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과 믿음
양 / 220123 본문
양 220123
설교:이근호
녹취:정인순
오늘은 양의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구약성경에 보면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다. 그렇게 되어있어요.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께서는 양으로 이해했어요. 양의 특징이 뭐냐 하면 목자 없이는 우왕좌왕하는 대상이 양이에요. 목자 없이는. 이 말은 무슨 뜻이냐 하면 양은 절대로 자기가 결정하지 않는다. 자기 인생에 대해서. 인생이 아니죠. 양생이죠. 양은 자기 미래나 거기에 대해서 어느 정도로 배짱이 새냐 하면, 몰라도 돼. 나에 대해서 내가 몰라도 돼 이게 양이에요.
그래서 이사야 53장에 보면 양들의 특징은 제 갈 길을 알지 못하는 겁니다. 양이 제가 할 길을 알면 그건 사람이죠. 양이 아니죠. 문제는 인간이 양보다 못한 것은 제 갈 길도 모르면서 지가 안다고 우기는 게 문제지요. 안다고. 그래서 젊은 사람들은 어디까지 아느냐 하면 아버지 어머니 독립하겠습니다. 내가 할 길 압니다. 어디까지? 서른다섯 살 때까지. 그러면 나머지 사십오십은? 그거는 그것까지는 아직 생각 안 해봤습니다. 그냥 코앞이에요. 그러니까 이게 뭐냐 하면 이렇게 전등을 전등이 성능이 안 좋은 전등은요 비춰봐야 빛이 몇 미터 가지도 않아요. 한 200m까지 가는 거 거의 없어요. 한 10m 20m 그것도 약 떨어지면 그것도 깜빡깜빡하고 있어요. 이게 인간들이 하는 가는 인생 모습이에요. 세 살 먹은 남자 애한테 5만 원 줄래? 구슬을 줄래? 하면 구슬을 대번에 받아요. 오만 몰라요. 5만 원짜리 오만 그게 뭔지를 몰라요. 지금 코앞에 있는 것 구슬 따먹기 하는 구슬이에요.
일곱 살 여자 아이한테 공주 머리핀 그거 얼마나 좋아하는지. 다 같이 계절마다 다 갖춰놨어요. 열댓 개 돼요. 동화책에 나오는 거 전부 다 해야 돼요. 겨울 왕국에 나오는 거 전부 다 해야 돼요. 그걸. 걔한테 할아버지가 재벌 할아버지가 너한테 주식 삼천 주 남겼다 하면 그게 무슨 말인지 몰라요. 주식 그거 그건 그게 왜 나 인형이 필요하지 주식이 왜 필요한지 몰라요. 나중에 이제 전등 비춰보면 이게 주식으로 인형 살 수 있구나. 그때서 아는 겁니다.
양은 자기가 코앞에 있는 것밖에 모르는 한계성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을 하나님께서 양으로 이렇게 규정하는 것은 너에게 빈칸을 남겨둔 거예요. 양이 스스로 어디 갈려고 생각하지 말고 너 앞에 빈칸을 남겨둬. 그 빈칸에 누가 들어가느냐 하면 목자가 들어가는 양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구약 성경에서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다 해서 하나님이 오셔야 우리는 양다운 양이 되고 하나님이 오시지 않으면 각자가 자기가 내가 나한테 목자인 양 아무것도 모르면서도 최선의 노력만 하면 제 갈 길로 가는 줄 알고 그렇게 생각하는 거예요.
어떤 수영장 같은 경우라든지 그런데 그런 시설이 있어요. 투명한 유리벽으로서 남자 수영하는데 목욕탕이 아니고 수영장이에요. 남자 수영하는데 여자 수영하는 데를 이렇게 따로 이렇게 구분 지은 데가 있어요. 아주 유교적이고 보수적인 데서는. 그러면 그 투명한 유리벽이 있어서 여기서 아무리 저기로 가고 싶어도 갈 수 없고 저쪽에서 올 수 없어요. 인간은 인간이 자기가 양이라는 생각을 안 하고 목자가 그 유리벽을 넘어서 오지 아니하면 자기들끼리 의논하고 협의해가지고 목자 같지도 않은데 목자라는 걸 인간을 내세워서 자꾸 그 사람들끼리 모든 것을 지도자로 리더로서 떠맡기는 우리들 앞길을 잘 인도하라고 떠맡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게 아마 3월 29일 날 또 이제 시작될 거예요. 대선이. 목자도 아닌 게 목자 노릇 하나 있을 거예요.
주님께서는 분명히 이야기했습니다. 너가 진정 양이라면 니가 사람이라면 사람의 지도자가 필요한지 모르지만 니가 사람에서 어디까지 내려가야 되냐 하면 양까지 내려간다면 비로소 너는 너에게 필요한 것은 사람이 아니고 목자가 필요한 거야. 그런데 그 목자 자리에 누가 그 동안 왔느냐 하면 강도요 도둑이요 이런 것들이 이 목자 자리를 차지한 겁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말씀이 그들이 찾아온 이유는 너희들을 뜯어먹기 위해서 너희를 죽이고 병들고 죽이고 학대하고 너희를 잘못된 길로 이끌기 위해서 너희들은 목자도 아닌 것들이 목자 행세하면서 너희들을 이끌었다 라고 요한복음 10장에서 예수님께서 분명히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그들이 누구냐?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었고 그 주위에 있는 소위 종교 지도자들이 그런 사람들이에요.
그러면 양 입장에서 뭐라고 하겠어요? 그러면 목자인지 목자가 아닌지를 그러면 어떻게 구분합니까? 이거는 양 입장에서 당연히 나오는 질문이죠. 그 질문 나와야 되죠. 그럴 때 주님의 답변은 요한복음 10장에서 양을 위해서 죽어버리면 목자고, 양보고 죽으라고 하는 것은 그거는 강도다. 내가 너희들의 목자인 이유는 내가 너를 위해서 죽어야 된다. 그러면 양이 질문하겠죠.
왜 목자가 멀쩡한 목자가 왜 죽어야 됩니까? 니가 지금 니 죄가 니 지은 죄가 너가 너를 지금 죽음으로 몰아넣기 때문에 방향을 틀어줘야 되거든요. 하나님께서는 죄의 값에 대해서 묻겠다고 나서시고 양은 그 죄 값을 스스로 처리하지 못하고 따라서 세상 죄를 지고가는 어린 양처럼 섞여 들어와가지고 같은 양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쪽은 죄가 그대로 있는 양, 한쪽은 그 양의 죄를 대신 짊어지는 양, 그 양으로서 예수님께서 섞여 들어오신 거예요. 이 땅에 오신 거예요. 오신 데는 이유가 있어요. 그냥 놀러 오신 게 아닙니다.
이 양 이야기는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이야기를 여기서 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15장 이야기는 뭐냐 하면 99마리의 양을 놔두고 목자가 어디를 가느냐? 한 마리의 양을 찾아서 나가요. 99마리 양을 놔두고. 그러면 그 이야기를 들으면 그럼 99마리 양은 이미 구원받았고 그리고 한 마리 양은 그 구원에 더 보탤 것이라고 경솔하게 생각하는데 그거는 아닙니다.
구십아홉 마리 양과 한 마리 양의 차이점이 있어요. 한 마리 양은, 99 마리는 그냥 데리고 오지만 한 마리 양은 어깨에 메고 와요. 어깨에. 목자가 너무 좋아서 춤을 추면서. 그러면 99마리 양이 좀 시기 나서 이렇게 안 하겠어요? “왜 우리는 그냥 맨발로, 양이 맨발로 가지 뭐 맨발로 끌고 가고 왜 한 마리 양은 특별대우 해가지고 목자의 그 감히 접근할 수 없는 목자의 어깨가 매고 옵니까?” 라고 했을 때 목자가 하는 말이 “얘는 잃어버렸다가 얻었잖아.” 다시 말해서 진짜 니가 양이라면 니 양 속에 무슨 요소가 있어야 되느냐 하면 주께서 이 땅에서 주님이 오셔서 그 주님이 잃어버렸다가 주님이 사흘 만에 부활로 되찾는 되찾아진 그 경로가 새겨져 있는 그 양이 그 목자의 그 양이다 이 말이에요. 잃었다가 얻은 거.
그럼 우리는 이제 교회 안 나오고 잠시 잃은 척 해야 되느냐? 그냥 교회 나와도 잃은 양이에요. 우리의 본성이 우리의 본성은요 살려고 하기 때문에 살고자 한다면 결국은 우리는 양을 길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이 세상이 주님이 가는 방향에 반대이기 때문에 주님 가시는 길은 죽고자 하는 길이고 나머지 주님 빼놓고 모든 인간의 길은 살고자 하는 길인데 어떻게 그게 길이 안 잊어버리겠어? 잊어버리죠.
이 젊은 사람들이 나중에 나이 들면 늙은 사람 되는데 젊은 사람이나 늙은 사람이나 인생을 쭉 살아보게 되면 그동안 헤맸다는 생각이 정답입니다.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해낸 거예요. 혹시 재미나는 일 없는가? 일을 만들어서 재미를 찾자. 이런 식으로 계속해서 자기가 심심하지 않기 위해서 짜릿한 거 없나, 이 사업하다가 때려치고 저 사다가 때려치고 직장 다니다가 사표 내고 이거 하다가 사표 내고 그거 왜 그러냐 하면 뭔지 모르겠다는 거예요. 도대체. 앞에 붙인다면 내 갈 길 뭔지 모르겠다는 거예요. 그러니 내가 갈 길, 갈 곳이 없다고 하잖아요. 도대체 뭔지 모르겠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 사람에게 “모르죠? 여기 목자가 계시더군요. 그 목자가 우리 앞길을 인도합니다.” 하면 “치워라. 소리 듣느니 내가 앞에서 개발하는 게 낫겠다.”
왜? 아직까지 내가 잘 될 것이라는 그 희망과 나에 대한 미련이 나로 하여금 목자를 강력하게 거부합니다. 그 말은 지금 이 양이 비록 실패는 했지만 아주 망가지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자기한테 억지로 삽입시켜서 집어넣었어요. 자기가 자기를 지금 조작하고 있는 겁니다. 주님 보시기에는 이미 갈 길이 없다는데 없다고 확정됐는데 그래도 혹시 있겠지 해가지고 이 짓 해보고 저거 사업하고 뭐 해보다가 말아 먹고 저거 하다가 말아 먹고 지만 말아 먹는 게 아니고 일가친척 외삼촌 돈까지 말아먹고. 자식까지 말아먹고 나중에 술 먹고 뒤집어져서 난 모르겠다. 난 최선을 다 했노라 하고 그렇게 뒤집어 나 자빠져버리고. “일이 안 풀리는데 우야노?” 왜 일이 맨날 맨날 일이 안 풀린데? 도대체 일이 풀리려고 하면 수입이 왜 얼마나 돼야 풀려요? 맨날 일이 안 풀린대. 그거 왜 풀려야 되는데요? 일 풀리면 안 돼요. 왜 일이 풀리면 지가 양 아닌 줄 알기 때문에 안 돼요. 주께서는 끝까지 목자 가는 그 길, 나는 죽어도 상관없다는 그 길, 그 정도로 아무것도 아니라고 느끼는 그 길, 그 길이 목자가 보이는 바로 그 길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주께서 오실 때 다 계획이 있고 생각이 있는데 인간들끼리만 혼자 생각이 깊은 것처럼 목자 버리고 양들과 섞여서 넓은 길로 합세해서 뭣도 모르고 가고 있습니다. 저희들 성령 오셔서 목자의 음성 십자가의 음성 듣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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