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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 믿음

요한계시록 51강 / 계11장 19 (언약궤와 천국) 본문

신약 설교, 강의(이근호)/요한계시록

요한계시록 51강 / 계11장 19 (언약궤와 천국)

정인순 2010. 12. 30.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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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언약궤와 천국

2007년 2월 25일

 

요한계시록 11:19

 

(계 11:19) 이에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니 성전 안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보이며 또 번개와 음성들과 뇌성과 지진과 큰 우박이 있더라

 

사람이 생각하는 천국은, 본인의 편이를 우선하는 천국입니다. 즉 이 지상에서 실컷 고생한 몸이니 죽고 난 뒤에는 자신을 편하고 행복하게 만들 가상적인 세계를 고대하게 되는데 이런 의욕으로 구상하는 천국이 인간들이 만든 천국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다음과 같은 점을 고려해 봐야 합니다.

 

무조건적으로 나 개인이 천국에 합류된다는 일방적인 생각에 근거를 두고 과연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는 것이 옳을까요? 분명 옳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어떤 인간이든지 모든 자들은 죽어서 좋은 나라를 고대하지 않는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지옥을 만들어놓으셨다는 이야기는, 개인적인 열망과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따로 일하신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이것은 곧 나 자신이 하나님의 뜻에 의하여 얼마든지 지옥 가는 사람의 명단에 포함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런 경우라도 우리는 하나님께서 항변해서는 아니되는 겁니다. 그 결정은 순전히 하나님의 몫으로 남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저주받아도 합당하다는 그런 입장에서 서서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온전히 진리를 접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남은 다 실패하고 지옥가더라도 나는 무조건 천국에 들어가야 한다는 식으로 세상을 보면 왜곡된 천국관만 쥐고 있을 뿐입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천국관 속에는 하나님의 언약이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니 진짜 천국에는 언약궤가 중심사상으로 버티고 있습니다. 이것은 구원과 영생문제는 어디까지나 하나님 스스로 결정할 문제라는 것을 보여주는 겁니다. 그렇다면 언약이 있는 천국은 어떤 천국일까요?

 

언약궤에서 나오는 능력으로 확대된 나라가 천국입니다. 언약궤란 언약 상자를 말합니다. 보통 약속이라는 것이 무형의 추상적 개념입니다. 하지만 약속의 증표 같은 것은 실재하는 물건이 됩니다. 이와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자신의 언약을 언약궤라는 물체를 통해서 알려주십니다.

 

거기에서는 하나님은 사람과 만나십니다. 다른 장소에는 공간적으로 만나지 않습니다. 이 언약궤가 구원의 능력을 발휘하는 것은 그 상자 뚜껑에 거룩한 희생 제물이 피가 묻힐 조건으로 이루어집니다. 제물이 피를 내어 생명을 잃게 된다는 말은 곧, 죄를 지은 자는 하나님 앞에서 산 자로 간주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죄를 지은 자가 계속해서 하나님 앞에서 살아남은 자로 동행하려면, 하나님의 언약과 약속을 따라야 합니다. 그 약속의 중심에는 ‘깨끗한 피’가 놓여져 있습니다. 하나님을 피를 통하여 자기 백성에게 다가서고, 백성은 피를 통해서 참 하나님을 알아봅니다. 죄를 지은 자는 자신의 죄를 이전시킬 희생양을 데리고 제사장을 찾아야 합니다.

 

제사장은 그 사람의 목숨대신, 그 사람의 죄가 담겨있는 그 양을 끌고 제단 뒤에 철저하게 죽이고 맹렬한 불 위에서 태워버립니다. 죄는 하나님 앞에서 살아남을 수가 없음을 보여주는 겁니다. 그리고 태우고 않고 버리는 내장들은 쓰레기장으로 보내지는데 그 쓰레기 장이 신약 시대적 안목으로 봐서 ‘지옥’이라는 곳입니다. 이렇게해서 지옥이란, 하나님 보기시에 죄로 간주된 것들의 집결지인 셈입니다.

 

만약 자기가 지은 죄를 본인이 모르는채 지나가면서 죄가 계속 확산될 경우, 그 죄는 어떻게 처리되는 겁니까? 1년에 한 차례씩 대제사장은 7월10일 전 백성의 죄를 대신할 만한 소를 제단 위에서 불태워 죽여서 거기서 나온 피를 양푼이에다 담아 언약상자 위에 뿌리게 됩니다. 이로서 ‘언약’은 ‘피’를 만나서 그 완성된 효력을 발생시키는 겁니다. 즉 피가 추상적인 하나님의 언약의 유일한 증표인 것입니다.

 

피로 인하여 백성들은 죄를 씻음받고 거룩한 백성으로 유지됩니다. 신약에 오게 되면, 반복되는 양이나 소나 염소의 제물을 대신하여 직접 하나님의 자신의 몸으로서 언약의 최후 증표로 등장하게 됩니다. 즉 예수님께서 몸으로 행하신 것을 인정하지 않는 자는 언약에 위배되는 자라고 간주하여 저주를 내리는 겁니다.

 

오늘 본문에서 언약궤 근처에서 번듯거리며 튀어나온 것들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번개며 지진이며 우박들입니다. 이것은 건설적인 용도가 아니라 파괴하기 힘과 능력들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언약에 위배되는 것을 용납하지 않고 처리해 버리십니다. ‘언약에 위배됨’이란 ‘피’의 능력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요한복음 10장에서, 양과 목자의 관계는 오직 피의 관계만으로 이어집니다. 만약 10명의 메시야가 참 성도 앞에 나타났다고 본다면, 참 메시야를 알아보는 것은 오직 ‘피’입니다. 즉 누가 양의 죄를 위해 목숨을 바쳤느냐 하는 점으로 참 메시야와 그렇지 않는 메시야를 구분지어야 합니다.

 

피의 언약으로 구원한다는 의미는, 구원 받고 안 받다고 사람들의 요구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이것입니다. 직접 희생제물이 되신 그 분은 창세 전부터 하나님 아버지와 의논하신 바에 의해 ‘사랑받기로 확정된 그 자’를 위한 희생 제물이십니다.

 

이 말은 곧 ‘피의 효능’은 아무나에게 다가서는 것이 아니라 오직 ‘사랑받기로 작정된 자’에게만 전달되게 되어 있습니다. 사랑이란 일종의 일방적인 대쉬입니다. 이유없이, 무조건적으로 돌진해 오는 것이 사랑이기에 이 하나님의 확정된 사랑을 피해 숨을 곳이 없습니다. 거절할 처지도 있지 아니합니다. 구약 ‘아가’에 보면, 거기에 나오는 한 남성에 막무가내로 한 여인에 대한 일방적인 사랑을 펼칩니다.

 

여인이 아무리 숨고 도망쳐도 그 남성이 내뿜는 사랑의 기세를 당할 수가 없습니다. 그 남자는 여인의 동의없이 일방적으로 ‘내 누이에 내 신부요’라고 하면서 다가옵니다. 이 사랑의 징표가 신약 시대에는 ‘언약의 피’로서 나타납니다. 고린도교회는 모일 때마다 이 사랑의 피를 나누는 행사를 되풀이했습니다. 이처럼 성도와 주님과의 관계는 오직 피로만 연결될 뿐입니다.

 

이것은 곧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천국은 인간의 공로가 아니라 새언약의 피가 발린 자만 들어간다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그 천국의 중앙에는 오직 언약만 자리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도합시다.

 

『 하나님, 사람이 능력이 아니라 창세전부터 선택받은 그 사랑으로만 대화할 수 있는 성도들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