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과 믿음
아가 1:1-4 / 솔로몬의 아가 본문
이근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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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4월 29일 본문 말씀: 아가 1:1-4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녹취: 이 한례 집사 "솔로몬의 아가라, 내게 입맞춤기를 원하니 네 사랑이 포도주보다 나음이로구나. 네 기름이 향기로워 아름답고 네 이름이 쏟은 향기름 같으므로 처녀들이 너랑 함이 너를 사랑하는구나. 왕이 나를 기의 방으로 이끌어 들이시니, 너는 나를 인도하라 우리가 너를 따라 달려가리라 우리가 너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즐거워하니, 네 사랑이 포도주보다 더 진함이라 처녀들이 너를 사랑함이 마땅하니라[아가서 1장 1~4절)" 내가 약속을 만들 필요가 없어요. 하나님의 말씀에 보니까, 하나님이 이렇게 사랑한다 하면, 아, 약속이니까 받아들이자. 받아드리면 되는 겁 하는 겁니다. 그게 뭐가 어려워요. "하나님이 너를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라고 하게되면 구원받는 겁니다! 사람들이 이것이 어려운 이유가, 자기것을, 약속도 되지도 못한, 자기 오기, 자기 양심을 내부에서 우리를 만들어 내기 때문에, 이게 순수하게 하나님의 약속을 흐릿하게 안보이게 하는겁니다. 완전히 무시하는 겁니다. 하나님의 주신 약속을 믿으면 구원받는데, 이것은 교회를 처음 나와도, 다 아는 이야기인데, 이거 소위 교회 오래 다녔다 해놓은 사람들 이야기 들어보면, "전부다 지가 조작하고, 제작하고, 만들어내고 이런 암적존재" 이런 것은 그득 들어있으니, 암적존재, 이런 것들이 그득 들어있으니. 그것은 수술해야죠. 그리고 자기가 만들어낸 조작된 약속, 엉터리 약속 다 끄내 버리고, 그것 갖다 버리고,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그런 하나님의 약속을 받아 들이면 구원받는 겁니다. 얼마나 쉬워요. 전도서에서 하나님의 약속은 이것이였습니다. 인간은 혼자 있으면 허무해서 못산다. 너무나 허무해서 못살아요. 그런데 그 다음에 아가로 넘어오니까, "하나님이 너를 사랑한다. 그 사랑이 약속이다. 사랑 받으면 아름답다, 끝! 사랑 죽음보다 더 진하다. 이게 아가서 마지막 날에 나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심이라. 이 하나님의 말씀과 이 약속은요. 동해안에 석유 터지는 것보다 더 기뻐요. 석유 터져가 석유로 돈벌면 구원받습니까? 아니잖아요. 석유가 하나님의 약속이 아니고, 십자가의 용서가 하나님과의 약속입니다. 이게 기쁜 소식이에요. 그래서 우리는 이 아가를 보면서, 허무함 속에서, 그 허무마져 하나님의 사랑이, 어떻게 그것을 극복해 내는가, 어떻게 그것이 우리에게 어떤 사랑으로, 다가오는가? 그걸 우리가 극복해서, 알아서, 그걸 알아서, 그걸 동의 하시고, 받아 들리시면, 구원이 되는겁니다. 이 아가의 첫번째 구절에 솔로몬의 아가라. 솔로몬의 아가라. 이 솔로몬이라는 사람이요. 열왕기4장에 보면 그런 이야기 나오는데,솔로몬은 모르는게 없는 사람이에요. 4장 30절에 "솔로몬의 지혜가 동양 모든 사람의 지혜와, 애굽의 모든 지혜보다 뛰어난지라. 저는 모든 사람들보다 지혜로와서, 에스라 사람 예단, 마골 아들 헤반보다 나음으로 그 이름이 사방 모든나라에 걸렸더라." 소위 지혜가, 아이수타인이라든 지, 이런 사람들보다 뛰어나다 이말이지요? "저가 잠언 3천을 말하였고", 그 노래를 천 다섯가지의 노래를 지었으며, 저가 또 초목을 논하되, 나무를 논하되 모르는것 없고, 레바논 백향목부터 담에 나오는 우슬초까지, 저가 또 짐승과 새와 물고기를 논하였고, 거의 뭐 전세계의 지혜에 대해서는 빠삭 하니 잘 알지요. 꼭 창세기 1장에 하나님같은 느낌이 들지 않습니까? 하나님도 아담같아, 아담이 모든 동물 이름처럼, 정말 지혜가 출중한 거에요. 왜 이렇게 솔로몬이 이런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느냐하면은, 소위 난다 난다, 최고다 최고다 하는 그런 인간보다 더 뛰어난 솔로몬이 말하기를, 하나님이 주신 사랑이 최고다하는 거에요. 이 아가서에 보면, 실제로 솔로몬인, 식물이면 식물, 동물이면 동물, 광물이면 광물,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그 흔적이 나오는데. 이 아가서의 식물을 보면, 호도나무, 백향목 등등.. 유황, 몰약 등등 온갖종류의 아주 낯선 식물이 총 동원 됩니다. 동물은 표범, 염소, 어리 암사슴, 여우 등등.. 이런종류가 나오고요. "지금 그정도는 초등학교에 가면 다 배우는 건데요?" 하지만, 옛날 사람들은 두루두루 알 필요가 없어요. 지혜라 하는 것은, 특수 직종에 있는 성직자들만 알면 되고, 다른 사람은 지혜를 몰라도, 생활이 지장이 없는 세계였기때문입니다. 지금보단 정보가 많은 시대가 아니기때문에, 그런데 그 당시의 솔로몬이 이정도 안다는 것은, 그 당시 동시대의 상황 가운데, 가장 뛰어난, 특수의 하나님이 주신 특별한 지혜의 소유가였어요. 그런 지혜자가 이런 총 지혜를 모두 있는데로 끌어서, 외치기를, "사랑이 최고다!"라는 거에요. 사랑이 최고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거에요. 이제 아가에서 우리가 배울 것은, 도대체 그 사랑이란 것이 뭐냐? 그 사랑. 1장2절에 나옵니다. 뭐냐? "네게 잊맞추기를" 끝났습니다. 사랑이란 뭐냐? 한덩어리 되는거에요. '삽입'하는 밤. 이거 에로 비디옵니까? 사랑은 떨어지면 사랑이 아니에요. 사랑은 "이게 니손이야 내손이야. 이게 내 입술이야 네입술이야. 도대체 이 기계가 내꺼야 니꺼야" 분간이 안될 정도로 딱 달라 붙을때, 이게 사랑입니다. 이게 사랑이에요. 한덩어리 불덩어리 되는 것이 사랑이에요. 그래서 사람이 자기 혼자 있으면, 혼자있으면 뭔가 뚜껑이 없을때는 그 냄비 하자 있습니다. 어제 전골 냄비를 우리 집사님이 선물했죠? 냄비를 줄때 뚜껑이 잇어야잖아요. 사람이 혼자 있으면, 마치 뚜껑이 날라간것처럼, 온 바람 찬바람 다 들어옵니다. 그래서 외로울때는 은장도로 찌르면서, "참아야 하느니라. 참아야하느니라" 라고 해야 산다 이말이죠. 이게 뚜껑이 없으니까. 자기를 보담아 주고, 덮어주는 완전한게 없으니까. 뭔가 허전~~한게, 살아도 사는게 아니고, 밥을 혼자 먹어보세요. 이게 씹힌게 모래인지. 혼자 고급음식점에서 먹어도요. 밥을 먹어도요. 밥맛 안납니다. 밥을 먹어도, 반찬 투정이나 해가면서. 죽어봐야 맛있지. 혼자서 떡~ 하고 십으면 아 도대체 인생 왜 사노? 싶은 거에요. 그야말로 전도서 말씀, "헛되고 헛되니 헛되니 헛되도라" 그런데 아가서는 뭐냐? 뚜껑 찾아주심입니다. 무슨 뚜껑, 사랑이란 뚜껑. 뚜껑을 팍찾으면, 그 다음부턴 둘이 이 세상에 대해서 옳고 그름을, 무엇이 옳다, 무엇이 그르다, 무엇이 선이다, 무엇이 죄다라는 이 기준 자체가 날아가버려요. 사람이 혼자 살면, 자기 정당함을 유지하기 위해서 따지기를 좋아합니다. "뭔가 저 사람은 나빠! tv에 나오는 연예인들 다 양아치니까 이혼하지"하면서, 온갖말을 다 하거든요. 혼자 있으니까 뭔가 공격을 해야 스트레스와 허전함을 풀수 있기때문에.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르다는데, 상당히 예민해져요. 그런데 뭔가 둘이 마음맞는 사람이 딱 뿥으면, 지금 우리가 하는 짓이 이게 옳은 짓인가?라고 할 필요도 없고, 할 이유도 없어요. 붙들고 좋아서 그런데 필요없어요. 그래서 부부들끼리 식당에 가면 싸움입니다. 왜 싸우느냐하면, 옆집에 가면, 4000원인데, 우리는 잘못됬다고, 4500원짜리 들어왔다고, 500원가지고 싸우니. 오랫만에 외식해서, 이렇게 합니다. 그런데 애인하고 데이트 해봐요. 10만원 거저 날려요. 10만원,20만원 거저 날려요. 이 행동 그 자체를 묻지를 않는 다니까요! 사랑은 선과 악을 날려버립니다. 선과 악이라는 그 자체를 잊을 수가 없어요. 사랑한다는데 무슨 말이 많아요.거기에 대해서, 더 에로적으로 이야기해서, "목사님 성경 아니거던요"하기때문에.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적입니다. 고린도 전서 13장에 보면,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십만원 날렸다해도). 사랑은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고,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고, 10만원 챙겼다고 교만하지 아니하고,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다음에 자기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야~ 사랑이 참 멋있어요. 나한테 당신이 이익이냐 손해냐를 적어도 이것을 우리 집안에서는 제발 이야기 말자. "당신은 그런 점에서 옳다. 당신은 이런점에서 나빠. 나는 이렇점에서 옳다" 라는 그런 이야기는 제발 비닐하우수같은 집안에서는 하지 말자. 우리끼리 있을때는 하지 말자말이지요. 드라마 보고 연속극 보고, 연예인 보고 하면 쉬운데, 적어도 서로가 서로에게 사랑할때는요. 부부가 서로 사랑할때는, 부부가 서로에게 상처주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상처주는 말을 노골적으로 표현하면 이렇습니다. "당신은 이제 내게는 있으나 마나 한 존재, 있으면 좋고, 없으면 더 좋고" 라는 그렇기 때문에, 상처주어서 빨리헤어지자 이런 겁니다. 대표적인 것이 끊어 내기 위해서, 하는 말이," 다른 남자는 이렇던데". 거기에 남자들은 돌아버립니다. 살지 왜 살지,왜 살지 나하고 왜 살았나? 여자들이 또 돌아버리는 얘기가 뭐냐면, "니 친정집에서 이렇게 배웠나?" 그 행세 어디가냐? 나중에는 더 세져서 미사일처럼 쏘아져요. 누가 상처주기를 아예 싸움을 붙였어요. "당신은 음식을 짜게 할수밖에 없는, 그런 못된 여자. 친정에서 그래 받았어!"ㅎㅎㅎ 허무, 외로움, 모든 것은 주님의 입맞춤으로 다 해결이 되는 겁니다. 그 다음에 내 사랑이 포도주보다 나음이라. 포도주 먹어봐야 알지. 포도주 안먹어 본사람, 이 말씀 알기위해서 포도주 드리고 할것이 아니라. 포도주보다 나으리라. 물건을 어떻게 해서, 육체적인 쾌감을 얻고자 하는 그 이상으로, 똑같은 사랑의 똑같은 인간으로써 같이 얼싸 않을때는 인공적인 사물이 거기 개입될 수가 없다. 그게 빛을 잃어요 사랑한다고 해서, 여자들이 원하는 것은 따뜻한 말을 원하는데, 남자들은 뭔가 캥기는게 있으면 뭔가 사물적인, 보석 해줄까 가락지 해줄까. 이런 앵겨주는 것으로 뭐 여자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처럼 그렇게 착각 합니다. 물론 이것도 해주고도, 그런 소리하면 하는데, 못해주면서 이렇게 해주니 참 미안한데요. 그렇게 말로 매일 때우는데, 그런 입장에 있습니다라는 겁니다. (ㅎㅎㅎ) 쩻든 여자가 보는 것은 확인 입니다. 당신이 아직도 나를 여자로 보느냐 이말이죠. 아직도 나를 여자로 봐가지고, 내 앞에서 뽕 가느냐? 이말이지요. 내 앞에서 옜날의 그 사랑을 느끼느냐? 아니면 집안이 하는 일꾼 처럼 간주하느냐?라는 겁니다. 사랑이라는 것은 너 나가 소실되고 소멸되고, 자기 유익을 구치 않는거에요. 그러니 아내와 남편이 바라볼때, 결국 자기 이익을, 내가 저 남자를 만나서 여자 만나서 이런 식으로 말고요. 이유를 막론하고 내가 하나라고 느끼는 것. 그래서 당신이 없다는 것은, 곧 내가 없는 것이고, 당신이 있는 자리에 내가 있고, 당신이 없는 자리에, 나도 없다는 겁니다. 옛날에는 강제로 했어요. 왕이 죽으면요 모든 여자를 같이 묻어서 다 죽였습니다. 참 멋진 제도다 라는 말도 가끔씩 들립니다만은, 이것은 제도적으로 법률적으로 그렇게 했지요. 그만큼 법률이 없으면 되기 때문에 그렇게 한건데. 이제는 그런 모진, 흉칙한 법이 없지라 할지라도, 마음속으로 늘 그것이 고무줄 아무리 땡겨도, 팅기면 늘 제자리로 돌아가듯이, 그렇게 서로가 서로에게 '너,나'가 갑자기 생각나지 앉는 관계. 그 관계가 바로 죽음보다 더 이기는 관계입니다. 그래서 그 옛날의 왕의 부인들도 사랑하는 남편이 죽는다고 이유때문에, 같이 따라죽는 그런 경우가 있죠. 열녀문,망부석- 이래서 귀감이 된다. 여자는 저렇게 한남자를 바라보아서 살아가야한다. 다 좋지요. 근데 문제는 남자도 그렇게 되어야 하는데. 문제는 남자는 문어발짓하면서 하면서, 여자보고 그법을 강조를 하니 그게 문제가 되죠. 아무튼 아가서 처음부터 나온게 뭐냐? 네게 임맞춤을 원하오니. 내 사랑이 어떤 생산물, 하나님의 축복보다도, 그 돈덩어리 보다도, 당신은 나의 진짜 뚜껑입니다. 나의 입맞춤에서 뚜껑이다. 당신 안에서 내가 발견되기를 원한다. 당신은 나의 모든 것이다. 그러한 자체. 이세상의 모든 허물을 이기는 하나님의 약속된 사랑입니다. 그 사랑이 어떻게 지독한지, 다음주에 계속됩니다.
(아 1:1) 『솔로몬의 아가라』
(아 1:2) 『내게 입맞추기를 원하니 네 사랑이 포도주보다 나음이로구나』
(아 1:3) 『네 기름이 향기로워 아름답고 네 이름이 쏟은 향기름 같으므로 처녀들이 너를 사랑하는구나』
(아 1:4) 『왕이 나를 침궁으로 이끌어 들이시니 너는 나를 인도하라 우리가 너를 따라 달려가리라 우리가 너를 인하여 기뻐하며 즐거워하니 네 사랑이 포도주에서 지남이라 처녀들이 너를 사랑함이 마땅하니라』
구원이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주어지는 겁니다. 약속이란 일방적으로 제시된 것입니다. 우리 인간들 하고 사전에 협의해서 결론지은 약속이 아닙니다. 우리 인간은 그 약속을 받는 입장이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약속을 던져주시는 위치에 있습니다.
옛날 약속을 구약이라고 하고, 새로운 약속을 신약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 둘을 합쳐서 성경 말씀이 됩니다. 따라서 구원이란 이 성경 말씀에 담겨 있는 하나님의 약속을 수용하면 이루어지는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내리신 약속이 아닌 것을 임의로 조작해내고 있다는 점입니다.
즉 자신이 믿고 싶어하는 바를 멋대로 만들어서 ‘하나님의 약속’이 된다고 우기고 나오면, 그것은 구원될 수 없습니다. 성경은 당연히 이런 가짜 약속을 의식하고 그 내용들을 배척하는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오늘부터 우리가 보려는 이 아가도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특히 사랑의 약속입니다. 즉 하나님의 사랑의 성격이 이 아가에 잘 나와 있습니다. 아가라는 제목의 뜻은 ‘최고의 酉 ?遮?뜻입니다. 즉 최고의 지혜라는 뜻입니다. 최고의 지혜가 다름아닌 사랑입니다.
지난 번 설교에서 우리는 전도서를 함께 보았습니다. 인간이나 인생이라는 것이 거룩한 하나님 앞에서 ‘헛되고 헛되며 무엇을 해도 헛된 것’ 밖에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았습니다. 죽음을 앞두고 죽음의 힘이 맹렬한 덮쳐진 우리들에게 있어 해체되어지는 과정이란 허무스러움의 연속일 수 밖에 없습니다.
과연 허무를 극복할 해결책은 없는가요? 하나님의 지혜는 아가를 통해서 새로운 사실을 말해주십니다. 그것은 바로 ‘사랑’입니다. 죽음과 허무는 사랑에 의해서 사라질 수 있습니다. 사랑만 있다면 전부가 다 받은 것입니다. 솔로몬은 참으로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 지혜의 최고점은 사랑을 알았고, 그 사랑을 느꼈고, 사랑의 힘으로 살아간다는데 있습니다.
아가 전편에 걸쳐 솔로몬의 해박한 지혜가 나열되어 있습니다. 우선 등장하는 식물 종류를 내열하면 이러합니다. 호도, 니그나로 기름, 백향목, 들꽃, 크로크스 꽃, 유향, 몰약, 나드, 석류, 백합, 무화과 나무, 사과, 삼나무, 포도나무, 멘드레이크, 창포, 육계입니다. 등장하는 동물은 표범, 말, 까마귀, 염소, 어린 숫사슴, 암사슴, 여우, 들비둘기, 사자, 비둘기, 영양, 양 같은 것들입니다. 광물로서는, 대리석, 자색옷, 사파이어입니다.
열왕기상 4:30-34에 보면, “솔로몬의 지혜가 동양 모든 사람의 지혜와 애굽의 모든 지혜보다 뛰어난지라 저는 모든 사람보다 지혜로워서 예스라 사람 에단과 마홀의 아들 헤만과 갈골과 다르다보다 나으므로 그 이름이 사방 모든 나라에 들렸더라 저가 잠언 삼천을 말하였고 그 노래는 일천다섯이며 저가 또 초목을 논하되 레바논 백향목으로부터 담에 나는 우슬초까지 하고 저가 또 짐승과 새와 기어 다니는 것과 물고기를 논한지라 모든 민족 중에서 솔로몬의 지혜의 소문을 들은 천하 모든 왕 중에서 그 지혜를 들으러 왔더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솔로몬은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지혜를 총동원하여 진짜 지혜인 사랑을 증거하는데 주저하지 않습니다. 즉 세상 모든 만물은 사랑을 표현하는 재료가 될 수 있다는 겁니다. 전도서에서의 지혜가 어디까지나 자아에 대한 관심사가 계속 살아있는 상황에서 드러나는 지혜입니다. 그러다보니 자연적으로 자아의 허무성으로 인해 지혜도 허무성을 띨 수 밖에 없는 겁니다.
그러나 아가에서는 단독적인 자아가 아니라 뭔가 상대를 찾아 헤매는 자아의 모습을 나타냅니다. 즉 독자적으로 ‘내가 뭐지?’가 아니라 사랑하는 상대만 있다면 그런 고민조차 할 이유도 없고 필요도 없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에 사랑이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2절에 보니 나옵니다. ‘입맞춤’입니다.
입맞춤이란 혼자서 해낼 수 없습니다. 상대가 있고, 그 상대와 하나로 결합되기를 바래서 하는 행위입니다. 즉 사랑이란 ‘하나됨’입니다. 둘을 용납하지 않는 것이 사랑입니다. 둘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 사랑입니다. 네가 내가 되고, 내가 네가 되는 상황이 하나입니다. 너와 내가 구별되지 않는 것이 사랑입니다.
고린도전서 13:4-7에 보면,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자아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한다는 것은, 더 이상 자신을 그 상황의 중심에 두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허무가 찾아올래야 올 수가 없는 위상입니다. 사랑하는 상대방 속으로 자아가 사라져버리는 것을 말합니다. 전에 ‘나’라고 여긴 것을 희석시켜 상대방으로 인해 나를 잃고 사는 경우를 말합니다.
둘이 하나가 된 상황이 인정하고, 서로의 개인을 인정하지 않는 상황입니다. 이렇게 되어버리면 상대를 향해 옳고 그름을 따질 입장에 있지 않게 됩니다. 특징 부부사이에서 위기가 찾아오는 것은, 상대방에 대해서 옳고 그름을 따지게 되는 경우입니다. 사랑 안에서 법적인 옳고 그름이 성립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삼스럽게 옳고 그름을 따지겠다는 것은 상대를 나로부터 심판받을 피고로 여기면서 산다는 말이 됩니다. 이것은 더나아가서 상대가 없이도 홀로 살 각오가 되어 있다는 말이 됩니다. 하지만 다시 사랑이 찾아오면, 옳고 그름을 따질 ‘나’도 없어진다는 말이 됩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마치 냄비의 뚜껑으로 여기는 태도입니다. 냄비에 뚜껑이 없다면 얼마나 허전하겠습니까. 지나가는 모든 바람도 다 들게 마련입니다. 사람이 혼자 살게 되면 포근함이 상실됩니다. 냉혹해지고 늘 긴장 상태에 돌입되어 있습니다. 푸근함이 없기에 밥을 먹어도 깊은 맛을 느낍니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함께 있으면 자기 유익을 구하지 않기 때문에 상대에서 상처주거나 모독하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사랑하는 사람의 사랑은 포도주보다 더 맛있다는 겁니다. 이것은 곧 인간이 느끼는 사람을 사물이 중간에 끼어들어서 주는 자극과 비할 바가 없이 훨씬 진하다는 말입니다. 이처럼 사랑이란 나를 잃게 하는 사랑이어야 참 사랑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사람의 사랑보다 하나님의 사랑이 비교될 수 없는 정도로 월등함을 잊지 않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전도서를 일단 끝내고, 이번주 오캤壙姑?아가서를 합니다. 이 아가의 뜻은 뭐냐? 우아하기 짝이 없는 노래. 가사가 너무 좋은 노래. 노래 가사입니다. 노래 중에 최고의 노래. 아주 우아하고, 아름다운 그런 뜻으로써 아가서가 있는데, 우리가 지난번에 했던, 전도서하고, 아가의 차이점이 뭐냐하면은, 전도서에서는 개인적인 입장에서, 허무하기 짝이 없습니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그런데 아가에 들어오면, "아름답다. 너 왜그렇게 아름다와~" 이게 아가에요. 전도서는, 인간이,개인적으로 있을때, 이 세상에 낙이 없다는 것이 전도서이고, 헛되니까, 아가는 그 허무마저 이길 수가 있다는 겁니다. 사랑하는 사람만 있다면, 그 모든 허무와 죽음을 이기는 겁니다.
제가 어제 심방을 갔는데, 심방에 가서, 이런 이야기 했어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할때,약속으로 구원한다 했어요. 약속으로 구원한다. 몇월 몇시에, 어느 다방에서 만나자. 그거 약속 아닙니까? 그 약속 고지 듣고, 그 다방에 갔더니만, 그 사람 만났고요. 약속을 믿음으로 구원받는 겁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무엇이냐? 옛날 약속을 구약이라하고, 요새 약속을 신약이라 하고, 둘이 합치면 그걸 성경이라 하는 겁니다. 하나님이 주신 약속을 내가 동의하면, 구원받는 겁니다. 그래서 내가 약속을 만들 필!요가 없어요.
상대방에게 상처주는 말을 하는 것은, 그대는 나의 뚜껑에서, 난 당신 없이는 미치겠다는 이유에요. 왜 뚜껑에다가, 칼 가지고 그럴 이유는없잖아요. 반찬이 싱거우면 간장을 넣으면 되고, 짜거우면 물 부으면 되는 거죠. 하여튼 넣으면 되는 겁니다. 그걸 두껑에다가 써버려요.
사랑은 옳고 그름을 초월합니다. 주님이 약속으로 구원합니다. 그 약속이 뭔지 알아요? 하나님게서 우리들 보고 "내가 너에게 죄를 따지지 않겠다.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겠다." 죄는 사랑이신 예수님이 다 처리 했기때문에, 새삼스럽게 너는 왜 예수믿고 이렇게 사느냐라는 것을 그걸 따지지 않겠다는 것이 복음입니다. 이미 다 알기때문에, 우리가 얼마나 허접스러운지 알기때문에. 그게 입맞춤이에요. 입맞춤이라는 것은 이제 둘이 아니라, 하나라. 서로가 서로를 보담아 덮어준다 이거에요.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옳고 그름이 없고, 너와 나가 없는 그것들이 계속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상대방을 이용하지 않고, 상대방에게 상처주지 않고, 모독 하지 않고, 당신 안에 내가 있고, 내 안에 당신이 있다는 것을 귀히 여길수 있는, 주님이 내안에 있고, 내가 주님안에 있다는 것을,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사랑인 것을 놓치지 않는 성도들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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