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가랴 5:5-11 / 두 여인
두 여인
이근호
2023년 10월 25일
본문 말씀: 스가랴 5:5-11
(5:5) 내게 말하던 천사가 나아와서 내게 이르되 너는 눈을 들어 나오는 이것이 무엇인가 보라 하기로
(5:6) 내가 묻되 이것이 무엇이니이까 그가 가로되 나오는 이것이 에바니라 또 가로되 온 땅에서 그들의 모양이 이러하니라
(5:7) 이 에바 가운데에는 한 여인이 앉았느니라 하는 동시에 둥근 납 한 조각이 들리더라
(5:8) 그가 가로되 이는 악이라 하고 그 여인을 에바 속으로 던져 넣고 납 조각을 에바 아구리 위에 던져 덮더라
(5:9) 내가 또 눈을 들어 본즉 두 여인이 나왔는데 학의 날개 같은 날개가 있고 그 날개에 바람이 있더라 그들이 그 에바를 천지 사이에 들었기로
(5:10) 내가 내게 말하는 천사에게 묻되 그들이 에바를 어디로 옮겨 가나이까 하매
(5:11) 내게 이르되 그들이 시날 땅으로 가서 그를 위하여 집을 지으려 함이니라 준공되면 그가 제 처소에 머물게 되리라 하더라
음녀, 원초적 죄를 이 인간 세계에 들어온 여인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더 깊게 봅시다. 이 세상은 악이 있기에 생겨난 겁니다. 이 세상을 관통하는 시간은 악을 악답게 성숙시키고 발달시키는 기회의 장이 되는 겁니다. 세상을 전부 다 알 수 없는 선지자에게 천사가 찾아와서 세상의 내막을 밝혀줍니다.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골 1:1
6) 세상에 대한 이해는 필히 예수님을 경유한 해석으로만 가능합니다. 하지만 이 세상은 그분을 거절했고 버렸습니다.
그 이유는 이 세상이 원초적으로 악의 세계이기 때문입니다. 시원(始元)적인 원래의 악은 하늘에 있었는데 하늘의 전쟁에서 패배해서 지상으로 밀려온 겁니다. “하늘에 전쟁이 있으니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이 용으로 더불어 싸울새 용과 그의 사자들도 싸우나 이기지 못하여 다시 하늘에서 저희의 있을 곳을 얻지 못한지라 큰 용이 내어 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라 땅으로 내어 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저와 함께 내어 쫓기니라”(계 12:7-9)
이 악과 처음으로 접촉한 자는 남자가 아니라 여자였습니다. 하와였습니다. 그 여자가 행한 일로 인해 모두가 악에 종속되게 된 겁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늘나라에게 악 체포조가 파견되어 왔습니다. 두 여인입니다. 악은 하늘을 피해 땅으로 왔지만 하늘의 주님은 땅까지 천사를 보내어 악 체포에 나선 겁니다.
체포 방법은 됫박이라고 할 수 있는 부피를 재는 측량기구입니다. 박스로 되어 있고 그 안에 비워있다는 말은 악을 체포해서 그 안에 담는 것 뿐만 아니라 인류 속을 통하는 시간성 마저 그 됫박 바깥으로 번져나올 수 없다는 것을 뜻합니다. 즉 인간들이 흔히 말하는 오류, 실수, 실패 같은 것은 시간마저 가두어 둔 됫박 안에서는 무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보이는 것은 시작과 그 시간을 그대로 존속시키는 끝날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시작이란, 시간의 시작입니다. 인간 사회의 시작입니다. 그것이 오늘 본문에서는 ‘시날’이라는 지역으로 나와 있습니다. ‘시날 평지’는 노아의 홍수 이후, 인간들이 본격적으로 자기들만의 단일화된 인간 세상을 출발하는 장소입니다.
“ 온 땅의 구음이 하나이요 언어가 하나이었더라 이에 그들이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 평지를 만나 거기 거하고”(창 11:1-2) 거기서 그들은 바벨탑을 세웠습니다. 다시는 우리 끼리 헤어지지 말자고 모두 한 마음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그들을 각처로 흩어놓으셨습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흩어지고 언어가 달라져도 그들은 처음과 같이 동일한 마음을 유지하고 있었던 겁니다.
그 이유는, 아무리 악마가 노력해도 됫박이라는 공간을 벗어날 수 없는 것처럼 인간은 악의 수하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인간은 악이 번지는 매개체입니다. 인간이 악을 저지르는 것이 아니라 악이 인간을 다룹니다. 인간은 시간을 초월하는 악에 눌려삽니다. 악은 인간이 만든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지상으로 떨어진 겁니다.
그래서 각 역사상 인간들은 ‘악의 표현체’들입니다. 시날 평야는 나중에 바벨론 제국이 자리잡게 됩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 말씀 앞에서 악을 저질려서 결국 그들이 포로잡혀 간 땅이 바벨론 땅, 곧 시날평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그렇게 다루시는 이유는 이스라엘에게만 지속적으로 하나님의 계시가 선지자를 통해서 전달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선지자 스가랴에게 이런 계시를 보여주시는 겁니다. ‘이스라엘 구원’이라는 것은 이런 전체적인 악의 공간 속에서 진행되기 때문입니다. 이와 관한 내용이 스가랴 3장에 나옵니다. 여호수아라는 제사장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스가랴 4장에서 스룹바벨이라는 왕(총독)이 나옵니다.
이 두 사람은 스가랴 4:14에서는 ‘두 기름발린 자’라고 되어 있습니다. 곧 두 감람나무입니다. 악의 체포하는 하는데 왜 두 여인이 등장하느냐에 대한 이해는, 왜 이스라엘이 구원되는데 하나의 감람나무가 아니라 두 감람나무라는 점과 같은 취지입니다. 스가랴 3:8에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옵니다.
“대제사장 여호수아야 너와 네 앞에 앉은 네 동료들은 내 말을 들을 것이니라 이들은 예표의 사람이라 내가 내 종 순을 나게 하리라”. 즉 메시야가 여호수아에서 나온다는 겁니다. 그런데 오늘 스가랴 본문에서 두 여인에게 날개가 있고 그 날개에서 바람이 나온다는 되어 있습니다. 즉 음녀라는 여성으로 의인화된 악은 두 여인이라는 역시 여성화된 기능적 천사에게 맡겨져 있습니다.
그 이유는 날개를 달고 바람을 일으키는 분이 임마누엘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바람이란 곧 악의 억누른 힘을 이기고 마음껏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이 발휘된다는 뜻입니다. 이 임마누엘의 위력은 이사야 8:8에 나옵니다. “흘러 유다에 들어와서 창일하고 목에까지 미치리라 임마누엘이여 그의 펴는 날개가 네 땅에 편만하리라 하셨느니라”
과연 이 임마누엘은 누가 낳은 겁니까?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사 7:14) 처녀, 곧 여성성으로 묘사된 진리에 의해서 이 땅에 출생한 분이 메시야입니다. 기존의 여성을 대체하는 겁니다.
어떤 식으로요? 대제사장의 기능, 곧 죄사함의 기능과 이 기능의 혜택을 입지 못하는 자에게는 사정없이 가혹하고 영원한 저주를 퍼붓는 왕의 기능으로 천국 백성을 만드시는 겁니다. 두 여인이란 지상에서 실질적으로 기능이 발휘되는 왕+제사장직에 대한 역사적 실행성을 하늘에게 협력하는 존재로서 등장된 천사가 곧 두 여인의 모습이었던 겁니다.
세상은 음녀로서 단일체로 마감되는 것은 요한계시록 17:1에 나와 있습니다. “또 일곱 대접을 가진 일곱 천사 중 하나가 와서 내게 말하여 가로되 이리 오라 많은 물 위에 앉은 큰 음녀의 받을 심판을 네게 보이리라” 이 단일체는 곧 최후의 단일체 바벨론입니다. “힘센 음성으로 외쳐 가로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의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의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계 18:2)
악이 누려는 중력을 거꾸로 이기는 힘은 오직 왕이요 제사장이신 예수님의 죄사함의 위력 뿐입니다. 그래서 세상의 모든 것은 예수님을 위한 것들입니다(골 1:16).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항상 처음과 끝을 보며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15강-스가랴 5장 5-11절(두 여인) 231025 - 이 근호 목사하나님 말씀 보겠습니다. 스가랴 5장 5절에서 11절까지입니다.“내게 말하던 천사가 나아와서 내게 이르되 너는 눈을 들어 나오는 이것이 무엇인가 보라 하기로 내가 묻되 이것이 무엇이니이까 그가 가로되 나오는 이것이 에바니라 또 가로되 온 땅에서 그들의 모양이 이러하니라, 이 에바 가운데에는 한 여인이 앉았느니라 하는 동시에 둥근 납 한 조각이 들리더라, 그가 가로되 이는 악이라 하고 그 여인을 에바 속으로 던져 넣고 납 조각을 에바 아구리 위에 던져 덮더라, 내가 또 눈을 들어 본즉 두 여인이 나왔는데 학의 날개 같은 날개가 있고 그 날개에 바람이 있더라 그들이 그 에바를 천지 사이에 들었기로내가 내게 말하는 천사에게 묻되 그들이 에바를 어디로 옮겨 가나이까 하매, 내게 이르되 그들이 시날 땅으로 가서 그를 위하여 집을 지으려함이니라 준공되면 그가 제 처소에 머물게 되리라 하더라” 아멘.이게 방금 읽었던 본문 가운데서 무엇이냐 무엇이냐 이렇게 묻는 대목이 있지요. 선지자가 천사가 물으라고 이야기했고 또 선지자도 천사 따라서 “이것이 무엇입니까?” 묻는다는 것은 여기에 나오는 이 장면은 이 인간 세계 속에서 인간의 머리 위에서 나올 수 없는 장면이라는 겁니다. 이거는 감추었던 거에요. 인간이 살아가면서 전부를 아는게 아니거든요. 그들이 알고 있던 것은 항상 제한되어 있습니다. 인간은 전부를 모릅니다.골로새서 1장에 보면 예수님이 세상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했어요. 예수님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만드셨고 그 보이지 않는 것 보이는 것 모두가 예수님을 위하여 만들어졌다’라고 이야기하고 있어요. 그 말은 뭐냐 하면 눈에 보이는 것과 그리고 인간들이 알지 못하는 존재 자체도 모르는 보이지 않는 것을 해석 할 때는 이해할 때는 반드시 예수님의 행하신 것을 거쳐서 해석을 해야 이게 진리가 되는 겁니다.왜냐하면 예수님이 진리이시기 때문에. 예수님이 진리라는 것은 예수님 외에 진리가 없는거에요. 예수님을 아는 것, 예수님을 아는 나도 진리에 넣어달라고 하지 마세요. 억지 세우지 마세요.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 이름이 있고 예수님은 하나님의 이름이 있는 거에요. 하나님의 이름은 이 땅에서 인간의 이름에 의해서 거부당한 이름이에요. 그러니까 예수님이 진리라고 해서 예수 아는 나도 진리라고 자꾸 끼어들려고 하면 안되고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것은 예수님에 의해서 제공된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됩니다.그때는 스가랴 같은 심정에 우리가 놓여있지요. 하나님 이건 뭡니까? 이건 뭡니까? 그렇게 되는 거에요. 그러니까 이걸 아주 그 실감나게 실습을 하는 방법이 있어요. 부부 사이 아침에 식사를 할 때 아내가 남편을 위해서 김을 싸가지고 이제 김을 정성 들여 김을 아침에 정성 들여 제공을 하죠. 김 내놓는데 정성까지 들일 필요는 없죠. 마트에서 사서 그냥 옛날엔 가위로 오렸는데 가위로 오릴 필요 없어요. 그냥 내놓으면 되잖아요. 그럴 때 남편이, “아 또 김이가?”라고 하면 안되고 “이건 무엇이냐?” 이렇게 답변해야 돼요. 이게 무엇이냐. 어제는 김이었는데 오늘은 뭐냐?내가 익히 아는 나를 스스로 매일같이 부정하는 거에요. 그게 천사가 우리를 다루는 방법이에요. 뻔히 아는 것 “아이고, 천사님 이것 압니다. 주님, 그것 압니다.” 그렇게 돼 버리면 그 해석이 나를 경유해서 해석이 되니까 방금 해석의 원칙, 예수님을 경유한 새로운 해석이 어제는 있었지만 오늘은 빠져버리죠. 그러면 남는 것은 덜렁 ‘자기 잘났다,’ 이것만 남는거에요.오늘 그 계시를 주면서 바로 천사가 선지자를 다루는 방식이 이거에요. “뭘 봐라.” “뭘요?” “너가 모르는 것” 그러면 선지자가 “이게 뭡니까?” 이렇게 나오죠. 그게 뭐냐? 보니까 여기 에바가 나와요. 에바라 하는 것은 한 말 두 말 할 때 그, 우리말로 하면 됫박, 어떤 부피있는 물건을 부피로 다는 측량 기구를 에바라고 합니다. 유대에서는 에바에요. 에바가 내려옵니다.에바가 내려올 때 그 에바에 한 여인이 에바에 한 여인이 앉아있어요. 그러니까 됫박에, 됫박은 원래 공간이 비어있잖아요. 한 되 두 되. 비어있는 됫박이 하늘에서 내려오는데 거기에 이게 뭐냐? 됫박이다. 근데 또 보니까 그 안에 예상 밖에 현상이 일어나요. 그 안에 여인이 거기에 담겨있습니다. 그리고 천사가 이야기합니다. 8절에, “천사가 가로되 이거는 악이다. 이거는 악이다.” 악함이다는 뜻이에요. 악함이 비어있는 됫박, 하늘에서 내려온 됫박 안에 이렇게 담겨있습니다.여인이 왜 거기서 나오죠? 됫박에서. 그런데 이것은 이렇게 이해하시면 됩니다. 그 됫박이라는 것은 하늘에 묵시로서 천사에 의해서 제시된 거거든요. 물론 천사는 하나님에 의해서 제시되고. 비어있는 어떤 빈 공간이 하늘에서 왔다는 것은 이 땅에 대해서 일어나는 모든 것은 일괄적으로 어떤 시간이든 이 됫박 바깥으로 번지는 시간은 없다는 겁니다. 모든 시간을 됫박안에 담는거에요. 모든 시간이.그래서 인간의 입장에서는 과거 현재 뭐 역사는 어떻고 세계사가 어떻고 민족사가 어떻고 시간이 이렇게 과거로부터 미래로 흘러 가지만 위에서 온 하늘에서 이렇게 내려온 그 하나님의 묵시, 계시라 할 수 있죠, 묵시에 의하면 모든 인간은 동일한 시간대에 속하는 겁니다. 됫박 안에. 그 비어있는 됫박 안에 갇혀있습니다. 모든 시간이. 바깥으로 빠져나가는 시간은 없다 이 말이죠.그러면 그 시간에 시간이 그렇게 흘러가면서 시간은 왜 흘러갔는가? 그거는 그 여인을 보여주기 위해서 됫박 안에 앉아있는 여인을 보여주기 위해서 시간은 흘러간 겁니다. 그런데 그 여인에 대한 하나님의 처리는 이래요. 8절에 보면 이거는 그 여인을 악이라고 하고요. 그 여인을 에바 속에, 그다음에 표현이 뭐냐? “던져넣는다.” 던져넣는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그 됫박 안에 있는 여인, 됫박에 진정한 주인공이에요. 그 여인을 악이라 하고, 악을 의인화시킨 것이 여인이에요.그 여인을 어떻게 처리하느냐. 던져넣는 거에요. 이거는 하나님이 인정사정 볼 것 없이 난폭하게 구는 거에요.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대해서 난폭하게 폭력적으로 하나님이 행사하는 이유는 그 인간의 시간 속에 있었던 인간의 모든 것을 의인화시켜버리면 하나의 여인이 돼 버리고 그 여인은 하나님 보시기에 악이라고 규정한 겁니다.그러니까 이거는 요한계시록 12장에 보면, 12장에 7절과 8절에 나오는 것 처럼, “하늘에 전쟁이 있으니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이 용으로 더불어 싸울쌔 용과 그의 사자들도 싸우나, 이기지 못하여 다시 하늘에서 저희의 있을 곳을 얻지 못한지라” 하늘에 있을 곳을 얻지 못하여 어디로 왔는가? 시간이 흐르는 이 땅으로 쫓겨 온 거에요. 그러니까 이 악이 천지가 된 거에요.이 세상이. 시간 속에 있는 모든 인류의 역사는 악이 주도권을 쥐고 있는겁니다. 하늘에 있든 그런 시원적이고 근원적이고 처음 악이 이 땅에서 의인화돼서 음녀로서 왔고 하늘에 있는 악에 의해서 시간은 꽉 찼기 때문에 그 시간 속에서 태어났고 시간 속에서 죽고 시간 속에서 매일을 살고 있는 우리는 바로 악의 표현형이라고 할 수 있는 거에요.악이 어떤 식으로 일하고 있는가를 보여 주는 매개, 또는 수단용으로 인간이 사로잡혀있다는 뜻이에요. 인간이. 그래서 이 사실이 스가랴 때 새삼스럽게 처음 알려지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여기에는 힌트가 있는데 왜 음녀가, 이 악이 난폭한 어떤 남성형이 아니고 왜 음녀냐 하는 거에요. 왜 여성으로 표현돼 있는가 하는 겁니다. 그것은 창세기 3장에서 최초의 여성의 행한 일에 그 뒤에 나오는 모든 인간들이 그 일에 죄에 종속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왜냐하면 자식은 여자가 놓으니까요. 그 최초의 이브 이후에 등장한 모든 인간은 이브가 하는 짓에서 벗어날 수 없고 탈출 할 수도 없어요. 이걸 아주 쉽게 이야기하면 이렇습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오류라든지 실수, 실패 이런 것은요 사실 됫박 안에서는 아무 의미가 없어요. 무릎을 치면서 “그때 그런 실수를 안 하는건데. 그때 그 사기꾼 말을 안 듣는건데.”안 들으면 어떨껀데요. 안 들었든 매 시간 속에 있는데. 시간 속에 있다는 것은 우리가 어디로 튀든 어디로 탈출하든 됫박 안에서 이루어진 일이고 됫박 안에서는 어느 자리에 어느 하늘에 어떻게 이민 가고 어떻게 직업을 바꾸고 어떤 노력을 하고, 심지어 남성이 여성 되고 여성이 남성으로 바뀐다고 할지라도 악의 수단이라는 점에서는 우리는 변함이 없습니다.따라서 인간은 고쳐 쓰는게 아니에요. 그냥 쓰여지는 거에요. 내가 나를 고칠 생각 하지 마세요. 다른 인간 살 생각 아예 하지마세요. 그거는 개 헛꿈이고요, 헛꿈이 헛꿈이라는 그 망상이 현재의 삶을 더 오히려 힘들게 합니다. 이런 노래가 있지요. 잘 될거야. 잘 될거라는 것은 없습니다. 시간 속에 모든 인간은 악의 구체화된 거에요. 그중 하나가 우리 자신이에요. 우리가 악이고 우리가 바로 음녀의 자식 곧 우리가 음녀입니다.그런데 이렇게 그 여인이 최초의 이브의 죄에 종속됐다는 그 근거가 어디에 있느냐 하면 바로 악마를 뱀을 남자가 처음 만난게 아니고, 말을 남자가 처음 말을 들은게 아니고 여자가 단독적으로 악마의 지시를 따라서 선악과를 따먹은 거에요. 하나님께서는 그 관계, 묵시와 땅에 쫓겨 내려온 그 악, 그 뱀, 옛 뱀이라고 하는데, 옛 뱀. 요한계시록 12장에서. 그 옛 뱀 또는 용이라 하는 것과 접촉된 인간을 남자 여자 가운데서 여자 단독으로 이렇게 규정을 하신 거에요. 여자 단독으로.그 근거가 어디에 나오느냐 하면은 그 근거가 11절에 나옵니다. “내게 이르되 그들이 시날 땅으로 가서 그를 위하여 집을 지으려함이니라” 하는데, 내가 그 에바가 뭔가 이동을 해요. 여기에 10절에 보니까, 9절에 보면 됫박 나오고 됫박 안에 쪼그리고 앉아있는 거에요. 그 음녀가. 한 사람의 여인이 쪼그려 앉아 있는거에요. 거기 있고. 그 왜 있느냐 보니까 거기에 두명의 여인이 등장해요. 오늘 여인 천지입니다. 두 명의 여인이, 천사지요 등장해서 그 됫박 자체를 그냥 고스란히 이동하고 있어요. 근데 이동하기 전에 납으로 뚜껑을 해서 뚜껑을 닫아놓습니다.됫박 안에 여인 있고 남으로 뚜껑, 납이 얼마나 무겁습니까, 납으로 뚜껑을 해 쓴거에요. 여기서 계산, 거기 됫박이 22리터, 한 말 좀 안돼요. 22리터 되는데, 그 크기에 맞고 납을 계산해보면 48킬로그램좀 돼요. 그것을 뚜껑을 해서 닫아놨다는 것은 이게 뭐냐? 체포조입니다. 하늘에서 악을 체포조로 남성 경찰을 보낸 게 아니고 여자 경찰 둘을 보낸 거에요.왜 이게 여인이냐 하는 거에요. 왜 두 명의 여인이냐 하는 겁니다. 오늘 풀어야 될게 한 두개가 아닙니다. 지금. 그래서 우리는 스가랴처럼 물어야 됩니다. “이게 뭡니까? 이게 뭡니까?” 이게 뭡니까 할 때는 반드시 어떻게 해석해야 된다고요? 예수 그리스도를 경유해서 해석해야 돼요. 왜냐하면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모든 것이 예수님을 위하여 창조되었기 때문에요.그냥 아까 제가 골로새서 1장에 있다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1장 16절에 있습니다. “모든 만물이 예수님을 위해서 창조했다”는 거에요. 여기서 유념할 것은 모든 만물이 나를 위해서 창조한건 결단코 아님을 늘 견지 해야 되고 유지를 해야 돼요.그런데 우리는 성경에서 분명히 예수님을 위해서 나도 있고 너도 있고 세상 코끼리 코스모스 들국화도 있는데 그 말을 보면서도 이 뭐 딱 돌아서면 3.6초? 5초. 돌아서면 “그러면 나는?” 갑자기 나를 위해서 만물이 있는게 아닌데,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나를 위해서 있는게 아닌데, 생각은 뭐냐? “그러면 나는요? 내가 어떤 이득을 취할 수 있습니까? 나의 존재의 의미는?” 스가랴 선지자도 마찬가지고요.그래서 주님께서는 그 오늘 본문 11절에 이걸 어디로 보내냐 하면 시날 땅으로 보낸다는 거에요. 시날땅. 이 시날땅이 어떤 땅이냐 하면 노아 홍수 때 세상이 물로 다 멸망했잖아요. 본격적으로 인간이 다시 시작, 홍수 끝나고 주어진 그 땅에서 홍수 이후의 땅에서 본격적 인간들이 요이땅, 시작 해서 인간 사회를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나서 사회를 시작한 그 땅이 시날땅부터 시작되는 겁니다. 그 시날 땅의 특징은 그때는 모든 세계가 단일화 되어 있어요. 모든 종족이 단 하나가된 종족 이 하나였던때가 언제냐? 시날땅이었습니다.그게 창세기 11장 1절에 나옵니다. “온 땅의 구음이 하나이요 언어가 하나이었더라, 이에 그들이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 평지를 만나 거기서로 말하되” 그러니까 인간이 처음 그 범죄한 인간의 모든 것이 하나같이 그걸 단일체, 종족이 여러개가 아니고 단일체. 단일체로서의 인간이 처음 시작한 시날 땅으로 옮겨갔다는 말은 그 시날 땅이 어떤 시작이냐 하면 하나님의 묵시, 하나님의 하늘에 계시와 인간의 본격적으로 역사를 시작하는 에덴동산 떠나고 난 뒤에 시작했던 그, 에덴동산이 원래 시날 땅에서 있었으니까, 에덴동산 떠나고 있던 그 접촉선, 그 경계선, 시작하는 경계선이 시날 평지에요.그러니까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 “보이지 않는 세계를 제끼고 이제 본격적으로 인간의 눈에 띄는 이 땅에서 우리가 힘껏 협력하여 우리 세계 인간의 세계를 한번 구축해보자”라고 시작한 그 땅에 시날 땅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천사를 이렇게 하는 것은 드디어 죄악, 죄악의 시작이라는 거에요. 악의 시작. 문방구에서 잉크를 사 왔는데, 요즘은 잉크를 잘 안 쓰지만 옛날식으로 잉크를 사 왔는데, 잉크를 이제 책상 위에 딱 놔두고 뭐 물 마시러 부엌에 갔다 와보니까 자기 방에 책상에 잉크 놔뒀는데 딱 보니까 자기 문 밑으로 뭐 시커먼 잉크 물이 흩어져있어요.보니까 자기 집에 키우는 고양이가 까불다가 잉크 건드려서 잉크가 깨져서 그 깨진 잉크 물이 이제 바깥으로 자기 그 방에서 벗어나서 거실까지 흘러 들어온 거에요. “이거 뭐야?” 하고 탁 여니까 그 잉크 쏟아진 그게 시날평야.그게 시날땅이에요. 시작한 그 죄가 쏟아진 죄가 계속 지금까지 이어져가지고 우크라이나까지 가고 있는거에요. 우크라이나 하마스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는거에요. 모든 세계가. 그러면 그 우리는 궁금한게 그러면 그 쏟아진 악이 나중에 결국 하나에서 시작했으면 하나에서 끝날 건데 그 모든 민족 현재 200국이 넘는 모든 민족을 그걸 단일체라고 규정했을 때 뭐라고 규정하는가? 그게 요한계시록 17장 1절에 나옵니다.“또 일곱 대접을 가진 일곱 천사 중 하나가 와서 내게 말하여 가로되 이리 오라 많은 물 위에 앉은 큰 음녀의 받을 심판을 네게 보이리라” 음녀의 받을 심판을 네게 보이리라 했어요. 음녀. 스가랴에서도 음녀지만 요한계시록에도 천사들이 일곱 기능을 가진 천사가 자꾸 기능을 원, 투, 쓰리, 포, 파이브, 식스, 세븐 계속 하는 이유가 인간의 그 죄악의 깊이를 계속 발굴하고 들추어 내는거에요.일종의 고고학자. 계속 파 내려가면서 어디까지 있나, 어디까지 있나. 천사들이 폭탄을 위에서 폭격하면서 어디에 악이, 근원적인 악이. 시원적이고 원초적인 악이 어디에 숨었나. 이 땅 밑에 까지 쫓겨 왔으니까, 옛 뱀이. 그 땅 밑에 쫓겨오니까 어디 어디 숨었나 보는 거에요. 하마스에 가자지역에 하마스 정권이 지하터널 400km를 파놨답니다. 이스라엘에서 폭탄을 쏘면 폭탄이 지하까지 내려가는 폭탄을 쏘는 거에요.어디까지 갔나? 어디까지 터널 팠나? 다 추적해가는 그 기능을 해보니까 그게 음녀에요. 그러면 음녀가 음녀라고 규정하고 있는데 그거는 음녀의 실질적인 내용에 대해서 요한계시록 18장 1절에 나옵니다. “이 일 후에 다른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권세를 가졌는데 그의 영광으로 땅이 환하여지더라, 힘센 음성으로 외쳐 가로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큰성 바벨론.이 모든 세상은 바벨론의 계보들이에요. 하나의 제국 바벨론의 파생된 겉절이 나라들이에요. 그중에 우리나라도 아 대한민국도 포함되고요. 첫 번째 짐승은 바벨론, 메데파사 헬라 마케도니아 네 번째 최종짐승은 로마, 그 이후에는 짐승이 없습니다. 왜? 로마 때 예수님께서 세상의 모든 정체를 다 십자가로서 밝혀졌기 때문이에요. 뭘 밝혔는데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모든 것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모든 것이 일시적으로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말이죠.그러니까 이건 나라가 뭐, 나라가 남북통일 뭐 중국이 대만을 침입 그거는 아무 의미 없어요. 중국이 대만을 치든 러시아가 누굴 치든 이 모든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일입니다. 전부다 한 나라에요. 단일종족입니다. 한 아담입니다. 성도라면 세상을 단일체로 볼 수 있어야 돼요. 그 단일체에 있는 그 바벨론이 어느땅에 있는가? 시날 평지에 있는 나라에요.시날 평지에서 마지막 짐승. 마지막 제국이 바벨론이었고 결국은 바벨론에서 벗어난 다른 나라는 없고 바벨론 종족 아닌 자는 아무도 없고 모조리 다 됫박에 납이라는 것은, 뚜껑을 닫았다는 말은 저주 밑에 쪼그려 앉아있다는 뜻이에요. 체포조니까 체포한 거에요. “이 음녀야, 니가 가봤자, 땅끝까지 가봐야 니 하늘에서 체포조 안 보낼 줄 알았어?” 결국은 주님께서 그 하나님께서 결국은 그 악, 음녀, 옛 뱀을 체포하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상황은 시간 속에 있던 인류의 역사가 전부다 옛 뱀의 하수인들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는 거에요. 모든 인간은.그렇다면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그럼 이스라엘은 뭐냐?’에요. 이스라엘은 뭐냐. 구원받는 백성은 어디 있느냐? 다들 그렇게 시간 속에 산다는 자체가 음녀의 사주를 받는 악의 매개체라면 그러면 참으로 천국이 있을 거고 그 천국에 갈 수 있는 백성들은 어느 대목에서 그게 등장하는가? 어디에 숨어있는가? 이점을 한번 생각해 봐야 돼요. 그 힌트는 뭐냐? 그 음녀를 체포하는데 등장하는 것이 하나의 여인이 아니고 두 여인이라는 거에요.다시 9절에 보면 “내가 또 눈을 들어 본즉 두 여인이 나왔는데” 그 두 여인이 특징이 나와 있어요. “학의 날개 같은 날개가 있고 그 날개에 바람이 있더라”라고 돼 있어요. 그렇다면 이 두 여인이 누구냐를 알기 위해서는 날개를 찾아봐야 돼요. 날개. 날개를 찾아보니깐 날개가 나와요. 이사야 8장 8절에 날개가 나옵니다. 이사야 8장 8절에 보니까, “흘러 유다에 들어와서 창일하고 목에까지 미치리라 임마누엘이여 그의 펴는 날개가 네 땅에 편만하리라 하셨느니라” 이렇게 되어있어요.여기 임마누엘이라는 분의 날개가 나옵니다. 그리고 그 날개에서 바람이 나온다는 것은 지금 이 땅이 악의 천지가 된 것은 하늘에 전쟁이 있었고 하늘에서 미카엘과 예수님에게 패배한 옛 뱀이 땅을 접수해서 땅을 자기 세계 만들기 위해서 내려온 거에요. 이게 짓누르는 악이고요. 위에서부터 짓누르는 악이기 때문에 어느 인간도 자기 속에 있는 악을 본인이 저항하거나 밀어낼 수가 없어요.로마서 7장에 나오듯이. 나는 율법을 지키고 싶지만 내 속에 악이 마치 짓누르고 있어요. 악마의 힘이에요. 이걸 뭐냐? 중력이죠. 일종의 우리 육신이 중력을 이기지 못하잖아요. 괜히 높은 데 가면 무섭잖아요. 중력의 힘 때문에. 모든 것은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잖아요. 물도 그렇고. 모든 것이 침대 떨어지는 것도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지요. 그게 무서운 거에요. 겁나는 거에요. 이게 인간 속의 무서움과 두려움과 알 수 없는 공포를 제공하는 겁니다.‘버티지 않으면 떨어진다’라는, 그게 늘 우리의 심리를, 정서를 흔들리게 만드는 겁니다. ‘여기서 보다 더 떨어지면 나는 못살아’ 이런 것 있잖아요. 인간의 상징, 머릿속에 있는 상징성은요 훈련이 어떻게 훈련이 되느냐 하면 좋은 것은 위로 올라가면 되고 나쁜 것은 밑으로 떨어진다는 그런 상징성을 이거는 이브의 죄로 인하여 전부 다 각인되어 있는거에요, 우리 속에. “하, 몸이 쫙 가라앉네” 이게 뭡니까? 가라앉는다는 말은 바로 주저한다는 뜻이거든요. 그런데 여기에 이 두 여인이 있는 그 날개가 내는 바람은 이 중력을 이겨냅니다.중력을 이겨낼 뿐만 아니라 그 근원이 되는 악 그 자체를 체포했고 가둬놓고요. 완전히 밀폐시켜놓고 그걸 처음의 자리까지 옮겨놓는 움직임까지 가능한 힘이에요. 그 가능한 힘이 어디서 나왔는가? 가능한 힘이 임마누엘에서 나온 거죠. 그러면 그 임마누엘은 어디서 나왔는가? 이사야 7장 14절,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처녀가 잉태하여 그 아들을 낳았는데 임마누엘이라 하리라.그러면 이 임마누엘은 누구의 자식이냐 하면 처녀의 자식이죠. 여자의 후손인 거에요. 창세기 3장 15절에. 여자의 후손인 겁니다. 근데 여자라 하는 것은 이 세상에 보이지 않고 이 세상에 보는 것을 느끼는 사람한테는 후손은 있는데, 여자의 아들은 있는데 그 아들이 아들 되게 한 그 원리에 대해선 인간에게는 몰라요. 무슨 말이냐 하면 하나님께서 창세기 3장 15절에 약속을 줄 때 여자의 후손과 뱀의 후손을 할 때 인간 세계에 나타난 것은 그 후손들만 나타난 거에요.누가 뱀을 봤어요, 누가 악마를 봤습니까? 악마를 못 보니까 녹색 얼굴에다가 뭐 어떻고 뿔이나고. 예, 어떤건 귀신들리면 모가지돌아가고 그 영화 보고 얼마나 놀랬는지. 하여튼 괴기영화 귀신 영화 보면 상투스 상투스 신부가 막 하면 귀신은 뭐 이렇게 발작 일으키고. 전부다 그걸 보고 귀신이 얼마나 우습겠습니까? 귀신도 모르는게 마귀도 모르면서 마귀영화 만드는 것 봐 이거. 그렇게 있잖아요. 마귀만 못 보는게 아니에요. 현재 세상 끝날까지 함께 있다는 주님도 안 보여요.주님은 오셨지요. 임마누엘로. 그러나 주님을 이 땅에서 주님을 주님 되게 하는 그 주님에게 기능을 준 그 기능을 준 기능에 대해서는 성경에서는 그냥 여자의 후손이라고 되어있고 그 ‘여성성’, 그땐 여성성 해야 돼요, 여성성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면 이 사실이 보이지 않는 이 사실이 왜 처녀라면 처녀가 한 명 있는데 왜 여기엔 두 여인으로 돼 있는가. 그것을 알려면 지난번에 했던 스가랴 3장을 한번 볼 필요가 있어요.스가랴 3장에 보게 되면 대제사장 여호수아가 나오지요. 하나님에서 옷 갈아입힘을 당한 여호수아. 그 다음에 여호수아 나오거든요. 근데 여기에 3장 8절을 보면 “대제사장 여호수아야 너와 네 앞에 앉은 네 동료들은 내 말을 들을 것이니라 이들은 예표의 사람이라 내가 내 종 순을 나게 하리라” 내 종 순을 너에게서 나게 하리라 했어요.그럼 이사야 9장 6절 7절에 보면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에요. 여호수아가 행하는 그 제사장 기능에서부터 순, 다시 말해서 메시아가 나오시는 거에요. 메시아가. 그러면 여호수아에서만 나오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그 4장에 보면 이번에는 하나님께서 누구한테 이야기를 하느냐 하면 스가랴 4장 9절에 “스룹바벨의 손이 이 전의 지대를 놓았은즉”라고 스룹바벨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습니다.스룹바벨을 언급하면서 그 두 감람나무를 제시할 때 또 천사가 제시할 때 “이것이 무엇이냐?” 할 때 스가랴가 “이것이 무엇입니까?” 물었거든요. 하니까 14절에“내 주여 알지 못하나이다 가로되 이는 기름 발리운 자 둘이다” 기름 발린 둘이에요. 무슨 뜻이냐 하면 숨어있는 하나가 이 땅에 올 때는 반드시 [왕+제사장직], 왕과 제사장 두 개의 기능으로 이 땅에서 숨어있는 그 한 분을 이 땅에서는 둘로 드러내게 되어 있다는 거에요.제사라 하는 것은 바로 죄 문제 해결하기 위해서 있는 것이고 왕이라 하는 것은 모든 것을 일을 다 치르고 난 뒤에 그 기준에 부합되지 않는 것은 단호하게 심판하시는 권리자가 왕이에요. 죄 사해준 사람은 천국으로 보내고 죄 사함의 혜택을 입지 못한 사람은 단호하게 지옥 보내는 그러한 계획을 잡으시고 창세 전부터 그런 계획을 예정하사 잡으시고 주님께서 순, 메시아를 이 땅에서 처녀의 몸을 통해서 태어나게 하셨습니다.그래서 실질적으로 일하는 것은 두 감람나무가 등장해서 하는데, 그 제사장과 왕의 기능을 하죠. 근데 이게 지금 스가랴 때는 구약 때는 왕과 제사장 구분되어있는데 신약에 오면 예수님이 왕이시고 왕이신 분이 대제사장이 되십니다. 결합이 돼요. 그러니까 이 땅에서 실질적으로 일하시는 두 감람나무에 대한 그 역사적 실행자가 두 감람나무라면 묵시적인 협력자가 두 여인이 되는 거에요. 그 네 명이 공통점이 뭐냐 하면 체포조에요.그냥 체포가 아니고 악은 체포하되 그 가운데서 악 속에 그냥 꼼짝 마라 하고 묶여있었던 자기 백성들을 건지는 기능을 왕과 제사장 직을 하시는 분에 의해서 하나님께서 성사시키려고 하는 겁니다. 어디에 가서? 시날 평지에 가서 새로 시작하는 거에요. 처음으로 가자 우리 처음으로. 무슨 처음? 인간이 죄일 수 밖에 없던 처음.우리가 이거 오해하시면 안되는게 처음이라 하니까 죄 없을 때 처음으로 자꾸 생각하는데 역사는 처음부터 죄 있었습니다. 죄 없는게 아니에요. 홍수 끝나고 난 뒤에 시날 평야에서 한마음이 되어서 요이땅 시작 할 때 인류의 국가와 사회를 시작할 때 그때도 이미 인간들은 죄 있는 채로 시작을 한거에요. 그게 창세기 8장 21절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여호와께서 그 향기를 흠향하시고 그 중심에 이르시되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인하여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의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이미 규정된 거에요.어려서부터 악함이라. 한 살? 악함이라. 두 살? 악해요. 세 살? 악합니다. 차이는 뭐냐? 악이 점점 더 숙성되고 아주 성숙되고 악이 재주가 더 발랄하게 된다는 거에요. 융통성이 있는 악을 점점 더 발휘하게 된다는 거에요. 인간은. 안 악한 자가 없어요. 안 악한자가. 왜? 음녀. 시간이 모든 시간이 종결되고 난 뒤에 모든 시간을 가둬 놓다 보니까 전부 다 하나같이 어떤 시대의 상이든 모든 시대상은 악이 음녀가 진두지휘했던 역사였던 겁니다. 인류의 역사가.악이 악을 해결한다고요? 말도 안되죠. 제가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사람은 고쳐쓰는게 아니고 그냥 악하니까 그냥 주께서 쓰실거에요. 죄 사함을 보여주는 증거자로서 쓰시면 천국 가는겁니다. 그것은 나를 천국 보내는게 아니고 천국을 보여주기 위해서 우리를 활용하는 것이죠. 제사 덕분에 내가 제사를 나를 살리기 위해서 제사가 있는게 아니고 제사 법을 살리기 위해서 우리를 거기다가 초청한 겁니다. 율법을 살리기 위해서, 말씀을 살리기 위해서 우리가 된 것이지 날 구원하려고 말씀을 준게 아니에요.그러면 이 각 시대마다 죄가 있다는데, 그러면 각 시대는 어떤 식으로 있느냐. 조각조각 각 시대에 악이 포장된 채 지나가고 있습니다. 마치 포장된 사탕 같아요. 그 시대 그 시대 전부 다 저주에 갇힌 채 우리는 보내왔습니다.안도 다다오라는 일본의 건축설계사가 있는데 그 사람이 오사카의 만든 교회가 ‘빛의 교회’라는게 있어요. 그 빛의 교회 설계를 어떻게 했느냐 하면 이렇게 했습니다. 바깥에 담장이 있는데 담장 따로 보통 본관 따로 예배당 따로 있잖아요. 근데 설교할 때는 담장이 예배당을 뚫고 와요. 담장이 예배당을 뚫어버리면 그 뚫을 때 그 담장이 예배당의 전면이 돼요. 전면이 되고 거기에 틈을 만들었어요. 십자가 틈을 만들었어요. 십자가 틈을 만들고 그 벽 위에 거기서 멈추는게 아니고 또 예배당을 관통해 가지고 빠져나가요.왜 그렇게 만들었느냐 하면 예수님의 창을 찌를 때 창보다 예수님의 육체가 짧아요. 창은 예수님의 창은 찌르고 바깥으로 관통해버렸거든요. 찔린 희생자가 예수님이고 찌른 자가 이 세상이에요. 세상이 예수님을 찌르고 흐를 때 그때 그 찔린 현장에서 이 세상과 천국은 틈이 발생 되었다는 거에요. 그 틈을 십자가로 표현한 겁니다.그래서 그 사람이 그 교회 설계할 때 그 십자가 좁은 틈. 가로, 세로 틈으로만 십자가가 있어요. 십자가에서 바람이 들어오게 만들었어요. 성령의 바람. 오직 성령은 십자가를 통해서 들어 온다는 거에요. ‘막혔음에 성령 아니면 구원받지 못한다’ 이런 뜻이에요. 완전히 막혀있기 때문에. 인간의 어떤 기독교적인 종교적 활동도 이건 소용이 없어요. 그냥 막혀 있는거에요. 왜? 예수님 죽이는데 전부 다 한통속이기 때문에.에바 속에 갇혀있기 때문에. 음녀의 자식들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브의 자식 아닙니까? 음녀의 자식 아닙니까? 이 말은 악이 시간보다 더 길다는 뜻이에요. 악이 역사보다 더 앞선다는 이야기입니다. 악이 우리 몸을 육신을 관통하고 있다는 거에요. 문제는 관통하면서 관통 될 때 비로소 우리는 하늘나라와 나와 끊어져 있음을 발견할 때 그 발견하는 것은 십자가의 의미를 아는 사람. 예수님이 대제사장으로 오셔서 세상 죄를 짊어지는 어린양의 피로서 희생됨을 아는 자만이 이 스가랴 묵시를 해석해 낼 수가 있습니다.‘아, 내가 갇혀있었구나.’ 근데 그 두 감람나무가 활동해서 같이 협력해서 천국 백성으로 하여금 원래의 자리,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 따먹은 그 자리에서 다시 우리 자신과 그리고 이 안에 오신 예수님께서 희생자로 오신 그 희생과 우리의 원초적인 죄와 만남.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복음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하나님 아버지, 우리 자신들이 하나님 앞에 쓰임 받는 그 자체만으로 더는 욕심 내지 말게 하옵소서. 찢겨지신 예수님의 몸처럼 주께서 저희를 찢으신다할지라도 성령의 바람이 들어오는 천국의 틈이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