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5:1-4 / 계시의 내용 / 240707
계시의 내용
이근호
2024년 7월 7일
본문 말씀: 히브리서 5:1-4
(5:1) 대제사장마다 사람 가운데서 취한 자이므로 하나님께 속한 일에 사람을 위하여 예물과 속죄하는 제사를 드리게 하나니
(5:2) 저가 무식하고 미혹한 자를 능히 용납할 수 있는 것은 자기도 연약에 싸여 있음이니라
(5:3) 이러므로 백성을 위하여 속죄제를 드림과 같이 또한 자기를 위하여 드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5:4) 이 존귀는 아무나 스스로 취하지 못하고 오직 아론과 같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자라야 할 것이니라
성경을 그 자체로 이해되는 책이 아닙니다. 성경이 이해되려면 ‘계시의 영’이 따로 주어져야 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엡 1:17-19)
그만큼 우리 인간은 애초부터 연약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이 연약함이란‘ 무식하고 미혹받음의 대상’이 되어 있다는 겁니다. 이를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사람’과 ‘대제사장’을 구분짓고 있습니다. 인간들은 인간들 나름대로의 삶과 세상에 대해서 구조륽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들의 구조에는 하나님과의 끊어짐이 없이 노력하고 애쓰면 하나님께 갈 수 있다는 정신으로 그 최종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는 시작점을 자기 자신부터 하겠다는 의도를 드러내는 겁니다. 그러나 창세기 3:24에서는 인간은 생명나무로 나아가는 것이 막혀 있습니다.
천국 내용에 대해서 인간은 끊어져 있습니다. 인간은 구원받을 수도, 구원에 대한 그 어떤 권리도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지상에 내려진 구조는 하나님의 단절되었음을 그대로 담겨 있는 구조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계시가 필요한 겁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 1:12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
즉 사도 바울이 말하는 것은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것과 근원적으로 차이를 지니고 있다는 겁니다. 이 차이점을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은 기준을 적용합니다. “내가 너희에게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은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갈 3:2-3)
여기서 육체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비워있는 구조 자체를 뚫을 수 없는 겁니다. 이 빈 자리를 유지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친히 조성하신 구조입니다. 그 비워있는 곳은 속죄제가 채우게 됩니다. 즉 비어있는 바는 하나님에 의해서 채워지는 것이지 인간의 것으로 채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제사장은 개인 이름이 별 의미없습니다. 그 기능으로 말해줍니다. 그의 기능은 인간의 연약함으로 그대로 드러내고 노출시키는 기능입니다. 그런데 세상에서 인간들은 나름대로 연약함의 기준을 갖고 있습니다. 그것은 물리적인 연약함입니다. 천사처럼 날지 못한데서 오는 연약함이요 양식을 늘 먹어야 사람 구실한다고 믿는 연약함입니다.
하지만 이런 물리적 연약함은 예수님께서 악마에게 받은 광야의 시험에서 그 전모가 밝혀졌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배만 부르면 제대로 사람구실 할 수 있으리고 여깁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반대로 인간을 짐승의 레벨까지 낮추십니다. “또 가로되 무슨 일이냐 여인이 대답하되 이 여인이 내게 이르기를 네 아들을 내라 우리가 오늘날 먹고 내일은 내 아들을 먹자 하매 우리가 드디어 내 아들을 삶아 먹었더니 이튿날에 내가 이르되 네 아들을 내라 우리가 먹으리라 하나 저가 그 아들을 숨겼나이다”(왕하 6:28-29)
즉 식량 떨어지면 그 어느 인간도 더는 사람으로 행동하지 않습니다. 짐승이 됩니다. 전쟁이 이런 본색을 드러냅니다. 인간은 자신을 너무 모릅니다. 늘 자신을 좋게 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다음과 같은 지시를 내립니다. “지금 가서 아말렉을 쳐서 그들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되 남녀와 소아와 젖먹는 아이와 우양과 약대와 나귀를 죽이라 하셨나이다”(삼하 15:3)
인간들은 기본적으로 짐승이지만 배부르다 싶으면 사람 행세하려고 나섭니다. 따라서 전쟁하면서 사울왕은 아말렉을 냉정하게 처리시키지 않았습니다. 바로 이점이 사무엘에게 결린 겁니다. 사울왕은 자신을 여전히 괜찮은 인간으로 포장합니다. 여유가 생기니까 사람 행세하고 싶은 겁니다.
그러나 그 바닥에는 어두움과 통하는 관문 같은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12제자 중에 한 사람이 사단입니다. 이처럼 인간의 연약함은 물리적 연약함이 아니라 계시적 연약함에서 비롯된 겁니다. 이 계시의 연약함으로 인해 인간은 미래에 대해서 희망 잔뜩 갖게 됩니다. 그러나 이미 율법이 주어진 취지로 봐서 인간은 벌써 망한 자들입니다.
‘망한다’에 대해서 두 가지 상반된 견해가 있습니다. 하나는 과거에 근거해서 지금 형편을 망했다고 하는 견해가 있을 수 있고 또 하나는 미래가 미리 현재에 들어와서 미래의 기준으로 봐서 망했다, 아니 망했다는 결정지을 수 있습니다. 인간의 연약함은 곧 미완(未完)입니다.
온전치 못합니다. 그것은 인간으로 타고난 것이기에 인간의 힘으로 극복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로 하여금 각자 제 갈길을 가게 하시고 그 제자들이 남긴 그 미완의 길에 속제제물로 들어섰습니다. 죄 없으신 분이 대속 제물로 들어서므로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비워있는 그 자리는 화목제물로 채워지게 됩니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롬 3:25-26)
성도는 하나님으로부터 이 계시의 영을 받은 사람입니다. 이는 곧 성도는 자기 이름을 상실하고 그 자리에 제사장 기능으로 사는 자들입니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벧전 2:9-10)
즉 주님으로 채워진 자는 그저 ‘다 이루었다’의 무한 채워주심으로 완료된 모습을 나타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 안의 계시를 귀하게 여기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