알신도인데, 그런데 그 아모스에 나오는 공법이 우리 자신들이 바알신도임을 알도록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주여, 제가 잘못했습니다. 제가 죄인입니다" 라고 하는, 즉 성도의 입에서 터져 나오는 고백이라는 말이다.
◈ 이근호, 니가 바로 바알신도이지?
지금은 누가 선지자인가? 물론 예수님이 선지자인데, 그래서 예수님이 아모스 선지자가 되어서 "어이 이근호, 니가 바로 바알신도이지?" 라고 하면, 그러면 "예, 제가 맞습니다. 용서해주세요" 라고 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택한 이스라엘 백성답다는 것이다.
그런데 십자가 복음을 전하는데, "제가 그것을 믿으면 돈이 되나요?" 라고 한다면, 그것은 그야말로 맛이 갔다는 것이다. 하지만 목사들에게 십자가 복음을 전하면 그들이 뭐라고 하는가? "말은 맞는데, 그렇게 해서 교회가 부흥이 되나?"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들이 하는 짓거리가 아모스 시대의 바알종교와 도대체 무엇이 다르냐는 말이다.
우리가 이렇게 구약을 공부하면서, 잘못하면 이 구약을 옛날 이야기라고 생각하기가 쉬운데, 그러나 그것이 아니라 모두가 다같이 아담에 속한 인간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그것을 구구절절이 이 아모스 선지자가 다 밝혀주고 있다는 말이다.
◈ 껍데기는 바뀌어도 알맹이는 계속해서 !!
이 아모스서를 더 깊이 공부하려고 하면, 지금까지는 아모스서의 겉장만 대충 이야기했는데, 그러면 이 안에는 무슨 내용들이 들어있는고 하니, 이렇게 아모스 시대에까지 들어오게 된 구정물(?)이, 즉 그 이전에 예레미야나 이사야 시대에서 어떻게 그런 것이 들어오게 되었는지, 그런 것들이 들어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또 예레미야나 이사야 시대는 왜 그렇게 되었는지도 살펴야 하고 말이다.
물론 그것은 구약학자들이 전공해야 되는 자기들의 전문분야인데, 왜 이러한 분야가 재미있는고 하니, 그런 것을 공부해보면, 껍데기는 바뀌어도 그 알맹이는 계속해서 자손 대대로 이어져 간다는 것이다. 즉 아담의 죄가 계속해서 나온다는 말이다.
◈ 사도바울 - 우리는 모두는 '아담 안'에 !!
이것을 사도바울은 뭐라고 하는가? 로마서 5장에서(?) "우리 모두가 아담 안에 속했다" 라고, 그렇게 구약전체를 한 문장으로 이야기한다는 말이다. 그러니 예수님의 의가 와서 구원을 받는 것이지, 결코 우리 인간의 행함으로 받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는 것이다.
(롬 5:14)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 위에도 사망이 왕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이라
그러므로 이렇게 아모스 선지자가 '공법'을 이야기하는 것은, 우리들을 보고서 "너희들은 완벽해야 돼" 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지금 니들이 그런 입장에 처해있지?" 라고 하는 것인데, 그러면 우리는 무엇이라고 해야 하는가? "예, 그렇습니다. 맞습니다" 라고 하면 된다는 것이다. 사실상 우리는 언제나 그렇다는 말이다.
* 질문 - 목사님, 여호와와 바알이 비슷한 면도 있는 것 같은데요? 즉 여호와는 인간을 선택하지만, 인간들은 바알을 선택하고 말입니다.
◈ 인간들이 사는 것 자체가 바알종교 !!
우리 인간들이 바알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들은 땅 위에서 살아가는데, 그러니 하늘이 보이고 천사가 보이는 것이 아니라, 그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땅이라는 말이다. 즉 농사를 지으면서 매일같이 땅만 쳐다보고 살아가니 말이다. 아무리 하나님을 불러도 그것은 추상적이고, 정말 하나님이 있다면 지금 자기가 짓고 있는 배추농사를 잘되게 해달라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농부들의 솔직한 고백인데, 그러니 목사가 심방을 가서 기도를 해도, 농사가 잘되게 해달라고 해야 좋아한다는 말이다. 또 공장을 짓고 개업예배를 드리게 되면, 당연히 그 공장이 잘 돌아가도록 기도를 해주는데, 교인들이 그것을 또 원하고 말이다. 그러니 사실상 하나님은 그냥 허릿한(?) 하나의 관념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 질문 - 그러니 인간들을 총칭해서 그냥 바알 신이라고 하면 되나요?
물론 그러한데, 그것을 학문적으로 표현하자면, '여호와를 모르는 바알' 이라고 하면 된다는 것이다. 물론 여호와를 아는 그런 놈들도 역시 마찬가지인데, 그런데 선지자를 보내서 간섭해서 회개하도록 하신다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전혀 완전한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우리를 간섭하셔서 바알이 아닌 주님을 따르도록 하신다는 것이다.
십자가에 달린 강도가 어떻게 구원을 받았는가? 주님의 간섭하심으로 인해서 받지 않았는가? 그런데 택한 백성이 복음대로 살지 않으면 징계를 해서 깨닫도록 하시는데, 결단코 완전하다는 말이 아니라, 그렇게 회개하는 인생을 살도록 하신다는 것이다. 즉 사생아가 아니라 자기 아들이기 때문에 간섭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 우리의 못남과 주님의 잘남을 !!
그러므로 여기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우리를 그렇게 구원받게 하신 것은 우리가 예쁘고 잘나서가 아니라, 바로 그러한 우리의 죄들을 까밝히고 이야기하라고 말이다. 비록 우리들의 인생이 일장춘몽이지만, 그러나 살아있는 동안 그 현장에서 눈을 부릅뜨고 우리 못남과 주님의 잘남을 증거하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아하, 저것이 아니구나" 라는 것을 깨닫고, 또한 기회가 주어지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해주시는 이것이 주님의 사랑입니다" 라는 것을 이야기하라는 말이다. 그것이 바로 사도행전에 줄줄이 나오는 예수의 증인된 자들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또한 그것이 오늘 공부한 아모스서의 내용이고 말이다.
(행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 다시 아모스서를 정리하면 !!
아무튼 누군가가 "저, 혹시 아모스서가 뭡니까?" 라고 묻는다면, 이 아모스서는 선지자도 아닌 사람이 선지자 노릇을 했는데, 그 내용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 하나님이 아니라 바알종교를 믿고 있었음을, 거기에 대해서 지적했다고 하면 된다는 것이다.
아모스 선지자는 그들의 어떤 점을 지적했는고 하니,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을 할 때 그 정신을 모두 잊어버리고, 이 땅에서 복을 따내기 위해서 하나님께 절기를 지키고 제사를 드리고 찬양을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백 날을 해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는다는 것이 바로 아모스서의 특징이라는 것이다.
* 질문 - 그러면 구약에서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이 드리는 제사를 받지 않았다는 말입니까? 저는 구약성경을 읽어보면서, 물론 하나님께서 화를 낸 적도 있지만, 대부분 받는 것으로 보았는데 말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제사는 받지 않았는데, 하나님은 제사를 받는 것이 아니라 오직 상한 심령만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들이 제사를 드리든지, 찬양을 하든지, 그 무엇을 하든지 간에 하나님께서는 상한심령만을 받았다는 말이다.
* 질문 - 그런데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 이전까지는 상한심령이 아니라, 제사 위주가 아니었나요?
◈ 제사가 아닌 상한심령 !!
물론 외부에서 볼 때는 그렇게 제사 위주로 보이지만, "하나님, 받으소서" 라고 하니 말이다. 그러나 내부에 들어가면 제물을 드린다고 해서 하나님이 받는 것이 아니라, "주여, 저의 죄 때문에 바로 저 어린양이 애매하게 죽는군요" 라고 한다는 말이다.
그렇게 어린양의 죽음에 대한 아픈 마음이 있는데, 그러니 구약에서는 그런 상한 심령이 바로 십자가이고, 그 마음이 또한 신약시대의 성도의 마음이라는 것이다. "주여, 저의 죄 때문에 예수님이 애매히 고난을 받고 피를 흘렸군요" 라고 하는 마음 말이다.
* 질문 - 그러니 우리는 드러나는 제사는 드리지 않지만, 상한심령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인가요?
◈ 예, 제가 바로 죄인입니다 !!
그것이 바로 마음의 할례이고 구원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상한심령이 되려면, 우리는 자기 자신이 먼저 죄 가운데 있음을 알아야 하고, 그 다음에 말씀이 다가와서 "이것이 죄가 맞지?" 라고 했을 때, "예, 맞습니다" 라고 하면 된다는 것이다. 물론 우리가 그렇게 하는 것은 아니고, 주께서 그렇게 인도하신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누구인지는 우리가 모르는데, 오직 본인만이 아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옆 사람의 마음도 사실상 우리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며느리도 모르고 시아버지도 모르고 말이다. 그러니 오직 주님만이 이 모든 것을 다 아신다는 것이다.
다만 다윗 같은 경우에는 아주 특별하게 성경에서 고백을 하는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번제나 제사가 아니라 상한심령입니다" 라고 말이다. 그러한 다윗의 고백을 통해서, 그것이 말씀이니 우리는 "아하, 그렇구나" 라고 하면서 깨닫는다는 것이다.
◈ 제사는 인간의 숨겨진 죄를 !!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알아야 하는 것은, 제사 자체가 인간의 숨겨진 죄를 드러내는 것인데, 제사법이 그렇다는 말이다. 즉 율법을 주신 것은, 우리의 죄를 들추어내기 위해서 그렇다는 말이다. 그 율법 가운데 제사가 포함되는데, 그것이 율법의 기능이고 말이다. 그렇게 제사를 드려보면, 감히 제사를 드린 자기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지, 즉 인간에게 그런 마음이 있음을 들추어낸다는 것이다.
* 질문 - 그러면 그들이 제사를 드리는 것은 뭔가요?
그 당시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제사를 드리지 않으면 벌을 받으니 할 수 없이 드렸는데, 그것이 오늘 교인들이 교회에 나가는 것이 비슷하지 않는가? 즉 하나님의 사랑이 아니라 징벌이 무서워서 교회에 간다는 것이다. 인간은 그때나 지금이나 항상 동일하니 그렇다는 말이다.
◈ 이제 '오바댜서'를 !!
이제 '오바댜서'를 하겠는데, 발음하기도 어렵지만 우리가 평소에 잘 읽지 않는 성경인데, 아무튼 간에 이 오바댜서는 창세기에 나오는 에서과 야곱의 차이만 알면 된다는 것이다. 여기 '에돔' 이란 나라가 등장하는데, 이 에돔은 이스라엘을 괴롭힌 나라인데,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나서서 벌을 내리시겠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이 에돔 나라의 조상이 바로 '에서' 이고, 물론 이스라엘과 유다는 '야곱' 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에돔과 이스라엘의 차이점이 무엇인지를 알려고 하면, 창세기에서 에서과 야곱의 차이만을 알면 된다는 말이다.
◈ 무조건 저주, 무조건 축복 !!
그 차이점이 무엇인고 하니, 한 사람은 반드시 저주를 받아야만 하고, 또 다른 한 사람은 무슨 짓을 하든지 간에 반드시 축복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즉 야곱은 그 어떤 짓을 하든지 천국으로 가야만 하는데,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렇게 점찍었기 때문에 말이다. 천국은 그렇게 이미 확정된 사람들만 간다는 것이다.
◈ 야곱을 건드리면 하나님이 복수를 !!
그래서 야곱을 건드리게 되면, 야곱이 복수하는 것이 아니라, 이 야곱을 천국에 가도록 확정을 지은 분께서 복수를 한다는 말이다. 즉 하나님께서는 가만히 계시지 않고, 이 야곱을 괴롭힌 다른 민족을 하나님께서 직접 나서서 공격을 하겠다고 하는, 바로 그 원칙을 제시한 책이 '오바댜서' 라는 말이다.
◈ 아니, 어느 놈이 우리 아이를 !!
이제 이해가 됩니까? 별로 어렵지 않은데, 즉 "내가 찜해놓은 것을 니가 왜 건드려?" 라고 하신다는 것이다. 그러니 예수를 믿는 사람은 매일같이 맞고 들어오는 코 흘리는 아이와 같은데, 그래서 엄마가 어떻게 하는가? "어느 놈이 우리 아이를 이렇게 했어? 도대체 누구야?" 라고 하면서 엄마가 대신해서 나서는데, 바로 이 엄마가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바로 그러한 관계인데, 그러니 자기가 직접 나서서 상대방을 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즉 "어머님, 좀 참으세요. 저도 이제 한 태권도를 합니다. 그러니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라고 하는 관계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엄마와 자식의 관계는 그만 깨어져버리고, 오히려 저주를 받는 관계가 되고 만다는 것이다.
◈ 성경은 이미 확정되었음을 !!
우리가 이런 점에 대해서 분명히 정리가 되어야만 하는데, 성경에는 어떤 사람들이 있다구요? 무슨 짓을 하든지 간에, 때려죽어도 천국에 가야만 되는 자들이 있는데, 그런데 이런 자들 말고는 천국에 갈 수 있는 자들은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즉 자기 나름대로 노력해서 가는 것은 전혀 없다는 말이다. 이러한 두 가지를 합쳐보면, 때려 죽여도 천당에 갈 사람은 가고, 그 나머지는 때려죽여도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이 인간의 행함을 이야기하고, 윤리와 도덕을 강조하는 자들에게는 그야말로 기가 찰 노릇인데, 인간의 자율성, 거듭난 이성, 자유의지, 성화론 등등이 다 날아가 버리니 말이다. 자기들은 그런 것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고 하는데 말이다.
그러니 사실상 게임도 하기 전에 이미 다 끝이 난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한번 붙어보고 나서 천국에 가든지 말든지 해야 하는데 말이다. 그렇게 한바탕 게임을 해서 잘한 놈은 보상하는 차원에서 천국에 넣어주든지 해야 되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말이다.
* 하나님 : 야, 이리와. 너는 천국이야.
* 선수A : 예, 알겠습니다.
* 하나님 : 야, 이리와. 너는 지옥이야.
* 선수B : 저, 아직도 게임도 안 했는데요?
* 하나님 : 됐어. 그냥 지옥에 가.
* 선수B : 게임을 시작도 못했어요.
* 하나님 : 됐어. 이제 게임은 오버.
* 선수A : 예, 감사합니다.
* 하나님 : 그런데 너는 불만이야?
* 선수B : ? ? ?
그러니 이것이 우리 인간들에게는 그 얼마나 황당하냐는 말이다. 그런데 이렇게 황당한 것을 두고서 예수님은 뭐라고 했는고 하니까, "옳소이다. 이것을 누가 믿겠습니까? 아버지와 아들의 계시를 받은 자 외에는 이런 진리를 알 자가 없습니다" 라고 말이다. 야곱이 이런 사랑을 받았는데, 그러니 누가 그런 사랑을 알겠느냐는 말이다.
(마 11:27)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그런데 이것도 모르고 겁대가리를 상실하고 에돔이 어떻게 하는가? 야곱이 코를 흘리면서 돌아다니니 그만 패버린다는 것이다. 야곱은 또 얻어맞을 짓을 하고 말이다. 그게 무슨 말인고 하니, 이스라엘이 하나님이 아니라 바알 신을 섬기면서 자기 마음대로 하니 말이다. 전국에 산당을 세워서 온갖 음란과 방탕한 짓을 다하고, 그렇게 바알종교 교리를 행하면서 엉뚱한 짓을 한다는 말이다.
◈ 다시 12세 미만은 金 !!
아까 바알종교 교리를 하다가 말았는데, 조금 자극적인(?) 내용이지만 한번 살펴보자면, 하늘의 신도 생산력을 베풀려고 하면 남녀의 교접으로 된다고 보았다는 것이다. 왜 이런 아이디어가 떠오르는고 하니, 사실 신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놈이 없는데, 그래서 모여서 신에 대해서 연구를 하는데, 그러면 당연히 이 세상이 신의 마음이, 즉 신의 법칙이 들어있다고 보는데, 왜냐하면 이 세상을 신이 만들었으니 말이다.
여기 이렇게 물 컵이 하나 있는데, 그러면 이것을 만든 사람이 있을 것이고, 그 만든 사람은 자기의 만든 목적이 있다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신이 어떠한지를 본 사람은 없지만, 그러나 신이 만든 것은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 눈에 보이는, 즉 신이 만든 것을 통해서 어떻게 신이 이 세상을 움직여 가는지 알 수가 있다는 것이다.
◈ 아하, 이 땅에는 인터코스가 !!
그렇게 머리를 맞대서 찾아낸 것이 바로 남녀간의 생식능력인데, 그래서 성적인 행위를 할 수밖에는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에 종사하는 거룩한 남자들, 즉 성직자들인데, 물론 선지자들은 이들을 남창(男娼, 케데쉼?)이라 욕을 하고 말이다. 그러나 자기들은 거룩하고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자기들은 성적으로 음란한 일이 아니라 거룩한 일을 하고 있는데, 마치 성찬식을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니 거기에 참석하는 자들도 윤리적으로 아무런 가책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 행위를 신이 내린 복으로 여기지, 자기들이 음란한 짓을 한다는 의식이 전혀 없다는 말이다.
* 질문 - 소위 교주들이 하는 짓이 이런 것이지요?
물론 그러한데, 지금 한국교회가 어느 정도로 맛이 갔는고 하니, 전부가 다 쉬쉬하고 있지만, 그러나 누군가가 용감하게 사고를 치게 되면 히트를 친다는 것이다. 쇠고랑을 찰 각오를 하고 그렇게 "나와 관계를 맺는 사람은 구원을 받는다" 라고 해버리면 교회부흥은 시간문제인데, 왜냐하면 인간의 원초적 본능은 참을 수가 없다는 말이다. '아닌데' 라고 하면서도 땡기는 것이 있다는 말이다.
* 질문 - 정명석 교주의 행동을 보면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데, 그런데 여대생들이 그렇게 추종하는 것을 보면, 참 신기하기도 하고 말입니다.
그 집단은 단계가 있는데, 물론 처음에는 성경공부로 시작을 하는데, 그렇게 해서 점점 더 깊은 단계로 들어간다는 것이다. 신의 경지로 들어간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인간도 점점 더 신과 합일하고 싶은 욕망이 생기게 되는데, 하나님의 경지를 다같이 누려보자는 것이다.
그러니 이것을 정명석을 탓할 문제가 아니라, 인간은 바알종교적인 본성이 주체하지 못하는 욕망을 신격화시켜주는 것을 정당화해줄 때, 모든 것이 다 허용된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인간의 솔직하고 적나라한 모습이고 말이다.
* 질문 - 그런데 그것은 마치 항생제처럼 농도를 올려야하는 것이 아닌가요?
물론 점점 레벨을 올려야 하는데, 처음에는 타율적으로 강제성이 따르는데, 일단 그렇게 시작이 되면 나중에는 스스로 다 알아서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최고의 단계인데, 그래서 현대철학에서는 현대문화를 종교로 보는데, 즉 바알종교라는 말이다.
◈ 인간은 역시 기분 따라 !!
그러니 이런 것이 종교를 떠나서 모든 문화 속에 다 스며드는데, 그래서 요즘 아이들은 보다 자극적인 음악을 원하고, 컴퓨터 게임도 그렇고 말이다. 그래서 공연을 하다가 바지를 마구 내리고 말이다. 그러니 이러한 음악과 게임, 그리고 종교도 모두가 다 자기 기분을 따라서 한다는 말이다. 즉 인간의 욕망을 따라서 말이다.
* 질문 - 그렇게 따지고 보면 인간이 동물과 다를 바가 없네요?
인간은 많이 애써서 억누르면서 살아가는데, 그런데 문제는 이것을 인간은 자기 의(義)로서 여긴다는 것이다. 물론 그것은 마귀가 하는 짓인데, 제가 마귀에게서 제일 열받는(?) 부분이 바로 이 부분인데, 마귀는 자꾸만 인간의 의로움을 첨가시킨다는 것이다.
◈ 악마의 악질성은, 자꾸만 없는 의를 만들어서 !!
우리가 악마에 대해서 용서하지 못할 이유가 바로 이것인데, 이 의(義)는 도대체 어디에서 나오는가? 오직 예수님에게서만 나온다는 것이다. 아무리 몸부림을 쳐도 인간에는 없다는 말이다. 그런데 있다고 하는 것은, 목사가 악마의 종이 되어서 구라를 치는 것인데, 죄인에게 어떻게 의가 나오겠는가? 오직 의인에게서만 나오지 말이다. 의인은 예수님밖에 없는데, 그런데 마귀는 자꾸만 부추긴다는 것이다.
* 질문 - 그렇게 의를 추구하는 것도 역시 기분을 따라 사는 것인가요?
물론 그러한데, 그것도 역시 자기의 기분을 따라 사는 모습이란 말이다. 구제하는 것도 역시 그러한데, 욕망의 변형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바리새인들이 뭐라고 했는가? 자기들은 일주일에 두 번을 금식을 한다고 했는데, 사실 그렇게 금식을 꾸준하게 한다는 것이 보통 힘든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의(義)를 몰라 !!
아무튼 금식하고 구제하고 십일조를 하는 것이 결코 쉬운 것이 아닌데, 하지만 그런 바리새인들에게 예수님은 뭐라고 했는가? "니가 바로 나쁜 놈이다" 라고 했는데, 우리는 그 말씀의 의도를 알아야한다는 것이다. 결국 그들의 모든 행위가 자기를 높이는, 즉 자기 의를 쌓는 것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하지만 성도는 낮아져야 하는데, 사람 앞에서가 아니라 주님의 십자가 앞에서 말이다. 그렇게 십자가 앞에서 우리가 얼마나 못난 인간인가를 발견하게 하는 것이 바로 성령의 역사라는 것이다. 즉 성령을 받지 않고는 그런 일이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는 말이다.
* 질문 - 그러면 방탕하게 사는 것과 낮아지는 것은 별로 상관이 없나요? 창녀 같은 경우에, 예수님께서 특별대우(?)를 한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말입니다.
물론 상관이 없는데, 왜냐하면 그런 사람은 자기가 방탕하게 사는 것도 일종의 자기 의를 높이는 것이니 말이다. 그렇게 자기 몸을 팔아서 살아가는 여자의 경우에는, 자기 가정형편이 어렵다든지, 혹은 머리가 좀 안 돌아가서 그렇고 말이다. 물론 요즘은 똑똑한 여자도 많겠지만 말이다.
사람이 죄를 짓게 되면, 자기는 그 이전에는 죄가 없는 상태에서 이제 죄를 짓게 되었다고 여기는데, 그런데 막상 죄를 지은 자리에 가보면 자기가 죄가 없다고 여겼던 것도 죄라고 느껴진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런 사람은 이렇게 하나 저렇게 하나 마찬가지라고 여기서, 그냥 그 자리에 눌러 앉아버린다는 것이다. 그러니 결국 이것이 자기 의로움이란 말이다.
* 질문 - 그러면 세리나 창기들이 다른 사람들보다는 쉽게 예수님을 영접했나요?
그런 것은 아니고, 누구든지 하나님의 은혜가 임해야 된다는 말이다. 즉 성령을 받지 않으면 그 누구라도 예수님을 영접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신약성경에 보면, 그 당시의 부자나 성직자들보다는 세리나 창기가 더 천국에 가기가 쉬워 보이는 것은, 사실 전혀 그런 의미가 아닌데, 모든 사람이 불가능하기는 마찬가지라는 말이다.
그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 그 당시에 바로 너무나 성직자들이 금식, 십일조, 구제 등을 가지고서 자기 잘난 척을 하니,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너희들보다 차라리 저들이 천국에 간다" 라고 하셨다는 말이다. 마치 "돌들이 소리를 지르리라" 라는 차원에서 말이다.
* 질문 - 그러니 사회의 약자를 보호하는, 그런 측면은 아니지요?
물론 그런 것은 성경에 없는데, '약자' 라고 하는 것은 어차피 시대가 바뀌면 강자가 될 사람들이니 말이다. 그들은 다만 지금 자기들이 형편을 해결하려고, 즉 눈을 뜨고, 병을 고치기 위해서 예수님을 찾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결코 그들이 예수님으로부터 특별히 보호받는 것이 아닌데, 약자라고 해서 천국에 가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다만, 성경에서는 바리새인들과 같은 강자들과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이야기하는데, 그들의 죄를 들추어내는 차원에서 말이다. 사도바울의 경우에, 그 당시의 사람들이 여자들이 어떻게 구원을 받느냐고 했을 때, 여자들도 예수님만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것은 누구를 차별하고 말고 하는 차원이 아니라는 말이다.
* 질문 - 그러니 나타나는 현상 그대로 보면 안 되고, 일종의 비유(?)로 보아야 한다는 말이지요?
성경을 그렇게 나타나는 현상 그대로 보는 것은, 목사들이 자기 돈벌이를 하기 위해서, 즉 자기 필요에 따라서 하는 짓이라는 말이다. 어떤 때는 이렇게 했다가, 또 다른 때에는 저렇게(?) 하고 말이다. 즉 자기에게 유리한 쪽으로 몰고 간다는 것이다.
◈ 오직 의(義)는 주님에게서만 !!
이제 마지막으로 정리하고 마치겠는데, 누가 뭐라고 해도 의(義)라고 하는 것은 오직 예수님에게서만 나오는 것인데, 즉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를 통해서 말이다. 그러므로 결코 우리 인간에게는 그런 의는 전혀 없는데, 그러니 쓸데없이 엉뚱한 기대를 하지 말라는 것이다. 다만 그 주님의 의(義)를 쳐다보면 구원을 받는다는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인간은 자존심이 강해서, 물론 악마의 종이기에 그러한데, 주님의 의를 쳐다보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예수님을 믿으니, 나도 뭔가 가치가 있지 않는가?" 라고 하면서, 자꾸만 자기 자신을 쳐다보려고 한다는 것이다. 즉 자기의 행위를 버리지 못하는데, 그러나 그것은 결코 주님이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그때나 지금이나 모두가 같은 인간들인데, 인간은 언제나 자기 상황에 따라서 입맛에 따라서 살아간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선지자를 보내셔서 우리의 죄를 지적한 것처럼, 우리도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의만 바라볼 수 있는데, 그것을 언제나 감사하면서 살아가는 겸손한 자들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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