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과 믿음
갈라디아서 3:14-17 / 다수와 단수 (430년 후) 본문
갈라디아서 3:14-17 430년 후
이근호 430년 후에 주셨다는 ‘그 율법’으로 인하여 그 전에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제시하는 것은 ‘본격적인 율법’이 아님이 드러났습니다. ‘율법인 것’과 ‘율법 아닌 것’으로 하나님쪽으로 분류를 하신 이유는, ‘인간’과 ‘인간 아닌 자’를 분류하는 것과 결국 관련 있습니다. ‘약속된 인간부류’와 ‘약속이 아닌 인간 부류’를 따로 이 세상에 생산하시는 겁니다. 마치 과수원에서 시장에 내다 팔 과일 가운데 ‘상품화 될 과일’과 ‘상품화 될 수 없는 과일’을 미리 선별하는 것과 같습니다. 과수농부에게 있어 사전에 알 수가 없고 결과를 보고 비로소 판단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의도적으로 ‘인간 아닌 자’를 인간처럼 만들어 세상에 내어놓으십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의 고난을 인간들 속에서 그려내기 위함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제시하신 약속과 그 성취에 있어 집요하게 방해하는 세력이 꼭 필요했던 겁니다. 약속 성취란 그 반대 세력의 활발한 공격을 거치면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이러한 일련의 일들은, 약속 성취에 대해 그 어떤 피조물도 자신의 공로를 주장하기 못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스스로 자신의 일을 계획하시고, 시작하시고, 진행하시고, 마무리 지으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뿐임을 끝까지 분명히 해두기 위함입니다. 직물은 두 가닥의 실이 직조해서 생겨나듯이, 하나님만의 공로라는 직물을 짜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서슴없이 ‘피해자’라는 실로서 가담하고, 모든 피조세계는 ‘가해자’라는 실로서 가담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통해서 ‘약속’을 미리 주게 되면, 피조세계는 이 약속의 훼방하기 위해 움직이게 됩니다. 이 조심스러운 파장은 국가적 차원으로 움직이게 해서 조직적으로 힘을 모으게 되는데 ‘율법’이 가미되므로서 이 작업이 노골화됩니다. 즉 이스라엘 내부에서부터 율법을 통해서 하나님의 약속을 훼방토록 하시는 겁니다. 약속과 율법, 둘 다 하나님께로 나왔지만 약속에 대한 인간들의 오해는, 율법에 대한 인간들의 오해를 통해서 그 증거들을 남깁니다. |
다수와 단수 이근호
본문 말씀: 갈라디아서 3:14-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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