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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 믿음

예레미야 9:23-24 / 자랑 없애기 본문

구약 설교, 강의(이근호)/예레미야

예레미야 9:23-24 / 자랑 없애기

정인순 2023. 9. 11. 22:21

음성 동영상 Youtube

자랑 없애기

 

이근호
2023년 7월 23일                  

 

본문 말씀: 예레미야 9:23-24

(9:23)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지혜로운 자는 그 지혜를 자랑치 말라 용사는 그 용맹을 자랑치 말라 부자는 그 부함을 자랑치 말라

(9:24)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인애와 공평과 정직을 땅에 행하는 자인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거짓되다’는 말을 신약성경에서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저희가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할까 염려하라”(마 7:6) 즉 복음을 받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서는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개와 돼지로 표현합니다.

이러한 말씀을 그 당시 하나님의 율법으로 사회를 유지해 나간다는 자부하는 그 세상 안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즉 인간 세계 자체가 예수님(=하나님) 보시기에 거짓되어 있다는 겁니다. 이것이 온갖 자랑거리로 얼룩져 있다는 말도 됩니다. 이미 옛날 이스라엘 사회가 하나님으로부터 거부되고 있음을 알리시는 시편 말씀이 있습니다.

“사람이 치부하여 그 집 영광이 더할 때에 너는 두려워 말지어다 저가 죽으매 가져가는 것이 없고 그 영광이 저를 따라 내려가지 못함이로다 저가 비록 생시에 자기를 축하하며 스스로 좋게 함으로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을지라도 그 역대의 열조에게로 돌아가리니 영영히 빛을 보지 못하리로다 존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시 49:16-20)

왜 인간은 자랑하면 아니되는 겁니까? 그것은 이 인간 세상이 ‘인간 대 인간으로 형성된다’고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사회를 형성하려는 것은 외롭지 않게 살고 싶어서 있습니다. 외로우면 뭐가 문제가 되는 겁니까? 외로우면 자신의 자랑을 받아 줄 주변에 사람들이 없어 문제입니다.

자랑을 받아줄 사람이 없는 것이 왜 문제가 되는 겁니까? 그것은 인간이 자신이 참되고 거짓되지 않음을 주변의 타인들을 통해서 확인받고 싶어하기 때문입니다. 본인이 늘 올바르고 착하고 훌륭하고 의롭지만 혼자서 우기는 것보다 남들이 그것을 인정해주면 비로소 자신이 판단한 자신이 진실됨을 단정지울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생각보다 주변에 자기에게 호의적인 사람들에게 의견을 듣고자 하는 겁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 자신에게 뭐라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아모스 5:21-23에 보면, “내가 너희 절기를 미워하여 멸시하며 너희 성회들을 기뻐하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내게 번제나 소제를 드릴지라도 내가 받지 아니할 것이요 너희 살진 희생의 화목제도 내가 돌아보지 아니하리라 네 노랫소리를 내 앞에서 그칠지어다 네 비파 소리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듣지 아니한다, 받지 아니한다, 돌아보지 아니한다’에 주목해 봐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것을 받지 않으시는 이유는 거짓되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인간 본인이 같은 인간들을 붙들고 묻는다고 해서 자신의 거짓됨이 드러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러다 보니 본인은 ‘거짓되지 않다’가 기정 사실화 된다는 겁니다. 거짓 되지 않음이 기정 사실화된다는 이는 곧 자신의 각가지 자랑거리가 정말 자랑할 만한 것들로 오인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일체 자랑하지 않으면 되지 않을까요? 일체 자랑하지 않는 것도 ‘입이 무겁고 겸손하고 경솔하지 않는 사람이다’는 칭찬으로 이어질 것을 의식하게 되므로 기어이 자랑거리 항목에 포함되고 맙니다. 그러면 어쩌란 말입니까? 거짓됨으로 인정하면 되는 겁니다. 자신이 거짓됨을 인정하려면 사람들의 의견말고 주님의 의견을 들어야 합니다.

사도행전 1:6-7에 보면, “저희가 모였을 때에 예수께 묻자와 가로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가라사대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 바 아니요”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대목에서 제자들을 참으로 궁금한 것을 참지 못하고 묻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가 언제 옵니까?” 그당시 유대사회에서의 하나님 나라는 이스라엘이 회복된 상태를 두고 믿었던 겁니다. 즉 유대 사회에는 자기네 사회, 이스라엘을 자랑거리로 여겼던 겁니다. 즉 그들은 자신들의 구원이 자기 일이라고 여겼던 겁니다. 자신들이 이스라엘의 일원이라고 여기고 자기 구원은 자신들이 챙겨야 마땅하다고 여긴 겁니다.

하지만 주님의 답변은 단호하고 냉정하십니다.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것은 너희들도 모르고 나도 모른다는 겁니다. 즉 모든 일은 하나님의 일로 넘겨야 마땅하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일은 일체 인간으로부터 자랑거리를 제거하시는 효력을 발휘하십니다. 자랑이란 항상 ‘나의 것’을 의식할 때 일어나는 법입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자랑거리를 제거한 그런 나’를 인간은 자랑한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자랑거리를 스스로 없앤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사람이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유대 사회에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이런 식으로 자신을 구원받기 위해 얼마나 노고를 기우렸겠습니까?

하지만 자신의 거짓됨을 여전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조치는 어떠합니까? 인간으로 하여금 자기가 행한 일로 자랑하지 않게 하시고 오직 예수님 자신이 한 일로 자랑하게 하십니다. 이 와중에서 왜 인간들이 거짓될 수밖에 없는가 그 원인도 밝혀집니다. 인간은 말씀을 가지고 지킬 권한이 없었던 겁니다.

말씀은 도리어 인간을 지적하는 용도이기 때문입니다. 말씀은 인간의 내부를 속속들이 찾아가면서 모든 인간의 것을 거들내고 조각내고 무산시키십니다. 인간에게 있어 ‘지켰다’ 할만한 것이 없게 하십니다. 모든 위선과 거짓을 십자가 능력으로 토해내게 하십니다. 그렇게 해서 인간을 늘 텅텅 비게 하십니다.

인간에게는 미래나 과거나 현재에 대해서 아는 것이 아무 것도 없게 하십니다. 왜냐하면 그 모든 것이 인간 자신의 계획과 의도와 희망과 욕망에서 나오는 ‘인간 자신을 위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인간의 일들은 항상 십자가의 원수가 되는 모습을 띠게 됩니다. 인간의 과거 기억이나 현재성이나 예측성을 거짓으로 나타내는 하나님의 방법은 인간이 도저히 생각못한 새로움을 다가오시는 겁니다.

새로운은 인간 자아가 담을 내용이 아니라 도리어 인간이 만들어낸 것들을 치워버리는 과정을 통해서 새롭게 도입되는 겁니다. “저의 모든 것조차 다 주님의 일이지 저의 일이 아닙니다”는 고백을 쏟아놓고 하십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아는 것으로 살지 말고 매사가 주님의 일에 해당됨을 알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