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과 믿음
이사야 60:15-22 / 이스라엘의 영광성 본문
162강-사60장,15-22,(이스라엘의영광성)-isa08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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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영광성
2008년 10월 15일 이근호
본문 말씀: 이사야 60:15-22 (사 60:15) 『전에는 네가 버림을 입으며 미움을 당하였으므로 네게로 지나는 자가 없었으나 이제는 내가 너로 영영한 아름다움과 대대의 기쁨이 되게 하리니』 (사 60:16) 『네가 열방의 젖을 빨며 열왕의 유방을 빨고 나 여호와는 네 구원자, 네 구속자, 야곱의 전능자인 줄 알리라』 (사 60:17) 『내가 금을 가져 놋을 대신하며 은을 가져 철을 대신하며 놋으로 나무를 대신하며 철로 돌을 대신하며 화평을 세워 관원을 삼으며 의를 세워 감독을 삼으리니』 (사 60:18) 『다시는 강포한 일이 네 땅에 들리지 않을 것이요 황폐와 파멸이 네 경내에 다시 없을 것이며 네가 네 성벽을 구원이라, 네 성문을 찬송이라 칭할 것이라』 (사 60:19) 『다시는 낮에 해가 네 빛이 되지 아니하며 달도 네게 빛을 비취지 않을 것이요 오직 여호와가 네게 영영한 빛이 되며 네 하나님이 네 영광이 되리니』 (사 60:20) 『다시는 네 해가 지지 아니하며 네 달이 물러가지 아니할 것은 여호와가 네 영영한 빛이 되고 네 슬픔의 날이 마칠 것임이니라』 (사 60:21) 『네 백성이 다 의롭게 되어 영영히 땅을 차지하리니 그들은 나의 심은 가지요 나의 손으로 만든 것으로서 나의 영광을 나타낼 것인즉』 (사 60:22) 『그 작은 자가 천을 이루겠고 그 약한 자가 강국을 이룰 것이라 때가 되면 나 여호와가 속히 이루리라』
성경에서 말하기를, 구원이란 행함으로가 아니라 믿음으로 이루어진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행함과 믿음의 차이를 알아야 하겠지요. 오늘 본문 22절에 보면. “따가 되면 여호와가 속히 이루리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하나님에 의해서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겁니다. 바로 이 사실을 받아들이면 믿음입니다.
이 사실을 받아드린다는 말은, 여기에 인간의 행함이 일체 들어갈 여지가 없다는 말도 됩니다. 그렇다면 말씀을 받아드린 상황 속에는 성도는 어떤 입장이 되는 겁니까? 성도는 말씀에 휩싸이는 상황이 되고 맙니다. 마치 수영장 속을 다이빙해서 들어가는 식이 됩니다. 물 물 속에서는 위나 아래나 좌나 우나 모두 물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말씀대로 이루어집니다’라는 고백을 한다는 것은 단순히 하나님에 대한 관찰해서 판단을 내리는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푹 휩싸여있는 상태를 뜻합니다. 말씀에 의해서 만들어진 상황이 곧 자신의 상황이 되는 겁니다. 이제 남은 일은 그 말씀이 만들어낸 상황이 어떤 상황인가 하는 겁니다.
우리는 ‘행함으로는 구원되지 못하는 이유’를 알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 15절에 보면, “전에는 네가 버림을 입으며 미움을 당하였으므로 네게로 지나는 자가 없었으나 이제는 내가 너로 영영한 아름다움과 대대의 기쁨이 되게 하리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보면, 하나님으로부터 영광을 받게 되는 자들이 그 전에는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입으며 미움을 당했다는 겁니다.
따라서 미움과 버림을 받는 그 상황까지 말씀이 필히 만들어내는 상태며 성도가 구원되기 위해서 필수적으로 경과해야 될 과정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탐을 내면서도 막상 현재 자신이 미움과 버림을 당해야 하는 것에 대해서는 비켜가려고 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인간은 ‘자신의 영광’을 포기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을 이용할 생각을 하게 되지 하나님이 만들어 나가는 그 말씀의 세계에 대해서 영 순순히 내맡길 의사가 없는 겁니다. 자신은 계속해서 망하는 것도 없고 늘 성공하고 늘 위대하고 늘 세상에서 영광받기를 학수고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보고 요청하기를 “내가 하나님의 능력을 인정하고 믿어줄테니 나를 영광스럽게 만들어주세요”라는 식으로 나갑니다. 이들은 ‘버림’과 ‘미움’의 코스를 거부합니다. 미움과 버림없이도 하나님의 영광을 원없이 부여받기를 원합니다. 이것은 마치 물이 가득찬 풀 장 속으로 들어가지도 않고서는 풀 장 주위에서 물이나 찍어 발라 구원받겠다는 심보에 지나지 않습니다.
누가복음 16:15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사람 중에 높임을 받는 그것은 하나님 앞에 미움을 받는 것이니라” 사람에게 높임 받으려는 것은 곧 하나님으로부터 밉상받는 일이 된다는 겁니다. 그러나 우리들의 평소에 알고 있는 영광이란 사람들로부터 영광과 부러움을 받는 것으로 확인되기 마련입니다.
이런 상황이 하나님께서 의도한 하나님의 영광받은 상황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광이란 그야말로 하나님에게만 영광이 돌려지는 상황을 뜻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인간이 결코 영광받을 처지에 있지 않음이 분명해야 합니다. 누가복음 15장에 보면, 하나님 나라에서 잔치를 벌리는 경우들이 나옵니다.
그것은 잃어버린 양을 목자께서 친히 건져내어서 어깨에 매고 있는 상황이란 이런 상황에서 양은 개인적으로 어리둥절 할 따름일 것입니다. 즉 자신이 하늘 나라의 잔치의 주인공이 될 이유도 없고, 될 것을 기대한 적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들이 흔히 신앙적인 발언을 한답시고 다음과 같이 말하게 되는 경우를 봅니다.
“나는 돈보다도 하나님을 나의 행운 경품으로 본다”라고 말입니다. 물론 복음다운 고백입니다만 실은 반대로 이야기해야 합니다. 즉 하나님이 나의 경품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에게 경품이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볼 때에 참으로 별 볼일 없는 자들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 자신의 현실 밖으로 벗어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즉 남의 현실은 결코 현실로 보지 않습니다. 남의 이빨이 아픈 것은 결코 나의 심각한 현실로 여기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막상 내 이빨이 아프면 이것보다 더 생생한 현실은 또 없을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들이 정립하는 현실관이란 실은 모두 ‘나의 현실관’ 뿐입니다.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탕자도 이와같은 자였습니다.
그는 자기 입장만 생각해서 아버지의 재산을 탕진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의 현실에만 머리를 꼭 박았습니다. “나는 이제 죽어도 싸다. 나는 아버지에게 있어 아들이 될 수 없다. 어떻게 나같이 나쁜 자가 아들 대우를 받으려 할 수 있는가!”라고 말입니다. 그는 아무리 자신을 생각해도 귀하게 생각할 건덕지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누가 뭐래도 아버지에게는 그 탕자도 참으로 온 동네 잔치를 크게 벌릴만한 가치가 있는 아들이었습니다. 이것이 아버지의 시선입니다. 이 시선으로 볼 때만 아버지의 영광을 알 수 있고, 이 시선은 우리가 스스로 보기에 버림받고 미움받아 마땅함을 인정할 때만 성립됩니다.
10절에 보면 다음과 같이 되어 있습니다. “내가 노하여 너를 쳤으나 이제는 나의 은혜로 너를 긍휼히 여겼은즉 이방인들이 네 성벽을 쌓을 것이요 그 왕들이 너를 봉사할 것이며”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으로부터 매를 맞아도 마땅합니다. 왜 그럴까요? 이들은 자신의 영광만을 현실로부터 우선시하기에 이로 인해 도리어 참된 메시야께서 자기 백성들로부터 미움과 버림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자기 메시야를 미워한 그들에게 하나님의 자신의 영광을 공유하시는 은혜를 베풀어주십니다. 이렇게 되면 구원받은 성도들은 자신의 구원받음에 대해서 입이 백 개라도 자기 공로라고 우길 수 없게 되었습니다. 도리어 자신의 참으로 탕자며 자신의 영광만을 챙기는 못난 자라는 것을 하나님의 영광 속에서 더욱더 자인할 수밖에 없습니다.
즉 자기 개인의 이익과 손해만 따지는 자들을 위해서 예수님은 전체 이스라엘을 위하여 홀로 희생하셨습니다. 성도가 받게 되는 모든 영광은 이처럼 예수님 혼자만의 공로에서 주어진 것입니다. 이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일 성취성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세상으로부터 버림받고 미움받고 배척당하고 거절 당하더라도 주님의 공로 앞에서 감격케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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