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 설교, 강의(이근호)/예레미야

예레미야 31:1-6 / 단절의 언약

정인순 2024. 11. 24. 15:53

음성 동영상

 

단절의 언약

 

이근호
2024년 11월 24일                 

 

본문 말씀: 예레미야 31:1-6

(31:1)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때에 내가 이스라엘 모든 가족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

(31:2)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칼에서 벗어난 백성이 광야에서 은혜를 얻었나니 곧 내가 이스라엘로 안식을 얻게 하러 갈 때에라

(31:3) 나 여호와가 옛적에 이스라엘에게 나타나 이르기를 내가 무궁한 사랑으로 너를 사랑하는 고로 인자함으로 너를 인도하였다 하였노라

(31:4) 처녀 이스라엘아 내가 다시 너를 세우리니 네가 세움을 입을 것이요 네가 다시 소고로 너를 장식하고 즐거운 무리처럼 춤추며 나올 것이며

(31:5) 네가 다시 사마리아 산들에 포도원을 심되 심는 자가 심고 그 과실을 먹으리라

(31:6) 에브라임 산 위에서 파수꾼이 외치는 날이 이를 것이라 이르기를 너희는 일어나라 우리가 시온에 올라가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로 나아가자 하리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사랑하신다는 말은 처음부터 여러 차례에 걸쳐 하나님쪽에서 알려왔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에게 돌아온 결과는 약속의 땅의 풍요한 삶이 아니라 추방이었습니다. 지금 추방될 지경에서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서 또다시 자기 백성을 사랑하고 이 약속의 땅에서 살게 하시겠답니다.

과연 이번에도 굳이 믿어야 할까요? 맨 처음 사랑이 부도났다면 이번에도 사랑하시겠다는 말은 부도날 가능성이 있는게 아닐까요? 이번의 사랑은 꼭 믿을 수 있는 확실한 근거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절단과 단절이 선행된다는 점에 있습니다. 즉 이스라엘로 하여금 ‘상위 포식자’에게 맡겨서 절단하시겠다는 겁니다.

이스라엘을 이 세상 최고 포식자 손에 맡기겠다는 겁니다. 이스라엘을 하나님 곁에서 따나보내는 방식으로 이스라엘을 다시 세우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사랑이 없는 이 세상의 구조에 맡겨서 그 힘의 구조에 의해서 소실되게 하시는 작업을 선행시키겠다는 겁니다.

‘이스라엘을 사랑함’의 일관성은 새로운 언약의 투입으로 성사하시겠다는 계획을 하나님께서 펼치시게 됩니다. 예레미야 31:31-32에 보면,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세우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열조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세운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파하였음이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전에 있지 않는 ‘새’ 언약을 투입시키겠다는 것은 새로운 조건 하에서는 이스라엘을 만드시겠다는 겁니다. 즉 전에 너희들이 기대한 새 이스라엘은 결단코 하나님은 생각하시지 않으신 이스라엘입니다. 그것은 인간들이 이해하고 사랑이란 ‘자신들의 뜻의 관철’을 중심 내용으로 해서 이해들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곧 소위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혹은 ‘하나님을 사랑하겠노라’고 하는 그 인간들 중심으로 새로운 이스라엘은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인간 생각에 대한 잘림’을 본 내용으로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이스라엘은 인간의 희망과 인간들의 기대와 포부 같은 것으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도리어 그러한 생각에 대해서 새 언약을 가지고 다 막아내고 거부하게 됩니다. 이는 하나님이 세우시고자 하는 이스라엘의 조건은 일방적으로 하나님께서만 정해놓으시기 때문입니다. 기존의 이스라엘을 잘라내시고 그 그루터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새 이스라엘을 새로 만들어내십니다.

“내가 가로되 주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대답하시되 성읍들은 황폐하여 거민이 없으며 가옥들에는 사람이 없고 이 토지가 전폐하게 되며 사람들이 여호와께 멀리 옮기워서 이 땅 가운데 폐한 곳이 많을 때까지니라 그 중에 십분의 일이 오히려 남아 있을지라도 이것도 삼키운바 될 것이나 밤나무,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사 6:11-13)

‘잘려나간면’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 절단면이 이스라엘의 뿌리가 됩니다. 철저히 인간의 의사를 배제한 이스라엘, 그런 천국을 만들겠다는 겁니다. 이 작업을 위해 예수님께서 친히 유대 땅으로 나아가셨습니다. 유대땅은 율법을 지켜서 새로운 이스라엘을 건설하는 의지로 충만한 땅입니다.

그들은 기도하고, 그들은 구제하고, 그들은 금식하면서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시키려 애를 씁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평가는 다음과 같습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하나를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마 23:13-15) 즉 천국이 천국문을 막는 겁니다. 사람들로 하여금 천국에 들어가는 것을 주님께서 친히 막아섭니다.

그 이유는 인간은 자신도 느끼지 못할 지경으로 위선과 외식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들의 자신의 한계를 모릅니다. 예를 들면, 구제에 대해서 사람들이 일반 성직자들에게 문의하면 이렇게 이야기할 겁니다. “정신껏 성의와 마음을 다하고 구제받은 사람을 이해하면서 구제를 하라”고 할 겁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발언은 이러합니다.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마 6:3) 이는 인간에게서 나오는 모든 것을 단절시키겠다는 말씀입니다. 기도와 관한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기도하면서 같은 요구를 계속해서 반복하게 됩니다. 열심히 정성을 다해서 말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기도는 이런 인간들의 의도를 싹뚝 살아버립니다. 달라고 하는 기도는 하지 말라는 겁니다. 너에게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이 필요없는지는 우리 주님이 이미 알고 계시다는 겁니다. 따라서 진정한 기도는 이미 주님께서 주신 것에 대해서 우리가 주님의 지시 따라 쓰여질 수 있게 요청하는 기도이어야 합니다.

즉 내 것을 더 달라는 기도가 아니라 어떻게 주님의 것이 네게 주었는지에 대한 반응으로서 나오는 기도이어야 한다는 겁니다. 금식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금식했다는 티를 내지 말라는 겁니다. 바로 이러한 원칙은 새로운 이스라엘이나 천국이란 일방적으로 하나님께서 보내신 분의 일방적 행함으로 달성된다는 겁니다.

시편 78:67-71에 보면, “ 또 요셉의 장막을 싫어 버리시며 에브라임 지파를 택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유다 지파와 그 사랑하시는 시온 산을 택하시고 그 성소를 산의 높음 같이, 영원히 두신 땅 같이 지으셨으며 또 그 종 다윗을 택하시되 양의 우리에서 취하시며 젖 양을 지키는 중에서 저희를 이끄사 그 백성인 야곱, 그 기업인 이스라엘을 기르게 하셨더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특별히 택하신 ‘다윗의 후손’에 새로운 이스라엘이 새롭게 세워진다는 겁니다. 이 택함이 바로 사랑인 겁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예수님께서 일방적으로 하신 그 공로 앞에서 우리 자신이 행한 모든 것은 깔끔하게 단절시켜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