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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 믿음

야고보서(3) / 십자가마을 수련회 / 2001 본문

신약 설교, 강의(이근호)/야고보서

야고보서(3) / 십자가마을 수련회 / 2001

정인순 2014. 5. 11. 17:03


http://www.woorich.net/~woorich/신학강의/2001십자가마을겨울수련회-롬,약,이웃사랑/(3)야고보서3(십자가마을)(01,1).mp3

[ 야고보서(3) ] 
 
                                                   

십자가마을 수련회 / 2001,8,13-16 경남 양산 
                                                                   

강의(이근호) / 정리(구득영)
 
먼저 이번 수련회를 준비해주신 분들에게 감사를 드리는데, 특히 이창섭 목사님과 서경수 목사님이 고생을 많이 하셨는데 말이죠. 물론 함께 하신 여러분에게도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강의가 녹음이 되니까, 좀 느긋한 마음으로 들으셔도 싶은데 말이죠. 이제 마지막 강의를 시작하겠습니다.


◈ 세상적, 정욕적, 마귀적 !!
지난 시간 마지막에 했는데, 야고보서 3장 15절을 다시 보면,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세상적이요, 정욕적이요, 마귀적이니" 라고 되어있는데, 사실은 "세상적 = 정욕적 = 마귀적" 이라고 표현할 수가 있는 것이다. 즉 "이 세상은 정욕적이고, 이 세상은 마귀적이다" 라는 의미라는 말이다.
(약 3:15)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세상적이요 정욕적이요 마귀적이니
(약 3:16)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요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니라

왜 이것들이 똑같은고 하니, 이것이나 저것이나 어디에서 온 것은 아니라는 말인가? 아무튼 위에서 내려온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 땅에서 온 아무리 착한 것이라도 하나님은 인정하지 않는데, 그러니 위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고 하면, 모든 것이 다 세상적이고, 세상적인 것이 곧 정욕적이고, 정욕적인 것이 곧 악마적이라는 말이다.


◈ 왜 시기와 다툼이 생기는가?
그리고 여기 16절에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라고 하는데, 이것은 조금 있다가 설명할텐데, 이런 다툼과 시기는 위에서 온 자들에게는 해당사항이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권면은 할 수 있는데, 권면은 다툼이 아니라는 말이다. "니가 뭔데 나에게 권면을 하노?" 라고 하면, "아니면 말고" 라고 하면서 멈추면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권면에서 다툼으로 나가라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과의 싸움이 아닌데, 그런데 이 혈과 육이라는 것은 인간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니 우리의 싸움은 인간과의 싸움이 아닌 누구와의 싸움이란 말인가? 혈과 육이 없는, 즉 공중의 권세를 잡은 자인 악한 영들과의 싸움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악한 영들이라면 사람은 무조건 제외가 되는가? 그것은 아닌데, 악한 영들에게 조종을 받는 인간들이 있으니까 말이다. 아무튼 우리가 사람에게 이기는 것을 가지고 복음으로 승리한 것이라고 여기는 오류를 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사람과 싸우지 않는다면 시기와 다툼은 없어지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 4장 - '정욕으로 좇아난 것' !!
이제 4장을 보겠는데, 1절에 보면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 다툼이 어디로 좇아 나느뇨?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 좇아난 것이 아니냐?" 라고 하는데, 여기서 말하는 정욕은 세상 일 때문에 생기는 것인데, 그러니 그것이 바로 악마적이라는 말이다.
그러면 세상에 있는 어떤 것 때문에 정욕이 생기느냐는 것이다. 그것은 이 세상에서 잘 되고, 부자가 되고, 가난함에서 벗어나고, 결국 이런 것들이 쌓여서 시기와 질투를 내니까, 이것이 바로 세상적인 것이 아니고 무엇이냐는 것이다. 야고보서에서 하는 이야기가 그러한데, 그러니 그런 다툼에서 져도 괜찮다는 말이다. 무엇 때문에 그런 일로 시간을 허비하느냐는 말이다.
(약 4:1)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 다툼이 어디로 좇아 나느뇨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 좇아 난 것이 아니냐
그것이 또 나오는데, 여기 4절에 보면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라고 하면서 무엇과 벗된 것이라고 하는가? 세상과 벗된 것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이런 것이 성경을 보는데 참 힘이 드는데 말이다. 산다는 것은 세상과 더불어 있어야 사는 것인데, 돈이라는 것은 세상과 함께 하지 않으면 오지 않는데, 그러면 양식을 구할 수가 없고, 그러면 살아갈 수가 없다는 말이다.
 
(약 4:4)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에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게 하는 것이니라

그러니 그냥 사람이 아니라 세상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이 세상에서 열심히 일을 해야하고 말이다. 그런데 성경은 참으로 무책임하게 보이는데, 왜냐하면 그 다음에 보면 "세상에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라고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하나님이지만 너무 심하고 가혹한 것이 아니냐는 말이다. 


◈ 집사는 통장 5개, 장로는 7개만 바쳐라 !!
그러니 이런 말씀을 교회에서 잘못 해석하게 되면, "돈을 벌어서 이 세상에 두지 말고 교회에 맡겨라" 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세상과 벗된 자들이여, 이 세상의 사치와 향락에 빠진 것은 하나님과 원수가 된 것이다. 그러니 하늘나라에 보물로 쌓아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여러분이 직분을 받고 감사함으로 바치는 것이다. 집사는 통장 5개, 장로는 7개만 바쳐라" 라고 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제가 지금 주의해야한다고 한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하면, 반대로 이 세상직업을 다 끊고, 교회에서 사찰을 하던지 그렇게 살아야 하는가? 모두 그런 직업으로 모두 바꾸어야 하느냐는 말이다. 그런 직업이 몇 가지 있는데, 대형운전면허가 있으면 교회사찰을 하면 되고, 그게 아니면 기독교 서점을 운영하던지 하면 된다는 말이다. 물론 보기보다는 돈이 제법 많이 드는데 말이다. 그리고 셋째로는 기도원을 경영인데, 주로 이런 쪽으로 방향을 돌린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해서 다 망했다는 말이다.
그래서 스트레스를 받지 않은 부인이 없는데, 남자는 일만 벌려놓고 돌아다니면 되지만, 여자가 뒷치닥거리를 다 해야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부부사이가 좋지를 않지 싶은데,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이들은 또 많다는 것이다(ㅋㅋ). 그런데 기도원을 운영하려면 사기를 많이 당하는데, 부동산도 걸리고 말이다. 그리 만만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 이 세상에는 만만한 직업이 없어 !!
그리고 네 번째가 무엇인고 하니, '이랜드'와 같은 경우인데, 그런 기독교 계통에서 운영하는 옷가게를 차린다는 것이다. 하지만 권리금도 많이 들고, 이것도 역시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그게 안 되면 양품점을 하든지 말이다. 하지만 이것도 새벽에 동대문 시장에 가서 물건을 해와야 하는데, 보통 부지런하지 않으면 못한다는 것이다. 패션감각도 있어야하고 말이다.
이것도 안 되면 마지막으로 고아들을 데리고 고아원 원장을 하게 되는데, 하지만 돈이 있어서 하는 것도 아니고, 노는 땅에 판잣집을 짓고 하다가, 주인이 땅을 내놓으라고 하면 또 쫓겨나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어떻게 피할 곳이 없는데, 세상과 벗되지 말라고 했다고 해서, 어떻게 달리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말이다. 물론 젊었으면 신학교에 가서 목사라도 되면 되는데 말이다. 


◈ 세상 재미에 빠지지 말라 !!
그러니 우리는 성경에서 "이 세상과 벗되지 말라" 라고 하는 말씀을 포괄적으로 생각하지 말고, 너무 거창하게 다루면 안 된다는 말이다. 즉 세상 자체에 희망을 걸고, 사는 것에 재미를 붙이고, 거기에 몰입하는 여인들이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여자들은 예민하고 감성적이기 때문에 조금만 자극해도 그런 것에 빠지기 싶다는 말이다. 그렇게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에 온 힘을 다 쓴다고 하면, 그것이 곧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좁게 생각해야 하는데, 그것을 생활전체에 다 적용시키면 안 되고 말이다. 즉 "세상 재미에 빠지지 말라" 라는 것이다. 교회에도 그런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특히 나이가 들면 관광버스를 타고 '해바라기를 아시나요 ♬' 라고 하면서 흔드는데, 얼마 전에 진주에서 관광버스가 사고가 나서 30명이나 죽었다고 하는데, 안전벨트를 매고 있었으면 그렇게 되었겠느냐는 말이다.


◈ 교회에서 놀라가서 왜 가스펠송을?
그것까지는 좋은데, 그런데 제가 박사교회에 있을 때 화가 나는 것이 하나 있었는데, 너무나 은혜를 많이 받아서 다른 것은 다 잊었는데 말이다. 놀러가서 가스펠송을 왜 부르느냐는 것이다. '예수 이름으로 ♬' 라고 하면서 말이다. 물론 흔들지는 못하는데, 목사가 보고 있으니 말이다. 지금 몸이 근질근질한데, 부르는 가스펠송이 전혀 부르는 사람의 취향이 아니라는 말이다(ㅋㅋ).
그래서 우리교회에서는 어디로 놀러가려고 하면, 출발할 때 아예 기도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냥 "목사님, 이제 출발합시다" 라고 해서 곧 바로 출발하고 만다는 것이다. "주님, 가는 길에 버스기사를 주장하셔서 운전대를 주님이 잡아주시고,  어쩌고" 라고 하는데, 그게 무엇이냐는 말이다. 
사람들이 왜 그렇게 하는고 하니, 그게 자기 위로이고 위안이 아닌가 싶다는 것이다. 그리고 코스에 반드시 목욕이 있어서, "어허, 시원하다" 라고 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젊은 사람들은 절대로 같이 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히 여자들의 경우에, 누가 할머니들과 목욕을 하려고 하겠느냐는 말이다(ㅋㅋ).
물론 간식은 비닐봉지에다가 각각 준비해서 담는데, 그 내용물이 무엇인고 하니까, 땅콩 알사탕 2개, 호박엿 2개, 허연 떡 1개, 요구르트 1개, 오징어를 찢어서 만든 진미채 조금, 메뉴도 그렇게 정해져있다는 말이다. 물론 젊은 사람들도 이렇게 놀러 가는 것이 나중에 나이가 들면 그립겠지만 말이다.
그런 것들이 무엇인고 하니까, 억눌려있는 것을 참고 있는 모습이라는 것이다. 세상은 싫고 하나님이 좋아서 그런 것이 아니라, 흔들고는 싶은데 그래서 기독교식으로 흔든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는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하는데, 일종의 가면이고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이다. 하지만 나이가 많은 사람은 그런 재미로 놀러가기 때문에, 물론 운동도 되고 말이다. 농사만 짓다가 밖으로 나가니 저절로 신이 난다는 것이다.


◈ 성령이 있는 사람은, 결코 하나님과 원수가 될 수 없어 !!
그리고 여기 5절 말씀을 보게 되면, "너희가 '하나님이 우리 속에 거하게 하신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 하신 말씀을 헛된 줄로 생각하느뇨?" 라고 하는데, 그러니 자기 안에 성령이 있는 사람은 결코 하나님과 원수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약 4:5) 너희가 하나님이 우리 속에 거하게 하신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 하신 말씀을 헛된 줄로 생각하느뇨
그리고 여기 6절에 겸손이 나오는데, 그러니 겸손이 무엇인고 하니, 사라진 것에 대해서 미련이 없는 사람을 두고 겸손하다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진정한 겸손은 무엇인가? 위로부터 오는 것만을 사모하는 것을 의미한다는 말이다.
(약 4:6)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그리고 9절에서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지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지어다" 라고 하는데, '울어라' 라는 말이 아닌데, 왜냐하면 운다고 되는 것이 아니니 말이다. 그런 것은 다 없어진다는 것을 왜 모르느냐는 말이다. 그렇게 사라지는 것에 왜 자기 목숨을 거느냐는 것이다. 그런 이 세상의 헛된 것이 어떻게 세상의 전부가 되느냐는 말이다.
(약 4:9)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지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지어다
그러니 야고보서에서 하는 말은 정상적인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 아닌데, 아마 그 당시에 예수님을 빙자하고 교회를 빙자해서 여전히 세상에 탐닉하는, 그런 자들에게 하는 이야기라는 말이다. 그러니 우리가 여기에 대해서 너무 예민하게 반응할 필요는 없지만, 항상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 12절에 나오는 입법자는 아까 이야기를 했는데, 즉 자기가 믿음이 좋다고 해서 남을 핍박하지 말라는 것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 자기는 율법대로 많이 지켰다고 하면서, 율법을 적게 지킨 사람들에 대해서 함부로 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런 판단은 오직 하나님만이 하신다는 말이다.  
(약 4:12) 입법자와 재판자는 오직 하나이시니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너는 누구관대 이웃을 판단하느냐


◈ 장사에 미치지는 말라 !!
이제 13절을 보면,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아무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유하며 장사하여 이를 보리라' 하는 자들아" 라고 하는데, 표현이 재미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게 장사를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그렇다고 해서 농촌으로 가서 "흙에 살리라" 라고 하라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약 4:13)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아무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유하며 장사하여 이를 보리라 하는 자들아
그러면 무엇인가? 장사는 하되, 즉 도시에서 살되, 무엇은 하지 말라는 것인가? 이 세상에서 성공하고야 말겠다고 하는, 즉 "인간들아, 내가 얼마나 대단한 인간인지를 봐라" 라고, 그것을 위해서 목숨을 걸지는 말라는 것이다. "내가 결혼을 해서 얼마나 훌륭한 자식을 낳는지 봐라. 박지성보다 더 훌륭한 놈을 낳을 것이다" 라고 말이다. 현재 그의 연봉이 126억인데, 역대 최고의 연봉이라는 말이다. 물론 자식자랑을 어느 정도는 할 수 있지만, 그것이 지나쳐서 탐욕이 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결혼을 하고 나면 자연스럽게 아이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되는데, 물론 서로 이야기를 하면서 정보를 얻는 것은 좋지만, 무슨 학습지가 저렴하고 좋은지, 그런 정보를 말이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라, 자기 자식만을 자랑하면서 남에게 상처를 주니까 문제라는 것이다.
장사를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도시에 가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해서 이익을 남기겠다고 하는, 즉 거기에 자기의 모든 것을 다 거는 것은 안 된다는 말이다. "그래, 굶어죽을 수는 없고 장사나 하면서 먹고살아야지. 그렇지 않으면 남에게 피해를 주니 말이야" 라고 하면 되는데 말이다.


◈ 근로의 의무는 지켜야 !!
우리나라의 법에 보면 여러 가지 의무가 있는데, 그 중에서 근로의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대부분이 잘 모르는데 말이다. 물론 일자리가 없으면 할 수가 없지만 말이다. 그리고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국방의 의무도 있는데, 사실은 여자도 지키게 되어있다는 것이다.
프랑스의 경우에는 모든 여성들이 일주일 동안 입소해서 정신교육을 받는다는 것이다. 일종의 예비군 훈련인데, 물론 남자들은 기간이 더 길고 말이다. 중국의 경우에도 모병제가 아닌데, 미국도 그렇고 말이다. 그렇게 국방의 의무도 있지만, 노동의 의무도 있다는 것이다. 납세의 의무도 있고 말이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라" 라고 하는데, 목사의 제일 큰 위기가 무엇인고 하니, 할 일이 없다는 것이다. 물론 큰 교회 목사의 위기는 할 일이 많은 것이 위기이고 말이다. 너무 바빠서 공부를 못하니 말이다. 그러니 큰 교회의 부목사들은 그야말로 위기인데, 돈과 하나님을 바꿔치기를 해야하니 말이다.
(살후 3:10)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도 너희에게 명하기를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하였더니
이것은 제 이야기가 아니고, 박사교회에 후임으로 오신 목사님이 하시는 말씀인데, 그동안 부목사로 있으면서 기획안만 짠다고 성경공부를 하나도 못했는데, 이제는 좀 하고 싶다고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제가 마음껏 하라고 했는데, 얼마나 공부를 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은지 모른다는 것이다. 주일오전예배, 주일오후예배, 주일학교예배, 중고등부예배, 수요예배, 새벽기도회 등등, 얼마든지 있다는 것이다. 
물론 다른 사람들을 베끼기를 하지만, 그 목사님은 독일에 유학까지 갔다왔으니 그렇게는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교회로서는 얼마나 큰 은혜인지 모른다는 것이다. 그런데 박사교회는 그것도 모르고 엉뚱한 소리를 하는데, 그래서 제가 그 목사님에게 얼마나 미안한지 말이다.


◈ 인간은 환경에 따라서 !!
그건 그렇고, 여기 13절에서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아무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유하며 장사하여 이를 보리라" 라고 하는 것은, 남에게 드러내기 위한 과시용인데 말이다. 그러니 인간의 본래 모습이 언제 드러나는고 하니,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만나보면, 환경에 따라서 어떤 사람은 360도, 또 어떤 사람은 320도, 어떤 사람은 280도, 또 어떤 사람은 120도가 바뀐다는 것이다.
그런데 바뀌지 않는 사람은 그대로 대학교에 가서 공부만 하는 경우인데, 환경이 거의 변화가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환경에 따라서 다 바뀐다는 것이다. 즉 검사가 된 인간과 학교 선생님이 된 경우에는 다르다는 말이다. 노는 물이 다르니 말이다. 물론 어느 것이 낫다고 할 수는 없지만, 아무튼 다 다르다는 것이다. 백수로 있는 사람은 거의가 착한데, 겸손하고 말이다. 가진 것이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직장에 들어간 사람은 돈밖에 모른다는 것이다.
* 친구A : 친구야, 오랜만이다. 요즘 어떻게 지내노?
* 친구B : 아직 대학원에 다니면서 공부하고 있어.
* 친구A : 그러면 취직은?
* 친구B : 취직이 안 되었으니 학교에 다니지. 그러면 너는?
* 친구A : 응, 나는 삼성전자에 입사했어.
* 친구B : 그래, 좋겠네, 얼마나 받는데?
* 친구A : 연봉이 3000정도가 돼. 그냥 평균 수준이지.
* 친구B : 너, 그런데 좀 변한 것 같다.
* 친구A : 그래 변했어. 그건 그렇고 밥이나 먹으러 가자.
* 친구B : 알았어.

그런데 또 이런 경우도 있는데, 자기 첫사랑이 보고 싶어서 인터넷으로 겨우 겨우 찾아서 만났다는 것이다. 물론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예를 들어서 말이다.
* 친구C : 친구야, 오랜만이다.
* 친구D : 그래, 너도 잘 있었지?
* 친구C : 참 곱던 너의 모습이 많이 변했어.
* 친구D : 나이가 들면 할 수 없잖아.
* 친구C : 인생이 뭔지, 벌써 나이가?
* 친구D : 그래, 참 허무하지.
* 친구C : 그래, 맞아.
* 친구D : 그러니 너도 노후를 대비해야지?
* 친구C : 그렇지.
* 친구D : 그러면 보험이나 하나 들어줘라.
* 친구C : 보험? 응, 알았어.
* 친구D : 정말 고마워.

이것이 인생인데, 환상이 그만 한꺼번에 다 무너지고 만다는 것이다. 누구의 말처럼 인생은 생방송인데, 어떻게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잘 되었던 못 되었던 간에, 즉 "내가 얼마나 잘되고, 니가 얼마나 못되었는가?" 라고 자랑하는, 그런 인간도 역시 예수님의 복음을 모르는 인간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촌에서 살다가 도시에 나가서, "나는 무엇을 팔고? 니는 무엇을 팔고?" 라는 것을 따진다는 것 자체를, 야고보서 4장에서는 그런 짓은 하지 말고 "위를 바라보자" 라고 한다는 것이다. 출세를 한들 그것이 몇 년을 가겠느냐는 것이다. 효자도 3년밖에 못 가는데 말이다. 


◈ YOU ARE A '안개' !!
그리고 여기 14절에 보면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라고 하는데, 이 내일 일이 무엇인가? 죽는다는 말인데, 그래서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라고 한다는 것이다. 안개라는 것은 아침에 있다가 그만 사라지는 것인데, 분명히 여기에 있었는데 그방 없어진다는 말이다. 분명히 저기 산자락에 안개가 있었는데, 그래서 산이 잘 보이지 않았는데, 그런데 돌아서니 그만 사라지고 없다는 말이다.
(약 4:14)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그러니 안개라고 하는 것이 "축축하고 촉촉하다. 분위기가 좋다" 라고 하든지, 혹은 "앞이 잘 보이지 않는다. 조심하자" 라는 의미가 아니라는 것이다. 사실 안개가 자욱한 길에서 차를 몰아보면 정신이 하나도 없는데 말이다. 바로 앞에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안개라는 의미는, 잘 되어도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못 되어도 사라지는데, 즉 "언제 그 인간이 있었는가?" 라고 할 정도로 우리 뇌리에서 그만 사라지고 없다는 것이다.


◈ 모든 것을 주님께 맡겨라 !!
그러면 어떻게 하라는 말인가? 그게 15절에 나오는데, 즉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 라고 말이다. 쉽게 말해서, 주의 뜻이면 살기도 하고 죽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는 인생을 살아라. 그러면 그것이 곧 참된 인생이다" 라는 것이다.  
(약 4:15)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 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
(약 4:16) 이제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자랑하니 이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

그리고 여기 17절에 보면 "이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치 아니하면 죄니라" 라고 하는데, 이것은 누구에게 하는 이야기인가? 이미 예수님을 안다는 것을 선으로 보지만, 그러나 율법, 즉 성경말씀이 폼으로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즉 "니가 예수를 알고 복음을 안다고? 그런 놈이 이러한 행동을 한다는 말인가?" 라는 것인데, 즉 예수님을 안다고 하면서 자기 자랑에 빠져있는 사람들에게 하는 이야기라는 말이다.
(약 4:17) 이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치 아니하면 죄니라
그런데 이것이 "그러면 그런 동네에 가서 살아야 한다(?)" 라는 의미가 아니라, 하도 복음이 왜곡되고 있으니, 서로 자기가 안다고 하면서 말이다. 그래서 "이런 놈도 아니고, 저런 놈도 아니다" 라고 가려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보면 된다는 말이다. "이대로 완벽해" 라는 것이 아니고 말이다.
이 세상에 완벽한 사람이 어디에 있는가? 그러니 우리는 이 말씀을 늘 들여다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내가 기도해서 잘되었다" 라고, 그런 식으로 자기를 너무 자랑하지 말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아무리 그렇게 해도 안개에 지나지 않으니 말이다.  이렇게 '안개' 라는 좋은 성경적인 단어가 있는데, 그런데 아이를 낳아서 '김안개' 라고 짓는 것을 보지 못했는데 말이다. 다윗이나 에스더는 많이 있는데, 물론 밤안개는 있지만 말이다(ㅋㅋ).


◈ 5장 - '왜 부자가 욕을 얻어먹어야만 하는가?'
이제 5장을 보겠는데, 여기 1절에 보면 "들으라, 부한 자들아!" 라고 하는데, 사실 이것은 우리가 굳이 할 필요가 없지 싶은데 말이다. 혹시 여러분 가운데 부자가 있는지 모르겠는데, 없지요? 그런데 이 5장에서 난해한 것이 있는데, 그것이 무엇인고 하니, 여기 1절에서 "들으라 부한 자들아, 너희에게 임할 고생을 인하여 울고 통곡하라" 라고 하는데 말이다.
그것은 바로 "왜 부자가 욕을 얻어먹어야만 하는가?" 라는 것이다. 그것도 인간을 대표해서 말이다. 왜 그러하냐는 말이다. 부자들 중에서도 믿음이 좋은 사람이 있을 수 있는데,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분명히 부자였는데, 그래서 예수님의 매장지를 마련할 수 있는 여력이 있었다는 것이다.
(막 15:43)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와서 당돌히 빌라도에게 들어가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니 이 사람은 존귀한 공회원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
어디 돈이 있고 부동산이 있다고 해서 나쁜가? 그런데 왜 야고보서에서는 부자를 악한 자의 대명사로 사용하느냐는 것이다. 그것을 야고보서에서는 하나로 보는데, 즉 돈이 문제가 아니라, 그런 돈을 '모아놓았다' 라는 것이다. 즉 '축적'을 했다는 말이다.
무슨 논리인지 잘 들어야 하는데, 먼저 "부자가 모아놓은 재산이 많다" 라는 것이고, 그 다음과정이 "그 모아놓은 재산이 어디에서 나왔는고 하니, 자기 것이 아니라 남의 것이다" 라는 것이고, 그런데 "그렇게 남의 것을 모아놓았더니만 바깥에서 울고불고 난리가 났다. 그러니 누가 그들을 울렸는가?" 라는 것이다. 그렇게 되니, "부자는 남을 울린 나쁜 놈이다" 라고 된다는 말이다. 그래서 야고보서에서는 부자를 두고 나쁘다고 한다는 것이다.


◈ 노동자와 경영자 !!
그런 이야기가 야고보서에 계속해서 나오는데, 그러니 노동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이런 구절을 좋아하지 싶은데 말이다. 현재 한국노총이나 민주노총에서 내세우는 철학이 무엇인고 하니, "자본가, 즉 경영자를 하나의 노동자로 간주해달라" 라는 것이다. 그러니 노동자를 그렇게 둘로 나누는 것 자체를 용납하지 못하겠다는 것인데, 그렇게 나누게 되면, 자본가는 특권계급이기 때문에 아무리 그들이 베풀어주어도 같은 한 식구는 아니라는 것이다.  
노동계에서 하는 말이 무엇인고 하니, "우리는 다 같은 한 민족이고, 배달의 민족이다" 라고 하는데, 그런데 그렇게 하나의 공동체라고 하면, 말만 그렇게 하지 말고, 국가는 공동체를 위해서 존재하니, 국가가 공동체를 깨지 말고 하나로 만들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나로 만들기 위해서는 자본가도 노동자로 포함을 시켜야한다는 말이다. 그러면 회사는 죽어도 자본가는 살아남는 일은 없어진다는 것이다.
그렇게 자본가를 노동자로 만들게 되면, 자본가는 한 명이고 노동자는 백 명인데, 그러면 민주주의의 원리에 의해서 어떻게 되는가? 자본가는 죽이고 노동자를 살려야하는데, 그것이 국가가 해야할 몫이 아니냐는 것이다. 말이 되는데, 그러므로 국가란 모든 민중들의 단합인데, 그런데 민주주의에 의하면 소수인가? 다수인가? 다수결이라는 것이다. 완전히 일치가 되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렇다면 누가 소수인가? 자본가가 소수이고, 노동자가 다수라는 것이다.
그러면 국가가 누구의 편에 서야하는가? 당연히 노동자의 편에 서야한다는 말이다. 물론 돈은 자본가가 많지만 말이다. 그러니 국가가 인간을 먼저 생각한다고 하면, 인간 위주의 나라가 되어야만 하지, 돈 위주의 나라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면 민중들은 그만 희망이 사라지는데, 즉 산다는 것에 대한 행복이 없어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민중들은 사람답데 살고 싶다는 것인데, 상대적인 박탈감이 없이 말이다.
그래서 "무엇을 평등으로 볼 것인가?" 라는 것이 사회학에서 그만 골칫거리가 되고 말았는데, 보통은 기회균등이 평등이라고 하는데, 즉 가난한 사람이나 부자에게나, 그리고 여자에게나 남자에게나 모두 골고루 기회를 주자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 대구지하철에서 직원을 뽑으면서 여성에 대해서 차별조항을 두었다가 그만 걸렸다는 것이다. 그래서 고발을 당했는데 말이다.


◈ 무엇을 평등으로 볼 것인가?
그러니 이런 평등의 문제, 성차별의 문제, 그리고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하는, 그런 차별이 있다는 것이다. 민주주의라는 것은 인간 위주이지 사회 위주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면 기회균등의 평등을 할 것인지, 아니면 분배의 평등인지 말이다. 여기서 말하는 분배의 평등은 무서운(?) 것인데, 즉 사회주의라는 말이다.
레닌이 말한 것이 무엇인고 하니, 어떤 사람은 힘이 없어서 노동을 적게 해서 물건을 천 원어치밖에 사지를 못했는데, 그런데 다른 어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힘이 좋아서 물건을 만 원어치나 샀다고 하면, 그러면 그 사람만 고기에 쌀밥을 먹어야 하느냐는 것이다. 그러면 신체적 조건에 따라서 그런 불평등을, 태어날 때 그렇다고 해서 그 이후에도 계속 그렇게 되어야 하느냐는 말이다. 그러니 그것을 국가에서 바로잡아서 균등하게 해주는 것이 옳다는 것이다.
이것이 곧 사회주의의 모토인데, 그것을 두고 "능력에 따라서 일하고, 필요에 따라서 배급받자" 라고 한다는 말이다. 이소라가 '아, 대한민국' 이라는 노래를 부르면서 뭐라고 하는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얻을 수 있고 ♬" 라는 대목이 있는데, 그것이 레닌의 사회주의 혁명에 나오는 문구라는 것이다. 유신시절 같으면 당장에 잡혀간다는 것이다.


◈ 기회균등인가? 소득분배인가?
그러니 "기회균등인가? 소득분배인가?" 라는 것인데, 그야말로 골치 아픈 문제라는 말이다. 기회균등을 주었는데, 그런데 아이큐가 높은 사람은 한 시간만 공부해도 되는데, 그렇지 않은 사람은 안 되더라는 것이다. 이런 것을 귀찮게 생각하며 안 되는데, 이런 것이 곧 우리의 직장문제이고 우리의 삶과 밀접하게 연결된 것이란 말이다. 
그래서 중국의 경우에는 시간균등인데, 즉 의사가 하루에 10시간을 일하고 광부도 10시간을 일했는데, 그런데 그만 의사에게 월급을 많이 주게 되면, 그것은 다 같은 인간으로서 소외가 되니 안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시간으로 공평하게 해서 준다는 말이다. 즉 교수나 의사가 된 것은 머리가 좋아서 된 것이니, 그것으로 더 이익을 볼 생각은 하지를 말라는 것이다. 남에게 피해를 주면 안 된다는 말이다. 물론 열심히 했지만, 하지만 머리가 나쁜 사람은 아무리 열심히 해도 안 된다는 것이다. 
중국은 이렇게 시간으로 하는데, 그런데 이렇게 하니까 나라꼴이 말이 아니라는 것이다. 왜 북한에서 별 보기 운동을 하고 천리마 운동을 하는가? 민중들이 워낙 농땡이를 치니 그렇다는 말이다. 그래서 군대에서도 일을 시키면 진도가 제대로 안 나가는데, 그런데 노가다 팀에게 맡기면 어떻게 되는가? 하루종일 해야될 일을 반나절이면 끝낸다는 것이다. 죽으라고 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미국에서 '컨베어시스템' 이라고 해서 성과급 제도가 나왔다는 것이다. 즉 성과를 많이 내면 추가적인 임금을 더 주고, 그리고 빈자리가 있으면 또 다른 사람을 넣어서 효율적으로 한다는 말이다. 그렇게 해서 월급을 더 많이 준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게 안 되는데, 왜냐하면 요즘은 생산이 문제가 아니라 소비가 생산을 유도하기 때문에 말이다. 이제는 경영기법이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 어떻게 평등할 수 있을까? 방법은 '없음' !!
지금 제가 이야기하는 것이 무엇인고 하니, "어떻게 평등할 수 있을까?" 라는 것인데, 이 평등은 1789년에 일어난 프랑스 혁명에서도 이루지를 못했다는 것이다. 귀족과 민중들이 충돌했는데, 그런데 그때 파리에서 유능한 과학자들이 다 죽고 말았는데, 지금도 그들은 그게 아까워서 미친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과학자들은 군대에 보내지 않는데, 그런 과오를 범하기 않기 위해서 말이다.
바둑기사인 이창호가 군대에 가는 것을 사람들이 말렸는데, 그래서 이창호나 박찬호는 군대에 가지 않았다는 것이다. 외국에서 돈을 버는 것이 훨씬 더 국가에 이익이니 말이다. 그냥 4주 훈련만 받고 끝냈다는 것이다. 지금도 과학자들은 군대에 가지 않는데, 박사학위를 받으면 말이다. 4주 훈련으로 면제라는 것이다. 그러니 평등은 말뿐인데, 즉 "평등했으면 좋겠네!" 라는 것으로 끝이라는 말이다.
그리고 열심히 일한 사람이나 대충 일한 사람이나 받는 돈이 같다고 하면 누가 열심히 하겠느냐는 것이다. 지금 핀란드나 뉴질랜드와 같은 나라에서는 이 문제로 골치가 아픈데, 일을 하지 않는 자들에게 너무 많은 혜택을 주어서 그만 국가재정이 바닥나고 말았다는 것이다. 경제성장은 제대로 되지 않고 말이다. 뉴질랜드는 세금이 무려 33퍼센트라고 하는데, 돈을 벌면 그 자리에서 3분의 1이 날아가고 만다는 것이다. 그러니 누가 열심히 일을 하겠느냐는 말이다. 


◈ 야고보서 - '참아라' !!
이 평등의 문제는 제가 장담하지만 영원히 해결되지 않는데, 물론 주체사상으로도 전혀 안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야고보서의 문제도 마찬가지로 이 땅에서는 해결되지 않는데 말이다. 그래서 야고보서의 해결책은 무엇인고 하니까, '참아라!'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7절에 보면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의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라고 하는데, 언제까지 참아야하는가? 주님이 곧 오시니, 그때까지만 참으면 된다는 것이다. 그것을 9절에서는 "보라, 심판자가 문 밖에 서 계시니라" 라고 한다는 말이다. 그러니 엄청 빨리 오는데, 벌써 문 앞에 있으니 말이다.
여기에 나오는 '이른 비와 늦은 비'의 경우에, 이른 비가 있다는 것은 늦은 비가 있다는 것인데, 그러니 이른 비로 역사가 끝난 것으로 여기지 말고, 늦은 비의 요량으로 누구를 기다리는고 하니까, 이런 저런 고통과 아픔을 다 헤아리고 계시는 예수님을 기다리는 것이 곧 신앙이라고 한다는 말이다.
(약 5:7)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의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약 5:8)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약 5:9) 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 보라 심판자가 문 밖에 서 계시니라

그러니 "예수님도 믿고, 이 땅에서는 참고 기다려라" 라고, 그렇게 된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모든 것을 다 아시니, 우리가 돈을 떼인 것도 말이다. 그런데 거기에 대해서 참지 못한다고 하면 어떻게 되는가? "그러니 너는 법을 몰라" 라고 나온다는 것이다.
4장 끝에서는 우리를 보고 안개라고 했고, 또 5장에서는 더 참으라고 하고, 그러니 이러한 성경말씀이 이 세상과 벗된 사람들에게 그 무슨 위로가 되겠느냐는 말이다.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이 야고보서는 "사라질 것들에게 대해서 미련을 버려라" 라고 한다는 것이다.


◈ 주님은 욥에게 하신 것과 동일한 긍휼을 !!
그리고 11절에 보면,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는 자시니라" 라고 하는데, 이게 무슨 의미인가? "너희가 사랑이 모자라고, 자비가 모자라는가? 하지만 걱정하지 말라. 주님은 욥에게 하신 것과 동일하게 너희에게 자비와 긍휼을 베푸신다" 라는 것이다. 그러니 주님에 대해서 섭섭하게 생각하지 말라는 것이다.
(약 5:11)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는 자시니라
(약 5:12) 내 형제들아 무엇보다도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나 땅으로나 아무 다른 것으로도 맹세하지 말고 오직 너희의 그렇다 하는 것은 그렇다 하고 아니라 하는 것은 아니라 하여 죄 정함을 면하라



◈ 참아야 하느니라. 그게 곧 믿음이다 !!
사람들마다 다들 한(限)이 있는데, 물론 그것은 욕심에서 나오지만 말이다. 우리가 이 땅에서 살면서 한 순간이라도 한이 맺히지 않은 적이 없는데, 아침에 눈을 떠도 한, 또한 밤에 눈을 감아도 한이라는 것이다. 심지어 국민들이 이번에 히딩크에게도 한이 맺혔는데, '5대 빵'이 뭐냐는 것이다. 그 잘하던 고종수를 왜 뺐느냐고 하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가 모두 다 나온다는 것이다. 박찬호도 자유계약으로 바꾸고 말이다.
그렇게 온갖 한에 다 맺혀서 설칠 때, 우리는 그들에게 뭐라고 해야하는가? "참아라. 참아야 하느니라. 그게 곧 믿음이다" 라고 해야한다는 것이다. 옛날에 청상과부에게도 시어머니들이 그런 말을 했는데, 하지만 죽고 난 다음에 열녀문을 세워주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것이다.  


◈ 당신은, 당신의 죄를 압니까?
이제 마지막으로 여기 15절을 보면,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 라고 하는데, 그러니 이 병은 무슨 병인가? 죄 때문에 특별히 하나님께서 내리신 병이 있는데, 그런 병은 그 사람이 자기 죄를 알면 하나님께서 알아서 처리해주신다는 것이다.
(약 5:15)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얻으리라
그러니 여기에서 기도를 하라는 것은, 그런 사람에게 찾아서 권면하는 것인데, 그러니 그 사람은 먼저 자기 죄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목사는 반드시 죄를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심방을 가서 "지금 아픕니까? 기도하시면 병이 낫습니다" 라고 하면 정말 곤란하다는 것이다. 
* 목사 : 당신은, 당신의 죄를 압니까?
* 병자 : 나는 잘못한 것이 없어요.
* 목사 : 그러면 야고보서는 보았습니까?
* 병자 : 야고보서처럼 살라고 하면 곤란합니다.
* 목사 : 하지만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찾습니다.
* 병자 : 그래서 저보고 어쩌란 말입니까?
* 목사 : 안녕히 계셔요.
* 병자 : 잘 가세요.



◈ 주여, 죄를 알고 사랑을 알게 하소서 !!
그러니 기도는 항상 말씀대로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저들의 죄를 알게 해주소서" 라고 말이다. 제가 박사교회에 있을 때나 지금 우리교회에서 기도하는 내용이 하나밖에 없는데, 즉 "주여, 저들의 죄를 알게 해주시고, 그리고 주님의 사랑을 알게 해주소서" 라고 말이다.
먼저 죄를 알아야 사랑을 아는데, 그런데 죄를 모르면 교만해져서 자꾸만 달라고 기도하는데, 그것이 곧 죄라는 것이다. 이 세상 것에 대해서, 사라질 것에 대해서, 그런 것을 얻어서 도대체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지, 그리고 "교회가 부흥되게 하옵소서" 라고 하는데, 왜 그런 짓을 하느냐는 말이다.
자기가 영생을 받은 것만 해도 고마워해야 하는데, 그것이 곧 자기 죄를 아는 것이란 말이다. 그것이 곧 주님의 사랑이고 말이다. 그러니 그것이 바로 목사만이 아니라, 모든 믿는 자들의 기도내용이 되어야한다는 것이다. "주여, 저들이 죄를 알고 사랑을 알게 하소서" 라고 말이다.
* 교인 : 목사님, 저희들을 위해서 기도합니까?
* 목사 : 예, 합니다.
* 교인 : 내용이 무엇입니까?
* 목사 : 사랑을 알게 해달라고 합니다.
* 교인 : 에이, 그것은 기본인데, 그것 말고 다른 것도 있어야 됩니다.
* 목사 : 그게 뭡니까?
* 교인 : 자식이 잘 되고, 남편도 승진하고 말입니다.
* 목사 : 당신은, 당신의 죄를 아십니까?
* 교인 : 그런 것은 몰라요.
* 목사 : 죄를 모르면, 사랑도 모르고, 그것으로 끝입니다.

이런 것이 바로 세상에서 남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마음인데, 자기 자식이 좋은 대학에 갔다는 것을 말이다. 여기 16절에 보면 방금 제가 이야기한 것이 나오는데, 즉 "이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라고 한다는 것이다. 특히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라고 말이다.
(약 5:16) 이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
그러니 병이 낫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기본은 죄인데, 그러면 그 죄는 어디서 발견할 수가 있는가? 야고보서를 보라는 것이다. 사라질 것에 대해서, 헛된 것에 대해서, 그런 것에 대해서 우리가 얼마나 욕심을 부리고 있는지, 그러니 욕심이 잉태해서 결국 죄와 사망과 병, 그 모든 것을 다 일으킨다는 말이다. 


◈ 그러니 잊어버리자 !!
지금 제가 이야기하는 것을 오해하면 안 되는데, 즉 "사라질 것을 버려라" 라는 것이 아니고, "거기에 대한 미련을 버려라" 라는 것이다. 주신 것을 은혜인 줄로 알고 말이다. 미련은 자기를 괴롭히는 것인데 말이다. 망각은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이다. 그래서 기억은 잊어버려야하고 망각은 실시가 되어야 하는데, 그렇게 잊어버릴 줄 아는 자가 정말로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자라는 것이다.
특히 목사의 경우에는 말을 얼마나 많이 하는지 모르는데, 하지만 잊어버리라는 것이다. 본의 아니게 남을 험담한 것도 잊어버리고, 욕한 것도 잊어버리고 말이다. 그런 것을 가지고 윤리와 도덕으로 시비를 걸려고 하는 자들도 역시 잊어버리고 말이다. 그렇게 잊어버리는 것이 윤리적으로 완벽한 것보다 낫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완벽하게 해서 실수를 하지 않으려고 하지 말고, 또 반드시 실수를 할 것이니 잊어버리라는 말이다. 인간은 자기가 실수를 하지 않는다고 해놓고, 실수를 하지 않은 적이 없다는 것이다. 고통스러워하지 말고 잊어버리라는 것이다. 자기의 잘못도 잊어버리고 말이다.
그렇게 될 때, "당신은 정말 중심이 제대로 서 있다. 어떻게 그렇게 한결같을 수 있는가?" 라는 소리를 듣게 되는데, 왜냐하면 흔들림이 없으니 말이다.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고 말이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라 "당신은 왜 그렇게 정서가 불안한가? 당신 옆에 있으면 나도 혼란스러워" 라고 나온다면, 그것이 만약에 자기 아내라고 하면 같이 살아갈 수가 없다는 것이다. 돈은 없어도 살 수 있을지 몰라도, 정서가 불안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정말 미친다는 것이다.


◈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
그런데 여기에 보면 정서불안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중심이 똑바로 잡힌 자가 등장하는데, 그게 누구인가? 엘리야인데, 그가 어느 정도로 고집이 강한고 하니, 비가 와도 오지 않도록 기도했다는 것이다. 끝까지 "하나님, 비가 오지 않도록 해주세요" 라고 기도했다는 말이다. 그런 사람이 비가 오게 해달라고 기도하니, 또 비가 온다는 것이다.
(약 5:17)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저가 비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아니오고
(약 5:18) 다시 기도한즉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내었느니라
(약 5:19) 내 형제들아 너희 중에 미혹하여 진리를 떠난 자를 누가 돌아서게 하면
(약 5:20) 너희가 알 것은 죄인을 미혹한 길에서 돌아서게 하는 자가 그 영혼을 사망에서 구원하며 허다한 죄를 덮을 것이니라



◈ 결론 -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모든 미련을 버려라' !!
그리고 그것은 비단 비의 문제가 아니라, 언약이 실시되지 못한 죄 때문에 기도했다는 말이다. 그러니 병에 걸렸다고 해도, 그 병이 낫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죄 문제를 위해서 기도하게 될 때, 그 죄가 사라지면 병도 낫는다고 하는 것이 야고보서의 특징이라는 것이다. 죄의 징벌로 인한 병일 경우에 말이다.
그러니 결국 병에 걸리는 환경, 말을 많이 하는 환경, 교회에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 찾아오는 환경, 그리고 이 세상과 벗된 사람이 찾아오고, 또한 이 세상과 간음한 여인이 찾아오는, 그런 모든 환경에 대해서 우리는 무엇을 이야기해야 한다는 말인가? 그리고 돈을 벌기를 원하는 환경, 그런 사람들이 우글거리는 교회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그것은 한 마디로 말해서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미련을 버려라. 모든 좋은 것은 이미 하나님께서는 하늘에 모두 마련해놓았다" 라고 하는 것을 증거하는 것, 그것이 바로 야고보서에서 말하는 '믿음에 합당한 행함' 이라고 한다는 말이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욕심을 내어서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다는 것을, 그리고 그러한 욕심이 오히려 우리의 가슴을 찌르고 고통스럽게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하셔서, 그래서 다 잊어버리고 기억하지 않도록 은혜를 베푸셔서, 우리의 인생이 안개임을 깨닫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