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 설교, 강의(이근호)/호세아

호세아 8:11-14 / 제단

정인순 2020. 3. 18.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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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단


이근호
2020년 3월 18일              


본문 말씀: 호세아 8:11-14

(8:11) 에브라임이 죄를 위하여 제단을 많이 만들더니 그 제단이 저로 범죄케 하는 것이 되었도다

(8:12) 내가 저를 위하여 내 율법을 만가지로 기록하였으나 저희가 관계없는 것으로 여기도다

(8:13) 내게 드리는 제물로 말할지라도 저희가 고기로 제사를 드리고 먹거니와 여호와는 그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이제 저희의 죄악을 기억하여 그 죄를 벌하리니 저희가 애굽으로 다시 가리라

(8:14) 이스라엘은 자기를 지은 자를 잊어버리고 전각들을 세웠으며 유다는 견고한 성읍을 많이 쌓았으나 내가 그 고을들에 불을 보내어 그 성들을 삼키게 하리라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하나님으로 다루어진 민족은 이스라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뜻을 오직 이스라엘에게만 알려주셨습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관련해서 움직임을 보이면 바로 그것만이 하나님의 뜻이요 다른 모든 움직임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의 핵심이라고 볼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 이스라엘을 통해서 죄가 드러나고 결국에는 이스라엘에 하나님에 의해서 파괴됩니다. 즉 죄를 더욱 죄되게 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율법을 주셨다고 보시면 됩니다. 율법이 주어지지 않고 제단을 주어지지 않으면 인간들이 얼마나 많은 죄를 발산하고 있는지를 알 길이 없습니다.

이스라엘도 인간들인지라 본인들이 되고 싶은 이상형은 이스라엘 주변 나라들의 삶의 태도가 말해줍니다. 이스라엘은 그들의 삶의 방식이 부러웠던 겁니다. 하지만 이들 이방나라에게는 하나님의 뜻인 언약이 없습니다. 그들이 섬기는 신은 하나님의 언약이 담겨있지 않기에 그저 자신들의 내면의 욕망으로 뭉쳐서 만들어낸 신입니다.

제단이라는 것은 원래 하나님께서 친히 전쟁을 하셔서 세워진 겁니다. 신명기 12:5-7에 보면, “오직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의 이름을 두시려고 너희 모든 지파 중에서 택하신 곳인 그 계실 곳으로 찾아 나아가서 너희의 번제와 너희의 제물과 너희의 십일조와 너희 손의 거제와 너희의 서원제와 낙헌 예물과 너희 소와 양의 처음 난 것들을 너희는 그리로 가져다가 드리고 거기 곧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먹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의 손으로 수고한 일에 복 주심으로 말미암아 너희와 너희의 가족이 즐거워할지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이름’이 멈추시는 바로 그곳이 하나님의 제단이 있을 곳입니다. 그런데 그 지점을 인간들이 알아서 찾아갈 수 있는 곳이 아니라 친히 하나님께서 앞장서서 전쟁을 벌려서 적들을 물리치는 일들이 일어나야 합니다. 즉 궁극적으로 인간들이 섬기는 모든 신을 제압하는 정말 살아계신 유일한 하나님으로서 기념되는 곳이 곧 제단입니다.

그래서 제단은 여러 곳이 아니라 오직 한 곳이어야 하는 겁니다. 그런데 약속의 땅의 핵심 자리, 곧 예루살렘에만 제단이 있어야 하는데 막상 이스라엘이 그 땅을 기거하고 난 뒤에는 이런 제단의 취지는 사라지고 오직 자신들의 욕구를 채우는 식의 종교행위가 성행하게 됩니다. 그래서 백성들의 편리를 위해 곳곳에 많이도 제단이 세워졌습니다.

하나님의 이름께서 하나님의 약속을 홀로 해내신 일을 기념하는 곳으로서의 제단이 아니라 자기네들의 소원을 빌기 위한 제단들이 많이 세워졌습니다. 이 점에 대해서 하나님께서는 ‘죄를 많이 지었다’고 규정하시는 겁니다. 그들의 본색이 드러난 겁니다. 이 제단을 세우려는 하나님의 뜻은 곧 하나님께서 ‘죄’라고 규정하고서는 그 ‘죄’를 심판하시려는 의지가 담겨 있습니다.

제단에서 드리는 제사, 곧 제사에 동원된 제물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죄라는 것이 제대로 규정하시려는 겁니다. 이스라엘이 계속해서 법령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면서 제사가 담아내는 의미가 세분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창세기에 처음 나오는 제사는 번제입니다. 즉 모든 것을 남김없이 다 태우는 제사입니다.

가인의 제사가 그러하고 노아의 제사도 그러하고 그리고 아브라함의 제사도 그러합니다. 그러다가 점차 번제 외에 화목제도 등장하고 최종적으로 제사는 번제와 소제와 속죄제와 속건제와 화목제로 구성되어 제사의 깊이를 자세히 보여줄 수가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속죄제가 세밀하게 제사 의미를 펼쳐 냅니다.

레위기 4장에 보면, 속죄제는 대상에 따라 네 가지로 나뉘어집니다. 하나는 제사장이 잘못했을 때 드리는 속죄제입니다. 또 온 회중들이 단체로 잘못했을 때 드리는 속죄제도 있습니다. 그리고 지도자급이라고 할 수 있는 족장들이 잘못했을 때 드리는 속죄제도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평민들이 잘못했을 때 드리는 속죄제가 있습니다.

이 제사들의 차이를 아는데 있어 가장 기본적인 것은 제사장과 온 회중의 죄를 씻기 위해 드리는 제사는 제사장의 행동반경이 성막까지 이른다는데 있습니다. 반면에 족장과 평민을 위한 속죄제는 제사장이 회막까지 가지 않고 제단에 머문다는 사실입니다. 즉 비중 있는 제사는 제사장이 회막 안까지 들어가게 되고, 그렇지 않는 것은 성소 바깥 뜰에 있는 제단에 멈추는 겁니다.

어쨌거나 속죄제 제사에 있어 제사장의 행위 범위가 제일 중요합니다. 이는 제사장이 죄인들이 대역하는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입니다. 제사장의 속죄제에서 제사장은 제물인 수송아지에 안수를 합니다. 이는 죄를 제물에게 전가시키는 행위입니다. 이렇게 되면 제물은 제사장에 의해서 하나님이 계시는 회막까지 갑니다.

이는 곧 인간의 죄가 하나님에게까지 전달된다는 뜻입니다. 제사는 이 전달된 죄가 하나님께 가는 과정을 보여주는데 이 과정을 통해 하나님께서 개입하시면 이 개입으로 인해 죄의 과정이 의의 과정으로 바뀐다는 점입니다. 즉 하나님의 의 생산을 위해 죄의 조달이 필수적이다는 말입니다.

제사장은 제물의 피를 회막 앞에 일곱 번 뿌리고, 회막 안까지 들어가서 향단뿔에 바르고, 나머지 피는 회막을 나와서 뜰에 놓여 있는 제단밑에다 쏟아붓습니다. 물론 제사장과 회중을 위한 속죄제에서는만 그러합니다. 족장이나 평민들을 위한 속죄제는 회막까지 나아가지 않고 제단에서 다 처리합니다.

피를 제단에 뿌리고 제단뿔에 바르고 제단밑에 남은 피를 다 부어버립니다. 여기서 제물의 수컷과 암컷 여부도 중요합니다. 제사장과 회중과 족장을 위한 제물은 모두 수컷입니다. 하지만 원래 제사의 최고 등급은 수컷이 아니라 암컷입니다. 창세기 15:9에 보면,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위하여 삼 년 된 암소와 삼 년 된 암염소와 삼 년 된 숫양과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를 가져올지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면서 제시된 제사의 높은 등급이 수컷이 아니라 암컷이 되는 이유는, 아브라함 언약 자체가 ‘잉태치 못한 여인의 자식’으로 진행되기 때문입니다. 이는 아담 계열에 속한 인물은 하나님께서 안 받겠다는 취지입니다. 처음 애굽에서 나오던 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맏이마저 죽이고 그 빈 자리에 ‘희생양의 취지’로 채워서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신 겁니다.

이 원리에 의해서, 하나님께서는 지상의 아담의 육이 흐르는 인물을 구원하시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이 땅에 ‘없는 자’를 구원하시려고 하는 겁니다. 이게 바로 창세기 3:15에 나오는 ‘여자의 후손’입니다. ‘남자의 후손’이 악마를 이기는 것이 아닙니다. 즉 “내가 예수 믿어 구원받겠다” 의도는 하나님께서 안 받습니다.

왜냐하면 나로부터 시작된 일이 결국 자기에게로 되돌아오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진정한 구원이란 도중에 ‘나’가 사라지는 계기가 있어야 합니다. 영원한 제사장이신 예수님의 공로 만들어진 제단이 탑재된 자가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 안에 일방적으로 들어오신 하나님의 제단이 우리 자신보다 우선됨을 믿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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