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순 2023. 10. 5.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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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2023년 8월 16일                   

 

본문 말씀: 스가랴 1:18-21

(1:18) 내가 눈을 들어 본즉 네 뿔이 보이기로

(1:19) 이에 내게 말하는 천사에게 묻되 이들이 무엇이니이까 내게 대답하되 이들은 유다와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을 헤친 뿔이니라

(1:20) 때에 여호와께서 공장 네 명을 내게 보이시기로

(1:21) 내가 가로되 그들이 무엇하러 왔나이까 하매 대답하여 가라사대 그 뿔들이 유다를 헤쳐서 사람으로 능히 머리를 들지 못하게 하매 이 공장들이 와서 그것들을 두렵게 하고 이전에 뿔들을 들어 유다 땅을 헤친 열국의 뿔을 떨어 치려 하느니라 하시더라

인간은 자신이 망하는 것이 마땅함을 모릅니다. 이점은 이스라엘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은 조상으로 인해 하나님께 버림받았습니다. 이 버림받음에는 그 어떤 변동도 있을 수 없습니다. 이점을 대해서 인간들은 반발합니다. 왜냐하면 악마와 한 마음이 되어 자신이 ‘신처럼 행세’하게 됩니다.

즉 이 세상의 모든 문제를 자기가 해결하려고 합니다. 실패하지 않고 모든 모자람을 지식으로 채우려고 시도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인간의 버림받음이 취소되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은 결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버림받은 자입니다. 따라서 자기가 가진 지식과 노력으로 인해 무너지고 있는 겁니다. 애를 쓰면 쓸수록 자신의 존재의 무게는 더 나가는 겁니다.

그렇다면 이것을 이렇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① 지옥은 지옥다워야 한다. ② 사람은 사람다워야 한다. ③ 이 둘을 연결해야 합니다. ④ 인간들은 자기만을 상대로 이야기합니다. 즉 자기 마음에 맞는 사람은 자기뿐입니다. 그러니까 그 어떤 경우라도 조금도 달라지지 않습니다. 사람이 골프 친다고 해서 인간 바뀌는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사례는 이스라엘이라고 해서 예외가 아닙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유다와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은 망했다는 사실을 분명히 합니다. 그런데 이 망한 것은 같은 인간들 나라에 의해서 망한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뿔이 와서 이스라엘을 해쳤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뿔이 뭡니까? 이것은 인간들 만의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게 뿔입니다.

성경에서 뿔이라는 하는 것은. 돌출의 성격을 보여줍니다. 이는 초과적인 활동을 뜻합니다. 인간에 의해서 포착될 수 없는 활동입니다. 인간을 능가하는 활동입니다. 이 활동에는 무슨 의도를 갖고 있습니다. 이 뿔이라는 활동은 천사에 속한 활동이라는 사실은 장인(匠人)기능을 드러냅니다.

뭔가 만들어내는 활동입니다. 뭘 만들어낼까요? 그 만들어내는 것으로 인해 이스라엘은 ‘꼼짝마라’는 처지를 놓이게 됩니다. 갈라디아서 3:22에는 “모든 것을 죄 아래 가두었으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죄 아래 가운데’ 놓이게 된 것을 기정사실화 하는 것으로 하나님께서 내린 조치는 천사를 통해서 율법을 주셨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그런즉 율법은 무엇이냐 범법함을 인하여 더한 것이라 천사들로 말미암아 중보의 손을 빌어 베푸신 것인데 약속하신 자손이 오시기까지 있을 것이라”(갈 3:19) 즉 천사가 동원해서 율법이 일괄적으로 이스라엘에게 주어졌습니다. 이는 모든 인간은 율법의 저주 안에 갇혀 있는 상태임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래나 저래나 인간의 신세는 마치 병 속에 갇힌 전갈과 같습니다. 이것을 모르고 인간들은 결사적으로 하나님의 법과 말씀을 지켜서 자신의 처지를 바꾸어보려고 시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신 이유는 인간이 그 어떤 행위를 하더라도 하나님의 뜻에 위배된다는 점입니다. 더 나아가서, 왜 인간은 살려고 해도 죽음이 멈추지 않느냐 하는 겁니다.

천사의 활동은 인간의 요청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거대한 산불도 인간이 요청한 것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태어난 것도 나의 요청이 아닙니다. 우리가 구원되는 것은 새로운 뿔의 등장으로 성립되는 겁니다. “우리를 위하여 구원의 뿔을 그 종 다윗의 집에 일으키셨으니”(눅 1:69)

뿔이라는 것은 초과적인 천사의 활동과 관련이고 그 천사는 배후에 주님의 활동입니다. 즉 인간→천사→예수님→천사의 절차로 성도에게 작용합니다. 이 ‘구원의 뿔’은 하나님의 의에 위해 새롭게 등장하는 남은 자 위에 작용합니다. 즉 새로운 뿔의 장인, 곧 천사는 새 백성을 하나님의 의 안에 가두어둡니다.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롬 8:33-34) 성도의 초과분, 성도의 위에 돌출되어 있는 것은 ‘의의 뿔’입니다.

이 진행 내용이 미가 4:7-5:5까지 나옵니다. 이 중에서 미가 4:13에 보면, “딸 시온이여 일어나서 칠지어다 내가 네 뿔을 철 같게 하며 네 굽을 놋 같게 하리니 네가 여러 백성을 쳐서 깨뜨릴 것이라 내가 그들의 탈취물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며 그들의 재물을 온 땅의 대주재께 돌리리라”고 나옵니다.

이 뿔에 해당되는 분은 어떤 모습으로 오실까요?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에니라”(미 5:2) 바로 낮은 모습으로 오신 예수님이십니다. 어느 정도 낮게 오셨는가요? ‘아무 것도 없는 곳에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바로 성도의 원형이십니다. 성도는 자신이 하는 모든 시도가 다 실패일 뿐이라는 점을 너무 감사하고 도리어 즐기는 자들입니다. 갈라디아서 2:21에 보면, “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갈 2:21)

여기서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다’는 대목에 주목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사울일 경우에, 그는 예수님이 헛되어 죽었다고 여겼던 자입니다. 이 세상에서 인간은 자기 만이 분노할 자격이 있다고 여깁니다. 인간은 분노에서 시작해서 분노에서 말미암아 분노로 끝납니다. 그렇게 해서 생긴 사건이 십자가 사건입니다.

그러나 이제 사도가 된 바울은 이 십자가를 가지고 반대로 제시합니다. “율법으로 의롭다 함”을 더는 신경쓰지 않게 된 이유가 자신이 마땅히 실패하고 마땅히 버림받아야 될 존재임을 이제사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즉 인간은 복음을 가지고 더는 실패하지 않기 위해 복음을 알고자 합니다.

달리 말해서 복음없이 살려고 복음을 찾고, 자신이 믿을 만한 것을 구성하기 위해 복음을 동원합니다. 따라서 이런 것조차 마땅히 실패해야 됨을 이제는 기쁘고 즐겁게 받아들이게 된 겁니다. 십자가에 나오는 그 의로 인해 인간도 예수님처럼, ‘아무 없는 곳에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꿈틀거리는’ 존재입니다.

천국은 하나님에 의해 요청된 자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죄 안에 갇힌 자들은 이제 주님의 남은 자는 의 안에 갇힌 존재로서 주님을 증거하게 됩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의 본 모습을 이제는 알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